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이라도 많든 적든 간에 나름대로의 중심 테마 같은 것이 있다. 시코쿠에 갔을 때는 매일 죽으라 하고 우동만 먹었으며, 니이가타에서는 대낮부터 알싸하고 감칠맛 나는 정종을 실컷 마셨다. 되도록 많은 양(羊)을 보고 싶어서 홋카이도를 여행했고, 미국 횡단 여행을 할 때는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팬케이크를 먹었다(일생에 단 한번만이라도 팬케이크를 질리도록 실컷 먹어 보고 싶었다.) 토스카나와 나파밸리에서는 인생관에 변화가 생길 만큼 엄청난 양의 맛있는 와인을 뱃속으로 밀어 넣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독일과 중국을 여행할 때는 동물원만 돌아보고 다녔다.

이번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여행의 테마는 위스키였다. 스코틀랜드의 아일레이 섬에서 그 유명한 싱글 몰트 위스키를 실컷 맛본 다음, 아일랜드에 가서 도시와 시골 마을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아이리시 위스키를 음미할 작정이었다. 주변 사람들은(물론 모두 술꾼들이지만) 거참 멋진 생각이라며 칭찬해 주었다.
애초의 계획은 아내랑 둘이서 2주일 정도 한가롭고 지극히 개인적인 아일랜드 여행을 만끽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위스키에 관한 원고 청탁이 들어왔다. ...(중략)... 둘을 합쳐도 그리 긴 글은 아니지만, 문장을 다듬고 내용을 덧붙여 사진과 함께 독립적으로 한 권의 '위스키 내음이 배어 나는 작은 여행기'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내가 여행을 하면서 맛본 제각기 개성 있는 위스키의 풍미와 독특한 뒷맛, 그리고 위스키의 고장에서 알게 된 '위스키 향취가 물씬 풍기는' 사람들의 인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글로 옮겨 놓으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다. 대단치 않은 책이지만, 읽고 나서 (만약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신다고 해도) "아  그렇겠다, 나도 혼자 어디 먼 곳에 가서 그 고장의 맛있는 위스키를 한번 마셔 보고 싶구나"하는 마음이 든다면, 필자로서는 무척 가슴 뿌듯한 일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의 언어(言語)가 위스키라고 한다면, 이처럼 고생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언어는 그저 언어일 뿐이고, 우리는 언어 이상도 언어 이하도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온갖 일들을 술에 취하지 않은 맨 정신의 다른 무엇인가로 바꾸어 놓고 이야기하고, 그 한정된 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아주 드물게 주어지는 행복한 순간에 우리의 언어는 진짜로 위스키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나는- 늘 그러한 순간을 꿈꾸며 살아간다.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 하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中 머리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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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일레스 2006-02-12 18: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렇게 좋은 원제목을 왜 맘대로 바꿨는지 몰라요... 킁. -ㅅ- 문학사상사 KIN...

하이드 2006-02-12 18: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원제가 뭔데요??

페일레스 2006-02-14 16: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원제는 [만일 우리들의 말이 위스키였다면もし僕らのことばがウィスキ-であったなら]이죠.

하이드 2006-02-14 16: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멋지군요! 표지도 멋지다!!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하다고 하더니 이제는 '책' 그 자체가 위험하다고 한다.
'책'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에 대한 남미적 상상력

' 1998년 봄, 블루마 레논은 소호의 어느 책방에서 에밀리 디킨슨의 구판본 시집을 사서, 첫번째 교차로에 이르러 막 두 번째 시를 읽으려는 순간 자동차에 치이고 말았다'

로 이 112페이지의 짧은 책은 시작한다 .
너무나 짧은 분량에 서점에 서서 후딱 읽어버리려고 했건만, 그 문장문장이 나를 사로잡는지라, 반 정도 읽고 사버리고 만다.

