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프랑스 비평가 모리스 블랑쇼 전집의 하나로 <문학의 공간>(그린비, 2010)이 다시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이어서 철학자 장-뤽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인간사랑, 2010)가 출간됐다. 낭시의 책은 12월 30일이 발행일자다. 2010년의 '마지막 책'이 아닐까. 책을 손에 든 건 엊그제이고 예전에 구해놓은 영역본도 어제 책장에서 찾았다. 다른 독서계획이 잔뜩 밀려 있어서 언제 차근차근 읽어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짝'은 맞춘 듯해서 흡족하다.  

  

'짝'이라고 한 건 블랑쇼와 낭시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마주한 공동체>(문학과지성사, 2005)를 보충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두 권 모두 역자는 박준상 교수다.  

   

블랑쇼 연구서로 <바깥에서>(인간사랑, 2006)를 이미 펴냈고, 예술론이자 타자론으로 <빈 중심>(그린비, 2008), 그리고 블랑쇼 전집 번역으로 <기다림 망각>(그린비, 2009)을 펴냈다. 앞으론 블랑쇼란 이름과 함께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될 '전문가'이다.   

국내에는 <문학의 공간>(책세상, 1990), <미래의 책>(세계사, 1993) 등으로 처음 소개가 됐지만(그의 소설 일부가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돼 나온 건 있다), 블랑쇼란 이름을 접한 건 김현의 <프랑스 비평사>(현대편)에서였다. 그가 중요하게 다룬 20세기 후반의 비평가 네 사람이 사르트르와 바르트, 바슐라르, 그리고 블랑쇼였기 때문이다. 내게 각인된 블랑쇼의 키워드는 '죽음' '부재' '침묵' 등이다(푸코는 '바깥'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또 조교시절 일로, 대학원에 진학하려다 그만둔 한 후배가 가장 좋아하는 비평가가 누구냐는 나의 질문에 '블랑쇼'라고 답해서 놀란 적이 있다(그는 다소 침울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그 후배 또한 블랑쇼란 이름이 연상시켜주는 이가 됐다. 그리고 세번째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이다. 한 주간지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제목을 들뢰즈 표현에서 따왔다고 하셨는데, 비평을 보면 이 외에도 철학자, 평론가들의 차용이 많이 나오거든요. 사유의 돌파구가 된 사람은 누구였나요?

"마음 속에 항상 들어있는 사람은 두 명이에요. 벤야민과 모리스 블랑쇼. 두 사람이 쓴 책은 20대 때 읽기 시작해서 많은 영향을 받았죠. 지금도 첫 구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을 때, 왼손에는 벤야민, 오른 손에는 블랑쇼를 들어요. 제목이 이렇게 되어 있긴 합니다만, 동세대 중에는 들뢰즈 보다 바르트에 더 손이 가고요."   

하지만 아직 나는 '나의 블랑쇼'를 갖고 있지 않다. <문학의 공간>을 예전에 숙독해보지 않아서이다. 나는 그가 좀 비의적이고, 너무 은둔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정치평론 1953-1993>(그린비, 2009)은 그러한 인상을 재고하도록 요구한다. 해서 <정치평론>을 경유하여 <문학의 공간>으로 재진입하는 게 올 상반기 독서계획 가운데 하나다. 문학을 '다시' 읽는 계기나 영감 같은 걸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모리스 블랑쇼에 다가가기...  

11. 01.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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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7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7 1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1-01-07 13:58   좋아요 0 | URL
사진 속 인물이 블랑쇼인가요? 워낙 은둔의 삶을 산데다 책에 자신의 사진을 싣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이제까지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는데 미남형이네요. 생전에 유일하게 너나들이한 친구가 레비나스였다죠? 이래저래 독특한 사람이네요^^

로쟈 2011-01-08 09:16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그래도 국내에선 알게 모르게 매니아 독자들이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공통점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1>(인물과사상사, 2010)을 펼쳤더니 '왜 '통섭 미국사'가 필요한가?'란 문제제기가 머리말이다. 마침 이 머리말을 중심으로 '강준만식 미국사'의 의의를 짚어준 기사가 있기에 옮겨놓는다. 여하튼 다작의 생산성과 수집광적 면모, 사회적 문제의식과 글쓰기의 열정은 다시금 놀랍고도 놀랍다.  

