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때문에 이 페이퍼를 들여다보실 분들이 많을 텐데, 얼마간 고의적이긴 하지만 내 탓은 아니다. 돌아가신 김현 선생 탓이다. 그의 비평집 제목이 <책읽기의 괴로움>(문학과지성사, 1993)이기 때문이다. 1992년에 나온 건 전집판이고 나는 80년대에 나온 민음사판을 갖고 있다(이 책과 관련한 얘기는 http://blog.aladin.co.kr/mramor/880102 참조).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에 이 책이 올라와 있는데, 다름 아니라 오늘이 지난 1990년 세상을 떠난 저자의 기일이기 때문이다. 바쁜 와중에 잠시 17년전 그날을 떠올려본다.

한국일보(07. 06. 27) [오늘의 책<6월 27일>] 책읽기의 괴로움

문학평론가 김현이 1990년 6월 27일 48세로 사망했다. 시인 황지우(55)를 1999년 인터뷰했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난다. “김현 선생 돌아가시고 나서는 (문학이) 재미가 없어졌어요. 문학판이 구심점도 없고 이슈도 없는 요즘, 새삼 그 분이 그립습니다.”

황지우의 말처럼 김현은 한 시대 한국문학의 구심점이자 이슈의 창출자였다. 1960년 그가 김승옥 김치수 최하림 등과 만든 동인지 <산문시대>는 한글세대의 신화였고, 그것은 1970년 김병익 김주연 등과의 <문학과지성> 창간으로 이어졌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 문인들의 호명자였다.

자신보다 20년이 젊은 세대의 무협지적 상상력까지 한국문학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들을 정확히 호명해준 것이야말로 김현의 가장 큰 공이었다. 시기적으로 묘하게도 그의 사망 이후 1990년대부터 한국문학은, 역시 황지우의 표현으로라면 “초라한 주변부 장르나 언더그라운드 꼴이” 돼버린 것도 사실이다. 그의 부재가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책읽기의 괴로움>은 폭력의 연대였던 1984년 나온 김현의 평론집이다. 표제 평론은 최인훈의 소설 <회색인>을 통해 그런 세상에서의 ‘책읽기’라는 문제를 다룬 글이다. 다시 읽어본다.

책읽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책읽기처럼 세계를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가 책 속에서 이야기되는 것처럼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분명하지 않은 세계 속에서 분명하게 살 수는 없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다만 방황할 따름이다. 그 방황을 단순히 책상물림의 지적 놀음이라고 폄하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근본적인 질문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나도 최인훈의 회색인에 가깝다. 나는 내 자신이 불행이고 결핍이다.”

07. 06. 27.

P.S. 하지만 그의 <책읽기의 괴로움>을 구한 것도, 읽은 것도 모두 큰 즐거움이었다는 걸 고백해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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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현..
    from 한사의 서재 2007-06-27 12:05 
    “책읽기가 고통스러운 것은 책읽기처럼 세계를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세계가 책 속에서 이야기되는 것처럼 선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푸른괭이 2007-06-27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릴 땐 몰랐는데 지금 보니, 사진 속 김현 선생이 너무 젊군요....

마늘빵 2007-06-27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 책은 딱 한개 봤는데 제목이 기억이 안나는군요. 수필집 비슷한 성격이었는데. 책읽기가 괴롭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 요새 그래요. 읽고픈건 많은데 의욕이 나지 않을 때.

비로그인 2007-06-27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현씨의 글 좋습니다.
제가 한 부 먼댓글로 엮어 얻어갑니다.
고맙습니다. 로쟈님


수유 2007-06-27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옮겨가요~~ 저도 즐거움이었어요.
 

한겨레21에서 이청준 문학의 '보편성'에 관한 리뷰를 옮겨온다. 실상 이창동의 <밀양>을 아직 보지 못한 분풀이이다(7월초에도 상영하는지?). 주변에서 볼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본 다음임에도 시간을 못 내는 처지라니! 예전에 읽은 원작 소설 <벌레 이야기>는 얼마전에 단행본으로 나왔고 한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았다(칸느 영화제 수상직후 이 책의 표지는 곧장 <밀양>으로 바뀌었다). 영화를 보게 되면 다시 읽어볼까 한다. 아래 기사는 문학평론가 방민호 교수의 이청준 문학에 대한 예찬으로 읽힌다... 

한겨레21(07. 06. 21) 이청준, ‘한국적’으론 감당할 수 없어라

전도연씨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낭보가 들려왔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통해서다. 유럽 영화제에서 한국의 여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게 된 것은 강수연씨 이래 20년 만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전도연씨와 <밀양>을 연출한 이창동 감독에 따라다니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밀양>의 원작이 이청준씨의 중편소설 <벌레 이야기>라는 사실이다. <벌레 이야기>에 없는 이야기들이 첨가되고, 있던 이야기들이 삭제되는 커다란 변용을 겪기는 했지만 결국 <밀양>은 <벌레 이야기>를 모태로 삼은 작품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다.

원작은 원작일 뿐이다. 영화는 원작을 하나의 텍스트로 삼아 여기에 영화가 필요로 하는 숱한 예술적, 기술적 독창성을 발휘해야 하는 고난도 장르다. 그러니 영화의 시대일수록 그 텍스트를 이루는 문학이 중요하다는 상식적인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는 게 좋다. 똑같은 주장을 오스카 와일드는 비평가와 소설의 관계에 대해서 펼쳤었다. 소설을 텍스트 삼아 이야기한다고 해서 비평이 소설에 비해 열등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2년 전에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가서 느낀 것은 한국 문학이 아직 고립된 예술의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 황지우씨가 던진 말이 있다. 그곳 유럽에서는 고은도 황석영도 아직 신인이나 다름없는 무명작가일 뿐이라던. 이 두 문학인은 유럽에서 그래도 상당한 인정을 받고 있는 분들이다.

