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개편 이후 한겨레 북리뷰가 토요일자로 나오는 모양이다. 개인적으론 유감스럽다. 아파트 주변에 신문 가판대가 없기 때문에(있더라도 한겨레는 잘 안 갖다놓는다) 토요일엔 신문을 사서 읽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으로만 기사를 읽어야 하는데 여러 모로 내 취향에는 맞지 않는 일이다. 하는 수 없는 노릇이지만. 토요일자 기사 중에서 최재봉 기자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근대문학의 종언>과 한국문단에 관한 것인데, 어제오늘 '가라니타 고진' 퍼레이드를 완결짓는 의미로 제목은 '가라타니 고진과 백낙청'이라고 붙인다.  

한겨레(07. 05. 26) '근대문학의 종언’에 한국문단은 답하라

“하나의 유령이 한국문단을 배회하고 있다.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유령이. 미디어, 출판자본, 문학 전공 교수, 편집자, 문학평론가, 시인, 소설가 등등 문학을 둘러싼 모든 권력의 담지자들이 이 유령과 맞서기 위해 신성동맹을 체결했다.”

마르크스·엥겔스의 <공산당선언>의 도입부를 비튼 이 구절은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숙명여대 인문학부)가 영미문학연구회의 기관지 <안과 밖>제22호(2007년 상반기호)에 쓴 글의 일부다. ‘추억과 집착-<근대문학의 종언>과 그 논의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단 이 글은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의 저서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한국 문단의 반응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면서 한국 문학의 반성과 갱신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사회적으로 시급한 문제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근대문학의 ‘끝장’을 선언한 가라타니의 주장에 대해 국내의 주류 문단은 시큰둥하지 않으면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권 교수는 그러한 태도가 솔직하지 못하거나 오해에 기반한 것이라고 본다. 그는 “현실에 대한 대응력을 상실한 제도적인 차원의 관성적인 문학”에 대한 가라타니의 거시적 비판은 받아들이되, “미시적인 차원에서는 여전히 현실과 체제에 대한 비판적 개입을 시도하는 소수파 문인들과 적극적인 비평적 대화를 수행”해야 할 필요를 역설한다.

<근대문학의 종언>의 메아리는 비평 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 여름호에서도 들을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이라는 이 잡지의 기획에는 세 사람의 평론가가 글을 보탰다. 이 가운데서도 문제의 책 <근대문학의 종언>과 가라타니의 또 다른 저서 <언어와 비극>을 번역한 조영일씨의 글이 흥미롭다. ‘비평의 노년-가라타니 고진과 백낙청’이라는 제목의 이 장문의 글은 가라타니의 ‘근대문학의 종언’ 테제가 출현하기까지의 과정을 한국 문단과의 교류 속에서 살펴보고, 비슷한 연배의 평론가인 가라타니와 백낙청의 만남과 헤어짐의 역사를 통해 그 테제가 한국의 주류 문단에 던지는 메시지를 헤아린다.

가라타니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한·일 양국을 오가며 진행된 ‘한일작가회의’에 꾸준히 참석했다. 조씨에 따르면 가라타니는 이미 1993년의 제2차 회의에서 발표한 ‘한국과 일본의 문학’이라는 글에서 ‘문학의 종언’ 테제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문지’(출판사 문학과지성사) 계열 문인들로 이루어진 한국쪽 파트너들은 그의 주장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문지의 ‘문학주의’에 실망한 가라타니는 이후 백낙청 교수로 대표되는 ‘창비’ 쪽과 접촉해 보지만, 결국 마찬가지의 실망을 경험하고 한-일 문학교류에서 손을 떼고 만다.

결론적으로 조씨는 백 교수가 최근 저서 <한국문학의 보람>(2006)에서 강조한 ‘한국문학의 보람’이란 곧 가라타니가 경고한 ‘문학의 종언’의 역설적인 증거일 뿐이라고 본다. “완전히 ‘문학화’된(즉 비평이 종언을 고한) 한국문학에서 문학의 적은 영화나 게임이 아니라 문학 자신”이라고 그는 일갈한다. ‘‘창비’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을 자처하는 그가 “‘창비’ 슈퍼스타즈의 팬클럽 역시 해체할 때가 된 것”이라고 주장할 때 그 어조에서는 비장함과 아울러 씁쓸한 비애의 정조가 묻어난다. 동맹이냐 해체냐. 가라타니의 테제는 지금 한국 문단을 향해 엄중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07. 05. 27.

P.S. 기사에서 언급된 조영일씨의 장문의 비평문은 다음카페 비평고원(http://cafe.daum.net/9876)의 '소조의 바리에테' 카테고리에서 읽어볼 수 있다('창비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란 글은 '화요논평'을 참조).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부리 2007-05-2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시 착각을... 가라타니 고진 그래가지고 표절 얘긴 줄 알았어요 글구 가라타니가 아주 옛날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97년이라 으음. 글구 전 개인적으로 권성우의 말엔 동의하는 편이어요. 좋아한답니다.

로쟈 2007-05-2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진의 책들은 재미있습니다. 일독해보셔도 좋겠습니다...
 

남들 쉰다는 주말에 왜 이리 할일이 많은지 모르겠다(하긴 주로 방구석에 있으니 바쁘다는 티도 안 나지만). 어느새 자정이 다가오고 있지만, '자정'의 의미도 예전같지 않다. 9시에 자고 6시에 일어나던 때가 인생의 어느 시절에는 분명히 있었던 듯한데 요즘은 아이가 잘 자는 걸로 대신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야지. '작가와 문학사이' 이번주는 지난 연말 '자정의 픽션'론을 들고 나온 작가 박형서 편이로군. 자정엔 픽션을 읽으란 얘기인가?..  

경향신문(07. 05. 26) [작가와 문학사이](19) 박형서-‘무색함’ 뒤의 새로움이여

이야기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다. 머리에서 하루 200만배럴의 원유에 해당하는 고농축 유분이 흘러나오는 두유(頭油)청년에 관한 황당한 이야기(‘두유전쟁’), 화재 현장에서 많은 인명을 구해낸 의로운 소방대원들이 사실은 불에 탄 신체의 일부를 즐겨먹는 엽기적인 집단이라는 기이한 이야기(‘불 끄는 자들의 도시’), 이 세상에는 망자들이 저승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노란 육교’), 바위구멍에 머리를 박고 죽게 된 어느 마을 사람들의 기막힌 이야기(‘너의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 여항(閭巷)의 가담항설(街談巷說)이나 전기수(傳奇수)의 넉살좋은 입담을 연상시키는 이 이야기들을 박형서는 ‘자정의 픽션’이라고 부른다. 작가의 말을 빌려 이에 관해 조금 들어보자.

“내가 생각하는 ‘자정’이란 가라타니 고진이 그리워하는 ‘요란했던 근대’ 이후의 시간이다. 동시에 서사문학이라는 대가족 안에서 소설이 태동하던, 태아처럼 웅크린 채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홀로 자문해보던 근대 이전의 저 먼 ‘새벽’을 의미하기도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정’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얕은 꿈을 꾸거나 혹은 잠을 이루지 못해 고단하게 중얼거리는 시간이다. 어느 쪽이든, 아침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여기서 ‘자정’은 근대 이후(post-modern)이면서 근대 이전(pre-modern)을 의미한다. 즉 근대 이후의 시간은 근대 이전의 시간과 만난다. 박형서는 이 구부러진 원환의 시간띠 속에서 바로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수 있는 때라고 말하는 듯하다. 모든 시간은 반복된다.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이 근대 이전의 이야기들, 우리가 패설(稗說)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연상케 한 데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첫번째 단편집 ‘토끼를 기르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몇 가지 것들’에 이어 최근 ‘자정의 픽션’이라는 단편집을 출간한 박형서에게 소설은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은 흔히 단편소설을 읽었을 때 얻게 되는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이나 어떠한 정서적 여운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 아니 주지 않는다. 작가는 최소한의 주제의식조차 거부한다.