한겨레(11. 01. 01) 종횡무진 경계초월…‘강준만식 미국사’ 

3월 중순에 나온 제1권 ‘신대륙 이주와 독립전쟁’으로 시작한 강준만 교수의 <미국사 산책>이 약 10개월 만인 12월 말에 제17권 ‘오바마의 미국’을 끝으로 마침내 완간됐다. 18권짜리 <한국 현대사 산책>과 10권짜리 <한국 근대사 산책>에 이은 이 17권짜리 미국사 ‘산책’ 또한 강 교수다운, 그리고 어쩌면 강 교수만이 해낼 수 있는 대중적 역사 쓰기의 새 경지를 보여준다. 그의 역사책은 우선 읽기 편하고 재미있다. 강준만의 ‘산책’에서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대개의 나라 안팎 역사 서술들이 일반인들에겐 지겹고 따분한 ‘그들(전문연구자들)만의 놀이’처럼 돼 있는 현실에선 더욱 그러하다.

강 교수는 이번 산책을 시작할 때 머리말 ‘왜 통섭 미국사가 필요한가?’에서 몇가지 중요하고도 인상적인 서술원칙을 밝혔다. 우선 세분화된 자신들의 영역만을 파고드는 전문연구자들의 ‘좁고 깊게 파기’를 지양하겠다고 했다. 그런 ‘학술적 글쓰기’가 연구실적 올리기에 좋고 또 학계 인정도 받는 길이지만 그렇게 해서는 통합적인 역사인식이라는 역사연구와 서술의 애초 목적 자체를 훼손하게 된다. 그것은 또한 역사란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낳는 데 기여해왔다. 강 교수는 친미냐 반미냐, (한국사의 경우) 자학이냐 자위냐식 이분법적 역사이해의 편식이나 폐단도 그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본다.

“왜 모든 분야와 주제들을 ‘비빔밥’처럼 요리해 통합적으로 자세히 보여주는 시도가 이렇듯 외면받아야 한단 말인가? 정치, 경제, 군사, 외교, 사회, 문화, 언론, 영화, 방송, 학술, 과학, 기술, 문학, 언어 등 모든 분야가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한 분야에만 집착할 경우 포괄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놓치게 되고 그로 인해 긍정과 부정의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게 되는 건 아닌가?”  

이게 강 교수의 문제의식이고 ‘산책’ 기술 기본원칙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강 교수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역사기술 원칙은 파편적으로 파고만 들 게 아니라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상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미국이란 나라에 대한 지금 한국 사회의 이해가 어딘가 크게 잘못돼 있고, 그걸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에 닿아 있다.

문제는 그게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하냐는 것일 터. 그 능력이 바로 강준만 역사쓰기의 비결이요 요체다. 미국 조지아대, 위스콘신대에서 미국언론사·대중문화사·커뮤니케이션사를 공부한 강 교수는 굉장한 수집가다. 국내외 전문서적, 신문, 방송 보도, 잡지, 논문 등 그가 인용하는 방대한 자료들을 보면 사료를 찾는 그의 안테나와 채집망이 얼마나 강력하고 광범한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기성 연구나 보도자료들을 적절히 채집하고 활용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닥치는 대로 긁어모아 적당히 나열하는 차원을 넘어서려면 수집력 못지않게 그것을 선별해내고 재조립·재해석하는 선구안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건 또 엄청난 독서력과 판단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시공을 넘나드는 서술방식이다. 예컨대 제1권의 경우, 아메리카 대륙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 기원전 역사부터 시작에서 곧바로 15세기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갔다가 다시 ‘콜럼버스는 과연 영웅인가, 약탈자인가’에 관한 21세기의 논쟁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인쇄술의 발명과 종교개혁 등 콜럼버스와 그의 후예들을 아메리카로 밀어낸 유럽 사정을 파고들었다가 포카혼타스 신화 등 아메리카 원주민 사정, 그리고 노예무역과 인디언 사냥, 독립전쟁, 유럽의 죄수유배지가 된 호주 원주민의 비극 등으로 확장해간다. 오바마 정권의 등장과 향후 전망을 축으로 최근의 위키리크스 파장과 ‘구글-위키피디아-아이폰’ 정치학까지 다루는 마지막 제17권은 ‘왜 미국은 제2의 한국인가?’라는 짧지 않은 맺음말을 따로 붙였다.

