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초반부터 한국 선수들이 선전하는 바람에 베이징 올림픽의 열기가 뜨겁다. 겸사겸사 올릭픽을 바라보는 중국 지식인의 시각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한겨레21의 '중국 지식인 연쇄인터뷰'가 첫꼭지로 경제학자 쭤다페이 교수와의 인터뷰를 싣고 있어서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8/08/021003000200808070722037.html). 좌파이면서 중화민족주의자라고 하다(그의 책은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은 듯하다). 인터뷰어는 박현숙 전문위원이다.

한겨레21(08. 08..07) "애국주의 열정은 정당하다”

“당신들이 중국을 알아? 도대체 우리의 무엇을 이해한다는 거야?”
“인권? 보편 가치? 웃기지 말라고 그래. 그렇게 인권을 부르짖는 자들이 세계 곳곳에서 유혈전쟁을 부추긴단 말이야! 서방은 우리에게 인권을 말하기 전에 자신들의 인성부터 들여다봐야 해.”

지난 7월22일 오후 베이징의 시즈먼교 부근 한 찻집. 2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새, 그는 시종일관 서방에 대한 적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심지어 중국의 개혁·개방은 “외국 기업들에 중국의 노른자를 고스란히 ‘갖다바친’ 매국 정책이며 중국을 파멸로 이끌었다”라는 노골적인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중국 학계와 언론에서는 이런 그를 ‘타고난 좌파’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그의 성씨 역시 ‘좌’(左·쭤)다. 그는 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좌파’인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자신이 중국 좌파 중에서도 가장 ‘좌’에 속한 사람이라고 당당히 밝힌 바 있다.

쭤다페이, 1952년생인 그는 현재 중국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연구원이자 교수다. 문화대혁명 당시 가장 어린 ‘홍위병’ 중 한명으로 ‘활약’했으며, 2년간 중국 동북지방의 한 농촌에서 ‘하방 생활’을 했다. 그 뒤 군복무를 거쳐 몇 년간 공장 노동자 생활을 했으며, 문화대혁명이 끝난 뒤인 1978년부터 랴오닝대학과 중국사회과학원 등에서 경제학 공부를 했다. 2002년 출간된 대표작 <혼란의 경제학>에서 그는 ‘중국 특색의 경제자유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중국 지식인 사회에 일대 논쟁을 불러왔다. 그는 이 책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현재 중국의 경제정책은 소수를 위해 다수 사람들과 국가 이익은 고려하지 않으며, 소수가 마음대로 공동의 재부를 강탈하도록 방임하고 있다. 또한 국제자본이 중국에서 이윤을 약탈하는 데 일조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사유화를 낳았을 뿐 아니라, 가장 야만적이고 잔혹한 사유화를 가져왔다. 다시 말해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한 대가로 소수는 폭발적인 부를 이뤘고, 중국은 국제자본의 통치와 수탈을 당하고 있다.”



개혁·개방 30주년이다. 개혁·개방이 중국 사회에 가져온 득과 실은 무엇인가.
=가장 큰 성과는 빠른 경제발전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방향의 견지라는 측면에서는 중대한 문제를 드러냈다. 소유제 문제에서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실제로 자본주의가 경제의 주도적 역량이 됐다. 중국 정부는 비록 공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한다고 발표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 이미 사유제를 실행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과거보다 개인의 자유가 많이 확대됐고, 공산당의 통제력도 많이 약해졌다. 하지만 개혁·개방 뒤 전면적인 사유화는 사회적으로 빈부 격차를 확대시켰고, 외국 기업에 대한 지나친 우대 정책은 중국의 많은 이익을 외국에 팔아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현재 중국에 많은 대기업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핵심적인 기술이 없다. 핵심 기술은 죄다 외국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사회 모순의 확대 역시 큰 문제다. 개혁·개방 뒤 중국 사회 내부에 많은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 빈부 모순, 정부와 인민대중 간의 모순 등이 곳곳에서 민중봉기와 시위를 유발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민족주의·애국주의 열풍이 뜨거운데.
=시장경제 환경이 발전할수록 민족성과 지역성은 더욱 강렬해진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을 봐라. 한국인은 자발적으로 미국을 배척한다.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민족주의 문제는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시장화가 더욱 발전할수록 민족주의 경향도 강화된다.

최근 중국의 ‘80후세대’(1980년 이후 태어난 세대) 사이에서 나타나는 민족·애국주의 운동의 이면에는 맹목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걸 안다. 중국 정부는 비록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애국주의 운동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조직화’하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화되지 않고 리더가 없는 운동은 자칫 비이성적으로 흐르기 쉽다. 하지만 이들의 애국주의 열정은 정당하다. 서방이 먼저 자극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중화민족주의를 지지한다. 서방세계는 중국의 ‘굴기’(성장·불쑥 솟아오른다는 뜻)를 걱정한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중국위협론을 떠들어왔다.

경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중국의 굴기는 필연이며, 단지 옛날로 돌아가는 ‘회귀’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청조 말기 중국은 서방의 발전을 무시했다. 그들은 최근 200년 동안 무기를 이용해 중국을 개방시켰고, 경제발전 역시 중국을 훨씬 더 앞섰다. 이는 중국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자존심을 회복해가고 있다. 중국이 다시 일어나려고 하니까 서방세계는 다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중국을 다시 분할시키고 흠집내고 싶어한다.

