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박인성? 기사를 읽고서야 처음 알게 된 작가인데, 최근 연작소설 <이채영은 잘있다!>(삼우반, 2010)를 펴내기 불과 며칠 전에 교통사고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네 권의 소설집만을 남겨놓게 됐는데, 비단 안타까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서울이란 도시의 풍경을 그려낸 작품세계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다('동(洞)자류' 소설이라 부른다고).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0. 12. 25) 그저 ‘무명’으로 소설집 4권을 남겨둔채 가다 

그는 그렇게 떠나갔다. 자욱한 안개 저편으로 사라졌다. 마지막 소설을 탈고한 뒤 새벽 햇살과 다툼하던 물방울 입자들을 톡톡 터뜨리며 소설처럼, 시처럼 사라져 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 갸우뚱하며 그저 무명 소설가라고 일컬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 시대 문체 미학을 간직한 소중한 작가’라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상찬을 내렸다.  



소설가 박인성이다. 최근 출간된 연작소설 ‘이채영은 잘있다’(삼우반 펴냄)가 나오기 며칠 전인 지난 6일 새벽 교통사고로 숨졌다. 평단도, 작단도, 어느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죽음이었다. 1956년 9월 태어났으니 54년을 ‘자연인 박대성’으로 살았고, 1977년 21세 젊은 나이에 ‘월간문학’ 신인상에 당선돼 등단했으니 33년을 ‘소설가 박인성’으로 살았다. ‘호텔 티베트’, ‘사랑은 안개보다 깊다’ 등 네 권의 소설집만을 남긴 과작(寡作)의 작가였다. 1986년 첫 소설집 ‘파장금엔 안개’는 김윤식 서울대 교수로부터 ‘무진기행에서 김승옥의 안개를 더욱 밀도있게 형상화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77년 월간 문학신인상으로 등단
유고작이 된 ‘이채영’은 서울 곳곳을 무대로 한 연작소설이다. 가회동이 나오고 상수동, 신사동, 신설동, 홍은동, 흑석동이 잇따라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2010년 한국 사회의 정치인, 기업인, 법조인, 종교인, 술집 주인, 건달, 화가, 문인 등 수많은 인물들을 아울러 풍자하고 은유하며 경쾌한 이야기로 이끌어간다. 그동안 단편소설과 단편에 걸맞은 문장만을 고집하며 삶의 비의(秘意)를 찾아 헤매왔던 박인성으로서는 파격적인 변신을 꾀한 셈이다.

정치·기업·법조인 등 풍자
특히 표제작 ‘이채영…흑석동’을 비롯해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신설동’ 등에서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나 하듯 자신 삶의 자전적 내용을 담았다. 전북 김제에서 서울로 올라와 신설동 천변에서 지내던, 지독하게 가난했던 유년의 기억부터 문청으로 살아왔던 날들, 등단 이후 광고 카피라이터와 작가의 삶을 겸했던 시절까지를 그리 길지 않은 단편 속에 분명한 기록으로 남겼다.

문학평론가인 정현기 세종대 교수는 “월북작가 박태원의 ‘천변풍경’이 그려낸 1930년대 도시 서울의 낭낭한 풍경이 2010년대 박인성에 이르면 더욱 구체적인 꼴을 띠고 이 도시가 어떻게 바뀌어가는지를 읽게 한다.”고 언급했다.

소설을 펴낸 삼우반의 김용범 편집주간은 “장편소설에 대한 꿈을 키우면서 ‘이채영’의 속편 격인 또 다른 서울 연작소설도 준비하고 있었는데 안타깝기만 하다.”고 애석해 했다.

●‘천변풍경’ 더욱 구체화한 듯
못다받은 애도는 더 이상 이승의 몫이 아니다. 또 다른 세상에서 문학에 파묻혀 마음껏 소설 쓰기를 바랄 뿐이다. 또한 이승의 것보다 훨씬 유쾌하고 즐거운, 또 다른 삶을 누리기를 바랄 뿐이다.(박록삼기자) 

10.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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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25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말에 안타까운 소식을 연이어 듣게 되네요...
물만두님도 그렇고...
과문한 탓에 두 분 다 평소 글로 접하지 못했는데
해가 가기 전에 마음도 가라앉힐 겸 다문다문 읽어봐야겠네요...
게으르기 그지없는 제겐 로쟈님 서재가 세상과 통하는 창이 되는군요.
부끄럽지만... 이왕 빚진 김에 계속 빚지고 살겠습니다^^

로쟈 2010-12-25 20:40   좋아요 0 | URL
저도 손가락품이나 좀 파는 정도인 걸요. '로쟈-은행'이란 표현도 있던데, 가진 것 없이 대출해줄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반딧불이 2010-12-25 1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고나니까 보이는 것이 세상에는 허다하군요. 기억해두어야겠습니다.

올 한해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새해에도 또 염치없이 도움 받겠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새해 맞으시기 빕니다.

로쟈 2010-12-25 20:42   좋아요 0 | URL
별말씀을요. 반딧불이님도 새해엔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시길...

영초 2010-12-27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너무 아쉽습니다. 열심히 소설 쓰는 몇 안되는 소설가중의 하나였는데...물론 작품 수준도 굉장히 높고..

로쟈 2010-12-27 23:39   좋아요 0 | URL
아, 독자가 없진 않았네요!

