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정의인가>(마티, 2011)에 대한 비교적 자세한 리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옮겨놓는다. 알라딘에선 비교적 반응이 좋은 편인데, 그래도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견줄 바가 아니다. 여전히 베스트셀러 수위권을 달리며 조만간 80만부를 돌파할 거라는 예상이니까. 그 정도면 거의 국민 '교과서' 수준이지 싶다...  

  

서울신문(11. 01. 19) 한국사회 ‘정의란… ’ 샌델 교수에게 말하다

지난해 출판계 최대 화두는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의 돌풍이었다. 1쇄 1000부만 나가도 많이 나간다는 인문출판 현실에서 70만부 넘게 팔렸으니 경악할 법도 하다. 여기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한편으로는 정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있었다는 얘기여서 반갑다. 다른 한편으로는 정의에 대한 국내의 수많은 고민들은 외면당하기 일쑤인데 물 건너 유명대학 교수의 논의에 열광하는 기현상에 대한 냉소도 나온다. 



‘무엇이 정의인가-한국사회, 정의란 무엇인가에 답하다’(마티 펴냄)는 ‘정의란’가 불러일으킨 이런 돌풍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답이다.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 교수와 장정일 소설가를 비롯해 정의론과 법철학 분야를 공부해온 이양수, 김도균, 최원 등 젊은 법철학자와 정치학자, 필명 ‘로쟈’로 유명한 서평블로거 이현우 등 10명의 필자가 참가했다.

먼저 이택광 교수의 결론은 “누구도 이 정의 없는 현실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지금 여기서 ‘정의란’이라는 책을 읽는다.”는 것이다. ‘정의란’을 읽는 것은 부(不)정의한 세상에 홀로 탈색된 채 서 있고자 하는 욕망이 낳은 일종의 알리바이, 즉 부재증명이라는 것이다.

단적으로 “막걸리보안법 시대도 아닌데 이명박 정권이나 삼성그룹에 대해 정의롭지 못하다고 말하려면, 상당한 오해와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은 알지만 앞장서서 외칠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책으로 대리만족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어린 시선이다.

장정일은 더 신랄하다. 그는 “창의적 논문과 정리성 논문이 있다면 샌델의 책은 정리성 논문에 가깝다.”고 정의한 뒤 “도덕에 대한 고민을 잠재적·정치적 가능성에 연결짓지 못하고 너무 일찍 법을 불러낸다.”고 비판한다. 샌델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그 근거로 공동체 도덕에 기반을 둔 법을 내세운다. 이런 까닭에 한국의 맥락에서 샌델은 법 질서 확립이라는 명분으로 남용될 위험이 있다. “법치를 통한 정의사회-공정사회도 좋다-구현은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가 아니던가.”라고 장정일은 반문한다.

비판론자 못지않게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이들의 주장에도 귀 기울일 만하다. 이들은 대체로 샌델이 ‘정의란’를 통해 결론적으로 도출해 내는 공동체주의와 그 이후 샌델의 주장을 미국식 애국주의와 접합한 공동체주의 운동으로 세심하게 구분하는 쪽에 서 있다.

자유주의에 대한 샌델의 공격을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대립으로 파악하기보다 자유주의의 부족한 점을 공동체주의가 보완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한 예다. 또 이들은 샌델이 끊임없이 제시하는 사고실험을 그 자체로 비윤리적인 것으로 거부하기보다 철학적인 판단을 압축해서 보여 주는 도구로서 받아들인다.

서평블로거 이현우는 이런 입장에서 ‘정의란’의 돌풍이 불러올 긍정적인 측면에 주목하자고 제안한다. ‘삼성 비자금’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를 언급하면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샌델 열풍이 아니라 깨어 있는 시민의 반부패 혁명”이라는 김용철(‘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이현우는 되묻는다. “시민들의 의식을 어떻게 깨울 수 있을까.”

이현우는 “내기를 건다면 나는 아직도 우리에겐 더 많은 도덕적 사고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쪽에 걸고 싶다. 70만 독자로도 깨어 있는 시민이 부족하다면 필요한 것은 700만의 독자이고 시민”이라고 단언한다. 이제 막 도덕적 사고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결과를 조금 더 두고 보자는 얘기다.

김도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예 다른 차원을 지적한다. 정치학자 샌델이 정치적 공공선에 대해 언급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사회경제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자유주의 철학을 비판하면서도 사회경제적인 분야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 것은 자유주의 원리를 적극 수용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본다.”면서 “교육, 의료, 주거, 보육, 노후, 기초소득 보장 같은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이권우 출판평론가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책 읽기의 사회학을 검증하는 현장에 서 있다. 책 읽는 한국 사회가 과연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의란’ 열풍이 또 한번 휩쓸고 지나간 ‘선진’ 미국의 유행에 그치고 말지 아닐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렸다는 의미다.(조태성기자) 

11. 01. 19.   

