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보르헤스 > 내 오디오속 롤리타

 

그대, 내 어린 소녀여

어떤 노래보다 더 나은 그대여

영원히 노래로 불려지거나 말해질 그대여

그대는 살아있는 시요,

그리고 나머지 모든 것들은 죽은 것이리라.


Written by Dante Alighieri


누군가에게 읽혀질 글을 쓸 땐, 마치 발가벗겨진 채, 무수한 사람이 오가는 번화가 한복판에 우두커니 세워진 듯 한 느낌이 종종 들곤 한다. 게다가 자신의 변변치 못한 취향을 고백하게 될 때는 지나가는 행인에게 싸대기라도 한 대 맞은 듯 얼얼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하지만 수줍은 내 취향을 공감해주고 자신도 좋아한다고 말해줄 때면, ‘사랑하는 사람은 고독한 법이다.’라는 말이 여름 햇살아래의 안개처럼 어느새 사라져버리고, 정말 어린아이처럼 마냥 들떠서 몇 시간이고 떠들어 대곤 한다.


내 마음을 한순간에 사로잡아 버린 두 어린 소녀(지금은 두 사람 모두 어리다곤 볼 수 없게 되었지만)에 대해 지금 말하고자 한다.


Lisa Ekdahl

 



 


19세의 나이로 Peter Nordahl Trio의 재즈 보컬로 처음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사실상 재즈보컬로 보긴 힘든 면이 많다. 으레 Jazz Vocal이라면 떠올리기 쉬운 다소 Husky하고 중성적이며, 하드한 목소리를 지닌 것이 아닌 가냘프고, 여리디 여린 다소 불안정한 음색을 그녀는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Jazz Standards를 부른다? 어쩌면 무모한 모험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다행히 그녀는 당당히 성공을 거두었고, 23살의 어린나이에 스칸디나비아 최고의 가수로 평가받게 된다. 그녀의 약점일 수도 있는 가냘프고 소녀적인 다소 미성숙한 음색은 재즈를 통해 정감있고, 편안하며, 호소력있는 아주 매력적인 목소리로 변화했다. 그녀의 I don't miss you anymore를 한번 들어보라!


I don't miss you anymore

Unless the moonlight's grey

Or on a stogy night

I just might miss you

A little bit


그녀의 간절한 호소를 당당히 거부할 만한 강심장을 소유하고 있는 남성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Carol Sloane

 



 


캐롤 슬론? 그게 누구야? 하는 분들이 많을 듯 싶다. 사실상 그녀는 무명에 가까웠으니까. 모든 것이 너무나도 쉽게 잊혀져 버리는 오늘날 30년 가까이 그녀를 기억해 주리라곤 그녀 자신도 몰랐을테니까. 그녀는 14살의 아주 어린나이에서부터 전문적으로 노래를 시작했고, 1961년 Newport Jazz Festival에서 강인한 인상과 함께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다. 이를 계기로 Columbia에서 2장의 음반을 내기도 했으나, 그녀의 이런 시도는 불행히도 성공하지 못했고, 1977년에 이르기까지 단 한 장의 음반도 녹음할 수 없었다. 아리따웠던 24살의 Carol Sloane은 어느새 40세의 넉넉하고 푸근한 인상의 주부가 되어있었지만, 그래도 아직도 여전히 그녀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그녀의 고향도 아닌 머나먼 타국, 바로 일본에서의 부름이었다. (이런 부분에선 정말 일본의 문화저변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Art Blakey, Eddie Higgins, Sir Rolland Hanna... 잊혀진 수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일본에서 부활의 날개짓을 했던가!)


개인적으론 Jazz를 들을 땐 맥주가 제격이란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지만, 가끔씩 여성 재즈 보컬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와인 생각이 절로 난다.


굳이 두 사람을 와인으로 비유하자면 리사 엑달은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 캐롤 슬론은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보졸레가 가볍고, 어리며 친근하면서, 자유롭고 화려한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와인이라면, 샤토 라투르는 처음엔 시고 떫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자연히 숙성되어 강렬하면서도 우아한, 황홀한 맛을 가지게 되는 장기숙성와인이라 하겠다.


얼마 전 1961년산 샤토 라투르가 경매에서 1병에 560만원에 팔렸다는 기사를 읽었다. 캐롤 슬론은 1961년에 뉴포트 재즈 페스티벌에 서는 영광을 잠시 누렸지만 30년 가까운 세월을 무명으로 보내야 했다. 하지만 30년의 오랜 인내를 거쳐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와인으로 성숙되는 샤토 라투르처럼 캐롤 슬론의 발걸음도 이제 시작이다.

 

PS> 음악이 연달아 나오니까 밑에껀 꺼두시고 하나씩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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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0-13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Paul Desmond를 듣던중이었는데 한꺼번에 세 노래가 나와서 막 헷갈리던 중이었습니다 그려...
 

