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구내서점에 들렀다가 집어든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는 마루야마 마사오(1914-96)의 <일본의 사상>(한길사, 2003). 본래 1998년에 나온 책의 초판 3쇄였다. 요즘은 잘 눈에 띄지 않았었는데 어디선가 재고도서가 들어온 듯싶었다. 짐작에 마루야마의 다른 책들과 함께 박스에 보관돼 있는 책이지만 확인해볼 도리가 없는 데다가 당장 참고할 부분도 있어서 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아예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문학동네, 2007)도 주문해버렸다(그의 사상을 개관하고 있는 <오스까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삼인, 2005)는 도서관에서 대출해야겠다).

 

 

 

 

역자는 두 권 모두 김석근 교수인데 사실 한국에서의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소개는 거의 전적으로 그에게 빚지고 있다. 그 이전에 <일본의 현대사상>(종로서적, 1981) 등이 소개된 바 있지만 마루야마의 주요 저작들이 단기간에 한국어판을 얻게 된 것은 순전히 역자의 노고 덕분인 것이다. 물론 내가 마루야마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도올 김용옥의 책들에서였지만.

그렇게 손에 든 책에서 '옮긴이의 말'과 마침 이 번역이 마무리될 즈음 세상을 떠난 마루야마 마사오의 부음에 부쳐진 '마루야마 마사오의 삶과 사상을 생각함'을 읽었다. 역자로서의 소회를 밝히고 있는 '옮긴이의 말'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서 따라가본다. 어느새 10년도 더 전의 사정이라는 점이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일본의 사상'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반성하도록 해준다.

역자가 마루먀아를 처음 접한 건 대학원 석사과정 3학기 때라고 하는데, 본래 정치외교학 전공인 저자가 '한국정치사상사'를 공부하기 위한 방책으로 철학과를 기웃거리다가 맞닥뜨리게 된 에피소드. 마침 대학원 철학과에 '일본철학사'라는 과목이 개설되었었는데, '대학원의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의 이견으로("일본에 무슨 철학이 있냐?") 과목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 해서 '일본사상사'로 바꾸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일본에는 사상도 없다!") 결국엔 '일본문화사'로 낙착되었다는 것(철학과에서 웬 문화사?).

 

 

 

 

비슷한 사례가 될 만한 또다른 일화는 "주체적인 학문의 길을 주장"한 '어떤 선생님'과 관련된 것인데, 저자와 저서명을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짐작에 조동일 교수의 <우리 학문의 길>(지식산업사, 1993)의 내용이다. 그 책에서 저자는 "'일본에 철학사가 있는가' 하는 재미난 화두를 하나 던지고 있습니다. 그 분의 논지를 여기로 다 끌어올 수는 없겠습니다만, 요컨대 일본에는 '사상(사)'은 있지만 (보편성을 추구하는) '철학(사)'은 없다는 식으로 이해하시면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27쪽) 요컨대, 이러한 '부인'의 제스처가 알게 모르게 우리의 무의식을 잠식하고 있다는 게 필자의 문제의식이다.

물론 이후에 '일본의 철학'을 다룬 책들이 여러 권 버젓이 나오게 됐으므로 그러한 문제제기가 여전히 유효한 듯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역자가 체험한 한 시절의 풍경은 그러하다. 이것이 다소 넌센스인 것은 "애초에 '哲學'이란 단어 자체가 일본인 니시 아마네가 영어의 Philosophy를 번역하여 한자로 새로이 만들어낸 조어(造語)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동아시아문화권에서는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부재했던 것이다."(28쪽) 말하자면 '철학'이란 말 자체는 근대 일본의 발명이고 고안이다. 하지만 "니들에게 철학은 없다"?

여기서 필자가 인용하고 있는 건 <일본정치사상사연구>(통나무, 1995)에 붙인 김용옥의 해제의 한 대목인데, 예전에 읽은 기억이 나지만 여전히 흥미롭다.

"그것은 매우 거칠게 말해서 '한국철학'과 '일본사상'의 성격을 유비적으로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사상', '일본철학'이라는 말이 부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학문을 연구하는 시각이나 방법의 성격상 한국에서는 '한국철학'이라는 말을 즐겨쓰고, 일본에서는 '일본사상'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한국에서는 '한국사상'이라고 하면, 그것은 철학에 못 미치는 좀 엉성한 체계, 그리고 철학의 소양이 부족한 2류의 학인들이 자신없이 내거는 명칭으로밖에는 인식되지 않는다. 하나 일본에서는 '일본철학'이라고 하면, 역시 좀 학문적 가치가 떨어지는 국수주의자들의 사변체계, 군국주의시대의 '코쿠타이'(國體)를 연상시키는 '미기'(右翼) 사상가들의 억지주장 냄새가 난다."

해서 요컨대, "한국에서의 사상은 좀 처지는 놈들의 엉성한 논변이요, 일본에서의 '철학'은 항상 우익의 냄새를 피울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김용옥의 해제 28-29쪽) 그러니까 좀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국에서 '사상'은 좀 모자란 것이고 일본에서 '철학'은 좀 덜 떨어진 것이다.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실제로 '한국철학'이란 표현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사상은 '실학사상'이나 '계몽사상' 등의 표현으로나 쓰인다). 혹은 '철학사상'. '일본의 사상'이란 표현이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 데 비해서 '한국의 사상'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서로 다른 관행 탓인 듯싶다(거의 개와 고양이 수준 아닌가? 똑같은 꼬리 흔들기가 각각 반가움과 경계심의 표시라는).

잠시 옆길로 갔는데, 다시 필자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저는 그것을 '철학'이라 부르느냐 아니면 '사상'이라 부르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또 다른 제3의 이름으로 부른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그리고 철학이나 사상이 없다든가, 사상은 있으나 철학은 없다는 식의 논지와 일본은 '있다' '없다'라는 식의 주장 사이에는, 그 성격의 현격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왠지 사물을 보는 시각 내지 생각하는 방식과 패턴 같은 것에서는 너무나도 닮아 있지 않은가 하는 느낌을, 저로서는 쉽게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29-30쪽)

"졸렌(Solen)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인(Sein)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에 기대면, 그가 비판하는 우리의 관행적 시각 내지 생각하는 방식은 일본이란 '존재'를 정확하게 알기 전에 일본은 이렇다, 저렇다고 당위적으로/선험적으로 규정하는 태도를 가리키겠다. 그걸 경계하자는 얘기이고, 그때 필요한 건 일단은 읽는 것이다. 물론 일본사상인지 철학인지가 더 많이 소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고(마루야마가 평생 사투했다는 근대 일본의 대표적인 사상가 오규 소라이(1666-1728)나 후쿠자와 유키치(1835-1901)의 책을 한국어로 얼마나 읽을 수 있는가?). 