번역될 수 없는 까다로운 미학
물론 몇 년 사이에 문학도 ‘한국’ 문학이라는 고유명사 표지로 만족하는 단계는 확실히 뛰어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의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인지도나 인식 수준은 미약한 편이다. 아마 이청준이라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말보다 전도연씨가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밀양>의 원작자라고 소개하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당연히 언어 때문이다. 문학에서 언어 문제는 근본적이다. 한국어라는 말, 한글이라는 문자의 고립성이 한국 문학을 왜소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면이 있다. 세계인들은 한국어로 된 소설에 대해서는 존재조차 알지 못하다 그것이 원작이 되어 영화라는 도상적 기호의 맥락 속에서 새롭게 제시되어 ‘보편화되면’ 그때서야 기립박수를 치게 된다.

이청준 문학만큼 이러한 아이러니를 크게 보여주는 작가도 드물다. 최근에 들어와선 문체가 이완된 감도 없지 않지만 이청준씨는 한국어 문장의 아름다움을 고양시켜 보여준 작가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로 옮겨진 그의 연작들,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등은 한국어 문장의 운율미, 리듬감을 충만하게 실현한 것들이다. 이 언어적 요소는 마치 시가 완전하게 번역될 수 없는 것처럼 영화로도, 외국어로도 번역되기 어렵다. 여기에 흔히 한(恨)으로 표상되는 한국적인 정서들이나 문화적 전통들, 고전적 예술과 민속의 세계 같은 것들도 외국인들이 이해한다고 해야 오리엔탈리즘의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든 측면이 없지 않다. 이청준 문학은 번역될 수 없는 미학적 특질들을 함축하고 있는 까다로운 문학이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원래 영화 <서편제>의 원작은 소설 <서편제> 한 편이 아니라 앞에서 열거한 세 개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각기 따로 떨어진 작품들이 아니라 <새와 나무> <다시 태어나는 말>이라는 제목의 작품들까지 합해서 모두 다섯 편의 연작으로 꾸며진 연작소설집 <남도사람>(1988)의 일부를 이룬 것들이었다. 임권택 감독은 이 가운데 영화로 ‘번역’하기 쉬운, 다시 말해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가감하기 쉬운 세 편만을 ‘적발’해서 <서편제>라는 화제작을 탄생시켰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보면 이 <남도사람>은 이청준 문학 쪽에서 보면 <언어 사회학 서설>(1977)이라는 또 다른 연작창작집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도 영화가 된 쪽은 <남도사람> 쪽이지 <언어사회학 서설> 쪽이 아니었던 까닭은 아무래도 <남도사람>이 드라마타이즈(dramatize)하기 쉬운 요소들을 다량으로 함유하고 있었던 데 있다.



인간의 노래이자 생활의 노래
이런 사정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도 예외가 없다. 그 역시 <벌레 이야기>에 상당한 ‘작가적’ 삭감과 첨가를 가했는데 이것은 물론 영화감독의 창조적 권한 사항이다. 아무튼 <벌레 이야기>는 어떤 ‘희생’을 거쳐 영화라는 새로운 창조의 영역에 수용된 것이다.

여기서 한번 제기해볼 만한 문제가 있다.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이청준씨의 소설들만이 이토록 빈번하게 영화화되는 것일까? 김수용 감독의 <병신과 머저리>, 정진우 감독의 <석화촌>,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 이장호 감독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 <축제> <천년학>, 그리고 이창동의 <밀양>까지. 우리는 작가 이청준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 상당히 긴 목록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이청준 문학이 가진 보편적, 공통적 사상과 감정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옛 작가 이효석은 <화분>(1939)이라는 장편소설에서 하얼빈으로 떠나는 피아니스트 영훈이라는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는 두 개의 웅대한 곡을 작곡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탄생, 싸움, 운명, 죽음”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노래’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것, 사랑, 행복, 잔치, 고독, 슬픔, 사상” 등으로 이루어진 ‘생활의 노래’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주제들을 “전 인류의 것” “동양의 것이며 동시에 구라파의 것이요, 구라파의 것이며 동시에 동양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 “가장 보편적이고 타당한 인류의 감정”에 호소하려고 한다.

이청준 문학이 바로 그렇다. 그의 문학에는 한국적인 표지를 붙여 만족할 수 없고 충당할 수 없는 인류 보편적 가치로 통하는 사상과 감정이 숨쉬고 있음이 인정된다. 우리는 이미 <서편제>나 <축제> 같은 작품에서 이것을 확인한 셈 아니던가?

<밀양>의 원작이 된 <벌레 이야기>는 분량으로 보면 크지 않은 작품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독자들로 하여금 인간의 생명과 죽음, 용서나 종교의 의미 같은 근본적인 문제로 시선을 돌리게 하는 깊은 작가적 역량이 투여되어 있다.

과연 종교적 믿음이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의 고통을 거두어들일 수 있을까? 종교를 가진 사람들, 특히 기독교에 심취한 사람들은 단박에는 아닐지라도 이것을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묻는다. 종교라는 것이 과연 삶의 일회적(一回的) ‘본질’에서 오는 인간의 비애를 가라앉혀줄 수 있는가? 또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실’이 가져다주는 재생의 힘이 될 수 있는가?