화재의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저자 타다시 아기와의 단독 인터뷰 
 

최근 와인애호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떠들썩한 만화가 있다.  일본 만화신의 물방울’(원제神の滴’ = 카미노시즈쿠)” 2005 11월 말부터 거의 평균적으로 매월 1편씩 연재되면서 입 소문을 통해 급속도로 전파된 대형 베스트 셀러이다. 5편이 연재될 7-8월 당시 누적 판매수가 10만권을 돌파하고 9월초를 기준으로 6편에서는 16만부를 육박하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만화책에 등장한 모든 와인들이 모두 다 팔려버렸다는 것. 많은 와인 동호회 혹은 모임에서는 신의 물방울 속에서 등장한 와인을 시음한다든가 혹은 뜨거운 토론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한번 읽고 버리는 단순 만화책 이기 보단 이젠 와인 참고서가 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장하면서 2-3번씩 읽어보는 사람도 생겨났다. 작가가 던지는 해박한 와인 지식과 꼭 알아두어야 할 와인상식이 이 만화책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와인에 대한 아름다운 표현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게 매료되고 와인을 마시는 사람은 그 와인을 마시고 싶어지고, 와인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와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와인을 접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듣게 된다.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와인애호가들 사이에 강한 돌풍을 일으킨 신의 물방울의 누적 판매부수가 7권째(9월 말 한국어 판으로 출시예정)에 이미 55만 부수가 넘었으며 만화책 속에 등장한 와인들은 모두 품절된 상태이다.  이 만화 속에 등장했던 프랑스의 잘 알려진 어느 샤또(Chateau)의 경우 아직 제대로 출시도 되지 않은 2004년산 와인들까지 아시아인들에 의해 모두 판매가 되어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  현재 이 만화책은 대만과 홍콩에서도 번역판으로도 나오고 있으며 프랑스 번역판 까지도 나올 거라는 이야기가 있다. 

 

신의 물방울의 내용은 이러하다.  일본의 최고 와인평론가인 칸자키 는 친아들인 칸자키 시즈쿠와 양아들로 입적된 유명 와인 평론가 토미네 잇세에게 자신이 명하는 최고의 “신의 물방울” 과 최고 서열의 “12사도”를 찾는 자에게 자신의 재산과 엄청난 와인 유산을 남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한다.  평소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와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친아들 “칸자키 시즈쿠”는 어릴 적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로부터 훈련 받은 최고의 와인 서빙 기술과 엄청난 미각의 소유자이며, 그와 대적하는 양아들로 입적된 “토미네 잇세”는 일본 최고의 와인평론가이다.  엄청난 와인유산을 둔 이 두 사람의 와인게임은 시작되는데 작가의 해박한 와인지식은 이 만화책의 내용 속에 정확하게 표현된다는 점과 와인에 대한 표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그 내용을 읽어 본 사람은 와인을 마시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좌측 그림: 타다시아기의 작업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원생림 속을 나는 지금 걷고 있다. 버섯그리고 이끼 낀 지면과 나무들에서 풍겨오는 냄새깊은 숲의 습기를 머금은 냄새꽃 향기다. 수많은 붉고 작은 꽃. 하얀 꽃도 있어  아아, 이 얼마나 화려한 열매인가. 블루베리? 라즈베리? 신선한 체리와 딸기도 있다.  여기는 비밀의 샘이며 화원이기도 하다. 연인? 말할 수 없는 관능…. 이것은 완성된 한 폭의 그림이다. 아니, 사랑 이야기다.”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샹볼 뮤지니’(Chambolle Musigny)를 맛본 만화 주인공칸자키 시즈쿠의 와인 표현이다.  이 샹볼 뮤지니는 만화 속에 등장한 제 1 사도 였다.

 

이 화재의 만화책 속에 담겨있는 와인관련 정보에서 와인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대립된 의견들로 논쟁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일부는 동감했고 일부는 과장이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분명 해답은 작가만이 가지고 있었다.

'신의 물방울 (원제神の滴’ = 카미노시즈쿠)” 의 작가인 타다시 아기(44) 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했다.  인터뷰요청을 수락 받고 일정을 정하는데 에도 1개월 이상 기다려야 했으며 적지 않은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다.  언론에 노출을 싫어했던 작가는 한번도 자신의 얼굴을 언론 매체에 공개하지 않았으며 웬만한 인터뷰는 대부분 거절했을 정도이다.   어쩌다 한번씩 와인모임 정도에 나타나는 것이 고작이라는 것이 후에 관계자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우연히 미국 소노마의 어느 와인행사에서 알게 된 일본의 꽤 큰 규모의 와인수입상인 “FWINE” 사의 부사장의 도움으로 결국은 작가의 인터뷰를 얻어냈다.   물론 여러 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을 수락해야 했다.  작가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다는 것과 작업실을 보여줄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와인 마니아라면 그리고 그 만화책을 읽어 보았다면 꼭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해보고픈 작가였기에 그러한 모든 조건들을 감수하고 작가가 희망하는 일정에 서둘러 맞추어 일본 행 비행기에 올랐다 

경의 중심지인 시부야 역에서 지하철로 약 20-30분 가면 키찌조오지라는 동내가 나온다.  작업실이 근처인 듯한 이곳의 어느 일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하면서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물론 점심값도 내가 부담해야 했다.  만화책의 발행인인 모닝 망가 잡지의 Associate Editor Muneoki Hirokawa 씨와 의학다큐멘터리 작가이자 와인친구였던 친 누나인 Yuko Kibayashi, 인터뷰가 가능하도록 도와준 와인수입업체인 FWINE 사의 부사장 Hiroshi 와 그의 마케팅 직원, 홍보회사의 관계자 그리고 통역을 도와줄 일본에 거주하는 친한 후배와 함께 한 자리였다.   한 사람과의 인터뷰를 위해 총 7명이 동원된 셈이다.