한편, 책의 후기를 대신하여 쓰인 '마루야마 마사오의 삶과 사상을 생각함'에는 지난 1996년 마루야마의 타계 이후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추모 열기를 소개하는 기사를 인용하고 있다. 한 유력 일간지의 도쿄 특파원이 작성했다는 기사는 가관이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받으면서 이미 70년대 그의 저작들이 영문으로 번역돼나오기 시작했지만 한국에서의 소개는 약간 늦은 편이어서 1981년 <일본의 현대사상>을 시작으로 <현대일본정치론>(1988), <중국근대혁명사상>(1989), <섹스원죄 어디까지인가>(1995), <섹스법정>(1996) 등이 출판됐을 뿐이다..." 

필자의 지적대로 앞의 두 권은 마루야마 마사오의 책이지만 <중국근대혁명사상>(예전사, 1989)은 마루야마 마쓰유키의 저작이며, 전혀 난데 없이 들어가 있는 <섹스> 어쩌구 하는 책들은 마루야마 마사야의 책으로 보인다. 같은 마루야마 집안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신문기사가 '장난'이 아닌 이상 이런 무식하고도 무책임한 내용이 아무런 여과없이 일간지에 게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이런 게 우리의 평균적인 현실이라면 희비극적인 일이다). '일본은 없다'고 말하기 이전에 한국에는 입만 있는 건 아닌지 살펴볼 문제이다(과연 우리에겐 '한국의 마루야마'가 있는가?).

 

 

 

 

이러한 한일 철학/사상에 관한 몰이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관련서들이 더 많이 소개되고 읽힐 필요가 있겠다(찾아보니 금장태 교수의 <도와 덕>(이끌리오, 2004)이 다산과 오규 소라이를 비교한 연구서이다). 최근에 출간된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2007)는 그래서 눈에 띄는 책인데, 한겨레의 서평(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19266.html)은 이런 내용을 담고 있다.  

일본에서는 무인들이 상급 무사인 사무라이가 되기 위해 따라야 하는 도라 할 수 있는 ‘무사도’가 있다. 충과 효의 덕목에, 스스로에게 엄해야 하고 아랫사람에게는 인자해야 한다. 사적 욕심을 버려야 하고 부귀보다 명예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이 조항들 가운데 ‘패배한 적에게 연민을 베풀어야 한다’는 내용만 제외하면 ‘선비의 도’라 불러도 별 무리가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는 이런 동질성의 계기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 성리학의 일본 전파를 꼽았다. 임진왜란 이전만 해도 일본 무사들은 주군에 대한 윤리적 충성의식이 높지 않았다. 주군과 가신들의 주종관계가 의리나 신의에 입각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계약관계였기 때문이다. 무사에게는 주군을 바꿔 다른 주군을 모실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유학자 강항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에 성리학의 계통이 학립됐다. 이를 계기로 유교적 윤리인 인(仁)·충(忠)·효(孝)가 무사들에게 요구되는 규범이 되었다는 것이다. 강항에게 성리학을 배운 일본 근대 성리학의 시조 후지와라 세이카는 존왕론 주창으로 나아갔다. 천황의 역사를 성리학적으로 해석한 ‘미토학’ 태동의 지반도 성리학이었다. 미토학은 에도 막부 말기에 새로운 ‘천황중심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이념적 지주가 되었다고 지은이는 본다. 무사들이 ‘천황’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막부를 타도하겠다고 나선 메이지 유신은 “성리학의 명분론을 빌린 혁명”이었다. 이전까지 무사정권 교체는 명분론과는 무관한 패권다툼의 결과였다. 

기사에서 언급된 사무라이들의 반란 혹은 '혁명'은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2003)의 소재이기도 한데, 이 영화에서 그려진 사무라이상에 대한 유익한 비평은 아래 기사에서 읽을 수 있다.   

영화에서 주장하는 ‘사무라이 반란’은 일본에서는 ‘세이난(西南) 전쟁’으로 알려진 반란이고, 가쓰모토의 모델은 그 반란의 주모자였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입니다. 여러분 사이고 다카모리가 누구인지를 아십니까. 그는 메이지유신을 성사시킨 사쓰마, 조슈, 도사 3개 한(藩)의 하급 사무라이 중 사쓰마를 대표하는 이였습니다. 메이지유신은 폐쇄적 쇄국을 진취적 개국으로, 쇼군(將軍)중심의 봉건적 막부 정치체제를 천황 중심의 한 서양적 의회민주제로 개혁을 이룬 것을 말합니다. 그런 메이지유신의 핵심인물이 서양 문물의 홍수에 맞서서 일본의 전통을 지키려고 목숨을 받쳤다? 왠지 어색하지 않습니까.

사이고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의 핵심에는 ‘조선침략’이 놓여있습니다. 그는 일본이 서양열강과 맞서기 위해서는 문물이 뒤떨어진 한국을 공략해 식민지화해야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다 같은 사쓰마 출신의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와 조슈의 기도 다카요시(木戶孝允) 등의 반대에 부딪히자 사쓰마로 낙향합니다. 그러나 그를 추종하는 부하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그 지도자로 나섰다가 패배해 자결한 인물입니다.

사이고 다카모리는 인격적 감화능력이 탁월해 당시 뿐 아니라 지금도 그를 존경하는 일본인들이 많습니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문구를 좋아했고, 일체의 사욕을 버리고 공리를 쫓았던 면모도 분명 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메이지 유신이라는 혁명의 선두에 설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는 시대착오적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메이지유신에 나섰던 이유는 ‘일본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쓰마인’을 위해서였고 ‘사쓰마’가 일본 최고의 번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때문에 일생을 마치는 순간에는 ‘사쓰마파벌’의 영수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위에 인용한 글처럼 사쓰마는 오늘날 일본 사무라이의 원형을 세계에 수출한 곳입니다. 사쓰마의 다이묘가문인 시마즈 가문은 도쿠가와 막부성립기 때 줄을 잘못 서서 반 도쿠가와 편에 섰습니다. 그렇지만 번 전체가 똘똘 뭉친 단결력과 외교수완의 결과로 번을 그대로 유지합니다. 또 일도필살의 전투력으로 인해 도쿠가와도 건드리기 싫어했던 고슴도치 같은 존재였습니다. 사쓰마는 도쿠가와 막부시절에도 다른 번, 심지어 막부의 중앙관료도 함부로 출입할 수 없을 만큼 폐쇄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함흥차사’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사쓰마로 떠난 파발’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오늘날 서양인의 뇌리에 박힌 사무라이상도 이 사쓰마 산입니다. 사쓰마의 사무라이들은 1862년 에도(지금의 도쿄)를 방문중이던 주군의 행렬에 무례하게 끼어든 영국인 사업가 일행을 일본도로 참살했습니다. 격분한 영국이 사과를 요구하자 영국과 단독으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것이 ‘사영전쟁’입니다. 놀라운 것은 비록 일본의 한개 번으로 대영제국함대의 함포사격에 맞선 사쓰마는 비록 전쟁에 패했지만 영국군에 유례없는 타격을 가했다는 점입니다. 영국군은 63명의 사상자가 난 반면 사쓰마측 피해는 1명 사망, 7명 부상이었다고 합니다. 영국신문들은 놀라서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유럽인들에게 ‘일본 사무라이는 세다. 고로 잘못 건드리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라는 인상을 팍 심어줬던 것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사무라이’운운하며 사쓰마를 영화의 무대로 삼은 것은 핵심에 다가섰다고 평할만합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이 군국주의로 가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또한 이 사쓰마의 ‘주군이 죽으라 하면 죽는다’는 식의 돌쇠형 충성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일본 군부를 장악한 것은 대부분 조슈와 사쓰마 출신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메이지유신을 민주화와 개방화 혁명이 아니라 천황에 대해 충성을 다 받치는 배타적 군국주의 혁명으로 오도했습니다. 사이고야말로 이런 일본 골수우익의 세계관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동아일보 권재현 기자)