雨香 2010-12-29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가 박인성! 혹시나 했는데 (20년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파장금엔 안개'의 그 저자였네요. 허망하게 가시다니 안타깝네요.

로쟈 2010-12-30 07:54   좋아요 0 | URL
숨은 독자들이 없지 않았네요...

포스트잇 2010-12-30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인성작가,광고 카피라이터라서 그런지 제목들이 다들 한 필~하네요.때이른 사고가 안타깝고요...,늦게나마 읽어보려합니다.모르고 지나쳤을 책과 작가를 소개받을 수 있어서 더 없이 다행입니다.올 한해도 이러한 다행을 베풀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탄절 아침에 뒤적거리고 있는 책은 이번주에 나온 제임스 스콧의 <국가처럼 보기>(에코리브르, 2010)와 니얼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민음사, 2010) 등이지만, 리뷰기사로는 바디우의 <사랑 예찬>(길, 2010)을 읽는다. 아무래도 성탄절에 더 어울리는 것은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니까. 게다가 아주 드물게 올라온 기사다.   

한국일보(10. 12. 25) 사랑, 우연한 만남을 운명으로 만드는 힘 

프랑스 68혁명 세대의 지성들이 대개 보편적 진리의 해체로 나아갔다면, 알랭 바디우는 빈사 직전에 몰린 그 진리의 복원을 꾀하고 있는 현대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이다. 최근 국내에서도 그의 책들이 속속 번역되고 있는데, <사랑 예찬>은 사랑을 진리 생산의 한 절차로 보는 그의 철학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바디우가 2008년 사랑을 주제로 연극기획자와 나눈 대담을 묶은 책이다. 

 

바디우 철학의 전모를 모르더라도 책은 사랑에 대한 여러 성찰로 가득차 있어, 지금 사랑을 시작했거나 사랑에 흠뻑 빠져있는 연인들이라면 곱씹어 읽어볼 만하다. 바디우가 우선 비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을 종의 번식을 위한 위장술, 욕망의 미사여구 정도로 보는 냉소적 시각이다. 하지만 바디우에게 사랑 없는 섹스는 자위행위와 다름없다. 그는 "사랑을 포기하고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앙"이라며 "사랑을 포기하면 삶이 완전히 무미건조해진다는 사실을 언급해야한다"고 말한다.

그에게 사랑은 일회적인 인스턴트식 욕망이 아니라 "미지의 무엇을 지속시키고 하자는 욕망"이다. 그러니까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한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매몰차게 극복해가는" '진정한 사랑'이 그의 관심 대상이다. 보잘것없는 우연한 만남을 운명처럼 느끼게 하는 사랑의 힘에 주목하면서 그가 끄집어내는 사랑의 가치는 지속성, 약속, 충실성 등이다. "사랑은 순간에 일어난 우연에서 시작되어, 당신이 영원을 제안하게끔 만드는 보기 드문 경험 가운데 하나다."(59쪽) 이런 사랑 예찬이 낭만적 환상이라고 느낀다면 책을 덮으면 그만. 하지만 사랑 속에서 영원성의 도약을 느껴본 이라면 난해한 그의 글을 읽는 수고가 그리 아깝지 않다.

책은 사랑에 대한 그의 철학적 사유로 본격적으로 이어지는데, 사랑은 둘에 관한 진리, 달리 말하면 '있는 그대로의 차이'라는 진리를 구축하는 경험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는 둘의 관점에서 행하는 세계에 대한 탐색이기도 하다.

 

'진리가 없다'는 탈근대 사상가들의 상대성과 허무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는 바디우는 그렇다고 폭력성과 배타성의 원천으로 지목된, 도그마로서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바디우가 복원하고자 하는 진리는 '복수의 진리들'이며 그것은 우연한 사건들 속에서 출현한다는 것이 바로 그의 '사건의 철학'이다. 바디우에게 그 진리가 출현하는 사건 중 하나가 남녀의 우연한 만남인 것이다.(송용창기자) 

10. 12. 25.  

P.S. 참고로, 바디우와의 재작년 인터뷰 기사를 옮겨놓는다. 인터뷰는 프랑스철학 전공인 김상환 교수가 맡았다.  

중앙일보(08. 01. 16) “진리는 혁명적 … 기존 지식체계 깨며 생겨”  

서양 철학사에서 현대 프랑스 철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독특하다.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속칭되는 각종 해체주의의 진원지다. 탈근대 해체주의 철학은 신·이성·본질(실체)을 중심으로 사유해온 서양 철학 2500년 역사를 뒤흔들었다. 그같은 해체는 급기야 철학의 존립 근거까지 위협했고, 철학의 역할과 목적을 다시 세우는 반성적 사고로 이어졌다. 푸코·데리다·들뢰즈 등 해체철학자들에 이어 새로운 거장으로 평가받는 알랭 바디우(Alain Badiou·71) 파리고등사범학교(ENS) 교수가 서 있는 자리다. 바디우는 탈근대 철학의 ‘차이의 사상’과 상대주의를 배격하고 다시 고전적인 형태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려 한다. 진리가 하나 뿐이라고 강변하는 서양 전통의 ‘동일성 철학’으로 바디우가 회귀하는 것은 아니다. 



e-메일 대담=김상환 서울대 교수

바디우 역시 해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진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대신 ‘복수(複數)의 진리’를 세우는 새로운 사유의 실험을 전개하고 있다. 바디우는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직접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서는, 행동하는 철학자로도 유명하다. 탈근대적 ‘차이의 철학’과는 다른 관점에서 각종 소수자들을 배려하는 철학을 그는 지향한다. 이는 프랑스 좌파 철학의 현주소이기도 하다. 프랑스 철학을 전공한 김상환 서울대 교수가 인터뷰 안하기로 ‘악명’높은 바디우 교수와 수차례에 걸쳐 이메일 대화를 나눴다.
 