 

다부지고 약간 마른 체구의 타다시 아기는 어깨까지 길어 보이는 회색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묶었으며 흰색 바지와 검은색 티셔츠의 깔끔한 용모, 예술가 특유의 독특한 디자인의 팔찌, 은색 안경태 너머로 쌍거풀이 없는 눈빛은 맑고 예리하게 반짝였다.  인사와 함께 자리에 앉으면서 그는 말한다.  죄송하지만 저의 얼굴이 노출되는 것을 피하고 싶습니다.  저의 프라이버시와 가족들을 위해 저의 얼굴을 언론에 노출시키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타다시 아기는 필명(Pen name) 으로 무려 6가지의 필명을 가지고 있었다. (작가의 요청에 의해 본명을 여기에서밝히지 않겠습니다).   아마기, 안도유마, 아오끼유야, 아리모리조지, 아기타다시, SK Produce 가 그의 필명이다. 한국에도 이미 그의 작품 중 3가지의 작품 (사이코 닥터, 켓베커스, 탐정학원 Q) 들이 각기 다른 필명으로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고 한다.


<타다시 아기와의 단독 인터뷰 내용>

필자: 와인은 언제부터 접하게 되셨나요?

 

아기: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였으며 와인을 수집하기 시작한지는 약 10년 정도 되었습니다.  지금은 와인의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있을 정도인데 본인의 집과 여러 곳에 와인을 모아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 수량이 너무 많아 심지어 조그마한 맨션을 빌려 온도를 맞추기 위해 하루종일 에어컨을 돌리면서 그 공간을 와인셀러로 사용하는데 와인이 너무 많아 심지어 화장실에도 와인이 놓여져 있을 정도 입니다. 

 

필자 :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실존인물인가요 ? 

아기 : 3명의 주인공은 가상의 인물입니다.  그 중 와인 평론가로 등장하는 주인공 토미네 잇세는 한국의 영화배우 배용준 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윤석호 감독님의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당연히 그의 작품인 겨울연가 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모두 좋아합니다.  지금은 “봄의 왈츠”가 일본어 판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태리 와인을 칭송하는 혼츠케는 실지로 도쿄백화점 내의 와인샵에서 메니저로 근무하는 아투시 혼마(Atushi Homma)를 모델로 하였는데 다른 곳에서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제의가 들어와도 귀 기울이지 않고 꿋꿋히 한곳에서 10년 이상을 근무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있는 친구 이지요.

 

필자 : 신의물방울 의 내용을 가지고 드라마화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 

아기 :  그런 이야기는 있었지만 아직은 너무 초기 단계입니다.  드라마는 책이 모두 완성되었을 때 가능한 이야기 이죠.   드라마의 소재로 이용되는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한 빨리 완성하도록 해야겠지요.

 

필자:  언제쯤 이 책이 모두 완성될 것 같은가요?

아기:적어도 앞으로 3년 혹은 5년 까지도 생각하고 있지만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완성을 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필자 :  신의 물방울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아기 : 개인적으로 와인을 너무 좋아하고 있으며 와인을 통한 메시지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만화를 집필하였습니다.  완벽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천(天) * 지(地) * 인(人)”의 절묘한 조화가 필요한데 그러한 메시지가 이 만화 속에 담겨있습니다.  모든 와인 속에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단지 붉은 액체인 와인 속에 숨어있는 메시지를 이야기로 표현한 저의 이야기 입니다.
와인 속에 담겨있는 내용들은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국가와 언어에 상관없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공통적인 언어와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필자: 제1사도로 선정된 와인은 어떠한 특징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나요?

아기: 12사도 중 1번째 사도로 소개한 와인은 2001년산 샹볼 뮤지니였습니다.  세계적인 와인거장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가 2002산의 샹볼 뮤지니에 높은 점수를 주었지만 저는 오히려 2001년에 후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 병을 따보면 2001년산이 2002년 보다 훨씬 훌륭할 것이라 강조하고 싶습니다. 

로버트파커는 미국인들에게 팔릴 것 같은 와인에 대한 평가를 하는 편이라 생각합니다.  주로 마시기 좋은 와인에 후한 점수를 주지만 우아한 와인에는 점수가 짜다는 것을 느낍니다. 즉, 와인을 상품으로 인정하고 잘 팔리는 와인대한 평가를 좋게 하는 편입니다. 사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파커의 평가가 상업적으로 변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필자:  신의물방울에서 등장하게 될 최고서열의 12사도 와인들은 어떠한 기준으로 정하게 됩니까 ? 

아기 :  12사도는 모두 본인이 정하고 있습니다.  빈티지의 특수성과 떼루아(Terrior)에 더욱 신경써서 만들어진 와인들이 될 것입니다.  프랑스의 떼루아가 주는 복합적이고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들은 꽤 매력적이고 그에 따라 와인메이커의 노력이 많이 들어간 와인을 더욱 좋아합니다.   만들기 쉬운 그러한 와인은 인정하지 않으며 “천지인” 이 제대로 조합될 그러한 와인을 높이 평가합니다.  쉬운 예로 미국의 경우 수확 철에 비가오면 비닐을 씌우지만 프랑스는 자연의 섭리 그대로 맡기는 편이지요.

 

필자 : 평소 어떠한 와인들을 주로 좋아하나요 ?

아기: 숲의 향기가 많이 느껴지는 부르고뉴의 와인들을 좋아합니다.  보르도 지역중에서는 그라브의 페삭레오냥 지방의 와인들을 좋아합니다. 

빈티지에 따라 와인의 스타일이 달라지는데  레오빌라스까스의 경우 80년산 와인은 지금 마시기에 훌륭하지만 90년대에 생산된 와인은 지금 마시기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셀러에 넣어두고 좀 더 기다리고 있습니다. 

