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이 '블룸스 데이'였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하루를 기리기 위한 더블린 시민(아일랜드 국민)들의 기념일이다. 이 날을 특별히 기억해서가 아니라 토요일자 신문들에 관련기사가 실렸기에 알게 됐다. 그리고 일단 알게 되면 또 그냥 지나치기도 어려운 법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말엔 지나쳤는데, 다시 눈에 띄기에 일단은 관련 이미지들을 찾아서 스크랩해놓는다. 언제 한번 더블린으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일정을 6월 중순으로 맞춰야겠다...

한겨레(07. 06. 16) 한국판 블룸스 데이 ‘구보의 길’ 꿈꾸며

6월 16일, 오늘은 ‘블룸스 데이’(Bloom’s Day)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학사에 뚜렷이 등재되어 있다(*아예 'BloomsDay'라고 붙여쓴다). 블룸스 데이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배경인 1904년 6월 16일을 기리는 날로, 소설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에서 따왔다.

소설 <율리시스> 이날 하루 동안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이 더블린 시내를 배회하는 내용을 축으로 그의 아내인 몰리 블룸,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 스티븐 디덜러스 등 세 명의 중심 인물을 등장시킨 소설이다. 현대 영문학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문제작이지만, 난해한 문체와 현란한 기법, 방대한 분량 때문에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어렵다는 평을 듣는다.

그럼에도 소설 주인공 이름을 딴 블룸스 데이는 더블린 시민과 아일랜드 국민은 물론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 사이에 대표적인 문학 축제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6월 16일이 되면 소설 무대인 더블린에서는 레오폴드 블룸의 행적을 따라 걷거나 소설 <율리시스> 의미를 되새기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마련된다. 축제는 대개 1주일 전부터 시작되는데, 올해의 경우 지난 9일부터 조이스와 <율리시스>를 소재로 한 영화 상영과 노래 공연, 전시회, 걷기 행사 등이 펼쳐졌거나 진행되고 있다.

블룸스 데이의 절정은 역시 당일인 16일. 이날 아침 더블린의 제임스 조이스 센터에서 ‘블룸스 데이 브렉퍼스트(아침)’를 먹는 것으로 시작된 축제는 지역 명사들과 조이스 마니아들이 참가하는 <율리시스> 낭독회와 연주회, 뮤지컬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블룸스 데이의 핵심은 아무래도 주인공 블룸의 발길을 따라 더블린 시내를 걷는 답사(walking tour)에 있다.

‘레오폴드 블룸의 발자국을 좇아서’라는 이름의 답사 프로그램은 이미(11, 13, 14일) 진행되었고, 16일 하루 동안에만도 ‘조이스와 영화’ ‘음악과 정치’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테마 답사가 예정되어 있다. 특히 올해는 조이스의 연작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이 출간된 지 100년이 되는 해여서 <더블린 사람들>의 무대를 밟는 답사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블룸스 데이의 마무리는 17일 정오 조이스 센터에서 있을 ‘<율리시스>의 기원들’이라는 강연이 장식할 참이다.

블룸스 데이의 성공을 보면서 생각한다. 우리 문학에서도 블룸스 데이와 같은 축제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없지 않다. 한국판 ‘블룸의 길’에 해당하는 코스가 우리에게도 있다. 바로 ‘구보의 길’이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 구보가 걸었던 1930년대 경성의 중심부 노선이다.

건축학자 조이담씨는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2005)라는 책에서 소설 속 구보의 하루를 1934년 8월 1일로 특정하고, 청계천변 다옥정 7번지 집에서 출발해 종로네거리와 동대문, 남대문과 경성역, 광화문통 등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총연장 15.7㎞(전차 구간 5.7㎞ 포함)의 ‘구보 노선’을 정리해 놓은 바 있다. 복원된 청계천과 광화문, 시청 광장, 서울역, 남대문 등을 포괄하는 이 노선은 한국판 ‘블룸의 길’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지난달 29일과 이달 9일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씨가 독자들과 함께 답사한 남한산성 길 역시 문학·역사 기행 코스로 개발할 만하다. ‘구보의 길’이든 남한산성로든, 한국판 ‘블룸의 길’의 출현을 꿈꾸어 본다.(최재봉 기자)

중앙일보(07. 06. 16) 하루의 힘

'블룸스데이'를 아시나요?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는 매년 6월 16일을 '블룸스데이'라고 부르며 축제를 벌인다.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즈'의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을 딴 '블룸스데이'엔 블룸이 거닌 길을 따라 걷거나 그가 먹은 음식을 똑같이 먹는 이벤트를 펼친다. 그리고 더블린의 공영방송에선 아예 아침부터 30시간에 걸쳐 '율리시즈'를 낭독한다. 이방인의 눈으로 보면 참으로 별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율리시즈'가 1904년 6월 16일 오전 8시부터 그 다음날 오전 2시 반까지 하루가 채 안 되는 19시간여 동안 아일랜드의 더블린을 무대로 일어난 일들을 장장 800여 쪽에 25만여 단어로 담아낸 것임을 감지하는 순간 '블룸스데이'의 비밀 아닌 비밀이 풀리기 시작한다.

사실 말이 800여 쪽이지 그것은 영어 원본의 경우이고 '율리시즈'의 우리말 번역본은 해설을 포함해 1300여 쪽이 넘는다.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단 하루, 아니 19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일을 묘사한 것이라니! '율리시즈'를 보노라면 하루, 즉 24시간=1440분=86400초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것들의 은밀한 압축이요, 함축인가 하는 것을 새삼 깨닫고 경탄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고 스탈린 시대 강제수용소에서의 단 하루의 일들로 한 권의 결코 만만치 않은 소설을 쓸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단 하루의 삶일지라도 그것은 한 권의 소설 이상을 탄생시킬 만큼 그 뭔가로 농축돼 있는 것이다.

더구나 '율리시즈'에 묘사된 그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한평생의 숙제요, 존재할 이유이며 삶 그 자체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 앞에선 묘한 전율마저 느끼게 된다. 김종건 전 고려대 교수는 서울대 대학원 시절 원어 강독 시간에 '율리시즈'를 만나 자신의 평생을 그것의 번역을 위해 바쳤다. 1968년 국내 최초로 '율리시즈'를 번역한 김 교수는 20년 후인 88년 다시 개정번역을 냈고, 또 한 해 모자란 20년 후인 올해 2007년에 세 번째 번역본을 내놓았다. 평생 고치고 또 고친 것이다.



어찌 보면 그는 자신의 평생을 소설 '율리시즈'에 묘사된 하루와 고스란히 맞바꾼 셈이다. 그 하루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일을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각고의 노력으로 평생을 바친 것이다. 물론 노 교수의 학문적 투혼도 무서울 정도지만 25만 단어 이상의 사연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가 뿜어낼 수 있는 하루의 힘, 그 하루의 저력은 무섭다 못해 위대하지 않은가.

그래서 하루가 아까운 것이다. 퇴계 이황과 더불어 사단칠정 논쟁을 펼쳤던 것으로 유명한 고봉 기대승의 13대 후손인 기세훈 변호사의 고택 사랑채 당호는 다름 아닌 애일당(愛日堂)이다. 애일당이라…하루를 사랑하는 집? 아니다. 애일당 툇마루에 앉아 있노라면 시간 가는 것이 너무 아쉬울 만큼 좋다. 결국 애일당은 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하루가 그저 지나가는 것이 아깝고 아쉽다는 함의가 깃든 집 이름이 아닐까.

하지만 하루가 지나는 것을 아깝게만 생각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그 아까운 하루를 최고의 하루, 위대한 하루로 만드는 일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여사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미스터리, 오늘은 선물!" 그렇다,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알 수 없지만 오늘은 분명히 선물이다. 그 선물인 오늘 하루를 최고의 날로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할 일이다.(정진홍 논설위원)



07.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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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6-18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한겨레에서 봤는데 로쟈님 올리실줄 알고 기다렸습니다. 저 무겁고 두꺼운 <율리시스>가 책장 한 곳에 누워있군요.

로쟈 2007-06-18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크랩 정도는 대신해줄 만한 비서를 구해야겠습니다.--;

eddie 2007-07-03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로쟈님^^
수유님 블로그에서 보고 왔습니다. 이 글 제 개인 블록에 퍼가도 될까 해서요. 아 그런데 돌아보니 참 재밌는 포스팅이 많네요. 멋져요^^

로쟈 2007-07-03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시군요. 가끔 놀러오시길.^^
 

이런저런 일들과 겹치게 됐지만 6월의 마지막 일정 중 하나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창비, 2000)과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2007)에 대해 강의하는 것이다. 사실 '강의'라는 건 핑계이고 나 자신이 지난 20년을 잠시 돌이켜보기 위한 '뒷북'으로 지난 겨울에 기획해서 한 독서모임의 프로그램으로 제안한 거였다(나는 뒤늦게 5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을 6월까지 연장하면서 <오래된 정원> 등을 추가했다. http://blog.aladin.co.kr/mramor/1108684). 