따라서 '성리학의 명분론을 빌린 혁명'이라고는 하지만 메이지 유신의 이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그것은 조선 성리학과 무사도, 혹은 '선비 철학'과 '사무라이 사상' 간의 차이에 조응하는 것은 아닐까? 한겨레의 리뷰를 마저 읽어본다.  

하지만 두 세계의 차이도 명확하다. 가장 두드런 예가 교육이다. 조선 선비들은 성리학의 이상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외부에서 이물질만 들어오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포교 개념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무사들은 늘 적을 상정해 만반의 대비를 했다. 조선선비 교육의 근본이 ‘학예일치’였다면 사무라이에게 학문은 무예의 보조적 기능에 불과했다. 선비가 글을 읽고 시를 읊을 때 사무라이는 학습 시간의 70%를 무예로 채웠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도 두 나라의 교육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본에서는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초등학교엔 반드시 수영장을 설치해야 하고 수영 교습도 필수다. 중·고교에선 스포츠 동아리가 매우 활발하다. 2006년 여름 일본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한 고등학교 수는 전체 5400개교 가운데 76%에 이르는 4112개교다. 한국의 3%와 비교할 때 엄청난 격차다.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일본이 성리학에서 받아들인 가장 큰 부분은 ‘명분 쌓기’라고 규정했다. 일본은 이런 명분을 군사 행동의 정당화에 활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선 성리학의 중심인 심성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일본과 일본인이 인간 심성의 중요성을 깨달을 때 한국인들은 아시아와 세계평화에 대한 믿음을 비로소 가지게 될 것이다.”(강성만 기자)

 

 

 

   

한데, 우리에게 그런 심성론이 제대로 전수/학습되고 있는가, 란 의문을 문득 갖게 된다. 나부터도 퇴계의 <성학십도>나 율곡의 <성학집요>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조선 유학의 전통에 대해서도 교과서적 지식 외에 알고 있지 못하다. 이러면 공부가 '명분 쌓기'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 사실 이런 깨달음을 전해주는 것은 일본이란 타자이다. 한국 철학의 자기인식이 일본 사상이란 타자를 경유해야 하는 이유이다. '퇴폐천국' 일본이란 이미지만으로는 부족하다...  

07. 07. 04.

P.S. 귀가길에 한 서점에 들러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김영사, 2007)을 손에 들었는데, 이 책이 맞느냐고 점원에게 물어볼 뻔했다. 알라딘에는 분량이 472쪽이라고 돼 있어서 9,900원이라는 정가가 꽤 저렴하다고 생각했었는데(그래서 부담없이 구입하려던 것이었고) 웬걸 고작 220쪽 짜리 책이었다. 입력자의 착오로 보이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은 '뻥튀기'이다. 교정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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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잘코군 2007-07-04 12:49   좋아요 0 | URL
"마침 대학원 철학과에 '일본철학사'라는 과목이 개설되었었는데, '대학원의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의 이견으로("일본에 무슨 철학이 있냐?") 과목명이 바뀌게 되었다는 것. 해서 '일본사상사'로 바꾸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서("일본에는 사상도 없다!") 결국엔 '일본문화사'로 낙착되었다는 것(철학과에서 웬 문화사?)."

하핫. 재밌습니다. 사실 철학계에서도 그렇게 말하죠. 일본철학은 없다라고. 일본을 무시하거나 폄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반면 한국의 경우는 세계적인 철학학회에서도 이미 '한국철학'이라고 지칭하고 있다고 하고요. 대부분은 중국으로부터 영향 받은 것이지만, 나름 독창적인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뭉뚱그려 중국철학이라 하지 않고, 한국철학을 그와 별개로 나누는 듯 합니다. 머머철학 앞에 나라이름을 붙일 수 있는 국가는 몇 안되지요. 이 점에서 자부심을 느껴도 될 듯 합니다.

최근 위에 올려놓으신 책들과 같이 한국철학에 대한 괜찮은 대중서들이 꽤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몇 권 구입해 살펴봤는데 재밌더군요. :)

로쟈 2007-07-04 13:09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 하는 자화자찬이겠지요.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 'Japanese Philosophy' 항목이 버젓이 등재돼 있다고 합니다. 한데, 그렇게 대단한 걸(한국철학) 갖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마루야마'도 변변찮은 한국철학사도 못 갖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이잘코군 2007-07-04 15:24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그렇담 있는걸 애써 무시하거나 낮게 평가하는건가요. 음. 사실 일본철학이라고 할 만한 개론서나 어떤 것을 접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주변에서 듣고, 또 책에서 보고 저는 그리 알고 있을 뿐이지요. 정말 일본철학이라는게 체계가 잡혀있다면 한번 공부해보고 싶습니다. 아! 저 위에 일본근대철학사 라는 책이 눈에 띄는군요.
 

