'이주의 저자'를 골라놓는다. 후보군이 많지 않아서 선정은 금세 이루어졌다. 먼저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 그의 문학론을 엮은 <문학의 행위>(문학과지성사, 2013)가 출간됐다. 영어로 나온 앤솔로지로 <종교의 행위>와 짝을 이루는 책.

 

 

오랜만에 데리다의 책이 나온 듯싶어 찾아보니 단독 저서로는 개정판 <그라마톨로지>(민음사, 2010) 이후 3년만이다. <문학의 행위>는 '문학이라 불리는 이상한 제도'란 제목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하여 카프카의 우화 '법 앞에서'에 대한 해체적 독서와 퐁주와 첼란에 대한 글 등을 포함하고 있다. 모처럼 음미하며 읽을 만한 책이 출간돼 반갑다.

 

 

 

그리고 두번째 저자는 '미국을 대표하는 서평가'라는 마이클 더다. 신작 <코난 도일을 읽는 밤>(을유문화사, 2013)이 출간됐다. 그의 독서 에세이는 <오픈북>(을유문화사, 2007)을 필두로 하여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 2009), <북 by 북>(문학동네, 2009) 등이 연이어 나왔고, 이번에 약간 터울을 두고 나온 책이 <코난 도일을 읽는 밤>이다. 소개에 따르면, "2012년 에드가 상 수상작. 셜록 홈즈를 비롯한 코난 도일의 작품 이야기이자 그의 스토리텔링의 모든 기술을 담은 책. 셜록 홈즈 이야기 그 너머로 나아가 글쓰기의 주목할 만한 본체를 탐구해 보자는 초대장이자, 줄거리와 분위기에 대한 찬탄, 모험과 로맨스, 독서의 즐거움에 관한 책이다." 셜록 홈즈 이야기를 다시 손에 들고 싶도록 만드는 책.

 

 

세번째는 '하버드대 박사'로 소개되는 미국의 한국학 전공자(현재는 경희대에 재직중)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다. 한국 이름이 이만열(원로 역사학자와 동명이인이다). 대표적인 한국통이라고 할 그가 보기에 한국은 좀 이상한 나라라고 한다.

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자신의 위상에 대한 모순적인 태도를 가진 이상한 나라이다. 그가 보기에 지금까지 한국은 국제사회에 제대로 자신을 알리려고 노력한 적이 없고, 정부와 한국 정부 스스로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국가 브랜드로 홍보하고 알릴 수 있는 엄청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라이지만 그것을 전혀 이용하거나 살리지 않고, 어떤 면에서는 부끄러워하고 하찮게 여기면서 그것들을 점점 없애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의 훌륭한 문화적 유산에 넘치는 애정을 갖고 그것을 어떻게 지키고 살려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노마드북스, 2011)를 필두로 해서 <세계의 석학들, 한국의 미래를 말하다>(다산북스, 2012), 그리고 이번에 낸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21세기북스, 2013)까지 '하버드대 박사가 본 한국의 가능성'이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해봐도 좋겠다..

 

13. 0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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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폭염이고 다시 주말이다. '이주의 책'을 골라놓는다. 타이틀북은 제이 하먼의 <새로운 황금시대>(어크로스, 2013)로 골랐다. '비즈니스 정글의 미래를 뒤흔들 생체모방 혁명'가 부제. 분야도 '창업정보'와 '생명과학'에 걸쳐 있다.

 

 

어떤 책인가. "생체모방 혁명에 뛰어들어 기술의 신세계를 개척한 저자가 들려주는 흥미롭고도 신기한, 비즈니스와 과학에 관한 모든 것이 담긴 책"이다. 과학과 기술과 비즈니스가 어떻게 접속되는지 보여주는 흥미로운 책일 듯싶다. 참고로 생체모방을 다룬 책으론 재닌 M. 베니어스의 <생체모방>(시스테마, 2010)이 나온 바 있다.

 

 

두번째 책은 국내 저자 7인이 쓴 <화폐 이야기>(부키, 2013)다. "인류의 화폐가 어떻게 시작되고 진화해 현대 사회에까지 오게 되었는지, 화폐에 대한 인류의 애증과 윤리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화폐 제도에서 파생하는 권력관계와 이를 둘러싼 다툼의 역사는 어떠했는지, 오늘날 화폐 제도를 관장하는 중앙은행의 표준을 제시한 영란은행은 어떠한 길을 걸어왔는지, 애덤 스미스와 케인스 같은 선지자들의 화폐에 대한 식견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살펴"보는 책. 지난주에 나온 책으로 마르그리트 케네디의 <화폐를 점령하라>(아포리아, 2013)와 같이 읽으면 좋겠다.