김상환(이하 김)=한국 사회도 외국인이 급증하면서 다인종 사회로 변해가고 있다. 민족주의가 강하게 지배했던 한국 사회에 새로운 윤리관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탈근대 철학자들의 ‘차이의 철학’이나 ‘차이의 정치학’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끌어안는 새로운 윤리학을 탐색하고 있다. 그런데 바디우 교수는 탈근대 철학자들을 소피스트라고 비판하고 있다.

알랭 바디우(이하 바디우)=일상적인 삶이나 정치적인 삶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다른 사람들이 나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남을 봄에 있어서 ‘차이’보다는 ‘같음’을 이해하는 것이 진정 어렵고 중요한 일이다. 가장 핵심적인 정치적 문제는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류 전체의 근본적인 일체성, 즉 모든 인간의 평등이라는 문제가 핵심적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의 문화적 권리를 지지한다. 문화적 차이들이 다양한 물결을 이루지만 그 안에는 인류의 근본적인 일체성이 함축돼 있다는 나의 신념 때문이다.

김=진리에 대한 당신의 접근은 독특하다. 하나의 진리가 아닌‘복수의 진리’를 이야기한다. 



바디우=진리는 혁명적이고 기존의 지식체계를 교란하면서 일어난다. 나는 진리가 생겨나는 4가지 절차가 있다고 본다. 정치·과학·예술·사랑이 그것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지 절차가 언제나 공존한다는 점이다. 기존의 철학은 이 점을 무시하고 진리를 과학이나 정치 혹은 예술과 같은 한가지 절차로 환원시켜 봉합했다. 가령 마르크스주의는 진리를 정치에, 영미 분석철학은 과학에, 하이데거의 추종자들은 예술에 봉합했다.

김=당신의 철학을 흔히 ‘사건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디우=사건은 미증유의 진리가 생산되는 절차다. 철학의 과제는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는 데 있지 않다. 현재의 언어를 벗어나면서 출현한 진리에 개입해 사후적으로 명명하는 일이 철학의 과제다. 사건의 1차적 의미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사건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김=한국은 대통령 선거가 막 끝나서 보다 성숙하고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가길 희망하는 분위기가 짙다. 그런데 당신은 대의 민주주의나 정당 정치에 회의적인 발언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바디우=선거는 정치적인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어떤 합의에 기초한 제도이다. 사회가 대충 어떠한 형태를 띠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경쟁 그룹들 사이의 의견일치가 없다면, 상대편이 권좌에 오르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선거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면, 이는 딱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선거에 참여하는 어떠한 세력도 실질적으로는 과격하고 혁명적인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상환=선거가 어떤 합의 위에 서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바디우=자본주의라는 합의 위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소위 민주주의적인 나라치고 자본주의가 지배하지 않는 나라, 시장경제가 군림하지 않는 나라, 대기업 CEO가 선거에서 뽑힌 정치인보다 더 큰 권력을 쥐지 않은 나라, 그런 나라를 본 적이 있는가. 선거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있다. 인간 해방은 자본주의적인 경쟁체제에서는 결코 기대할 수 없다.

김=그럼 인간 해방을 추구하는 길은 어디에 있나.

바디우=첫 번째 관문은 국가의 선거 형식 바깥에서 움직일 수 있는 대중적 조직을 만드는 데 있다. 핵심 과제는 서로 다른 출신의 사람들을 묶는 일이다. 가령 지식인·청년·직장인 그리고 사회 밑바닥에 있는 노동자 사이에 어떤 행동 단위나 조직 단위를 구성해야 한다.

김= 사도 바울을 주제로 한 당신의 작품이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데, 종교 갈등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바디우=오늘날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이 종교나 문명 간 충돌이라 보지 않는다. 내가 볼 때 신은 죽었고, 종교는 무력해졌다. 우리는 더 이상 중세시대에 살고 있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갈등은 이슬람과 기독교 사이에서가 아니라, 미국과 서방을 중심으로 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와 가난하고 헐벗은 인민 대중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런 충돌은 때로 종교적 성향의 집단들에 의해 조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전 세계에 걸쳐 자본주의에 의해 창조된 여러 가지의 거대한 불평등이 없다면, 이 집단들은 아무런 힘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김=당신의 철학에 따른 정치적 주체는 투사의 형태를 취해야 할 것 같은데, 종교적 근본주의자나 테러리스트와 어떻게 다른가.

바디우=테러리스트는 전혀 인간 해방의 보편적 비전을 수호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는 종교적 경전에 의해 확립된 폐쇄적인 정체성의 옹호자다. 과거의 열성적인 파시스트 신봉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는 충실과 참여의 정치학은 이런 종류의 폐쇄성을 단호하게 거부한다. 



