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자리는 원서 < A Centenary Collection of stories by Cornell Wollrick ; NIGHT & FEAR> 의 편집자 프랜시스 네빈스 Francis M. Navins의 뛰어난 서문이 있어야 할 곳이다. 하지만 단편의 내용이 서문에 언급되기도 하고 글 자체가 워낙 작가, 작품에 대한 상세하고도 넓은 시각을 제공하기에, 만약 울리치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각 단편을 모두 읽고 서문을 읽어도 좋을 듯하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졸문으로 이 자리를 대신하기로 한다.

코넬 울리치의 작품은 국내에 그리 많이 소개되지 않았다. 그나마 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은 그 유명한 <환상의 여인>이나 <상복의 랑데부> <죽은 자와의 결혼> 그리고 단편 한두 편 정도이며 몇몇 장편과 아동용으로 번안된 작품 등은 모두 절판됐다. 하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다른 작가들(대실 해미트, 존 딕슨 카, 도로시 L. 세이어스, 등) 에 비해 그 명성만은 유별난 데가 있다. 아마 <환상의 여인> 때문인 듯한데, 이 작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엘러리 퀸의 과 함께 국내 추리소설 독자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본명 '코넬 울리치' 보다는 국내 팬들에게 '윌리엄 아이리시'가 더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600여 권의 추리소설 문고로 유명한 하야카와 문고의 <미스터리 핸드북>에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서양 고전 추리소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환상의 여인>은 코넬 울리치의 모든 장점이 강력하게 발휘되는 명작이다. 누명을 뒤집어 쓴 남자가 있고 모든 진실을 밝혀 줄 여자는 환상처럼 사라진다. 작가는 시간의 흐름을 눈앞에 들이밀며 독자들을 초조함 속에 빠뜨리고 진실을 찾기 위한 두 남녀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어두운 거리를 달린다.

이미 전설로 남은 <환상의 여인>은 코넬 울리치 아니 윌리엄 아이리시의 이름을 한껏 드높이긴 했으나 마땅한 다른 작품이 소개되지 않은 국내 추리소설 시장에서 작가에 대한 고정된 시선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국내 독자들에게 코넬 울리치는 '서스펜스의 거장' 이지만, 일상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끌어내는 그 탁월함은 아주 작은 부분밖에 소개되지 않았다.

2004년에 출간된 <밤 그리고 두려움>은 코넬 울리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편집과 서문을 담당한 프랜시스 네빈스는 이미 코넬 울리치에 관한 다른 저작 (1988)으로 1989년 에드거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코넬 울리치가 추리소설 작가로서 기반을 다졌던 1930년대부터 원숙해진 모습을 드러낸 1960년대까지, 작가가 추리소설 작가로서 활동했던 모든 기간을 샅샅이 뒤져 작품을 선별했고 그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려 애썼다. 작품, 작가를 넓게 아우르는 편집자의 서문과 단편마다 곁들여진 상세한 후기를 읽고 작품을 다시 대하면 작가의 삶과 작품의 궤적이 한데 겹쳐지고, 각 단편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단편집을 통해 국내에 비교적 평면적인 모습으로 알려져 있는 코넬 울리치가 다시 조명을 받아 입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것이라 확신한다.

서문이 아닌 어설픈 편집자 후기가 되는 것을 각오하고 몇자 더 붙이자면 국내판 편집자가 아닌, 역시 시선이 제한된 국내 추리소설 독자로서, 코넬 울리치의 미발표 단편들을 소개하는 것이 무척이나 감격스러웠다. 원서의 편집자 프랜시스 네빈스는 코넬 울리치를 '그림자 속의 시인' 이라고 평했다. 그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윤영천 ( www.howmystery.com)

"He was the Poe of the 20th century and the poet of its shadows, the Hitchcock of the written word..."
Francis M. Nevins

 

훌륭한 '서문을 대신하여' 다.
하지만, 역시 프랜시스 네빈스의 원 서문이 궁금하다.

엊그제 Bye 2005 amazon 쇼핑을 올렸구만, 사고싶어져버렸다. 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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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ldhand 2005-12-12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랜시스 네빈스의 서문은 번역본 뒤에 첨부되어 있답니다. 해설을 대신해서. ^^

하이드 2005-12-12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흑흑 미리 알았으면, 올해의 아마존 쇼핑 마감했는데, 꾹 참고 내년에 살 수도있었는데, ;;; 암튼, 지금 한참 읽고 있는 이 책 너무너무 재밌습니다. >.<

oldhand 2005-12-12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좀 빨리 댓글을 달았어야 했나요..
쿠폰신 왕림 같은거 기다리다 지쳐 저도 방금 주문했어요. 크흑 그냥 지난주에 살걸 그랬나.