기독교적 일원론의 견지에서 보면 삶은 신에게 귀의하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신의 의지를 따라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탐구하려는 노예처럼 자비를 갈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다소 부정적으로 묘사된 종교적 세계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손에 죽음을 당한 아이의 엄마를 향해 신의 은총을 빌면서 사형을 받아들인 유괴범과 고통 속에서 신을 잃어버린 아이 엄마의 비극적인 ‘대결’은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

보편과 공통을 향해 비약하다
실로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여 사랑하고 죽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청준 문학은 이 근본적인 주제를 인간사 속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변주해나간다. 우리의 영화감독들은 비상한 사람들답게 이렇게 보편과 영원으로 통하는 이청준 문학의 가치를 간파한 것이리라.

이청준 문학은 드라마타이즈됨으로써 한국어와 한글이라는 언어문자 체계의 고립적 한계에서 벗어나 영어로 번역되지 않고도 세계에 널리 알려질 수 있는 ‘문학’이 된다. 동시에 언어적 숨결의 독특한 가치는 상실하고 만다. 그러나 이것을 아쉬워만 하지는 않기로 한다. 한국 문학에서도 영화처럼 보편과 공통을 향한 비약이 오래전에 이미 시작되었고 진전되고 있기 때문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07. 0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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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6-26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은데로 임하소서 한권밖에 안 읽었지만...
인상깊었습니다. 요즘 소설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이었어요.

로쟈 2007-06-27 0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배로는 아마 60년대 작가군에 들어가시니까요...
 

주말에 해야 할일은 미리 해치우기로 한다. '작가와 문학사이' 연재 23번째는 젊은 작가 한유주 편이다. 씨네21의 기사와 같이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07. 06. 23) [작가와 문학사이](23)한유주-읊조리다, 태초의 시간을 향해

‘달로’. 한유주의 첫 소설집 제목이자 등단작 제목이기도 한 이 낯선 어휘는 한씨의 독특한 소설작법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달로, 달로, 먼 옛날이야기로, 어느 왕들의 무덤은 무수한 바위를 깎아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끝이 없는 미로와 바닥이 없는 함정이 있다는, ……그런, 비정한 고대의 시간처럼, 달의 뒷면에는 어느 바다가 있고, 그곳에 발을 담그기 위해서는 비정한 긴긴 시간을 거꾸로 헤엄쳐서, ……, 그는 몸을 세워 일으켰고, 장대를 손에 쥐었다. (중략) 그의 장대는 몽상을 걷고, 백일몽을 걷고, 환영을 걷고, 기억나지 않는 꿈들과 희미한 이야기들을 걷고, ……, 허공을 한 아름 휘돌다가, 땅으로 떨어진다.’



달을 배경으로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이 아름다운 장면에 대한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 느리게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복문과 우리를 잠시 침묵과 어둠 속에 붙잡아두는 생략부호, 그리고 규칙적이지는 않지만 미묘하게 느껴지는 문장의 리듬감. 우리는 그저 이 문장들을 읊조리면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현실은 우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어느덧 우리는 낯선 시간과 장소에 존재한다. 그곳은 “비정한 긴긴 시간을 거꾸로 헤엄”쳐야만 도달하는, 이 세계의 ‘뒤쪽’이자 ‘건너편’이다.

‘달로’는 바로 태초의 신화적 말씀의 세계를 향한 한씨 소설의 어떤 지향성을 나타낸다. 그것은 단순히 과거지향적인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한씨에게 ‘달로’ 가려는 의지란 훼손되지 않은 태초의 시간, 모든 매혹적인 이야기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바람에 다름 아니다. ‘달’이 태초의 시간과 옛날이야기의 세계라면, ‘로’는 그곳으로 가고자하는 작가의 바람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한씨는 시간을 거슬러 ‘달로’ 가려고 하는 걸까. 왜냐하면 이 ‘세계의 사진첩’에는 슬픈 일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파울 첼란의 삶과 시를 쫓아가며 쓴 ‘죽음의 푸가’에서 묵시록적으로 기록된 현대사의 비극은 지금의 문명세계에 대한 작가의 환멸과 그 세계의 변화 불가능성에 대한 절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 독문학 전공자답게 독일의 과거와 현재를 두서없이 배회하는 과정을 기록한 ‘베를린·북극·꿈’에서도 이러한 문명 비판적 독백은 반복된다. 그리고 이러한 절망과 슬픔이 한씨에게 태초의 과거를 향해 움직이도록 부추긴다.

한씨 소설이 탐색담의 성격을 띠면서도 자폐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개 탐색담의 주인공은 세계를 향해 바깥으로 나아가는 반면, 한씨 소설의 화자들은 스스로를 “어두운 방 한구석” “좁다른 페이지들 안”(‘그리고 음악’)에 유폐시킨다. 그래서일까. 고통스러운 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진술은 직설적이기보다는 우회적이고, 현실적이기보다는 비현실적이다. 마치 통각(痛覺)을 상실한 자의 고통에 대한 진술과도 같다.