오랜만에 러시아 관련 기사를 옮겨놓는다. 현재 과테말라에서는 동계올림픽 개최지 선정을 놓고 러시아의 소치와 한국의 평창이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함께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고,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까지 현지에 가세하여 대대적인 유치 공세를 거들고 있다(러시아의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 소치의 최대 약점은 기반시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유치가 결정되면 다 만들어놓겠다는 게 '러시아식' 계산이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과테말라로 향하기 전 푸틴의 마지막 일정은 부시가(家)의 별장에서 농어 낚시를 한 것이었다(그가 동계올림픽도 낚을 수 있을까?).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한반도 주변 정세와도 무관하지 않기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2일(현지시간) 美 메인주 케너벙크포트의 부시 가문 별장 부근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낚시를 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농어를 낚고 기뻐하고 있다.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고, 왼쪽부터 부시 전 대통령, 낚시 가이드인 빌리 부시 그리고 현 대통령 부시다. 푸틴 대통령은 "잡은 농어를 다시 바다에 놓아주자"고 제의해 세계 최강대국 대통령의 전 ·현직 대통령인 부시 부자와 푸틴이 함께 잡은 농어는 '자유의 몸'이 됐다. (AP) 

한국일보(07. 07. 04) 러시아, 품격의 페레스트로이카

푸친 러시아 대통령의 최근 행보가 그야말로 거침없다. 지난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계적 기업의 CEO 등 6,000명의 기업인들을 초청해 개최한 포럼에서 새로운 국제금융무역기구의 창설을 역설하며 서구 중심의 국제경제질서 재편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또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대해 ‘나치의 제3세계’에 비유하며 맹비판하는 등 미국과의 대립각 세우기에도 한창이다. ‘강한 러시아’를 되찾겠다는 취임 당시의 공언대로 미국과 서구를 향해 당당하게 큰 소리를 치며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소비에트 붕괴 후 오랜 경제 사회적 혼돈 속에서 잃어버렸던 러시아의 정체성을 회복하고 미국과 서구 중심의 패권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야심찬 포부가 깔려있다. 이는 곧 러시아의 대외정책이나 국가이미지 제고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초고속 경제성장이 이 같은 자신감 넘치는 행보의 든든한 받침대다.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면서 막대한 석유 수출로 러시아 경제는 최근 몇 년간 6~7%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또 외환보유액도 3,000억달러가 넘어서며 ‘오일머니’가 넘쳐나고 있고 2000년 1,778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도 지난해 7,000달러 수준으로 올랐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부총리도 최근 “러시아가 2020년까지 세계5위 경제국으로 부상할 것”이라며 ‘경제대국로서의 러시아 부활’을 알리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

■ 전방위적 러시아 알리기 총력
경제 회복에 따른 자신감으로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높여가는 러시아 정부는 국가이미지 제고를 위해서도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그 중추 기관이 바로 ‘러시아 국제 과학문화 교류협력 센터’다. 1925년 설립돼 여러 조직체계를 거친 후 2002년 러시아 외교부 산하 기관으로 재편된 이 센터는 37개국에 설치된 43개의 센터 지부와 20여개국에 파견된 직원 등을 통해 현대 러시아의 이미지를 시시각각으로 전파하는 전진기지다.

당장의 러시아 국내외 정책을 홍보할 뿐만 아니라, 각종 문화 행사를 통해 러시아의 문화적 자산을 전파하고 러시아어를 보급하는 등 문화 보급진지의 역할도 맡고 있다. 영국의 브리티시 카운슬이나 독일의 괴테 인스티튜트가 장기적인 문화교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데 반해 이곳은 정책 홍보 및 경제협력 지원까지 아울러 담당하는, 그야말로 전방위적인 국가홍보 및 문화ㆍ경제ㆍ과학 교류 기관이다.

센터는 최근 러시아 주변 국가와의 교류 협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지난해 중국의 각 도시에서 대규모의 ‘러시아의 해’ 행사를 개최해 러시아 알리기에 대대적으로 나섰다. 1년 동안 영화제, 미술전시회, 학교간 교류행사 등을 열며 문화ㆍ교육ㆍ경제ㆍ과학 분야에서 무려 1,500여개의 이벤트를 개최했다. 이를 통해 중국 신문이나 TV보도에서 러시아 관련 기사가 15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올해는 러시아에서 ‘중국의 해’ 행사도 열리고 있는데, 센터는 향후 2~3년 내에 인도 등 12개국에서 이와 비슷한 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특히 러시아 정부는 올해를 ‘러시아어의 해’로 정해 러시아어 보급에도 힘을 쏟고 있다. 러시아어는 주로 옛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와 동유럽 등에서 1억7,000만명이 사용하는 세계 4번째 언어. 러시아어가 소비에트의 몰락과 함께 한동안 쇠퇴했지만, 러시아 정부가 올해 페스티벌, 세미나, 전시회, 언어 연수 등을 실시하며 다시 본격적으로 러시아어 위상 강화에 팔을 걷어부치고 있는 것이다.

■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을 꿈꾸는 러시아의 발걸음
이 같은 대대적인 국제 교류 협력 및 국가 홍보, 러시아어 강화 등의 작업은 결국 CIS, 동유럽 및 아시아 지역에서 러시아의 주도권을 확고히 다지겠다는 대외정책의 연장 선인 셈이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말에 열린 흑해경제협력기구 정상회의에서 “흑해연안과 발칸반도 지역의 구심점으로 복귀하겠다”고 천명하는 등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제기구나 경제기구의 창설을 잇따라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이 같은 행보에 대해 새로운 패권국가의 부활을 우려하는 주변 국가의 반발이 터져나오는 등 아직은 진행 초기단계다. 새로운 국제질서 재편을 꿈꾸는 러시아의 발걸음이 성공하느냐의 여부는 러시아의 새로운 국가 이미지 구축 작업의 성과와도 궤를 같이 할 것으로 보인다.(모스크바=송용창 기자) 

07. 07. 03.

P.S. 러시아의 인터넷서점 오존을 검색해보니 푸틴 관련서가 현재 139종이 나와 있다(중복 포함).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돼 있는 책은 아래의 글모음집인데, <우리의 밝은 미래, 혹은 푸틴 만세>(2004)이다. 그에 대한 비판 세력들도 없진 않지만 러시아는 아직은 애국주의라는 '대세'를 따르는 듯하다... 

Наше светлое будущее, или Путин навсегда

P.S.2. 우리로서는 유감스런 일이지만, 결국 소치가 동계올림픽 후보지로 선정됐다. 여하튼 푸틴이 또 하나 낚아올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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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서사학 정리를 위한 책 모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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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학과 텍스트 이론- 문예중앙이론서 2, 토도로프에서 데리다까지
박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6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7년 07월 03일에 저장
구판절판
서사학 로드맵. 주요 서사 이론가들의 이론과 논점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서사란 무엇인가
미케 발 / 문예출판사 / 1999년 3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2007년 07월 03일에 저장
품절
서사학 입문서라지만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 책.
영화와 소설의 서사구조- 뉴미디어총서 4
시모어 채트먼 지음, 김경수 옮김 / 민음사 / 1999년 8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7년 07월 03일에 저장
절판
서사학 기본서. 국내엔 3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다. 앵글로어메리칸의 서사학 전통과 프랑스, 러시아의 구조주의 서사학을 요령있게 절충, 종합한 책.
영화의 내레이션 1
데이비드 보드웰 지음, 오영숙 옮김 / 시각과언어 / 2007년 3월
19,000원 → 18,050원(5%할인) / 마일리지 9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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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2권이 얼른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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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파일들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시몬느 베이유(1909-1943)에 관한 메모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오래전에 베이유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짐작에 그때 강의자료로 쓰기 위해 작성한 것인 듯하다. 의아한 건 그녀의 전기(연대기)를 정리하다가 만 것. 딱 8살 때까지이다. 베이유의 친구이기도 했던 시몬느 뻬트르망의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까치글방, 1978)의 연보를 베낀 것인지 나대로 정리한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어쨌거나 자료 정리 차원에서 자리를 마련한다.

