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버지니아 울프 이야기

6년 전에 쓴 칼럼이다. 그 사이에 울프 전집도 완간되었고 나도 강의에서 전체 작품의 2/3를 읽었다. 기회가 생긴다면 전작 읽기도 가능하겠다. 충분히 많이 연구된 작가이지만 다른 해석이 가능한지 살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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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미국의 송어낚시와 비행공포

7년 전 페이퍼다. <비행 공포>는 내년 봄학기 강의에서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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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한겨레 실은 '언어의 경계에서' 칼럼을 옮겨놓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에 즈음하여 1964년 노벨문학상 거부로 화제가 되었던 사르트르를 다시 떠올렸다. 단편 <벽> 이야기를 거기에 덧붙였다...

















한겨레(20. 10. 16) 우연 앞에서 터지는 폭소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지난주에 있었다.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에게 돌아갔는데 아직 단독 시집이 한권도 소개되지 않은 터라 한국 독자들에게는 미지의 시인이다. 미국 시인으로는 2016년 가수 밥 딜런이 수상한 이후 4년 만이다. 평소 강의에서 미국 작가들의 빼어난 소설들을 읽으며 수상가능성을 점쳐온 처지에서는 조금 머쓱한 결과다. 미국 국적으로는 소설가 대신 시인(가수)이 연거푸 노벨상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문학을 평가하는 궁극의 잣대가 될 수는 없지만 1901년 첫 수상자를 배출한 이래 노벨문학상은 나름의 권위가 되었고 이즈음에는 프랑스의 공쿠르상, 영국의 부커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지목된다. 그렇다면 노벨문학상을 기준으로 문학 최강국은 어디일까? 유럽 편중적이라는 비판은 감안하고서 살펴보면 단연 프랑스가 돋보인다. 제1회 수상자인(그러나 거의 기억되지 않는) 프랑스 시인 쉴리 프뤼돔을 포함하여 15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올 수상자를 포함 13명으로 미국이 그 뒤를 잇는다). 국내에서 많이 읽히는 상당수 프랑스 작가들이 노벨문학상이라는 후광도 거느리고 있는 것이다.

문학적 라이벌이기도 했던 카뮈(1957년 수상)보다는 늦게 수상했지만 철학자 사르트르(1964년 수상)도 알려진 대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수상 거부자다. 상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다던가. 그렇지만 노벨상은 수상을 거부한다고 취소되는 건 아니어서 사르트르는 여전히 노벨상을 거부한 수상작가로 기록된다. 게다가 뒷이야기에 따르면 상금은 받았다고도 하니 수상 거부의 진의도 따로 따져볼 문제다.


노벨문학상은 작품이 아니라 작가에게 주어지는 상이기에 수상작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간혹 작가의 업적으로 특정 작품이 지목된다 하더라도 원칙상으로는 수상 작가의 모든 작품이 ‘수상작’으로 호명될 수 있다. 사르트르의 경우 1964년에 발표된 자서전 <말>이 수상작으로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베르그송 같은 철학자의 수상 전례도 고려하면 사르트르의 문학작품뿐 아니라 <존재와 무> 같은 철학서도 수상작 범주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도 싶다.


사르트르의 문학작품으로는 소설 <구토>와 <닫힌 문> <더러운 손> 등의 희곡 작품이 유명한데, 다섯 편의 단편을 묶은 단편집 <벽>(1939)도 거기에 더할 수 있다. 표제작 ‘벽’은 스페인 내전기에 적에게 포로가 된 주인공 파블로가 총살 직전에 운명의 아이러니로 살아남게 된 이야기다. 아나키스트 조직의 일원인 그는 동료의 은신처를 고발하면 총살을 면해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파블로는 특별한 이유 없이, 동료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명분에서가 아니라 순수한 고집으로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총살 집행 직전에 장난으로 엉뚱한 은신처를 댄다.