애초 강 교수는 이 책을 ‘미국사를 중심으로 한 세계사’로 꾸밀 작정이었고, 한국인을 위한 미국사 산책이니만큼 특히 한-미 관계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한국 현대사의 주요장면들과 겹치는 이 책의 미국사 부분은 좀더 온전한 한국현대사 이해에도 유용하다. 강 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닮은 점으로 압축성장, 평등주의, 물질주의, 각개약진, 승자독식 등을 꼽고, 한국의 반미주의와 사대주의의 정체에 대해서도 파고든다. 그는 여기서도 친미냐 반미냐, 사대주의냐 아니냐 식의 이분법적 시각을 거부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섣불리 이론화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진 않는다. 그가 말하는 ‘통섭’은 친미-반미뿐만 아니라 좌-우, 진보-보수 등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겠다는 게 대원칙이다. 편식하지 않도록 다양한 재료로 적절히 요리해서 내놓을 테니 최종판단은 독자가 하라는 것이다. 물론 사관이 없을 수 없다. 그 방대한 자료들을 가려내고 재배열할 때의 선구안 그 자체에 이미 강준만의 역사관·세계관이 작용하고 있다. 그게 이 책에 의미를 채워주는 또 하나의 기둥이다.(한승동 선임기자) 

11. 01. 07.  

P.S. 하워드 진의 '미국사' 외에 어떤 책들이 더 나와 있나 찾아봤더니 앨런 브링쿨리의 3권짜리 <있는 그대로의 미국사>(휴머니스트)가 가장 두툼한 분량으로 보인다. 강준만식 '비빔밥' 미국사가 갖는 희소성을 한번 더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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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결심, 까지는 아니고 계획 중의 하나는 젊은 시인과 작가들을 '전작'으로 읽는 것이다. '젊은'이라고 한정한 것은 그래야 '전작'으로도 분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더불어, 동시대, 동세대 작가들의 언어와 사유를 좀더 밀착해서 음미해보고 싶어서다(그와 함께 '대작'들도 읽어보기로 했는데 첫 타자가 강준만의 17권짜리 <미국사 산책>이다). 매달 가능한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여하튼 시인 조연호와 소설가 김사과를 첫 완독 대상으로 정했다. 조연호 시인은 지난해 시사IN이 꼽은 '올해의 책' 시집분야에 <천문>(창비, 2010)이 선정돼 관심을 갖게 됐다. 김경주에 이은 '서프라이즈'이다. 이번에 복간된 문예중앙시선에서도 그의 <농경시>(문예중앙, 2010)가 첫 '빳다'다(실제로 그의 시들을 읽다 보면 한 대 얻어맞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시인 평론가 권혁웅은 이렇게  평했다.   

그의 시에는 형이상(形而上)과 형이하(形而下)가, 문법과 비문법이, 고백과 발견과 예언과 권태와 찰나가, 그리고 우리가 알아왔던 모든 희로애락이 들어 있다. 이에 비견할 수 있는 문학적 형상물은 박상륭의 전 저작과 보르헤스의 알렙, 둘뿐이다. 우리 시의 진화를 이야기할 때 조연호를 빼놓을 수는 없게 되었다. 그것은 불가역적이다. 그의 출현 이후로 한국의 현대시는 조연호 이전과 조연호 이후로 나뉘었다. 다시는 그것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의 시를 읽지 않는 것도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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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wbudget 2011-01-06 11:51   좋아요 0 | URL
아! 저 역시 로쟈님과 정확히 같은 이유로 1월 1일부터 한국 현대시를 읽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 김수영과 백석 그리고 황지우를 읽은 이후로 시집을 읽지 않았는데 황병승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요:) 아 반갑네요~ㅋ