 


 

  

참고로, 시몬느 베이유 저작들의 국내 소개는 빈약하며 게다가 중구남방이고 그나마 대부분은 절판되었다. 뻬트르망의 전기 외에 <중력과 은총> 정도가 읽을 만한 책이고, 최근에 <시몬느 베이유 철학교실>(중원문화사, 2006)이 다시 나왔다. 그밖에 에세이집들이 몇 권 번역되었지만 정체 불명의 제목들이 붙은 발췌본들이 대부분이어서 신뢰할 수 없다. 한국어와는 아직 좋은 인연을 맺지 못한 철학자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하튼 개인적으론 관심을 가졌던 여성이고 철학자이다. 아래는 7살(우리 나이로 8살)까지의 그녀의 삶인데, 연보는 부모의 탄생으로부터 시작한다. 어린시절 에피소드들 가운데 재미있는 것은 앙드레와 시몬느 남매가 그들의 부모를 골탕먹인 이야기들이다.  

1872. 베이유의 아버지 베르나르가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남. 베이유 집안은 알사스 지방의 오래된 상인 가문. 베르나르만이 예외적으로 의사가 됨. 시몬느의 할머니는 신앙심 깊은 유대인. 어머니 베이유 부인은 폴란드 태생으로 교양있는 예술가 집안 출신(외할아버지는 시인이었고, 외할머니는 피아니스트)으로 성악에 소질이 있었음. 시몬느의 집안(부모와 오빠 앙드레)은 진정으로 행복한 결혼에 의해 결합된 가정이었음: “난 여러 집안에 말썽을 일으켰는데, 도무지 우리 집안에서만은 그럴 수가 없었어.”(시몬느)

1909. 2. 3. 시몬느가 파리에서 태어남. 9개월만의 조산이었으며 생후 6개월까지는 건강하게 자랐지만, 갑자기 어머니가 맹장염에 걸리는 바람에 시몬느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이후 줄곧 시몬느는 병약한 아이였음: “어렸을 때부터 난 (맹장염으로 오염된) 독이 든 젖을 먹고 자랐거든요. 그 때문에 이렇게 실패작이 되고 말았어요.”(시몬느)

1910. 1. 시몬느도 맹장염에 걸렸으나 간심히 목숨을 건짐. 그리고 두 살때는 편도선염에 걸림.

1911. 2. 생일날 사촌에게서 보석반지를 선물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난 이런 거 싫어”라고 해 사촌을 무안하게 만듦. 이미 사치스러운 것을 싫어했음(*이게 두살 때 일이다! 내가 베이유에게서 좋아하는 덕목).

1912. 12. 심각한 맹장염 증세를 일으켜 수술을 받음. 시몬는 자신이 마취당할 때 했던 말을 깨어나서 죄다 기억. 의사는 시몬느가 회복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 회복기가 어머니가 들려준 동화: 계모에 쫓겨나 숲속으로 들어가게 된 마리는 어느 집 앞에 이르러 문들 열자 머리 위로 금이 쏟아져 내려 부자가 됨. 이 이야기를 들은 계모의 딸도 숲속의 그 집을 찾아가 문을 열지만, 머리 위로 타르가 쏟아져 발끝까지 뒤집어 씀.

1913. 시몬느를 위해 가족이 스위스로 휴양을 감. 이후 몸이 회복되고, 시몬느는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하고 매일같이 어머니를 따라 앙드레의 학교(그해 앙드레는 7년제 고등중학교에 입학)에 따라다님.

1914. 여름에 시몬느의 가족은 이모가 사는 쥴르빌로 옮겨감. 아홉 살의 앙드레는 사촌의 기하학책을 보고 혼자서 수학문제를 풀어감(*나중에 앙드레는 세계적인 수학자가 된다). 한 의사가 장난삼아 시몬느의 손에 키스하는 흉내를 내자 시몬느는 울음을 터뜨리며 물을 가져오라고 소리침. 아버지의 친구인 메치니코프 박사의 얘기를 들은 이후 시몬느의 가족들은 모두 세균공포증에 걸려 있었음. 시몬느는 성장한 뒤에도 키스받기를 싫어했을 뿐만 아니라 남이 만진 물건에 손을 대는 것도 싫어함(시몬느의 결벽증).

몬느는 오빠를 몹시 따라서 언제나 붙어다녔음. 언젠가는 이 두 장난꾸러기가 손을 잡고 이웃집의 문을 두드린 다음 “우린 배가 고파 죽겠어요. 엄마와 아빠가 먹을 것을 하나도 주지 않아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여 부모를 곤란하게 만듦. 1차 대전이 터지고 아버지는 야전병원에 배치돼 뉘샤또로 감. 뉘샤또에서 시몬느는 비로소 읽기를 배움(앙드레가 새해 선물로 드리려고 열심히 가르침).

1915. 아버지가 기관지염에 걸려 프랑스 남부 망똥으로 이송됨. 4월 건강이 회복된 아버지는 다시 마이엔느로 이송됨. 시몬느의 집이 세든 집에는 수십 종의 장미가 만발했고, 집주인은 앙드레를 '천재', 시몬느를 '미인'이라고 부름. 이때부터 시몬느는 말을 잘 안 듣기 시작함: “시몬느는 이제 무척 다루기가 힘들답니다. 그런 시기가 왔나 봐요. 아마 제가 그애를 너무 귀여워했나 봐요. 지금도 말쌍을 부리지 않을 때는 키스해주지 않고 못배기겠어요. 아무튼 그애는 자기 기분만 나면 정말 어른처럼 굴거든요.”(시몬의 어머니)

1916. 어머니를 잃을 사촌동생 레이몽드가 집에 놀러오자 시몬느가 앙드레에게 “오빠, 우린 레이몽드가 원하는 건 뭐든 다 해주어야 해. 그애는 불쌍한 고아니까 말이야.”라고 말함. 시몬느는 남의 불행에 민감했고 언제나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도우려고 애씀. 또 시몬느와 앙드레는 공부뿐 아니라 문학에도 열정을 보여서 라신느과 코르네이유의 희곡을 모두 외어 함께 암송하면서 상대방이 틀릴 때마다 번갈아 따귀를 때리는거나 운을 맞추어 시를 짓는 놀이를 함.

