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는 알라딘에서도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책세상)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책의 이미지가 비로소 뜬다는 얘기인데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20세기>(현암사)와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에 이어서 올해 세번째로 펴낸 ‘문학강의책‘이다. 상시적으로 하고 있는 문학강의가 이렇게 하나둘 책으로 묶여서 나오고 있고 내년에도 여러 권이 더 나올 예정이다(이러다 이 분야의 기록을 세울지도).

이런 강의책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결코 놀랄 정도는 아니다. 다만 현장에서 이런 종류의 강의를 접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강의 대용으로서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 더불어 바란다면 10년쯤은 읽을 만한 책으로 남는 것이다.

이제 살펴보니 책소개가 아주 길게 돼 있다. 책의 내용을 편집자가 공들여 간추려 놓았는데 관심있는 분들은 미리 살펴보셔도 좋겠다. 다만 그만한 분량의 소개글을 읽느니 책을 한권 다 읽는 게 시간절약이 될 거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제는 열두번째 책으로 넘어갈 시간이다. 손은 더디고 눈은 침침하다, 라고 적기 전에 가야 할 길이 아직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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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컬렉션을 번역해오고 있는 문학평론가 조영일의 신간이 나왔다. <직업으로서의 문학>(도서출판b). 기억에는 세번째로 펴내는 문학론인데 이번에는 다소 얇다. 평론집이 아니라 문학에세이집이라고 돼 있군.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한국문학과 그 적들>, <세계문학의 구조>라는 평론집과 가라타니 고진의 번역자로서 유명한 조영일이 6년 만에 발간하는 문학에세이집이다. ˝문학은 직업일 수 있는가?˝ 다소 엉뚱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날 문학가나 문학 지망생들에게는 어떤 의미에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왜냐하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문학의 상품적 성격과 그것을 생산하는 주체(작가)가 괄호에 넣어져 있는 데에 반해, ˝문학은 직업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은 ‘상품으로서의 문학‘이 가진 의미와 그것을 파는 작가에 대한 실존론적 물음이기 때문이다.˝

제목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는데, 베버의 직업이 ‘소명‘을 뜻한다면 조영일의 직업은 말 그대로 ‘밥벌이‘를 가리킨다. 저자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문학은 직업일 수 있는가?‘란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한 질문이라고 보는데 그건 아렌트의 용어를 빌리자면 작품을 작업(work)이 아닌 노동(labor)의 산물로 보는 견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대표적으로 허먼 멜빌은 문학이 직업이 못된 경우다.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상당 기간 동안 문학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가에게 문학이 직업이었느냐, 아니었느냐와 무관하게 작품은 존재한다. 단 한권의 시집도 생전에는 펴내지 못한 시인도 존재하는 것처럼. ‘문학이 직업일 수 있는가?‘가 그토록 중요한 질문인가에 대해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인데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논변이 궁금하다. 설득력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지에 대한 궁금함이다. 저자의 주장 한 대목.

“작가들이 글을 써서 먹고살 만해진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즉 ‘직업으로서의 작가’(전업작가)는 언제부터 등장한 것일까요? 저는 그것을 1980년대라고 봅니다. 물론 이청준, 최인호, 황석영 등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1970년대가 되면 소위 문학으로 먹고사는 것이 가능해지기는 합니다. 하지만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그들의 성공은 제한적이었습니다.”

전업작가의 등장이 1980년대부터라? 흥미로운 견해라고 생각한다. 70년대 작가들의 성공이 제한적이었다고 보는데 80년대부터는 그런 제한이 풀렸다는 것일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자면 전업작가로서 먹고살 만한 작가는 요즘도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 아닌가? 1980년대라고 저자가 특정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읽어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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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가 그렇다. 한민주의 <해부대 위의 여자들>(서강대출판부). 국문학 전공 저자의 책으로는 이채로운데, ‘근대여성‘의 문제를 ‘과학문화사‘라는 확장된 시야에서 다루고자 한 점이 포인트. 묵직한 학술서이지만 주제의 흥미 덕분에 손에 들게 된다.