김=요즘 한국 학계는 인문학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바디우=내가 볼 때, 인문과학에서 ‘과학’이라 불릴 자격이 있는 것은 마르크스 전통에서 정의하는 역사,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분석, 소쉬르 이래의 언어학 등 세 가지 정도다. 그 밖의 것들은 보통 ‘고전 연구’라 불리는데, 예술에 관계하는 학술적인 형식에 해당한다. 고전 연구를 중심으로 한 인문학은 자본주의에 의해 위협 받고 있다.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예술에 대한 실천적 관계를 조직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내 철학에서 예술은 과학·정치·사랑과 더불어 보편적 진리의 본질적 유형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다. 인문학의 가치를 옹호해야 하는 근거도 거기에 있다. 대학이 자본주의의 요구만을 따라가선 안된다. 대학이 몰두하고 헌신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진리 자체이고 여기에는 어떠한 제약이나 구속이 있어서는 안된다.(정리=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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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0-12-2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예찬> 무척 즐겁습니다.^^; 바디우를 처음 접하기에는 <철학을 위한 선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만...기혼자는 좀 피하는 것이...--;;; '사랑은 만남이라는 우연성을 보편성으로 전환하는 진리'라고 하더군요. 한마디로 제 진리는 제 배우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소리인데, 다수의(복수의) 진리에 상당한 욕심이 있는 기혼자라면 흠....(혜량하소서. 썰렁한 소리 늘어놓고 갑니다...^^;)

로쟈 2010-12-25 20:37   좋아요 0 | URL
진리를 생산하는 방식들은 다 좀 '과격'하죠.^^

워킹슬로울리 2010-12-25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자들을 만날 때 마다, 결국 시시하게 끝나버릴 인연이겠지 라는 생각 부터
들기 시작하더군요.
곰곰히 이유를 생각해보니, 결국 인간이 사랑을 하게 되는 계기는, 외면 아니겠습니까?
얼굴, 집안, 학벌이라는 조건이 일치하면, 사람은 그 사람에게 마음을 주죠,
그때부터 사랑이 시작됩니다. 집안,학벌,돈을 보지 않는 순수한 사랑도 있지 않느냐?
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엔 얼굴은 다 보는것 같습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인가요?ㅎㅎ
얼굴이라는 외면적 가치가 끼어든 사랑은 순수할수 없다. 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남아서, 결국 순수한 사랑은 없다 라는 사랑의 냉소주의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무튼 로쟈님, 메리크리스마스

로쟈 2010-12-25 20:36   좋아요 0 | URL
외면의 가치를 무시하는 건 오만 아닐까요? 중요한 건 그것 이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일 텐데, 순서는 관계 없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외면이든 내면이든...

워킹슬로울리 2010-12-2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에요
워낙 외적 가치가 팽배하다 못해 폭발해버릴것 같은 사회에 살고있는 느낌입니다.

어제, 타마르 반 데 도프의 영화 블라인드(2007) 을 봤는데요,
저에게 사랑에 대한 엄청난 의미를 던지고 갔습니다.
연말 바쁘지 않으시다면 보기를 추천해드릴게요!

로쟈 2010-12-27 12:10   좋아요 0 | URL
네, 눈길을 끄는 영화네요. 알려주셔서 감사.^^
 

크리스마스 이브이자 아이의 방학 날이지만, 크리스마스와 방학 모두 내겐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지 않아서 그냥 '원고의 날'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편하게 원고만 쓰는 날은 아니고 아이가 감기에 걸린 탓에 '봉사의 날'도 겸하고 있다. 가끔씩 들여다보는 뉴스기사들 가운데, 계간 <진보평론>(겨울호)의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를 소개하는 기사가 있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이 될 듯싶어서다. 요지는 진정한 노동해방을 위해서라면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겨레(10. 12. 24)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 진짜 노동해방이다 

쌍용자동차의 대량해고, 현대·기아차 및 지엠(GM)대우차의 비정규직 투쟁, 현대차 노사의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논란 등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 나타났던 주요 노동현안들은, 현재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변화와 이에 따라 노동이 처하게 된 객관적 조건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다. 그 함의는 각각 구조적인 대량실업, 노동의 양극화, 실질 소득의 감소 등이다. 이렇게 변화한 조건들 속에서 노동운동은 여전히 ‘노동해방’을 말할 수 있을까? 



계간지 <진보평론> 겨울호는 ‘노동, 노동해방 다시 보기’라는 제목의 특집을 통해 이에 대한 문제제기를 던졌다. 편집위원인 이성백(사진) 서울시립대 교수는 ‘노동해방 이념의 재구성’이라는 글에서 “노동해방은 자본으로부터의 해방일 뿐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며 노동해방 이념을 재구성하기 위한 시도를 펼쳤다.