그는 ‘은근히 겁주고 얄밉게 웃다가 말 돌리고, 상대가 모르는 예를 들면서 정신없이 들이대고, 무턱대고 말허리를 자르더니 갑자기 반말하면서 몰아세우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딴청을 부린다.’(‘논쟁의 기술’) 이 ‘막나가기’ 신공 끝에 누군가는 “피범벅이 되어 떡볶이마냥” 나뒹굴지만, 박장대소하며 웃던 독자들은 “그래서, 뭐?” 하면서 어깨를 으쓱한다. 그러거나 말거나다. 누군가의 말처럼 거장들(루카치 골드만 지라르 등등)의 소설에 관한 모모한 정의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이런 무색한 순간이야말로 작가에게는 새로운 소설의 아침을 열 수 있는 시간이다. 이 모든 무색함이야말로 작가가 의도한 것임을 잊지 말자. 만약 굳이 박형서 소설에서 주제를 끄집어낼 수 있다면 아마도 새로운 소설에 대한 이런 무색한 열망이 아닐까. 그것은 소설에 부과된 규범과 문법을 무색케 하면서 자기 자신마저도 하찮은 농담거리로 무색케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순수 서정소설을 대표하는 주요섭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19금(禁)의 음란물로 만들어버린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가장 노골적이면서도 자기비하적으로 연출한 소설이다. 여기서 노골적이라 하는 것은 ‘달걀’을 ‘불알’로 재해석하거나 ‘달걀먹기’가 옥희와 옥희 어머니가 ‘사랑손님’과 벌이는 성교행위임을 폭로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소설이 노골적인 이유는 한국문학의 연구풍토와 모모한 문학론들에 대한 경멸과 야유를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멸과 야유는 작가 자신에게도 그대로 돌아간다. 박형서의 이 거침없으면서도 다소 우울한 시도가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끝까지 가보기를….(심진경|문학평론가)

07. 05. 26.

P.S. '소설'이라고 통칭되고 있지만 작가가 쓴 건 '단편'들, 곧 '짧은 이야기(short story)'들이고, 이건 '거장들(루카치 골드만 지라르 등등)'이 정의한 소설(로만)과 무관하다. 내 생각에 소설에 관한 담론들의 많은 혼선/혼동이 이 두 장르/종류를 구별하지 않아서 빚어진다. 재미있고 유쾌한 '이야기들'은 근대 이전에도 있었고, 근대 이후에도 있을 것이다. 정오와 자정을 따로 가리지 않고. 박형서의 이야기들이 예증하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 이상의 거창한 의미부여는 좀 음란해 보인다. 아래는 <자정의 픽션> 출간 당시의 서평기사 중 하나이다.

동아알보(06. 11. 04) "소설이란 원래 재미를 주는 거짓말”

소설에 자정의 시간이 오는가? 젊은 작가 박형서(34·사진) 씨의 새 단편소설집 ‘자정의 픽션’(문학과지성사)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이다. 박 씨는 ‘독특하고 극단적인 상상력’으로 호평받아 온 젊은 작가. 새 소설집에서 그는 특유의 상상력에 포복절도할 유머를 섞어 놓았다.

이를테면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라는 제목으로 논문 형식의 단편소설을 썼다. 주요섭의 유명한 단편 ‘사랑손님과 어머니’가 실은 사랑손님과 딸 옥희의 성애를 교묘하게 다뤘다는 주장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등 유명한 저서의 부분 부분을 이어 모은 실험도 주목할 만하거니와, 독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에 대한 작가의 답변이 흥미롭다. “요즘같이 바쁜 세상에 독자들이 메시지를 찾아가면서 읽겠느냐”는 것. ‘그렇다면 독자는 무엇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더욱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재미요.”

이야기꾼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이야기를 한다는, 소설이 출발했던 때의 모습을 박 씨는 새롭게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설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 ‘거짓말’이 아니었던가. 사실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에서 아버지뻘 되는 사랑손님과 소녀 옥희의 원조교제로 얘기를 끌어가는 것도 황당하지만, ‘사랑손님이 자신의 달걀을 옥희에게 주는 행위’를 ‘사랑손님이 옥희에게 정액을 발사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부분에 이르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배를 잡게 된다.

“저는요, 작가는 결국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한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요. 소설을 보고 뭘 의미할까, 뭘 상징할까 생각하는 걸 말리지는 않겠지만,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를 쓴다는 거예요.”

또 다른 단편 ‘논쟁의 기술’은 말싸움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소설. ‘유리한 주제의 선정’ ‘은근히 겁주기’ ‘상대가 모르는 예를 들기’ 등 실전에 도움 되는 기술을 소제목으로 나열하고 부합하는 사례들을 유쾌하게 늘어놓는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나 논쟁이 벌어지잖아요. 억지도 말만 잘하면 성립되고. 그런 모습을 비꼰 것일 수도 있겠는데,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진 마시고 재미있게 읽어주시면 제 바람이 이뤄지는 것이죠.”

소설에 자정의 시간이 오는가에 대한 그의 답변은 “그렇다”이다. “그러나 자정은 하루의 끝이 아니라 새 아침이 시작되는 시간”이라고 작가는 설명한다. 순도 높은 재미로 가득 찬 소설 쓰기로 그는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고 있다.(김지영 기자)

P.S.2. 영화를 맞수를 상대하는 작가들이 드물지 않듯이 때론 개콘을 라이벌로 꼽는 작가도 있는 법. 그의 선전을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몽실언니>와 <강아지똥>의 작가 권정생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제 일이다. <강아지똥>은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국민동화이고, <몽실언니>는 언젠가 TV 드라마로 방영된 바 있어서 나처럼 직접 책을 읽지 않은 독자에게도 낯설지 않다. 하지만 내가 가장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오래전에 읽은 한국일보의 '문학기행' 연재 가운데 <몽실언니> 편이었다. 그걸 옮겨놓으려고 하다가 곁다리로 오마이뉴스의 인터뷰기사까지 옮겨온다(작년 가을 한겨레의 기사는 http://www.hani.co.kr/arti/society/religious/168507.html). '권정생의 삶과 문학'이란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지만 사실 선생의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건 다 웅변되는 듯하다. 나머지는 사설이다.  

국민일보(07. 05. 18) 몽실언니’ 작가 권정생씨 타계

‘몽실언니’의 작가인 아동문학가 권정생씨가 17일 지병으로 타계했다. 향년 70세. 고인은 20대부터 만성심부전, 결핵 등으로 오랜 기간 투병했으며 최근 3∼4년간 병세가 악화돼 작품 활동을 접고 요양을 해오다 16일 입원했었다.

1937년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고인은 광복 직후인 1946년 외가가 있는 경북 청송으로 귀국했지만 가난으로 인해 가족들과 헤어져 어렸을 때부터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 등을 전전했다. 이후 경북 지역을 떠돌다 67년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하여 그 마을 교회 문간방에서 살며 종지기가 되었다.

69년 동화 ‘강아지 똥’을 발표해 월간 ‘기독교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을 받으며 동화작가의 삶을 시작한 그는 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무명저고리와 엄마’가 당선되었고, 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받았다. 80년대 초부터 교회 뒤 빌뱅이언덕 밑에 작은 흙집을 짓고 살았다.

그의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다.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북녘 형제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깜둥바가지, 벙어리, 바보, 거지, 장애인, 외로운 노인, 시궁창에 떨어져 썩어가는 똘배, 강아지 똥 등 그가 그려내는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힘 없고 약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죽여 남을 살려냄으로써 결국 영원히 사는 그리스도의 삶을 작품 속에 그려냈다.

‘몽실언니’ 외에도 ‘점득이네’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시집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무명저고리와 엄마’,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뒹굴면서’ ‘우리들의 하느님’ 등이 있다. 84년 출간된 ‘몽실언니’는 현재까지 60여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아동문학계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1969), 제22회 새싹문학상(1995) 등을 수상했다.