하이드 2005-12-12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하셨어요 ^^ 쿠폰신 왕림하면, 같이 괴로워 하자구요. ㅎㅎ
 
 전출처 : 나귀님 > 가와바타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즈로...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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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가르시아-마르케즈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이라는 책이 번역되었다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어이쿠, 그 양반, 결국 쓰기는 썼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라는 중편을 읽은 감동에, 언젠가 그와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언급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전까지는 정말 "거들떠보지도 않은"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고리짝 시절 작가의 소설을 난생 처음 읽어보게 만든 원인이 바로 가르시아-마르케즈의 에세이 <잠자는 미녀의 비행기>였기 때문이다. 송병선 번역으로 나온 그의 작품 선집 <사람이 살았던 시대>와 <꿈을 빌려드립니다>(두 권 모두 같은 책인데, 뒤엣 것은 몇 편이 추가되어 증보판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에 수록된 이 에세이를 읽고서 나는 그제서야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라는 중편을 찾아 읽어 볼 생각을 했던 것이다. (물론 가르시아-마르케즈는 "언론인" 출신이라는 이력과는 달리 은근히 애매하거나 오류인 대목을 버젓이 서술하고 있는데, 혹시나 번역이 이상한 까닭인지 모르지만 방금 언급한 에세이에서도 몇 가지 오류가 눈에 뜨었다. 가령 가와바타가 "다자이 오사무와 마찬가지로 (...) 일본도로 할복했다"고 묘사한 부분이나, [실제로는 가스를 마시고 자살] 가와바타보다 미시마 유키오가 나중에 자살했다고 [실제로는 미시마가 가와바타보다 몇 년 일찍 자살했다] 서술한 부분은 명백한 오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작품은 1960년대에 신구문화사에서 나온 여섯 권짜리 <川端康成全集>에만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읽은 것은 언젠가 장정일이 그랬다는 것처럼 헌책방에 가는 꿈을 꾸고 나서 묘한 기분에 비번인 토요일에 회사에 출근하기 앞서 근처 헌책방에 들렀다가, 정말 운 좋게도 전집을 구입하게 된 다음이었다. 가르시아-마르케즈가 너무나도 유쾌한 에세이를 쓴 까닭이었을까, 가와바타의 <잠자는 미녀>는 무척이나 서글프기 짝이 없는 작품이었다. 나이 67세의 노인 에구치는 친구의 소개로 이른바 "잠자는 미녀"를 서비스한다는 수상쩍은 유곽에 찾아간다. 그곳에서는 젊은 아가씨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자는 채로 성기능이 이미 퇴화된 노인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 소설은 에구치 노인이 뭔가 찜찜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따뜻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쌕쌕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든 처녀들의 옆에서, 자기가 젊은 시절 만난 여러 여인들을 하릴없이 회상한다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줄거리만 보면 마치 동양권에서도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못지 않은 변태 할아범의 이야기가 나왔구나 하는 감탄과 비난이 빗발칠 것 같지만, 솔직히 막상 책을 읽어보면 에로틱한 기분보다는 서글픈 기분이 앞서게 마련이다. 왜, 이제 남은 것은 죽음밖에는 없는 무기력한 노인과, 그야말로 눈부시게 팽팽한 육체를 가진 무방비의 처녀라는 극단적으로 상반되는 대상의 만남이 비록 겉으로는 에로티시즘을 깔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쓴웃음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진수성찬과 산해진미를 코앞에 두고도 치아가 없어 차마 먹을 수 없는 난처함과도 비슷한 (돌 던지려면 던지든가!) 상황이 아닌가! 변태라고 욕하면 욕하고, 여성의 비하라면 비하라고 비난해도 그만이다. 적어도 소설이라는 측면에서 가와바타의 작품은 소재 자체로도 무척이나 독특하고, 또 기이한 작품이었다. 물론 내 기억에 더 생생하게 남은 것은 "터널을 지나고 나니 설국이었다"라는 <설국>의 도입부와 "뇌수가 모두 눈물로 빠져나갈 때까지 엉엉 울었다"는 <이즈의 무희>의 마지막 문장이긴 했지만 말이다. 내가 알기로, 가르시아-마르케즈는 가와바타의 <잠자는 미녀>를 읽고 나서, 프랑스 파리에서 뉴욕을 거쳐 남미로 가는 비행기에서 만난 어느 미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에세이 한 편과 소설 한 편을 썼다. 