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이진아도서관에서 16주간 진행해온 '20세기 러시아문학' 강의가 마지막 한 주를 남겨놓고 있는데(<롤리타>가 마지막 작품이다), 마침 마지막 작가인 나보코프의 작품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예전에 박영문고판으로 나온 적이 있다). <어둠 속의 웃음소리>(문학동네, 2016). 당초엔 1932년에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제목의 러시아 소설로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어둠 속의 웃음소리>는 나보코프가 1938년에 영어판으로 펴내면서 붙인 제목이다.

 

 

간단한 소개에 따르면, "교양 있는 중년 남성이 어린 소녀에게 맹목적으로 빠져들었다가 몰락하게 되는 과정이 한 편의 영화처럼 진행되는 이 소설은, 필명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된 영어 소설이자 <롤리타>의 원형이다." 때문에 다음 주 종강 강의에서 두 작품의 관계에 대한 간단히 언급하려고 한다.

 

 

현재 번역본으로 읽을 수 있는 나보코프의 작품은 미완성작 <오리지널 오브 로라>를 포함해서 다섯 편이다. 순서대로는 <어둠 속의 웃음소리>,<절망>, <사형장으로의 초대>가 러시아어로 먼저 쓰이고 발표된 작품이고, <롤리타>는 영어로 발표했다가 나중에 러시아어로도 옮겨놓은 작품이다. 나보코프의 작품들에 대해서는 한 차례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지만(<절망>과 <롤리타>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어둠 속의 웃음소리>가 다시 번역돼 나온 김에 이번 가을이나 겨울에 한차례 더 강의 일정을 짜보려고 한다. 기대는 몇 작품 더 번역돼 나왔으면 싶지만...

 

16.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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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관련서를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이대식의 <줌 인 러시아>(삼성경제연구소, 2016)다. 러시아 역사, 문화, 경제에 대한 종합적인 그림을 그려주는 가이드북이다.

 

 

여행서를 제외한 러시아 가이드북으로 내가 추천하곤 했던 책은(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하다) 예일 리치먼드의 <우리가 몰랐던 러시아, 러시아인>(일조각, 2004)과 조재익 기자의 <굿모닝 러시아>(지호, 2004)였다. <굿모닝 러시아>는 절판되어 아쉬웠는데, 다행히 <줌 인 러시아>를 통해서 그런 아쉬움을 지울 수 있게 되었다. 훨씬 강력한 가이드북이 등장했으므로.

 

저자는 러시아 유학시절 여행 안내와 통역으로 학비를 충당했는데, 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는 한국 대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의 전문 가이드로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이건희 회장의 가이드를 맡기도 했다. 사실 대학 동기이기도 해서 나 또한 2004년 모스크바 체류시 페테르부르크로 며칠 여행을 갔을 때 그의 도움으로 여름궁전과 도스토예프스키 박물관 등을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줌 인 러시아' 동영상 지식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는데, 러시아에 대한 그의 풍부한 식견이 이 한권의 책에 집약됐으니 '가성비'가 아주 높은 책이다. 러시아 여행이나 러시아에서의 사업을 기획하고 있는 독자라면 필독해볼 만하다.

 

 

참고로 러시아 여행을 위한 필독서로는 이진숙의 <러시아 미술사>(민음인, 2007)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 가이드북으로는 <이지 러시아>나 <론리 플래닛 러시아>가 가장 대중적이다. 올겨울이나 내년 여름쯤 러시아 문학기행을 기획하고 있는데, 나도 서서히 준비를 해야겠다...

 

16. 0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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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가까이에 체호프가 크니페르와 주고받은 서신집이 눈에 띄어서 잠깐 적는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영어판 선집이다. <Dear Writer... Dear Actress...>란 제목인데, 요즘식으로 번역하면 <친애하는 작가님... 친애하는 배우님> 정도 될까? 두 사람은 연애시절에,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많은 양의 편지를 주고받아서 러시아어판으로는 500쪽이 넘는다. 영어판은 선집이라 290쪽 분량.

 

 

영어판으로 체호프의 편지들은 <서신 속의 삶>(펭귄)이란 선집으로도 나와 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또 다른 판본으로 나와 있고. 찾아 보니 <서신 속의 삶>에 대해서는 닉 혼비가 독후감을 쓴 게 있었다.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청어람미디어, 2009)에 수록돼 있는데, 이 책도 어느 사이엔가 절판된 모양이다. 2010년 초에 적은 한 페이퍼에 내가 이런 언급을 남겼다.