유족은 없으며 장례는 6·15 민족문학인협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가 공동 주관하는 민족문학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빈소는 안동병원, 발인은 20일 오전 9시, 장지는 생가가 있는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이다.(정철훈 기자)

한국일보(00. 05. 22) [문학기행](28) 권정생 소년소설 '몽실언니'

소년 소설 ‘몽실언니’는 1984년 초판이 나온 이후 42판을 거듭 발행했다. 소년들이 너나없이 국·영·수나 디지털로 내몰리는 시대에 ‘몽실언니’의 성공은 놀라운 문학현상으로 꼽힌다. 그리고 소년소설 ‘몽실언니’를 읽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소년이 아니라 50대를 넘긴 초로의 독자들이라는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보인다.

언니, 오빠, 아버지, 어머니처럼 인간의 생물학적 관계를 지칭하는 모국어에서는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힘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국어 호칭들 속에서는 그 운명의 힘 만큼의 슬픔과 아름다움이 숨어있다. 언니는 어머니보다 가깝고, 오빠는 아버지보다 가깝다. ‘몽실언니’는 아직도 어린 거지 ‘언니’가 삶과 시대의 고난을 자신의 생애 속으로 받아들여가면서 이 세상의 ‘언니’로 넓어져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인간은 어떠한 지경에서도 삶을 부정할 수 없고, 이 세상의 선과 악은 어느 편의 것이 아니라 끝끝내 개인의 것이며, 이념과 총칼로 무장한 욕망의 충돌 속에서 참혹하게 부서져가면서도 인간은 그 역사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이 몽실이의 언니된 마음이다.

‘몽실언니’는 비참과 불행의 연속이고, 그 소설 안에서 아무런 행복한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몽실언니’는 결국 해피엔딩이다. ‘몽실언니’의 배경은 어느 특정한 마을과 산천이라기보다는 작가 권정생의 생애이다. 그의 한 평생의 가난과 외로움은 가히 설화적이다. 그리고 지어낸 이야기만 같은 그 설화적 고통은 지난 한 세기 동안 수많은 한국인들의 현실이었다. 이 시대는 이미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떠한 상처가 남아있는가를 되돌아보려고 하지 않지만, 많은 할머니들이 울면서 이 소년소설을 읽는다.

작가 권정생은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 산비탈 아래 토굴 같은 흙집에서 혼자 산다. 이 흙집으로 오기 전에는 마을 교회 문간방에 기거하면서 교회 종지기 노릇을 했다. 신장결핵으로 34년 동안 주머니로 소변을 받아낸다. “한달 생활비가 5만원이면 좀 빠듯하고 10만원이면 너무 많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작가 권정생을 “억수로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외로운 노인이나 슬픈 일을 당한 할머니들이 그를 찾아와 하소연도 하고 넋두리도 한다. 술집 아줌마들이 자신의 고통으로 ‘몽실언니’의 고통을 이해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오기도 한다. 마을 할머니들이 모여서 ‘몽실언니’를 읽는다. 글을 잘 읽고 눈이 밝은 할머니가 소리내서 읽으면 다른 할머니들은 숨죽여가며 듣는다. ‘몽실언니’는 이제 소년소설이 아니다.

권정생은 1930년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인 노무자의 아들로 도쿄 호마찌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몽실언니’는 그 빈민가에서 살았던 가엾은 아이들의 모습이라고 권정생은 말했다. 그는 보릿고개가 고통스러웠던 1946년 봄에 외가가 있던 경북 청송으로 돌아왔다. 먹을 것이 없어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는 어렸을 때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담배장수를 했고 여러 가게의 점원 노릇을 했다. 온 나라에 결핵이 퍼져있었다.

객지에 돈벌러 나갔던 아이들이 결핵에 걸려 고향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아이들은 이내 빨간 피를 토하며 죽었다. 그는 늑막염, 폐결핵, 방광결핵, 신장결핵으로 온 몸이 망가져갔다. 대구, 김천, 상주, 문경을 떠돌며 걸식을 했고, 때때로 산길에 쓰러져 혼절했다. 1967년에 지금 사는 조탑동 마을로 돌아와 정착했다. 그는 기자에게 자신의 생애의 일들을 상술하기를 거절했다. “제발 날 좀 힘들게 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래서 그의 전기적 사실에 관한 기술은 그가 이미 글로 발표한 내용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의 비참과 구걸에 대한 사실적 기술이 아니라 그가 “그때 나는 따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라고 말하고 있는 대목일 것이다. 그리고 이 대목이 아마도 소설 ‘몽실언니’의 발단이고 귀결인 것으로 보인다.

몽실이는 ‘거지’로서 해방된 조국에 돌아왔다. 언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어렸지만, 어린 몽실이가 어른들의 언니 노릇을 해낸다. 소설 속에서 몽실이는 살강마을(안동군 임하면, 현재는 수몰됨)에 살다가 단지 밥을 얻어먹기 위해 남편을 바꾸는 어머니를 따라서 댓골마을(현 안동시 화목리)로 간다. 몽실이의 언니됨은 살강마을이나 댓골 마을이나 다 똑같은 마을임을 아는 데 있다. 아늑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똑같이 쓸쓸한 마을이었다. 감나무와 대추나무도 똑같다. 친아버지와 새아버지도 다 똑같이 불쌍하고 외로운 아버지들이었다. “어느 쪽이 김씨 아버지이고 어느 쪽이 정씨 아버지인지 잘 가려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어쩌면 둘은 닮은 데가 많았다. 어머니 밀양댁도 정씨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맞았었다. 술 취하고 때리는 것이 둘이 똑 같았다”라고 소설은 적고 있다.

몽실이의 그리움 속에서 죽은 친어머니와 새 어머니는 언제나 포개져서 떠오르고, 배가 다른 동생들과 씨가 다른 동생들이 다 몽실언니의 동생들이다. 그렇게 해서 몽실언니의 삶은 행복을 쫓아가는 삶이 아니라 고난 속으로 넓어져가는 삶이다. 몽실언니는 절름발이 걸음으로 절룩거리지만 그 언니는 구걸의 깡통을 차고서도 그 시대의 편가르기와 야만성을 넘어서서 개인의 도덕성에까지 절름거리면서 걸어간다.

‘몽실언니’의 가장 힘세고 아름다운 대목은 그 마지막 페이지들이다. 몽실이는 양공주 노릇을 하는 언니들의 방문 앞에 놓인 미군들의 군화를 노려보면서 흩어져간 동생들을 찾아내기로 결심한다. “몽실이는 그 시커먼 구두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싸늘한 밤하늘, 거기 어두운 곳에 별들이 반짝였다. 몽실은 이빨이 부딪치도록 몸을 떨었다”라고 소설은 적고 있다.

소설의 지리적 배경인 댓골마을은 지금은 다들 떠나고 두 집만 남았다. 땅 이름도 화목리로 바뀌었다. 이 마을 박명하(61)씨는 대구에서 건설노동일을 하다가 IMF 초기에 실직하고 다시 인기척 없는 고향으로 내려와 빚더미에 짓눌려가며 농사를 짓고 있다. “6·25때 이 마을에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거지 아이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이 아이들이 지금 내 또래들이다. 피난민들이 밥을 해먹으면 폭격기들이 연기를 보고 쫓아와서 기총소사를 했다”고 박씨는 말했다.

이 마을의 또 다른 주민은 박정하(64)씨다. 다섯 살 때 홍역 끝에 실명했다. 박씨는 고아원에서 자라난 김문희(50)씨와 결혼해서 세 자녀를 두었다. 박씨는 아내와 아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손으로 더듬어서 안다고 말했다. 그가 전하는 처자식들의 생김새는 눈뜬 사람이 보아도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김씨는 200평 밭농사로 앞 못보는 남편을 섬기고 세 자녀를 길렀다. 첫째 딸은 부천에서 공장에 다니는데 이미 애인이 생겼고, 둘째 딸은 안동대학교 3학년이다. 막내아들은 입영영장을 받았다. 김씨는 소설 ‘몽실언니’를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이 나라 산천 구석구석에 힘세고 아름다운 ‘몽실언니’들은 너무나도 많다. 작가 권정생은 “깡통을 차고 헤맬 때도 인간이 아름다워서 눈물겨웠다”라고 말했다.