P.S. 파이앤셜뉴스의 '화제의 책' 코너도 옮겨놓는다. <무엇이 정의인가>의 내용을 잘 간추려주고 있다.

파이낸셜뉴스(11. 01. 20)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 신드롬을 어떻게 볼 것인가

세간의 화제가 된다는 것은, 곧 기자 회견을 앞두고 있다는 뜻이다. 쏟아지는 질문공세, 눈부신 플래시 세례. 세계 정상급 연기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도, 1996년 은퇴를 앞두고 있던 서태지도, 아들의 병역비리가 드러난 정치인도 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밟아야 할 다음 순서가 바로 ‘기자회견’이라는 점 말이다. 그들 앞에는 너무도 많은 질문이 놓여 있었다.

70만 독자들의 선택. 무한도전 멤버 중 MBC 서점을 가장 방문하지 않는다는 하하도 귀동냥으로 알고 있는 ‘정의란 무엇인가’. 일명 ‘저스티스’로 회자되고 있는 이 책 역시 우리 사회의 화제가 되었다. 슈퍼스타K 최종무대가 방송된 바 있는 한 대학의 무대는 이 책의 저자, 마이클 샌델을 만나기 위한 이들로 북적거리기도 했다. 무려 4000여 석의 강연장을 연예인이 아니라 바로 ‘철학자’가 채웠다는 사실은 이 책이 단순히 ‘베스트 셀러’ 이상의 의미로 한국사회에 상륙했음을 직감하게 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만한 베스트 셀러를 부러 거창하게 소개하는 것은, 이 책도 드디어 다음 순서를 밟을 때가 됐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바로 기자회견. 그 동안 우리는 책 한 권을 앞에 두고 얼마나 많은 수다를 떨었던가. 이 책이 잘 팔리는 이유에서부터, ‘그래서 정의가 도대체 뭐라는 거야?’라는 푸념까지. 우리의 그 모든 궁금증을 반영한 첫 번째 공식질문이 바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의미심장하게도, 마이클 샌델의 질문을 그대로 뒤집은 책 ‘무엇이 정의인가?’이다.

이 같은 제목은 ‘정의란 무엇인가’의 열풍에 편승하고자 하는 ‘안일하고도 소박한 상업적 바람’의 연장선에 이 책이 놓여 있다고 오해할 여지도 준다. 동시에 베스트 셀러를 마냥 삐딱하게 보려는 것은 아닌지 염려할 만한 소지도 낳는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얘기하건데 그런 오해와 염려에 대해선 안심해도 좋다. 이 책은 11명의 공저자들이 다양한 방향에서 ‘마이클 샌델의 정의론’을 분석하고 이를 소비하는 한국사회를 독해한다. 샌델에 대해 우호적인 논자들도 있고 비판적인 논자들도 있다.

소설가 장정일은 “정작 읽게 된 이 책의 수준이 고작 맥도날드 매장에서 고등학생들이 햄버거를 먹으며 할 수 있는 잡담에 불과하다”고 다소 감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샌델의 정의가 일종의 ‘신학’으로 변질될 수 있는 지점을 선명하게 짚어낸다. 꽤 알려진 인터넷 서평꾼 ‘로쟈’는 샌델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의’ 열풍이 한국사회를 ‘살아있는 정의의 사회’로 만들어 갈 시민들의 도덕적 사고 훈련에 도움이 된다고 옹호한다. 한편 현재 샌델의 책을 번역하고 있는 철학자 이양수는 ‘정의론’을 둘러싼 다양한 입장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샌델이 무엇을 비판하고 있고 어떤 비판을 받고 있는지를 잘 정리해 준다. ‘샌델이란 무엇인가’라는 소제목을 붙여도 좋을만한 글이다. 그리고 정치철학자 최원은 샌델이 중요한 참고점으로 삼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론’을 소개하며 샌델이 아리스토텔레스를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공박한다.

이들 모두가 탄탄한 논리로 뒷받침되고 압축적으로 배경 지식들을 소개함으로써 우리는 정의에 대한 더욱 진지한 고민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샌델에 대한 찬성과 반대를 넘어서 ‘정의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이 책의 기획 의도이기도 하다. 샌델에 대한 치밀한 분석 끝에 나온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마냥 “샌델”이라고 답할 수는 없게 된다. 이 책은 이렇게 샌델이 촉발시킨 ‘정의’라는 화두를 더 의미 있게 증폭한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다음엔 꼭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라고 공식 선언해도, 분명 흠이 되지 않을 것이다.(김성광 예스24 도서1팀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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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19 12:0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을 뒤늦게 사 볼 생각이긴 한데
이런 류의 책이 몇 권은 더 나오지 않을까 해요.
단지 미이클샌델이 이 분야에서 포문을 연 것일뿐
그것이 과연 이 사회를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로쟈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이승만 때부터 한 번도 정의로운 사회에서 살아보지 못한
한국인들 아닙니까?ㅋ