소설은 이번에야 읽게 됐는데, 지난 2000년에 처음 출간됐을 때 내가 받은 첫인상은 '정원'이란 말이 너무 튄다는 것이었다('뜰'이나 '밭'이나 '마당'에 비해서 얼마나 이국적인 말인지!). 작가의 후기를 읽고서야 의문이 풀렸는데 그는 이렇게 적었다. "1993년 귀국하자마자 구치소에 있을 무렵 운동시간에 나가 하염없이 시멘트 담벽 안의 비좁은 공간을 맴돌면서 문득 무릉도원 이야기와 샹그릴라 전설이며 하는 것들을 생각하던 중 '오래된 정원'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오래된 정원'은 '무릉도원'과 '샹그릴라'의 은유인 셈이고, 이국적 뉘앙스가 배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영화의 관련 영상을 포함하여 몇 가지 강의자료들을 챙기다가 작가와 감독의 대담이 눈에 띄어 스크랩해놓는다(사실 눈에 띈 건 오래됐지만).말미에 주연배우로 이병헌이 언급되기도 하는 걸 보면 아직 영화의 캐스팅도 공식적으론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담이다.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라는 작가의 제안이 눈길을 끄는데, 사실 이 1인칭 소설을 읽어가면서 내가 느낀 건 작가가 지난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적절한 연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일감으로 떠올린 작품은 신경숙의 <깊은 슬픔>이었다. 황석영은 왜 3인칭으로 쓰지 않았을까? '연애감정'을 다루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 중요했던가?).

"잊어서는 안될 한 시대의 진실"(백낙청)이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정서적 심층에 잠재된 연애감정의 음영을 절묘하게 포착한 작품"(염무웅)으로 귀결되는 것인지, 그렇게 봉합되고 봉인되는 것인지 의구심도 갖게 된다.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는 구호는 작가의 독백적 구호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들면서. 영화 <오래된 정원>은 소설이 흘려버린 서사를 챙겨주고 있는지? 아직 남겨놓은 소설과 영화를 마저 읽고/보고 좀더 생각해봐야겠다(나는 강의준비를 미리 하지 않는다).  

씨네21(05. 07. 27)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는 선언이라도 하자”

황구라라는 말이 있다. <오래된 정원>의 원작자인 황석영 작가와 각색자이자 연출가인 임상수 감독과의 대화는 일대일의 공정한 대담이 되기 어려웠다. 오후 4시에 만나 다음날 새벽 3시까지 황석영 작가는 쉬지 않고 말했다. 본인 레퍼토리만 200가지라고 한다. 임상수 감독은 황석영 작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3대 구라에 대해 얘기했다. “누군가 황 선생님한테 선생님이 망명 기간 동안 그리고 감옥을 다녀 오는 동안 새로운 구라들이 떴습니다, 했더니 황 선생이 이랬대요. ‘걔네들은 교육방송 수준이야. 내가 라디오지.’” 황석영 작가의 라디오는 쉬지 않고 연애, 감옥생활, 신자유주의, 노동의 이동, 비정규직, 한국 문학의 위기, 한국영화의 위기, <한겨레>의 발전 프로젝트 등 주제를 옮겨다니며 능청스럽고 활달하게 유쾌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오래된 정원>은 군부독재 반대 운동으로 18년간 장기복역하고 출옥한 오현우가 그동안 만날 수 없었던 사랑하는 연인 한윤희의 자취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랑하지만 만날 수 없는 연인의 가슴 아픈 사연를 뼈대로 고난의 한국 현대사를 담아냈다.

황석영 | 내가 임상수 영화를 씹으려고 나왔는데. (웃음) <그때 그 사람들>이랑 <바람난 가족>을 봤는데, <바람난 가족>이 훨씬 좋더라고. 저 양반이 자기 특유의 화법이 있는데 조금씩 비약이 있더구먼. 앞으로 혼내서 조금만 다듬으면 좋겠어. (웃음) 저 사람이 참 고급이야. 우리는 딱 알겠더라고. 내용이 남반부의 천민자본주의 재생산이구나. 아주 재미있게 봤어. 일반 대중은 어렵지. 느닷없이 죽는 실향민이 김일성 장군 노래를 부른다던가. 일반 사람은 저 실향민이 미쳤나 싶은 거지. 그 사람은 여기 와서 삶이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회한도 있을 거고. 옛날 사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자기 회한인데, 남한 전체가 갖고 있는 회한이기도 하고. 누가 인권변호사를 저 따위로 그리냐 비난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스테레오타입이지 뭐. 인권변호사는 교접 안 하나. (웃음)

임상수 | 실향민 장면 같은 경우 황석영 선생의 <손님>을 언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전에 읽었다면 제가 영향받은 것이고 뒤에 읽었다면 아, 선생님과 내가 비슷하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리고 <오래된 정원>에서 윤희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실토하겠습니다.

황석영 | 그래도 내가 꼬마 때부터 영화 오래 봤잖수. 카메라 돌아다니는데 군더더기 없이 탁 넘어가는 게 의젓하더라고.

임상수 | 저는 황석영 선생의 의젓하다는 말씀이 최고의 찬사라고 알아듣고 있습니다.

황석영 | 임상수는 서사가 있는 홍상수야. 그게 근데 어려워. 임 감독의 대중적이지 않은 화법이 장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데 <바람난 가족>은 교접장면이 있어서 흥행이 됐겠지. (웃음) <그때 그 사람들>은 캐릭터가 분명하지를 않아. 감독이 좀 쫄은 거 같아. 뒤처리가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하게 끝나더만. 김재규 캐릭터가 중요한데, 가령 서사도 서사 중심이 있을 텐데,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Z>를 보면 이브 몽탕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을 줄거리로 쫓아서 반대쪽 견해라든가 폭력, 허위를 밝히는데 <그때 그 사람들>은 김재규의 캐릭터가 너무 애매모호하지 않았나 싶어. 난 그게 압력받아서 그런 거 같아. 이 영화가 정치권을 뒤집어놓고 시끄럽게 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을 테고. 런던에 있었지만 영화 시사회를 한 뒤에 시끄런 잡음이 있었던 건 다 알죠. 영화 중간 부분까지는 잘 넘어가더라고. 세련된 스릴러를 보는 느낌인데. 근데 보니까 역시 권력 언저리엔 다 깡패새끼들이야.

임상수 | 핵심이 그거죠.

황석영 | 드라마 <제5공화국>도 보면 이게 웬 조폭영화인가 싶어.

임상수 | 그럼요. 군사독재를 보면 원조조폭이죠. 실제 조폭이 흉내내는 원형이 있는데 그게 3공화국 당시의 청와대죠.

황석영 | 지금 청와대는 안 먹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위해 황지우가 싹싹 비는데도 모금을 안 해줘. 누가 높은 사람이 전화했대. 돈 좀 주라고. 그런데 더 돈을 안 주더래. 청와대까지 전화할 거 있습니까, 그러면서 더 안 주더래. 더 말 안 듣는 거지. 그런데다 (노무현 정권은) 권력이양까지 한다네. 저리 순진한지 몰라.

임상수 | 소설 좀 읽은 사람 치고 황석영의 소설을 안 읽은 사람은 없죠. 제가 황석영을 읽은 때는 <객지>가 처음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죠. <객지>를 읽으며 여자 서너명쯤 꼬신 거 같은데. 이거 좀 읽어봐 하고 말이죠.

황석영 | 그러면서 술마시고 토론해보자고 꼬시는 거겠지.

임상수 | 제가 술자리에서 황석영이 되는 거죠.

황석영 | 임 감독이 공부도 잘했지. 제일 다사다난할 때 학교 다녔을 거 아냐. <바람난 가족>을 보면서 그런 시선을 봤어. 옆다리니 남의 다리 긁는 거 같은데 그게 사실 우리의 자화상이거든. 차승재 대표가 원래 의리의 사나이거든. 어디 가서든 자기 사람 칭찬하는 데는 침이 마를 지경이야. 난 임상수가 누구인지 잘 몰랐는데, 영국에서 차승재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어. 임상수가 한다며 그랬더니 임상수가 힘이 있습니다, 실력이 있습니다 그래. 다른 누구에게 물어봤더니 임상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거만 합니다, 그래. 상반된 얘기가 있더라고. 임 감독 또래에서는 씹히는 거야. 한국에 와서 보니 소문이 그렇게 나 있더라고. 그래서 <그때 그 사람들>을 봤지.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 부분부분 비약을 하는 자기만의 화술 때문에 잘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난 보면 알겠는데. 우리도 그래. 문장 쓸 때 보면, 아 그리워서 미치겠다 발악해서 쓰지 않아. 그걸 이미지네이션으로 하거든. 비오는 텅 빈 플랫폼에 서 있는데 어떤 꼬마가 비닐우산 쓰고 저 구석에 서 있다라든가, 이렇게 바꿔서 표현하지. 요즘 젊은 작가들 문장을 보면 감수성이 있다고 그러는데, 옛날 일기장에 오늘의 명언 한 구절씩 들어가는 게 있다고. 보이스 비 앰비셔스. 뭐 문장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거야. 처먹여주지 않으면 모르나봐. 우리는 서로 ‘공중전’이 되는데 말이야.

임상수 | 공중전이라는 말은 선생님만이 쓰시는 어휘 가운데 하나죠? 소설 쓰시는 선생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대중을 상대하는 작업인데, 우리 작가들의 영원한 딜레마란 그거죠. 선수끼리 통하는 대중과의 접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도의 공중전을 벌여야 한다는 것.