교차로에서 책 읽으며가다가 자동차에 치이고 말았다니.
평소 책 읽으며 걸어다니는 나로서는 등골이 오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얼마전에도 책 읽으면서 걷다가 죽은 비둘기 시체 밟을뻔 했으며, 사실, 지하도 계단 내려갈때는 평소보다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며 책을 읽는다. ( 안그래도 계단 공포증이 있는데)

'책은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 놓는다. [말레이시아]의 호랑이]를 읽고 나서 먼 이방의 대학에서 문학강사가 된 사람이 있는가하면, [데미안]을 읽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힌두교에 몰두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고 크레타섬을 간건 축에도 못끼겠지.

'종종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언제 들춰볼지 알 수도 없는 책을 왜그리 보관하고 있느냐고. 전에 한 번 읽었을뿐 지금 내 독서취향과는 동떨어진, 그리고 몇년이 지나도 다시 펼칠일이 없을듯한, 아니 어쩌면 영영 읽지 않게 될 책들말이다.'

뜨끔. 나도..나에게 묻는다. 왜?왜?왜?

그 책들은 하나의 완성된 전체였고, 충성스러운 헌신으로 서로를 묵묵히 버텨주고 있었다.

내 책들은 서고에서 서로를 버텨주기보다는 방구석에 차곡차곡 쌓여서, 언제 자고있는 괘씸한 주인에게 무너져 압사시켜버릴까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책이 대체 몇권이나 됩니까?"
"사실 언제부터인가 헤아리길 그만두었어요. 하지만 대략 만팔천권이 될겁니다. 여기저기서 사들인 책들은 지금까지도 모두 다 기억할 수 있지요. 서가를 만드는 사람은 인생 전체를 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거든요. 결코 아무 계획없이 모아 놓은 책들이 아니란 뜻입니다. "

음.. 심오하도다. 
'헤아리길 그만두었'다는 부분에서 끄덕끄덕 공감하다가 '대략 만팔천권'에서 시기와 질투하고, '서가를 만드는 사람은 인생 전체를 세우고 있다' 는 부분에서 존경하기로 맘 먹다.

이 책... 심지어

.

.

.

.

추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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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2-1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어제 후배한테 삥으로 뜯었어요
얄팍하긴 하지만 두근두근~

책속에 책 2006-02-1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당기는 책이네요!!

그린브라운 2006-02-1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page에 8000원은 넘해...라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사기로 결정... ㅠ.ㅠ 하이드님 넘해요...

클리오 2006-02-11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하이드 님은 저랑 비슷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계단공포증까지.. ^^

모1 2006-02-1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무서운 책이긴 하군요.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뭐하고 사는지 알 수 없는 그 놈의 생일. 하필이면 게다가 발렌타인데이. 초콜릿과 연인들로 넘쳐날 화요일 명동 한복판에서 나는 꿋꿋이 퇴근해서 책을 읽을 것이다.


동참하실 분?


 Como agua para chocolate  초콜릿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상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리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심리 상태나 상황

 라우라 에스키벨 '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초콜릿 재료
스코누스코 코코아 2파운드
마라카이보 코코아 2파운드
카파카스 코코아 2파운드
기호에 따라 설탕 4내지 6파운드

코코아 열매가 다 볶아지면 체를 사용해 열매와 껍질을 분리한다. 절구통 밑에 뜨거운 석탄이 담긴 납작한 토기를 놓고 절구통이 따뜻하게 달궈지면 코코아 열매를 빻기 시작한다. 그러고 나서 여기에 설탕을 넣고 조그마한 나무공이로 곱게 빻는다. 그리고 이 반죽을 몇 덩어리로 나누어 손으로 추콜릿 모양을 빚는다. 기호에 따라 둥글게 빚을 수도 잇고 길쭉하게 빚을 수도 잇다. 그런 다음 바람에 말린다. 칼끝으로 네모난 블록 모양을 새길 수도 있다. 티타는 초콜릿 모양을 만들면서, 심각한 고민이 없었던 어린시절의 주현절이 서글플 정도로 그리웠다.