로쟈 2011-01-06 18:40   좋아요 0 | URL
미래파부터 시작이시군요.^^

돈케빈 2011-01-06 12:05   좋아요 0 | URL
'형이하'는 써도 괜찮은 국어인가요?
랜덤하우스에서 나온 시집으로는 <해바라기 연대기>를 추천합니다.

로쟈 2011-01-06 18:42   좋아요 0 | URL
형이하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해바라기 연대기>는 챙겨놓겠습니다.^^

2011-01-06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6 2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11-01-06 22:45   좋아요 0 | URL
조연호 시인이 로쟈님과 동세대긴 한데^^ 그러면 젊은 시인인가요=3=3=3

로쟈 2011-01-07 08:00   좋아요 0 | URL
요즘은 40대까지 '젊은' 축에 속합니다.^^;
 

이번주 한겨레21의 '2001~2010년의 출판 키워드 10+'에서 '블로그 글쓰기' 꼭지를 옮겨놓는다. 10가지 키워드의 목록은 ① 상업주의 ②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③ 소설 인터넷 연재 ④ 도서정가제 ⑤ 무비·스타 킬즈 북 ⑥ 청소년 도서 시장의 발견 ⑦ 1천만 부 어린이 책 ⑧ 위험한 인문학 시장 ⑨ 블로그적 글쓰기 ⑩ 사라지는 20대 등이며 전체 기사는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8766.html 참조. '블로그 글쓰기'만을 특별히 옮겨놓는 것은 물론 '로쟈'가 언급된 때문인데, 처음엔 나에게 집필 의뢰가 들어왔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이유로 사양했다. 그리고 애초에 '새로운 글쓰기 장르'로서 블로그 글쓰기에 주목한 이는 문화평론가 이택광 교수이기에 그에게 바톤이 돌아간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한겨레21(11. 01. 07) 먼저 블로그에서 ‘통’하다 

지난 10년간 한국 출판계에서 급부상한 현상 중 주목할 만한 것을 꼽으라면 ‘블로그 글쓰기’일 것이다. 처음에 블로그는 개인의 일상사를 풀어놓는 일기장과 용도가 비슷했지만, 제도언론에 대한 불신과 인터넷 공론문화의 발달이 맞물리면서 ‘1인 매체’로 신속하게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제시한 ‘파워블로거’ 중 단연 돋보이는 이가 바로 ‘로쟈’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이현우라고 할 수 있다. 이현우가 주도한 것은 ‘블로그형 글쓰기’라는 새로운 장르의 탄생이었다. 이런 글쓰기 유형은 1990년대를 대표한 ‘게시판 글쓰기’와 확연하게 다른 것이었다. ‘밀어올리기’나 ‘도배’ 같은 용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게시판 글쓰기가 경쟁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에게 밝히고 알리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면, 블로그 글쓰기는 일정한 주제의식을 갖고 특정한 독자 집단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다소 개인 주도의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주인장’이 관할하는 공간으로서 블로그는 게시판에 비해 훨씬 사적인 곳으로 받아들여지고, 방문자들도 이 사실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넘어간다는 점에서 게시판과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가독성 측면에서 블로그는 스타일의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화체나 구술체가 각광받은 것도 손꼽을 만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글쓰기의 변화는 만화책에서 웹툰으로 변화한 만화 장르의 변화에 비길 만한 일이다. 웹툰의 등장으로 만화는 책이라는 매체로 묶이던 얌전한 방식을 벗어나서 ‘스크롤’이라는 새로운 동적인 의미를 획득할 수 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블로그나 게시판을 막론하고 인터넷 글쓰기는 내려 읽어가는 방식으로 글읽기가 진행되는 효과를 감안할 수밖에 없다. 블로그는 이런 효과에 더 충실하다는 이점이 있다.  


