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부터 도스토예프스키(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문학동네)에 대한 강의를 진행할 예정이라 석영중 교수의 <인간 만세!>(세창출판사)를 손에 들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읽기‘가 부제이기에 작품을 읽으려는 독자들이 유용하게 참고할 수 있는 책이다.



저자의 관심은 인간 본성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적 탐구의 결정판으로 <카라마조프>를 읽으면서 그 현재적 의의를 강조하는 데 있다. 첫 장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인간관을 간단히 개관하고 있는데(이 주제 자체가 또 다른 한권의 책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논지에 공감한다. 다만 ‘선택하는 존재‘로 보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지속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들은 시간 선상에서 점진적으로 성장하는 법이 없다. 다른 작가들, 예를 들어 톨스토이의 인물들이 ‘성장‘하는 반면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선택‘을 한다˝고 주장하는데, 두 작가의 이러한 대비는 검토를 필요로 한다.

가령 톨스토이의 인물들의 ‘성장‘하는 모습은 주로 <전쟁과 평화>까지의 초기작들에 나타날 따름이다. 저자의 톨스토이론에서 강조된 대로 후기 톨스토이는 좋은 삶과 나쁜 삶이라는 양자택일적 선택지를 제시한다. 이때 좋은 삶의 선택이란 이전까지의 나쁜 삶(기만적인 삶)의 전면적인 부정이란 제스처를 취한다. 성장이냐 선택이냐라는 이분법이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을 가르는 유효한 준거라고 생각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인물들은 과연 성장하지 않고 선택하는가. 저자에 따르면 ˝도스토옙스키의 인물들은 시간을 두고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순간 급변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비커밍‘ 범주에서 벗어난다. 또 그런 점 때문에 그들은 변증법적인 발전의 궤적을 따르지도 않는다. 정과 반이 합의 차원에서 통합되는 변증법적 상황은 도스토옙스키에게서 발견되지 않는다.˝

마지막 문장의 단언은 미국 연구자의 연구서(<도스토예프스키의 변증법과 죄의 문제>)에서 근거를 가져오고 있는데 나로선 동의하지 않는다. 원 저자가 변증법에 대해서 너무 나이브하게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정과 반의 합이라는 건 달리 지양이라고 부르는데 그 지양은 단순한 통합이나 극복을 뜻하는 게 아니라 부정과 보존의 운동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러한 의미의 지양적 구조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다고 본다. 만약 이것이 단순한 양자택일적 선택의 문제라면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윤리적 물음에 대한 해답은 너무도 단순명료해진다. 선과 악, 구원과 파멸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로 환원되거나 축소되기 때문이다. 과연 이 양자택일적 선택에 대한 판단을 위해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는 대작을 읽어야 하는 것인지.

더구나 이러한 양자택일을 선택하는 존재라는 관점은 저자가 앞서 인간을 ˝이중적이고 완결되지 않고 불합리한 존재˝라고 규정한 것과 충돌한다. 인간이 양자택일적 상황에서 ˝반드시 선택하고 결정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존재라면 그 선택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인간의 본질적 이중성과 비종결성, 불합리성이 다 해소되는 것인가? 그렇다면 더 이상 인간이기를 멈추게 되는 것인가?

오히려 이러한 ‘선택하는 인간‘은 후기 톨스토이의 인간학에 더 잘 부합한다(그래서 후기 톨스토이는 예술로서의 문학창작을 부정한다). 도스토예프스키와 그의 문학에 대한 유용한 입문서를 여러 권 펴낸 노고와는 별개로 저자의 견해가 표준적인 게 아니며 이견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노파심에서 적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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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세계문학판 <전쟁과 평화>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출간기념 러시아문학 리뷰대회가 알라딘 단독으로 진행된다(참여는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79303).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포스터를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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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역사서‘로 고를 만한 책은 M.T. 앤더슨의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항곡>(돌베개)이다. 시적인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가늠하기 어려운데, 부제가 ‘쇼스타코비치와 레닌그라드 전투‘다.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의 탄생에 얽힌 일화를 중심으로, 쇼스타코비치의 파란만장했던 삶과, 그와 동시대인들이 헤쳐 나가야 했던 격랑의 역사를 박진감 넘치게 서술한다. 쇼스타코비치가 어떻게 레닌그라드에서 끔찍한 폭격과 싸우며 ‘교향곡 7번‘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어떻게 피난지 쿠이비셰프에서 작곡을 끝냈는지, 악전고투 끝에 탄생한 이 곡이 한창 전투 중인 레닌그라드에서 어떻게 연주될 수 있었는지 매혹적으로 서술한다.˝

역사서라고는 했지만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소설가이자 고전음악 칼럼니스트이다. 번역도 음악을 전공한 장호연 씨가 맡았다. 음악에 관한 내용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전쟁사 범주의 책으로 분류하겠다. 쇼스타코비치를 다룬 소설로는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다산책방)과 나란히 읽어봐도 좋겠다. 러시아는 전승기념일(5월9일)까지 바야흐로 장기 연휴에 들어가겠군(벌써 들어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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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도스토옙스키)의 마지막 걸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1880)의 새 번역본이 나왔다. 김희숙 교수가 옮긴 문학동네판이다. 내달부터 이진아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강의에서 새번역판을 읽을 예정인데, 겸사겸사 지난 30년간 내가 읽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회고하게 된다(제목은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로도 번역되었다). 



고3 때이므로 30년도 더 전에 내가 처음 읽은 번역본은 김학수 선생이 옮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당시에 읽은 삼성출판사의 세계문학전집판이었는데, 현재는 범우사판 <카라마조프의 형제>로 남아 있다. 



이어서 열린책들의 도스토예프스키 전집판으로 나온 이대우 교수 번역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이 있다. 이 번역본 역시 전집판에서 세계문학전집판까지 여러 차례 표지 갈이를 해왔다. 



그리고 최근까지 강의에서 주로 읽은 민음사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김연경 박사의 번역이다(민음사판 <죄와 벌>과 <지하로부터의 수기>도 옮겼다). 그밖에 동서문화사판을 비롯해서 몇몇 번역본이 더 있고 어린이용으로 다수의 책이 나와 있지만, 현재로서는 이 네 종이 독자의 선택지로 보인다. 나로선 범우사판을 제외한 세 종을 강의에서 읽었고, 읽을 예정이다. 


문학동네판 이후의 번역본이 더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도 생각된다. 약간의 감상을 섞어서 말하자면 '내 생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여기까지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30여 년이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대한 강의는 내년까지 책으로 내려고 한다. 일단은 그렇게 일단락지으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은 거기까지...


18. 0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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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이진아도서관에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카프카 강의에 이어서 5월 8일부터 7월 3일까지 8회에 걸쳐서(매주 화요일 저녁 7시) 19세기 러시아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이전에 진행했던 ‘톨스토이 깊이 읽기‘와 ‘도스토예프스키 깊이 읽기‘를 마무리짓는 강좌로 새로 번역본이 나온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문학동네)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문학동네, 근간)을 자세히 읽는 강의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의 구체적인 일정을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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