 

 

세번째 책은 충성과 배신의 딜레마를 다룬 에릭 펠턴의 <위험한 충성>(문학동네, 2013). 미국의 칼럼니스트가 쓴 충성에 대한 인문적 성찰이다. 개인적으로 추천사를 보탠 책이기도 한데, 이렇게 적었다.

충성이란 말에서 교련이나 군대를 먼저 떠올리는 한국인에게 충성은 미덕이라기보다는 의무다. 미덕이라 하더라도 사유나 성찰과는 정반대편에 놓일 것이다. 충성은 무조건적 복종이어야 한다는 게 우리의 통념 아닌가. 에릭 펠턴의 <위험한 충성>은 충성에 대한 인문적 성찰이란 점에서 예외적이다. 충성을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란 사전적 의미 대신에 ‘믿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미덕’이라고 정의할 때부터 뭔가 막힌 것이 뚫리는 듯하다. 그와 더불어 비로소 충성을 제대로 사유할 수 있게 됐다.

네번째 책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칼럼니스트 로제 폴 드르와의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시공사, 2013)이다. 사유의 거장들에 대한 소개서로 "프로이트, 러셀, 사르트르, 비트겐슈타인, 카뮈, 간디 등 20세기를 화려하게 수놓은 스무 명의 위대한 지성들을 한 명 한 명 심도 깊게 만난다." 저자의 책으론 <처음 시작하는 철학>(시공사, 2013), <일상에서 철학하기>(시공사, 2012) 등이 소개돼 있는데, <위대한 생각과의 만남>은 <처음 시작하는 철학>의 속편 격이다.  

 

 

마지막 다섯번째 책은 일본의 추리소설가 온다 리쿠의 라틴아메리카 여행기 <메갈로마니아>(문학동네, 2013)다. 소설을 읽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는데, 심심찮게 여행기도 쓰는 모양이다(소설보다 여행기가 더 궁금하다). 책소개는 이렇게 나간다.

추리소설가 온다 리쿠, 라틴아메리카에 가다. 중남미 고대문명을 조명하는 NHK 방송 프로젝트의 일부로 여행기를 써줄 것을 제안받은 그녀, 잘 알려진 대로 고질적인 비행공포증을 호소하며 거절했지만 결국 여행길에 오른다. 그런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열한 번의 비행 일정과 상상력 풍부한 작가조차 주눅들게 하는 고대문명의 거대한 광경이다. 어린 시절부터 중남미 고대문명에 심취했음을 고백하며 잔뜩 신이 난 아이처럼 멕시코, 과테말라, 페루로 이어지는 여정 속에 쉴새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온다 리쿠의 트래블노트'라고 소개된 <구석진 곳의 풍경>(책읽는수요일, 2013)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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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황금시대- 비즈니스 정글의 미래를 뒤흔들 생체모방 혁명
제이 하먼 지음,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2013년 8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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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화폐 이야기- 일곱 개 키워드로 읽는 돈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송인창 외 지음 / 부키 / 2013년 8월
15,800원 → 14,220원(10%할인) / 마일리지 79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2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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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충성- 충성과 배신의 딜레마
에릭 펠턴 지음, 윤영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15,000원 → 14,250원(5%할인) / 마일리지 450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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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과의 만남- 사유의 스승이 된 철학자들의 이야기
로제 폴 드르와 지음, 박언주 옮김 / 시공사 / 2013년 8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월 30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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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가 쓴 베케트론이 출간된다거나 바디우가 쓴 베케트론이 소개되는 건 놀랍지 않다. 하지만 두 사람의 베케트론이 마치 짜맞춘 듯이 나오는 건 좀 놀랍다(진짜로 일정을 맞춘 것일까?). 들뢰즈의 <소진된 인간>(문학과지성사, 2013)과 바디우의 <베케트에 대하여>(민음사, 2013)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소진된 인간>의 부제는 '베케트의 텔레비전 단편극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다.