그러나 모든 고통에 대한 진술은 사실 간접적이고 매개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란 말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미디어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세대에게 세계는 언제나 매개된 방식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들에게 떠돌던 인간을 한 곳에 정착하게 하고 인간들이 가족과 사회를 이룰 수 있게 한 ‘뼈의 시대’는 지나갔다. “단단히 맞물려 있던 뼈들은 헐거워져서” 이제 “유령의 가벼운 몸, 없는 기억, 한없는 시간……(‘뼈’)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을 사랑하고 기억을 기억하는, 혹은 두려움을 두려워하고 무서움을 무서워하는 유령이 된다. 그래서 마치 무표정하고 창백한 얼굴, 비현실적으로 가늘고 긴 팔다리 때문에 무게감이 없는 듯한 작가 자신을 연상시키는 이 유령들은 미디어를 통해서만 세계에 대해 경험하고 진술하는 한씨 소설에 특유한 어떤 존재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심진경|문학평론가)

07. 06. 22.

P.S. 바흐친-모슨의 시학/산문학의 구도를 가져오자면 한유주의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시로 분류되어 마땅하다('시적인 소설'이요 '산문시'이다). "훼손되지 않은 태초의 시간, 모든 매혹적인 이야기의 원형을 복원하고자 하는 바람"을 그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고통스러운 현대사에 대한 작가의 진술은 직설적이기보다는 우회적이고, 현실적이기보다는 비현실적이다. 마치 통각(痛覺)을 상실한 자의 고통에 대한 진술과도 같"은 이유도 마찬가지겠다. 아름다운 모든 것이 굳이 소설일 필요는 없다...

씨네21(07. 06. 15) [신진 여성작가 3인] <달로>의 한유주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듯, 언어가 미끄러진다. 허공을 맴도는 단어들, 의미에 정박되지 않는 문장들, 응집되지 못한 채 흩어지는 문단들. 한유주의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지극히 불편하며, 종종 난독증을 유발하기까지 하는 고통스러운 체험이다. 문장은 읽어내림과 동시에 기억에서 휘발되기 일쑤고, 문단과 문장, 단어를 거슬러 올라가 반복해 읽는 과정을 거듭해야 한다. 총 8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달로>는 각각의 작품이 사실상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잠언에 가까운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다.

“달로, 달로, 세계는 현재를 그대로 간수하려는 오랜 습관이 있다.”(<달로>) “지구는 하나의 푸른 공이었다. 무료한 시간이면 신들은 지구를 굴리면서 공놀이를 했다.”(<죽음의 푸가>) 하나의 몸짓으로 수렴되지 않는 단어들의 윤무 속에서 그의 세계를 여행하는 이들은 행간을 떠돌며 이미지의 맥박을 느껴야 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을 하나 정도 짚어보자면 바로 자기분석이다. 예전부터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내가 왜 이런 식으로 말을 하고, 생각하는지가 너무나 궁금했고,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식이 쓰는 것이었다. 인과관계나 서사적인 요소로는 드러낼 수 없는 것들이 있었고, 자연스레 지금의 글쓰기로 이어진 것 같다.”

그래서 한유주의 글에는 우리가 흔히 소설에 기대하는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은 매끈한 서사의 흐름에 독자를 흡입하는 대신, 역으로 몰입 자체를 끊임없이 지연시킨다. 이인성의 평을 빌리자면, “체질적으로 이야기에서 자유로운” 한유주의 작법은 넘쳐나는 “가짜 이야기들”에 대한 반작용의 지점에 있다. 전파를 타고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수신되는 메시지들, “세계를 14인치 텔레비전 화면 하나로 축소”하는 폭력적인 이야기들. 삶을 간결하게 재단해 틀에 집어넣는 것을 그는 거부한다.

“적어도 내 삶은 기승전결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것을 하나로 통합시키고, 거기에 대해 의미부여를 하려고 하지 않나. TV에서 나오는 말들은 너무 뻔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다. 뻔하면 쉽긴 하지만, 너무 설명을 하려 드니까.” 그래서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을 채워 넣는 것은 온전히 읽는 자들의 몫이다. 예컨대 <달로>는 우주인의 이야기에서 시작해, 기억과 역사, 신화를 경유한 상징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부유하는 이미지들은 각자가 가슴속에 지니고 있을 정서를 환기하고, 촉발한다.

“달은 정말 흔해 빠진 상징이다. 전세계 사람들이 딱 하나의 달을 두고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이 있고, 각자 부여한 의미가 있지 않나.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쓴 것인데, 독자들의 편지를 보니 그들도 읽으면서, 그런 것들을 느꼈더라. 각자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고. 어쩌면 그게 나에게는 가장 기쁜 반응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말줄임표 역시 그 맥락을 벗어나지 않는다. 빈 공간을 채워 넣을 목소리를 기다리는 것. 일방향처럼 보이던 독백은, 백지의 공간을 확장함으로써 독자에게 수신받기보다는 끊임없이 발신할 것을 촉구한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탐닉했다는 한유주이지만, 등단은 의도치 않은 일이었다. 문예창작론 수업을 듣던 중 기말과제로 소설을 완성하게 됐고, 친구의 권유로 문예지에 응모한 것이 바로 등단으로 이어졌다.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고 얼떨떨했다. 지금은 그래도 덜하지만, 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작가라는 자의식도 거의 없었다. (웃음)” 새로운 화법을 제시하는 작가로 평가받고 있지만, 스스로는 “남들이 새롭다,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그렇지 않다”고 털털하게 이야기하는 그는 “내가 10년 뒤에도 글을 쓰고 있을까”를 곰곰이 자문하는 타입이다. 의미의 굴레에 속박되지 않는 자신의 작품처럼, ‘작가’라는 타이틀의 무게보다는 글쓰기 자체가 주는 매혹에 더욱 관심이 많다.