 

"어젯밤 문득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청어람미디어, 2009)를 빼들었다가 우연히 체호프의 편지들에 관한 수다를 읽고서 '런던스타일로 체호프 읽기'란 페이퍼를 구상했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쾌락원칙뿐만 아니라 현실원칙도 고려해야 하는 게 '현실'이므로 몇 가지 핑계를 대 욕구의 좌절을 정당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면서 든 생각은, 그런 발상의 '쓸모없는 책얘기'는 정말 나밖에 할 사람이 없겠다는 것과(쓸모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얘기들을 늘어놓기 위해선 나이도 그만 먹고 휴가를 가질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었다. 체호프에게 얄타라는 휴양지가 필요했듯이." 

 

'런던스타일로 체호프 읽기'를 구상했다지만 지금은 생각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닉 혼비의 책을 다시 들춰봐야 떠올릴 수 있을 듯. 닉 혼비의 책은 한때 꽤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한풀 껶인 것인지 근래에 나온 책들에 대해선 별로 반응이 없는 듯싶다 그래도 그의 잡식성 독서록 정도는 다시 나왔으면 한다(한때는 '런던스타일'이란 말을 유행어로 만들지 않았나?). 영어판도 2015년에 다시 나왔군.

 

 

생각해보면 체호프의 편지들만 우리에게 소개되지 않은 건 아니다. 변변한 전기도 한권 없다. 러시아어로, 영어로 나와 있는 전기가 드물지 않은데(대학원 때 내가 읽은 전기들은 절판된 걸로 보아 영어권에서도 많이 읽히지는 않는 듯하지만), 좀 아쉬운 일이다. 소개될 기회가 정녕 없는 것일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해설에도 적었지만 체호프의 작품을 읽는데 그의 전기가 필수적인 참고가 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를 사랑하는, 애정하는 독자들이라면 '체호프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고, 아직 변변한 서간집이나 전기조차 읽을 수 없는 현실은 분개할 만하다. 그렇지 않은가요, 작가님? 아니, 남의 편지들까지도 왜 꼭 읽으셔야 한답니까, 독자님?.. 

 

16.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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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를 한권 냈다.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문학동네, 2016)이다. 체호프의 대표 단편 가운데 하나인 만큼 여러 차례 번역된 작품이기도 한데, 일러스트판으로 펴낸다고 해서(그러니까 번역의 비중이 절반이다) 일조하는 기분으로 나섰다. 초역을 넘긴 게 2년 전이고, 올봄에 바쁘게 교정을 하고 해설(옮긴이의 말)을 보태서 마무리지었다. 책의 실물은 나도 월요일에나 받아볼 텐데(오늘이 휴일이라) 그때까지 입 다물고 있는 건 또 예의가 아닌 듯하여 몇 마디 적는다. 

 

 

작품의 일러스트는 스페인의 일러스트레이터 하비에르 사발라의 것이다. "관능적이고 전위적인 삽화로 작품의 의미를 배가했다"는 소개다. 하지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관능적인' 작품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나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삽화에 대해서도 호오가 갈릴 수 있다(벌써 '음란마귀'라고 평한 알라디너도 계시다). 여하튼 그 또한 체호프 작품이 읽히는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사발라는 어린이용 <돈키호테> 삽화로 이름을 알린 듯한데, 문학동네의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에서는 <필경사 바틀비>와 <장화 신은 고양이>도 그의 작품이다. 아래는 내가 적은 해설의 일부다. 

 

 

러시아문학의 대단한 주인공들이 시대와 세상을 향해 던진 당당한 물음이 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진보적 비평가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제목이었고, 레닌도 자신의 정치 팸플릿에 같은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체호프의 작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반향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그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어떻게?’를 중얼거릴 따름이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대사를 빌리자면 그들은 쇼펜하우어(대단한 철학자)나 도스토예프스키(대단한 작가)도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대단찮은 인물들이다. 그렇게 대단찮지만 한편으론 섬세해서 속물도 되지 못한다. 바로 구로프 같은 인물이다.