˝<해부대 위의 여자들>은 한국 근대 여성이 ‘과학적 교양’과 관련하여 주체상과 세계상을 여하히 형성해 나갔는지를 도상해석학적 차원에서 고찰하는 저서이다. 이 책의 내용은 로봇에서부터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 여성의 성욕과 히스테리, 가정경제학, 위생학, 출산과 양육의 테크놀로지, 성형, 미용 기술, 방공과학과 대용품 공학, 그리고 영양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논제의 맥락에서 과학의 젠더 효과에 관한 이해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불량소녀들>과 <낭만의 테러> <권력의 도상학> 등이 있는데, 권력도상학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근대(과학)문화사에 적용하여 흥미로운 결과들을 이끌어내고 있다. 한데 모아서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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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강의를 마치고 귀가하여 호두파이로 밤참을 대신하면서 오늘 온 책들을 살핀다. 당장의 강의와 관련하여 주문한 책도 있지만 관심 때문에, 혹은 향후의 강의와 관련하여 주문한 책도 있다. 국내 저자 2인이 공저한 <투르게네프, 동아시아를 횡단하다>(점필재)가 후자에 해당한다. 따로 나 같은 독자가 아니라면 손에 들 사람도 별로 없을 것 같은 책이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그 전날 밤>(국내에서는 <전날밤>이나 <전야>로 번역됐었다)이 러시아에서 어떻게 극화되었고 그것이 다시 일본과 한국(조선) 연극계에는 어떻게 소개되어는가를 다룬 연구서로 아르부조프의 각색본과 일본의 각색본, 한국의 번역본을 자료로 수록하고 있다. 투르게네프의 작품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서는 아니지만 <전날밤>의 수용과 각색 문제를 살펴보는 데 중요한 참고가 될 만하다.

그렇다고 극화된 <전날밤>까지 강의에서 다룰 건 아니고, 나의 주된 관심은 투르게네프의 소설 <전날밤>에 놓인다. 내년이 투르게네프의 탄생 200주년이기도 해서 주요 작품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 좋겠다 싶은데 문제는 주요작의 번역본이 없거나 마땅치 않다는 점. <전날밤>도 그 가운데 하나다. 얼마전에 언급한 바 있는 <사냥꾼의 수기>도 마찬가지고, 후기소설 가운데서는 <연기>와 <처녀지>도 다시 나왔으면 싶은 작품들이다. 내년봄까지 기다려봐서 이 가운데 몇작품이라도 다시 나온다면 8강 정도의 강의를 꾸리려고 한다. 탄생 200주년을 맞는 나대로의 자세다.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에 대해서는 각각 16강, 12강의 강의를 진행하고 있거나 진행할 계획이기에 투르게네프에 대해서도 그 정도의 시간은 할애하는 게 형평에 맞다고 생각한다.

한편, 생각난 김에 적자면, 투르게네프의 단편 ‘밀애‘가 동아시아문학, 특히 일본문학에 끼친 영향은 정선태 교수의 <지배의 논리 경계의 사상>(소명출판)에 실린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김진영 교수의 <시베리아의 향수>(이숲)에는 투르게네프의 산문시 ‘거지‘의 번역과 수용에 대한 논문이 수록돼 있다. ‘투르게네프와 동아시아‘라는 주제 범위에 포함되는 논문들로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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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의 신간인가 해서 확인해보니 그렇지 않다. <슬픈 인간>(봄날의책)은 ‘세계산문선‘ 시리즈의 하나로 나왔고 근대 일본작가들의 산문을 모은 것이다. 소세키는 대표 저자로 이름이 들어간 것. 하지만 ‘슬픈 인간‘의 표제작에 해당하는 글이 책에는 들어 있지 않다. 어째서 <슬픈 인간>된 건지 소개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근대 이후 풍요로운 낭만과 지성이 꽃핀 시기의 정신을 이어받는 작품부터, 전쟁과 가난과 차별과 청춘 등 각종 파란 속 우울과 자포자기 가운데 치열하게 각자의 삶을 살다간 인간의 풍경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사랑한 스미다강의 푸른 물소리 같은 울림으로, 고바야시 다키지가 식민지 감방 동지를 향해 쿵쿵 굴러주던 발소리의 뜨거움으로, 다카무라 고타로가 감각의 본질에 육박해갔던 정신의 치열함으로, 하라 다이키가 자신의 전존재가 실린, 곧 생을 마감할 것 같은 아슬아슬한 느낌으로 나를 멈춰 세우고 밑줄 긋게 만든 문장들.˝

일본문학기행도 준비할 겸 산문선도 읽어봐야겠다. 다카무라 고타로는 생소한 작가(시인)인데 이미 번역본도 나와있다. 산문선과 함께 단편선 <이상한 소리>(창비)도 같이 읽으면 좋겠는데 어디에 두었는지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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