민족주의·애국주의 열풍이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뜻인가.
=그렇다.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국 공산당 창당 29주년 기념문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서방을 선생으로 여기고 싶지만 왜 선생은 학생을 항상 때리기만 하는가.” 지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원래 중국은 서방의 비위를 맞추면서 올림픽을 치르고 싶어했으나, 그들이 중국의 체면을 세워주지 않았다. 생각해봐라. 만일 결혼식 집 앞에서 누군가 난동을 부린다면 혼주 입장이 어떻게 되겠는가? 중국인이라면 이런 상황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중국은 지금 잔칫집이다. 그런데 잔칫집 앞에서 그들은 온갖 난동을 부린 셈이다. 이것이 중국인들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혔다.

좌파 지식인들은 베이징 올림픽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올림픽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반감을 가지고 있다. 반대하지 않는 이유는 중국 인민들의 정서를 고려해서다. 중국인들은 오랫동안 서방세계에 대해 열등감을 느껴왔다. 그래서 올림픽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한다. 세계인으로부터 존중을 받고자 한다. 그럼에도 올림픽에 반감을 갖는 것은 올림픽을 통해 중국이 더 ‘세계화’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정책이 가져온 경제 자유주의와 사유화,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인한 중국 경제의 세계화는 이미 중국을 다국적 기업의 이윤 쟁탈·약탈장으로 만들었다. 또 올림픽을 통해 서방은 자신들이 보편적 가치라고 믿는 것들을 중국에 주입시키고 싶어한다. 그런 의도를 경계하기 때문에 올림픽에 반감을 갖는 것이다.

중국 내 자유주의 지식인들은 경제적으로는 시장화를 취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일당독재의 폐해와 언론자유, 인권 등 보편적 가치의 부재를 지적하는데.
=공산당 체제는 크게 보면 인권을 보장한다. 부족한 것은 단지 다당제일 뿐이다. 다당제는 사실 중국에 맞지 않는다. 서방은 인권과 보편 가치를 중시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중국 쓰촨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당연하다’ ‘싸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예를 들어 미국의 유명 여배우 샤론 스톤은 “당해도 싸다”라는 발언을 했다. 중국이 티베트를 탄압했기 때문에 ‘인과응보’라는 식이었다. 이게 인권을 중시하는 태도인가? 그렇게 인권을 중시하고 인도주의 등의 보편 가치를 중시하는 미국이나 서방세계가 이라크와 옛 유고슬라비아 등지에서 저지른 일들을 생각해봐라. 그리고 그들이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일으킨 세계적인 전쟁과 유혈 사건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런 자들이 중국을 향해 감히 보편 가치를 떠들어댄다는 게 말이 되는가.

중국이 나아가야 할 가장 합리적인 방향은 뭔가.
=현재 중국에는 사유화를 둘러싸고 격렬한 좌우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 교육, 부동산, 노동계약법 등의 시장화 문제 역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시장화에 반대한다. 특히 의료 방면의 시장화는 절대 안 된다. 이것들은 최소한의 사회주의적 요소다. 자유주의·개방파 지식인들은 국유경제를 없애고 전면적인 사유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국유경제는 보존돼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국유경제가 경제의 선두 작용을 해야 한다. 경제에도 일정 정도 계획성이 보존돼야 한다. 경제적으로 중국은 상대적인 독립 자주를 해야 하고 대외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 중국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경제에서 주도적인 작용을 하는 것은 반드시 중국 기업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국유기업이 주도적 지위를 점해야 한다. 언론자유 등 민주주의 확대에 찬성하지만 서방식 민주주의는 절대 반대한다.

08. 08. 12.

P.S. 지면기사로 읽어보니 '연쇄인터뷰'의 두번째 편도 마저 실려 있다(http://h21.hani.co.kr/section-021003000/2008/08/021003000200808070722052.html). '체제비판자 허웨이팡 교수'와의 인터뷰인데, 같이 옮겨놓는다.

한겨레21(08. 08. 07) "정부의 통제는 달라진 게 없다”

“언론 자유도 없는데 무슨 자유로운 토론이 있고 논쟁이 있을 수 있나? 중국 공산당은 지식인들이 모여서 논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지식인들은 중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합의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모이지 말라, 토론하지 말라고 하는데 어떻게 진정한 논의가 이뤄지겠는가?”

허웨이팡 베이징대 법학과 교수는 생각보다 훨씬 ‘자유롭게’ 발언을 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간접화법을 통해 현 체제를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하는 것과 달리, 그는 일관되게 직접화법으로 얘기했다. 심지어 최근 들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후진타오-원자바오 체제에 대해서도 “도대체 그들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예전에 비해 변화된 건 거의 없고 개혁도 변죽만 울리고 있다. 언론·사상에 대한 통제는 예전보다 훨씬 강경해졌다. 그들이 뭔 일을 하고 있는지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허 교수는 지난 2006년 3월4일, 중국 국무원 산하 경제체제 개혁연구회가 주최한 중국 시장화 개혁 방향 토론회(‘시산회의’로 더 유명하다)에서 일대 파장을 몰고 온 발언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 회의에서 “공산당은 헌법에 위배되는 조직”이라는 폭탄 발언을 한 데 이어, 공개적으로 다당제와 군대의 국가화, 전면적인 언론·집회의 자유 등 대대적인 정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런 그의 발언이 외부에 알려진 뒤 인터넷을 중심으로 중국 정치 개혁에 관한 좌·우파 진영의 거센 논쟁이 일기도 했다. 지난 7월24일 오후 베이징대 앞 서점 ‘만성서원’에서 1시간30분가량 허 교수와 마주 앉았다.