돈케빈 2011-01-19 19:16   좋아요 0 | URL
비트겐슈타인 열풍이나 샹탈 무페 열풍은 기대해 볼 수 없을까요?
'하바드' 세 글자의 힘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자꾸때리다 2011-01-19 20:57   좋아요 0 | URL
그런 열풍은 프랑스에서나...ㅡㅡ;;

philocinema 2011-01-19 21:37   좋아요 0 | URL
한국에서도...
 

오래만에 이주의 관심도서 리스트를 꼽는다. 계기가 된 건 러시아의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생각과 말>(살림터, 2011)의 출간이다. 비고츠키 책이 처음 나온 건 아니지만 690쪽이란 분량으로 보아 어지간한 글들은 포함한 '선집'으로 보인다. 그게 의의다. 러시아어 원전 번역본도 근간인 걸로 알지만 이 선집은 표지 때문에라도 구비해놓고 싶다. '진화를 넘어선 섹스의 심리학'을 다룬 데이비드 레이의 <욕망의 아내>(황소걸음, 2011)도 이번주 신간인데, 데이비드 버스의 <여자가 섹스를 하는 237가지 이유>(사이언스북스, 2010)에 연이어 읽어봄직하다. 거기에 보관함에 넣어둔 책 몇 권을 더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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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18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9 0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울신문의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연재에서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가 다뤄졌기에 옮겨놓는다. 이 연재는 수유+너머와 공동기획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코뮨주의'적 삶의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기에 수유+너머와의 '결합'은 자연스럽다...    

서울신문(11. 01. 17) 체르니셰프스키 ‘무엇을 할 것인가’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시대와 삶을 질문하는 모든 청년들을 위한 책이다. 작가는 새로운 시대의 자유와 혁명을 말하는데, 놀랍게도 이 과정이 사랑과 결혼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리케이드 앞이나 공장의 파업 현장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을 통해 혁명을 한다? 그런 혁명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지하실’에서의 삶
“나는 자유롭고 싶어요!” 소설은 ‘자유’를 향한 베라 파블로브나의 당찬 외침과 함께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외침은 현실 앞에서 공허하기만 하다. 가난하고 비천한 집안 출신의 어린 여성, 19세기 중반 러시아에서 그런 여자에게 허락된 삶이란 자신을 구원해 줄 남자를 기다리거나 하급 노동자가 되는 것뿐이다. 이미 정해진 삶의 행보만이 강요되는 곳, 누구도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말하지 않는 곳, 베라는 이런 자신의 현실을 ‘지하실’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지하실’에는 ‘사랑’이 넘친다. 아니 바로 이 ‘사랑’이 곧 그녀를 구속하는 지하실의 정체다. 흔히 사랑한다면 상대방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집착과 소유욕에 불과하다. 베라의 어머니가 모성애를 내세워 자신이 원하는 삶을 딸에게 강요하고, 부잣집 도련님 이반이 오로지 헌신적으로 남편을 보필해줄 여성을 배우자로 찾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모순투성이의 관계를 지속하는 한 우리에게 자유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베라는 이 ‘지하실’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전혀 다른 방식의 사랑의 모험을 감행한다.

●이기적 유물론자의 사랑법
베라와 사랑에 빠지게 될 두 남자 로푸호프와 키르사노프.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는 이기적 유물론자들이다. 물론 여기서 ‘이익’은 화폐적 척도로 계산되는 무엇이 아니라 존재를 충만하게 하고 삶을 고양시키는 선택을 말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원하는 것들의 ‘무게를 하나씩 달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동정, 연민, 희생으로 점철된 관계는 서로를 구속하고 괴롭게 한다. 그러니 오로지 저 자신을 위하여 사랑하고, 일하고, 관계하라! 이 이기적 계산법에 따라 베라는 집을 나오고 새로운 시대를 앞당기고자 노력하는 신청년, 로푸호프와 결혼을 한다.