■ 권정생 연보

▲1937년 일본 도쿄 출생·1946년 귀국

▲1967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 이 마을 교회 문간방에서 기거하며 종지기 일을 함

▲동화 ‘강아지 똥’으로 등단

▲동화집 ‘사과나무밭 달님’ ‘짱구네 고추밭 소동’ 소년소설 ‘몽실언니’ ‘초가집이 있던 마을’ 장편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등

■ '몽실언니' 줄거리

몽실이네는 해방 후 외국에서 돌아온 거지 가족이다. 아버지 정씨는 날품을 팔았고 어머니 밀양댁은 구걸질을 했다. 밀양댁은 남편을 버렸다. 밀양댁은 몽실이를 데리고 댓골마을 김씨한테 시집갔다. 김씨는 밥걱정은 안 했다. 밀양댁은 새 남편한테서 동생 영득이를 낳았고 새 아버지 김씨는 몽실이를 구박했다. 몽실이는 새 아버지의 폭력으로 절름발이가 되었다. 몽실이는 다시 친아버지 정씨한테 갔다.정씨는 남의 집에서 머슴으로 얹혀 살고 있었다. 정씨는 북촌댁한테 새 장가를 들었다. 북촌댁은 가냘프고 착한 여자였다. 북촌댁을 딸을 낳고 굶어 죽었다. 난리통에 태어났다고 해서 새 아기의 이름은 ‘난남이’로 지었다.

전쟁이 터졌고, 정씨는 군대로 끌려갔다. 마을에 인민군이 들어왔다. 인민군들은 마을 사람들을 마구 죽였다. 그러나 인민군들 중에는 마을사람들을 보호해주는 착한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은 다 착해질 수 있는 것이며, 어느 편은 다 나쁘고 어느 편은 다 좋은 것이 아님을 몽실이는 알게되었다. 마을 처녀들은 양공주가 되었다. 양공주들은 검둥이 아기를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다. 몽실이는 죽은 아기들을 끌어안고 쓰레기 더미에서 울었다.

전쟁이 끝났다. 군대에 간 아버지는 포로로 잡혀 있다가 절름발이가 되어 돌아왔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살아야 한다’라고 몽실이는 다짐했다. 몽실이는 깡통을 차고 장터거리에 나가서 구걸을 했다. 댓골로 시집간 친어머니 밀양댁은 아기를 사산한 후 심장병으로 죽었다. 몽실이는 배가 다른 동생들과 씨가 다른 동생들을 다 함께 데리고 살았다. 몽실이는 구걸질을 열심히 했다. 아버지의 병은 점점 깊어져갔다. 몽실이는 아버지를 자선병원에 맡기려 했다. 아버지는 병원 문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죽었다. 동생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몽실이는 다시 흩어진 동생들을 찾아 나선다.

삼십 년이 지났다. 몽실이는 구두수선쟁이인 꼽추 남편과 결혼해서 남매의 어머니가 되었다. 배다른 동생 난남이는 폐결핵으로 요양소에 입원해 있었다. 몽실이는 닭찜을 싸들고 한 달에 한번씩 이 요양소로 난남이를 찾아간다.

 

 

 

 

 

 

 

 

 

 

오마이뉴스(04. 08. 05) <몽실 언니> 작가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

지난 7월 28일, 여름휴가를 맞아 안동에 계시는 권정생 선생님을 찾아뵈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권 선생님은 <강아지 똥> <몽실언니>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우리들의 하느님> 등 수 많은 주옥같은 작품들로 우리 시대의 강퍅해진 영혼들을 일깨우는 작업을 해 오신 원로작가이십니다. 그 분을 작품을 통해 알게 된지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기회가 닿지 않아 직접 만나 뵙진 못하고 간간이 연락만 드리다가 이번에 큰 용기를 내어 찾아간 것입니다.

이젠 많이 알려져서 하도 여러 사람들이 찾아오니 편찮으신 몸으로 몹시 시달리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걸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가다간 생전에 한 번도 못 뵙고 말 것 같아 무례를 무릅쓰고 방문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우리가 동네 어귀에 도착했던 바로 그 시간에 동네 앞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에 일 보러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한 두어 시간 동안 마을 앞 팔각정에서 쉬면서 선생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물어 물어 찾아간 선생님이 사시는 집은 신선한 충격 자체였습니다. 대문도 없는 데다 마당엔 풀만 무성하게 자라있고 집은 쓰러질 것 같은 작은 움막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느 사람들이 보아서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아직 선생님이 도착하지 않으셨을 때, 집 앞 고추밭에서 일하시던 동네 할머니 한 분을 통해 사시는 형편을 대강 들을 수 있었습니다. 거의 외출도 안하시는데, 오늘 틀림없이 우체국에나 가셨을 것이니 금방 들어오실 거라고 하시면서 조금만 기다려 보라고 하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선생님이 작은 보따리 하나를 들고 당도하셨습니다. 원체 힘이 없으신지 걸음걸이마저 몹시도 힘겹게 보였습니다. 달려나가 선생님의 보따리를 받아들며 인사를 드렸더니, 예상대로 선생님은 우리의 방문이 그다지 반갑지 않으신 눈치였습니다. 그래도 다행히 그냥 돌아가라고 쫓아내시지는 않으셔서 문간에 잠시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래 내용은 그때 나눴던 이야기를 녹취하여 편집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사진은 '그런 거 다 부질 없는 거'라고 한사코 거절하셔서 찍을 수 없었습니다. 이 대담기록도 자칫 선생님께 누가 될까봐 기사로 다룰까 말까 망설이다가 반전평화를 외치는 선생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널리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오늘에야 정리한 것입니다.

- 지난번에 월간 <작은책>에 선생님이 쓰신 글, "승용차를 버려야 파병도 안 할 수 있다"를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말씀처럼 사시니까 선생님 글을 제가 동의하고 또 그래야 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거지요. 우리가 좀 불편하게 살아야 해요. 가난하게 살아야 되고 힘들게 살아야지 안 그러고 편하고 풍요롭게 산다는 건 그건 안 됩니다. 그렇게 살면 누군가는 힘들게 살아야 하잖아요. 세상의 모든 물질이 한정되어 있는데, 몇 사람이 풍요롭게 살면 나머지는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잖아요. 뭐 도와준다고 몇 푼 갖다 준다고 그거 가지고 됩니까?"

- 삶의 방향을 바꿔야 된다. 방법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네요.

"그건 제 주장이고요, 각자 생각해서 살아야 되지요. 남의 말 듣고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거지."

-(웃음) 그래도 좋은 생각들이 나와야 반성을 하고 다들 생각을 조금이라도 고쳐먹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면 데모할 필요도 없잖아요. 석유 때문에 싸움을 하고, 환경오염이 되니까 또 공해를 줄이기 위해서… 뭐 누구나 다 아는 거잖아요, 뻔하게. 실천을 안 하니까 그렇지. 그래서 저는 승용차 타고 우리 집 오면 절대 오지 말라고 그래요. 그 뭐 할라고 몇 백 리를 승용차 타고 기름 때가면서 그렇게 와서 뭐합니까."

- 지금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셔서 밖에 나다니지도 못하고 그러시지요?

"오늘 28일이지요? 지난날 8일에 갔다가 꼭 20일만에 우체국 갔다왔네요. 바쁘게 편지 부칠 건 있고 해 가지고. 어디 계시더라도 좀 힘들게 살더라도 가난하게 살아야 됩니다. 그건 이상도 아니고 꿈도 아니고 현실이잖아요. 아프리카 아이들 불쌍하다느니, 이라크 아이들 죽어 가는 것 뭐 어쩌고 걱정하고 몇 푼 가지고 보태주는 것 그거 가지고는 안 됩니다. 미국의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한 5%도 채 안 되거든요. 그런데 전 세계 모든 자원의 한 50%를 다 미국이 소비하고 있거든요. 저건 안 되지요. 저건 악마지요. 우리도 미국 따라 그렇게 해서는 안 되잖아. 제발 미국한테 기대가지고 그 비싼 무기 사다가 괜히 우리끼리 저렇게 죽이고 하지 말고. 아이구, 고등학교 대학에서 그런 거 안 배웁니까? 도대체 대학에서 무얼 배우는 줄 모르겠어.(깊은 한숨)"

- 저는 기독교 목회자다 보니까 교회를 생각하게 되는데, 오늘 한국교회 현실이 너무 답답합니다. 어떻게 믿는다는 사람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저렇게 친미집회를 하고…."