올림픽은 중국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19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에 민주정치를 촉진하는 등 일련의 변화를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지난 2001년 올림픽 개최권을 따낸 이후 중국 내 많은 지식인들은 올림픽을 통해 중국 사회가 변화하길 희망했다.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확대되길 바랐다. 하지만 (티베트 시위 사건 등) 올해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과 그로 인한 올림픽 분위기 변화는 이런 희망이 사실상 실현되기 어렵게 만들었다. 올림픽 기간 중 일시적으로 언론·취재의 자유 등이 보장될 수 있겠지만 올림픽 뒤에는 다시 예전과 같은 통제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현재 중국 사회 발전 방향의 대세가 민주·개방으로 가는 것임은 확실하다. 사람들의 사상을 통제·압제하는 사회주의 관리 방식이 이미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들은 중국과 세계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고, 시장경제와 합리적인 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사회가 관리돼야 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3~5년 이내에 그다지 큰 변화는 없을 것이다. 올림픽이 중국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 뿐이다.

장기적으로 중국 사회가 민주·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보는 근거는?
=중국인들은 이미 개방사회에 익숙해 있다. 사람들의 민주의식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일당 집권에 대해서도 문제의식을 갖고 있고, 인민대표대회가 공민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을지 여부, 정당과 군대의 관계, 언론 자유 등에 대해서도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국가가 통제할 수 없는 언론이 돼가고 있다. 이미 인터넷은 많은 지식인들이 정보를 얻는 주요한 경로가 됐기 때문에 강경한 언론 통제 체제는 조만간 유지하기 힘들어질 것이다. 중국은 지금 과도기에 처해 있다. 민주·개방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아직도 많은 장애가 도사리고 있고, 중국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공통된 인식 기반도 없다. ‘무엇이 당연히 변화해야 하는 것들인가’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

개혁·개방 30주년이다. 개혁·개방은 국가와 사회 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지고 왔나.
=개혁·개방의 가장 큰 성과는 빈곤을 줄였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개혁·개방은 확실히 성공했다.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조금의 변화가 생겼다. 개인들의 자유가 확대된 것이다. 예전에는 국가가 모든 개인을 통제했고 모든 개인은 자신의 ‘단웨이’(單位·회사나 기관)에 소속돼 모든 개인 행위를 통제받았다. 개혁·개방은 이런 통제에 변화를 가져왔고, 개인을 통제하던 단웨이 체제는 해체됐다. 그 결과 개인들은 일정한 자유를 갖게 됐다. 당과 정부, 공민의 관계에도 눈에 띄는 변화가 왔다. 당과 정부는 더 이상 인민들의 주인이 아니며, 정부의 말이나 마오쩌둥의 어록이 진리로 받아들여지지도 않는다. 심지어 국가 지도자의 일부 발언이 종종 사람들의 농담거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국 개혁·개방은 옛 소련의 개혁 방식과는 다르다. 소련의 개혁은 모든 것을 하룻밤 사이에 뒤집어엎었지만, 중국은 지난 30년간에 걸쳐 아주 점진적인 개혁을 추구했다. 특히 이데올로기의 변화는 다른 경제·사회 구조 변화에 비해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 당과 정부의 통제 스타일에도 변화가 없다. 개혁·개방 뒤 중국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는 매일 변화 중이지만 전체적인 변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3월14일 티베트 시위 사건 뒤 중국인들, 특히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반서방·애국주의 운동이 강하게 불고 있다.
=‘정보’의 문제다. 중국 정부는 사실 서방매체에서 보도한 내용 중 극히 편향적인 것들만 부풀려서 제공했다. 서방매체가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약속을 어겼기 때문이다. 2007년 중국은 이미 외신들에게 취재 개방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티베트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는 서방매체의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것이 서방매체로 하여금 중국 정부를 비판하게 만들었다. 흔히 ‘80후 세대’라고 일컫는 중국 신세대들의 민족주의 열풍도 정부가 조장한 것이다. 신세대들은 자신들이 구세대에 비해 개방적이고 인터넷 등을 통해 정보를 많이 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는 착각이다. 예를 들어 중국 정부는 문화대혁명 등과 같은 중국 정치사의 민감한 사건을 연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세대들은 문화대혁명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며, 이 때문에 마오쩌둥을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

티베트나 신장위구르족 통치정책은 서방인들 눈으로 보자면 제국주의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자치구라고 하지만 사실상 자치가 허용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은 농노 사회였던 티베트를 해방시켰고 경제를 건설했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티베트인들은 독립을 원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 공산당이 티베트인들의 생활방식을 이해하고 있는지, 그들의 종교 신앙을 존중하고 있는지다.

