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서 가운데 '이주의 발견'은 커트 스테이저의 <원자, 인간을 완성하다>(반니, 2014)이다. '인간과 지구, 우주를 창조한 작지만 위대한 원자들'이 부제.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인간도 원자적 차원에서 보자면 탄소 복합물이다. 저자는 여덟 가지의 원자를 통해서 인간 존재를 해석한다.

 

양자물리학에서 볼 때 세상 모든 만물의 본질은 원자이고, 공기가 응축된 경이롭고 복잡한 덩어리인 인간 또한 원자로 구성된 물질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원자가 우리 인생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별종 과학자’ 커트 스테이저는 이 책에서 산소와 수소, 철, 탄소에서 나트륨, 질소, 칼슘, 인에 이르는 8가지 원자를 통해 인간의 존재를 해석한다. 우주와 인간의 아름다운 순환 고리를 시종일관 우아하게 펼쳐놓고 있는 저자는, 인간과 원자의 관계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저자 커트 스테이저는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강의하며 여러 저널에 기고 활동도 겸하고 있는 과학자. <원자, 인간을 완성하다>과 최신간이며 <미래의 지구> 등의 저서를 더 갖고 있다.

 

 

원자 얘기가 나온 김에 원소와 주기율표를 다룬 세 권의 책도 한번 더 적는다. 샘 킨의 <사라진 스푼>(해나무, 2011), 휴 앨더시 윌리엄스의 <원소의 세계사>(알에이치코리아, 2013), 그리고 프리모 레비의 감동적인 회고록 <주기율표>(돌베개, 2007). 중고등학생들이 겨울방학에 읽어봄직하다. 아이한테 권해주려면 나도 찾아봐야겠다...

 

14. 1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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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밀턴 마이어의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갈라파고스, 2014)다. 제목으로는 내용을 어림할 수 없는데, 부제는 '나치 시대 독일인의 삶,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만든 오욕의 역사'.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밀턴 마이어가 1년간 독일에 거주하면서 나치에 가담했던 열 명과 심층적 인터뷰를 통해 완성한 이 책은 나치와 히틀러의 잔혹상이 여전히 생생했던 1955년에 출간되어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나치 시대를 이해하는 필독서로서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소개다.

 

 

'꾸준히 읽히고 있다'는 건 영어판이 아직 절판되지 않은 걸로도 확인된다. 하지만 저자가 언론인 겸 교육가로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교육혁명>(공저) 등의 저서가 있다고 함에도 다른 책은 검색되지 않는다. <짐승의 본성> 같은 책이 눈에 띌 뿐. 아무튼 책의 의의는 무엇인가.

마이어는 예리한 분석과 통찰로 나치즘이 단순히 무기력한 수백만 명 위에 군림하는 악마적인 소수의 독재가 아니라 오히려 다수 대중의 동조와 협력의 산물이었음을 밝혀낸다. 보통사람들의 공범관계를 드러낸 이러한 문제의식은 훗날 한나 아렌트가 아이히만 재판을 참관하면서 제기한 ‘악의 평범성’ ‘무사고’에 깊게 맞닿아 있다. 밀턴 마이어는 다수의 침묵이 멀쩡했던 한 사회가 순식간에 광기의 사회로 돌변하는 데 어떻게 일조할 수 있는지 강력하게 경고하는데,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우려하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나치즘과 나치 시대와 관한 책은 다수가 출간돼 있다.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 같은 화제작에서부터 독일 역사가 데틀레프 포이케르트의 <나치 시대의 일상사>(개마고원, 2003)도 그 일부다. 밀턴 마이어의 책과 겹쳐 읽을 만하다. 더불어,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가져온 가공할 만한 결과는 언제고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나치 시대에만 한정된 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14. 1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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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 2019-02-26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극기 부대를 이해하는데 이 책이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요?
 