 

 

들뢰즈의 문학론은 <카프카>(동문선, 2001)와 <비평과 진단>(인간사랑, 2000) 등을 참고할 수 있고 도널드 보그의 <들뢰즈와 문학>(동문선, 2006)이란 요긴한 안내서도 나와 있다. 창작에도 열정을 쏟고 있는 바디우의 경우 <비미학>(이학사, 2010)이나 <바그너는 위험한가>(북인더갭, 2012), 그리고 <조건들>(새물결, 2006) 등을 그의 미학과 예술론으로 참고할 수 있다. <조건들>에는 베케트에 관한 장도 포함돼 있다. 그럼에도 동일한 작가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비록 같은 작품을 다루는 건 아니지만) <소진된 인간>과 <베케트에 대하여>는 베케트 이해뿐 아니라, 두 철학자를 비교하는 데도 도움을 줄 듯싶다.

 

소개글을 참고하면, <소진된 인간>은 "베케트 작품의 감각적 사유를 철학적으로 재해석한 들뢰즈의 독창적 에세이. 피로와 소진이라는 개념을 문제 삼은 들뢰즈 말년의 예술철학 에세이"이고, 좀더 긴 분량의 <베케트에 대하여>에서 바디우는 "바디우는 베케트 문학에서 부조리와 절망과 허무의 징후들만을 읽어 내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고, 존재와 언어 사이의 극도의 긴장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을 다시 견뎌 내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욕망을 발견한다."

 

 

개인적으론 몇년 전 대학 도서관에서 <베케트와 바디우: 간헐성의 파토스> 같은 책이 눈에 띄길래 바디우의 베케트론이 궁금하던 차였는데, 실물을 볼 수 있게 돼 반갑다. 

 

 

 

아쉬운 건 베케트 희곡집이 충분히 나와 있지 않은 점. 예전에 <사무엘 베케트 희곡전집1,2>(예니, 1993)가 나온 적이 있는데, 절판된 지 오래 됐다. 믿을 만한 비평판이 나오면 좋겠지만, 작품의 난해성을 고려하면 기대 난망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엔드게임> 같은 대표작들은 복수의 번역본으로 나와주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세계문학전집판이라면 더 믿을 만하겠다...

 

13. 0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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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신작이 또 나왔다.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동녘, 2013). 올해 들어서만 다섯 번째 책이다(아무래도 작년에 나온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생각 밖으로 많이 읽힌 영향이 아닌가 싶다). 아무려나 일급의 학자 책이 자주 소개되는 게 불만스러울 리는 없다(게다가 바우만은 손꼽을 만한 다작의 사회학자다). 이번에 나온 책은 "전면적 경제개혁 없이 ‘경제 민주화’가 가능할까? 스티글리츠 <불평등의 대가>에 대한 바우만의 사회학적 대답"이라고 소개된다. 소개대로, <불평등의 대가>(열린책들, 2013)와 같이 읽어도 좋겠다. 올해 나온 바우만의 책들을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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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안규남 옮김 / 동녘 / 2013년 8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3년 08월 23일에 저장
구판절판
유행의 시대- 유동하는 현대사회의 문화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3년 7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13년 08월 23일에 저장
품절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홍지수 옮김 / 봄아필 / 2013년 7월
20,000원 → 18,000원(10%할인) / 마일리지 1,0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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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유럽 최고의 아말피 상 수상작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정일준 옮김 / 새물결 / 2013년 7월
43,000원 → 38,700원(10%할인) / 마일리지 2,1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2월 2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3년 08월 23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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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회의(350호) 특집 '출판전문지가 사는 길'의 한 꼭지를 청탁받아 쓴 글을 옮겨놓는다. 주제는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이었다. 잡지를 받아보니 '나는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란 제목이 붙여졌는데, 머리글은 '책에 살고 책에 죽는 서평가'다. 아마 두 가지를 두고 왔다갔다 했던 듯싶다. 나대로는 '서평가는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붙여놓는다. 공식적으론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와 <그래도 책읽기는 계속된다>(현암사, 2012), 두 권의 서평집을 냈지만, 특집의 다른 꼭지 글을 보니 <로쟈의 인문학 서재>(산책자, 2000)도 서평도서로 분류돼 있다. '독서에세이'가 더 적당할 듯하다. 아무튼 터울로 봐서는 내년쯤에 세번째 서평집을 내게 될 것 같다...