 

 앤소니 버클리 콕스 ' 독초콜릿 사건 '

" 나는 어떤 영광스러운 빚을 갚기 위해 초콜릿을 한 상자 사지 않으면 안 된답니다. 아내와 어젯밤 제국극장 특별석에서 연극을 구경했는데, 제 2막이 끝날때까지 범인을 알아맞히지 못하면 나는 아내에게 초콜릿 한 상자를, 아내는 나에게 담배 백 개비를 사주기로 약속했지요.  그런데 아내가 이겼습니다. 그래서 초콜릿을 사가지고 가야 한답니다. 연극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해골의 울음소리>인데, 보셨습니까?"

 

초콜릿과 이 책을 주면서 말한다. ' 자 , 시식해봐. 단 꼭 책을 먼저 읽어야해. ' 라는 상상을 하며, 책장을 넘긴다.

 뮈리엘 바르베리 '맛'

저자의 데뷔작인 이 작품은 세계 음식책 상World Cookbook Fair Awards에서 2000년 문학 부문 최고의 책으로 뽑혔더랬다. 저자는 철학교수다. 미각을 통해 철학을 이야기한다. 섹쉬하게.

아무 페이지나 펴 보면, 음식을 맛보는 것에 관한 현란한 문장들이 펼쳐진다. 그 음식을 음미하면서 읽던지, 그 문장들을 음미하면서 읽던지.
2월 14일, 초콜릿이 지닌 사회적 의미를 잊고, 그 깊고 넓은 '맛'에 집.중.하.자.

'그것은 현기증 나는 경탄이었다. 내 치아의 방벽을 넘어 들어온 것은 고체도 아니고 물도 아닌, 단지 그 둘 사이의 매개적인 물질로서 고체의 편에서는 무(無)에 저항하는 견고성을 간직하고 물의 편에서는 기적 같은 유동성과 부드러움을 빌려 온 물질이었다.' (-> 이것은 무엇일까요? ^^)

'맛'에 이어,  다이앤 애커먼 '감각의 박물학' 은 어떨까.

'우리는 혀끝에서 단맛을 느낀다. 쓴맛은 혀 뒤쪽에서, 신맛은 혀 옆쪽에서 느낀다. 짠맛은 혀 전체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지만 주로 앞쪽에 몰려 있다.( 중략) 아이스크림, 막대사탕, 손가락 끝에 묻은 케이크를 단맛에 대한 미뢰가 있는 혀끝에 갖다대면 더 큰 쾌감이 밀려온다. 혀 밑에 밀어 넣은 각설탕은 혀 위에 올려놓은 것만큼 달지 않다.'

자, 초콜릿, 혀끝으로 음미하기.

 

 황경신의 '초콜릿 우체국'

잠시 현실을 동화처럼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해.

 

솔직히 그 내용은 희미해져있다. 
그리고, 어디다 두었는지도 못 찾겠다.( 다시 안 읽은책은 어딘가 안 보이는 곳에 치워 놓는다.)
내게는 과하게 달았다. 난 예전부터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로알드 달 '찰리와 초콜릿 공장'

 난 초콜릿도 싫고, 말 잘듣는 아이도 싫다.
 이 책은 로알드 달의 지독한 농담만 같아 좋아할지 싫어할지 맘을 정하지 못했다.

 표지도 진한 초콜릿인 이 책. 
 금박티켓을 들고, 초콜릿 공장에 가자.

 



초콜릿 강이 흐른단다.

