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




소경 2007-03-11  

잘지내시나요.
다름이 아니라 "세계적 석학, 한국 청소년에 '지식 선물'"이라는 기사를 보니 '인디고잉'이라는 '한국' 청소년 인문 잡지에 놀랍게도 슬라보예 지젝의 기고문이 실렸다고 하더군요. ‘철학, 아는 것을 모르는 것 그리고 이성의 사회적 사용’이라는 제목인데 구미가 당기더군요. 워난 발빠른 분이라 이미 소식은 들으셨나 모르겠지만 도움이 될까 해서 글 올립니다.
 
 
로쟈 2007-03-11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인디고와 인디고잉에 대해서는 예전에 올린 글이 있습니다.^^

소경 2007-03-13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동네 아저씨 지젝 사진이 정겹네요 ^^~
 


루루 2007-03-09  

안녕하세요
서재에 모아두시는 자료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방명록은 처음 쓰는 데 그 동안 몰래몰래 보고 갔던 페이퍼들을 생각해보면 인사가 너무 늦었네요; 로쟈님 페이퍼들 정말 저에게 유용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아, 그리고 문학을 전공하시는 것 같아서, 한 가지만 여쭈어보려고요. 제가 문학에 대해서 완전 문외한이라서; 얼마 전에 요코이야기인가 하던 작품이 한창 이야기 될 때도 있었는데요. 대체 문학은 현실/역사를 얼마나 반영해야하는 건가요? 또는 얼마나 현실에 책임이 있는 건가요? 저야 개인적으로는 요코 이야기가 소재로 다루는 사건(일본인에 대한 한국인의 복수?)이 현실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인간의 정념이란게;), 그게 역사적 자료가 없다 하더라도 충분히 소설로 써질 수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게다가 그건 허구적 '소설'인데요. 작가가 역사를 쓴다고 하지 않고 소설을 쓴다고 한다면, 사료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럴 듯한 이야기로서 쓸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하구요. 주절주절한 질문이긴 한데요. 혹시 단초가 될만한 아이디어라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로쟈 2007-03-09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세히 다룬 사안이 아니어서 정리된 의견을 갖고 있는 건 아닌데요. 일단 소설이건 실제 이야기이건 저는 상관없다고 봅니다(소설로서는 모자라고 수기로서는 다소 유치하다는 게 책을 안 읽은 상태에서 제가 받은 인상입니다).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건 작품 자체라기보다는 그것이 어떻게 읽히느냐는 사회적 컨텍스트인데, 가령 미국 중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권장도서로 적극 추천하는 건 잘못인 것이죠(이건 출판사측에서도 밝힌 의견입니다). 거기 학생들에겐 이 책을 가려 읽을 만한 배경지식이 없으니까 (저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역사적 실상을 편파적으로 이해할 우려가 있습니다.

로쟈 2007-03-09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당장 교포들의 문제화되니까 국내에서도 확산된 것이구요. 그러니까 제 생각으론 일차적인 책임은 저자에게도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교육당국이나 학교측에 있습니다. 세상엔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습니다(사기치는 책도 있고 음란한 책도 있고 그에 따른 금서들도 있습니다). 이미 나온 책이라면 독자들이 알아서 읽으며 되구요. 단 학생들에게 교육자료로서 권장할 경우엔 보다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죠. 일부 학교에서 그렇게 하고 있다지만 한국인의 시각에서 일제강점기를 다룬 책들을 나란히 읽히거나 하는 게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겠죠. 작가가 무얼 쓰느냐, 와는 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기인 2007-03-01  