아버지가 알제리의 병원으로 배치되어 떠나고 남은 식구들은 파리로 돌아옴. 겨울이 되자 갑자기 앙드레는 사내다워지기 위해 무릎까지 오는 긴 양말을 신지 않기로 결심하고 시몬느도 흉내를 내고 다녀서 어머니가 애를 먹음. 하루는 전차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두 아이가 모두 이를 덜덜 떨면서 “아이 추워! 아이 추워! 왜 엄마는 우리에게 양말을 못 신게 하지?”라고 하여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어머니를 뚫어지게 바라보도록 만듦. 하지만 어머니를 전차에서 내려서도 두 아이를 꾸짖지 않음...

07. 07. 02.

P.S. 인터넷에 귀한 사진 한장이 뜨는데, 1916년에 찍은 베이유 가족의 사진이다. 부모님과 함께 유일한 남매이자 둘도 없는 친구였던 앙드레, 그리고 시몬느의 모습이 보인다. 세살 위인 앙드레가 11살, 시몬느가 8살 때이다. 내게도 이런 류의 가족사진이 어딘가 남아 있을 터인데, 그맘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시몬느는 34년의 짧은 생애를 살아갈 자신의 삶에 대해서 얼마나 예감하고 있었을까?  

사진을 옮겨놓고 보니 초등학교 1학년생인 지금의 딸아이와 딱 같은 나이이다(비교적 최근에 찍은 사진들 가운데 유일한 흑백사진이라 가져왔다). '말을 잘 안듣기 시작함'에서는 공통적이지만, "라신느과 코르네이유의 희곡을 모두 외어 함께 암송하면서 상대방이 틀릴 때마다 번갈아 따귀를 때리는거나 운을 맞추어 시를 짓는 놀이"를 하는 것과는 턱없이 무관한 아이이다. 아이는 라신느와 코르네이유를 읽는 게 아니라 (오늘 쓴 독서록을 보건대) <요정들과 구두장이> 같은 책을 읽는 수준이다. 아이는 이렇게 적었다.

"구두장이와 요정들은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까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요정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머리속에 떠오른다."(배우고 싶은 점: "요정들과 구두장이의 따뜻한 마음과 착한 마음을 본받아야겠다.")

그런 마음을 본받아야 하는 건 따뜻한 마음과 착한 마음을 타고나지 않았거나 그런 마음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다. "남의 불행에 민감했고 언제나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을 도우려고 애"쓴 사람은 굳이 따뜻한 마음과 착한 마음을 본받을 필요가 없었을 사람이고.  

엊저녁에 아이는 저녁을 먹고 모처럼 아이 엄마가 장을 보면서 아주 오랜만에 사온 아이스크림을 내가 눈치 없이 꺼내 먹자 울음을 터뜨렸다(부쩍 살이 쪘다고 아이는 아이스크림이 금지돼 있다). 아빠만 혼자서 먹는다고. 아이와 잘 놀아주지 않는다고 자주 핀잔을 듣는 내가 엊저녁에는 아주 오랜만에 시간을 내 잠시 '셈셈 피자가게' 놀이를 같이 했는데, 앞서 나가던 아이가 막판에 역전을 당해 지자 또 거의 울상이 되어 짜증을 부렸다(내가 따귀를 안 맞은 게 다행이었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청소년 편전 중에 <꺼지지 않는 불꽃 시몬느 베이유>(이룸, 2004) 같은 책을 사다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로선 아이가 "평생을 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사회운동에 투신"하고 "그 어떤 정치적 이념도, 사색의 자유와 인간다울 권리를 억압할 수 없다고 굳게 믿"으면서 "이러한 신념을 위해 투사처럼 열렬하게 살"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하다(그걸 부모로서 바라느냐 마느냐는 별개로 하고).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수중에 떨어진 프랑스의 유대동포들의 굶주림과 고통을 나누려다 '기아와 폐결핵으로 인한 심장근육의 마비'로 사망"한 베이유의 삶을 아이가 따라갈 성싶지 않다. 사실 모두가 성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만은 아이가 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다음부터는 아이가 잘 때만 아이스크림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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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멘트 2007-07-02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귀엽고 예쁜 따님을 두셨네요~!! 로쟈님 사진을 언젠가 여기서 본 것도 같은데, 아빠를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제게 저런 딸이 있다면 책은 뒷전이고 매일 놀아줄 것 같아요.^^ "평생을 노동자들과 함께 하며 사회운동에 투신"하리란 상상을 하기엔 너무 천진스런 모습인데, 뭐 혹시 아나요 언젠가 그런 모습으로 돌변할지.. ㅎㅎ

로쟈 2007-07-0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쁘게 나온 사진은 아닌데 흑백처리한 것이어서 골랐습니다. 저도 '매일 놀아줄 것 같'은 기분을 들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서요.--;

kimji 2007-07-0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전부터 들락거리던 님의 서재에 처음으로 인사를 하는 것 같네요(그죠?).
오늘은 그냥 갈 수가 없네요. 딸아이 사진을 보고서. 볼통통 예쁩니다. 딸아이를 바라보는 아빠로서의 로쟈님이 괜히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여, 용기를 내어 인사를-
그리고, 마지막 두 문단을 아주 즐거이 읽었다는 것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점심 맛나게 드시길요-
(첫 인사를 드렸으니, 이제 종종 인사 하겠습니다^^: )

로쟈 2007-07-02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안녕하세요? 저도 가끔씩 들르곤 하는데, 인사는 못 드렸네요.^^; 재미있는 서재는 아니지만 종종 놀러오시길.^^

2007-07-03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7-03 2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바람직한 건 저도 먹지 않는 것이죠.^^;

릴케 현상 2007-07-04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님 사진 오랜만에 보네요. 사진 잘 찍으시는듯

로쟈 2007-07-0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찍은 건 아닙니다.^^; 사진의 99%는 아이 엄마가 찍습니다.

이잘코군 2007-07-04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건 못보고 지나갔군요. 로쟈님 아빠 닮아서 그런지 따님도 똘똘하게 생겼는데요? :)
 

내일 아침 신문을 미리 훑어보다가 7월 2일이 이탈리아계 미국 소설가 마리오 푸조의 기일이란 걸 알게 됐다. 그걸 빌미로 씌어진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미국 소설가 마리오 푸조가 1999년 7월 2일 79세로 사망했다. 푸조는 <대부>의 작가다. 그는 <대부>의 제사(題詞)로 발자크를 인용하고 있다. “커다란 부의 이면에는 반드시 커다란 범죄가 존재한다.” 발자크의 말은 19세기 프랑스 부르주아 계급이 급성장한 수상한 기원을 지적한 것이었다. 푸조는 이를 <대부>에서 마피아 대부인 비토 코를레오네의 말로 변주한다. “누가 그들의 이해관계에는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는 손해가 되는 그런 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단 말입니까?”  