베라와 로푸호프의 사랑은 그 자체가 지하실로부터, 강요된 삶의 행보로부터 탈출하는 일이며 동시에 새로운 삶을 구성하는 일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부부 관계는 아주 파격적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하여 각방을 썼고, 심지어 ‘중립의 방’이라는 공간을 만들어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또한 베라는 자신의 취미와 꿈을 살려 가난한 여자들과 함께 운영하는 ‘봉제공장’을 만든다. 구성원 모두가 공장의 주인이기에 그들은 각자의 관심과 능력에 따라 소비조합, 공동주택, 배움터 등의 새로운 관계와 생활들을 조직해 간다. 공장은 이제 단순히 생계를 위한 노동의 현장이 아니다. 그곳은 새로운 관계와 실험 속에서 가난한 여성들이 삶을 바꾸고 존재를 충만하게 하는 자유와 해방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베라와 로푸호프는 단지 스스로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그 일련의 행보들이 구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바꾸고 외쳤던 바로 그 혁명의 실천이 된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무엇을 할 것인가’의 혁명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이제 사회를 바꾸고, 일상을 바꾸는 것을 넘어 존재의 근본적인 고양을 시도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은 베라와 로푸호프의 결별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이들의 사랑 또한 머무르지 않는다. 로푸호프의 ‘절친’ 키르사노프와 베라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 경우 보통은 서로에 대한 극한 분노와 질투, 자기 비하로 얼룩진 파국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영원한 사랑’에 대한 믿음이 온갖 망상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베라 역시 처음에는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자신의 새로운 사랑을 부정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로푸호프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절망에 사로잡히기는커녕 베라를 헤아려 주고 그녀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수 있도록 적극 돕는다. 심지어 베라와 키르사노프가 타인들로부터 비난받지 않도록 치밀한 자살극을 꾸미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사랑의 무상성을 깊이 통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다 거기에 맞는 시간을 갖고 있는 법이오.” “당신은 오직 한 종류의 사랑에 만족했지만 지금은 다른 것을 원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그에게는 이별의 아픔마저도 자신의 삶을 고양시키는 수련의 과정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로푸호프의 노력으로 두 사람은 자기 자신과 정직하게 대면할 수 있었다. 베라는 그동안 자신을 지하실로부터 탈출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로푸호프에게 의존하여 생활을 꾸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의존한 채로는 살아갈 수 없다.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는 한 사랑과 삶의 변화 앞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을 얻은 베라는 자신의 두 번째 사랑이 단순히 파트너를 바꾼 관계가 아니라 진정으로 독립한 두 남녀의 결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녀는 의사가 되는 수련을 받기로 결심하는데, 당시로선 가히 혁명적인 이 도전은 베라가 자기 존재의 축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모든 의존으로부터 벗어나 자기 삶을 한가운데로 도약시키고 있었다. ‘완전한 독립 없이는 진정한 행복이란 불가능하다.’ 혼자서 가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고, 또 그런 사랑만이 통상적인 삶의 습속을 바꾸는 혁명이 될 수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시대의 격변 속에서 길을 찾는 모든 청년들에게 체르니셰프스키는 이렇게 답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것만이 사랑과 혁명이 조우하는 길이라고.(박수영_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서울신문(11. 01. 17) [고전톡톡 다시읽기] 체르니셰프스키와 레닌

19세기 중반 러시아. 구체제는 각종 모순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차르는 토지개혁령을 시행하지만, 그것은 도리어 민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아버지 세대는 부르주아적 삶의 양식을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그 역시 이미 유럽 각국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니콜라이 체르니셰프스키(Nikolai Chernyshevskii, 1828~1889)는 이 시대적 질문과 온몸으로 대결한 러시아의 작가였다.

체르니셰프스키는 생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낸다.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잡지에 기고한 글들이 지주들의 반발을 사 그만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그 후로 약 20여년을 감옥과 시베리아의 유배지를 전전하다 세상을 떠났다. 노래와 춤으로 가득한 한편의 연애 소설, ‘무엇을 할 것인가’(왼쪽·1863)는 바로 그 감옥에서 완성된 작품이다.

일개 연애소설이 일으킨 사회적 반향은 의외로 엄청났다. 주인공들을 따라 수많은 청년들이 안정된 삶을 박차고 집을 나왔고, 곳곳에서 각종 생활 공동체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약 40년 후,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대명사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역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만난다. 그는 이 소설을 얼마나 좋아했던지 자신이 쓴 정치 팸플릿에 같은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을 연결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제국주의의 타도를 외치는 혁명가, 그리고 감옥에서 연애 소설을 쓴 작가. 더군다나 계급투쟁과 전투적 당의 창설 등을 내용으로 하는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오른쪽)는 청년들의 사랑과 결혼을 골자로 하는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레닌은 체르니셰프스키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그는 말한다. ‘체르니셰프스키의 가장 위대한 공적은 올바른 마음가짐을 지닌 진지한 사람은 누구나 다 혁명가라는 것을 보여 준 것’ 이라고. 수인의 몸으로 연애소설을 쓴 체르니셰프스키도 대단하지만 거기서 혁명을 읽어낸 레닌 역시 대단할 따름이다.(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11. 01. 18.  