 

황석영 | 한국영화는 관객이 조금 들었다고 자족하면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거야. 요즘 젊은, 이른바 뜬다는 배우들 봐. 영혼이 어디 있어. 걔네들 눈동자를 보라고. 관객도 좀 교육시켜야 한다고. 장사되는 영화 나오면 비슷한 게 10개가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한 영화에 1천만명씩 드는 거 보면 정신병이야.

임상수 | 저는 전후세대 전전세대라는 개념으로 한국의 상황을 얘기해보고 싶어요. 전전세대들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그걸 가슴속에 묻어두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령 김형욱의 자서전은 미국식으로 보면 당연한 거든요. 사실 고백해야지 상처를 잊을 수 있는데 전전세대는, ‘가슴속에 묻어두고 가는 거야 그게 사나이야’ 그런 태도가 있어요. <바람난 가족>에서 피를 아들에게 토하는 장면이 상징적인 게 <오래된 정원>과 <손님>에 나오는 문제의식과도 통해요. 영원히 그 외상을 가슴속에 담아두려니까 피가 썩을 수밖에 없는 거죠.

황석영 | <제5공화국> 보면서 이제야 광주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 거 아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이 드라마나 보고 마는 거지. 그게 한국 사람들의 교양의 척도야. <바람난 가족>은 특유의 고상한 은유가 있는데.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자화상인 거지. 첫 장면 해골파는 게 무슨 소리인지 사람들은 모를 거야. 그렇게 형성된 거거든, 이 바닥이. 어느 구석을 가도 말야, 강남의 한 집안 얘기도 그렇고 말이야. 그 사람이 만주에서 밀정노릇하다 커서 양놈 밀정노릇하다가 중공군 포로심문관으로 컸거든. 각 지역의 사학설립자다, 토호다 하는 이들의 배경이 다 그래. 일제 때 순사를 해먹든 면장을 해먹든.

임상수 | 잔인하게 얘기하자면 한국 근대사의 역사가 비적질의 역사이고 그게 여기까지 온 거고.

황석영 | 정말 그래. 동학 이래 100년이 넘었어.

임상수 | 새 정권이 비적질은 안 한다고 그런 거 같은데.

황석영 | 그러니까 이빨이 다 빠진 거잖아.

임상수 | 그 기개는 훌륭한데 그 비적질의 역사를 단칼에 잘라낼 수가 있을지.

황석영 | 그래도 설거지는 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저렇게 힘이 없어 어떻게 설거지를 하나 걱정스러워.

임상수 | 잘못되면 다시 비적질 역사로 회귀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하시는 거죠.

황석영 | 그렇지. 난 제대로 영화화 기회를 만난 적이 없어. 팔자가 그래. <삼포 가는 길>도 이만희 감독이 말년에 간암이었고 그러니 영화할 정신이 아닌 거야. 다 못 만들고 죽었어. 나머진 제작자가 만든 거야. <오래된 정원>은 러브스토리로 당연히 가는 거지만 임 감독이 자기 방식대로 꾸려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 소설의 주제는 시간이야. 개인의 삶과 역사는 시제가 원래 안 맞게 되어 있는 거야. 기대와 리얼리티는 다르게 전개되게 되어 있다고. 그게 우리의 운명이야. 돌이켜 다시 살 수 없는 거잖아. 중심은 일주일이야. 18년 만에 풀려난 오현우가 갈뫼(존재하지 않는 전라도의 산골마을. 오현우와 한윤희가 짧게 함께 살던 곳이다)로 갔다가 돌아오는 거. 그리고 갈뫼에 윤희가 남긴 편지에서 18년 동안 윤희의 또 다른 삶이 있는 거지. 둘은 연결이 안 돼 끝까지. 따로 간다고. 한 일본 평론가는 이 소설이 독자가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통해서 둘을 접촉시키고, 완성시킨다고 했지. 중심줄거리는 러브스토리지만 20세기를 돌아보는 거야.

임상수 | 선생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 <이웃사람>이에요. 선생님이 내면화된 폭력이 순간적으로 나오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바람난 가족>에서 애를 던지는 거, <눈물>에서 누군가가 성지루를 칼로 푹 찌르는 거, 그게 <이웃사람>한테 알게 모르게 영향받은 것이구나 싶어요. 전 황석영의 소설에 굶주려 있었으니까 <오래된 정원>을 나오자마자 봤죠. 왜 인간이 이렇게 숭고한 거냐,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조광희 변호사에게 전화했더니 세상에 너 같은 양아치만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숭고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처음부터 영화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황석영 | 오현우가 내 캐릭터는 아니에요. 내 친구들 모자이크 한 거야. 서준식을 좋아하는데, 지금 현재 우리 동시대 지식인에 그만큼 도덕적인 사람이 없어. 걔네 체험도 있을 거고. 주변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든가. 김남주도 있고(그런 사람들이 소설 안에 녹아들어 있지).

임상수 | <그때 그 사람들>을 만들고 나서 보수신문에 융단폭격을 받아서, 이번에는 어머니 부탁도 있고 해서 적을 만들지 않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황석영 | 그럼. 인간의 얘기를 하면 돼. 난 임상수의 간접화법이 좋다고 생각해요. 카메라 워킹이 참 좋아요, 의젓하고. 모르는 쪽에서나 씹는 거야, 비약이 심하다 이거지.

임상수 | 다음 작품이 러브스토리라니까 칸에 온 외신기자들이 다 안 믿더라고요. 차승재 대표가 이 얘기를 하니까 그러대요. 웃기지마, <조선일보>랑 한나라당이랑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그럴 거라고.

황석영 | 정치적 격변 같은 거는 저 먼 곳에서 우레 울리듯 우르릉 배경으로 깔리게 하고 그 다음 그들의 회한과 아름다운 일상을 그리면 돼. 그렇게 만들면 눈물 빠질 거야.

임상수 | 80년대 운동했던 사람들이 이 책을 임상수가 영화화한다니까 다 읽은 거예요. 다 너무 울었다는 거야. 그러면서도 그들에겐 불편한 감정이 있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한국인의 삶이라는 게 되돌아보지 못하고 계속 뛰어가는 성향이 있어요. 80년대가 소설로 다뤄지긴 했지만 <오래된 정원>이 비로소 집대성한 거죠. 왜 우리가 정리도 안 하고 뛰어온 건가, 정리했어야 할 일인데, 그런 점에서 <오래된 정원>이, 소설로 정리된 거지만 영화가 사람들이 더 많이 보니까, 영화라는 장르 통해서 분명하게 짚고 가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이 영화하게 돼 영광이에요.

황석영 | 전부 다 회한으로, 저 가슴 밑에 꺼내고 싶지 않은 것들이니까.

임상수 | 선생님 작품 연보에서 드물지 않습니까, 러브스토리가.

황석영 | 내가 감옥에서 나와서 이제 드디어 자유의 공간이야. 옛날엔 복장도 서로 단속했어. 이 새끼 왜 이렇게 야하게 입어. 문인이 입는 옷과 자태가 따로 있어. 행복할 자유와 러브스토리 쓸 자유. 예전엔 사랑을 할 자유도 억압됐어.

임상수 | 망명생활 5년 하고, 감옥 5년이 선생님께 인간적인 그리움을… 선생님은 그리움보다는 더 강력한 사나이 같은 작품을 썼죠.

황석영 | 서정적 내면, 속살이 조금씩 들어 있어. 그게 강한 서사에 묻혀서 안 보이거든. 그게 처음으로 <오래된 정원>에서 속살이 드러나는 거야. 그러니 깜짝 놀란 거야.

임상수 | 강남에 사는 싱글 여성들에게 시나리오를 읽혔더니 얘기가 너무 올드하다, 왜 안 슬프냐, 왜 여자 한윤희가 팔자도 안 고치고 그렇게 사느냐고 하던데 이들을 모두 납득시키겠다는 게 제 원대한 꿈입니다.

황석영 | 납득보다는 구성이 중요해. 구성을 가지고 그 사람들 울릴 생각을 하면 돼.

임상수 | 원작에 충실하면 다 울게 돼요.

황석영 | 에피소드들 다 무시하고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라고. 구도는 잡혔으니까. 사람의 얘기지, 뭐. 임상수로서도 새로운 전기가 될 영화야.

찻집에서 두 사람은 길고 긴 대화를 나눴다. 신자유주의, 제3세계 노동자의 서구 유입,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부터 제3공화국의 비화가 화제에 올랐다. 식당에서 ‘오십세주’를 반주로 곁들이면서 두 사람은 촬영감독, 차기작 등 구체적인 얘기로 들어갔다. 황석영 작가는 스스럼 없이 말을 놓으며 애정을 표했다.

황석영 |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워털루>(1970)를 보라고. 그 사람이 워털루 싸움의 앞뒤 사흘로 나폴레옹의 정점과 몰락을 카메라로 어떻게 담아내나 보라고. 윌리엄 프레이커 감독의 <몬티 월쉬>(1970)를 또 봐. 그렇게 촬영감독이 중요한 거야. <오래된 정원> 촬영감독은 <바람난 가족> 때 같이 한 사람이랑 해.

임상수 | 김우형 촬영감독이 <그때 그 사람들>도 같이 했고 이번 작품도 김우형 촬영감독과 해요. 저는 양아치고 김우형이야말로 예술가죠.