몸살인지 열감기인지 하루 종일 앓고서 정신을 차리려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괜히 일을 더 한다는 느낌을 주는 북플 때문인가?). 바로 잠자리에 들 수 없어서 내친 김에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히로세 히로타다의 <인간은 왜 제때 도망치지 못하는가>(모요사, 2014). 부제는 '살아남기 위한 재해심리학'이다. 제목과 부제만으로 어떤 책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우리는 왜 ‘제때 도망치지 못해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가? 주된 이유는 인간심리에 깔려 있는 위험한 덫들 때문이다. 안전함과 편리함에 익숙해진 탓에 위험을 제대로 실감하지 못해 피난 기회를 놓치거나, 다른 사람들이 도망치지 않아서 좀 더 지켜보다가 위험에 빠져버리거나, 안전요원이나 전문가의 말을 과신하는 바람에 안일하게 기다리다가 도망치지 못해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기후변화, 천재지변, 신종 바이러스, 방사능 누출 등 새로운 유형의 재난과 대규모 복합 재난의 발생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위협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 위험천만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안전한 삶을 유지할 것인가? 이 책은 재해 발생 시 가족과 나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뿐만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 매뉴얼까지 제시하고 있어 ‘재난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고 기억해야 할 책이다. 

'재난공화국' 혹은 '안전후진국'으로 낙인이 찍힌 나라에서 사노라면, 이런 류의 서바이벌 매뉴얼은 필독서다(학교 교실마다 비치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유사도서가 없을 수 없는데, 심리적 재난까지 포함한 재난 대처법을 다룬 데이비드 펠드먼 등의 <슈퍼서바이버>(책읽는수요일, 2014), 극한상황에서의 생존법을 다룬 <생존의 한계>(어크로스, 2014) 등이 올해 나온 책들이다. 상시화되고 있는 위험과 재난을 고려하면 이 분야의 분류 카테고리도 곧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열감기는 어떻게 탈출하나...

 

14. 1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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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북플이 생기면서 즐찾이 하루에 수십 명씩 늘어나고 있고(오늘로써 5000명을 가뿐히 넘어섰다) 친구신청도 쇄도하고 있다(오늘로써 120명이 넘어섰다). 가만히 있어도 활동량이 많은 것 같은 착각이 들면서 없던 피로감마저 느껴진다(뭔가 일을 하나 더 하고 있는 듯한 느낌). '너무 많은 친구들' 때문에 생기는 문제를 조만간 겪게 될 듯한데, 오프라인에서는 친구들과 분기에 한번 얼굴 보기도 어려운 처지에서 이렇게 '사교적'이 되다니 알 수 없는 게 온라인 세계다(그럼에도 아직 북플에 익숙지 않아서 검지로 클릭하는 것만 하고 있다). 푸념은 푸념이고, '이주의 책'을 고르려다가 따로 처리해야 할 저자들도 있기에, '이주의 저자'를 한번 더 고르려다가, 다시 마음을 고쳐먹고 두 역사학자만 따로 적기로 한다. 미시사로 유명한 내털리(나탈리) 데이비스와 한국사 연구자 에드워드 슐츠다.

 

 

먼저, 내털리 데이비스. 1928년생이니까 이젠 상당히 연로한 학자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마르탱 게르의 귀향>(지식의풍경, 2000)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주된 연구분야는 16세기 프랑스사다. 16세기 프랑스의 선물 문화를 다룬 <선물의 역사>(서해문집, 2004)와 16세기 한 무슬림 책략가의 삶을 다룬 <책략가의 여행>(푸른역사, 2010)에 이어서 이번에 나온 건 <주변부의 여성들>(길, 2014)로 '17세기 세 여성의 삶'이 부제다. 1995년작.

유럽과 일본의 종교를 비교 연구해 이른바 ‘다중적 근대성’을 주장한 슈무엘 아이젠슈타트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근대화: 비교의 관점>에서 영감을 받아 쓴 이 책에서 그녀는 17세기 세 여성, 즉 독일계 유대인 상인 글리클 바스 유다 라이프, 프랑스 출신 가톨릭 선교사 마리 기야르, 그리고 독일과 네덜란드를 넘나들며 활동한 신교도 화가이자 곤충학자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삶을 비교한다. 유럽 내의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았고 종교, 직업, 계급이 달랐고, 결혼생활의 방식과 자녀 양육에 대한 태도까지도 모두 달랐던 세 여성의 삶을 각각 세밀하게 묘사함으로써 데이비스는 17세기 유럽의 도시 여성의 삶에 열려 있는 가능성과 한계를 가늠하고자 한다.

17세기 여성의 삶이면 문학작품을 통해서는 자세히 들여다보기 어려운데, 그런 난점을 돌파해줄 만한 책으로 여겨진다. 원로 학자의 중후함이 느껴지는 저작.