중국은 올림픽을 계기로 ‘중화민족이 일어서야 한다’고 말한다. 서방에서는 이런 중국의 부상을 ‘위협’으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는데.
=중국 정부는 사실 예전만큼 강하게 ‘중국의 굴기’를 선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변 국가와 서방세계가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록 중국은 ‘평화로운 굴기’를 주장하지만, 외부에선 중국이 인권을 존중할 것인지와 외교에서 정의의 관점을 유지하는지 여부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단의 다르푸르 문제나 버마 군정 문제에서 중국이 취했던 자세를 들 수 있다. 서방 국가에서 중국의 굴기를 위협으로 느끼는 또 다른 이유는 최근 들어 중국 내 민족주의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는 것과 중국의 정치제도가 예전과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외부 세계의 ‘중국 위협론’을 잠재우기 위해 중국 정부는 최근 ‘연성 권력’(소프트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얼마 전 쓰촨에서 지진이 났을때 <북경완보>와 <남방주말>이라는 두 유력지 간에 재밌는 논쟁이 있었다. <남방주말>은 기사에서 지진을 통해 중국은 생명이나 인권·인도주의에 대한 ‘재발견’을 했고, 이것은 중국 사회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 기준을 향해 진보하는 증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경완보>는 반박 기사를 통해 그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아니라 공산당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이며, 지진 극복 과정은 바로 중국 공산당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 얼마나 웃긴 말인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마저도 부정하는데, 무슨 ‘소프트 파워’를 건설할 수 있겠는가. 먼저 우리 사회 내부에서 논쟁의 자유와 언론집회의 자유 등이 보장돼야 한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노바바 2008-08-12 23:05   좋아요 0 | URL
'구좌파'군요. 사실 이런 중국 지식인들은 널린거 같습니다. 물론 자유주의자들이 다수인 듯도 하지만... 사실 요즘 '대화'가 통할만한 지식인이 얼마나 되는지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가 가장 궁금합니다.

로쟈 2008-08-12 23:23   좋아요 0 | URL
네, 상식적으론 '특이한' 포지션인데, '다수'인 모양이군요. 그게 '모순적인 현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노바바 2008-08-13 13:28   좋아요 0 | URL
저도 중국은 잘 모르지만, 중국 전공한 분들한테 줏어들인 얘기입니다. 좀 단순하게 얘기하면 '비판적'이라는게 대개 정부와 미국에 비판적이라는 뜻이고 '진보적' 이라는건 자유주의자라는 뜻이라더군요. 지식인이라고 하면 저 둘 중 하나라고 보면 그리 틀리지 않다고... 그런데 비판적이면서 좌파이면서 민족주의인 모순적인 경우는 이미 한국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잇엇지 않습니까? 그게 모순적이다못해 이제는 반동적이기까지 하지만요. 국내에 소개된 저자로 따지면 쑨거, 왕샤오밍 같은 사람이 그나마 비판적이면서 자유주의자는 아니면서 중화주의자도 아니라더군요.

로쟈 2008-08-13 22:01   좋아요 0 | URL
네, 그렇군요. 진보주의자에 대한 정의는 러시아와 비슷하네요. 러시아에서도 진보주의자는 자유주의자이지요. 반대로 보수주의자는 공산주의자를 가리키고요...

로쟈 2008-08-14 08:59   좋아요 0 | URL
유태인과 중국인의 상술을 비교하는 건 자주 접하지만, 제가 과문해서인지 유태인과 중국인이 대표적인 디아스포라라는 건 처음 듣습니다. 참고할 만한 책이 있으신지요?..

로쟈 2008-08-15 14:28   좋아요 0 | URL
유태인의 경우엔 2천년간 국가가 없어서 '디아스포라로서의 유태인'이란 표현이 가능하겠지만, 중국은 경우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위키피디아에도 주로 20세기에 중국인 디아스포라가 많아진 걸로 나와 있고요. 그리고 모든 중국인을 '화교'라고 하는 건 아니니까 구별해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아스포라의 개념에 대해서 제가 특별히 오해하고 있는 것인가 해서 질문을 드렸던 것이구요...

로쟈 2008-08-16 09:29   좋아요 0 | URL
통계를 보니 소위 '화교'가 4천만쯤 되는군요. 재외 한국동포가 6백만입니다. 당연히 중국 디아스포라의 숫자가 훨씬 많지만 인구비율을 놓고 보자면 한국이 훨씬 더 높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산'으로 인한 고통은 한국인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구요. 저는 중국인 좌파지식인이 "당신들이 뭘 알아?"라고 특권적으로 말할 만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섬나무 2008-08-19 15:23   좋아요 0 | URL
음...미묘하고 미세한 감성의 차이 같은데 좀 더 근원적인 차이네요.
로쟈님 건재하셔서 감사하구요...
 

지난주 신간 가운데 클레어 콜브룩의 <이미지와 생명, 들뢰즈의 예술철학>(그린비, 2008)이 있다. '리좀총서'의 한권으로 나온 것인데, 제목 때문에 몇 군데 검색을 해봤었다. 콜브룩의 책 제목으로는 생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국역본의 제목은 '미끼'였다.

 

 

 

 

좀 뒤적거리다 알게 된 사실은 이 책이 콜브룩의 또 다른 들뢰즈 입문서 <들뢰즈(Deleuze: A Guide for the Perplexed)>(2006)를 우리말로 옮긴 책이라는 점. '당혹한 이들을 위한 가이드(A Guide for the Perplexed)'란 부제는 이 책이 포함된 컨틴뉴엄 출판사의 시리즈 제목이다. 철학자 입문서 시리즈인데, 플라톤부터 시작해서 칸트, 헤겔, 니체, 그리고 리쾨르, 데리다 등까지 망라돼 있다. 비록 콜브룩의 책이 이번엔 <철학이란 무엇인가>와 <시네마> 두 권에 초점을 맞춘다고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들뢰즈 입문서'인 것이다. 그러니까 '들뢰즈의 영화론을 중심으로 정리한 들뢰즈 철학의 핵심' 정도가 아닐까 싶다. 들뢰즈를 조금 읽으려다가 '이게 뭥미?'하며 투덜거릴 독자들을 위한 가이드.