정확한 출간 연도를 알 수 없어 (번역본의 문제점) 어떤 것이 먼저인지는 결정할 수 없지만, 에세이는 위에 언급했던 송병선 번역의 두 가지 작품 선집에 수록되었고, 소설은 <이방의 순례자들>(한나래)이라는 단편집에 수록되었다. 소재가 같은 만큼,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파리에서 탄 비행기에서 우연히 "기막히게 매력적인" 어느 젊은 여성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그녀는 애석하게도 뉴욕에 도착할 때까지 거의 8시간 내내 "쌕쌕 숨소리를 내며 곤히" 잠만 자더라는 것이다. 매력적이지만, 차마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그 미녀의 잠자는 모습을 한참 동안 관찰한 저자는 문득 가와바타의 <잠자는 미녀>에 나온 에구치 노인의 입장과 자신의 입장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뉴욕에 거의 다 온 상황에서 저자가 그 여인을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여인은 거짓말처럼 혼자 잠에서 깨어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히 화장을 고치고 나서, 저자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비행기에서 내려 버린다. 여기서 에세이와 소설은 약간 차이가 있는데, 가와바타에 대해 언급하며 노골적으로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고  토로하는 에세이와는 달리,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찰자인 가르시아-마르케즈의 목소리만이 나타나 있다. 또한 에세이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그 여인을 잃어버린 묘한 상실감에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입국서류에 자기 나이와 직업을 "92세, 일본 작가"라고 적는 데 반해, 소설은 그 여인이 뉴욕에서 내린 것으로 끝나버리고 있다. 하여간 동일한 소재를 가지고 에세이와 단편 두 가지로 빚어냈다는 것만 보아도, 저자가 가와바타의 작품에 보통 이상으로 매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나이 어린 소녀가 몸을 파는 것"에 대한 저자의 매혹은 단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 듯하다. 그의 대표작인 <백년의 고독>을 보면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젊은 시절 만난 어느 창녀의 이야기가 잠깐 등장한다. 얼떨결에 돈을 내고 그녀가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간 아우렐리아노는 그녀가 "잠결에 할머니의 집을 태운 까닭에 그 배상을 위해 창녀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감동한 나머지, 아무 짓도 못하고 그대로 천막을 나온 뒤 밤새 고민한 끝에 그녀를 아내로 맞기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천막을 찾아간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곳을 떠난 직후였다. <백년의 고독>에 나온 마마 그랑데의 이야기가 단편 <마마 그란데의 장례식>에서도 나오듯이, 이 어린 창녀의 이야기는 훗날 <순진한 에렌디라와 포악한 할머니의 믿을 수 없을 만큼 슬픈 이야기>라는 제목의 중편으로 각색되어 출간된다. (그리고 에렌디라가 자리를 잡은 장터에서 마찬가지로 좌판을 벌인 '블란카만'은 또 다른 단편 <기적을 파는 착한 사람 블란카만>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또한 <하늘에서의 사랑>이라는 또 다른 자전적 에세이에서 자신이 젊은 시절 찾아갔던 사창가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만 보아도, 가르시아-마르케즈에게 있어 사창가나 창녀라는 대상은 그리 낯설거나 민망한 소재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굳이 <백년의 고독>에 나오는 필라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말이다.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똑같은 에로티시즘이라 해도 가와바타가 묘사한 일본의 것과, 가르시아-마르케즈가 묘사한 남미의 것은 뭔가 좀 다르지 않나 하는 기분이다. 일본 것이 어딘가 좀 기묘하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남미 것은 오히려 솔직하기 때문에 건강하다는 느낌조차 든다. 어쩌면 일본에 대한 편견이나, 남미에 대한 선입견 때문일까? 그래서인지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이라는 소설 자체는 여전히 가르시아-마르케즈 다운, 솔직한 건강한 에로티시즘이 압도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이미 가와바타와 나보코프를 열광하며 읽은 탓에, 적어도 "순수한 소녀를 넘보는 추악한 노인"에 대한 혐오감이나 뭐 그런 것은 아예 사라진 지 오래인 까닭도 있을 것이다. 