"그러니 죽은 김선일씨도 교회에서 괜히 이야기하는 대로 이라크 불쌍하니까 선교하러 간다고 갔는데, 그거 그럴 필요 없어요. 그 사람들 나름대로 종교를 가지고 있고 오히려 그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순수하게 살고 있는데, 아랍인들 계율이 엄격해 가지고 아직까지 퇴폐적인 건 없거든요."

- 한쪽에서는 그래도 순교자라고 김선일씨를….

"바꿔 놓고 생각해봐요. 우리가 만약 이라크처럼 당했다고 하면 가만있겠어요? 안중근 의사가 처음에 프랑스 선교사한테 굉장히 많은 자기 고민을 이야기했어요. 어떻게 나라는 이렇고, 하느님 뜻은 어떻고.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그 프랑스 선교사가 '당신이 알아서 해야지, 당신 나라니까 당신 나라가 중요하면 나라를 위해서…' 라고 말했어오. 그래서 간도 독립 운동하는 데 가 가지고 군대 조직해서 싸우다 보니까 사람을 죽여야 하잖아요, 죽이는 것도 일본 졸병들 아무리 죽여 봤자 그거 소용없거든요. 정말 무고한 목숨만 죽이는 거지. 그래서 생각한 것이 우두머리를 죽여야겠다 해 가지고 이등방문을 죽인 것이지."

- 근데 그것도 테러라면 테런데, 그러한 방식이 어떻게 보면 또 해방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지 않습니까? 저는 김선일씨를 죽인 알 자르카위, 그렇게까지 하는 거 심정은 이해 가지만 그 방식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거든요.

"그렇게라도 하기 때문에 미국이 많이 주춤하고 있잖아요. 미국시민들도 어느 정도 반성 분위기가 서고 그렇지요. 독일의 디트리히 본 회퍼 목사가 히틀러 죽이기 위해 암살단을 조직해서 활동하다가 붙잡혀 감옥에서 죽었는데 그 목사가 그래요. '내가 아무리 신학박사 학위를 받아봤자 뭔 소용이 있느냐?' 그래 가지고 미국에서 공부하다 돌아와 가지고 그랬거든. '미친 사람 하나 죽여야 된다'고."

- 예수도 그런 상황이었으면 그렇게 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거든요.

"예수도 그렇게 했잖아요. 무모하게 그랬잖아요. 로마한테 대들었잖아요."

- 대드는 거야 대들었지만 대드는 방식에 있어서 그렇게 폭력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죽이고 살상하고 그렇게 저항하진 않은 것 같거든요.

"아니 그 보다 더 무서운 저항이 어디 있어요. 예수의 방법이 달라 그렇지."

- 그렇죠. 미국에 저항은 해야된다고 생각은 하는데, (알 자르카위 같은 테러단체의) 방법이 온당치 못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태복음에 나왔을 거예요. 예수님은 오리를 가 달라하면 십리까지 가줘야 된다. 적극적인 방법이지요. 그게 맞습니다.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마저 들이대라. 그게 간디가 그렇게 했거든요."

- 글쎄요. 그러니까 간디나 예수의 방식은 어찌 보면 어폐가 있지만 비폭력 저항방식이었는데, 지금 알 자르카위나 이런 사람들은 테러 방식으로 해서 사람을 죽이고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서 자기 나라를 건져야 되겠다. 이렇다보니까….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안중근이가 이등방문을 안 죽였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 당시에 김구 선생이 가만히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그건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새끼 빼앗긴 엄마 닭은 적한테 자기 목숨 내놓고 달려듭니다."

- 그러니까 선생님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라고 보는 거네요.

"교회 목사님들은 괜히 그렇게 사람 죽여서 되겠느냐고 그러는데, 예수님처럼 살지도 못하면서 그래요."

- 그렇게 말씀하시면 할 말이 없지요. (웃음)

"안 그러면 남 안 죽이더라도 예수님처럼 철저하게 살든지."

- 선생님 이렇게 여기서 지내시는 것이 편안하셔요?

"이 세상 편한 데가 어디 있습니까? 아이고 참."

- 전에 어디서 모시고 가려고 했는데, 이오덕 선생님 댁이었나요? 불편해서 다시 돌아오셨다고…. 여기 동네 아이들은 좀 있습니까?

"없어요. 전부 다 도시로 나가고…."

- 계속 아동문학 작품을 쓰시고 그러시는데, 애들을 좀 직접 접해 보시고 그러는 것이 도움이 되실 것 같아서요.

"요즘 아이들은 옛날 아이들 같지 않아서요. 요즘 아이들은 별로 정이 안가요. 어머니들이 잘못 키우고 있어요. 전부다 자기 아이만 대단한 것처럼…."

- 그럼 작품 쓰실 때 어디서 주로 아이디어를 얻으셔요?

"아이디어는 얻는 것 없어요. 그대로 다 이야기니까 사람 살아가는… 이라크가 지금 겪고 있는 거 우린 벌써 5~60년 전에 다 겪었잖아요."

- 요즘 저희 도서관에는 '동화 읽는 어른모임' 사람들도 와서 활동을 하고 그러는데, 예전에 비해 어린이 책 시장이 굉장히 넓어져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옵니다.

"어린이 아동문학이 상업화가 돼 가지고 책이 귀한 줄을 모르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면 좋은 책이 나오긴 나오겠지만 아이들한테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아요."

- 책이 귀한 줄 알고 여러 번 읽고 그래야 하는데….

"또 매출이 많이 줄어들어요. 한 번은 저것도 큰 코 다치겠지요!"

- 선생님은 여러 책들을 많이 쓰셨는데, 그 중에서 <몽실언니>를 가장 아끼십니까, 아니면 아끼시는 다른 책이 있습니까?

"<초가집이 있던 마을>이요. 그건 가톨릭 출판사에서 잡지에다 쓰다 보니 제재를 받지 않았어요. 거기서 복식인가 그 애는 입대를 거부하고 자살해 죽어요. 아버지는 월북하고 이런 아이입니다. 요새 양심적 병역거부가 이야기되고 그럽니다만. 그게 몽실이보다 한 3년 앞서 썼지요."



- 지금도 교회에 다니고 그러셔요?

"요즘은 안 다녀요. 몸도 그렇지만. 목사님들이 너무 친미를 하고요. 너무 축복받고 이래 살아야 한다니까 우리 같은 사람은 그렇게 안 됩니다."

- 신앙을 버린 것은 아니시고요?

"그럼요. 저는 예수님을 기독교의 교주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깨끗하게 순수하게 불의를 마다하고 저항하다가 저렇게 돌아가신 분이지 기독교라는 어떤 종교를 만드신 교주는 아니라고 봐요. 더군다나 부시라는 사람이 정의의 하느님을 앞세워 가지고…."

- 그러니까 어떤 종교가 되었든 그러한 근본주의자들은 해악을 미치는 것 같아요.

"굉장히 갈등이 심했어요. 처음에 이걸 어떻게 하나. 남아 있으면 나도 같은 족속이 될 수밖에 없고. 나갈라니까 거기에 같이 있던 사람들 버려 두고 나 혼자 나온다는 것이 비겁한 것 같고, 그렇다고 교회는 고쳐지질 않으니까 '나'라도 그러면…."

- 그런 부분에 대해 담임 목회자와 이야기를 많이 하셨나요? 왜 그렇게 생각을 하시는지….