황석영 | 그래 잘했다. 너 같은 양아치, 그러니까 아방가르드들은 예술가의 지도를 받아야 해.

임상수 | 제가 존경하는 작가로 이문구 작가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석영 | 당신이 한국전쟁이 문학사에서 비어 있다고 했지만 이문구의 <관촌수필>이야말로 깊이와 연민이 있어. 내가 못하는 걸 이문구가 하고 이문구가 못하는 걸 내가 하지.

임상수 | 제가 <바람난 가족>의 서두에서 경찰이 유가족 대표의 멱살 잡는 장면을 가져온 게 어디냐 하면(“제가 민 게 아니고 대한민국 법이 민 겁니다”라고 경찰이 하니까 유가족 대표가 “이 멱살은 내가 잡은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잡았다”고 하는 부분) 바로 이문구 작가의 <우리 동네>였습니다. 아무도 모르더군요.

황석영 | 그래, 맞아.

임상수 | 훌륭한 작가의 에피소드를 훔쳐서 미안하기도 합니다만 엔딩 크레딧에 넣기도 그렇고.

황석영 | 그건 훔친 게 아니지. 영상언어로 다시 발견한 거지. 영화라는 게 고전이고 명작이고 한달이면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모두 볼 수 있어. 하지만 소설은 수백년간 엄청나게 쌓아진 게 있지. 요즘 한국 문학의 위기니 하는데 그거 다 자가발전한 거야.

임상수 | 그렇죠. 평론가들과 신문들이 합작해서 만든 작가들은 수명을 다 했죠. 자기들이 불러온 위기죠.

황석영 | 그래, 그런 의미에서 우리 둘이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고 담지하자는 선언이라도 하자. 사실 나 같으면 <바람난 가족> 그렇게 안 만들어. <대부>처럼 누아르로 만들지. 그게 천민자본주의 형성사 아냐.

임상수 | 선생님과 같이 하고 싶은 게 강남 형성사입니다. 변방이 어떻게 중심으로 바뀌는가. 천민자본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사실, 선생님이 영화감독을 하셔야 되는데.

황석영 | 에이, 무슨. 내가 지금 태어나면 나도 영화감독 하지, 뭐 하러 읽지도 않는 소설 써. 그래 나도 하고 싶다. 내가 구술로 다 불러줄게. 내가 시놉시스도 다 써오고. 삼부작으로 만들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한잔 더를 외쳤다. 황석영 작가의 단골 술집에서 일산의 전망이 다 보였다. 통유리 바깥으로 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 말솜씨 좋은 감독 가운데 손꼽히는 임상수 감독은 작가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기가 밀려서인지 ‘라디오’를 다소곳이 듣기만 했다. 3차에 와서야 그는 술기운을 빌려 라디오와 공정한 대담을 하기 시작했다. 황석영 작가와 임상수 감독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며 한국영화의 서사를 회복하자는 다짐을 하며 헤어졌다.

임상수 | 제 각색의 원칙은 이겁니다. 한윤희의 베를린 생활, 오현우의 감옥 생활을 뺀다. 그리고 윤희를 만나기 전까지의 오현우의 운동권 생활, 위장취업도 다 뺀다는 겁니다.

황석영 | 어, 그래 마음대로 해.

임상수 | 실제 배우 나이는 중요하지 않을 거 같아요. 20년 세월 뛰어넘는 연기이기는 하지만.

황석영 | 이병헌이 오현우를 하면 어떨까. <올인> 보니까 얘 눈이 촉촉한 게 있어.

한겨레(07. 01. 03) 서정시가 불가능한 시대의 연가(戀歌)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워서 침 뱉거나 재갈 물고 침 흘리거나. 눈 질끈 감고 제 몸 불사르지 않는 한 누구나 그래야 했다. 그게 살아남은 자들의 ‘예의’였다. 정말이냐고. 1980년대, 한국이 그랬다. 그때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또 하나의 시대였다.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라는 물음조차 죄악이었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묻는다. 한 세대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죄의식 아니면 무용담으로 남아 있는 이분법의 80년대를 향해. 정말 사랑조차 그 시대엔 몹쓸 짓이었냐고.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래된 정원>은 장기수였던 한 남자가 출소한 뒤 사랑했던 한 여자의 흔적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따른다. 군부독재에 반대하던 20대 사회주의자 현우(지진희)는 16년8개월 만에 세상을 활보할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어느새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처럼 그를 둘러싼 세상 또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변해 있다. 한때 목숨을 걸었던 동지들은 “인생은 길고 혁명은 짧다”고 탄식하며 주먹다짐을 하고, “누가 뭐래도 난 아들 편”이라던 어머니는 떵떵거리는 억대 복부인이 되어 늙은 아들에게 고기쌈을 내민다.

변해버린 세상,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가슴에 품고 있던 단 한장의 증명사진을 들고 현우가 윤희(염정아)를 찾아 떠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윤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현우는 그녀와 나눴던 짧은 사랑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는 갈뫼로 향한다. 도피 생활 중에 자신을 “숨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몸도 줬던” 윤희를 떠올리는 동안 그는 자신이 수형 생활을 했던 16년8개월이 그녀에게 더한 포박의 세월이었음을 깨닫는다. 감옥에서의 시간을 인내하게 했던 것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신념이 아니라 아직도 끓고 있는 사랑이었음을 또 감지한다.

그렇다고 임상수 감독이 지고지순한 사랑 예찬론을 펼치진 않는다. 대신 영화는 ‘오만’을 부려서라도 시대의 악몽을 제발 좀 떨치라고 말한다. 과거를 들먹이며 현재를 방기하지 말라고 나직하게 충고한다. 이러한 처방전은 감독의 전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우는 존재를 알지 못했던 자신의 딸을 만난다. 그리고 딸로부터 어떤 화해보다 ‘쿨’한 제안을 받는다. “이젠 헛게 다 보이네”라는 현우의 독백은 역사든, 사회든, 가족이든, 거대한 권위의 감염된 상처들은 개인만이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그만의 윤리처럼 보인다(덧붙여 김우형 촬영감독이 든 카메라 움직임을 눈여겨보시라).(이영진기자)

07.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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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문학사이' 22번째는 소설가 백가흠 편이다. 약력상으론 1974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명지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200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광어>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첫 창작집은 <귀뚜라미가 온다>(문학동네, 2005). 제목상으론 좀 소심해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 작가가 '귀뚜라미'급이 아니라 '광어'급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매력을 느끼는 건 그가 '날것'을 다루는 솜씨이다.   

경향신문(07. 06. 16) [작가와 문학사이](22)백가흠-끔찍한 진실 적나라한 서사

잠시, 불결한 육체가 죄악과 나뒹구는 장면을 감상해보자. “달구의 늙은 노모가 달구에게 매를 맞고 있다. 노모의 검버섯 곱게 핀 뺨이 벌그죽죽하다. 바람횟집의 남자가 막 여자의 질 안에 삽입을 시작했을 때, 달구분식의 노모는 가지런히 쪽 찐 머리가 일순 헝클어지도록 세차게 귀뺨 한 대를 얻어맞았다. 천장으로 넘어온 여자의 웃음소리는 가는 신음 소리로 변하고 있다. 바람횟집 여자는 자신의 신음 소리가 새어나가지 못하게 엎드려서 손으로 입을 막고 있다. 달구의 노모도 비슷하다.”

백가흠의 첫 번째 창작집 ‘귀뚜라미가 온다’의 표제작 ‘귀뚜라미가 온다’는 폭력과 섹스가 동거하는 기묘한 장면에서 시작된다. 같은 시간 한 집에서는 아들이 늙은 어미를 두들겨패고 얇은 벽 너머의 다른 한 집에서는 젊은 남자가 ‘엄마’라고 부르는 여자와 교접한다. 장면은 계속된다. 가령 남편은 인터넷 채팅으로 아내의 몸값을 흥정한 뒤 아내에게 매춘을 강요하고 ‘아버지’처럼 보이는 고객은 아내의 음부에 “둘둘 말은 지폐를 끼워 넣는다”(‘밤의 조건’) 혹은 자발적 매춘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아내와 일가족 모두를 죽이고 자살하는 남편은 어떤가(‘구두’). 그도 아니면 어린 딸을 티켓다방에 팔아넘기는 아버지는(‘배의 무덤’).

백가흠 소설의 여자들은 그렇게 아버지 혹은 남편의 손에 속절없이 맞고 피 흘리고 죽어간다. 때리는 사람이나 맞는 사람이나 모두 인간이라는 자각은 일찌감치 접어둔 채, 아니 인간이기를 포기한, 마치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동물과도 같다. 그러니 어떤 평론가의 말을 빌려와 이들이 상연하는 드라마를 ‘비루한 동물극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충격적인 장면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불쾌하고 역겹고 끔찍한 병리적인 가족 이야기는 이미 텔레비전의 고발 프로그램에서 익숙하게 봐온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전능한 가학적 폭력을 휘두르는 주인 남자(유사 아버지)가 있어, 정신지체 장애인인 ‘여자’를 부인이 보건 말건 수시로 강간하고 심지어 ‘여자’의 젖을 독점하기 위해 유아살해까지 서슴지 않는 엽기적인 이야기는 어떤가.