 

필자:   자신이 콜렉션하고 있는 와인은 총 몇 병 정도 되나요?

아기:  몇병인지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군데에 보관하고 있는데 와인이 넘쳐서 이젠 와인만 보관하고 있는 맨션의 화장실에도 넣어서 보관할 정도입니다.  수량은 약 2000-2500병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필자: 가족관계는 어떻게 됩니까?

아기 :  아내와, 9살이 된 큰딸이 있고 그 아래 아들이 2명 있습니다. 

 

필자 : 아이들에게도 와인 맛을 보게 하나요?  혹시 신의 물방울의 이야기 처럼 아이들에게 와인교육을 시키는지요? 

아기: 아이들에게 와인을 냄새를 맡아보게는 합니다.  어린아이들의 후각은 아주 발달되어 있어서 제대로 와인의 향기를 알아 냅니다.  그 동안 모았던 와인들을 아이들에게 물려줄 의향도 있습니다.

 

필자 :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와인들이 모두 날개 솟듯 판매되고 심지어 품절이 될 정도인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기: 아마도 그 대표적인 예가 당시 시중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구매가 가능했던 샤또 몽페라 (Chateau Montfera) 였을 것입니다.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것은 좋지만 인기도 때문에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좀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에서도 샤또 몽페라가 3000-4000 엔대의 와인이었는데 지금은 2001년 산이 만엔 대에 판매가 될 정도인데 사실 그 가격대에도 좋은 와인들은 아주 많습니다.

 

필자 :  잊지 못할 와인이 있는지요 ?

아기 :  1999 년산 로마네꽁띠에서 만든 에세죠 였습니다.  저에게 강한 충격을 준 와인이었죠.  이러한 와인들은 보통 오랜 기간 보관했을 때 훌륭한 맛을 내는데 호기심에 받자마자 열어보았는데 예상 이외로 와인의 심오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97년산과 98년산의 앙리 자이에의 에세죠 또한 너무 좋았으며 85년산 로마네꽁티에 버금가는 와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99년산 로마네 생비방 호랑 아르부제는 마치 장미꽃 꽃다발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필자:  곧 제3 사도의 와인이 등장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약간 힌트를 줄 수 있나요 ?

아기:  이 와인은 일본에서는 인기 없는 론(Rhone) 지방의 와인입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옥션에는 올라가 있습니다.  약 20,000 ~30,000 엔 정도하는 와인입니다.  우연히 추천받아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와인인데  아주 훌륭했습니다.  와인라벨을 보면 별로 고급스러워 보이지도 않고 저렴한 와인일거라 생각하고 오픈 했는데 너무 훌륭했습니다.  생산량이 아주 작으며 포도나무 수명이 모두 100년 정도된 그런 와인입니다.

 

필자 : 12사도와 신의 물방울은 이미 내정되어 있나요 ?  아마도 많은 와인생산자들이 자신의 와인을 추천해달라는 의뢰도 많이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아기: 여러 곳에서 와인을 가지고 추천해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주 좋은 와인이라면 조그만 스토리로 등장 시킬 수 있습니다. 12사도는 대충 정해져 있지만 집필 중에도 더욱 좋은 와인이 나타난다면 바뀔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의 물방울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만화책 1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 본다면 감을 잡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책의 스토리 속에 신의 물방울에 대한 암시와 힌트가 나오니까요.   참고로 신의 물방울은 본인의 취향 보다는 만화의 캐릭터에 맞추어 만들어 진 신의 물방울 입니다.   이 와인은 마니아라면 한번쯤 들어봄 직한 와인입니다. 

 

필자 : 이태리 와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기 : 수퍼토스카나 와인의 경우 등급에 상관없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이태리의 와인들은 바로 따서 마시는 파티용 와인들이 많은 듯 합니다.  숙성해서 마시는 와인들은 오히려 수퍼토스카나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프랑스의 기술을 모방한다고 해서 프랑스 와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기술과 개성을 찾기는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프랑스의 와인들은 보다 폭넓고 다양한 스타일을 만들고 10년 숙성되었을 때와 20년 숙성되었을 때 표현하는 맛과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샤또마고의 경우 와인을 만들 때 50년 이후의 와인 맛을 미리 예상하고 만듭니다.  또한 그에 따라 와인의 가격도 달라지죠.  와인 메이커는 분명히 와인을 만들 때 그 맛의 변천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죠.  이태리의 와인들은 바로 마시기 좋은 와인들을 만들기에 그 출발점부터 다릅니다.  이태리 와인을 숙성하여 마셨을 때 달라지는 느낌이 별로 없었습니다. 

미국이나 신세계의 경우 또한 금방 마시는 와인들을 만들어 냅니다.  1990년산 도미너스(Dominus)는 작년에 맛 보았는데 1983년산 프랑스의 샤또 라스까즈가 생각 나더군요.  분명 캘리포니아의 와인들은 숙성이 빠르다고 생각됩니다.  칠레의 와인은 3000 엔 이하의 와인을 구매했을 때 가장 잘 샀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알마비바는 사실 샤또 몽페라와 비교했을 때 저는 몽페라가 더욱 맛있다고 느꼈습니다.  알마비바는 분명히 가격이 3배 이상 비쌌는데도 말이죠.   저는 고가의 칠레와인인 경우 가격대비 품질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번은 일본의 와인전문가들과 함께 2001 년산 샤또 몽페라와 2000년산 미국의 오퍼스 원을 가지고 비교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한 적이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들은 샤또 몽페라를 선택했습니다. 