그의 문제제기는 ‘노동은 신성하다’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 노동 신성성은 서구 시민사회에서 “노동을 강제하기 위한 동원의 이데올로기”로 주로 쓰여 왔다. 카를 마르크스도 “노동은 본질적으로 자기실현 활동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질적인 규정에서 소외돼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해,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노동 신성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이 교수는 “자유의 왕국은 실제로는 필요와 외적 합목적성에 의해 결정되는 노동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시작한다.(…) 노동시간의 단축이 기본조건이다”라는 <자본론>의 구절 속에서 마르크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끌어낸다. 그는 마르크스의 노동 개념을 생존 유지를 위한 ‘노동’과 인간의 전인적 자기실현을 위한 ‘생활향유활동’으로 나눠서 풀이하고, “노동 신성성의 이데올로기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 신성성은 왜 부정되어야 하는가? 20세기 후반 자본주의의 축적체제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지적했듯, 급속한 정보화는 인간의 노동력을 점차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구조적 대량실업이 발생하는 시대를 만들어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의 노동 유연화는 노동형태를 바꿔 다양한 패턴의 착취 구조를 만든다. 그 속에서 노동자들의 실질 소득은 갈수록 감소한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현상이 대량실업, 비정규직, 사회적 빈곤 등이다. 



이 교수는 “사회적 총노동시간의 축소가 다수의 노동자들을 일자리로부터 몰아내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곧 일자리에 목맬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을 정규직 또는 취업의 문 앞에 줄세우는 신자유주의적 해결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여기서 작동하고 있는 것이 바로 “게으른 자는 먹지도 말라”는 노동 신성성의 이데올로기다. 이 교수는 “21세기 코뮌주의의 이상적 목표는 사적 소유가 철폐된 가운데 적은 시간 일하고 남는 시간은 생명향유활동에 쓰는 것”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운동의 핵심 과제라고 주장한다. 곧 노동해방의 이념이 자본으로부터의 해방뿐 아니라 노동으로부터의 해방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소득을 노동으로부터 분리해 모두에게 보장하자는 ‘기본소득론’과도 연결된다. 



박영균 편집위원 역시 ‘노동의 신화와 노동의 종말, 그리고 문화혁명’에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그는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물리적-비물리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장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생산력에 참여하고 있는데, 자본은 자신의 교환체계에 들어온 부문만 노동으로서 가치를 매기고 있는 모순을 짚었다. 때문에 그는 “노동운동이 임금협상이나 노동조건 개선 투쟁에 멈춰선 안 된다”며 “노동으로부터 해방을 통해 자본과 임노동의 계열화 속에서 배제되는 다수의 잉여인구들을 반자본의 저항적 주체로 형성하는 정치적 전략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자본주의적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한 ‘문화혁명’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는 일자리에서 밀려난 빈곤층, 각종 비정규부문 노동자를 노동운동의 주체로 세우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강연자 편집실장은 ‘주40시간 법정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노동운동의 과제’를 통해 노동시간 단축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짚었다. 그는 주40시간제 도입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유연화의 전통적 형태인 초과근로가 높은 범위로 허용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더 받기 위해 더 일하는’ 방식의 임금구조가 만들어져, 결국 실노동시간도 줄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유연화에 따른 노동자 내부의 격차만 확대됐다는 것이다. 그는 “초과근로에 의거한 임금에서 벗어나, 법정노동시간만큼 일해 생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노총 표준생계비를 상회하는 노동자들의 초과근로 수당을 포기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규직 중심의 전통적인 노동운동 현장에서도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고민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최원형 기자) 

10.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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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2-24 15:10   좋아요 0 | URL
저런 방학 첫날 감기에 걸렸군요ㅠㅠ 크리스마스를 즐겁게 보낼 만반의 계획을 다 짜놨을 텐데... 그래도 아빠가 보살펴주니 아주 특별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겠네요.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서 신나는 방학을 보낼 수 있기를...
그나저나 갑자기 산타클로스가 돼서 원고 쓰시는 로쟈님이 떠오릅니다 ㅋㅋ
추위에 감기 조심하시구요^^

로쟈 2010-12-24 18:35   좋아요 0 | URL
'자상한 아빠'로 오해받겠습니다. 주로 재우고 있으니 보살핀 건 없구요.^^; 주사까지 맞고 와서 다행히 열은 떨어졌습니다. 원고는 내나 쓸 '준비'만 하고 있고요.^^;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하시길! 아주 추운 크리스마스가 될 거라지만요...

자꾸때리다 2010-12-24 22:36   좋아요 0 | URL
예수님은 솔로였는데 왜 커플들이 크리스마스에 염장을 지르는 건가요? 아흑.

로쟈 2010-12-25 11:08   좋아요 0 | URL
예수님은 궁시렁거리지 않았죠...

2010-12-24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5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맘때면 여러 곳에서 '올해의 책'을 꼽는 행사가 벌어지는데, 내게도 몇 권을 골라달라는 청탁이 들어와 잠시 생각해봤다. 개인적으로야 <책을 읽을 자유>(현암사, 2010)가 '올해의 책'이지만(더 정확하게는 '올해 낸 책'이다) 그건 개인 사정이고, 좋은 책들은 너무 많은지라 내가 서평이나 칼럼에서 다룬 책으로만 범위를 한정했다. 그러니까 이 리스트도 순전히 '개인적인' 것이다. 기준은 나를 놀라게 하거나, 즐겁게 하거나, 뭔가 깨닫게 해준 책. 그런 기준으로 다섯 권만 골라보았다. 이런 리스트를 한 10년쯤 꼽으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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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세계금융위기와 자본주의
슬라보예 지젝 지음, 김성호 옮김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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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현재 진행 중인 세계 금융위기를 통해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유토피아적 핵심을 분석하고, 한편으론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새로운 형태의 공산주의적 실천이 어떻게 가능한지 탐색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20세기 좌파정치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베케트의 말을 인용하며 지젝이 강조하는 교훈은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이다.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은 이렇게 물었다. "사회주의는 실패했고 자본주의는 파산 상태다. 다음에 올 것은 무엇인가?" 지젝의 대답은 공산주의다.
16세기 문화혁명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남윤호 옮김 / 동아시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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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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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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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2-23 01:39   좋아요 0 | URL