P.S. 첨언하자면, 사회소설이 '연애소설'이란 외피를 띠는 것은 당시에 일반적이었다. 투르게네프 소설의 애독자로서 체르니세프스키가 <전날밤>이나 <아버지와 아들>을 염두에 두고 <무엇을 할 것인가>를 썼다는 점도 참고할 수 있다. 더불어, 레닌과 젊은 세대 혁명가들을 열광하게 만든 건 소설에 등장하는 '새로운 인간' 라흐메토프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강철인간' 라흐메토프는 베라/로프호프/키르사노프와는 또 다른 '새로운 혁명가형'을 예고하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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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오전에 <더블>(창비, 2010)에 실린 박민규의 단편 <루디>를 읽고서 바로 쓰게 된 칼럼이다. 몇 편 읽지 않은 그의 단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경향신문(11. 01. 18) [문화와 세상]부조리한 ‘홍대 미화원 사태’ 경악

작년 여름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쪽방촌에서 1박2일 체험을 한 후에 6300원(1인 가구 최저생계비)으로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는 소감을 홈피에 올렸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차 의원은 사과의 글을 다시 올리기도 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성은 ‘여론’의 몫이 아니었을까 싶다. 도시 빈민들의 삶을 부당하게 모욕했다고 분개하기보다는 검약한 차 의원의 생활태도와 진심을 살펴봤어야 했다. 최소한 차 의원의 경우라도 의정활동비를 ‘황제 수준’으로 다시 계상하는 것이 정당한 ‘사후조치’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런 것이 이명박 정부의 캐치프레이즈가 된 ‘공정사회’의 기조에도 부합하지 않을까. 



지난해 여름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린 것은 지난 3일부터 부당해고에 맞서 고용승계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점거농성 중인 홍익대 미화원의 하루 식대가 300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정은 이렇다고 한다. 미화원 아주머니들은 주로 교내에서 폐지를 주워 판 돈으로 점심을 해결해 왔는데, 학교 측이 폐지 판매대금을 챙겨가면서 대신에 한 달 식대비로 9000원씩을 줬다는 것이다. 단순계산으로 이들의 하루 점심값은 300원이다. 그에 비하면 경탄스럽게도 6300원은 가히 ‘황제의 식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런 현실의 문제가 ‘경탄’만으로 해결될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고 ‘부조리한’ 방식을 동원해야 할까? 대학당국은 용역계약을 해지한 청소·경비 노동자 170명을 대신할 대체인력을 투입하면서 청소인력에게는 일당 7만원, 경비인력에겐 10만원을 준다고 한다. 일당 2만5000원에 부리던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3~4배나 많은 비용을 들여 대체인력을 쓰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는 신의 도움이 필요할 듯싶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고는 있는 것일까요?” 



경탄과 부조리가 해결책이 아니라면 ‘경악’은 어떨까. 용역 청소부가 주인공인 박민규의 단편 <루디>를 떠올려서다. 루디 워터스는 한 금융회사에 청소부로 12년간 근무하다가 스스로 그만둔 평범한 인물이다. 그 회사의 부사장인 ‘나’ 보그먼은 청소부를 괴롭힌 적도 없고 청소부와 마주칠 직위도 아니다. 하지만 알래스카 여행 중에 무료한 고속도로에서 루디를 만난다. 나머지는 끔찍한 악몽의 연속이다. 총을 들이대며 타이어 바퀴를 갈라고 하더니 길에서 똥을 싸라고도 요구한다. 루디는 주저하는 ‘나’의 한쪽 귀를 대번에 총으로 날려버린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드리겠다고 ‘나’는 애원해보지만 “너 이 새끼… 날 상대로 이자놀이 하려는 거지”라는 게 루디의 대답이다. 결국 루디와 동행하게 된 ‘나’는 비위를 잘못 맞추었다가 오른팔마저 잃는다. 어렵사리 기회를 잡아서 여러 발의 라이플 총알을 루디의 몸에 박아 넣지만 루디는 죽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루디는 이제 무서운 인간, 인간을 넘어선 인간이 돼 있다. ‘나’는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나는 그저 너희를 평등하게 미워할 뿐이야. 너도 평등하게 우릴 괴롭혀 왔으니까”라는 게 루디의 대답이다.