가와바타의 <잠자는 미녀>가 직접적인 에로티시즘보다는 아직 만개하지 않은 젊은 처녀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그러나 탐미적으로 그리고 있는 데 비해, 가르시아-마르케즈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오히려 유쾌하고 해학적인 데가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소설의 화자의 노쇠와 무기력에 대한 회한이라는 점은 마찬가지이지만, 가와바타의 노인이 점점 짙어만 가는 자신의 무기력을 느끼면서도 탐미적으로 "잠자는 미녀들" (그가 갈 때마다 상대인 아가씨들은 계속 다른 사람으로 바뀐다) 에 빠져드는 반면, 가르시아-마르케즈는 오히려 잠든 소녀를 통해 다시 한 번 회춘하며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사랑의 감정에 몸부림치니 말이다. 여기서 문득 이 소설을 단지 "순수한 소녀와 추악한 노인"의 관계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된다는 사실에 좀 놀라게 된다. 마침 김기덕의 신작 영화에서도 이와 비슷한 구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사실에 거부반응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솔직히 영화나 소설은 그 전체적인 맥락을 이해하고 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단지 "노인은 변태새끼다" 혹은 "소녀가 불쌍하다"는 차원으로만 그치고 말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거다. 마찬가지로 나로선 "노인과 소녀의 숭고한 사랑"이니 "세대를 뛰어넘은 러브스토리"라는 식의 무조건적인 찬양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어디까지나 "패러디"로 봐야 한다.  가르시아-마르케즈의 창의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가와바타의 <잠자는 미녀>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이 확실하기 (저자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했으니까)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기 위해서는 가와바타의 작품을 읽는 것이 "필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패러디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라면, 패러디의 대상이 된 원저를 읽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패러디라고 해서, 요즘 개그맨들이 주절거리듯이 아무 생각 없는 "흉내"에 불과한 것은 아니다. 다만 같은 소재를 놓고서도 가르시아-마르케즈의 이야기가 독특한 만큼, 가와바타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도 또 다른 감동과 아울러, 이 작품에 대한 좀 더 깊고 사려깊은 생각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소재를 놓고 이러쿵저러쿵 하기에 앞서, 가와바타를 먼저 읽고, 가르시아-마르케즈는 그로부터 영향받은 작품이란 사실을 기억하며,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해 보자"는 것이다. 물론 내 제안에 따를 사람이 많지야 않겠지만. 죽은 듯 몸을 움직이지 못하며 누군가에게 자신의 몸을 제공하는 여성의 이야기라니, 여기서 문득 <뉴로맨서>의 몰리 언니 이야기를 꺼내면 지나친 비약일까? [<매트릭스>의 트리니티를 연상시키는 여전사 몰리는 온 몸에 무기를 장착하는 개조 수술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사이버 유곽에서 일한다. 즉 <잠자는 미녀>와 비슷한 식으로 자기 두뇌에 전극을 연결하여, 잠들어 있는 동안 멀리 떨어져 있는 유곽에서 자기 몸을 손님들이 마음껏 주무르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수술 부작용으로 인해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얼떨결에 자기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가하던 유력한 정치가인 손님을 죽이고, 그로 인해 한동안 뒷골목으로 잠적해 숨어다니는 생활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책을 덮으면서 문득 생각난 것이 있었다. 가와바타를 은근히 동경했다면, 가르시아-마르케즈도 어쩌면 그토록 약간은 독자에게 지루한 감을 주더라도 오히려 탐미적인 성향의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의 성격은 분명 탐미적이거나 지나칠 정도로 꼼꼼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의 성격은 제아무리 진지하려고 해도 어디선가 돼지꼬리나, 하늘로의 승천이나, 쉴 새 없이 주위를 배회하는 망령이 툭툭 튀어나온다는 것이 아닐까. 하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그를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로 꼽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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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si c'e'tait vrai...