실제로 백가흠의 ‘배꽃이 지고’는 모 프로그램에서 다룬 이 반인륜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고발 프로그램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낯선 개인들을 사회적 네트워크 바깥에 존재하는 예외로 괄호침으로써 이러한 이야기를 충격적이지만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소비하게 하는 반면, 백가흠은 이러한 패륜과 악덕의 이야기를 사회병리적으로 서사화함으로써 좀더 두껍게 만든다. 그리하여 백가흠 소설의 신경향파적 에피소드는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실과 그러한 현실에 내장된 남근주의적 폭력을 진단하고 해부하려는 작가적 자의식을 거치면서 사회비판적인 심리극으로 변모한다. 그리고 그 심리극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생각만큼 권위적이고 파워풀하지 않다. 오히려 이 즈음 인구에 회자되는 연민을 자아내는 가련하고,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 존재에 가깝다. “한 번도 닦아 신지 않은 듯한 구두, 먼지와 때가 굳어 가죽의 일부가 되어버린 구두”(‘구두’)는 그 자체로 왜소하고 빈약해져버린 이 즈음의 아버지를 상징한다. 그러나 아무리 어머니의 외피를 두르고 어머니 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고 해도, 여전히 아버지들은 힘이 세다. 그들의 불쌍한 모습에 현혹되어 그들의 가학과 폭력을, 그러한 무자비한 공격에 신음하고 피흘리는 존재들을 은폐해서는 안 된다.

백가흠 소설은 이 세계에서 여전히 자행되는 불쾌하고 불편한 진실을 불쾌하고 불편한 방식으로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그리하여 여전히 종교와 법과 국가라는 상징적 아버지의 이름으로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고발한다. ‘성탄절’에서 연출되는 신성 모독의 이야기나 ‘루시의 연인’에서 주인공 남자의 변태적 상상력의 기원을 왜곡된 군대문화에서 발견하는 방식 또한 이에서 멀지 않다. 그러니 백가흠 소설에서 그려지는 지옥도가 우리를 힘들게 하더라도 노여워하지 말자.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의 끔찍한 실재의 모습이니. 그 모습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우리 독자가 갖춰야 할 윤리적 태도일는지도.(심진경|문학평론가)

07. 06. 17.

P.S. 최근 출간된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문학동네, 2007)에는 '젊은 작가' 12명의 한 사람으로 선발된 백가흠과 그의 은사이기도 한 소설가 박범신의 좌담이 포함돼 있다. 책은 "2005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최로 열린 '금요일의 문학이야기'"를 묶은 것으로 "소설가 박범신이 2000년대 한국문단의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과 만"나서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2000년대 젊은 작가들에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에겐 유익한 길잡이가 될 만하다. 관련기사를 하나 옮겨놓는다. '역사의 부채'가 없는 '행복한 글쟁이들'의 한 사람인 백가흠이 '끔찍한 진실, 적나라한 서사'의 작가라는 게 왠지 모순처럼도 느껴지는군(작가의 의도대로라면 '모순' 대신에 '불쾌'라고 적어야겠다)...

동아일보(07. 06. 15) '역사의 부채’ 없는 행복한 글쟁이들

“누구는 보안업체 다니고 누구는 경비를 하고 누군가는 세일즈 하는 것처럼 소설 쓰는 일 역시 일반 직장이라고 생각합니다.”(소설가 이기호 씨) 젊은 작가들이 선배들과 다른 문학관을 밝혔다.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문학동네) 에서다. 이 책은 소설가 박범신(61) 씨가 30대 작가 12명을 초청해 작품과 삶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묶은 것이다. 생생한 구어를 그대로 옮겨 현장감을 살린 덕분에 젊은 작가들의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소설집 ‘이상 이상 이상’과 ‘우리는 달려간다’를 낸 소설가 박성원(38) 씨. 그는 “문학이 어떻게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데, 가장 요긴하게 사용한다 해도 가위질 같은 걸 하다가 피가 났을 때 임시로 지혈하는 정도밖에 없는데, 그런데 종이책이 그렇게 아무짝에도 소용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절대 억압하지 않는다”고 문학의 의미를 에둘러 말한다. 박 씨는 “가방은 물건을 넣고 다니는 도구인데, 그게 루이비통이 돼 버리면 어떤 사람은 흠집 날까 봐 자주 들고 다니지도 못하더라”며 “이렇게 진짜와 가짜가 역전되는 현대를 문학으로 옮기려는 것”이라고 소설관을 밝혔다.

지난해 ‘낙서문학사’를 출간한 김종광(36) 씨는 “소설이 갈등의 산물이라는데 사실 이해가 잘 안 가서 인물 간의 갈등 국면을 짧게 처리한다”며 기성관념에 반기를 든다. 그는 그러면서도 “소설을 안 쓰면 허파에 바람이 든 것 같다”며 글을 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윗세대와 달리 소설 쓰기가 숭고하다거나 그에 대해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이기호(35) 씨. 그는 “일종의 벤처인데, 경제논리에 휘말리지 않는 것”이라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명쾌하게 정의한다. “내 글이 화염병이 돼야 한다거나 조국 통일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으며 그래서 오히려 행복한 세대가 아닌가 한다”면서 그는 ‘문학 아니면 죽음을 달라’던 선배 세대와 선을 긋는다.

서울내기여서 사투리 하나 몰랐던 데다 분자생물학과 출신이어서 문학의 길에 들어서기 쉽지 않았다는 심윤경(35) 씨. “문단에서 고졸이나 마찬가지인데 그게 악착같은 헝그리 정신을 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글을 쓰겠느냐, 혹은 절대 쓰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김숨(33) 씨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며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말한다. “소설이라는 게 축복일 수도 있고 저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살아가면서 매달릴 대상이 있다는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때로 독자에게 불쾌함을 요구한다”고 소설의 의도를 당당하게 밝히는 백가흠(33) 씨, “작가는 언어로써 독자를 유혹하는 존재”라는 명료한 작가관을 가진 오현종(34) 씨…. 젊은 작가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는 계속 쓸 것이며 다른 모든 건 부차적인 일”이라고 말한다. 젊은 작가들과 대화한 박범신 씨는 “이들의 고백과 발언이 어떻게 작품으로 완성되는지 좇아가 보는 것이야말로 우리 소설문학의 미래”라고 소감을 밝혔다.(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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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문학사이' 21번째 작가는 사랑 듬뿍 받는 소설가 김애란씨이다. 심진경 평론가에게 바톤을 이어받은 젊은 평론가 차미령씨가 공개적으로 표나는 애정고백을 바치고 있다. 혹은 작업을 걸고 있다. '독자를 세번 매료시키는 힘'이라... 넉다운시킨다는 얘기 아닌가?..  뉴스메이커에 실린 가장 최근의 인터뷰 기사도 후미에 붙여놓는다. 평론가의 애정고백이 영 쑥쓰럽다고 하므로.  

경향신문(07. 06. 09) [작가와 문학사이](21) 김애란-독자를 세번 매료시키는 힘

한 소설가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양반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작업을 거는구나.’(이기호)

또 한 비평가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이 작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가?”(신형철)

2003년 등단한 작가는 2005년 ‘최연소’라는 타이틀과 함께 유수의 문학상(한국일보 문학상)의 영예를 누렸다. 작금의 한국소설을 의혹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남녀노소를 막론한 이 일치단결이 그렇고 그런 안간힘처럼 비쳐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넘겨짚은 분들은 조만간 출간될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을 꼭 읽어 보기 바란다. 이러한 반응이 예사로 부풀려진 것이 아님을 단박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범한 작가는 누구인가. 김애란이다. 1980년생이다.

현재 김애란은 2000년대 젊은 소설의 대표명사다. 하지만 동년배의 소설들과는 확실히 다르고, 그래서 더 눈에 띈다. 최근 1, 2년 사이 데뷔한 문단의 최신예들은 이상하고 신기하고 난해한 이야기들을 창안하는 데 몰두하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러나 김애란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범속한 일상의 사건들로부터 누구나 쉽사리 포착할 수 없는 그 이면의 진실들을 끌어내서 기어이 독자가 무릎을 치게끔 만든다.

김애란은 세번 독자를 매료시킨다. 한번은 그 활달한 상상력에, 한번은 재치 넘치는 언어감각에, 또 한번은 세상살이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시선에. 이 세층위가 한데 엉기며 시너지 효과를 빚어내는 것이 김애란 소설이다. 그중 세번째 층위가 유난하다. 그 시선이 비루한 동시에 숭고한 우리네 삶을 다시금 곱씹게 한다.



작가의 첫 소설집 ‘달려라, 아비’에서는 기원에의 탐색, 서울 변두리 자취 남녀들의 삶, 글쓰기에 대한 자의식적 탐구가 유머와 페이소스를 등에 업고 촘촘히 펼쳐진다. 각각을 대표하는 소설의 제목을 따와 작품집의 면면을 간략히 스케치해 본다. 불꽃놀이는 자기 생명을 기획하고 재연하는 개체의 첫번째 시나리오(‘누가 해변에서 함부로 불꽃놀이를 하는가’)이고, 아무도 노크하지 않는 집은 단절되고 고립된 현대인의 거처(‘노크하지 않는집’)이며, 종이 물고기는 현실의 수면 아래를 찢어질 듯 힘겹게 유영하는 글쓰기의 상징(‘종이 물고기’)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 개인의 서사, 개인의 윤리다. 마찬가지로 제목을 빌린다. 우리는 각기 우리 삶의 ‘영원한 화자’다.