두 사람의 결말이 궁금하신가? 루디를 죽이지 못하고 다시 동석하게 된 ‘나’는 탁 트인 절벽끝까지 차를 몰고 가게 된다. 루디는 “달려”라고 말하지만 ‘나’는 더 이상은 갈 수 없다고 버틴다. 그러자 ‘탕’ 소리가 울린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이마에 구멍이 뚫린 ‘나’는 여전히 루디와 함께이며, “영원히 우리는 함께라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는 함께’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한국판 악몽이 따로 필요한지 생각해볼 문제다

11. 0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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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6 2011-01-18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자 경향신문에서 봤습니다ㅎㅎ

'한달 식대 9000원'이라는 구에 눈길이 가네요. 제가 공익근무할 때, 식대로 하루에 5000원을 받았습니다. 제 근무지의 직원분들이 그 사실을 알고 놀려댔죠. '공익이 우리보다 식대가 많네~'하면서요. 그말을 듣고 한국 사회 노동자들의 상황을 약간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기사 잘 봤습니다 로쟈씨~




로쟈 2011-01-19 00:12   좋아요 0 | URL
'경악'을 통해서만 정신을 차리게 되는 건지 회의적일 때도 있습니다...

philocinema 2011-01-18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미수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재미나게 읽은 뒤로 박민규의 소설집 '카스테라'는 별 감흥 없이 지나쳤었는데, 이번 소설집은 왠지 끌리는 바가 있네요! 표지도 이채롭고...말입니다.

로쟈 2011-01-19 00:08   좋아요 0 | URL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품들도 포함돼 있지만, '괴력'을 선보이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philocinema 2011-01-19 08:58   좋아요 0 | URL
파'괴력' 있는 작품들을 저도 좀 찾아보겠습니다.
 

프랑스에서 60만부가 넘게 팔려나가며 화제가 되고 있다는 스테판 에셀의 정치 팸플릿 <분노하라!>(2010)와 관련된 기사와 칼럼을 몇 개 모아놓는다. 그리고 '세계의 책'으로 분류한다. 본문 13쪽의 전체 30쪽짜리 책이라는데, 우리의 경우라면 300쪽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일종의 분노의 시대, 분노를 부추기는 시대에 부치는 '격문'이다.   

한겨레(11. 01. 06) '분노하라!’ 프랑스 뒤흔든 ‘30쪽의 외침’

30쪽짜리 작은 책 하나가 프랑스 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앵디녜 부!>(Indignez vous!). 우리말로 ‘분노하라’는 제목의 소책자다. 지은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 대원으로 독일 나치에 맞섰던 스테판 에셀(93·왼쪽)이다.

지난해 10월 초판 8000부가 출간된 이 책은 석달 새 무려 60만권이 팔려나갔고, 크리스마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데 힘입어 새로 20만권을 증쇄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3일 전했다. 100살을 바라보는 레지스탕스 영웅은 이 책에서 프랑스인과 다른 모든 세계인들에게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의 정신을 되찾아,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근대 민주주의의 사회적 가치를 수호하자”고 촉구한다. 광고문구와 주석을 뺀 본문은 13쪽에 불과해, 책이라기보다 격정적인 정치 팸플릿(레드북)에 가깝다.

다분히 선동적인 이 책이 판매부수 2위의 소설책보다 8배나 많이 팔릴 만큼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는 것은 단지 3유로(약 4500원)라는 저렴한 책값과 읽기에 부담 없는 분량 덕에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다고 독창적이거나 깊이 있는 분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근대적 시민사회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시장에 대한 맹신과 자본의 폭력에 ‘분노’하라는 칼칼한 외침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은이와 출판사는 “시장독재와 은행가들의 보너스와 재정위기가 전후 복지국가의 생존을 위협하는 시대에 국가적으로나 국제적으로 민감한 신경을 정면으로 타격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분노 신드롬’이 사회적 현상으로까지 해석되는 이유다.

에셀은 신년 메시지에서 자신의 책이 성공한 데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자신이) 1940년대에 나치즘에 맞섰던 것처럼 오늘날 젊은이들도 정치·경제·금융 권력의 공모에 맞서, 2세기에 걸쳐 이룩한 민주적 권리를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분노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프랑스에선 미묘한 정치적 파장까지 일고 있다. 지은이가 일깨운 프랑스적 가치인 ‘레지스탕스’(저항)가 2012년 프랑스 대선에서 니콜라 사르코지의 보수파 정권에 저항해 사회당을 지지하자는 뜻으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책의 한 대목은 이렇다. “분노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귀중한 선물이며, 분노할 것에 분노할 때 당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일부가 된다. 그 흐름이 우리를 더 많은 정의와 자유로 이끈다. 그 자유는 여우가 닭장 속에서나 맘껏 누리는 자유가 아니다.”(조일준 기자)    

한겨레(11. 01. 10) [한겨레 프리즘] 분노의 시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신드롬이 되는 문화엔 그 사회의 당대 정신이 녹아 있다. 지금 세계를 휩쓰는 코드는 ‘불안’과 ‘분노’다. 미국이라면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중인 록뮤지컬 <아메리칸 이디엇>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펑크록 밴드 그린데이의 동명 앨범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2009년 초연 땐 작은 뮤지컬에 불과했지만, 미국의 깊은 불안을 드러낸 “아메리칸 레퀴엠”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가 되고 있다. 음악을 하다 마약에 빠진 젊은이와 9·11 이후 애국심에 떠났던 이라크 전장에서 한 다리를 잃은 또다른 젊은이, 그리고 우울증에 빠져 집에서 꼼짝 않는 또다른 친구. 1950년대 미국의 비트 제너레이션이라면 마약과 섹스에서라도 구원을 찾겠지만, 21세기 이들 세대에겐 출구가 없다. 싸울 줄도 분노할 줄도 모르고 하강하기만 하는 이들 청춘은 한국 영화 <마이 제너레이션>의 절망을 닮았다.