"이야기를 해도 그 사람들 뭐냐 그러냐면 대중들이 구하는 게 기복신앙이지 않느냐 이러 거든요. 그건 맞아요. 그러나 그거는 목사님들이 편하거든요. 기도해야 복 받는 거. 그렇게 하면 목회가 편합니다. 바치는 것만큼 몇 배 얻는다. 기도한 만큼 얻는다. 두드리라 얻는다. 이러면 (사람들이) 찾아오지요.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처럼 힘들더라도 이 세상에서 있어야 될 것 없어야 될 것 구분해 가지고 떳떳하게 물리칠 것 물리치고 그렇게 살아야 된다 이러면 안 옵니다. (웃음)"

- 저희 교회는 조그마한 교회입니다만, 그런 생각을 바르게 좀 하자는 차원에서 책읽기를 해요. 예배 후에 같이 식사하고 오후에는 책을 선정해서 이미 말씀드린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 같은 책도 다뤘고, 최근에는 해방신학자 구띠에레즈의 <우리의 우물에서 생수를 마시련다> 이런 책들을 읽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시간만 좋다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교회는 안 다녀도 꼭 교인들만 이게 필요한 게 아니다고 이야기하면서 자기도 다 동감한다며….

"그래요. 그 시간 좋다고 하면 그 시간 나오게 하고 어떤 경계를 안 만드는 게 좋아요. 불교, 기독교, 가톨릭…. 그래 가지고 항상 개방해 놓고 교회에 와서 주무시고 갈 사람 있으면 자고 가라고 그러고. 제가 교회 옆에 흙집에서 한 십육 년인가 살았거든요. 거기 있으면 밤이고 낮이고 애들이고 뭐고 찾아와요. 겨울에 눈이 오면 지나가다가 자고 가는 스님도 있고 비오면 비 피해 가고. 그런 사람 오면 마음대로 다 이야기해요. 어떤 청년은 와 가지고 '어제 대구 갔다 왔는데 뭐 하러 갔다 왔는지 압니까?' '내가 어이 아나?'라고 하면, '색시 집에 가서 자고 왔십니더. 나이 서른 넘은 놈이 장가를 못 가니까 한 달에 한 번씩은 갔다 와야 합니더' 그런 이야기도 해요."



- 강문필 선생이지요? 농사 지으시는… <하느님 개구리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책 쓰신 분이. 그 분도 교회를 다니시다가 교회에서 목회자가 가르치는 부분들이 마뜩치 않아서 끝내는 교회에서 떠나셨더라고요. 저는 선생님이나 그런 분들이야말로 틀에 갇혀 있는 사람들을 좀 깨우쳐주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야 하는 데 하는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해 주지 않아도, 누구라도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지혜가 그런 분별을 다 주셨어요. 그런데 그것이 용기지요. 용기일 겁니다. 그리고 겁이 나잖아요. 내 기득권을 다 잃어버리는데. 장로님 장로님 하고, 권사님 권사님 하고 그랬는데, 그거 다 버리자면 그렇잖아요."



- 선생님의 책, <우리들의 하느님> 그거 보면서도 가슴이 많이 찔렸습니다. 너무 직설적이고 솔직하게 말씀을 하시니까.

"기도를 해도… 철야기도를 했거든요. 몸이 아프고 그럴 때. 겨울에는 하다보면 기도가 안 나와요. 아이고, 추워라, 추워라 그러지. 한참 하다보면 입에서 그냥 다른 기도가 안 나오고 추워라, 추워라만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밤새 앉아 있다는 그 의지력 자체지 그건 하느님한테 구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거든. 자기가 얼마 만큼 의지력으로 견디느냐 그거지."

"다른 거보다도,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이런 아이들이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어른들이 만들어 놓고 죽어야지요. 맨 첫째로 이 세상에 전쟁 만큼은 없애 놓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거는 뭐 목사님들이 더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 보셔야 해요. 전쟁 만큼은 없어져야 해요. 핵무기는 자꾸 불어나고 언제 어떤 나쁜 군주가 들어서면 그거 한 방이면 다 날아가는 데. 그런 거 해 보셔야지요. 우리는 다 살았으니까. 목사님의 연배 되는 사람들 모여 가지고 스님도 좋고 수녀님도 좋고 누구도 좋으니까 같이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 모여서 해결 방법을 찾아가야지요."

- 근데 너무 우리가 무력해요.

"그때 하느님한테 기도의 힘을 얻어야지요. 다른 힘을 얻는 거보다도….'

- 파병반대와 전쟁반대를 외치지만 국회에서 또는 정부에서 이렇게 강행을 하니까.

"그래도 종교인들, 스님들과 목사님들, 신부님들이 한 목소리로 그렇게 반대하면, 미국한테 대고 항의를 하면 저건 어느 정도 될 겁니다. 그런데 목소리 각각 다 다르니까 그게 문제지."

- 선생님 평생에 걸쳐서 이 책만은 꼭 읽어 봐라 할 만한 추천할 책 다섯 권만 소개를 해 주십시오.

"이미 다 읽어 보셨을 텐데. 신채호요. <조선상고사> 신채호 선생님 글은 다 좋아요. 우리 한국 사람은 신채호, 그 다음에 장준하 선생님이 직접 쓴 <돌베개>라는 거 있습니다. 일진 깊이 갔다가 달아나 가지고 독립군 찾아가는 과정을 적어 놨거든요. 그건 정말 돌베개입니다. 야곱이 고향 찾아가는 그 과정보다 더 힘들었지요. 김창숙이라는 사람 책하고, 리영희, 강만길 같은 분들 책들 모두 좋습니다. 다섯 권만이 아니라…. 역사 인물로서는 허균이라는 사람 전기를 될 수 있으면 구해 보시고…. 그 다음에 생각이 안 나서 그러는데 또 있어요. 우리가 약소국가였기 때문에 그때그때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펴보면 좋은 사람 많습니다."



- 주로 역사 관련한 책들을 권하시네요.

"구약성서가 이스라엘 역사잖아요. 함석헌 선생 책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같은 거, 함석헌 선생님 책들도 다 좋아요.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사람의 아들>이라는 책 그거 보면 예수님에게 누구 어머니인지 '그런 불한당 같은 놈이 자식들 데려다가 다 버려 놓는다!'고 욕한 어머니가 거기 나와요. 제자 된 사람 가운데 한 어머니인데, 집에서 열심히 일하는 착한 애를 데려다가 저놈 자식이 다 베려 놓았다고 그런 장면이에요. 나사렛 그 목수 놈의 아들 자식이….(웃음)"



- 제가 부족하지만 <오마이뉴스>라는 인터넷 뉴스에다 책 소개하는 연재 기사를 쓰고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하는 건데….

"다들 잘 알 겁니다. 강만길, 리영희, 송건호… 이런 사람들 책은 다 고전이니까. 판소리, 신재효입니까? 그 만들어 놓은 거 <춘향전>이나 <가루지기타령>이라는 거 있어요. <변강쇠전>이나 그거 정말 눈물겹지요."

- 요즘 아이들이 책을 잘 읽지 않습니다. 그림책도 잘 안 읽으려고 하는 데, 우리 도서관을 하다 보니까 답답해 죽겠어요.

"애들은 그냥 안 읽어도 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그냥 놀게 하고 그 다음에 중3학년이나 고등학교 되면 자기가 읽어야 돼요. 정신 차려 가지고 누가 읽어라, 읽어라 하지 않아도. 그 다음부터는 자기 인생을 살아야하기 때문에 선배들 어떻게 살았나 하면서 책을 읽겠지요."

- 선생님도 중학생 그 정도 연배 때에 책을 많이 읽었나요?

"책을 읽었는데 잘 못 읽었어요. 열일곱 열여덟 살 때, 이광수 책을 그 땐 베스트셀러라고 해 가지고 또 그땐 책이 없어서 헌책방에 가서 구해 읽었는데, 이광수 그 사람 우리 역사를 많이 왜곡시켜놨어요. <단종애사> 같은 거. 그런데 김동인의 <젊은 그들>이라는 건 괜찮아요. 박종화의 <금산의 피>라든가. 또 현진건의 <무영탑> 같은 거도 괜찮아요. 그런데 이광수 책은 아주 안 좋아요. 그리고 우리 작가들도 좋은 책 많지요. 그 누구지요? 채만식의 단편들…."