이미 <질 들뢰즈>(태학사, 2004), <들뢰즈 이해하기>(그린비, 2007) 등을 통해서 탁월한 입문서 쓰기 능력을 과시한 바 있기에 콜브룩의 신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신뢰를 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궁금한 것. 왜 출판사는 책의 원제를 노출시키지 않았을까?(알라딘의 책소개에도, 그리고 출판사측의 소개에도 원제는 누락돼 있다. 그건 <들뢰즈 이해하기>만 하더라도 '원제 Understading Delueze'가 병기돼 있는 것과 비교된다. 이건 실수일까 의도일까? 짐작은 후자쪽일 듯하다. <들뢰즈 이해하기>의 속표지를 보니 저자 약력에 <들뢰즈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라고 기재돼 있고, '리좀총서'의 근간 리스트에도 역시 <들뢰즈 입문자를 위한 가이드>라고 돼 있다. 그렇다면 제목이 바뀐 것이고, 그 의도는 들뢰즈 '입문서'보다는 들뢰즈의 '예술철학'에 방점을 찍고 싶었기 때문 아니었을까('가이드'는 좀 식상하니까). 그런데, 그런 '의도'가 애꿎게도 잠시 나 같은 독자를 당혹스럽게 했던 것이다.  

 

 

 

 

들뢰즈의 영화론에만 한정하더라도 사실 적잖은 책들이 나와 있다. 데이비드 로도윅의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그린비, 2005)에서부터 파트리샤 피스터르스의 <시각문화의 매트릭스>(철학과현실사, 2007)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짐작엔 콜브룩의 책이 가장 쉬운 책일 것이다(가장 얇기도 하다. 물론 <들뢰즈: 철학과 영화>(열화당, 2004) 같은 책이 더 얇긴 하지만, 나로선 건질 게 없는 책이었다). 이후에 좀더 깊이 있는 독서를 원한다면 로도윅의 책이나 로널드 보그의 <들뢰즈와 시네마>(동문선, 2006)를 집어들 수 있지 않을까? 로도윅의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의 1장 읽기는 '영화의 짧은 역사'(http://blog.aladin.co.kr/mramor/714446) 참조. 지젝의 들뢰즈론 <신체 없는 기관>(도서출판b, 2006)은 거기에 선택사양으로 부가될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리좀총서' 가운데 가장 고대하고 있는 책은 장-자크 르세르클의 <들뢰즈와 언어>(2002)이다. <언어의 폭력> 등의 저작을 갖고 있는 르세르클은 루이스 캐럴과 무의미 문학의 전문가이다(그의 '앨리스론'과 '롤리타론'도 챙겨둘 만하다). 최근작으로는 그레고리 엘리어트와 공저한 <마르크스주의 언어철학>(2006)도 눈에 띈다. 들뢰즈의 예술철학 이상으로 중요해 보이는 것이 내겐 그의 언어철학이어서이다...

08. 08. 12.

P.S. 한가지 덧붙이자면, 또 다른 입문서로 토드 메이의 <질 들뢰즈>(경성대출판부, 2008)도 이번에 출간됐다. '들뢰즈 입문서의 지존'이 어느 책으로 판가름날지 살짝 궁금하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hEAV 2008-08-12 15:36   좋아요 0 | URL
그런 것이었군요;; 무슨 책일까 했네요;;
시리즈물은 한 출판사에서 시리즈물로 같이 내주는 것이 보기 좋은데 말이죠. ^^;

마이모니데스 책 제목을 빌려 온거니, 『방황하는 자들을 위한 안내서: 누구누구』 이렇게 해서 말이죠.

로쟈 2008-08-12 21:18   좋아요 0 | URL
앨피에서 나오는 시리즈가 드문 경우이고, 시장성 때문에 시리즈물을 다 내기는 무리죠. A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같으면 100권이 넘는데, 이런 기획에 사활을 걸 출판사는 별로 없을 듯합니다...

yoonta 2008-08-13 11:04   좋아요 0 | URL
이 책 조금 봤습니다만 들뢰즈를 읽고 당혹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 읽고도 당혹해할 확률도 꽤 높을것 같네요. 입문서이긴 하지만 제법 난이도가 있는 책입니다. 태학사에서 나온 <들뢰즈> 정도가 저자가 쓴 입문서들 중에서는 제일 읽기 평이한 것으로 보입니다.(그만큼 건질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됩니다만)

제가 리좀총서에서 가장 기대되는 책은 르세르클의 책도 있지만 마누엘 데 란다의 <강도의 과학과 잠재성의 철학>입니다. 들뢰즈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수학과 과학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요.

로쟈 2008-08-13 11:12   좋아요 0 | URL
그 난이도 때문에 국역본에서 '가이드(입문서)'란 제목을 기피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데 란다의 책은 하도 유명해서 저도 갖고는 있는데, 아무래도 제가 좋아하는 분야는 수학이 아니라 언어(문학)입니다.^^

marr 2008-08-13 22:40   좋아요 0 | URL
아, 좋은 지적입니다. 들뢰즈의 예술철학에 관한 훌륭한 입문서는 한국에도 한 권 있습니다. 이룸에서 출판된 <들뢰즈>라는 박성수의 책입니다.

로쟈 2008-08-14 00:11   좋아요 0 | URL
네, 그 책도 영화와 미술쪽을 주로 다루었죠...
 