매체 형식이 곧 글의 내용을 바꾸는 ‘당구공 효과’를 우리는 지난 10년간 출판계에서 목격해왔다. 이 과정은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이 직접적으로 만나고 댓글로 의견을 교환한 뒤에 책으로 묶인다는 점에서 기존 출판과 다른 제작 공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로쟈를 비롯해서 미네르바, 파란여우, 박가분이 모두 블로그나 게시판에 먼저 발표한 글들을 책으로 묶어낸 대표적인 블로거들이다. 이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작가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과정을 겪는다. 과거처럼 직접 출판사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현격하게 줄어든 것이다.

출판사 기획자들도 유명 블로그나 인터넷 게시판을 관찰하다가 좋은 원고나 생각이다 싶으면 출판을 제의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일정하게 독자의 검증을 거쳤다는 의식도 크게 작용한다. 그러나 이렇게 블로그에선 괜찮았는데 막상 책으로 묶으니 결과물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블로그 글쓰기와 전통적인 글쓰기가 조화롭게 만나도록 하는 일이 또 다른 출판의 고민거리가 된 것이다.(이택광 문화평론가) 

11. 0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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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슬로울리 2011-01-05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갑자기 궁금해서 그런건데
로쟈님의 정치적 이상은 '사회주의' 에요?
아, 요즘같이 뒤숭숭한 시대에 이런 질문은 너무 '불온'한가요?ㅋㅋㅋ

로쟈 2011-01-05 23:30   좋아요 0 | URL
'공유주의'입니다.^^
 

'1월의 읽을 만한 책'에도 올려놓았지만 이마무라 히토시의 <화폐 인문학>(자음과모음, 2010)은 지난주에 나온 가장 눈길을 끄는 책이다. 하지만 바로 독서에 들어가지 않은 것은 그가 분석하고 있는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을 아직 읽지 않아서인데(예전 번역인 <사전꾼들>이란 제목이 더 친숙하다), 이달 중에 사정이 나아질지는 모르겠다. 일단은 리뷰기사라도 챙겨놓는다.  

 

경향신문(11. 01. 01) 돈, 넌 대체 누구냐? 경제 밖의 돈 이야기 

‘김중개라는 남자와 박머니라는 여자가 만났다. 둘은 첫눈에 반해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어느 날 서로의 이상형을 각자 만나게 된다. 그들은 새로운 사랑을 좇아가지만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둘 다 비극적 결말을 맞고 만다.’

통속소설이나 드라마에서 흔하게 접하는 줄거리다. ‘눈물 없이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러브스토리인 셈이다. 한데 일본의 현대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이마무라 히토시(1942~2007)가 읽었다면 이 소설은 분명 ‘화폐 소설’로 자리매김됐을 것이다.

이마무라는 화폐를 향해 ‘넌 도대체 누구냐’라는 원초적 질문을 던진다. 원제 <화폐란 무엇인가>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화폐의 경제적 기능론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조건에서 화폐를 조명”했다. 화폐의 기능은 교환, 시장 등 여러 각도에서 논의될 수 있지만 ‘화폐의 존재’는 다른 시각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는 이 같은 접근을 “화폐의 사회철학”이라 했다. 인간에게 화폐가 갖는 의미를 곱씹어보자는 것이다.  

그는 화폐의 사회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경제 전문서적을 찾지 않았다. 괴테의 <친화력>, 앙드레 지드의 <위폐범들>과 같은 문학작품에서 답을 구했다. 그는 이들 작품을 ‘화폐 소설’이라 명했다. “상식적 의미의 화폐가 등장하지 않는 곳에서야말로 화폐의 본질이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뛰어난 소설은 예외 없이 인간의 근원적 경험에 접근하는데, 이러한 근원적 경험이야말로 화폐적 경험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모든 문학작품은 우수한 것일수록 화폐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연애와 결혼 문제를 다룬 소설로 볼 수 있는 괴테의 <친화력>. 주인공 미틀러는 문자 그대로 ‘매개자’를 뜻한다. 전면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소설의 무대를 움직이고 등장인물들의 파국을 암시한다. 화폐는 평범한 얼굴을 하지만 그것이 없으면 경제생활은 마비된다. 이에 저자는 미틀러를 “인간의 형상을 한 화폐”로 봤다.