Ou' es-tu?

그리고 다시

Et si c'e'tait vrai...

에 이어 La Prochaine fois 가 나왔다.

북하우스에서 마르크 레비 계속 나오려나보다. 촌시런 표지로;;
직접 본 책의 느낌은 그닥 나쁘지는 않다. 하드커버에,

[다음 번la prochaine fois](2004) 에 나오는 주인공 남자는 19세기의 어느 러시아 화가의 신비로운 그림을 찾아다니다가 한 여자를 만난다. 두 사람은 모두 어디선가 이미 상대를 만났었다는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언제 어디ㅓ 만났을까? 그림의 신비에 또 하나의 수수께끼가 더해진다. 그들을 결속시키는 데자뷰 현상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원한 회귀 또는 환생?기억, 사랑, 시간, 공간, 작품, 모든 것들이 비밀에 싸여 있다. ]

북하우스에서 나온 '너 어디 있니?' 옮긴이 해설中

재밌겠다! >.<

요것도 빨리 나와라. 으 ㅅ ㅅ 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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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9 0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5-12-09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맛, 왜 속삭이고 그러실까? 호호 님 서재에 댓글 남길께욤-

moonnight 2005-12-09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저스트라이크헤븐보고 왔어요. 재미있었어요. >.< 워낙 원작이 재미있어서 재미없게 만들기 힘든 영화였겠지만 ^^; 리즈 위더스푼이랑 마크러팔로 예쁜 커플이더군요. 마르크 레비의 책은 사람을 대책없이 로맨틱스럽게-_- 만드는 거 같아 경계주의보인데.. 으으. 신간 읽고 싶군요. ㅠㅠ;;;

2005-12-09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을 추천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중에서도 올해 제가 읽은 책은 얼마 안 되기에 더욱 어렵습니다.
더구나 2005년에 출시된 책이라고 하니,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심금을 울리는' 문장들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던 책들 몇권 추천합니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 카슨 매컬러스 
 

카슨 매컬러스의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슬픈 까페의 노래' 가 먼저 소개되었고,
이 책이 나왔습니다.

 지금 제 서재 이름이기도 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the heart is lonely hunter는
그 제목만큼이나 외로움이 절절한 책입니다.

분명 '희망' 보다는 조절 안되는 마음. 그에 따른 악순환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래도 그렇게 살아진다는 것에 책을 덮고 나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Van gogh 'sorrow '

 

 
 슬픈 까페의 노래 - 카슨 매컬러스

지금 보니 표지도 너무 맘에 듭니다.
세명의 기이한 남녀가 등장합니다.

 그들의 엇갈린 사랑은 당사자들의 몸과 마음을 재로 소진시키지만, 
 기이해 보이는 그들의 마음을 온통 휘젓는 그 감정은 시공을 초월하는 그것입니다.
지금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익숙할 수 있는 '그것' 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기이한 주인공들, 초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는 남부의 어느 시골마을, 모든게 헝클어져버린 결말따위가 젠장맞게 당연해 보입니다.


Edward hopper ' soir bleu '

 

 통역사 - 수키 김

 '오전 9시의 담배는 절망감의 표현이다. 11월, 비. 6호선 지하철 사우스브롱크스 역 앞의 붐비는 맥도널드, 이런 아침이 아니라면 그녀에게 흔치 않은 일이다.'

 그녀의 데뷔작은 멋집니다.
 그녀가 외로운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젊고, 아름다운건 분명합니다.)
 

그녀 외로움의 대부부은 '소속의 부재' 에서 옵니다. 미국에도 한국에도, 가족에도 애인에도, 사랑에도 미움에도 속하지 못하는 그녀의 외로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날 좋은 날 반짝거리는 물결과도 같습니다. 눈이 시리
고, 텅 비고, 그러나 차분하고, 아름답습니다.

Hiroshi Goto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아흔 살이 되는 날, 나는 풋풋한 처녀와 함께하는 뜨거운 사람의 밤을 나 자신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헤 - 마르께스의 책은 다시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절로 뿌듯한 미소가 납니다.
이 책은 줄거리에서 보는 '아흔살이 된 글쟁이 할배가 열몇살 미성년 여자를 돈 주고 사는' 그런 얘기가 아닙니다. 아니 맞습니다. 근데, 아닙니다.

여든살인 마르께스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아이'는 잠을 잡니다. 피곤하고, 창피하고, 두렵고, 그래서 잠을 잡니다. '나' 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상상하고, 아끼고, 보듬습니다. 아주우- 외로운 아흔살 먹은 할아버지가 이제 '사랑의 경이'를 봅니다.
어찌보면 순진하고, 어찌보면 영악합니다. 둘 중 어느 것이래도 마르께스는 무조건 좋습니다.


gauguin 'spirit dead watching'

 
 로맨틱 무브먼트 - 알랭 드 보통

 위의 책들과는 좀 많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책에서는 사랑도 외로움도 노래로 부르기 보다는
 분석하려는 헛짓 하고 있으니깐요.

 

하지만, 가끔은 나도 사랑과 외로움에 허우젹 대기만 하지 말고, '헛짓'을 분석하고 싶으니깐요.
그리고 그 분석을 알랭드 보통만큼 맛깔나게 할 사람 그리 많지 않으니깐요.




