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유원 잡문집 ' 몸으로 하는 공부' 중 '책의 속살과 껍질 '
닭을 먹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퍽퍽 살'이라 불리는 부위는 잘 먹지 않는다. 말 그대로 퍽퍽해서 별 맛이 없기 때문일 게다. 나는 닭고기에서 껍질을 가장 좋아한다. 닭다리를 먹은 뒤 껍질을 좌악 벗겨서 먹고 나면 닭 한 마리를 다 먹었다는 일종의 뿌듯함마저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내 친척 형님 중에는 그 맛없는 퍽퍽 살을 정말로 맛있게 먹는 분이 있다. 그러니 그 양반과 같이 닭을 먹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안 먹고 남겨 두자니 음식에게 미안하고 먹자니 퍽퍽한 부분을 깔끔하게 해치워주니 말이다.
닭이야 퍽퍽 살을 좋아하든 껍질을 좋아하든 그건 그야말로 취향의 문제니까 어느 쪽을 좋아해야 더 닭의 본질을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학 없다. 그러나 책은 다르다. 책은 그 겁질이 아무리 멋있고 찬란하다 해도 책의 본질은 내용에 있다. 그러니 껍질만 좌악 훑어보고 나서 책 한 권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을 느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고 만에 하나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는 책의 본질을 철저하게 외면했음에 틀림없다고 하겠다.
껍질이 중요하지 않아서일까? 내가 가진 책 중에서 서양에서 나온 몇몇을 보면 표지 디자인이랄 게 따로 없다. 그냥 밋밋하다. 양장 제본을 한 책은 아예 재질의 색깔이 표지 디자인일 경우가 흔하다.
페이퍼 백의 경우도 그리 요란하지 않다. 특별히 시리즈물로 나온 것들은 그 시리즈의 일관성이나 통일성을 주는 징표로서 디자인적인 요소를 사용하고 있는 정도이다. 물론 아닌 것도 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난 한국의 책 표지가 가장 요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표지 자체가 요긴한 마케팅의 도구로서 간주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받는다. 책 표지에 '미모'로 간주될만한 작자의 얼굴 사진 - 가끔은 발가락이 드러난 전신 사진을 쓰기도 한다- 을 박은 책들도 나온다. 책의 내용으로 승부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미모'로써 승부하겠다는 건지가 의심스럽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어떤 "신세대 철학 교수"는 지금까지 일종의 '에쎄이'를 네 권 정도 출간했는데 모두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발가락도 나왔다.
책표지 디자인은, 그것이 과잉만 아니라면 특별히 까탈을 부릴 일도 아니요 오히려 책에게 장중함과 무게를 더해주는 일이니 권할 만한 것이기도 하다. 단순히 책 표지만이 아니라 아예 ’북 디자인‘ 이라는 전문적인 영역까지 생겨난 것은 이런 점에서 좋은 일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화가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 그것에 조예가 깊은 이들이 많이 등장하는 건, 그들이 제대로 된 책 기획자, 편집자와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한다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얼마든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게 최선의 경우이고 실제로도 그런 사례들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세상에는 최선만이 있을 수는 없는 법.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이라도 선택하겠다는 '현실주의적' 결심을 굳게 하고 있어도 차선은커녕 최악밖에 남아 있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걸 집어 올려야 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이럴 땐 어찌해야 할까?
책은 먹는게 아니니 어쨌든 기본은 속살, 즉 내용이다. 그러니 표지 디자인은 아무래도 좋은 것이요, 그것 보고 책을 고르지 않는 한 그게 어떻게 만들어지든 크게 신경쓸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디자인 안하겠다면 모르되 기왕에 하겠다고 나섰으면 최선까지는 아니어도 최악은 집어들지 말아야한다.
사실 나는 책 표지 디자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아니 디자인 자체를 모른다. 내가 남에게 표지 디자인을 부탁한다면 책에 대한 개념적 설명을 할 수 있을 뿐 그 이상은 떠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디자인을 모른다고 해서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이나 내용과는 무관하게 마케팅적인 고려만을 앞세우는 이에게 무작정 맡기는 어이없는 짓을 하지는 않을 듯하다.
다른 물건의 경우는 모르겠는데 책 표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있다. 그 첫 번째이자 마지막, 단 하나의 조건은 책을 깊이 사랑하는, 존승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초일류의 디자이너라 해도 그가 책을 사랑하지 않는 다면, 그가 책을 읽는 이가 아니라면 그와 함께 책의 내용에 관한 개녀적 토론이 불가능하다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제시하는 조건이 너무 엄숙주의적이라고 비난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책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책이 도대체 어떤 물건인가? 인류 역사에서 이만큼 오랫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온 물건이 책 말고 뭐가 있는가? 그것도 멀쩡한 사람들에게 말이다. 가장 황홀하다는 마약도 이러진 않았다. 그러니 어찌 책겁질을 아무에게나 맡겨서 아무렇게나 만들어내겠는가?
모든 출판사들이 속살만이 아닌 껍질까지 신경을 쓰고 있을 게다. 그 껍질이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만약 책에 대한 존숭을 갖지 못한 이가 멋드러지게 그려낸 디자인을 용납하는 곳이 있다면 나는 속살으 착실함과는 무관하게 그 출판사에 대해 delete 키를 누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