 

물론 코폴라가 만든 <대부> 3부작을 나도 영화로는 보았지만 푸조의 원작소설 <대부>는 읽어보지 못했다. 제대로 된 국역본이 나왔었나, 미심쩍어하며 찾아보니 웬걸 주요 작품이 <마지막 대부>(늘봄)까지 출간돼 있었다(나는 보급판 두 권을 장바구니에 옮겨놓았다). 출간 소식을 접했을 법도 하지만 주의하지 않고 지나쳤던 모양이다. 여하튼 그래서 우리도 '마리오 푸조'를 갖게 된 것.

 

 

 

 

하지만 우리의 마리오 푸조, 우리의 <대부>는?  거기에 걸려 있는 건 “커다란 부의 이면에는 반드시 커다란 범죄가 존재한다.”는 발자크의 명제를 입증해보이고 있는 한국소설이 우리 주변에 있는가, 이다. 한국사회의 '주류'와 그 '악(커다란 범죄)'을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 있던가? 과문하지만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푸조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이탈리아계 이민 2세로 뉴욕에서 태어난 푸조는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이탈리아계 미국 마피아 코를레오네 집안의 이야기로 20세기 미국사회의 폭력과 권력의 역사를 다룬 <대부>는 그가 46세 때 생활비로 출판업자한테서 5,000달러를 선불로 받고 쓴 소설이라 한다. 그것이 세계적으로 2,000만부가 넘게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되고 1972년 불멸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말론 브랜도, 알 파치노 등의 놀라운 연기(얼마 전 영화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을 보고 그 눈부신 여주인공 다이안 키튼이 벌써 61세가 됐으며, 그가 35년 전 ‘대부’에 26세의 나이로 출연했던 걸 생각하고는 새삼 세월을 실감하기도 했다)에 니노 로타의 아름다운 주제곡이 어울린 영화 ‘대부’는 몇번을 다시 봐도 멋진 작품이다(http://www.youtube.com/watch?v=4Y4i7gmP6ac).
 
푸조의 원작소설은 영상이 결코 다 표현하지 못하는, 비토 코를레오네의 저 유명한 말을 빌리자면 “거절할 수 없는” 문자의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화려한 영화의 그늘에서 흔히 원작의 존재가 가려져 버리는 것을 보지만, 진실로 빼어난 원작의 힘이란 그런 것이다.(하종오 기자) 

1947년 돈 꼴레오네의 호화 저택에서는 막내딸 코니와 카를로와의 초호화판 결혼식이 거행되고 있다. 시실리아에서의 이민과 모진 고생 끝에 미국 암흑가의 보스로 군림하는 마피아의 두목 돈 꼴레오네는 재력과 조직력을 동원, 갖가지 고민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해결해 사람들은 그를 '대부(代夫)'라 부른다.

돈 꼴레오네는 9세때 그의 고향인 시실리아에서 가족 모두가 살해당하는 불행을 겪으며 미국으로 도피하여 밑바닥 범죄 세계를 경험하면서 확고한 기반을 다지게 된다. 세월이 흐른 후 부모의 복수를 위해 시실리로 돌아온 그는 조직적 범죄를 통해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돈 꼴레오네의 라이벌인 탓타리아 페밀리의 마약 밀매인 소롯소가 돈 꼴레오네를 죽이면 천하가 자기 손아귀에 들어온다고 생각해 그를 저격, 중상을 입힌다.

돈 꼴레오네의 막내 아들 마이클은 대학 출신의 인테리어다. 아버지의 저격 사건을 계기로 조직에 개입하여 레스토랑에서 소롯소를 사살하고 시실리로 피신한다. 시실리아에서 시골 아가씨와 결혼하지만 집요한 추적으로 아내를 잃는다.

장남 소니는 자신의 여동생 코니를 학대하던 카를로를 혼내주나 이에 앙심을 품은 카를로는 자신의 패밀리와 소니를 배반하게 되고 이로 인해 소니가 처참하게 암살당한다. 돈 꼴레오네의 일가는 붕괴직전에 직면한다. 돈 꼴레오네 일가를 위해 귀국한 마이클은 대학시절 애인인 케이와 재혼한다. 얼마 후 손자와 뜰에서 놀던 돈 꼴레오네가 심장발작으로 급사, 마이클이 자리를 이어받아 이 집안의 양자로 오른팔 역활을 하는 변호사 톰을 참모로 조직을 단결시켜 적의 격퇴를 해 나간다.(씨네21)

Крестный отец

그 원작은 러시아의 경우에 고전(클래식) 문고본으로도 출간돼 있다(러시아어로는 '마리오 퓨조'이다). 그에 비하면 이 '대중적인' 작가와 작품에 대한 우리의 평가엔 좀 인색한 구석이 있다. 정작 우리시대의 발자크, 우리시대의 마리오 푸조를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걸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 주변의 소설 주인공들은 대개 '커다란 부'와 무관한 도바리들이거나 백수들이었다. 자본가가 아닌 노농자들이었다. 그들에게서 '적'들에 대한 비난과 야유는 심심찮게 들어봤지만 정작 그 '적'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엿볼 수 없었다(한국문학은 대저 '피해자들'의 하소연으로 충만하다).   

 

 

 

 

몇년 전 문학교수들과 평론가들의 설문조사에서 20세기 최고의 작가로 꼽힌 황석영. 하지만 나는 그의 <오래된 정원>을 얼마전 읽으면서 싱겁다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80년 광주 이후 무려 18년만에 씌어진 이 장편소설이 시대의 벽화를 그려내기보다는 고작 서정적 소묘 정도에 만족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 도바리의 감옥생활과 그를 뒷바라지한 한 여인의 이야기는 부분적으로 감동적이지만 여운을 남기지는 않는다. 1인칭 소설의 한계이겠지만 그들이 왜 그런 삶을 살았는가가 입체적으로 그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역시 피해자들의 얘기만 늘어놓는 소설의 한계 아닐까(<오래된 정원>은 작가의 고백대로 '손풀기'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정공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데, 이 작품의 영화화를 앞두고 황석영은 임상수 감독과의 대담에서 이렇게 말했다(아이러니컬하게도 <오래된 정원>은 내게 '서사를 잃어버린 소설'로 읽혔다).  

황석영 | 그래, 그런 의미에서 우리 둘이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고 담지하자는 선언이라도 하자. 사실 나 같으면 <바람난 가족> 그렇게 안 만들어. <대부>처럼 누아르로 만들지. 그게 천민자본주의 형성사 아냐.

임상수 | 선생님과 같이 하고 싶은 게 강남 형성사입니다. 변방이 어떻게 중심으로 바뀌는가. 천민자본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사실, 선생님이 영화감독을 하셔야 되는데.