가끔 미국산 와인에서 훌륭한 쉬라를 만난 적도 있었습니다.  Torbreak 이라는 와인이었습니다. 

 

필자 :  현재 집필중인 다른 작품도 있습니까 ?

아기: 지금은 Night in the Area 라는 만화책을 쓰고 있습니다.  와인과는 상관없는 내용입니다.

 

<이상>

 

인터뷰를 시작할 때의 딱딱한 모습은 어느덧 사라지고 점심시간 인터뷰로 인해 와인도 마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마치 와인을 마신 사람들처럼 웃음과 와인의 훈훈한 향기로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예기치 않게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말한다.  저의 작업실이자 우리 집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모습을 찍도록 허락하겠습니다.  , 죄송하지만 저의 뒷모습만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의 뒤를 따라 약 5-10분 정도 가니 일본의 어느 조그마한 집과는 전혀 다른 조그만 정원이 있는 유럽풍의 단독주택으로 안내했다.  목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바로 오른쪽으로 꽤 큼직한 작업실이 열렸다.  중간 책상을 기점으로 주변은 책들로 가득하다.  2층으로 연결되는 한쪽 벽면 전체는 모두 만화책이었다.  잡지사 의 편집장으로 있다가 약 10년 전부터 책과 만화의 작가로 활동하였는데 본인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작품들을 써냈다는 것이다.  그리곤 그는 지하로 안내 했다.  평소 사람들과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가족들과 어울리기도 하는 장소라고 한다.  마치 와인셀러가 연상되는 나무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루바닥이 벽면 따라 모래 위 조개가 바닷가를 연상한다. 그 위에는 두꺼운 유리로 마감되어 걸을 수 있게 했다.  작가가 중요시하는 와인의 떼루아(Terrior)가 느껴졌다.  책상 위에는 돌과 조개들이 여기저기 장식되어 있고 한쪽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져 있다.  홈시어터의 역할도 한다는 이 방의 천장에는 커다란 빔이 설치되어 흰 벽을 겨냥하고 있다.  방의 한쪽 구석 또 다른 나무문을 열어보니 와인들로 가득 찬 조그마한 와인 전용 셀러 룸이 나온다.  그 속에는 본인이 아주 아끼는 와인들이 있다는 것.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
독자 분들에게 있어서, 신의 물방울이 와인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저(작가)에게 그 이상의 명예는 없을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신의 물방울에 등장하는 와인을 실제로 꼭 드셔 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작품 중에 등장하는 와인들은 그 모두가 틀림없는, 훌륭한 와인들로 그야말로 작품 이랄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책에서 소개된 와인이 갑작스런 인기로 가격이 올라 가게 되는 경우를 보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 가격대라면 분명 더욱 좋은 와인들이 주변에 많을 것입니다. 

 

한동안 우리는 와인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버트 파커의 와인 평가에 대한 그의 의견이라든가 혹은 자신을 놀라게 했던 어느 부르고뉴의 와인이야기, 이태리와 신세계 와인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밤새도록 이야기를 해도 끝이 없을 것 같았다.   

 

다음에는 꼭 와인을 함께 마시며 이야기 나눕시다.”

함께 와인을 마시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그는 셀러에서, 책 속에 이미 소개되었던 그러나 이젠 모두 품절이 되었다는, 와인을 선물로 건네 주었다.  그것은 프랑스 론(Rhone) 지방의 묵직하지만 소박한 와인으로 스테이크와 잘 어울린다는 샤또 생콤(Chateau Saint Cosme) 이었다.

 

분명 와인 속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와인 이야기 만으로도 우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는 와인을 마시면서 와인 속에 숨어있는 많은 영상들을 떠올리고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땀을 흘린 농부의 노력과 열정이 묻어난 와인메이커의 철학을 읽었던 것이다. 


와인은 마치 사람과도 같다.  똑 같은 포도를 가지고 만든 와인에는 다양한 스타일을 표현한다.  아름답고 우수에 젖은 여인의 눈망울을 연상하게도 하고 시골의 어느 안개 낀 숲 속을 거닐기도 한다.  풍요로움과 낭만이 넘쳐나는 이 가을, 한국의 어느 조그마한 시골에서도 지금쯤 까맣게 익은 포도가 와인으로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최성순 -와인21닷컴

 

 

 

작가의 소장 와인들
 

작가의 집이자 작업실
 
 
 
좋은 글 이라 데리고 왔습니다(win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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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10-04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을산님, 토미네 잇세를 B군 생각하고 그렸답니다. ^^

BRINY 2006-10-04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 좋다...

사마천 2006-10-05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이네요, 저도 관심이 많은 작가인데 갑자기 배용준이 등장해서 놀랍습니다 ^^

호랑녀 2006-10-09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만화는 잘 모르지만 이 만화책은 소장!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올댓와인보다 훨씬 좋더군요.
 
