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 (양장) 소설Y
천선란 지음 / 창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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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미스터리를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에 판타지와 SF가 곁들여진 소설이다. 읽으면서, 청소년 소설이라기에는 스토리가 깊고, 메인 캐릭터들이 어른은 아니어서, 한국에서 보기 힘든 YA 소설 정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YA 시리즈로 나오는 책들이다. 궁금했던 스노볼도 이 시리즈이고. 영미권에는 YA 시장이 큰데, 우리나라에는 딱히 없는 카테고리라 어떤건지 감이 잘 안 잡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 스포일러 포함* 


식물의 말을 듣는 나인, 앞으로 밖에 가지 못하는 나인. 그래서 마지막으로 살아 남은 새싹이 되어 기어코 꽃을 피우고, 강한 힘을 지니고, 타인을 돕고, 살리려는 존재가 되었다. 나인을 키우는 조금 특이한 이모, 지이모라고 부르다가 지모로 줄여서 지모라고 부른다. 지모는 모두가 외면하던 죽은 땅을 사서 화원을 만들어 죽지 않는 식물들을 키워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른척, 양심에 눈 감을 때, 지모는 절대 눈 감지 않는다. 외곽 도로에 쓰레기 몰래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신고하고, 특수 학교 설립에 찬성한다. 사람들이 욕을 하고, 험담의 대상이 되어도 지모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들에게는 말해도 소용 없으니 대응하기보다 묵묵히 싸워 가는 쪽을 택한다. 


" 모두가 동의해야 하는 안건에 굽히지 않고 표를 던져 매해 안건이 다시 올라오게 만드는 식으로. 그렇게 해야 결국 이긴다. 소수가 다수를 이기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겹고, 지긋지긋하고, 진절머리 나게 구는 것이라고. 그게 지모가 살아오며 깨달은 중요한 이치 중 하나였다. " 


나인에게는 현재와 미래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다. 숨기는 것 없이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던 그들에게, 나인에게도 현재와 미래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비밀이 생긴다. 그들은 각각 말하기를 망설이지만, 말하기를 망설이는 비밀이 있다는 것까지 알고, 상대방이 안다는 것도 알고, 기다리고 있고, 말할 용기를 끌어내고 타이밍을 재고 있다.


외계인을 만났다고 말하며, 외계인을 찾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박원우라는 선배가 실종된지 2년, 그 아버지는 전단지를 들고 다니며, 아무도 보지 않는 곳까지 전단지를 붙이고 다닌다. 나인은 이곳에는 사람도 없고, 아무도 안 본다고 이야기해주고, 화원에서 손님들에게 나눠주겠다고, 괜찮다면, 식물 포장에도 써서 사람들이 더 많이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한다. 


나인이 자신의 비밀을 친구들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하고, 자신의 동족이자 자신에게 종족의 비밀을 알려준 승택에게 이야기하자, 승택은 "네가 관여하지 않아도 언젠가 다 저절로 밝혀지게 되어 있어." 말하며, 그냥 넘어가자고 한다. 나인은 그럴 수 없다. 


"내가 내 정체도 모르고 사는 바보 천치라는 거 알았어도 그냥 어련히 언젠가 알게 되겠지. 하고 모르는 체할 수 있었어.근데 너도 안 그랬잖아. 너도 굳이 나한테 찾아와서 내가 외계인이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했잖아. 우리가 멸종할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것만 멸종일 수 있니?" 


"저 선배는 세상에 딱 저 선배 하난데 사라졌잖아." 


선배를 위해서, 선배 아버지를 위해서, 사람 한 명이 지구에서 멸종했는데, 어떻게 모르는 척 하냐고 외친다. 


이 소설에서 악당은 누굴까. 

박원우의 친구 권도현. 권도현이 사귄 나쁜 친구 김준호, 권도현을 학교에서 무소불위로 만든 구에서 가장 큰 교회의 목사이자 대대로 학교 이사진에 속해 있는 아버지, 학원입시계의 거물이자 학원 원장인 어머니. 비리 경찰. 


나인과 친구들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안 된다면, 뼈라도 아버지에게 돌려보내기 위해 각자 할 일을 의논하고, 해낸다. 


식물 외계인이라서 식물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식물에 관한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진다. 가장 약한 존재인 것 같고, 가장 강한 존재인 것 같다. 

   

잘 쓰여진 소설을 읽고, 좋은 주인공들을 만났다.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이런 생각, 이런 이야기, 한 번쯤 하는 것들로 이렇게 멋진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구나. 


+++++


" 뒤틀린 어른이 뒤틀린 아이를 만들고, 그 아이가 자라 뒤틀린 어른이 되어 다시 뒤틀린 아이를 만드는 세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온전한 어른이 사라진 세상이 되기 전에, 상처와 슬픔이 무기가 되어 또 다른 출혈을 일으키는 세상으로 향하지 않도록, 그런 마음으로 썼다.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때,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할 때 우리가 종족이 다른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편한해졌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사람을 유심히 관찰하는 누군가를 보면 외계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신호등 초록불이 삼 초 정도 남았는데 뛰지 않고 걸음을 멈추는 사람을 볼 때도, 길가게 핀 꽃을 찍기 위에 기꺼이 땅에 누워 버리는 사람을 볼 때도, 아이와 강아지에게 친절한 사람을 볼 대도. 너무도 당연했던 선의를 잃은 인간들 속에서 그 원초적인 힘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팔 년 전 한적한 공원 벤치에 앉아 목 놓아 울다 문득 나무와 들풀이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울음을 들었을까 고민도 했다. 이 이야기는 아마도 그날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 작가의 말 - 