얄타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멋진 여인을 유혹하여 목적을 달성한 그가 교외의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연의 영원한 무심함과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명상에 잠기는 모습을 보라. 자신이 얼마나 매혹적인 여자와 만났는지 자랑하고 싶지만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상심하고 심지어 분노하는 구로프의 모습을 보라. 그에게 안나와의 예기치 않은 사랑은 ‘무료하고 시시한 날들’, 더 나아가 무의미한 인생의 구원처럼 여겨진다. 얄타에서 헤어진 안나를 다시 찾아가는 이유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한번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이어나간다. 안나는 남편을 속이고 지방에서 모스크바로 와서는 호텔방을 잡아놓고 구로프를 부르고, 구로프는 안나에게 가는 길에 딸을 학교까지 바래다준다. 그들의 이중생활이다. 남들 앞에 내놓고 사는 공적인 삶과 그들만의 비밀스런 삶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는 그들의 밀애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으리란 두려움과 남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처량함에 울음을 터뜨린다. 구로프는 안나를 어루만지며 달래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어느새 머리가 세기 시작한데다 늙고 추해진 모습이다. 안나의 인생도 곧 시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난생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다니!


이들의 이야기가 어떤 결말에 도달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체호프가 즐겨 다루는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이다. 정확하게는 ‘어려운 가능성’이다. 분명 새로운 인생은 아름다울 테지만, 우리는 대개 그 새로운 인생의 문턱에서 주저앉는다. 그게 체호프가 바라본 인생이다. 때문에 대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독자라면 체호프와 인연이 없다. 오직 변변찮은 독자들만이 그의 작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서 당혹감과 위안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구로프와 안나야말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들>의 딱 맞는 독자이기도 하다.

 

16. 05. 14.

 

 

P.S.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국내에 소개된 체호프 단편집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포함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양분된다. 그리고 포함한 번역본은 다시 제목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으로 옮긴 것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으로 옮긴 것, 두 종으로 나뉜다('개' 대신에 '강아지'나 '스피츠'라고 옮긴 번역본도 있다). 영어로는 lady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Дама(다마)'가 우리말 '부인'보다 의미역이 넓어서 빚어지는 일이다. lady와 마찬가지로 여자를 대우하여 부르는 말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지 않아도 여러 번역본이 이 작품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참고하시면 좋겠다. 특별히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골라놓은 번역본으로는 <사랑에 관하여>(펭귄클래식, 2010)와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에디터, 2012)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러시아어 원문과 직역을 수록한 책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뿌쉬낀하우스, 2016)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러시아어로 러시아 고전 읽기 시리즈'의 하나인데, 러시아어 전공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염두에 둔 책이어서 그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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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7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요즘 자주 듣는 노래는 가릭 수카초프의 '새'와 '눈물'이다. 지난주에 유튜브에서 우연히 발견한 가수이고 노래인데, 스타일상으론 비소츠키 계열. 아니나 다를까 비소츠키에 대한 헌정 앨범('나의 비소츠키')도 갖고 있다. 먼저 그의 노래 '새'(https://www.youtube.com/watch?v=K-Nbky7IT_w)를 감상해보시길. 아이들의 백코러스도 인상적.  

 

 

그리고, '눈물'이란 노래(https://www.youtube.com/watch?v=tS9iF0YJI24). 안드레이 즈뱌긴체프(즈비아긴체프)의 영화 <리턴>의 장면들과 맞춰져 있다.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와 가사가 잘 맞아떨어지는 듯(화면은 비극적이어서 나는 노래만 듣는다). 어버이날에 볼 만한 영화와 노래로 추천할 만하다.

 

 

<리턴>(2003)이 데뷔작인 즈뱌긴체프는 <추방>(2007), <엘레나>(2011), <리바이어던>(2014)까지 네 편의 영화를 찍었다(국내에 출시된 건 <리턴>과 <추방> 두편으로 보인다). 그리고 현재로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러시아 감독이다. 러시아영화에 현재가 있다면, 그리고 미래가 있다면 나는 즈뱌긴체프에게 걸고 싶다.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신인감독상 수상작인 <리턴>의 몇몇 장면만으로도 나의 기대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으리라. 재작년 부산영화제 때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뒤늦게 아쉽다...

 

16.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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