프랑스에선 이런 절망감에 놀랍게도 올해 93살의 레지스탕스 출신 노인이 분노의 불을 붙였다. 스테판 에셀의 13쪽짜리 본문의 소책자 <분노하라>(Indignez-vous)는 지난해 10월 영세출판사에서 8000부를 찍은 데서 시작해 현재 80만부 가까이 팔려나갔다.

새로운 시대의 ‘선언문’이 되기엔 독창성도, 깊이있는 분석이나 날카로움도 부족하다고 지적되는 이 책의 폭발적인 인기 배경엔 극적 에피소드들이 작용했을 수 있다. 유대인 출신 작가 아버지와 자유로운 정신의 화가인 어머니가 프랑수아 트뤼포 감독의 영화 <줄 앤 짐> 원작의 모델이었다거나, 에셀 자신이 1944년 나치 수용소에서 처형 직전 숨진 프랑스인과 신분증을 바꿔 가까스로 탈출했고 1948년 세계인권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인물이란 점 등이 그렇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금융위기 이후 사람들의 절망에 대해 전세계 좌파들이 무능하게 대응할 때 “자신의 내러티브를 가진 ‘찬사받는’ 좌파인물의 등장은 울림이 크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그의 삶과 말이 지금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실제 이제 프랑스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모토로 하던 그 나라가 아니다. 최근 53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프랑스는 응답자의 61% 이상이 2011년 경제를 어둡게 전망해 가장 ‘비관적인 국가’로 꼽혔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야만적인 이민자 정책, 복지 축소 등에 프랑스를 프랑스로 존재 가능케 했던 ‘평등’과 같은 가치가 사라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각국 언론들은 이 책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서구사회에 번져가는 대중적인 불안과 분노의 정서를 건드렸다고 말한다. 독일 출신의 철학자 안젤름 야페는 <죽을 때까지 빚진: 자본주의의 해체>에서 “2008년 붕괴는 단순히 재정위기가 아니라 문명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신드롬을 일으켰던 대한민국은 어떤가. 독주와 불통은 임계치를 넘고 모든 복지 주장은 이성적인 논의도 해보기 전에 포퓰리즘 딱지부터 붙는다. 전세금을 1억원씩 올려달라는 요구에 고민하는 사람들 얘기가 주변에선 끊이지 않는데, ‘전세보증금 증액 상한제’를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04년 이후 번번이 국회에서 무산되고 있다.

어떻게 선진국과 비교하냐고? 1970년대 이후 수십년간 이런 논리는 반복돼왔다. 하지만 복지는 부유할 때 나눠주는 ‘자선’이라는 사고가 박혀 있는 한, 언제까지나 복지는 자본의 팽창 욕망을 따라잡을 수 없다. 다시 에셀을 읽는다. “그들은 감히 우리에게 국가가 더 이상 시민들을 지원하는 정책을 제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감히’라고 국가에 당당히 일갈하고 분노하라고.(김영희 국제뉴스팀장)   

경향신문(11. 01. 15) [목수정의 파리통신] 분노하고 행동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2011년이 열리고 나서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말은 <분노하라(Indignez Vous!)>다. 가장 많이 지면에 등장한 인물은 이 책의 저자 스테판 에셀이다. 올해 그는 한국 나이로 95세에 이른다. 레지스탕스 영웅으로, 전후에는 외교관으로, 말짱한 정신과 몸을 가지고 한 세기를 살아온 이 다복한 남자는 단 13페이지의 짧은 책을 써서 3개월 만에 60만부를 팔아 치운 경이로운 사회 현상의 한가운데 서 있다.

연말,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서점에 들러 책을 뒤적이던 30여분 남짓, <분노하라>를 급히 사가는 사람들의 긴 행렬을 목격하면서 범상치 않은 사건이 프랑스 사회에 조용히 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년 들어 프랑스의 모든 언론들이 <분노하라> 특집을 앞다투어 다루면서 바야흐로 2011년은 분노의 시대로 정의되고 있었다. 