쌤의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서문을 읽고 신형철씨의 발문으로 바로 넘어갔는데

그 분이 저같은 사람에게 즐거운 시간 되세요 해서 깜놀했어요~ ㅎㅎㅎ

기대됩니다. 쌤 책 덕분에 연말을 풍성한 시간을 보낼수 있겠네요 고맙습니다 ^^ ㅋ

로쟈 2010-12-23 06:49   좋아요 0 | URL
재밌게 읽어주시면 제가 감사한 걸요.^^

구보 2010-12-23 11:28   좋아요 0 | URL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란 책이 예상외로 유쾌했습니다.계몽,진보에 대해 오히려 졸가리를 잡아 정리해준 책이라고 할까요.

로쟈 2010-12-24 09:0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자꾸때리다 2010-12-23 15:37   좋아요 0 | URL
그레이의 입장은 정치란 그저 임시방편의 해결책이지 절대로 거대한 계획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입장은 지젝하고 정면 배치되는 것 아닌가요? 저도 저 5권 중에 읽은 책은 지젝과 그레이 뿐....

로쟈 2010-12-24 09:04   좋아요 0 | URL
입장이 '좋은 책'의 기준은 아닙니다. 자극을 주고 생각하게끔 하는 책이 제 기준입니다...
 

외부 강의가 끝나고 모처럼 일찍 귀가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점검중이라고 하여(엘리베이터도 놀란 것인가?) 15층까지 걸어올라왔다(젠장, 14층까지 걸어올라오니 다시 작동했다!). 책소포와 함께 들고 온 이번주 교수신문에서 기사들을 훑어보다가 '딸깍발이' 칼럼이 눈에 띄어 옮겨놓는다. 진태원 편집기획위원이 학문후속세대의 사기를 꺾는 한국 학계의 문제적 풍토에 대해서 짚어주고 있다.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순진한 인문학도는 참고해볼 만하다. 개인적으론 나도 학생들에게 대학원 진학을 권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싶다...   

교수신문(10. 12, 20)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K군에게  

안녕하세요, K군. 날이 무척 추워졌습니다.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다죠? 어수선한 국내외 정국에 매서운 바람까지 몰아치니 마음이 한층 더 스산해지는 느낌입니다.

얼마 전 메일을 통해 앞으로 대학원에 진학해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조언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죠? 제 강의 시간에 K군이 했던 발표나 기말 보고서의 우수함을 생각하면 두말없이 적극 진학을 권장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여러 학생들을 가르치고 접해왔지만, K군처럼 우수한 사고력과 글쓰기 능력을 겸비한 학생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습니다. 깊고 넓은 학문의 세계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뜻을 펼치기 바랍니다.

이렇게 권하고 싶은 것이 제 본래의 마음이겠지만, 실제로 제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웬만하면 다른 길을 택해보라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권하는 것은 과연 한국에서 학문을 하는 것, 특히 인문학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심각하게 회의를 품게 됐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K군처럼 홀어머니에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국내에서 석ㆍ박사과정을 마쳐야 한다면, 또 서울대 학부 출신도 아니라면, 평생 밥벌이도 제대로 하기 힘든 학문을 하기 위해 과연 십 수 년의 고된 수련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을까 걱정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지금 K군의 머릿속은 다음과 같은 생각으로 가득차 있을 것 같습니다. 외국에서 공부하든 국내에서 공부하든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해서 무언가 새로운 관점을 세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인문학적으로 해명하는 데 나름대로 기여할 수 있으면 되지. 그리고 학자의 삶이란 게 풍족한 삶일 수는 없으니까 그냥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 생계만 꾸릴 수 있다면, 다소 가난하더라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사는 게 더 보람 있고 행복한 삶이 아닐까. 

만약 이런 생각을 품고 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고 또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선 국내 학계에서는 외국에서 공부했느냐 국내에서 공부했느냐가 큰 문제가 된다는 점입니다.

서울대 학부 출신도 아니면서 국내에서 공부하겠다는 것은 이미 졸업 후에 정규직 취직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학계의 비정규직의 삶이란 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여러 명의 비정규직 교수의 가슴 아픈 자살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줍니다. 저는 혹시 제가 학문의 길을 권한 누군가가 훗날 이런 참담한 삶의 끝자락에 서게 되지 않을까 정말 두렵습니다.

어찌어찌해서 다행히 취직이 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인문학하기란 그리 보람 있는 일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 학계는 한국 사회의 다른 어떤 분야 못지않게 신자유주의적 체제로 철저히 재편되고 있는 중입니다. 학계의 신자유주의는 크게 두 가지 구호로 집약됩니다. 단기 수익성을 높여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라.