“글을 쓰다보면 모든 생각들을 완전히 다 잊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저 아, 내가 정말 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찰나적으로 지나갈 때, 그게 너무나 좋다.” 대학원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는 아마도 졸업 뒤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직장에 취직해 밥벌이와 글쓰기를 병행”할 생각이다. 하지만 그전에 우선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올 작정이고, 운이 좋다면 대륙의 공기 속에서 첫 장편이 탄생할 것이다. “대단한 걸 써야지, 하는 마음은 없다. 그냥 쓰는 것뿐이다. 10년쯤 뒤에 누군가가 한명이라도 내가 쓴 책을 읽어준다면, 그때까지 살아 있는 것이 하나라도 있다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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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07-06-23 0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고 싶어졌어요.
 

'한국문학, '아버지가 무너졌다'"라는 동향 기사를 옮겨놓는다(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은 언제나 귀환한다! 아버지=신이 없다면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기사의 내용은 이미 지적되어온 것들이어서 새롭지 않지만 2학기 내내 한 독서모임에서 '아버지'란 주제로 <오이디푸스왕>부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까지 강의하도록 예정돼 있기 때문에 자료로서 챙겨둔다. 그러고보니 여름호 <문예중앙>의 특집이 '아비들의 변천사'이다. 강의준비하느라 손에 물 묻히지 않아도 되겠다...

동아일보(07. 06. 22) "한국문학, ‘아버지’가 무너졌다"

한때는 금기이고 규율이었으며, 그래서 저항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던 ‘아버지’. 한국문학사에서 ‘아버지’는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아버지가 요즘 젊은 작가들에겐 다른 의미다. 김애란(27) 씨가 ‘아버지가 없는 아이라고 해서 특별히 나쁠 것도 다를 것도 없는 일상이었다’(‘달려라 아비’)고 썼듯, 최근 한국소설에서 ‘아버지’의 무게는 확 줄었다.



평론가 손정수 씨가 계간 문예중앙 여름호에 기고한 ‘오이디푸스 극장’에 따르면 우리 문학이 갖고 있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2000년대 이후 새롭게 바뀐다. 서정주 시인은은 ‘애비는 종이었다’(‘자화상’에서)고 식민지 시대의 정체성 문제를 드러냈고, 이문열 씨의 ‘남로당 아버지’는 분단 이데올로기 시대를 대표했으며, 1990년대 장정일 씨가 장편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서 ‘신버지’(신격화한 아버지)를 무너뜨리려고 온 힘을 다했던 게 그간의 ‘아버지들의 변천사’다.

평론가 서경석 씨는 “아버지의 존재를 둘러싼 서사가 우리 소설에 절대적인 우위를 점해 왔다”고 말한다. 가부장으로서 봉건시대를 지나 근대 이후 그 위엄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아버지의 억압은 여전히 존재했던 게 사실. 그렇지만 1990년대 후반 이후의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는 억압적 존재가 아니다. 이를 두고 김정현 씨는 소설 ‘아버지’(1996년)에서 가장으로서의 위상이 추락하는 아버지를 안타깝게 여기기도 했지만, 요즘 소설에선 그런 안타까움마저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아버지’의 자리에 다른 것들을 놓는 게 젊은 작가들의 경향이다. 아버지가 현실의 무게를 가지고 삶을 끌어당기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돼 버리는 것이다. 한유주(25) 씨의 단편 ‘K에게’에서 화자는 자신의 존재와 연관된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닌 ‘백과사전’을 찾는다. 김애란 씨의 ‘달려라 아비’에서 처음부터 아버지가 없는 화자는 그 문제를 고민하는 대신 ‘반짝이는 야광바지를 입고 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친다.

이문열 씨가 소설 ‘영웅시대’ 등에서 부재하는 남로당 아버지를 커다란 상처이자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여긴 데 대해 김애란 씨는 “아버지가 나에게 금기는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자주 언급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해 버린다.

심지어 박민규(39) 씨는 단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에서 사라져 버린 아버지가 기린이 돼서 돌아온다는 극단적 설정을 내놓는다. ‘아버지’가 이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의미 없는 동물 같은 대상’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박 씨는 한발 더 나아가 단편 ‘깊’에서 아버지가 아예 없는 미래사회를 그려놓았다.

새로운 소설은 달라진 사회 현실을 반영한다. 아버지가 위엄 있는 존재가 아니라 친구 같은 대상이 되면서, 소설에서도 이제 삶의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손정수 씨는 “새로운 형태의 오이디푸스 구조들은 ‘아버지의 이름’이 약화된 현실로부터 생산된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현실을 드러내는 소설적 징후들”이라고 설명했다.(김지영 기자)

07.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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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 연재됐던 황석영의 소설 <바리데기>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모양이다. 작가는 연재를 마치고 난 소감을 이메일 인터뷰에 응하여 답하고 있다. 연재소설을 읽어본 바 없지만(책은 7월초에 나온다고 한다) 마침 그의 <오래된 정원>에 대한 강의를 다음주에 맡아놓고 있어서 이 인터뷰도 자료삼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07. 06. 21) “한반도의 삶 세계인과 공유하고 싶었다”

- 우선 6개월 가까운 연재를 끝내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 작품을 한편 끝낼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뭔가 내장의 주요부분이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은 허탈감이 남지요. 그런 기분은 아마 한 일주일쯤 지속될 거예요. 전에는 한달쯤 갔는데 요새는 일상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좀 빨라졌다고나 할까. 아기를 낳은 산부들을 위한 산후조리원도 있는 모양인데 우리는 뭐 그런 거 없나.(^^) 그동안 동참해주신 <한겨레>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줄거리를 열심히 따라오며 장면들을 구체화하려 노력해오신 노원희 화백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노 선생의 바깥양반이 저하고는 죽마고우인데 장면에 나오는 인물 대신 여러 가지 포즈도 취해 주었다고 합니다. 만나면 제게 한바탕 할 것 같아서 은근히 걱정이지요.