 전출처 : 뉴튼의 사과님의 "엄청나게 지루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산만한"

시각적으로 독특하고, ( 사진이 삽입된 것이 신기한건 아니지만, 마지막의 사진들은 꽤나 감동적이었어요) 2차대전과 9.11의 현재,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겹침을 따라가는 것이 혼란스러웠다는건 인정해요. 하지만, 결말로 가면서, 그 모든 것들의 이면이 보이게 되는 것은 얼마나 멋졌는데요. ^^ 마르께스의 '백년동안의 고독'을 보면 지루하고, 그 이름 똑같은 대대손손들에 식겁하게 되지만, 마지막 열장으로 그 소설은 '소설이란 장르의 존재이유' 가 되지 않았을까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의 나열이 몹시도 짜증나는 경우가 있지만, 이 책의 경우에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맞아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숨쉬는 시간에 이런 작가가 있어줘서 정말 운이 좋다. 라고 생각했어요. 개인 취향이 있는 것이니, 다만, 반만 읽고 접으셨다면, 끝까지 읽어보시면 어떤 감상하실지 궁금합니다. 마르께스까지 가져다 붙였으니, 제가 너무 큰 장담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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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나귀님 > 도대체 누가 찰리 채플린을 모독하는가?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마빡이" 코너를 봤다. 제3회째인가, 딱 한 번 본 것만으로 그 코너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그 코너는 "박준형 표" 비아냥 개그에 "옥동자 표" 혐오 개그를 뒤범벅한 것이 분명해 보이니, 적어도 여기서 말하려는 찰리 채플린과의 비교를 위해서는 그 한 번의 시청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TV도 없는 내가 굳이 "마빡이" 코너를 봐야 했던 이유는 이 코너가 "뜨고" 나서 인터넷 뉴스에 "슬랩스틱의 부활"이니 "찰리 채플린을 연상시킨다"는 표현이 수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찰리 채플린의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선 좀 의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무리 옥동자가 뛰어난 "연기"를 했다손 치더라도 설마 채플린에 버금가랴 하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옥동자라는 친구, (물론 본명은 따로 있지만, 그 캐릭터 이름으로 더 유명하니, 여기서는 옥동자로 통일) 분명히 성대묘사 쪽에 있어서는 탁월한 면이 없지 않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친애하는~ 온곡~ 초등학교~ " 어쩌구 하는 그의 어린 시절 교장선생 훈화말씀 흉내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적어도 나로선 성대묘사를 제외한 그의 "실력"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고, 특히 그가 그 "잘난 얼굴"을 들이밀며 혐오감에 바탕한 헛웃음을 유도할 때에는 정말이지 짜증이 팍팍 솟구친다. 그는 물론 잘 생긴 얼굴이 아니다. 따라서 그런 얼굴을 바탕으로 하여 웃음을 자아내려면 어디까지나 "못 생긴 사람이 잘 생긴 척" 하는 아이러니에 근거를 두어야지, 처음부터 끝까지 "못 생긴 얼굴"을 무작정 화면에 들이밀고 자학하듯 강조하는 것은 곤란하다. 아이러니는 가능하다. 그러나 자학은 곤란하다. 옥동자의 한계이자 문제는 아이러니와 자학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이것이야말로 지나치게 말초적, 노골적이 되어가는 오늘날 코미디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물론 옥동자의 얼굴을 "못 생겼다"거나 "혐오스럽다"고 표현하자면, 그 부인에게 크나큰 모욕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그의 얼굴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솔직히 TV에 나오는 그의 얼굴은 고의적으로 "망가트린" 얼굴에 가깝기 때문이다. 옥동자도 가만히 있을 때는 별 상관이 없다. 하지만, 클로즈업으로 잡힐 때의 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거나, 입을 헤 벌리고 바보처럼 웃음을 짓거나 하는 "억지" 얼굴이다. 따라서 그런 얼굴은 "못 생겼다"거나 "혐오스럽다"고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나나 다른 시청자들이 편견을 가져서가 아니라, 옥동자 자신이 그런 얼굴을 의도하기 때문이다. 본인의 생각엔 그게 "우스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리라.)

더 큰 문제는 이른바 "말빨 개그"가 주류인 오늘날에는 마빡이처럼 "신체 개그"가 마치 "슬랩스틱"의 대명사인 것처럼 오해된다는 것이다. 물론 슬랩스틱, 쉽게 말해서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코미디가 최대한 몸을 사용하는 연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진정한 슬랩스틱은 마빡이가 펼치는 "자학" 개그와는 다르다. 나아가 옥동자는 채플린에 버금갈 수조차 없고 채플린에 감히 비교조차 될 수 없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채플린도 최대한 몸을 사용하는 코미디를 한다. 그의 영화를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고,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엎어지고, 맞고, 때리고, 구르는 등의 액션의 연속이다. 하지만 채플린의 코미디에서는 마빡이처럼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때리거나 강조함으로써 관객들의 억지 웃음을 이끌어내는 장면은 없다. 채플린의 코미디에 나오는 슬랩스틱은 고도로 계산된, 철저하게 의도된 연기다. 채플린 자신만 해도 코미디언이기 이전에 춤과 음악에 능숙한 만능 연예인이었다. 따라서 그가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는 연기는 그 부드러운 동작만 보면 거의 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채플린의 진정한 계승자는 (적어도 우리 주위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쪽으로는) 마빡이나 다른 "혐오성" 주무기를 사용하는 코미디언보다는 오히려 성룡이라고 할 수 있다. 쿵푸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성룡의 슬랩스틱은 채플린보다는 한층 과격하고 드라마틱한 면이 강조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철저히 계산된 춤 동작에 가깝다. 성룡 자신도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의 연기를 자주 참조하고, 또한 종종 "차용"한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나라 코미디에서 가장 채플린과 비슷한 슬랩스틱을 한 사람은 일단 심형래가 아닐까 싶다. 심형래는 바보 연기로 유명하고 늘 "맞는" 역할을 맡았음, 또한 갖가지 유행어를 남겨 이른바 "말빨 개그"의 선구자로 인식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그의 코미디 연기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슬랩스틱이었다고 본다. 즉 바보(심형래)와 똑똑이(임하룡)이라는 두 가지 대립항을 주연으로 삼거나, 바보(심형래)와 정상인(그 외의 여러 조연들)을 한꺼번에 등장시켜 그 가운데서 바보의 우둔함을 강조하는 식이다. 결코 바보가 그 자체로 바보스러움을 나타내는 경우는 없다.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혹은 똑같은 상황에서 혼자서만 별난 짓을 하기 때문에 바보스러운 것이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아이러니가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다. 심형래와는 약간 종류가 다르지만, 신체를 최대한 활용하고 철저하게 계산된 동작을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김병만의 "액션 개그"도 채플린과 비교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무술과 운동에 능숙한 사람이기 때문에, 수시로 넘어지고 엎어지고 하지만 그 동작은 하나하나 계산되었기 때문에 웃음 못지 않게 감탄을 자아낸다.