다른 학계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긴 하지만 인문학계도 나름대로 이 두 개의 지상명령을 충족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정규직 교원이거나 아직 정년보장을 받지 못한 교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1년에 많게는 10여 편에서부터 적게는 3~4편에 이르는 등재지 논문 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수익성의 학문적 기준이 1년에 몇 백 퍼센트의 업적을 남겼느냐로 표시되기 때문에 질적 우수성, 독창성이나 깊이 같은 기준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인문학하기란 논문 작성 기계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대신 질적인 평가는 외국 학계에 위임됩니다. 곧 어떤 학자의 질적 우수성은 일차로 그가 외국(=미국)의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로 측정되고, 그 다음에는 그가 외국의 저명학술지에 논문을 실었느냐로 평가됩니다. 따라서 우수 학자의 일차 요건은 유학 경험, 영어로 글 쓰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국내 대학 출신이든 외국 대학 출신이든, 또 동양어권이나 유럽어권 유학생이든 영미권 유학생이든 가리지 않고 관철되는 철의 법칙입니다.

K군, 그러니 영미권의 유명 대학원에 진학할 만한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간곡히 권하거니와 학문의 세계에 발을 디디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될 수 있으면 인문학, 특히 철학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 아까운 재능과 인생을 낭비하지 말기 바랍니다.(진태원 편집기획위원/ 고려대 서양철학) 

10. 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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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괴즐 2010-12-22 16:08   좋아요 0 | URL
먹먹해지는 글이네요. 시스템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일까요? 어쩌면 인문학도의 대가 끊겨버리면 그때쯤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공부를 계속해야 할지, 이쯤하고 다시 취업준비를 해야할지 고민이 됩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던 선배들이 결국 좌절하고 취업전선 앞에서 전혀 새로운 무기들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을 보면서, 저도 어찌해야 할지 갈등이 됩니다.

로쟈 2010-12-23 08:35   좋아요 0 | URL
직업으로서의 인문학 공부는 다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마립간 2010-12-22 16:38   좋아요 0 | URL
장한나는 철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로쟈 2010-12-23 08:34   좋아요 0 | URL
한국이 아니니까요.

mirror 2010-12-22 18:22   좋아요 0 | URL
1. 유학출신 우대의 문제는 한국학계가 근절해야할 문제점입니다. 자신들이 가르친 제자 대신에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신출나기 외국박사를 채용하는 것은 자기배반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꼴이죠. 세계 어떤 나라가 자국의 학자를 외국에 의탁해서 양성하나요? 영미학계의 칸트 헤겔 연구자를 독일에 의탁해서 양성하지 않습니다. 자국 고유의 전통을 가진, 칸트 헤겔 연구가 있죠.
2. 영어강의자 우대 현상은 학문을 망하게 하려고 작정한 조치이지요. 동양철학조차 영어잘하는 사람 뽑으니까요.
그러나 진태원은 외국어 논문 쓰기에 대해서 과장을 하고 있군요. 철학과에서 외국어 저널에 논문 쓰는 경우 극히 드뭅니다. 왜냐하면, 영어로 논문 쓰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영어 저널에 실릴만한 수준의 논문을 쓸 능력이 없기 때문이죠. 한국어로 뛰어난 논문만 쓸 수 있따면, 영어로는 돈주고 번역시키면 됩니다. 번역료 그다지 비싸지도 않거든요. 자신의 무능력을 외국어로 가리려 해서는 안되죠.
3. 영어권 철학과 대학원에 자기돈 내고 가는 경우 별로 없습니다. 1년에 학비만 4만불 생활비까지 거의 6천만원 이상 부담하고, 비정규직 시간강사가 미래인 철학박사 할 사람이 한국에 몇 사람이나 되겠어요? 간다면 장학금 받고 가죠. 미국 대학원에서는 장학금 받을 기회가 비교적 많습니다. 장학금을 받으려면, 영어를 잘하고, 또 학부 학점이 아주 좋아야 합니다. 고려대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한 학생이 미국대학에서 장학금 받기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4. 시간강사가 어려운 것은 한국만이 아닙니다. 독일도 한국만큼 잔인한 시간강사 제도 갖고 있죠. 다만 그들 복지제도가 한국보다 좋아서 고통이 덜합니다. 이탈리아는 교수가 많은 대신 시간강사 제도가 아예 없기 때문에, 수많은 박사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단 자체가 없습니다. 총리와의 토론에서 어떤 여자 인문계 박사가 이런 고충을 얘기하자, 총리께서 자신과 사귀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답변을 하셔서, 사람들을 경악시킨 바 있죠.
5. 인문계열 박사 학위 받아서, 잘 먹고 잘 살 생각은 버리고, 글을 읽는 재미에 만족해야죠. 막스 베버가 직어으로서의 학문에서, 이 한줄이 너의 해석을 천년동안 기다려왔다, 라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학문 하지 말라고 했지요.

2010-12-22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0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2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3 0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꾸때리다 2010-12-22 18:47   좋아요 0 | URL
저도 졸업하면 뭐 해야 하나 고민이 되는데요. 임상의사가 되고 싶은 맘은 조금도 없는데 인문학관련 대학원을 갈까 했는데 그게 한국 사회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른바 순수 인문학도 그러하고 의료윤리니 하는 학문들도 그닥 의미가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물론 밥 벌어 먹기도 힘들 것 같고. 그럼 로스쿨을 갈까 생각도 했는데 로스쿨 나오면 결국 임상의사들처럼 다른 돈버는 기계들 사이에서 똑같이 기계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근데 진태원 교수님 말처럼 '서울대 편중'이라는 건 서울대를 제외한 나머지 예컨데 의대나 카이스트나 경찰대(적어도 수능성적으로는 서울대 부럽지 않은) 나온 사람도 인문학하면 소외되기 십상이라는 건가요?