- <바리데기>는 처음 구상하셨던 대로 연재가 진행되었는지요?

= 거의 구상대로 되었습니다. 사실은 이번 작품으로 감옥에서 큰 선으로 그려 놓았던 집필 계획은 절반쯤 마무리가 된 셈입니다. 아직 두어 가지가 더 남아 있습니다만. <오래된 정원>은 저의 우여곡절 많던 인생에 대한 자기 치유의 과정이자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고 정리하는, 이를테면 작가로 되돌아오려는 ‘손풀기’였다면 <손님> <심청>, 그리고 <바리데기>로 이어지는 작품들은 여러번 밝혔던 대로 일관된 기획이었지요. 현실적 내용을 우리 형식에 담아 풀어내겠다는 포부였는데요, 이제 그 윤곽이 대충 드러났다고 봅니다. 앞으로 더욱 심화시킬 작정입니다.

- 7월초에 책이 나온다고 들었습니다. 책으로 내시면서 연재분과 달리 수정하거나 보완하시는 부분이 있습니까?

= 진작에 종결원고를 신문사에 넘기고 나서 연이어 교정 작업에 들어갔는데요, 별로 손본 것은 없습니다. 다만 문장 몇 줄 대화 몇 마디 첨삭이 있었지요. 오랫동안 가지고 주무르던 주제와 소재라서 디테일까지 모두가 저에게는 낯익은 것들이었지요. 공들여서 구성하고 집필했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북의 기근과 산불이라든가 밀항 부분과 서천 끝 세상에서 세계를 향한 공수를 내리는 부분은 오래 지니고 있었던 장면들이지요.

- 북쪽 동포들의 대규모 탈북 행렬은 안타깝지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방북 산문집을 통해 남북 동포 사이의 이질성을 극복하고 민족 화해를 염원하셨던 선생님이 <바리데기>에서 탈북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룬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탈북자들을 다룬 소설은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조금씩 나오고 있는 중이지요. 남북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는가 하면 북쪽 사회 내부의 불안이 이어지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작가들이 취해야 할 문학적 대응은 어떤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1989년 당시에는 우선 북에 대한 우리의 냉전의식을 깨는 것이 급선무였지요. 그래야 사상 표현의 자유도 앞당겨질 것이니까. 개인적으로는 희생이 컸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사회 전반 또는 국가 자체로부터 왕따를 당했지요. 연재를 시작하면서 밝힌 바와 같이 베를린 장벽 붕괴와 동구권의 변화 이후 시작된 새로운 세계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주변부 나라들은 국제적인 양극화 속에서 새로운 분쟁과 굶주림에 빠져들었고 북한은 그들 중의 하나입니다.

내가 2003년 영국 체류 시기에 <바리데기> 얘기를 했더니 런던대학의 이집트 교수 한 분이 어느 사진작가 얘기를 하더군요. 나는 당장에 그의 작품집들을 샀습니다. 브라질 출신으로 망명하여 프랑스에 체류 중인 사진 작가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집이었어요. 예를 들어 ‘이주’와 같은 사진집은 세계적으로 충격을 준 작품집입니다. 그 속에 동구와 동남아와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지의 현실과 형편들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지만 북한만 빠져 있었어요. 누군가 세계를 향해서 발언을 해야 한다는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정점으로 북한은 동구 붕괴 이후 십여년 이상 오랜 기근 속에서, 유엔의 지적에 의하면 삼백여만이 굶주림과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죽어 갔습니다. 우리들 풍요의 대한민국 지척에서였지요.

저는 북한 통치권의 책임과 함께 남북의 분단체제를 경영해온 강대국들의 위선적인 인권 논리를 여러 차례 비판해 왔습니다. 이런 사실은 비현실적인 ‘북한붕괴 유도’라는 이념적 전술적인 논지들에 묻혀서 세계적으로 잊혀지거나 북한 정권의 반인도주의적 정체성을 선전하는 데만 활용된 점이 많습니다. 저는 북한 난민을 세계화체제의 그늘로 보고 있으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주변부는 비슷한 참상을 겪고 있지요. 실제로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아프리카는 도처에서 동식물이 멸종하듯이 종족 전체가 사라져가고 있어요.

내가 늘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는 마치 한쪽 창문으로만 경치를 바라보고 그쪽으로만 바람을 소통하는 듯한 생각이 드는군요. 세계는 더욱 이행기의 혼란 속에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서구 세계의 표피만 보면서 심지어는 그 잣대로 자신을 재고 맞추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가 공유하는 ‘문예사조’ 따위는 없습니다. 자신과 한반도의 현재의 삶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이 작가가 국경이나 국적 따위에 구애받지 않는 ‘세계시민’이 되는 길입니다. 세계문단이 한국문학에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자기와 비슷하게 흉내낸 것을 그 누구도 원하지 않겠지요.

- 바리가 중국을 떠나 유럽으로 향하는 화물선 콘테이너 안의 지옥 같은 상황을 환상적 필치로 묘사한 대목이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판소리로 치면 눈대목에 해당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부분을 어떻게 구상하셨는지요?