밀란 쿤데라의 신작 에세이집 <커튼>(민음사, 2008)을 읽고 있다(달리 '휴가' 기분을 낼 수 있는 방법도 없기에). 80년대 후반 처음 소개된 이후 90년대 전반까지 한국의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어필한 작가 중 한 사람이지만 현재는 그의 많은 책들이 절판된 상태다. 격세지감을 다시금 느낄 수밖에 없다(더불어 느끼는 건 그가 일급의 에세이스트라는 것. 하긴 허름한 에세이를 쓰는 일급의 소설가도 있는지는 의문이다). 남은 책들의 리스트를 만들어둔다.  


1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커튼-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8년 08월 10일에 저장
구판절판
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민음사 / 2008년 8월
13,000원 → 11,700원(10%할인) / 마일리지 650원(5% 적립)
2008년 08월 10일에 저장
품절
소설의 기술
밀란 쿤데라 지음, 권오룡 옮김 / 책세상 / 2004년 11월
10,000원 → 9,000원(10%할인) / 마일리지 500원(5% 적립)
2008년 08월 10일에 저장
절판

향수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00년 12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2008년 08월 10일에 저장
품절



1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4주간의 원룸텔 생활을 정리하고 드디어 집에서 '숙박'하게 됐다. 거기에 이런저런 집안일들이 겹치다 보니 '휴가 아닌 휴가'처럼 돼 버렸다. '일상의 정지 상태'를 휴가라고 부른다면 말이다. 그 사이에 서재에서는 오늘로써 총방문자수가 50만을 넘어섰다. 요즘은 수백만의 방문자수를 자랑하는 블로그도 드물지 않으므로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지난 몇 년간 참 꾸준하게도 '서재질'을 했구나란 감회는 잠깐 갖게 된다. 그러지 않았다면 50만이란 '발걸음'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스스로를 격려하며 질타한다. "오래도 버티는구나!" "앞가림이나 해라!" 

이번주에 나온 책들 가운데 우선 순위를 개인적으로 꼽자면 쿤데라의 에세이와 존 버거의 소설, 그리고 일본 문화에 관한 책과 미국 경제에 관한 책 순이다. 이 책들에 대한 리뷰들을 읽어봤지만, 오늘은 '50만'을 기념하는 뜻으로 다니엘 솔로브의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비즈니스맵, 2008)에 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원제는 'The Future of Reputation: Gossip, Rumor, and Privacy on the Internet'이니까 <평판의 미래>가 제목이고 '가십, 루머, 인터넷에서의 프라이버시'가 부제다. 국역본 부제는 '루머, 가십, 익명성, 그리고 디지털 주홍글씨'. 아무리 그래도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미래'는 책 제목으로는 그다지 '섹시'하지 않다(페이퍼 제목이라면 몰라도). 표지도 원저가 조금 더 나은 편이다. 책의 내용과 무관하게 '로쟈의 미래'에 대해서도 잠시 근심을 해본다... 

경향신문(08. 08. 09) 잔인한 역사가 인터넷과 공존하기

한 장의 사진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개똥녀’. 지하철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은 것은 나쁜 행동이지만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생각해 볼 문제다. “그런 여자는 사생활 운운할 가치가 없다”면서 개인의 신상과 과거를 공개하며 결국 다니던 대학까지 자퇴하게 만들며 ‘주홍글씨’를 새겼다.



저자인 미국 조지워싱턴대 법학 교수인 다니엘 솔로브는 “개똥녀를 ‘세계적 악녀’로 만드는 것은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던지며 인터넷상의 표현의 자유와 평판의 문제를 풀어가고 있다. 연인과의 사생활을 블로그에 공개했다가 고소당한 여성, 상사의 험담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해고당한 직장인, 전과 전력이 구글 검색에서 드러나 면접에서 탈락한 구직자 등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인터넷 세상과 평판의 문제를 이야기한다.

솔로브 교수는 “인터넷이 지워지지 않을 개인의 과거 잘못을 기록,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 속 주홍글씨를 디지털판으로 재현한다”고 지적했다. 개똥녀 사건에서 보듯, 옳고 그름을 떠나 인터넷은 잔인한 역사가라는 말이다. 이미 1999년 인터넷법 전문가 로렌스 레식은 자신의 저서 ‘코드(Code):사이버 공간의 법이론’에서 “사이버 공간은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제로 치닫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언했다.



솔로브 교수는 ‘디지털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는 인터넷의 정보들 때문에 일어나는 평판 훼손을 막기 위해 프라이버시에 대한 법 인식이 확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이버 모욕죄’ 등 인터넷에 대한 통제수단을 도입하겠다는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솔깃한 이야기다. 그러나 저자는 “인터넷 표현에 대한 직접적인 제한을 고려하는 권위주의적 접근법은 너무 억압적이고 표현의 자유를 억제한다”고 경고했다. 법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법은 최후의 수단으로 두고 비공식적 해결을 권장해야 한다는 말이다.(김주현 기자)

08. 08. 09.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반딧불이 2008-08-10 01:02   좋아요 0 | URL
50만 돌파를 축하드립니다. 책을 검색할 때마다 로쟈님의 그물망을 벗어나지 못함을 깨달은지 오래되어서 이제는 로쟈님 글을 먼저 찾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참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로쟈 2008-08-10 12: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그물망'은 저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잘코군 2008-08-10 02:21   좋아요 0 | URL
축하드립니다. :) 100만을 향하여. ^^

로쟈 2008-08-10 12:50   좋아요 0 | URL
다음 올림픽때쯤?!^^

모래한알 2008-08-10 02:52   좋아요 0 | URL
컴퓨터를 켤 때마다 늘 로쟈님의 블로그에 접속해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런 저런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로쟈 2008-08-10 12:51   좋아요 0 | URL
네, 낮은 점수밖에는 안되지만 저도 도우미 역할을 하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0 21:21   좋아요 0 | URL
축!!! 50만 돌파!!! 우리 모두 순수하고 해맑은 세상을 만들어 보아요!!!