 조앤 해리스 '초콜릿'

 '아침에 진열장 안을 들여다봤습니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상자, 꾸러미, 금색, 은색 종이별들, 장미꽃 장식, 종, 꽃, 하트, 색색으로 말아 놓은 리본들이 흰 대리석 선반 위에 널려 있엇습니다. 종처럼 만든 유리컵과 접시들 안에는 초콜릿, 절인 과자, 비너스의 젖꼭지, 트뤼프, 망디앙, 설탕에 절인 과일, 헤이즐넛 송이, 조개 초콜릿, 절인 장미꽃잎, 절인 제비꽃 등이 들어 있었습니다. ..(중략) 오, 신부님. 전 그 생각만 하면 너무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 매력있는 여인이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데 제가 뭘 할 수 있었겠어요? 제말씀은,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늦었더라는 겁니다. 하긴 뭐, 초콜릿을 먹으면 절대 안 되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제 말씀은 지난 한두 해 동안 제 엉덩이가 정말로 얼마나 <부풀어> 올랐는지, 전 정말로 <죽고>싶습니다..."

히피 조니뎁이 줄리엣 비노쉬의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온다. 
중독성 강한 사랑, 중독성 강한 초콜릿.

 조앤 플루크 '초콜릿칩 쿠키 살인사건'

 " 한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동생이 돌아오면 위로해줄 생각으로 초콜릿칩 오트밀 쿠키를 만들었다. 하지만 반죽을 섞기 전에 필요한 재료가 모두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제일 중요한 오트밀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한나는 오트밀 대신 콘플레이크를 넣었고, 우여곡절 끝에 만든 쿠키는 의외로 맛이 좋았다. 더구나 한나의 걱정과는 달리 안드레아는 치어리더로 뽑혔고, 그때부터 안드레아는 한나가 구운 초콜릿칩 쿠키라면 사족을 못 쓰게 되었다."

딱 표지만큼, 제목만큼 가벼운( 그래도 살인사건이 일어나긴 한다) 소설이다.
코지미스테리 : 추리소설에서 보이는 잔혹함이나 고도의 두뇌게임 없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밝고 명랑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추리소설의 한 장르.
김 샌 '쟈넷 에바노비치' 책 보는 기분이다. 가끔 발랄하다. 반도 안 읽었는데, 오타가 꽤 눈에 많이 뜨인다.

무튼, 제목에 '초콜릿칩' 들어가니,  골라봤다. 그래, 이 책은 가루 질질 흘리면서 먹는 적당히 단 초콜릿칩 쿠키같은 책이다.




 그렉 버렌트 외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한 해의 거대한 초콜릿 이벤트에 혼미할 때, 이 책을 보고 이성을 찾아보자. 단 너무 깊이 공감하면, 평생 홀로 초콜릿 책만 읽을 수도 있으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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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07 0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여기저기 다 쪼꼬렛 판. ㅠ_ㅠ 전 동참하지 않을래요. ^^V

모1 2006-02-07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콜렛 사진들이 유혹하는군요. 이런...사먹고 싶다는 생각에 불끈불끈 들어요. 아침부터...

딸기 2006-03-14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도... 읽은게 하나도 없군요
 

이 동네가 워낙에 좋은 동네이다보니,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기쁘게 책선물을 한다.
오늘 아침만도, 서재계의 숨은 큰손님께서 리뷰에 당선되셨다며, 책을 고르라고 쪽지를 남겨주셨다.

'책 선물을 거절하는 방법' ( 아니, 사실은 책 선물을 거절하지 않고 납죽납죽 받는 방법)
생일때 '선물 주세요' 라고 페이퍼와 리스트를 만들어 40권이 넘는 책을 선물 받았던 행복한 기억이 있는 나이니, 어떤 이유건, ' 책 드릴께요' 하면, 만사 제치고, 책부터 고르는 '나'다. ^^;

책 선물을 받을때 남기는 애교있는(?) 멘트 몇가지
* 책 선물 마다 하면 천당에 못 간데요. 그럼 고르겠습니다.
* 저희집 가훈이 '책 선물 마다하지 마라' 입니다. 가훈에 따라 기꺼이 받겠습니다.
* 이 원수는 꼭 갚도록 하고, 일단 고르겠습니다.
* 이러시면 안 돼요, 돼요, 돼요, 돼요, 감사합니다. ㅜㅜ