= 세계의 어느 민담에 보든지 현실에서 초현실로 ‘이동’하는 줄거리가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가 겪는 초현실이란, 꿈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을 근거로 한 메타포거나 자기 왜곡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무턱댄 환상과 환영은 마땅히 경계해야 합니다. 현실의 그림자로서의 환상은 예술적 기법으로뿐만 아니라 논리적인 것보다 더욱 깊이있게 현실을 포착하게 해줍니다. 소설에는 부분적으로 저의 꿈도 써먹었는데요, 무격의 원조인 ‘바리할미’가 나타나는 장면은 제가 파리에서 집필하던 어느 날 직접 꿈에 보았던 형상을 그린 것입니다. 특히 뒷부분에 서천 끝으로 가면서 피바다 불바다 모래바다를 지나는 것과 공수 장면은 ‘황천무가’에 나오는 대목들입니다.

런던에서 저에게 자료를 모아주고 이주민들과의 인터뷰를 주선해 주는 등 도움을 준 한국근대사 전공의 박사과정을 공부하는 영국인 청년이 있었어요. 그가 가져온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특히 <가디언>에 소개된 런던 시내 이주민들의 분포도는 내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종교와 인종과 문화가 런던을 표범 무늬처럼 잠식하고 포위하고 있더군요. 그들은 거의가 구식민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접 개개인을 만나는 중에 특히 나이지리아 사람의 어린 시절 체험이나 남아프리카 사람의 무속 얘기는 이러한 인간 심층의 환상들을 구성해내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런던에서는 행방불명 되었던 영국 국적의 파키스탄인 2세 청년들이 미군 관할인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되돌아온 사건으로 떠들썩했고 나는 그것을 소설의 한 대목으로 넣으려 했지요. 나중에 영국 감독이 다큐 형식의 영화를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에서 발표를 해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바리의 ‘서천’ 장면으로 환상적인 처리를 하게 되지요. 

- 바리는 옛 제국의 수도인 런던 변두리에서 다양한 인종 집단과 섞여 생활하며 파키스탄인 남자와 결혼까지 합니다. 그리고 9·11 테러와 영국 지하철 테러, 미국 주도의 대테러 전쟁 같은 것이 바리의 삶에 끼어듭니다. 탈북자라는 바리의 신분이 상징하는 한반도의 현실과 지금의 세계적 혼란은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겠습니까?

= 베를린 장벽 이후 부시 이전까지의 세계가 세계화체제 재편성 기간이었다면 9·11은 그것이 본격화되는 막이 열리는 분기점이 됩니다. 미국의 일방주의가 세계에 노골적으로 강행되는 근거가 되었지요. 지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는 개인과 사회를 넘어서서 국가간에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중입니다. 9·11은 21세기 이행기의 가장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계기로 ‘악의 축’으로 지명된 나라들을 보면 그 당사자들 보다도 중동이니 중국이니 하는 지역이 강대국의 이해관계와 더불어 주목되는 점을 눈치챌 수가 있지요.

우리가 베트남 전쟁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부끄럽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나는 금강산 관광이나 6·15 이후 오히려 ‘분단’을 낡은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의식 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하는 세태를 우려합니다. 세계로 나가 보세요. 택시 운전사나 웨이터들, 그러니까면 시정 사람들도 모두 사우스, 노스 하고 되묻지요. 심지어는 서구권에서 우편물을 보낼 때 ‘사우스’를 명기하지 않으면 분명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현지 교포들이 먼저 알려줍니다. 한반도의 분단이 세계 현실과 연결되어 있다는 이 운명적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반국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인식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현재 사용하지 않는 뒷마당도 우리 집이니 집 수리할 때를 염두에 꼭 두어야 합니다. 사실 바리를 뉴욕으로 보내지 왜 런던으로 보냈느냐고 이의를 제기한 친구도 있었는데요. 제가 19세기를 배경으로 <심청>을 먼저 쓰고 난 다음에 <바리데기>를 쓴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요. 19세기의 제국주의와 21세기의 신자유주의가 서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나는 미국 문명의 이를테면 ‘안동 김씨’ 본가인 영국이 현재 서구권의 모습을 잘 드러내 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옛날의 업보가 많고 축소되어 있으므로 훨씬 더 자세히 보이지요.

- 우리 설화에서 바리는 약수를 구해 죽은 부모를 살립니다. 소설 <바리데기>에서 바리가 구한 생명수는 어떤 것일까요? 분열과 증오와 죽임의 21세기 지구촌에서 생명의 길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 숨은 그림 찾기입니다. 글쎄요, 이 작품에서 생명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리는 그것을 찾기라도 했을까요? 독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 <바리데기>의 해외 번역 출간 계획이 잡혀 있는지요?

= 현재 <심청>이 번역 진행 중이므로 프랑스쪽의 에이전트는 당분간 그 일에 전념할 모양입니다. 작년에 뉴욕과 런던쪽의 출판 에이전트 측에서 제의가 들어와 어쩌면 그들에게 맡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영독불 언어 중에 하나가 잘 된 프린트본이 있다면 거기서 막바로 다른 서구어로 번역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라고 보고 있는데, 현재의 우리 번역 시스템은 너무 원칙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요. 가령 밀란 쿤데라의 경우에는 체코어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뒤에 그것을 작가가 정본으로 정하여 프랑스어에서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하게 하지요. 주변 소수 언어 출신들 중에 이런 예는 많이 있습니다. 일본은 현재의 위치까지 오는 데 백년이 걸렸구요, 현재도 자기네 문화를 세계화하는 사업에는 기업과 정부가 용의주도하게 힘을 들여서 계속 중에 있습니다. 아마 우리가 하는 노력에 비하면 거의 수십배는 될 겁니다.