그렇다면 옥동자는 왜 웃기는 걸까? 일단은 그 혐오스러운 얼굴 때문에 웃기는 것이다. 가령 마빡이 이전에 옥동자가 나섰던 또 하나의 "혐오 개그"인 "사랑의 가족"을 보자. 지극히 못 생긴 두 사람에다가 박준형 (역시 미남은 아니다) 세 사람이 최대한 각자의 우스꽝스런 얼굴을 강조해 주는 표정과 분장으로 클로즈업 된다. 세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자신들의 "외모"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고, 그 와중에 자신들조차도 서로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키득거리고, 웃음을 참기 위해 얼굴이 새빨개지는 모습이 더더욱 우스움과 안쓰러움을 자아내며 시청자들을 포복절도하게 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습긴 우습다. 하지만 그 웃음은 긍정적인 웃음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웃음이다. 속 시원한 웃음이라기보다는 안쓰러운 웃음이다. 정말 재미있어서 웃는 웃음이 아니라, 웃지 않을 수 없어 웃는 웃음이다. 내 생각에는 이른바 "박준형 표" 개그가 다 그런 식이다. "우비 삼남매"를 비롯해서 박준형이 다양한 코너에서 시도하는 개그는 십중팔구 우상파괴적인 개그이고, 패러디 개그이다. "마빡이"를 박준형 표 개그라고 할 수 있는 까닭은, 옥동자나 다른 출연자들이 그야말로 "단순무식"한 마빡 때리기를 계속하고 있을 때, 박준형은 그걸 보며 좋아하는 시청자들이나 관객을 그야말로 우롱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힘이 빠져 헉헉대는 마빡이를 향해 "야, 담당 피디가 너 이걸로 추석특집 한 시간짜리 준비하래"라고 비아냥대는 것이나, 혹은 마빡이가 "TV에 나오는 건 5분이지만, 이거 찍을 때는 10분더 넘게 이짓 한단 말이야!" 하고 투덜대는 것 모두가 기존의 코미디/개그/방송 등등에 대한 과격한 야유를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준형 표" 개그는 사실 지금까지의 방송사상 가장 특이하고 전복적인 개그인 동시에, 그 자체의 웃음보다는 기존의 질서를 패러디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가장 독창성이 약한 개그이기도 하다. 옥동자의 개그에 대해서는 그의 주특기인 "성대묘사" 말고는 언뜻 생각나는 것이 없다. 보통 그의 "주무기"는 얼굴이지만, 사실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훌륭한 무기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선배격인 정부미, 배영만, 한무, 이주일을 보라. 처음에는 충격을 주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청자들이 그 외모에 익숙해지면서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이주일의 경우, 말년에 이르러 사업가로 성공하고 중절모에 수염까지 기르고 안경을 쓰고 나오면서부터는 그야말로 "멋진 노신사"로 인식되었음을 보라.) 사실 나는 이주일 이후로부터 죽 이어진 "외모"로 승부하는 코미디야말로 "이주일의 저주"라고 본다. 물론 이주일은 TV 시대의 첫 수퍼스타인 동시에, 악극단 시대의 마지막 수퍼스타이기도 한 과도기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주일 이후에 코미디의 주류가 "연기"보다는 "외모"로 확 기울었음은 사실이다. 사실 그 이전에만 해도 (그리고 이주일이 나오고도 한동안은) 코미디의 중심은 "아이러니"였다. 어떤 정상적인 상황을 전제한 다음에 곧이어 삐딱한 상황을 보여주며, 그 차이를 강조함으로써 웃음을 이끌어낸 것이었다. <웃으면 복이 와요> 같은 프로그램은 아예 "코믹 드라마"에 가까웠고, 그 핵심 역시 "오해"로부터 비롯된 아이러니라는 전통적인 희극의 핵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외모와 연기력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경우도 없지 않아서, 내 경우에는 블랑카란 이름으로 나온 코미디언에 대해 많이 기대를 했지만, 소재 고갈인지 아니면 중소기업 사장들의 항의 때문인지 나중에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를 거의 "원시인" 취급하는 수준으로 떨어져서 그만큼 크게 실망했다. 아무리 오해와 압력이 있더라도, 그 캐릭터를 잘만 살려서 보다 풍자적인 기세로 밀어붙였다면 꽤나 공감이 갔을 텐데, 참으로 아쉽다.(적어도 우리나라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앞으로 더 늘어나면 늘어나지, 결코 줄어들진 않을 것 아닌가.)