두루 환영받은 첫 창작집 이후, 이즈음 김애란 소설은 더 몸을 낮추고 더 낮은 자리로 향하고 있다. 편의점과 원룸은 애당초 댄디들의 세련된 일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지만, 근래 발표한 소설들의 공간은 거기서 다시 여인숙(‘성탄특선’)과 반지하방(‘도도한 생활’)으로 옮아간다. 제목부터가 아이러니다. 지상의 방 한칸마저 마땅치 않은 청춘남녀들에게 성탄절은 ‘역병’이나 다름없고, 도도하기는커녕 비애가 뼈아프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그곳에서 김애란의 인물들이 이제 누군가와 맞닥뜨리고 있는 까닭이다. 그 누군가는 동남아시아 출신 외다리청년이기도 하고, 누르스름하고 고르지 않은 이를 가진 사내이기도 하다. ‘영원한 화자’가 마침내 조우하기 시작한 이 타자들에 대한 인식을,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또 어디까지 밀어붙이는가에 따라 앞으로 김애란 소설의 성패가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자리에선가 김애란은 말했다. “다만 이 이야기가 나한테 매우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쓸 뿐이라고. 겸사인가. 비슷한 이야기를 한 영화감독도 했다. “나쁜 영화는 지구의 종말을 걱정하고, 좋은 영화는 나의 내일을 걱정한다.”(차이밍량) ‘나’에게 절실한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소설만이, 안으로는 질문을 내장하고 바깥으로부터 퍼부어지는 질문 역시 끝내 견뎌낸다. 누구나 주목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주목하고 좋아한다고 말하기란 영 쑥스러운 노릇이다. 그러나 그 염치불구를 무릅쓰게 할 만큼 김애란 소설은 동시대 비평가에게는 설레는 기쁨이자 섬세한 자극이다.(차미령|문학평론가)

뉴스메이커(07. 06. 12) ‘달려라 아비’의 김애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뿐이죠”

“젊으니까 뭔가 다르고 새롭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부러 ‘비스듬히’ 보지 않고 ‘오래, 빤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

“출판계와 저널리즘에 이르는 오늘날 문단의 불문율 중 하나는 ‘김애란을 사랑하라’는 명령이다. 모두가 그녀를 사랑한다. 진보적 리얼리스트들에서부터 전위적 모더니스트들에 이르기까지, 젠 체하는 비평가들에서부터 자유분방한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 문학평론가 신형철(계간 ‘문학동네’ 2006년 가을호)

“최근 문학현장에 대한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을 준 신인작가로(…) 박민규와 김애란을 꼽을 수 있다” -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계간 ‘창비’ 2006년 봄호)

소설가 김애란(28)에 대한 극찬은 이뿐만이 아니다. 2005년에는 김애란이 창작집을 발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황순원문학상 예심을 통과하지 못했을 때 몇몇 심사위원이 “규정을 바꾸라”며 반기를 들고 나서기도 했다. 김애란은 단편 몇 편만으로도 검증이 끝난 작가라는 게 당시 의견이었다.

1980년생인 소설가 김애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하고, 제1회 대산대학생문학상 소설부문 당선(2003년)을 거쳐, 2005년 11월 단편 ‘달려라, 아비’로 역대 최연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이후 출간한 그녀의 첫 창작집 ‘달려라, 아비’(창비)는 한 달 만에 판매부수 1만 부를 넘기면서 문단은 물론, 새로운 소설에 목마른 독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칭찬만 있는 건 아니다. “김애란 소설의 특징은 개그적 재능이다. 자기 삶을 통일시켜줄 규범이 없는 세대니까, 개그처럼 즉흥과 되풀이가 많은 것이다”(평론가 유종호), “상황 속에서 어떤 말이 태어난 것이 아니고, 말 한마디를 표현하기 위해 상황을 만든다. 장면만 제시하고 지나가는 TV 드라마와 같은 소설이다”(소설가 이청준)가 그것이다.

그러나 문단이든 독자든, 김애란을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녀의 출연에는 ‘한국 소설의 샛별’이라는 평가가 뒤따르고 있다. 질질 끄는 문체와 화려한 수식어, 한 말 또 하고 또 하기를 거듭하는, 지극히 관념적인 기존의 여성 작가들 문장에 질린 독자들에게 김애란의 짧은 호흡, 수미상응의 작법, 군더더기 없는 경쾌한 문장, 세상을 미워하지 않는 쿨한 문장은 신선함과 함께 우리 문단에 대한 기대 수준을 높여 놓았다.

평론가들이 공통적으로 김애란 작품에서 찾는 ‘소설에의 희망’은 중성(中性)성과 우리 시대 아버지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다. 우선 그녀의 인물들은 자신의 성별에 의지하지 않는다. 여자라서 혹은 남자라서 주어지는 특별한 상황은 없으며, 때문에 슬프거나 노엽거나 좌절하거나 그 처리과정도 중성적이다. 이 중성성이 소설의 명랑성을 만드는 원천이라는 평가다. 이 점이 기존 여성 작가들과의 구별점이기도 하다. “여성인지 남성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여성보다는 인간에 주력하고자 했다”는 것이 작가의 말이다.

그녀는 많은 작품에서 아버지를 등장시키는데, 봉건사회와 분단시대, 그리고 산업화라는 시대의 질곡 속에서 우리 문학에 등장하는 아버지와는 전혀 딴판이다. ‘달동네 맨 꼭대기에서 오줌 마려운 듯 벌게진 얼굴로, 허겁지겁 달려가다 연탄재에 발이 걸려 넘어지고, 장발 휘날리며 콘돔을 사러’ 가는 남자가 김애란 소설 속 ‘아비’의 초상이다. 소설가 박완서는 “우리 손자 세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던 차에 그 세대의 작가가 쓴 소설이라 반가웠다. 김애란 소설에서 ‘아비’들은 전통적 아버지에 비하면 아버지 같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의 소설에서 젊은이들은 ‘아비’에게 버림받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아비’를 버렸다고 자부하니, 새롭고 재미있다”고 평가했다.

손정수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최근 격주간 ‘기획회의’ 195호에서 “발단부터 결말에 이르는 시간적 과정이 하나의 줄기로 매끈하게 꿰어져 있는 전통적인 단편소설 미학의 관점에서 보면 소설답지 못한 것으로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만 바로 이 점이야말로 김애란의 소설이 기존의 낯익은 소설들을 흉내내는 것이 아니라 그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는 뚜렷한 토대”라고 평한다.

한편 김애란은 “지각이 없는 작가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글을 쓸 때 나한테 필요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이라며 “젊으니까 뭔가 다르고 새롭게 써야 한다는 의무감보다는 부러 ‘비스듬히’ 보지 않고 ‘오래, 빤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고 자신의 소설관을 나타냈다.(조득진 기자)

07. 06.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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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로 학교에 나왔는데 또 눈에 밟히는 기사들이 있어서 어쩌지 못하고 옮겨놓는다. 그 중 하나는 한국일보의 '100℃ 인터뷰'로 기억에 공지영, 이문열에 이어서 소설가 김훈 편이다. 김훈에 관해서라면 이미 여러 차례 인터뷰들을 옮겨놓았지만 이번에도 소설쓰기와 관련하여 새로운 내용들이 포함돼 있기에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다. 내가 아는/그리는 그의 모습과 크게 다른 대목은 없지만 가령 <칼의 노래>를 쓰면서 이가 8개나 빠졌다는 이야기 등은 과문한 것인지 몰라도 처음 접한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건 소설쓰기의 결과보다도 그런 '과정'이다. 그가 <남한산성>을 쓰기 위해서 눈발로 뒤덮인 산성을 헤매고 다녔다는 얘기들을 나는 '존중'한다. 결과야 기대 이상일 수도 있고, 이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빠지고 눈길을 헤매며 다닌 일들은 '소설'이 아닌 '삶' 자체이다. 그는 드물게도 그 삶을 (매번 패한다손 치더라도) 자신의 문장으로 버틴다는 점에서 존경에 값한다. 스트레이트로 말하자면, "그는 밤새 혼자 글을 쓰고 있었다."

한국일보(07. 06. 08) [100℃ 인터뷰] 소설가 김훈

고독한 무사의 진중일기 <칼의 노래>(2001)로 자신의 문장을 알린 소설가 김훈(59). 그가 이번에는 병자호란을 감당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묘파한 <남한산성>을 통해 삶의 영원성을 물었다. <칼의 노래>가 100만부, <남한산성>이 출간 한달 만에 10만부 이상 팔리는 등 전성기를 구가하는 김훈을 한국일보 문화팀 기자들이 만났다. 극단적이라고는 할 수 없어도 허무주의자, 보수주의자, 남근주의자라는 지적을 받아온 김훈은 그가 오랫동안 몸담은 한국일보 후배 기자들에게 높임말과 반말을 적당히 섞어가며 세상과 문학에 대한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_<남한산성>에는 인조도, 심지어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의 칸도 정당성 있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왜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았습니까.