황석영 | 에이, 무슨. 내가 지금 태어나면 나도 영화감독 하지, 뭐 하러 읽지도 않는 소설 써. 그래 나도 하고 싶다. 내가 구술로 다 불러줄게. 내가 시놉시스도 다 써오고. 삼부작으로 만들자.

마리오 푸조-코폴라의 <대부>란 무엇인가? 미국식 '천민자본주의 형성사' 아닌가? 작가 황석영이 언제라도 소설로 쓰거나 영화로 만들 수 있는! 그것이 '강남 형성사'래도 무관하다. 3부작이어도 좋고, 4부작이어도 좋다(구술로 다 불러준다잖은가?). 한데, 황석영은 에둘러 간다. 심청과 바리데기 이야기로.

곧 출간된다는 신간 <바리데기>는 "중국대륙과 대양을 건너 런던에 정착한 탈북소녀 '바리'의 여정을 통해, 한반도와 전 세계에 닥쳐 있는 절망과 폭력, 전쟁과 테러의 모습을 담아냈다. '바리데기' 신화를 차용, 환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21세기 현실의 삶을 박진감있게 그려낸 소설."이라는데 시놉시스만으로도 또한번 간난의 삶을 산 '피해자들'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충분히 제값은 하겠지만 대중성도 감안해서 쓴다는 '최고의 작가'에게서 내가 기대하는 소설은 아니다. 그런 맥락에서 눈길을 주게 되는 작가가 김훈이다.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느 일방적인 힘에 의해 바뀌지는 않을 거다.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인 것이 아니다. 가난한 자들이 선이고 부자가 악인 것이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고. 노동이 선이고 자본이 악인 것이 아니다. 그 반대도 아니고. 자본이 무너지면 노동이 무너진다. 그건 우리가 IMF시절에 직접 본 것이다. 회사가 무너지면 노동자가 잘사나? 천만에, 먼저 죽어 버린다. 결국 같은 거다. 이익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생과 사는 서로 같은 거다."

최근 중도를 제창한 과거 '진보적' 작가와 달리 '보수적' 작가 김훈에겐 '어느 쪽이 선이고 어느 쪽이 악인 것이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보수적이다. 내가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서 아주 자존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른다는 건 무지몽매한 일이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일단의 구체성만이 중요한 것이다. 나의 보수주의는 구체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다. 먹고 살고 차가 막히는 걸 해결하고 계층의 문제를 해결하고 쓰레기가 떨어졌으면 주워서 버리고, 이것이 중요한 것이지 이쪽이냐 저쪽이냐를 따지는 것은 헛된 일이다."  

 

 

 

 

내가 경탄해마지 않는, <남한산성>에서의 젊은 칸의 문장들은 바로 그러한 세계관에서 배태되었을 터이다.

"내가 이미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땅 위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나를 황제로 여김은 천도에 속하는 일이지, 너에게 속하는 일이 아니다. 또 내가 칙으로 명하고 조로 가르치고 스스로 짐을 칭함은 내게 속하는 일이지, 너에게 속하는 일이 아니다."(25쪽)

'너에게 속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아웅다웅 시비하고 평가하는 일은 가능한 일이긴 하나 헛된 일이다. 그걸 마피아 대부 돈 꼴레오네는 이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누가 그들의 이해관계에는 도움이 되고 우리에게는 손해가 되는 그런 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들은 일방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니다. 그것은 마르크스/엥겔스가 말하는 부르주아지도 마찬가지이다.

"부르주아지의 이러한 각각의 발전 단계들에는 그에 걸맞은 정치적 진보가 수반되었다. 부르주아지는 봉건 영주들의 지배 아래에서는 피억압자 신분이었고, 꼬뮌에서는 무장한 자치 연합체였으며, 어떤 곳에서는 독립적인 도시 공화국이었고, 다른 곳에서는 군주국의 납세의무를 지닌 제3신분이었으며, 그 다음에 매뉴팩처 시기에는 신분제 군주국이나 절대 군주국에서 귀족에 대한 평형추였으며, 대군주국 일반의 주요한 토대였다가 마침내 대공업과 세계 시장이 갖추어진 이래로는 현대 대의제 국가에서 배타적인 정치적 지배권을 쟁취하였다. 현대의 국가 권력은 부르주아 계급 전체의 공동 업무를 관장하는 위원회일 뿐이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하였다."(<공산당 선언>) 

내가 읽고 싶은 건 그러한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커다란 범죄' 이야기이다(심청과 바리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아니라).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신경림, '농무')거나 "못난 사람들이라고 그리움과 기다림을 모르겠는가"(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의 세계는 서정시로도 차고 넘친다(젊은 작가들의 소설들에서도 궁상맞고 되바라진 똘마니들의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소설은 뭔가 다른 걸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 황석영과 김훈은 그런 걸, 뭔가 어른스러운 걸 보여줄 수 있는 작가이다. 차이라면 황석영은 아직 안 쓰고(못 쓰는 게 아니라) 김훈은 아직 못 쓰고 있다는 것(안 쓰는 게 아니라). 김훈은 이렇게 말한다.

"난 소설가가 됐는데 아직도 당대 사회에 대한 글을 제대로 못 쓰고 있다. 앞으로 쓰려고 한다. 우리 시대의 사회에 대해서. 달라졌다면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을 쓸 수 있다는 정도. 성취와 좌절에 대해 쓰려 하는데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못 쓰면 뭐 할 수 없는 거다. 억지로 할 생각은 없다."

해서 나는 두 사람이 현재로선 동일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열심히 해외를 돌아다니고 있고, 또 한 사람은 열심히 연필을 깎고 있다. 누가 먼저 '당대 사회'에 대한 기대치의 소설을 써줄지, 우리의 '돈 꼴레오네'가 돼 줄지 더 기다려봐야겠다...

07. 07.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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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 2007-07-01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 내용의 소설들은 주로 대중 작가들이 잘 다루죠. 일본에는 야마자키 도요코 정도가 있겠군요.

로쟈 2007-07-01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도 아예 '기업소설'이란 게 있지요. 제가 기대하는 건 최소한 마리오 푸조 수준의 '클래식'입니다...

비로그인 2007-07-02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보급판을 가지고 있는데요,책은 일단 분권 안하고 두껍게 낸 것만으로도..값어치는 합니다.^^

로쟈 2007-07-02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이번에 주문했습니다. 의외로 안 팔리는 책이네요.^^;

castrato 2007-07-04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 사람이 현재로선 동일 선상에 있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래도 저로선) 김훈보단 황석영이 '한건' 해줄 거란 기대를 하게 됩니다. <대부>.. 저도 사봐야겠네요.

로쟈 2007-07-04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굳이 걸자면, '거북이'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