간혹 나는 옆구리 찔러 책선물을 받기도 한다.
' 어려운 전화 한통 걸어주고, 책선물'
' 차마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는;; 추천조로 책선물'
' 안 좋은일 있다고 '조르기' 들어가기'

미안하게도 옆구리는 항상 찔리는 그 분이 찔리지만, (스페인에서 소주는 잘 마시고 있으시려나? ( '') )

굉장히 빡센 여행이어서 ( 보통 내가 한 일주일쯤 희희낙낙하며 볼 것들을 3박4일에 다 봐버렸다) 여행 중에는 피곤하고, 짜증스럽고, 입떼기 싫었는데, 오늘 생각하니, 삿포로 여행은 너무 꿈만 같아서, 밀린 일 하면서, 계속 혼자 실실거리고 있다. 흐으으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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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2-06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험. 저도 책 선물 마다안해요. 책 뿐 아니라 온갖 선물 마다 안해요. 여행 재미나세요? 아직도 눈 오나요?

하이드 2006-02-0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제 왔습니다. ^^ 여행 느므 재미있었구요. 음. 서울은;; 눈 안 와요 ^^
삿포로는 한달에 27일은 눈 온다고 하더군요. 저 있는동안 계속 오더군요.

hnine 2006-02-0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절하다니요...주는 사람이 있어야 거절을 하지요 흑 흑...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oldhand 2006-02-06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다녀오셨나요? 서울도 느무느무 춥습니다.

2006-02-06 1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이드 2006-02-0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드핸드님/ 흠. 삿포로에서 막 온 저로서는 서울 따뜻합니다. 으쓱. ^^
hnine님/ 앗, 본격적인 여행기는 안즉 시작 안되었습니다. '철도원' 페이퍼 보고 말씀하시는가봐요. 이번 여행의 큰 수확이었지요. ^^


마늘빵 2006-02-06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셨군요. 금방 오신듯. ^^

하늘바람 2006-02-06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멋진 여행이셨나요? 아 저도 요즘 책선물 받고프네요^^;

울보 2006-02-06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좋은 여행이셨으면 님이 이야기가 기달려 지네요,,,

panda78 2006-02-06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좋으셨겠어요---- 사진들이 기대가 팍팍팍 됩니다. ^^
저도 책선물은 절대 마다하지 않지요. ㅋㅋ

2006-02-06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모1 2006-02-06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요령이 있었다니...처음 알았습니다.
 

호로마이행 단선 기차는 비요로 역 홈을 출발하여 시내를 통과하는 중에 잠시 본선 철도와 나란히 달리게 된다. 유리로 뒤덮인 리조트 본선 특급이 한 칸짜리 기하 12형 기차를 뒤따라와 마치 천천히 뜯어보듯 나란히 달리다 앞질러 가는 것이다.
기차 시각표 상의 장난인지 아니면 도회지 스키어들을 위해 준비된 연출인지, 특급 차창에 조롱조롱 매달린 승객들이 옛 국영철도의 상징인 붉은색 단선 디젤 기차를 구경하는 것이다. 이윽고 호로마이 선이 왼쪽으로 크게 커브를 그리는 분기점에 이르면, 특급의 널따란 차창에서 제법 많은 플래시가 펑펑 터졌다.
18시 35분발 기하 12는 하루에 세 번밖에 운행하지 않는 호로마이 행의 마지막 열차였다.