 




 


 

 


 

 

 

 

 

 

 

 

 

 

 

 

 

 

 

 

 

 

    Tadahiro Uesu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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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5-12-0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어도 마음에 들 것 같은 책들이 있어서 추천을 안 할 수가 없네요.

hnine 2005-12-09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 타령, 외로움 타령은 인생 전반을 두고 계속 되는, 불멸의 주제인것 같아요.
위의 책들 모두 '필'이 꽂히는데, 지금 <글쓰기의 전략>을 끼고 다니며 노력하며 읽고 있는 중이라 (다른책 지금 읽기 시작하면 이 책은 완결 보기 힘들것 같아서 ^ ^) 참고 있습니다~

chika 2005-12-0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의 '타령'... 이건 나에겐 지름의 충동. ;;;

조선인 2005-12-12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득, 하이드님의 피티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추천!
 

 

 

 

 

 

http://www.aladin.co.kr/blog/mypaper/781611

좋았던 책들 모아서 '추천' 이벤트에 올림.
떠오르는 그림들을 모아서 함께 올렸는데,

그림은 큼지막하고, 책 이미지는 쬐그맣다.

근데, 이 밤에, 그림과 너무 잘 어울린다며, 혼자 계속 감탄질중이다.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고흐의 '슬픔'

에드워드 호퍼의 ' prospect street' 을 올리려고 찾아 두었다가 마지막 순간에 눈에 들어온 이미지를 충동적으로 올린것이였는데,
책과 썩 잘어울린다.

 



'슬픈 까페의 노래'

역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중' soir bleu'  
내가 항상 이 책에서 주목해 왔던 것은 기이해 보이는 인물들속의 공감가는 뜨거운 마음이다.
이 그림은 호퍼의 그림을 찾다가 오랜만에 본 그림인데, 기이해 보이는 외모의 그들의 모습은
책 속 '슬픈 까페'의 외로움과 기이함과 왠지 모를 차분한 가라앉음을 모두 가지고 있다.



'통역사'
통역사는 알다시피 미스테리 소설이다. 젊은 작가가 쓴 젊은 감각의 소설이기도 하다.
그림들을 뒤적이다가 일러스트를 집어 넣어보았다.
처음 그림을 올릴 때는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자꾸 볼 수록 모르겠다.
쿨하고, 적당히 가볍고, 단순하고, 그런 느낌이 맘에 든다.

'내 슬픈 창녀들의 노래'

이 책과 이 그림이 너무 맘에 들어서 혼자 감탄질인게다!
설마 마르께스가 고갱의 이 그림 보고 영감을 얻어서 책을 쓴걸까 하는 얼토당토까지 간 걸 보면
야밤의 자뻑이 이보다 더 지나칠 수 없다.



올랭피아를 패러디한듯한 이 그림의 제목은 Spirit-dead-watching 왼쪽에 죽음이 어린 소녀를 내려다보고 있다.



조르지오네 '잠든 비너스'


타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마네 '올랭피아'  고갱의 그림은 이 그림과 여자가 반대로 누워 엎드려 있고, 다른 한편에 '검은' 죽음이 있는 뒤집어진 같은 구도의 그림이다.

잡설이 길었고, 
엎드려 있는 이국의 아이는 '내 슬픈 창녀' 를 떠올리게 한다. 여자관계가 복잡, 아니, 지저분, 아니 추잡했던( '여자를 물건으로 생각했던'을 지저분하다거나 추잡하다고 해도 되는건가.아무튼.) 고갱은 모델이 된 열몇살의 저 아이를 샀다. 아이의 어미에게 ' 예쁜가?' '그럼요.' ' 건강한가?' '그럼요.' 또 하나 뭘 물어봤더라. 아무튼 딱 세가지 물어보고 ' 데려와라'
고갱이 섬과 빠리를 왔다갔다 할 때마다 아이는 고갱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꺼라 몹시 겁냈다고 한다.
고갱이 없을때 홀로 천둥,번개 치는 집에서 무언가 무서운 것이(죽음, dead spirit) 자기를 지켜보고 있지나 않을까 겁에 질렸다고 한다.

책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아흔살. 살아온 날에 비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제 소녀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죽음이 지켜보는 가운데에 '젊음'을 취하는 작가나 화가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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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tty 2005-12-09 0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은 저도 요즘 무척 끌리고 있답니다.
고갱의 그림은 정말 내 슬픈 창녀들과 잘 어울려요! 자뻑이 아니에요!

마늘빵 2005-12-09 08: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책들 참고할게요. ^^

미세스리 2005-12-09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쩜. '통역사' 그림에 나오는 여자. 홀딱 반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