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반골' 영화의 대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세상을 엊그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최근에 읽은 영화잡지에서 그의 신작 <프레리 홈 컴패니언>이 극장에 걸려있다는 소식까지 접했는데, 비록 적지 않은 나이이긴 하나 그의 죽음은 갑작스럽다. 더불어, 몇 가지 상념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부고기사와 함께 그의 영화와 관련된 개인적인 '인연' 몇 가지를 적어둔다.
한겨레(06. 11. 23) 미 독립영화계 거장 알트만 감독 별세
20일(현지시각) 미국 독립영화계의 거장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81살을 일기로 50년간의 영화 인생을 마감했다. 알트만 감독의 영화제작사인 ‘샌드캐슬 5 프로덕션스’는 알트만이 이날 로스앤젤레스의 세드라스 시나이 메디컬센터에서 암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한평생 비주류 영화를 만들었던 그는 작품상·감독상을 포함해 다섯 차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나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6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1925년 2월20일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1살 때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잠시 배우로 활동하다 50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16mm영화를 제작해, 55년까지 60여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55년 만든 첫 극영화 ‘탈선자들’이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눈에 띄어 히치콕의 TV시리즈인 ‘앨프리드 히치콕 제공’의 몇몇 에피소드를 감독했다.
그는 1970년 한국 주둔 미 육군 야전병원을 무대로 삼은 블랙코미디 영화 ‘매쉬 (M.A.S.H)’로 작품성과 흥행성 두 마리를 잡는 데 성공한다(*이 블랙코미디가 알트만의 초기 대표작이라고 한다. 이전에 자료화면을 보니까 한국전을 배경으로 하고는 있지만 베트남 복장을 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탓에 우리에겐 다른 의미로 코믹한 영화이겠다).
그 뒤 ‘매케이브와 밀러 부인(1971)’, ‘내슈빌'(1975) 등 헐리우드의 기존 문법과 다른 영화들로 명성을 얻으며 마틴 스콜세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등과 함께 70년대의 헐리우드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예술영화 전성시대가 끝나자, 알트만은 80년대 대부분을 16mm 영화를 찍거나 파리에 거주하면서 케이블 TV용 영화를 만들면서 보내다 92년 헐리우드를 풍자한 ‘플레이어’로 돌아왔다.(박현정 기자)
경향신문(06. 11. 23) 美 인디영화 거장 로버트 알트만 별세
미국 인디영화계의 대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이 20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 알트만의 영화제작사인 샌드캐슬5 프로덕션스는 21일 알트만이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알트만이 10년전 심장이식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와 관련된 질병으로 추정된다.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난 알트만은 1970년대 미국 영화계의 총아였다. 이 시기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등이 한꺼번에 등장해 이전 세대에서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영화를 쏟아낸 때였다. 알트만은 한국전쟁을 풍자적으로 다룬 ‘매쉬’(70), 뒤틀린 뮤지컬 영화 ‘내슈빌’(75) 등으로 기존 할리우드와는 완전히 다른 문법의 영화를 선보였다.
그러나 타협을 모르는 알트만에게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의 블록버스터가 득세했던 80년대는 시련의 시기였다. 이후 알트만은 할리우드의 상업적인 제작환경을 풍자한 ‘플레이어’(92)로 화려한 재기를 알렸고(*내가 극장에서 제일 처음 본 알트만의 영화도 팀 로빈스 주연의 <플레이어>였다), ‘숏 컷’(93) ‘고스포드 파크’(2001) 등의 걸작을 공개하며 여전한 창조력을 과시했다.
알트만은 수많은 배우들이 나와 중첩된 내러티브를 이끌며 자연스러운 즉흥연기를 보여주는 이른바 ‘알트만 스타일’의 영화를 창조했다. 감독 이름이 하나의 스타일로 불리는 건 앨프리드 히치콕 같은 공인된 거장에게나 가능한 일이다(*그러한 알트만 스타일의 최고 걸작이 <숏컷>이다).
알트만은 영원한 반골이었다. 그는 “펄럭이는 미국 국기를 보면 농담 같다고 느낀다” “텔레비전이 예술매체라 믿는 건 미친 짓이다. 그건 광고 매체다”라고 말했다. 은퇴 계획에 대해 “은퇴라구? 죽음 말인가?”라고 말하던 알트만은 사망 당시에도 내년 2월 촬영할 신작을 준비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이제 그 신작의 시사회는 지상이 아닌 천상에서 열릴 듯하다).(백승찬 기자)
06. 11. 22-23.
P.S. 내가 본 알트만의 영화들은 주로 <플레이어> 이후 국내에 소개된 영화들이다. 그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건 <숏컷>(1993)과 <패션쇼>(1994)이다(<패션쇼>의 원제는 <프레타포르테>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영화가 같은 시기에 개봉됐었다는 사실인데, 나는 두 영화를 같은 날 연이어 본 기억이 있다.