- 선생님, 요즘도 독서 열심히 하시지요?

"건강 때문에 많이 못 읽지요."

- 요즘엔 어떤 책들을 읽으세요?

"요즘은 좋은 책이 안 나오잖아요. 옛날에 나왔던 책들이나 좀 보고…. 찾아보시면 좋은 책들이 있어요. 본 회퍼 전기 같은 거. 김교신이라는 사람 수기, 일본의 누구지요? 우찌무라 간조 그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또 누구지요? 노동운동 했던 사람, 일본 사람… 그 사람이 나중에 변절을 해 가지고 일본군국주의 협조를 하고 그래가지고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는데 그 전에까지는 괜찮아요. 어떻든지 헌책방 다니셔 가지고… 부산이나 광주 이쪽으로 아니면 서울 가시거들랑… 헌책방 다니셔 가지고 책을 모으세요. 아이구 목회하는 분들도 힘들 겁니다. 그러나 기성교회 따라가서는 안돼요."



- 따라 가지 말자고 하는데 그게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하다 보니 진짜 아는 것도 짧고 내가 경험에서 우러나야 하는 데 그것도 아직은….

"앞으로 열심히 살면 되지요. 아이고, 이제 가시지요. 제가 힘들어 안 되겠네."

- 네, 그럼 선생님, 그만 물러 가보겠습니다.(정병진 기자)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쟈 2007-05-1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메일 보내드렸습니다.^^

파란여우 2007-05-20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효~ 완성하셨군요. 어제 종일 (수정중)이 언제 졸업할래나..기다렸다는~~
가져갑니다. 자료수집하시느라 고생 하셨어요.

로쟈 2007-05-2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기다리시게 했나요?^^;

로자 2007-05-2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져갈게요.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2007-05-21 1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향기로운 2007-05-21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 마지막 말씀이.. 아리네요..
 

'작가와 문학사이' 이번주는 <바람의 사생활>(창비, 2006)로 잘 알려진 이병률 시인 편이다. 평론가 신형철씨는 그 시집의 해설을 쓴 인연이 있기도 하다(요새 가장 많은 시집 해설을 쓰고 있는 평론가가 아닐까 싶다). 그만큼 시인의 속내에 정통하다는 뜻도 되겠다. 최근 한 술자리에서 평론가에게 물으니 '작가와 문학사이'의 연재가 25회로 예정돼 있다고 한다. 그리고 열 명을 다루기로 한 시인은 이제 한 명 남았다고. 이병률 시인은 그 아홉번째 시인이다.

경향신문(07. 05. 19) [작가와 문학사이](18)이병률-버티고 버티다 쓰는 ‘슬픔의 시’

모든 감정의 끝에는 슬픔이 있다. 기쁨·증오·분노·사랑이 그 극단에 이르면 인간은 결국 슬퍼진다. 이것은 소설가 은희경의 말이다(‘비밀과 거짓말’). 빼어난 시가 노래하는 것들이 그 ‘극단에서의 슬픔’이다. 한 순간의 달뜬 감정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다. 그냥 좀 내버려 두었다가, 그것이 슬픔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가 내 마음의 세입자나 되는 듯 적요해질 때, 그때 쓰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어려운 일은 시를 쓰는 일이 아니라 시를 쓰지 않고 버티는 일이다. 1967년에 태어나 1995년에 시인이 된 이병률은 버티고 버텨서 슬픔이 눈물처럼 투명해질 때 겨우 쓴다. 애이불상이라 했다. 도대체 슬프지 않은 시가 없으나 그 어느 슬픔도 비천하지가 않다.

“그러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약속한 그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날을 잊었거나 심한 눈비로 길이 막히어/ 영 어긋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 그래도 먼저 손 내민 약속인지라/ 문단속에 잘 씻고 나가보지만/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 여한이 없겠다 싶은 날, 그런 날/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화분’에서)



첫 번째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에서 골랐다. 가장 아름다운 시라서가 아니라 가장 그다운 시여서다. ‘화분’이라는 제목의 시에서 “제물처럼 놓였다가 재처럼 내려앉으리라/ 햇살에 목숨을 내놓습니다”라는 구절을 얻었으니 그것만으로 이미 넉넉하지만, “부디 만나지 않고도 살 수 있게/ 오지 말고 거기 계십시오”라는 구절이 있어 또 한번 철렁한다. 그의 아름다운 시들은 대개 작별을 노래한다. 제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이별(離別)이 아니라 스스로 힘껏 갈라서는 작별(作別)이다. 이것은 이를테면 “애인이여/ 너를 만날 약속을 인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 눈이나 좀 팔고 놀다 가기로 한다”(‘가벼히’)고 노래한 미당(未堂)의 달관과는 다르다.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그토록 지극하기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일에 그토록 엄결(嚴潔)하기 때문에, 이렇게 미리 작별을 노래하게도 되는 것이다.

“이 계절 몇 사람이 온몸으로 헤어졌다고 하여 무덤을 차려야 하는 게 아니듯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찔렀다고 천막을 걷어치우고 끝내자는 것은 아닌데// 봄날은 간다// 만약 당신이 한 사람인 나를 잊는다 하여 불이 꺼질까 아슬아슬한 것도, 피의 사발을 비우고 다 말라갈 일만도 아니다 별이 몇 떨어지고 떨어진 별은 순식간에 삭고 그러는 것에 무관하지 못하고 봄날은 간다” (‘당신이라는 제국’에서)



두 번째 시집 ‘바람의 사생활’에서 골랐다. 가일층 처연한 작별의 노래다. 지금도 어디선가 사람들은 작별하고 있겠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찌르기도 하였겠다. 당신이 나를 잊어가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무덤을 차릴 일도, 천막을 걷어치울 일도, 피가 말라 생을 접을 일도 아니다. 시인은 자꾸 그럴 일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이것은 마치 그 일들을 이미 다 겪어낸 이의 말처럼 들린다. 그럴 일이 아닌 줄 알지만 그렇게 되고 마는 것이 삶이라고 말하듯 그렇게 봄날은 가고 ‘당신이라는 제국’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속수무책이다. 실로 주술적이라고 해야 할 이 시의 매력은 아무리 되풀이 읽어도 탕진되지 않는다. 그의 두 번째 시집에는 이런 절창들이 수두룩하다. 그는 지극히 보편적인 감정들을 지극히 개성적인 언술로 노래한다. 이것이 이병률 시의 힘이다.



그는 여행에 들린 사람이기도 하다. 십여 년의 여행 기록을 모아 산문집 ‘끌림’을 펴내기도 했다. 로망을 팔아먹는 흔해빠진 여행 산문집이 아니다. 그 책은 오히려 범속한 나날들을 지극하게 감당한 사람에게만 홀연히 떠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의 시들도 결국은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지금 내가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상에 충실하기 때문이 아니라 일상에 충분히 지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홀연히 떠나면 그것은 그저 무책임일 뿐이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는 일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이러구러 봄날이 다 가는 동안 우리는 끝내 이 서울을 떠나지 못했구나. 님은 삐쳐 있고 꽃들은 진다.(신형철|문학평론가)

07. 05. 19.

P.S. 언젠가 우연히 시인이 운전하는 차를 탄 적이 있다. 운전도 베테랑이었지만 매너도 일품이었다. 소위 '방어운전' 말이다. 그러고 보면, 시인은 운전 또한 버티고 버티면서 했던 듯싶다. 지난달인가 알라딘에 인터뷰 동영상이 뜨기도 했었으므로 굳이 나만 아는 체 할 일은 아니겠지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jouissance 2007-05-19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전히 비평에 이끌려 이병률의 책들을 바구니에 담습니다. 신형철이 개척한 이 비평형식! 독자입장에서 여러모로 고맙군요. 무엇보다 고답적인 비평용어와 난삽한 문장들이 말끔히 사라진 비평이란 점에서 그렇습니다. 모처럼 읽히는 비평을 쓸 줄 아는 평론가가 탄생했어요. 정말이지 그의 시에 대한 감식안은 인정할 수 밖에 없네요.(개인적으로 비평가의 급수는 시 비평에서 결정된다는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답니다^^) 충분히 주목받을 만해요. 그의 비평집은 언제쯤이나 나올려나. 오랜만에 비평집 출간 소식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로쟈 2007-05-1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창 물이 오르고 있는 비평가이죠. 올여름에는 첫비평집이 나온다고 하니까 기대해보시길...
 