이 책에 대한 폭발적 반응은 많은 사람들이 분노를 입속에 삼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프랑스적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연금파괴 정책에 반대하는 다수의 프랑스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이를 관철시킨 사르코지 정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지난 시대에 자신들이 건설해 온 사회체제를 망치로 때려 부수는 소리가 쟁쟁하게 울려 퍼지는 지금의 프랑스 사회를 관통하는 감정은 바로 ‘분노’다.

그러나 차마 사람들이 그것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던 그 때,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을 보고 어린 아이가 그의 벗은 몸을 거침없이 비웃던 것처럼, 한 세기를 살아낸,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는 이 당당한 노인이 거리낌없이 말했던 것이다. 바로 지금이 당신들의 분노를 끄집어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프랑스를 구해낼 때라고.

스테판 에셀은 말한다. 국민연금과 사회보장제도, 무상의료, 무상교육의 사회체제는 전후 프랑스 사회를 이끌어간 레지스탕스 정신의 산물이라고. 우리 모두 자랑스러운 사회를 지켜야 하며 이민자를 축출하고, 불법 체류자들을 차별하며, 언론은 한 줌 권력집단에 장악당해 있는 이런 사회는 우리가 자랑스러워했던 그 사회가 아니라고. 과거 그가 나치에 저항했던 것과 같이, 우리가 지켜야 할 모든 사회적 덕목들을 훼손시키는 돈과 시장의 무례하고 이기적인 힘을 거부하고 더 많은 정의와 자유를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프랑스 지성의 산실 에콜노말에 입학했던 1939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고, 독일군에게 잡혀있다가 탈출한다. 전후에는 세계인권선언의 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외교관의 안락한 삶은 그를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보수적인 삶으로 주저앉히지 않았다. 그는 아프리카 노동자 교육협회를 창설하고, 인권자문위원회에 참여하며, 교회를 점거한 이주노동자와의 협상중재에 나서는 등 끊임없이 그를 분노케 하고, 열정을 부추기는 사건에 동참하면서 역사의 한 흐름을 지켜왔다.

우리에게도 점령당했던 역사와 그 치욕에 항거하여 몸을 불사른 용맹스러운 레지스탕스(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과 함께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했고, 그들의 진취적인 정신은 해방공간을 차지하는 시대정신이 될 수 없었다. 이승만이 집권한 해방 후 이 땅에서 권력을 장악한 것은 친일세력들이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이들이 벌여놓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3·15 부정선거는 청년들의 분노를 샀고, 이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거리로 나섰다. 경무대로 찾아가 이승만을 마주한 청년들은, 눈 멀고 귀 먹은 이 식물 대통령에게 이 나라에서 벌어진 참혹한 민주주의 말살 행위를 고한다. 이 때 이승만은 “나라에 이런 부정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청년들이 들고 일어서지 않으면 나라는 망한다”고 말하며 그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선언했다.

해방 이후 잘못 끼워진 단추의 비극은 지금까지 우리를 불행한 역사의 질곡에 붙들어 매고 있지만, 거기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분노하고, 행동하는 청년들의 열정이었다. 그 분노와 행동은 눈먼 자에게도 한줄기 정의를 일깨울 수 있는 힘을 가졌던 것이다. 분노할 일은 넘치고, 행동할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 2011년의 초입이다. 

11. 01. 16.  

P.S.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난장이, 2011) 6장에서도 분노의 문제가 다뤄지는데, 슬로터다이크의 <본노와 시간>에 대한 논평을 겸하면서 지젝은 '분노 자본'의 축적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간단히 말해서 분노 자본이 한번도 충분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 민족적 분노이건 문화적 분노이건 다른 분노를 더 끌어오거나 결합시켜야 하는 이유다." 역사적으로 그랬다. 때문에 필요한 것은 분노의 국지적, 간헐적 표출보다는 '분노의 전지구적 은행'이라고 말한다. 분노의 시간은 분노의 축적과 폭발이란 두 계기를 포착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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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6-06 15:04 
    프랑스의 노(老) 레지스탕스 스테판 에셀의 소책자<분노하라>(돌베개, 2011)가 번역돼 나왔다. 원저가 20여쪽 분량이라고 하니까 '책'으로 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제목에 80%는 들어가 있는 '전언'이다. '부당한' 대학 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분노가 마침 촛불로 번져가고 있는 즈음에 '분노하라!'는 전언은 더없이 강한 울림을 갖는다.경향신문(11. 06. 06) 분노하라, 전세계 뒤흔든 외침“젊은이들이여, 주위를 조금만 둘
 
 
자꾸때리다 2011-01-16 19:36   좋아요 0 | URL
그런데 프랑스에서 학생 시위는 흐지부지 끝난 모양이네요.

로쟈 2011-01-16 20:19   좋아요 0 | URL
겨울은 시위하기에 좋은 계절이 아니죠. 방학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