"서날쇠, 정명수, 뱃사공 같은 민초의 삶에는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그들은 이데올로기화한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어요. 대장장이 서날쇠가 임금, 사대부가 남한산성에 들어오자 자신도 살아야겠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하는데 정당한 삶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역관으로 청나라 군대를 따라온 정명수는 세습 노비의 자식인데 그에게 조국이 있겠습니까. 그가 여자를 노략질하고 깔깔거린 것도 비난할 수 없어요."

_인조 등 병자호란을 초래한 집권세력의 잘못을 제대로 추궁하지 않았는데요.

"47일간 고립무원 상태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성안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지. 싸우자는 자, 투항하자는 자, 오늘은 싸우자 했다가 내일은 투항하자는 자, 오늘은 투항하자고 했다가 내일은 싸우자는 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자, 살아야 겠다고 개구멍으로 성을 빠져나가는 자, 살자고 성 안으로 들어오는 자. 나는 그들에게 개별적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했어요. 누구의 잘못을 따지는 것이 이 소설의 포인트는 아니니까."

_<남한산성>을 역사소설이라고 생각합니까.

"역사 그 자체가 아니라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지. 나는 세계의 맨 밑바닥은 악과 폭력이며 그것이 전쟁을 통해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칼의 노래>나 <남한산성> 같은 소설은, 역사적 전쟁을 소재로 삼은 것이지요. 나는 이 세계가 악과 폭력의 바탕 위에 세워졌다고 보고 있어요."

_세상을 그렇게 보다니, 너무 비극적인 생각 아닙니까.

"그것이 세계의 본디 모습이지요. 인류사의 거듭된 약육강식. 그것이 바로 악과 폭력이 세계의 바탕이란 증거 아닐까. 약육강식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인간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어. 내가 소설에 그린 세계도 그런 것이지."

_그럴수록 그 악과 폭력을 극복, 개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류 역사가 진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계의 바탕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에요. 프랑스혁명, 볼셰비키혁명, 동학혁명은 약육강식의 질서를 부수기 위한 것이지만 모두 실패했어. 어찌 보면 인류사는 실패한 혁명의 역사라고 할 수 있어. 혁명이 소용없다는 게 아니라 지나고 보니까 세상을 개선하는데 별 도움이 안됐다는 뜻이야. 개선하려는 시도는 고귀하지만 많은 고통과 시간을 감내해야 합니다. 세상을 부수는 것이 혁명가의 몫이라면 나는 생활인이므로 죽지말고 살아 남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현세적 가치를 중시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고. 구원, 초월, 내세를 말하는 작가를 나는 좋아할 수 없어요."

_'현세적'이라는 단어가 달리 해석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세적이라는 말을 영어로 표현하면 'worldly' 즉 현실적, 세속적이라는 뜻입니다. 나는 일본의 메이지유신처럼 세속적, 현실적인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도덕이냐 이익이냐의 딜레마에 빠졌을 때, 역시 이익을 추구해야 하겠지요. 이익을 포기하는 국가는 상상할 수 없어. 악과 폭력의 기반 위에 인간다운 가치나 아름다움을 건설하는 것이 미래의 과업이 될 텐데, 나는 그것이 좌파에 의해 실현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아요. 물적 토대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지. 남한산성에서 투항한 것도 물적토대가 없었기 때문이거든."

_김훈 소설의 허무주의는 결국 소설 너머 철학의 문제인 것 같네요.

"내 소설에는 악과 폭력도 나오지만, 세계와 처절히 싸우는 사람들도 등장하는데 왜 그것을 허무주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소설에 세상의 허무한 모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온몸을 던져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우는 영웅도 함께 그렸는데 그들은 허무의 반대편에 있는 존재들이거든."

_허무주의라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허무라는 것은 주의가 될 수 없어요. 나는 혁명을 믿지 않고 진화, 전환을 믿는데 병자호란 이후 그 극적인 사례를 발견했습니다. 효종 때 조선은 병자호란의 수모를 갚고 치욕을 씻겠다며 군사력을 모아 청을 정벌하려 했는데 그것은 노론의 정치 기반 강화에 기여한 허구였어요. 대신 조선의 최고 엘리트들은 북벌에서 북학으로 전환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조선의 위대한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전환이 없었다면 우리는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국이 혁명 없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한 것도 역시 역사의 위대한 순간이지요."

_평론가들의 지적은 경청하는 편입니까.

"그들은 틀린 말 하지 않아. 그런데 그것이 내게는 아무 도움이 안돼. 나는 나의 과오 조차 필연성이 있다고 생각해. 내게는 소설을 통해 보편적 진리를 말하고 싶은 허영심도, 도덕적 인격을 완성하겠다는 생각도 없습니다."

_그래서 허무주의자란 지적이 나오는 것 같은데요.

"아니 그럼 당신들은 도덕적 목표를 갖고 있나. 소설가는 그냥 소설 쓰고 안 쓸 때는 시시껄렁하게 살면 되는 거야. 도덕적 인격이 무슨 소용 있겠어."

_<남한산성> 끝낸 뒤 어찌 지냅니까.

"쉬고 있습니다. 나는 책을 내면 살짝 들춰보다가 후딱 덮어버립니다.이렇게 쓰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만 드니까. 책이 꿈에 보일까 무서워. 아예 만지지도 않아."

_이제 어떤 소설 씁니까.

"당대의 일을 쓰려고 그럽니다. 이승만 시대부터 내가 살아온 이 시대의 이야기."

_어떤 내용인데요.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가다가 자꾸 같은 자리에서 자빠지는데 그 문제 다루고 싶어요. 노사 문제라든지, 사교육 문제라든지. 사교육 문제는 박정희가 과외 하는 사람 감옥에 보내고도 해결하지 못했어요."

_우리 교육의 근본적 문제가 뭐라고 봅니까.

"평준화는 진짜 웃기는 수작 아닌가. 똑같은 사람 만들자는 것인데 그것이 국가의 정책 목표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서울대만 해도 세계 100위 권 밖의 대학인데 예산을 들여 일류 대학으로 만드는 것이 국가 목표가 돼야지 거꾸로 해서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모르겠어."

_평준화를 폐지한다고 해서 교육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일류 대학 만들어야지. 평준화는 최소한의 정책이어야지 마지막 목표가 돼서는 안돼. 아이들이 고생을 하겠지만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경쟁도 훌륭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_불평등의 원인이 타인이나 환경에 있을 때는 어떻게 합니까.

"그럼 그럴 때 세상을 부수어야 하나. 그러나 세상은 부숴지지 않아."

_새로 쓰는 작품의 배경이 현대라면 불평등 문제를 다루지 않고는 리얼리티를 살릴 수 없을 텐데…

"불평등보다 부자유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아. 근대의 평등은 결국 법 앞의 평등이기 때문에 재벌 회장도 폭력을 행사했다면 처벌을 받아야 하고 그런 점에서 나는 법치주의 신봉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말 무법천지라고 할 수 밖에 없어요.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침범하고 경찰차를 불지르고. 그런데도 처벌하지 않고. 이것이 관용이고 민주주의인가…광화문 다니는 사람은 다들 자기 밥 벌어 먹으러 바삐 움직이는데 그 거리 막아 놓고 시위하면 그들의 생업이 마비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 놓고 자기 주장하고 경찰은 방치하고. 그래서 무법천지가 되는 것이겠지."

_법치주의의 동요 외에 통탄할 만한 일은 또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역시 양극화의 문제지. 경제 뿐 아니라 교육, 의료, 이념 등 광범위한 양극화.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잘한 것을 나는 한미FTA 체결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FTA 체결하고 나니까 많은 언론이 이념적 일관성을 상실했다고 공격하던데 나는 그런 언론 정신병자라고 생각해요. 이념의 일관성이 대체 무슨 소용 있나. 밥 먹여주는 것도, 미래를 열어주는 것도 아닌데. FTA로 농민이 희생되는 것이 답답하고 가슴 아프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미래를 관리하는 태도가 아니지. 열강이 세계의 악을 대표한다 해도 그들과 싸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_문장이 너무 미문이라 삶의 비루함을 적은 글에서도 그런 분위기가 나지 않다고 한 평론가가 지적했는데.

"<칼의 노래>를 수사적 장치를 전혀 동원하지 않고 주어와 동사, 문장의 뼈다귀만 갖고 썼어요. 그랬는데도 수사적이라고 하더군. 나는 스트레이트 문체로 글을 쓰려고 사력을 다하는데 그것 보고 수사적이라고 하니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지."

_그런데 왜 세간에서 그런 반응이 나올까요.

"스트레이트 문장이 오히려 탐미적으로 보였던 모양이에요. 나는 스트레이트 문장이 제일 좋아.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보면 멋진 스트레이트 문장이 나옵니다. 전령이 와서 진주성이 함락되고 5만 명이 전사했다고 보고하자 이순신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적었지. '나는 밤새 혼자 앉아 있었다'. 정말 '죽이는' 스트레이트 문장을 쓴 것이지. 만 마디 주절거리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

_습작기의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칼의 노래>가 습작이라면 습작인데 그것 쓰면서 정말 힘들었어. 난방이 안 되는 후배의 작업실 지하에 책상 하나 놓고 썼는데 어찌나 고생했는지 이가 쑥 빠졌어. 아무 통증 없이 바람이 새 나가듯 하나하나 빠져 침 뱉듯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썼어. 소설 다 쓰고 나니까 8개가 빠졌더라고. 턱이 내려앉아 사람 몰골이 안될 것 같아 동인문학상 상금으로 임플란트 8개 하고 남은 돈으로 빚을 약간 갚고 술 먹었지."