자꾸때리다 2010-12-22 18:46   좋아요 0 | URL
근데 대학이 신자유주의 체제로 재편된다고 해도 그리 오래갈 것 같지는 않아보이네요. 저도 역사에 대해서 낙관주의자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 신자유주의 체제가 영원무궁 존속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체제는 아니라고 2008년에 입증되었는데 말이죠. 적어도 지금 유학가서 돌어올 때 즈음이면 어떠한 형태로든지 (좋아지든 나빠지든) 변화가 있을 것 같아요.

mirror 2010-12-22 19:18   좋아요 0 | URL
1. 한국대학이 이토록 엉망인 이유는 신자유주의와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다른 나라도 다 신자유주의체제인데, 다른 나라 대학들이 한국대학같지는 않거든요.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의 대학은 인문학을 가장 강조합니다. 한국사회의 천박함과 내적인 이유로 발행하는 문제점을 신자유주의로 환원하는 버릇은 한국 지식인들의 지적 나태함과 정치적 당파성만을 나타낼 뿐입니다.
2. 인생의 진리는 없죠. 책 몇권 더 읽은 사람이 더 현명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개인적 경험을 말씀드리자면, 자신의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한국사회에서의 의미'를 기준으로 두는 것은 스스로 정직하지 않은 태도일 수 있습니다. 결국은 하고 싶은 공부도 하고 돈도 잘 버는 것을 원하는데, 그런 것을 모두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나 많지 않습니다. 그런 욕심으로는 나중에 후회할 가능서잉 더 많습니다. 저는 평생 시간강사 생활을 각오하지 않는 후배에게 학문의 길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3. 서울대 학부를 진태원이 강조한 이유는 한국 대학의 다수를 서울대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연고대 출신들이 약간 해먹고요. 따라서 다른 대학의 학부출신들은 능력과 비례하는 취직기회를 적게 가질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카이스트와 경찰대학은 인문사회계열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죠. 또 한국의 인문사회계는 특히 계량화되지 않은 학문들은 아직 능력을 확고하게 평가할 자세, 능력, 제도를 갖추고 있지 못합니다.

자꾸때리다 2010-12-22 19:18   좋아요 0 | URL
저는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요. 미국이 아직 인문학이 가사 상태라고 부를 수 있는 상태까지는 아닌 이유가 서구권에 깊게 뿌리 박혀 있는 인문학 전통을 몇 십년의 신자유주의 체제가 완전히 뽑아버리지는 못한 것 같고 한국은 그 전통이 아직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시기에 신자유주의 광풍에 휩쓸린 것으로 보입니다. 예전에도 한국 대학에 사회과학 바람이 분 적이 있잖아요.

mirror 2010-12-22 19:45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은 역사상 한번도 인문사회과학을 제대로 한 적이 없습니다. 80년대 사회과학요? 그건 학문적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잠시의 유행이었죠. 막스주의에 대한 대단한 책이 한국말로 쓰여졌나요? 한국 인문학계는 나쁜 상태에서 더 나빠졌을 뿐입니다.
현재로서는 미국의 인문학이 그 놈의 신자유주의에게 학살당하고 있다는 증거가 별로 없는 것 같은데요? 여전히 쓸데도 없는 기호논리학을 교양강좌로 수십개씩 개설하는 것이 미국 대학들입니다.
아무튼, 평생 시간강사할 각오가 없으시다면, 이쪽 길로 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게 안전합니다.

sommer 2010-12-23 04:25   좋아요 0 | URL
'안다고 가정된 주체'에게 보낸 편지였을 텐데, 그 편지는 아직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은 거 같네요. 그 편지에 대한 응답이 '계몽적 제스처'를 여전히 취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지요.
더 중요한 문제는 그 주체의 자리를 더 이상 아무도 떠맡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유학이 더 이상 계몽의 차원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보장(권)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듯 해요.

로쟈 2010-12-23 06:48   좋아요 0 | URL
사르트르식으로 말하면, 이미 발신자 자신이 예상했던 답변일 듯해요...

토탈리콜 2010-12-23 10:28   좋아요 0 | URL
세상은 누구도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것 아닐까요? 우리가 mb를 선택한 순간.. 아니 그시대정신이 이미 그런걸 각오 또는 용인한거슨 아닌지........ 씁 쓸합니다

로쟈 2010-12-23 10:32   좋아요 0 | URL
일반화하기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간극이 커보입니다. 대학 비정규직 강사 문제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사태에서도 확인되듯이...

2010-12-24 0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0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park6 2010-12-25 14:21   좋아요 0 | URL
제가 철학과로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 국어 선생님이 해주신 조언과 비슷하네요.

그분은 제게 아마추어리즘을 설명해주시며 타과로 진학하라고 말하셨어요.

어쨌든 참 씁슬한 글이네요.


로쟈 2010-12-25 20:39   좋아요 0 | URL
굳이 전공이 아니더라도 공부할 수 있는 길은 있으니까요. '직업' 철학자가 되는 건 또 다른 길이고요...

2010-12-25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