두 영화 모두 종로쪽에서 상영했었고 나는 그날 알트만의 걸작과 졸작을 동시에 보았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게 나만의 판단은 아니어서 일반적으로 <숏컷>이 그의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반면에(이미지는 <숏컷>의 제니퍼 제이슨 리) <패션쇼>는 최악의 작품으로 거명된다(게다가 <패션쇼>는 마지막 장면(누드 패션쇼)에서 화면 가리개까지 둥둥 떠다녔는지라 불쾌한 감상을 안 가질 수 없었다. 나는 러시아에서야 이 영화의 노컷판을 구했다).
모두 33편의 장편 극영화 필모그라피 가운데(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전체 필모그라피는 39편에 이른다), <플레이어>(1992) 이후에 알트만이 찍은 영화는 모두 10편이고 그 중에서 나는 5편을 보았다. 아직 국내에 개봉되지 않은 듯한 <컴퍼니>는 러시아에서 본 영화이다. 어쨌거나 이젠 그의 영화들 모두가 '회고전'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의 필모그라피를 거꾸로 되짚어가며 <제임스 딘 스토리>(1957)에까지 이르는 '로버트 알트만 스토리'의 여정을 감행해보는 것도 의미있는 시도이겠다 싶다(소개되지 않은 영화가 너무 많지만 여하튼 내년은 장편으로만 치자면 데뷔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가끔씩 드는 생각이지만, 인생은 한 사람을 추억/기념하는 일만으로도 너무 짧다!..
1. 프래리 홈 컴패니언 (A Prairie Home Companion, 2006)
2. 더 컴퍼니 (The Company, 2003)
3. 고스포드 파크 (Gosford Park, 2001)
4. 닥터 T (Dr. T And The Women, 2000)
5. 쿠키의 행운 (Cookie's Fortune, 1999)
6. 진저브레드 맨 (The Gingerbread Man, 1998)
7. 캔사스 시티 (Kansas City, 1996)
8. 패션쇼 (Prêt-à-Porter, 1994)
9. 숏컷 (Short Cuts, 1993)
10. 플레이어 (The Player,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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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제임스 딘 스토리 (The James Dean Story, 1957)
P.S.2. 잘 알려진 것이지만 알트만의 <숏컷>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들을 묶어서 영화화한 것이다. 참고가 될 만한 자료(씨네21, 05. 03. 22)를 옮겨놓는다.
단편집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 <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 <이웃사람> <목욕> 등 9편 레이먼드 카버 지음
영화 <숏컷> 로버트 알트먼 감독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선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친구와 잠깐 드라이브를 하고, 언제나처럼 낚시 여행을 떠나고, 이웃에 사는 부부와 저녁을 먹을 뿐이다. 그런데도 파국은 천연덕스럽게 찾아온다. 작은 실수, 미세한 틈새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들이닥쳐 사막처럼 막막해진 인생을 뒤로하고 떠나버린다. 로버트 알트먼은 때로는 몇 시간에 불과한 드라마를 담고 있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을 비행기 안에서 읽고 ‘레이먼드 카버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플레이어>의 성공 덕분에 알크먼은 아홉개의 단편을 골라내어 가늘지만 탄탄한 실로 꿰매었다.
<숏컷>에서 비교적 드라마틱한 에피소드는 <너무나 많은 물이 집가까이에>에 바탕을 둔 것이다. 클레어는 남편 스튜어트와 세 친구가 산속 계곡으로 낚시 여행을 갔다가 알몸으로 물속에 버려진 젊은 여자의 시체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듣는다. 그들은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려면 너무 멀고 여행 첫날이라는 핑계를 들어 시체를 곁에 둔 채 낚시를 한다. 그 물로 그릇을 씻고 커피를 끓인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무너져내린 클레어는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가장 감상적인 에피소드는 <목욕>. 스코티는 여덟 살이 되는 생일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털고 일어난 스코티는 그날 오후 혼수상태에 빠지고 깨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그 사이 주문받은 생일케이크를 완성한 제빵사는 집요하게 스코티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한다. 알트먼은 아홉 단위로 이루어진 인물들을 서로의 에피소드에 스쳐가게 만들거나 서로 관계를 맺어주었다. 카버의 소설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좀더 감정이 많고 좀더 설명이 많다. 카버처럼 망연하게 내버려두진 않는다. 그럼에도 황무지를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건 알트먼이 카버와는 다른 방식으로 카버의 정수에 다가갔기 때문일 것이다.
P.S.3. 알트만에 관한 책으론 올해 나온 <알트만이 말하는 알트만(Altman on Altman)>(Faber & Faber, 2006)과 <로버트 알트만 인터뷰(Robert Altman: Interviews)>(University Press of Mississippi, 2000) 등이 있다. 두껍지 않은 책들이기에 소개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