 

 

그리고 미국의 한국학자로 고려사가 전공인 에드워드 슐츠. <삼국사기> 중 <고구려본기>를 영역하기도 한 학자다. 박사학위논문을 토대로 한 <무신과 문신>(글항아리, 2014)이 이번에 출간됐다. '한국 중세의 무신정권'이 부제.  '무신정권시대'라는 용어로 우리에게 각인된 상식에 어떤 통찰을 더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고려의 무신 집권기를 다룬 책으로, 해외 한국학의 권위자인 에드워드 슐츠 교수의 저작이다. 최충헌의 무신정권을 집중 연구한 저자는 1966년 한국을 처음 방문해 박정희 정권을 보면서 무신정권과의 연결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 그 궁리는 연구로 이어졌다. 저자는 박정희와 최충헌 모두 쿠데타를 일으킨 장본인이지만 경제와 문화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냈고, 또한 군사력으로 정권을 잡은 한계 속에서 문치文治를 중시한 것 역시 공통점으로 꼽는다. 저자는 무신 정권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인 평가들과 달리, 이를 통해 한국 사회가 정치.사회.제도적으로 어떠한 발전을 이루었는가에 초점을 맞춰 역사 해석의 한 관점을 제시한다.

책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는 해외 한국학의 좌장격인 제임스 팔레 교수의 견해를 참고해볼 수 있겠다.

슐츠 교수의 책은 한국사의 중요한 발전이 일어난 1170년부터 한 세기에 걸친 무신정권의 수립 과정에 대한 매우 소중한 해석을 제공한다. 이 기간은 12세기 후반 일본 가마쿠라 막부와 일부 닮았지만, 고려에서 무신은 중앙에서 권력을 장악해 국왕을 무력화시킨 반면 문신은 그대로 관직에 두었다. 이런 무신정권 시대는 한국이 저항하는 세력에 맞서 중국 방식의 문신 통치를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으며, 고려왕조의 관습과 제도가 문신이 통치하며 왕권이 강화되고 유교 규범이 지배한 조선과 어떻게 달랐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은 고려 역사의 이런 중요한 시기를 연구하는 데 획기적인 업적이다.

 

그에 상응할 만한 업적이 국내에는 뭐가 있을까 찾아봤지만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 통사의 일부가 아니면 학술논문들이 좀 있으려나. 말이 '국학'이지 어떤 주제이건 간에 막상 깊이 있는 저작을 찾으려고 하면 빈곤해 보이는 게 여전한 우리의 현실인 듯싶다...

 

14.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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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책이 한권 눈에 띄어서 '이주의 발견'으로 적는다. 마크 바우어라인의 <가장 멍청한 세대>(인물과사상사, 2014). '디지털은 어떻게 미래를 위태롭게 만드는가'란 부제에서 내용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를 입증할 만한 데이터인데, "국가 규모의 방대한 조사·연구 결과와 다양한 전문가 의견은 그의 논지를 견고하게 뒷받침해준다"고 소개돼 있어서 믿어보기로 했다. 저자는 에모리대학 영문과 교수이고, 책은 2009년에 나왔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청림출판, 2011)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원서는 카의 책이 한 해 더 늦게 나왔다). 소개는 이렇다.

 

오늘날 젊은이의 지적 능력은 미디어나 전자 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에 능통하고 정신없이 바쁜 고교 졸업반 아이들에게 몇 가지 지적인 질문을 던지면 어떨 것 같은가. 이들은 대체로 체크카드, 휴대전화, 마이스페이스 페이지, 파트타임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정작 지적인 문제에 부딪히면 뭐든 잘 알 것 같은 당당함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 필립 로스가 2000년 <휴먼 스테인>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가장 멍청한 세대’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인류 역사상 물질적 조건과 지적 성취 사이에 이토록 깊은 골을 만든 집단은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이토록 많은 기술 향상을 겪고도 이토록 보잘것없는 정신 발전을 이룬 이들도 없었다. ‘가장 멍청한 세대’의 탄생과 특징을 지식, 독서, 영상, 학습, 전통, 미래 등 총 6장에 걸쳐 상세히 기술한다.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이 추천사에서 한 마디 거들었는데, "독서의 종말이라는 우울한 주제를 다루었으며, 우리가 시급히 생각해보야야 할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안 그대로 독서를 주제로 강연을 할 때면, 나도 비슷하게 우울한 어조 내지 냉소적 어투로 말할 수밖에 없는데 '가장 멍청한 세대'는 과연 자신의 '멍청함'을 알까, 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상황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많은 걸 기대할 수 없지만, 책과는 담을 쌓은 젊은 세대가 좀 읽어봤으면 싶다...

 

1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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