"쳇, 멋깨나 부리네. 사진까지 찍고 난리칠 게 뭐 있다고. 안 그래요, 역장님?"
젊은 기관사는 눈 덮인 평원을 가르며 내달리는 특급을 흘깃 돌아보다 조수석에 선 센지를 올려다보았다.
"세상 모르는 소릴세. 요새 기하 12가 그야말로 문화재급인 거 모르나? 이거 한번 보겠다고 일부러 먼 데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어."
"근데 왜 이 노선을 없앤대요?"
"이 사람아, 그거야 수송 밀도니 채산이니, 그런 문제 아니겠나."
어련하시겠어요. 기관사는 엄지손가락을 어깨 위로 쳐들어 뒤쪽을 가리켰다. 달랑 한 칸 달린 객차에 승객 하나 없이 초록색 좌석들만 침침한 형광들 불빛 아래 나란히 놓여 있었다.
"비요로 중앙역 역장임이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어요?"
"왜 못 해?"
"왜고말고, 아저씨, 호로마이 선이 언제 수송 밀도니 뭐니 따져가며 운행했나요? 저도 벌써 사 년짼데, 고등학교 방학 때면 항상 이랬잖아요. 근데 이제 와서 왜 새삼스럽게 노선을 폐지한다고 하느냐구요."
"난들 알겠나, 그런 걸. 지금까지 이렇게 버틴 것만 해도 과거의 실적을 크게 쳐준 거였지. 자네도 호로마이 출신이면 옛날에 이 노선이 얼마나 굉장했는지 생각나지?"

.

.

기관사는 왼손을 들어 "칙칙폭폭 뿌우-" 일부러 기적 소리 흉내를 내보였다.
센지는 자기도 모르게, 페인트를 수도 없이 덧칠해서 이제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기하 12의 운전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센지는 유리에 서린 김을 장갑으로 훔쳐냈다.
기차가 완만한 비탈길을 올라서자 좌우의 능선이 바짝 다가들었다. 짧은 터널을 빠져나갈 때마다 눈은 그 높이를 더해갔다.
"우와, 내일은 제설차를 보내야겠는데요?"
전조등에 비쳐 드러나는 환한 빛의 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노라면 뭔가 알지 못할 이야기의 세계로 달음박질쳐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센지는 배전반에 팔꿈치를 짚고 하염없이 앞으로만 앞으로만 뻗어나가는 빛과 어둠의 세계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저것 좀 봐요, 아저씨. 어째 옛날 이야기 속 같네요."
기차 바퀴가 삐걱이는 소리조차 어쩐지 먼 곳인 듯 아득하게 들렸다. 늙은 호로마이 역장이 눈 퍼붓는 종착역 플랫폼에 칸델라 등불을 켜들고 서 있었다.
"겨우 오 분 늦었는데, 계속 저러고 서 계셨나봐요. 바깥 기온이 영하 이십 도는 될 텐데."
두툼한 국철 외투 어깨 위에 눈을 한 뼘쯤 쌓아놓고, 짙은 남색 제모의 턱끈을 단정히 잡아맨 채 오토마츠는 플랫폼 끝에 우뚝 서 있었다. 기하 12가 들어오는 것을 보자 새삼 등을 꼿꼿이 세워 자세를 바로 하고, 장갑 낀 손가락 끝은 진입선을 향해 반듯하게 뻗어 신호를 보냈다.

도착 정시에서 늦어진 오 분의 분량만큼 얇게 눈 덮인 플랫폼 위를 오토마츠는 장화를 저벅거리며 다가왔다.

.

센지는 마지막 회송 열차를 배웅하는 오토마츠를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기도 민망할 것 같아 선로를 가로질러 역사로 향했다. 호로마이 역은 다이쇼 시대에 지어진 모습 그대로 남겨진 훌륭한 건물이었다. 널찍한 대합실은 천장이 높았다. 오래 곤 엿 빛깔의 두툼한 대들보가 몇줄기나 가로질러가고, 삼각형 천창에는 로맨틱한 스태인드 글라스까지 새겨넣었다. 나무로 짜넣은 개찰구 벽 위에는 아직도 국철 표장이 마치 잃어버린 물건처럼 걸려 있다. 벤치는 모두 검은 광택이 도는 옛 물건들이었다.