결론을 말하자면, 지금 나오는 마빡이의 연기는 자학이지 결코 슬랩스틱이 아니다. 그리고 옥동자는 감히 채플린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거야말로 "채플린에 대한 모독"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옥동자가 정말로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요즘 사람들이 "채플린을 몰라서" 그런 것일 뿐이다. 채플린의 영화를 단 한 편이라도 똑똑히 본 사람이라면, 결코 그런 식의 무식한 발언은 하지 못할 것이다. <키드>나 <시티 라이트>를 보라. <독재자>나 <모던 타임스>를 보라. 아니면 채플린이 떠돌이 분장을 지우고 맨 얼굴로 출연한 <뉴욕의 왕>이나 <무슈 베르두>를 보라. 과연 그 어디서 옥동자와 같은 혐오 개그, 철저하게 계산된 동작이 아니라 그저 단순하게 자기 신체를 학대하면서 관객의 억지 웃음을 자아낸단 말인가? 채플린은 단순히 코미디언이 아니라, 위대한 배우이며 영화감독이다. 반면 옥동자는 기껏해야 혐오스럽게 생긴 자기 얼굴을 들이밀며 억지 웃음을 강요하는 실력 없는 개그맨에 불과하다. 그러니 뭘 모르는 사람들이여, 제발 옥동자의 개그를 평가한답시고 멀쩡한 채플린까지 바보로 만들지 말라. 그거야말로 자신의 무식을 자랑하는 행위이니까.

 

*** 한편으로는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 같은 "슬랩스틱"을 무조건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치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다면 영화 <베니와 준>에서 자니 뎁이 보여준 연기를 한 번 보라고 해주고 싶다. 이 영화에서 자니 뎁은 버스터 키튼의 광팬 (맨 첫 장면에서부터 기차에서 키튼의 전기를 읽고 있다) 으로 등장해서, 곳곳에서 채플린과 키튼의 연기를 모방(가령 줄리언 무어가 일하는 식당에서 포크에 롤빵을 찍어 다리를 만들어 춤추는 장면은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에 나오는 장면의 모방이다.)하고 있는데, 최소한 이것을 보고 "뛰어난 연기"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원본이라 할 수 있는 채플린과 키튼의 연기가 뛰어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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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水巖 > 프랑스 사진전 2편


사진의 종주국 … 눈길 끄는 프랑스 사진전 2편 [중앙일보]
예술가들의 일상
끌레그가 잡은 피카소·달리·장 꼭도
눈에 익은 명장면
브레송·호니 등이 찍은 20세기 걸작들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요즘 국내 미술계에 프랑스의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전시가 속속 기획되고 있다. 사진도 예외는 아니다. 사진이라는 장르가 처음 생겨났고, 이후 걸출한 사진작가를 배출한 사진 종주국 프랑스를 느낄 수 있는 전시 두 편이 나란히 문을 연다.


아기를 품에 안고는 해맑은 미소를 짓는 파블로 피카소, 기타 연주를 들으며 알 듯 모를 듯 장난스런 표정을 짓는 살바도르 달리…. 20세기 예술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이들의 평범한 일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피카소.달리.장 꼭도 인물사진전'(28일부터 10월 24일까지.김영섭사진화랑.02-733-6331)은 프랑스의 유명 사진작가 루시앙 끌레그의 렌즈에 비친 이들의 모습을 담은 전시다. 끌레그는 아를르국제사진축제를 세운 장본인으로 주로 누드사진 작업을 해온 작가다.

이번 전시는 특이하게도 그가 친하게 지냈던 예술가인 피카소, 달리, 장 꼭도 세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며 촬영한 작품들이다. 이들은 모두 예술이라는 끈으로 연결됐다. 끌레그는 피카소와 40년간 우정을 나눴다. 피카소는 끌레그를 더 큰 무대로 진출하도록 힘을 북돋아주었고, 아방가르드 시인인 장 꼭도와 만남을 주선해 몇몇 작업에서 협업을 하기도 했다. 30여 점의 사진 속에서 자화상을 그리는 장 꼭도, 퍼포먼스를 벌이며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달리를 보다 보면 어느새 인간미 넘치는 예술가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사진전문갤러리인 갤러리 뤼미에르가 선보이는 '프랑스 사진명작 전'(10월 29일까지.02-517-2134)은 프랑스에서 한창 사진으로 주가가 올랐던 1900년대 초반부터 1950년대까지의 작품들이다. 작품 모두 갤러리 뤼미에르의 소장품들이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윌리 호니.만 레이.유진 아제 등 이름만 들어도-아니 이름은 모르더라도 작품은 눈에 익은- 친숙한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와인병을 끼고 걸어가는 소년(브레송), 바게뜨 빵을 옆구리에 끼고 행복한 웃음을 짓는 아이(윌리 호니) 등 가족과 이웃의 일상이 잔잔하게 담겨 있다. 유진 아제는 텅 빈 파리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준다. 1930년대 파리가 도시 전체를 리노베이션 하면서 시민이 모두 도시를 떠난 후 건물만 덩그러니 남은 파리는 생경한 느낌을 준다.

이외에도 기록상 한점만 남아있다는 윌리 호니의 '와인재배자, 지롱드'(웨이트리스가 와인을 따라주는 장면 사진)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 작품은 현재 9000만원을 호가한다고 한다.

박지영 기자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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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6-09-27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뤼미에르에서하는 사진전 자세한 소개, 제 서재에 다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