그런데 적을 골탕 먹이려는 의도와 달리 파블로는 살아남는다. 얄궂게도 동료가 원래의 은신처에서 묘지로 옮겨갔는데, 파블로가 둘러대면서 가보라고 한 장소가 묘지였던 것이다. 황당한 자초지종을 알게 된 파블로가 눈물이 날 때까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는 게 이야기의 결말이다. 흔히 사르트르를 자유의 철학자라고 일컫지만 ‘벽’에서 읽게 되는 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의 놀림감이 된 인간이다. 파블로에게 더 나은 선택이 가능했을까? 자유와 그에 대한 책임이라는 사르트르의 윤리적 교설이 파블로의 상황에도 적용 가능한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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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1398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강의에서 다시 읽으면서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이야기가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주간경향(20. 10. 19) 공쿠르상 수상한 로맹 가리의 또 다른 정체성


한 작가에게 평생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공쿠르상을 두 번 수상한 전무후무한 작가로 프랑스문학사에 기록된 로맹 가리. 그렇지만 사정은 좀 더 복잡하다. 1956년 공쿠르상은 <하늘의 뿌리>의 작가 로맹 가리에게 주어졌지만, 1975년에는 <자기 앞의 생>의 작가 에밀 아자르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에밀 아자르가 실상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이 공개되는 건 1980년에 그가 권총 자살을 한 이후다. 유서처럼 남긴 글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에밀 아자르에 얽힌 비밀을 모두 털어놓는다.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들의 저작권자임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그렇게 하여 에밀 아자르라는 가면이 제거된 것인가? 일견 그렇지만 작가로서 로맹 가리의 ‘일인다역’(그는 여러 개의 필명을 갖고 있었다)은 한편으로 작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다시 던지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다”고 고백하는 그는 로맹 가리의 작품과 에밀 아자르의 작품을 구분해서 썼다. 달리 말하면 <자기 앞의 생>은 로맹 가리라는 이름으로는 발표될 수 없는, 쓰일 수 없는 소설이었다. 단순한 변장이라기보다는 또 다른 정체성이었다고 할까.

로맹 가리에게 소설이란 항상 새로운 변신을 가능하게 해주는 강력한 수단이었고, 그는 아자르라는 이름과 함께 작가로서 새롭게 탄생하는 경험을 한다. 전성기가 지난 로맹 가리가 쇠락해가는 작가였다면, 젊은 에밀 아자르는 신생의 작가였다. 이러한 완벽한 분리 덕분에 로맹 가리의 작품을 혹평한 비평가가 아자르의 작품은 치켜세우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로맹 가리 자신은 그러한 상황을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때문에 <자기 앞의 생>의 작가가 누구인가를 물을 때 여전히 우리는 로맹 가리에 앞서 에밀 아자르를 떠올리게 된다. 실제 저자가 밝혀진 뒤에도 아자르는 가면 이상의 무게감을 갖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이긴 하지만, 로맹 가리의 어떤 작품들보다 먼저 <자기 앞의 생>을 읽었기에 내게 로맹 가리는 에밀 아자르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의 작품이 대부분 한국어로 번역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독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작품은 <자기 앞의 생>이다. 로맹 가리라는 이름을 굳이 참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아자르와 <자기 앞의 생>은 독자적인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럼에도 <자기 앞의 생>에 대해 로맹 가리가 어떤 ‘지분’을 갖는다면, 그것은 주인공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모델과 관련해서다.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에서 로맹 가리는 그 두 인물이 아들 디에고와 그를 돌봐준 스페인 가정부를 모델로 했다고 밝힌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성장해가는 모모와 창녀들의 아이를 맡아서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 사이의 혈육을 넘어선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린 <자기 앞의 생>은 로맹 가리 시점에서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작품으로 탈바꿈한다. 영화배우 진 세버그와의 사이에서 얻은 유일한 혈육인 디에고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로서의 죄책감을 담은 소설로 읽히기 때문인데, 모모를 맡겼다가 11년 만에 찾아온 아버지 유세프 카디르에게서 로맹 가리의 모습이 중첩돼 읽히는 건 불가피하다. 그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아내를 살해하고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가 아들 모모를 찾아왔지만,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심장병으로 급사한다. 로맹 가리가 <자기 앞의 생>을 아들에게 남기고 세상을 떠난 건 5년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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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부터 적으려던 페이퍼를 늦게라도 적는다. 미국문학에 대한 것이다. 도서관 강좌에서 20세기 미국문학 강의를 시작하며 케이트 쇼팽 대신에 시어도어 드라이저부터 시작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를 꺼냈는데, 드라이저의 대표작 <아메리카의 비극>(을유문화사) 새 번역본이 나왔다.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오면 강의에서 다루려고 벼르던 작품 가운데 하나다.