pt와 임금노동자 관련
pt와 무산자 관련도 페이퍼에 정리해 놓기는 했습니다만. 정작 맑스가 사용한 개념을 따르자면, 임금 노동자와 pt가 다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부르주아지는 지금까지 존경받았던, 사람들의 외경을 갖고서 바라보았던 모든 직업으로부터 그 신성한 후광을 벗겨 버렸다. 부르주아지는 의사, 법률가, 성직자, 시인, 학자를 자신들의 유급 임금 노동자로 바꾸어 버렸다." (공산주의당 선언, <선집1>, 박종철출판사, 1991, 403면) 의사, 법률가 등도 '유급 임금 노동자'라는 것은, 여기서 '임금 노동자'라는 것이 소부르 계층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공산당 선언의 말미에는 그 유명한 구절인,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가 나오는데, 제 생각에는 이는 즉자적 계급으로서의 무산자와 임금노동자 중 일부를 대자적 계급으로서 호명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혁명의 주체로서의 pt는 단지 생산수단 소유의 여부로 규정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맑스의 서술 속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룸펜 pt'에 대한 경멸과 그들의 반동성을 생각한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pt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은 이들로서 '앞으로' 혁명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자본주의 발전과정에 따라 '농후한(?!)'이들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이는 또 자본주의 발전법칙의 필연성 같은 문제로 나아가서 또 골치 아파지지만, 저는 이를 '강한 개연성'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이는 그저 맑스의 텍스트에 입각해 살펴본 pt, 임금노동자, 무산자 등의 개념이고, 실제 '지금-여기'서 역사의 혁명적 주체를 누구로 보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노동자' 또는 'pt'라는 개념을 어떻게 전유할 것인가의 문제는 또 다른 기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두서없이 길어졌는데 다시 페이퍼로 정리해놓겠습니다.
 
 
로쟈 2007-03-0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가 많으시네요.^^ 애초에 제 의문은, 강유원식으로 '노동자'를 정의하게 되면 그 개념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였습니다. 알고보면 '모두가 (착취당하는?) 노동자', 란 규정 가지고 무얼 할 수 있는 건지 의문입니다(그 경우 '노동해방'은 노동자의 희망이 아니며, 노동자 계급내에 또다른 계급이 분화하게 됩니다. 말씀대로 pt노동자와 bg노동자 하는 식으로). 맑스를 저보다 많이 읽은 이가 그런 얘기를 하니까 당혹스럽더군요...
 


소경 2007-02-25  

설 잘 보내셨는가요?
매번 틈틈히 페이퍼 잘보고 갑니다. 올해 설은 특박 중에 소개해주신 에릭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마저 보지 못해 아쉽습니다. 보다가 제일 기억 남을 때가 귀성길버스에서 책을 보던 중 어떤 아가씨에게 버릇없다고 쏘아 붙이는 할아버지와 아가씨 그리고 할아버지의 아들분의 삼판전이었을 것이에요. 그때 잠시 책을 덮을때가 가장 기억 남는 군요. 이런. 그외 추천해주신 책들 잘 구입했습니다. 요샌 월급을 전부 책에 쏫아 붑습니다.헤. 올 한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07-02-25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월급이 그래도 많이 '현실화'됐다던데 책값 정도는 되나 보군요.^^
 


우주돌이 2007-02-20  

로쟈님 안녕하세요
저술가의 서재 라는 글 보고 어찌어찌 찾아와서 방명록에 글까지 남기고 갑니다. 저는 다른 건 잘 모르겠고, 따님에 관한 글이 좋은데요, (우체부 아빠, 너무 재미있어서 컴퓨터 앞에서 미친 듯이 웃다가 쿠사리 먹었습니다.) 아무리 카테고리를 뒤져봐도 로쟈님의 일상(따님의 일상)에 관한 건 없나봐요. 따님, 무럭무럭 크고 계신가요?
 
 
로쟈 2007-02-20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몇달 전 페이퍼를 보신 모양이군요.^^; 책에 관한 페이퍼들을 올리는 게 제 일상입니다. 별다른 게 없구요. 우주돌이님도 아마 아이를 키우시는 듯하네요. 제 딸아이는 낼모레 유치원을 졸업합니다. 잘 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