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에 한 일로 기록해둘 만한 것은 한강 소설 전작 읽기와, 그와 무관하지 않은 한국문학기행이다(한강의 첫 책 <여수의 사랑>을 염두에 두고서 군산, 목포, 장흥, 여수를 찾았다). 각각에 대해 자세히 정리하는 글을 써야 마땅하겠지만, 이런저런 사정이 언제나 복병처럼 가로막는다. 간단하게는 글을 쓸 에너지가 없다(여수 향일암에 오르는 일도 계단길에서 포기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는 적어두는 게 좋겠다. 한강 문학의 여정에 대한 것.

한강의 책은 동화와 산문집을 제외하면 총 12권이다. 시집 1권, 소설집 3권, 그리고 장편소설 8권이다(처음 연작소설이라고 나왔던 <채식주의자>를 한강은 ‘장편소설‘로 분류하며 개정판도 그렇게 나왔다. 장편이라기엔 좀 짧은 <흰>은 ‘한강 소설‘로 표기/분류된다). 전작 읽기에서 나의 관심사는 이 작품들 간의 연결성이었다. 어떻게하여 <소년이 온다>(<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속편이라고도 볼 수 있기에 같이 묶인다)에 이르게 되는가. <소년>과 <작별>이 한강 문학의 정점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적을 것이다). 1994년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한강은 2년간 일곱 편의 단편을 몰아 써서 이듬해 첫 소설집을 묶어냈다(개정판에서는 한편을 빼고 여섯 편만 수록한다).

인상적인 것은 곧바로 장편소설로 넘어간 점. 3년간의 시간을 쏟아부어서 첫번째 장편 <검은 사슴>을 펴냄으로써 한강은 작가로서 교두보를 확보한다. 이른바 출발점이다. 그에 이어지는 (장편)소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검은 사슴>(1998)
<그대의 차가운 손>(2002)
<채식주의자>(2007)
<바람이 분다, 가라>(2010)
<희랍어 시간>(2011)
<소년이 온다>(2014)
<흰>(2016)
<작별하지 않는다>(2021)

알려진 대로 <채식주의자>(영어판 2015)로 국제부커상(2016)을, <작별하지 않는다>(불어판 2023)로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은 기세를 몰아 2024년에 그간의 성취에 대한 찬사와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다수의 작품이 검토대상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결정적인 건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 두 작품이었을 걸로 보인다(참고로 스웨덴어로는 <소년이 온다><채식주의자><흰><작별하지 않는다>. 네 편이 번역돼 있다). 물론 한강 소설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촉발한 작품으로서<채식주의자>의 의의도 빼놓을 수 없다.

<채식주의자>가 기폭제가 되었고 영어판을 포함한 대부분의 번역판들에서 <소년이 온다>(영어판 2016)가 그 뒤를 이었기에 한강 독서 순서는 <채식><소년><흰><작별> 순일 가능성이 높다(<희랍어>가 그 사이에 끼워넣어진다). 그렇지만 전작 읽기를 진행하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은 <채식주의자>보다는 <바람이 분디>가 한강 소설의 전환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불어판으론 예외적이게도 <바람이 분다>가 <채식주의자>보다 먼저 나왔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삶에 대한 긍정과 의지를 주제로 한 <바람이 분다>가 나무-되기를 통해 (동물적) 삶에 대한 부정과 거부를 주제화하고 있는 <채식주의자>보다는 이후 작품들의 주제와 더 잘 호응한다. 내가 보기에 <채식주의자>(단편 <내 여자의 열매>의 연장선에 있다)와 <바람이 분다>는 서로 이어진다기보다는 주제적으로 맞서는 작품이다. 나는 이를 ‘한강 소설의 두 계열‘이라고도 표현했다.

한강 문학은 궁극적으로(결과론적이라 하더라도) <소년>에 이르는 여정이다. 즉 80년 광주(5.18)와 등치될 수 있는 <소년>이 한강의 소설들을 읽고 평가하는 시금석인데, 한강 문학 안에서는 <여수의 사랑>(특히 표제작)과 <검은 사슴>에서 <소년>과 <작별>에 이르는 여정이고, 80년 광주의 소설화라는 맥락에서 보면 1988년에 나란히 발표된 홍희담의 <깃발>과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점 꽃잎이 지고>에서 임철우의 <봄날>(1997)을 거쳐서 <소년이 온다>에 이르는 여정이다. 이 작품들이 한강 문학을 꽃피우기 위해 봄부터 울어댄 소쩍새들이다.

<창작과 비평>에 발표된 <깃발>의 리얼리즘과 <문학과 사회>(구<문학과 지성>)에 발표된 <꽃잎>의 모더니즘이 창비에서 나온 <소년>에서 화해하고 융합되는 점도 음미해볼 만한 사실이다. 1970년대 이후 두 계간지를 중심으로 대립되어 왔던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원융과 회통이 한강의 <소년>에서 달성된 걸로 보면 한국문학의 장관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한강 전작 읽기를 통해서 내가 갖게 된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 봄학기에 1970년 이후 한국문학을 다시 읽어나가려는 동기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로쟈 >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7넨 전 페이퍼다. 봄학기에는 강의일정에도 넣은 터라 오랜만에 기형도 시도 다시 읽어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시인들의 평전을 기다리며

6년 전 페이퍼다. 올해가 <진달래꽃> 출간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관련서들이 나올 듯싶은데 소월 평전도 포함돼 있기를 기대한다. 한국현대시사의 첫단추라는 의미에서도 건너뛸 수 없어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노인과 바다와 코히마르

7년전 페이퍼다. 아직 겨울이지만 미리 짜놓은 여름학기 일정 가운데는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의 대표작 읽기도 포함돼 있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미국문학기행을 준비하는 의미도 있다(헤밍웨이 문학기행은 이미 스페인의 론다에서 시작돼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서점을 경유한 상태다). 미국동부가 우선적인 고려 대상이어서 피츠제럴드의 장소를 먼저 찾게 될지도. 최근에 단편선집으로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새로 번역돼 나온 것도 계기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로쟈 > 춘향전 다시 읽기

5년 전 페이퍼다. 2월에 한국근대문학 강의에서 <춘향전>을 다시 다루게 돼 ‘리마인드‘ 차원에서 불러놓는다. 오수창 교수의 책도 서가에서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