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녜스캣 2017-10-23
안녕하세요, 로쟈 선생님:) 저는 지금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을 읽고 있는 독자입니다. 읽던 중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나와서 이렇게 메일 드립니다. 55쪽부터 58쪽까지에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실재의 환각’ 개념과 그에 대한 예시로써 자해자와 영화 『피아니스트』
등이 등장하는데요. 실재는 외상적이고 과잉적이다. 실재는 인간이 현실에 내린 닻을 잃어버리는 순간 출몰하기 시작하는 통제할 수 없는 환각의 모습으로 분출해 나온다. 이 두 가지 전제가 우선 있고요. 『피아니스트』에서 두 남녀의 성행위는
환상으로 비어져 나온 실재, 즉 이자벨 위페르의 SM적 성취향이
실현되는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그 실재의 침입을 막기 위한 방어기제로써 기능한다는 것. 저는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이 피아니스트의 예보다
앞서 등장하는 가해자의 예에 이 도식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것을 여쭤보고 싶어요. 이보다 앞선 대목에서(51p) “현실 자체를 주장하기 위해서, 단언하기 위해서”, “뭔가 사는 것 같지 않고 현실이란 실감이 나지 않아서” 자해자들은
자해를 한다. “붉고 따뜻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면 느낌이 다시 살아나고 현실에 확고히 뿌리내린
기분이라는 것이다”는 설명이 나옵니다만 뒤에서는 이에 대해 다시 해석해야 한다고 나옵니다. “자해자들이 스스로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진정 벗어나려는 것은 비현실의 느낌,
우리 생활 세계의 인공적인 가상성이 아니라 실재 그 자체 아닌가?”, “요컨대 신체 자해자들이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비현실성이 아니라 오히려 실재라는 것이다”. 외상적이고 과잉적인 실재와 그
실재의 환상이 곧 자해인지, 아니면 (피아니스트의 도식을
상기해 그것을 적용한다면) 그 실재의 환상에 대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자해’인 것인지가 궁금합니다. 저는 아무래도 후자라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그렇다면 방어기제로써 자해를 작동시키는 ‘실재의 환상’은 자해자들 마다 개별적인 것이겠죠? 즉, 자해자들은 삶의 의욕을 잃은 자들, 가상성, 비현실성이 그들을 지배하는 상황에 놓인 자들입니다. 가상성, 비현실성으로 인해 삶의 의욕을 잃은 자들이라 해야 하겠네요. 그들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그 도피의 방법으로써 자해를 행합니다. 문자
그대로 ‘피를 봄으로써’요.
그렇지만 가상성이니 비현실성이니 하는 것은 사실 실재의 환각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실제로는, ‘실재 자체’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즉 면도칼로 환상을 그음으로써 그 환상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환상’이고 실제로 면도칼이 긋는 것은 ‘실재’이다. 정도가 될런지요. 제가
위에서 말한 자해자들 마다 개별적인 것은, 자해자들로 하여금 삶의 의욕을 잃게 만든, 특정한 외상, 개인적 사건이 되는 것 같고요.
바쁘실 텐데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또 제가 워낙 표현이 서툴고 거친 것도 염려되고요. 이제껏 선생님의 알라딘 서평만 읽다가 단행본은 처음 읽는 것인데 정말 좋네요.
날씨 추운데 몸조리 잘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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