 

 

 

기획회의(13. 08. 20) 나는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이란 주제의 원고 청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일단 떠넘기기가 어려웠다. 누구누구가 더 적임자라고 ‘대타’를 내세울 수 있었다면 빠져나가기가 용이했겠지만, 남들이 다 ‘현역’ 서평가로 알고 있는 처지라 둘러댈 수가 없었다. 물론 서평가로 살아가는 건 아니라고 정색할 수는 있었겠다. 엄밀히 말하면 내게 서평쓰기는 생계의 방편이 아니라 책값의 방편이니까. 게다가 ‘시인’처럼 명예를 드높여주는 직함도 아니기에 명함에 ‘서평가’라고 박아놓지도 않았다(그렇다고 명함에 다른 직함이 적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결국은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하는 자리에 이렇게 내몰리게 됐다. 하긴 '서평가'란 호명에 구시렁거리는 일도 서평가로 살아간다는 것의 일부인지 모를 일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 책을 좋아하고 책 얘기를 좋아했을 뿐이다. 전공은 러시아문학이었지만, 철학책을 취미로 읽었고 영화비평을 기웃거렸다. 인터넷이란 새로운 공간이 열리면서 책에 관한 이런저런 잡담과 촌평이 조금씩 눈길에 올랐다.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알라딘 블로그로 거점을 옮겼고 북매거진 <텍스트>에 서평류의 글을 싣기 시작했다. 그러던 2007년쯤 “인터넷상을 어슬렁거리는 책벌레들”을 가리켜 한겨레 고명섭 기자가 ‘인터넷 서평꾼’이라고 호명했고, ‘로쟈’는 그 대명사가 됐다(특이하게도 '인터넷 서평꾼'이란 호칭은 내게만 붙어 다닌다). 이후에 시사주간지와 일간지 등에 서평과 칼럼을 연재하는 생활이 수년째 이어지면서 두 권의 서평집까지 출간했고, 서평가란 직함까지 얻게 됐다. 무슨 일이든 오래 하다보면 어떤 직함이건 얻기 마련이다. 하지만 잘해서 오래 하는 게 아니라 마땅한 후임이 없어서 오래 하게 됐다고 가끔 투덜거린다(왜 없는지는 ‘책값의 방편’이란 대목에서 추측해보시길).


그래도 서평가라고 하면 제법 출세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혹은 고작해야 자투리 서평을 쓰는 주제에 무슨 서평가 행세를 하느냐고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나로선 언제라도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할 용의가 있다. 서평가는 내게 어떤 역할이지, 결코 천직이 아니다. 부러워하는 이들은 나보다 열심히 할 사람들이고, 못마땅해 하는 이들은 나보다 잘할 사람들이다. 이들이 조금만 용기를 내거나 엉덩이의 무거움을 떨쳐낸다면, ‘서평계’의 앞날이 지금보다 훨씬 창창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나는 덕분에 책을 읽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를 한껏 누리면서 ‘서평가 이후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이게 서평가로서 갖는 꿈이다.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  

 

서평과 비평의 차이
서평가를 꿈꾸지 않았다고 해도 그런 직함으로 활동하는 이상 나름대로의 서평관이 없을 리 없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자의식은 갖고 있어야 하니까. 엄밀히 따지자면 서평은 비평의 한 갈래에 속할 터이지만 언제부턴가 과거와는 다른 위상을 갖게 됐다. 달라진 배경으로는 두 가지를 짚어볼 수 있다. 일단 어느 때보다도 많은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점. 누구도 더 이상 모든 책의 독자를 자임할 수 없게 됐다. 어떤 책에 대한 독서는 동시에 다른 책에 대한 비독서를 뜻하는 게 오늘의 독서 현실이다. 어떤 타개책이 있는가. 필독할 만한 책을 서로가 걸러주고, 동시에 미처 읽지 못하는 책에 대해선 핵심이라도 챙겨놓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서평의 역할이다.  


서평은 어떤 책이 읽을 만한가를 식별해주는 데 일차적인 의의가 있다. 반면에 비평은 어떤 작품을 재발견하고 재평가한다. 서평은 일독의 권유이지만 비평은 재독의 제안이다. 서평이 아직 읽지 않은 독자를 염두에 둔다면, 원칙적으로 비평은 한번 읽은 독자를 상대한다. 만약 한번 읽은 독자가 많지 않다면, 즉 독서 경험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비평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바로 오늘의 상황이 그렇다. 독서량이 현저하게 부족한 마당에 독서 경험의 공유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그 결과 한국에는 비평 독자보다 비평가 수가 더 많다는 웃지 못 할 얘기까지 나온다. 한마디로 그렇게 비평의 역할이 쇠퇴하는 가운데 서평의 역할은 증대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한편 서평의 역할 증대는 온라인서점에 독자 리뷰 공간이 마련된 것에도 힘입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올리는 활동이 독서활동의 자연스런 일부가 되면서 서평쓰기도 대중화되었다. 아무래도 진입장벽을 가질 수밖에 없는 비평과 달리, 서평은 누구나 자기 수준에서 제 몫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영역이다. 각자 자기가 선호하거나 일반 독자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분야에서 책을 읽고 그 정보나 판단을 공유하는 ‘품앗이 서평’이 가능한 것은 그 때문이다. 게다가 서평은 분량 부담에서 자유롭다. 어떤 책이 일독의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발 빠르게 일별해주는 것이 서평의 핵심적인 기능이기에, 40자평, 100자평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 분량의 글을 누구도 비평이라고 부르지는 않겠지만 서평이라 부르는 건 결코 억지가 아니다. 오히려 서평은 너무 길어질 경우 그 의미가 반감된다. 적은 분량을 통해서 책에 대한 평가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 서평으로선 최적이다.