로쟈 2008-08-10 21:29   좋아요 0 | URL
ㅋㅋ 너무나 해맑은 댓글입니다.^^ 그러자면 나중에 지식분자들은 다 청소해야 할 텐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0 21:53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세치 혀와 붓끝으로 죄를 많이 짓는 자들을 어이해야 한단 말입니까.

로쟈 2008-08-10 22:03   좋아요 0 | URL
스스로 결정지어야 한다고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1 11:40   좋아요 0 | URL
사람은 남보고 너! 바뀌어야 해! 하기는 쉽지만 자신도 개혁대상이라는 말을 들으면 되게 불편해하고 짜증내는 존재라서 그게 되려나 모르겠네요.

로쟈 2008-08-11 20:08   좋아요 0 | URL
자결해야죠...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솔제니친과 관련한 칼럼이 눈에 띄어서 옮겨놓는다. 인권에 관한 책들을 연이어 출간하고 있는 조효제 교수의 칼럼인데, '진보의 복합적인 현실인식'을 주문하고 있다. '모든 억압에 대한 저항'을 진보로 포용하자는 취지이다.

한겨레(08. 08. 08) 솔제니친과 진보의 복합적 현실인식

며칠 전 타계한 솔제니친만큼 평생을 격렬한 논쟁 속에 산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소련 당국은 그를 반역자로 몰았다. 그의 러시아 민족주의 경향은 사르트르와 같은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를 반소 지성인의 상징으로 칭송하던 서구의 우파 지식그룹은 그가 구미의 도덕적 타락과 방종, 물신숭배를 비난하기 시작하자 반자유주의자로 낙인찍었다. 일각에서는 그를 반유대주의자라고 비판했다. 1994년 그가 오랜 망명생활 끝에 귀국하자 전통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던 <모스크바 타임스>는 ‘호메이니의 귀환인가?’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설왕설래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뢰였다. 로버트 인차우스티가 보기에 그는 사라진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새로 쓴 현대의 사가였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민주파들이 경청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우리 진보·개혁 진영에서 솔제니친은 많이 읽히지도,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우리의 비판적 지성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보는 것과 같다.

우선, 솔제니친이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던 때 우리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반독재 투쟁을 벌이고 있던 민주화 진영은 솔제니친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둘째, 한국의 극우보수 세력이 솔제니친을 철저히 자기들 입맛에 맞게 왜곡했다. 문화계의 이데올로그들은 그를 최고의 반공작가로 떠받들었다. 남한에 있었더라도 반체제 민주인사가 되었을 인물을 엉뚱한 존재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이런 왜곡된 시대상황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솔제니친을 균형 있게 인식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서거를 계기로 이제 우리 진보·개혁 진영의 지적 역량에 얼마만한 여유 공간이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모든 정치권력은 어떤 이념이든 억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고, 그 모든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라는 복합적인 인식을 가져보면 어떨까?


진보·개혁 진영이 이런 태도를 지닐 때 진보 대 보수의 이분법을 넘어 현실의 뉘앙스와 아이러니를 깊이 이해하는 세련된 세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런가? 그런 태도는 사울 알린스키의 표현대로 일반대중의 욕망과 희비의 결을 ‘그래야만 하는’ 렌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렌즈로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태도는 진보·개혁 진영에서 등에 구실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오도록 장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진보·개혁 진영은 더욱 풍부한 콘텐츠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가령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보라. 그것은 지난해 말 대선과 올봄 총선에 이은 보수 선거혁명 3부작의 완결판이었다. 한국 보수세력의 능수능란함이란! 비비케이(BBK), 인사파동, 광우병, 촛불집회, 남북관계, 독도주권, 외교참패 등 현실정치의 온갖 악재를 선거 이벤트로써 단숨에 돌파하지 않았는가. 대선에선 항의 성향 투표를, 총선에선 욕구 지향 투표를, 교육선거에선 계급 취향 투표를 교묘하게 동원하여 기어코 권력의 핵심 제도들을 움켜쥐고야 마는 저 모습을 보라.

이게 우리의 솔직한 현실이다. 단기간의 선명한 투쟁만으론 이길 수 없는 현실이다. 싸울 때는 안경 벗고 싸우더라도 세상을 읽을 때엔 다초점 렌즈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최근 어느 진보적 출판인으로부터 아서 케슬러의 <한낮의 어둠>을 번역·출간할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바로 이런 것이 복합적인 현실인식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한다.(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08. 08. 08

P.S. 칼럼 말미에서 언급되고 있는 아서 케슬러의 소설 <한낮의 어둠>(한길사, 1983)은 한길 세계문학의 한 권으로 묶여서 출간된 적이 있다.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폭력이란 무엇인가'(http://blog.aladin.co.kr/mramor/1747960)란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어느 진보적 출판인이 아서 케슬러의 <한낮의 어둠>을 번역·출간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복합적인 현실인식의 좋은 사례"로 지목된 것은 이 책이 스탈린시대의 숙청을 비판한 일종의 '반공문학'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휴머니즘과 폭력>(문학과지성사, 2004)에서 이러한 케슬러의 입장을 비판한 바 있다('쾨슬러의 딜레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새물결, 2008)이 가장 유익한 참고문헌이다...