- 다음 소설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제 완전 귀국하시는지요?

= 집필 계획이 분명히 있지만 어느 걸 먼저 하게 될지 모르니 현재는 대답을 못하겠네요. 책이 나올 때쯤 잠깐 귀국했다가 오는 10월에는 완전히 보따리를 싸서 들어올 생각입니다. 지난 4년 가까이 런던대학과 파리대학 초청으로 있었는데, 늙마에 너무 오래 체류했다는 느낌입니다. 귀국해서는 시골에 칩거할 생각입니다. 앞으로 책이 나올 때에만 해외 행사에 참가하고 되도록이면 나다니지 않을 생각이구요. 이제 다시 집필실에서 자기와 대면하는 일만 남아있는 셈이지요.

- 문학과는 관련이 없는 질문이지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아서 여쭙습니다. 손학규 전 지사가 탈당한 뒤에도 여권은 여전히 대통합을 이루지 못한 상태입니다. 앞으로 손 전 지사를 위해서든 민주 세력의 대통합을 위해서든 선생님께서 추가로 하실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 문학과의 관련이 없다고 단정하고 묻는 질문은 또 무엇입니까? 그게 바로 형식적 민주화 시기 이후 우리의 자가당착이지요. 앞으로 책 나올 일에 흙탕이라도 튈까 하여 탈탈 털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살아온 대로 말하렵니다. 작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많아서 늘 설명해야 하는데요. 저는 문단에 나온 이후 동료 문인들과 함께 시대와 정치적 현실에 대한 일관된 비판적 관여를 해온 셈입니다. 작가도 시민의 한 사람이고 유권자의 한 사람이라는 걸 알아 두었으면 합니다. 내가 막말로 현실정치에 개입해서 무슨 국회의원이나 높은 사람 해먹겠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작가는 오로지 ‘글이나 써라’는 말은 문학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보면 그런 분들이 오히려 현실정치의 덕을 보고 살더군요. 

앞서도 얘기했지만 저는 때가 되면 그 당대마다 발언을 할 것입니다. 작년 가을부터 발언을 시작했는데 현재 상황을 보면 대개 다 맞아떨어진 것 같군요. 내가 점쟁이라서 그렇게 되었겠어요? 상황이 그랬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요. 나는 김근태 의원의 최근 결단에 대해서 ‘그러면 그렇지’ 하고 무릎을 친 사람입니다. 나는 그를 늘 존경하고 사랑해온 오랜 벗인데, 그이는 행동이 좀 굼뜬 대신에 사려가 깊은 분입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는 매우 정직하고 언제나 정도를 걷는 중요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지요. 

그가 얼마 전 6월항쟁을 돌이켜보며 양김의 분열과 삼당합당을 회고할 적에 나는 다시 가슴이 아파오더군요. 사실 84년 광주 홍남순변호사의 고희 때에 있었던 그 모임을 아쉬워하고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고 늘 얘기하던 사람이 바로 김근태씨였습니다. 그가 이제 자기를 버리고 총대를 멨으니 나는 누구도 아닌 그의 편입니다. 그를 도와줘야겠지요. 그가 나섰으니 통합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우리 사회가 새로운 체제 교체의 전환점에 서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이는군요. 역사적 상상력은 이 시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단 한마디만 덧붙이고 싶습니다. 휴전선을 등지고 반도의 아래쪽만 보고 있을 게 아니라 제발 한번만 지도를 돌려서 제주도 서귀포쯤에 눈을 대고 위를 보라구요. 저 너머에 무한한 신대륙이 펼쳐지고 있지 않나요? 만주를 넘어 흥안령 산맥 지나 바이칼, 시베리아까지 보이는군요.(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7. 06. 21.

P.S.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집에 관심을 갖게 된다. 유감스럽지만 국내에는 아직 소개돼 있지 않다. 다만 <클라시커50 사진가>(해냄, 2005)와 최민식의 <사진이란 무엇인가>(현실문화연구, 2005) 등에서 살가도 항목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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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랑스에서 만난 황석영..
    from 기인 책 읽다 2007-06-21 03:22 
    파리가서 느낀 것인데, 황석영의 번역서가 꽤 눈에 뜨였어요. 무라카미 하루키 영문판을 찾으려고 그랬던 것인데, 정작 하루키는 안보이고 황석영은 보이더라고요 ^^ ㅎㅎ
 
 
로쟈 2007-06-2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프랑스쪽으로는 많이 알려진 모양이군요. '하루키'가 안보였다고 하신 건 의외인데요.^^

프레이야 2007-06-21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가도의 저 사진집, 아마존에서 구입했어요. 옆지기가..
충격적인 사진들이었어요. 바리데기, 기대됩니다.
로쟈님, 서재 스킨이 저랑 같아요. 놀랐어요. 클릭하는데 제 서재가 도로 뜨는 줄
알았거든요. ^^

지나다 2007-06-22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재작년 여름 서울 놀러왔다 프레스센터 1층에서 전시회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작가도 잘 모르면서 흑백 사진의 깊은 울림 땜에 엽서, 포스터도 사고, 뜻밖의 수확이었죠.
괜히 지나다 아는 척~ㅎㅎ 로그인 하기 귀찮아 그냥 갑니당.

로쟈 2007-06-22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장마철 동안엔 같은 스킨을 사용할 것 같네요.^^
지나가다님/ 사진들이 왠지 낯에 익다 싶었는데, 전시회가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