"오래 기다렸지? 어이, 저기 좀 보게. 기념품 가게도 결국에는 문을 닫아걸었네."
오토마츠는 시린 눈 냄새를 한 짐 등에 짊어지고 역사로 들어오더니 깃발을 말면서 역 앞을 가리켰다.
"어라, 진짜네, 할망구는 어떻게 된 거야?"
단 한 집 남아 버티고 있던 역 앞 기념품 가게는 처마가 기울어진 채 불이 꺼져 있었다.
"아들이 비요로에 맨션을 샀대. 칠십 넘은 할멈을 붙잡을 수도 없고. 자, 이렇게 되니 이제 여기에 담배나 신문 정도는 갖다놓아야 하게 생겼네."

 

 

 

그날 호로마이에는 시간도 장소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큰 눈이 졌다.
낡은 역사는 소리도 빛도 없는 순백의 세계에 파묻혔다. 소녀는 노(老)역장이 말하는 옜이야기를 하나하나 깊이 감동하며 들어주었다. 오토마츠는 자기 스스로도 자기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싶으면서도 반세기분의 어리석은 푸념이며 자랑을 생각나는 대로 주워섬겼다.

철도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 대신 호루라기를 불고, 주먹 대신 깃발을 흔들고, 큰소리를 내지르는 대신 호령을 봅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철도원의 괴로움이라면 아마도 그런 것일 것이다.

 

오토마츠는 그날의 여객일지에 '이상 없음'이라고 적어넣었다.
이윽고 한밤중에 눈이 멈추었다. 호로마이 앞산에 은빛 보름달이 떠올랐다.

 

 

 

 

 

 


두 세시간이나 눈을 붙였으려나, 5시 모닝콜이 울리자, 눈을 부비며 일어나 준비를 마치고, 삿포로 역으로 간다. JR특급열차를 타고, 그리고, 갈아타고, 또 갈아타고, 마지막의 한량짜리 조그마한 기차를 타고, 영화 철도원의 배경이된 '이쿠토라' 역을 찾았다.

호로마이역은 아마도 없어졌지만,
그와 비슷한 작고, 외진, 한량짜리 기차만 다니는 이 곳은
호각불어주고 깃발 흔들어주는 역장님 없이,
영화가 개봉한지 5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드믄드믄이나마 찾아주는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이쿠토라 역으로 들어가면,

나가는 문은 '호로마이역'의 앞면이다.
춥고, 배고프다. 온통 눈밭인 바깥. 다음 기차는 한시간 후이다.
이쿠토라역으로 들어가서 호로마이역 앞으로 나온다.

작은 마을을 헤매여 보아도, 맞이하는 것은 끊이지 않고 내리는 눈.
라면집인 듯한 주인없는 가게, 눈을 잔뜩 뒤집어쓴채 작동을 중지한 밴딩머신,
그리고, 영화 속에 나왔던 식당이며, 주점이며, 변소까지( 차마 안 찍었는데, 후에 책 보니, 변소 데려다주는 신이 있었구나) 까지도.

황량한 작은 마을.
[철도원]에는 줄곧 눈이 내리고 있다. 혹은 문장 뒤켠에서 눈을 느낄 수 있다. 그 추위는, 인생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산케이 신문

그렇게 춥고, 배고프게 거리를 거닐며, 철도원으로 살다가 철도원으로 죽은 한 남자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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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로 2006-02-06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사다 지로, 이래도 안 울테냐 작가죠.^^

moonnight 2006-02-06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도원에는 줄곧 눈이 내리고 있다... 맞아, 맞아. ^^ 춥고 배고프게, 그치만 배부르게 만끽하셨을 하이드님만의 분위기에 끄덕끄덕하고 있습니다. 하이드님 사진, 너무 좋아요. >.<

2006-02-06 10: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루(春) 2006-02-06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세트군요. 저 식당 운영하는 덴 줄 알았는데... 영화랑 책 보고 가셨나 보죠?

모1 2006-02-06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보고 그 영화 철도원? 했는데...그곳이었군요. 눈이 너무 많아 보여서 겨울이라 그런지 더 추워보이네요. 으슬으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