청교도 부르주아의 위선과 악덕을 다룬 소설 <위폐범들>에 등장하는 프로피탕디외는 ‘신을 이용해 이윤을 얻는다’는 뜻으로 “이름에서부터 이미 화폐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앞서 소개된 ‘김중개’나 ‘박머니’처럼 저자에게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인간관계의 매개자이자 화폐의 또 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특히 지드가 위조화폐를 통해 경제현상의 이면에 펼쳐진 인간군상을 보여준 데 대해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 “경제학이 경제적 사실밖에 말하지 않는다면 인간적 현실을 진실로 설명했다고 할 수 없다. 경제학의 이러한 무능함을 노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드의 <위폐범들>은 하나의 경제학 비판서다.”  

이마무라의 말을 듣자니 아무 소설, 아무 쪽이나 봐도 돈 이야기가 나온다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이 떠오른다. 살인범이 여자를 죽이는 데 사용한 칼조차 그냥 칼이 아니라 ‘얼마짜리’ 칼이다. 생계를 위해 글을 팔아 ‘돈’을 벌어야 했던 도스토예프스키는 돈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돈을 이해하고 돈의 막강한 역할을 꿰뚫어본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마무라였다면 그의 소설을 과연 어떻게 해석했을지 궁금해진다.

이마무라에 따르면 <친화력>에 등장하는 ‘무덤 파괴’ 이야기나 <위폐범들>에 나오는 일부 죄 없는 자들의 죽음은 규칙이나 관습 같은 ‘제도화한 매개 형식’이 사라졌을 때 인간이 직면하게 되는 충돌의 결과다. 그는 화폐가 동물세계와 달리 인간들의 폭력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매개자임을 거듭 강조한다. “운명과 죄와 관련한… 신화적 자연의 힘을 덮어버리는, 누름돌 역할을 하는 매개자가 사라지면 인간관계는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화폐 없는 인간사회를 부정한다. ‘화폐 폐기론’에 ‘재앙론’으로 맞선다. 인간은 상호 교류가 숙명적이므로 교환의 매개인 화폐를 폐기하면 인간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경제학적 차원에서는 이상적일지 모르지만 인간 존재의 근원과 연결지으면 화폐 폐기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역자의 말처럼 이 책은 “문학작품 독해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수도 있다. 나아가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우리 자신이 ‘화폐 소설’의 주인공이니 말이다.(고영득 기자) 

11. 01. 02.  

P.S. 저자도 언급하고 있는 책이지만 절판된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화폐의 철학>)도 재번역돼 나오면 좋겠다("부자 되세요!"라고 인사를 주고받는 나라에서 이런 책도 읽을 수 없다는 건 미스터리한 일이다). 한편, 2000년대 일본 사상의 지도를 그려주는 책이 출간됐다. 사사키 야쓰시의 <현대 일본사상>(을유문화사, 2010). '아사다 아키라에서 아즈마 히로키까지'가 부제다. 두 사람의 이름을 들어본 이라면 호기심이 발동할 만한 책이다. 바로 주문을 넣은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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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2011-01-03 00:12   좋아요 0 | URL
짐멜의 <돈의 철학>은 작년에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번역하신 김덕영 선생께서 번역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번역 작업에 들어 갔는 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빨리 독일어 원전 번역이 나오기를 저도 고대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실력있는 번역자께서 번역을 하셔도 좋겠지만, 김덕영 선생님이 베버와 짐멜 전공자이시고 신뢰할 만한 번역자이시니까 그 분이 하셨으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로쟈 2011-01-03 09:07   좋아요 0 | URL
네, 번역계획을 갖고 계신 걸로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