_가족에게 미안한 생각은 없습니까.

"제 처는 남편이 하는 일에 감히 가타부타하지 않습니다. 좋은 덕성, 훌륭한 전통이지요. (인터뷰에 참가한 여기자를 향해) 그걸 배워."

_그렇게 말하면 반페미니즘 입니다.

"나를 남근주의자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자가 여근주의 하면 페미니즘이고, 남자가 남근주의 하면 잔혹하게 매도되잖아. 나는 여자를 존중하지, 결코 학대하는 사람이 아니야. 여자를 보호하고 어려운 일 시키지 않는 것이 가부장적 덕성이지. 여자를 학대하는 남자는 가부장이 아니라 건달이야. 가부장적 제도 안에서 딸이나 이모들이 참 행복하게 살았어."

_여성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하는지요.

"수천 년 동안 하등하게 대접받았고 교육과 세상에 대한 경험, 전쟁을 치를 수 있는 능력, 수렵 기술 같은 것이 남자 위주로 전수돼 왔으니까 여성의 지위가 유전적으로 저열하게 평가됐지. 인류의 거대한 비극 중 하나입니다."

_여성 독자로부터 항의받은 적 있지요?

"단편 <화장>을 쓰면서 젊은 여자의 아름다움을 묘사했는데 그러다 보니 기능이나 역할은 없고 인격도 잘 드러나지 않았어. 그 글을 읽은 여성 독자가 왜 여성을 그 따위로 그리냐고 항의하더군. 그렇다고 그 때문에 내가 마초인 것은 아니잖아."

_아니오. 마초라고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마초가 아니야. 남들이 마초라고 그러는데 그냥 내버려둡니다. 해명하거나 항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Let it be."

_<언니의 폐경> 같은 소설을 보면 여성 심리를 매우 잘 그린 것 같은데요.

"그 소설에는 생리대, 헤어스타일, 패션, 화장품 등 여자에게 필요한 온갖 자질구레한 것이 다 나와. <알루아> <코스탄폴리탄> 같은 여성 잡지 보면 신제품 설명 자세하게 나오는데 빨간 줄 치면서 몇 달 동안 밤새 읽었어. 마누라가 한심하다고 했지만 내겐 매우 소중한 정보였어요. TV 홈쇼핑의 란제리광고를 메모하면서 본 적도 있어. 예컨데 브래지어를 보면 컵이 있고 와이어가 있는데 컵에서 중요한 것은 위의 봉긋한 데가 들뜨면 안되고 조금이라도 뜨면 팔 수 없다는 것이지. 그걸 메모하면서 소설은 나 같은 선비가 할 짓이 아니구나 싶었지."

_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자료를 모으고 메모를 합니까.

"나는 계통 없이 책을 읽습니다. 남들이 보면 왜 읽나 하는 책들도 읽어요. <화장>을 쓸 때는 해부학 책도 읽었지. 거기에 여자의 신체를 부위별로 해부한 사진이 있었어. 교보문고 기술서적 코너에 가서 용접공, 정비공, 연판, 배관, 항공기 조정, 선박 조정, 항해술, 비행술 같은 책도 보는데 아주 좋은 자료들이지. 요즘은 항해술 책을 보는데 반 정도 이해할까."

_항해술 책은 작품을 쓰기 위해 읽습니까.

"응. 거친 파도가 칠 때 인간이 그걸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하는지를 써놓았어. 사나운 밤바다를 헤쳐나가는 한 사나이의 근육이 떠오른다고. 그러니까 내게 항해술 책은 문학책보다 더 문학적인 것이지. 죽을 때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그런 것도 문학이지만 그런 건 미성년자들이 하는 것이고.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게 뭐야. (웃음) 어떻게 인간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랄 수 있나. 좀 부끄러움도 있고 그런 것이지."

_벌써 여러 권 히트를 쳤는데 인세 수입이 꽤 되지요?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돈을 매우 좋아해. 돈을 경멸하는 사람을 나는 경멸해. 돈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 돈은 매우 중요한 것이지. 글을 써서 수입이 생기면 다음 소설을 쓸 때까지 살 수 있어요.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교육 받은 사람을 많이 만들어냈기 때문에 그걸 바탕으로 내 책이 팔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금도 많이 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독자를 길러내 준 사회에 대한 보답이지요."

_우리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런데 운하, 그건 안했으면 좋겠더라. 그 분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것만은 안 했으면 좋겠어. 그 분은 왜 항상 토목공사를 얘기할까. 통일을 어떻게 하겠다 이런 얘기는 안하고. 나는 먼지 나는 거 싫어. 물은 다 제 길이 있는 건데. 지금 많은 건축토목학자, 지리학자, 수리학자들이 입다물고 언론도 운하 얘기만 쓰고 있어. 얼마 전 부산에서 어린 아이가 굶어죽었는데,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왜 생겨난 것인지. 신문에서 운하 이야기 그만 쓰고 이런 것을 써야지."

_소설 쓰는 것 말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까.

"여자 구두만 전문적으로 고치는 수선공이 되고 싶어요. 그 구두, 꽃 같기도 하고 나비 같기도 하고. 너무 예쁠 것 같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 구두 낡으면 버리고 새것 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힘들 것 같아."

07. 06. 09.

P.S. 윤동주의 '서시'에 대한 평가에는 나도 공감한다. 그 시 자체가 모자란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세상엔 순수한 만큼 유치한 시인도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고 그마저 없느니보다는 낫다. 한데, (미성년자도 아닌) 어떤 정치인이 자신이 가장 애송하는 시가 '윤동주의 서시'다 이러면, 좀 곤란하다는 것이다(정치를 애송이들이 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인간이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랄 수 있나. 좀 부끄러움도 있고 그런 것이지." 나는 그런 태도를 김훈식의 '허무주의'라고 부른다. 그건 "성안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지.(...) 나는 그들에게 개별적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했어요."라고 말할 때 그 기저에 놓이는 태도를 지칭한다(일차적으로 그것은 '말에 대한' 허무주의이다). "소설가는 그냥 소설 쓰고 안 쓸 때는 시시껄렁하게 살면 되는 거야. 도덕적 인격이 무슨 소용 있겠어."라는 반문은 그러한 태도에서 나온다. 하지만 이런 지적이 그에게 도움이 될리는 만무하다(다만 나를 위한 것이다). 김훈을 위한 것이라면 오늘 아침에 한겨레에서 본 아래의 사진 같은 게 좋겠다.

사진의 타이틀은 '울먹이는 소년'으로 돼 있고, "한 아프가니스탄 소년이 깨진 달걀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인 채 흐느끼고 있다. 달걀을 파는 이 소년은 “넘어지는 바람에 갖고 있던 달걀이 모두 깨졌다”며 “어머니가 나를 죽일 것”이라고 울먹였다. 유엔아동기금 조사를 보면, 아프간 수도 카불에선 5만~6만명의 소년들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5월20일 촬영. 카불/AFP 연합)"란 설명이 붙어 있었다.

이 소년과 그의 가족에게 이 달걀들이 얼마나 큰 값어치를 갖고 있을지는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이건 먹는, 먹을 달걀이 아니라 파는, 팔아야 하는 달걀이다). '어머니가 나를 죽일 것'이란 그의 울먹임이 공연한 엄살은 아닐 터. 그래서 슬프다. 넘어진 것도 슬프고(나도 잘 넘어졌었다) 달걀이 모두 깨진 것도 슬프다. 어떠한 위로의 말도 보태줄 수 없기에 또한 슬프다.

사진을 오래 쳐다볼 수 없어 바로 다음 지면으로 넘기고 신문지는 전철에 두고 내렸는데, 이 소년의 이미지와 함께 내게 바로 떠오른 장면은 소년 김훈이 새벽에 해장국 심부름을 다녀오다가 넘어져 엎지르는 바람에 통곡하던 모습이다(예전에 그의 문체를 말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다). 그때의 '절망'이 이 '울먹이는 소년'의 그것과 닮지 않았을까?(이 '울먹이는 소년' 또한 글을 깨친다면 나중에 소설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의 끄트머리에서 우연찮게도 이런 문장을 읽는다.

"얼마 전 부산에서 어린 아이가 굶어죽었는데,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왜 생겨난 것인지. 신문에서 운하 이야기 그만 쓰고 이런 것을 써야지."

다른 것들은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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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사스 2007-06-09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칼의 노래> 쓰며 이가 빠졌다는 얘기는 전에도 여러 번 했습니다. 해장국 사건이 어쩐지 김훈씨의 '밥벌이론'의 원형적 기억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

로쟈 2007-06-0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제가 과문한 건 <칼의 노래>가 한창 베스트셀러가 될 때 제가 국내에 없었던 탓인 듯합니다. '원형적 기억'이란 얘기를 섣불리 할 수는 없겠지만 김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에피소드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수유 2007-06-1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갑니다.

마노아 2007-06-1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만큼이나 덧붙인 글들이 인상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