 














미국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 작가 드라이저에 대해서는 한 차례 페이퍼에서 다룬 적이 있는 듯싶은데, 대표작이 <시스터 캐리>(1900)와 <아메리카의 비극>(1925)다. 















두 작품의 다른 선택지로는 범우사판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대표작이 번역돼 나오니 욕심을 더 부리게 된다. 그 사이의 작품들 가운데 두어 편은 더 소개되어도 좋겠다는 것. 그에 해당하는 작품이 아래 네 편이다. 


<제니 게르하르트>(1911)

<자본가>(1912)

<거인>(1914)

<천재>(1915)
















이 가운데 <자본가>와 <거인>은 '욕망 3부작' 가운데 두편으로 마지막 작품은 <성채>(1947)로 드라이저 사후에 출간된다. 이 작품들을 꼽은 건 1910년대 미국문학의 자리가 비어 있어서다. 통상 미국문학의 전성기로 1920년대로 넘어가는데, 나로선 1910년대 문학에 대해서 읽고 싶은 것. 게다가 미국식 자본주의를 해부하고 있는 '욕망 3부작'은 의미 있는 시도로 여겨진다(이 경우는 실패작이라 하더라도 의미가 있다). 최소한 <자본가> 정도는 번역되면 좋겠다. 


1920년대 미국문학은 보통 피츠제럴드의 <낙원의 이편>부터 시작해서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1926)을 거쳐서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1929)로 마무리된다. <위대한 개츠비>(1925)와 <무기여 잘 있거라>(1929) 등이 20년대 대표작들. 
















그렇지만 이 목록에서 미국 사회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이 늘 아쉽게 여겨졌다(<위대한 개츠비> 정도가 사회소설 범주에 들어간다). 그래서 떠올린 작가가 싱클레어 루이스다. 미국 작가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1930)을 수상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특이할 정도로 비평적 주목에서 빠져 있는 대표적 작가이기도 하다. 이전에 한번 적었는데, 루이스의 자품으론 1920년대작들이 중요하다(1930년에 노벨상을 수상했으니 당연하기도 하다).


현재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우리의 미스터 렌>(1914)

<배빗>(1922)

<있을 수 없는 일이야>(1935) 

















세 편이다. <우리의 미스터 렌>이 첫 장편. 그렇지만 언젠가 적은 대로 대표작 <메인 스트리트>가아직 소개되지 않은 건 유감이다. 미국문학 강의에서 루이스를 다룬다면 아래 세 편이 후보다. 


<메인 스트리트>(1920)

<배빗>(1922)

<에로스미스>(1925)
















이 세 편은 피츠제럴드의 첫 세 장편과 겨룸직하다. 


<낙원의 이편>(1920)

<아름답고 저주받은 사람들>(1922)

<위대한 개츠비>(1925)


단순하게 비교하자면, 피츠제럴드 소설이 '인물'에 초점을 맞춘다면 루이스는 '사회'에 주목한다. 그래서 루이스를 배제하고 1920년대 미국문학사를 다루는 건 뭔가 부당하게 여겨진다. 순번상 내년이나 후년에 미국문학 강의를 다시 하게 될 것 같은데, 최소한 드라이저의 <자본가>나 루이스의 <메인 스트리트> 정도는 강의에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독자이자 강사로서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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