자격불문, 분량불문이라면, 그래서 누구나 서평을 쓸 수 있다면 굳이 서평가가 필요할까? 그렇다, 온라인에서라면 필요하지 않다. 전문가와 대중의 구분조차도 무의미해진 지 오래인 게 인터넷이라는 집단지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저 인터넷 서평꾼들의 지치지 않는 활발한 활동만이 기대될 뿐이다. ‘로쟈’는 좀 유명한 인터넷 서평꾼 정도이지 그 대명사일 수 없다. 하지만 오프라인은 사정이 좀 다르다. 그 영향력이 점차 줄어가는 추세라지만, 일간지와 주간지 등의 서평란에는 출판담당 기자 외에도 서평가나 북칼럼리스트, 출판평론가 등 유사 직함의 필진이 아직 필요한 상황이다. 나로선 그러한 수요에 부응하는 활동을 6-7년째 해오고 있는데,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자칫 10년도 넘어갈 기세다.

 

 

서평가, 책만큼 대단하고 책만큼 하찮다
소위 서평가는 어떤 일을 하는가? 현재 내가 일간지와 주간지, 월간지 등에 쓰고 있는 서평은 대략 원고지 8-12매 정도의 분량이며 보통은 신간으로 나온 책 한권을 다룬다. 그런 서평이나 북칼럼을 평균적으로는 1주일에 한두 편, 마감이 몰릴 때는 서너 편 정도 쓴다(지면에 쓴 글을 옮겨놓는 경우도 많지만, 온라인에서 인터넷 서평꾼으로 활동하는 건 별도의 일이다). 지정된 책에 대한 서평을 청탁받기도 하지만 보통 서평도서는 스스로 선택한다. 서너 권의 후보도서를 미리 골라서 중복여부를 확인한 후에 최종적으로 그중 한권을 골라 쓴다. 1주일에 두 편을 쓴다면 산술적으로는 6-8권 정도를 일단 손에 들 수 있어야 한다. 물리적으로는 다 읽을 수 없지만 적어도 책의 실물은 확인하려고 한다.


그렇게 고른 책을 4-5시간 안에 읽고, 3-4시간 안에 원고를 작성한다. 급하게 쓸 경우에는 2시간 안에 원고를 완성할 때도 있지만 보통은 3시간가량이 소요된다. 그러면 평균적으로 원고지 매당 1만원의 원고료를 받는다. 전체적으로 읽고 쓰는 데 8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원고 노동자로서 서평가의 일당은 10만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 일당은 통상 도서구입비로 쓰인다. 서평이 ‘책값의 방편’이란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외국에는 전업 서평가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서평가가 직업이 될 수 없는 이유이다(적절한 명칭은 ‘서평 알바’다).  


그렇다면 서평가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명감으로 산다고 적으려다가 어쭙잖아서 자기만족으로 산다고 고친다. 책에 파묻혀 지내는 게 소원인 분이라면 서평가는 최적의 소임이다. 좋은 책을 읽고 널리 알리는 일에서 보람을 느낀다면 서평가로서 적격이다. 요컨대 책에 살고 책에 죽고 하는 것이 서평가다. 그게 대단하다면 딱 책이 대단한 만큼이고, 하찮다면 딱 책이 하찮은 만큼이다. 국가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는지 묻는다면 적어도 해를 끼치는 건 아니잖은가, 정도로만 답하겠다. 조금 범위를 좁혀서 출판계에는 얼마만큼 도움이 되느냐고 질문한다면 대답은 ‘글쎄’다. 나대로는 ‘독서 전도사’ 역할도 꽤 오랫동안 해왔다고 자임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한국인의 평균독서량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출판시장도 지속적으로 하향세다. 그런 고민을 떠안느니 그래, 그냥 ‘자기만족’이라고 하는 게 낫겠다.

 

13. 0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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