댓글(1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노이에자이트 2008-08-08 12:43   좋아요 0 | URL
저는 부하린 재판과 박헌영 재판을 비교연구해보고 싶습니다.저의 필생의 소원입니다.문학작품으로는 부하린 재판을 다룬 한낮의 어둠.그리고 박헌영 재판을 직접 다루진 않지만 해방공간에 미군정이 남로당 핵심에 정보원을 심었음을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마쓰모도 세이죠<북으로 간 시인 임화>를 연구목록에 넣고 있습니다.이 소설은 북한에서도 남로당 노선비판할 때 중요한 교재로 쓰였습니다.

로쟈 2008-08-08 14:46   좋아요 0 | URL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를 꼭 읽어보시길...

노이에자이트 2008-08-09 00:08   좋아요 0 | URL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에 나오는 부하린 재판을 비롯한 대숙청 작업에 대한 스탈린 주의적인 해석은 결국 숙청도 혁명을 위해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다는 식의 변명이라고 봅니다.지젝이 카프카를 인용한 것은 스탈린 식의 이런 변명을 거부하면서 부하린을 비롯한 당시의 숙청대상자들은 난 데 없이 죄인이 되었다는 비판이죠. 그 밑바탕엔 당시 재판정에 선 피고들은 소련을 무너뜨리려는 외국세력의 앞잡이라는 소련 당국측의 견해 자체가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하지만 남로당 지도부는 상당수가 미군정에 포섭되어 있었음이 해제문서를 통해 밝혀졌습니다(정창현 <인물로 보는 북한 현대사>).임화도 그렇고 이강국도 그렇구요.물론 박헌영 자신이 포섭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그래서 제가 <북으로 간 시인 임화>를 언급한 겁니다.거기엔 연세대 설립자 집안인 언더우드가가 미군정의 앞잡이로 나옵니다.

로쟈 2008-08-09 00:05   좋아요 0 | URL
미군에 포섭됐었다는 건 확정적인 건가요? 한데, 만약에 사실이 그랬다면 아무런 미스터리도 없는 것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9 00:14   좋아요 0 | URL
예.우리나라 신문에서도 그게 나왔습니다.정창현 책엔 그 문서 번호까지 나와 있구요.방선주와 기광서가 확인했습니다.정병주 씨도 인정했구요.그런데 학계에서는 아직도 수용을 안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작년에 나온 심지연<이강국>에서도 이강국이 북한에서 희생되었다...그런 식이구요.여하튼 마쓰모도 세이죠는 문서해제가 되기 전에 거의 정확히 짚은 거죠.

로쟈 2008-08-10 00:31   좋아요 0 | URL
미 군정문서인가 보군요. 그 경우엔 소련측 문서보다는 신빙성이 있을 거 같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0 21:0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미군 방첩대 문서죠.하지만 저는 북한 것을 복사한 것이나 한민전(이런 단체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에서 나온 남로당 비판서는 적당히 에누리해서 읽습니다.박헌영 재판 기록은 구할 수 있습니다만 그걸 소재로 삼은 소설이나 논문이 없고 부하린 재판을 다룬 소설이나 평론은 있는데 국내에선 재판기록을 구할 수 없지요.부하린 기소의 이유가 독일과 일본의 간첩들이 준동한다! 였는데 아예 첩보의 역사를 읽어보려고 해요.박헌영 사건도 아예 남과 북 그리고 미군정 첩보전까지 다뤄보려고 합니다.인문 사회 하는 이들은 군사 첩보분야를 멀리하고 군사 첩보 연구하는 이들은 인문 사회적 시각이 부족하여 문제이니 아예 두 분야를 함께 해보려구요.
제가 부하린 재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 연구서인 김남국<부하린:혁명과 반혁명의 사이>(문학과 지성사1993)을 읽은 후부터예요.이 책을 통해 <한낮의 어둠>과 <휴머니즘과 테러>에 대해 알게 되었죠.

로쟈 2008-08-10 21:33   좋아요 0 | URL
저도 철학적으론 관심있는 테마인데, 엄두는 잘 나질 않습니다. 김홍우 교수의 <현상학과 정치철학>에도 관련 논문이 들어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0 21:55   좋아요 0 | URL
오...감사합니다.내일 낮 도서관에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로쟈 2008-08-10 22:03   좋아요 0 | URL
시립도서관들은 보통 월요일에 휴무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1 11:31   좋아요 0 | URL
격주로 쉬니까 문 연 곳에 가면 됩니다.오전 일 끝내고 이제 왔습니다.저쪽 도서관은 오늘 쉬는 날!

로쟈 2008-08-11 20:0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2 23:18   좋아요 0 | URL
현상학과 정치철학 중 관심가는 논문을 봤습니다.케슬러가 인간을 콤미싸르 형과 요기 형으로 분류하여 후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는 이사야 벌린의 자유관과 비슷하더군요.그리고 이 책의 제일 첫번 논문인 행태주의에 관한 글은 경제학의 방법론까지 다루어 매우 유용했습니다.이 부분을 좀 더 정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사회실재론과 사회명목론의 대결은 최근에 관심을 갖는 쟁점이라서요.

로쟈 2008-08-12 23:21   좋아요 0 | URL
기회가 되면 나중에 세미나라도 해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2 23:48   좋아요 0 | URL
근데 메타이론 쪽의 독서는 두뇌소모가 엄청나서 괴롭습니다.개별학문 분과를 넘어서 버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