오랜만에 창비주간논평을 옮겨온다. 한국문학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서강대 안선재 교수의 '한국문학 번역의 과제들'이란 제안과 고언이다. '우물안 개구리'를 시야를 벗어나려면 정작 외국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보는 시각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겠다.

창비주간논평(07. 05. 15) 외국 독자들은 한국문학을 어떻게 읽을까

한국인들은 흔히 한국문학이 해외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한다. 번역 출간된 작품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2001년 이후에 70편이 넘는 작품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다른 언어로 번역된 작품 수는 분명히 그보다 더 많다. 자주 듣는 또다른 말은, 한국문학의 번역은 형편없어서 노벨문학상 같은 것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나의 첫번째 답변은, 최근에 작품이 거의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작가들도 있다는 것이다. 번역과 성공적인 마케팅은 노벨상을 타는 선행조건이 아니다. 두번째 답변은 지난 10년간 내가 봐온 한국문학 번역작품은 원작의 내용을 충분히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상당히 괜찮다는 것이다. 세번째 답변은 노벨상 수여기관인 스웨덴 왕립아카데미 회원들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따르면) 세계 곳곳에서 씌어진 문학작품을 비교하여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명백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 그들이 내린 판단은 대부분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국문학 번역에 대한 동상이몽

그러나 한국문학의 번역과 홍보가 당면한 문제는 분명히 있다. 첫째, 번역될 작품을 선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의 문화, 정부 관계자들은 대개 이미지 선전으로써 한국을 전세계에 알리려는 총제적인 캠페인의 일환으로, 널리 상찬되고 정평있는 '유명한' 한국작가들의 번역을 추진하려고 한다. 한국문학사를 가르치는 학계의 전문가들은 본인들이 판단하기에 근대 한국문학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작품을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오늘날 해외의 상업출판업자들의 관심은 단 한가지에 집중된다. 즉 그들은 재정적 수익을 많이 올리고 자기들의 위신을 보장할 수 있을 정도로 잘 팔리는 작품을 출판하려고 한다. 한국측의 '문헌적 정보' 프로젝트와 '성공・수익'에 대한 외국 출판업자들의 요구 사이에는 직접적인 갈등이 있는데, 이 갈등은 런던이나 빠리, 뉴델리 등지에서 현재 어떤 종류의 문학작품이 잘 팔리는지 한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더 심각해진다.

문학 번역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작품이므로 전세계가 그 한국 작품에 찬사를 보내야 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절망적인 일은 없다. 최근에 나는 한 유명한 한국작가가 너무 많은 젊은 한국작가들이 1인칭 화자를 도입해 아무런 문학적 상상력 없이 ‘사실적인’ 스타일로 창작한다고 비판하는 것을 들었다.

세계문학으로 진출하려면 국제감각부터 익혀야

그의 비판은 (나는 그 논평의 전문을 보지 못했지만) 많은 한국문학 작품에서 서술자의 복합성이 결여되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내가 읽은 많은 한국 소설은 시작에서 출발해 간혹 회상이 섞여 들어가는 연대기적 순서에 따라 사건을 서술하고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 어색한 결말로 끝맺는다. 외국의 성공적인 소설은 이렇게 창작되지 않는다.    

따라서 한국문학을 '세계화'하기를 바랄 때 한국이 당면한 단 하나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오늘날 세계의 가장 탁월한 작가들이 어떤 작품을 생산하고 있는가에 대해 한국 작가들과 독자에게 교육하는 것이다. 현재 번역과 출판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국 문학작품을 바깥에 소개하는 것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동시대 외국의 탁월한 작가들을 한국독자에게 알리는 일이다. 전해지는 근래의 일본소설의 성공담은 그 점을 확인해준다.

많은 기성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잘 팔리지 않는 것을 현대인의 시청각매체에 대한 집착 탓으로 손쉽게 돌릴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독자들이 뭔가 더 나은, 진정으로 새롭고 즐거운, (최소한 때때로) 생각을 자극하는 그런 작품을 원한다는 사실의 징표이기도 하다. 양질의 현대 세계문학의 번역을 한국의 출판인들이 지원하지 않는 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해가 되는 일이다. 

외국독자들이 말하는 한국의 시와 소설

오늘날 세계에서 시는 대부분 잘 팔리지 않는다. 상을 타고 비평의 주목을 받으면서 수익을 내고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소설이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한국 시가 지난 20년간 한국소설보다 영어로 그렇게나 많이 출간되었는가? 나 자신만 해도 시집을 거의 20여권을 번역했지만 번역한 소설은 3권에 불과하다. 이 물음에 대한 한가지 답변은, 한국 시는 소설보다 훨씬 재미있고 활기차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 시인들은 번역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식으로 특정한 한국적 삶의 경험에 대해 쓴다. 그들의 시는 살아 있고 설득력이 있으며 독특하게 인간적이다. 물론 그 시적 효과를 위해 주로 한국어의 특징에 의존하는 시인들은 번역으로 제대로 표현될 수 없다.



외국독자들에게 어떤 한국 시들의 영향은 강렬하고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그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소설을 읽은 독자들의 으레 이렇게 묻는다. "작품이 왜 이렇게 우울한가?" 시는 자주 고통스러운 상황에 복합적이며 개인적인 반응을 간결하고 강렬하게 표현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인간적인 목소리를 듣게 한다. 물론 소설은 시의 한 형식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한국 소설가들은 이 점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아한 문체, 다양한 서술 리듬, 해석의 모호함, 여러 서술자들의 목소리, 글쓰기 전략에서의 복합성 등은 모두 시로서의 소설이 갖는 근본적인 특성들인데,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는 너무나 부족한 것이다.

체면치레하지 말고 치열하게 비판하라

물론 어느 면에서는 한국작가들이 작가와 비평가 사이의 효과적인 대화가 성숙되지 않은 문화 속에서 살고 있어서 혜택을 보지 못하는 탓도 있다. 서평 형식으로 (때로는 맹렬하게) 표현되는 문학비평은 국제적인 문학담론의 본질적인 부분이다. 모든 작가가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자기에게 너그러운 것이다. 사려깊고 도전적인 비평 없이 어떤 작가가 기량을 연마하고 약점을 고치고 성숙한 예술을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 희망할 수 있겠는가? '체면'과 '명성'이 핵심 고려사항인 한국 같은 문화에서 정직한 비평은 자주 거부된다. 이건 큰일이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창작되는 작품과의(반드시 북미나 유럽의 작품일 필요는 없다) 창조적인 만남을 통해 한국문학이 다시 태어나려면, 문단이나 학계의 '고참'들이 젊은 작가에 대해 후견인 노릇을 하고 평가하는 여전히 강력한 위계구조는 철폐하고, 새로운 문을 열고 새로운 자유를 찾아야만 한다. 그런 새로운 한국문학이라면 번역될 때 찬사를 받을 가능성이 휠씬 크다. 또한 그럴 때에야 비로소 한국문학은 세계문학의 핵심적인 일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안선재| 한국문학 번역가, 서강대 명예교수)

07. 05. 16.

P.S. 특히 마지막 충고가 인상적이다. 체면치레하지 말고 치열하게 비판하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한국적 정서가 비평의식을 잠식해서는 동네문학 수준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문단이나 학계의 '고참'들이 젊은 작가에 대해 후견인 노릇을 하고 평가하는 여전히 강력한 위계구조는 철폐하라! 흠, 이 벽안의 한국인(?)은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05-17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5-18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불가피한 일이겠지요. 그건 우리말로 번역된 '세계문학'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거구요. 하지만 그런 상실이 또한 번역의 가능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조건'이 되는 상실은 문제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