내가 너희 집에 찾아갈 때마다 문틈으로 지켜보고 있는 네 눈을 봤거든. 너는 꼭 문에 결계라도 쳐 있는 것처럼 나오지를 않더라고. 나올 수 있는데도 단 ㅎ나 번도 그러지를 않았어. 네가 정말 네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너는 네 아버지가 만든 결계를 언제든 깰 수 있는 아이가 되었어야 해. 그러면 아버지가 만든 결계를 하나씩 깨며 세상 밖으로 나아갔겠지. 너는 아버지가 무서웠던 거야. 말 잘 듣는 착한 아이는 더 크게 자랄 수 없거든." - P338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 흙을 뚫고 올라와 전부 견디며 버티는 거잖아. 저렇게 강한 생명이 어디 있어. 나는 말이야. 사람보다 저 조용히 자라는 식물들이 더 강하다고 생각해."
"할머니."
"응?"
"쟤네도 할머니가 좋은가 봐요." 시끄럽게 떠든다. 할머니가 말을 할 때마다 맞장구를 치듯이.
"식물도 주인을 좋아해요."
할머니가 나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다 살포시 웃음을 터뜨렸다. - P381

나인은 아이들과 만나기로 한 선연산 초입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할머니가 했던 말을 곱씹었다. 버티고 사는 건 전부 강한 것이다. 권 목사가 제아무리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고 해도 끝까지 버티면 이길 수 있으리라. - P382

이 꽃이 처음 싹을 틔웠을 때는 이 세상이 지구였는지도 몰랐을 거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일단 있는 힘껏 세상 밖으로 나와 봤겠지. 물을 머금지 못하는 흙과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시선과 앞으로 겪어야 할 많은 시련이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다른 씨앗들처럼 일찍이 삶을 포기했을텐데. 땅에 있을 때부터 나인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밖에 하지 못해 기어코 세상에 나왔다. 그렇지만 나인은 후회하지 않는다. 이 행성이 자신의 행성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외롭지 않다. 후회한다고 해서 다시 땅속으로 기어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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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전집 5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 에코리브르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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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아침을 열며 기분좋게 시끄럽던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벚꽃이며 개나리며 봄꽃이 만발한데 꿀벌이 보이지 않는다. 수억마리의 꿀벌이 죽은 봄이다. 꽃이 사라지고 먹을 것이 사라지고 인간의 차례가 다가온다. 환경은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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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4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 루틴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했지만, 영상으로는 처음 찍어봅니다.

1. 독서 준비물 : 독서대, 포스트잇, 타이머, 우드북마크, 연필
2. 독서 기구 : 킨들, 크레마, 아이패드로 전자책, 밀리의 서재 구독
3. 매일 같이 읽기 : 북피티, 섀도잉, SOW
4. 독후활동 : 북적북적, 북마인드맵, 도서관 십진분류, 포도알

** 올리고보니, 도서관 이야기와 매 주 하는 버지니아 울프 낭독회 이야기가 빠져서 아쉽지만요, 울프와 울프 낭독회 이야기 이야기도 언젠가 올리도록 해보겠어요.


도서관 책, 신청 영상도 언제 한 번 찍어보고 싶습니다.
이번 달 알라디너 TV 챌린지 주제 재미있었습니다. 독서루틴!

다음 달 주제도, 이거 내 주제! 싶은 주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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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4-10 2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하이드님 독후활동을 보고 놀랐습니다.
와아...정말 열심히 읽으시고, 열심히 기록하시는군요. 어젠 미미님 책 읽으시는 영상을 보면서도 와~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하이드님의 영상이!!!^^
리뷰나 페이퍼를 읽는 것과는 영상으로 듣는 책 이야기와 타인의 독서 루틴 이야기는 정말 새롭고 더 자극적으로 다가옵니다.
많은 자극이 되었어요^^
특히 포도알 스티커!!ㅋㅋㅋ
예전에 조성진 피아니스트도 어린 시절 동네 피아노 학원에서 포도알 스티커 붙이면서 연습했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저도 애들 어릴 때 나무 한 그루 그려서 이파리 한 장씩 색칠해준 기억이 떠오릅니다ㅋㅋ
아..저도 그거 다시 해보고 싶네요^^
여러가지 다양한 독서루틴 이야기 또 기대하겠습니다^^

하이드 2022-04-10 22:18   좋아요 1 | URL
은근 재미있습니다. 포도알 스티커. ㅎㅎ 4월 포도 얼른 다 채우고 싶어요. 읽을 책들이 늘 쌓여 있어서 부지런히 많이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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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단편들은 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씨앗같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하며, 지금 이 곳과 책 속에 나오는 언젠가의 어딘가를 함께 상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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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찾아드립니다 - 루틴을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사는 법
애슐리 윌런스 지음, 안진이 옮김 / 세계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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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Time Smart : How to Reclaim your time and live a happier life 

'당신의 시간을 되찾고 행복한 삶을 살아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는데, 왜 번역 부제를 '루틴을 벗어나, 나만의 속도로 사는 법'이라고 했는지 모를 일이다. 루틴에 대한 이야기가 거의 없긴 하지만, 루틴을 가지라는 이야기는 나오지만, 루틴에서 벗어나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안 나오는데 말이다. 나만의 속도라는 것도 책 내용과는 관계 없는 좋은 아무말 같다.


번역본 부제는 긴가민가 하지만, 책의 내용만은 지금 필요한 내용들이다. 저자는 시간을 연구하는 자칭 "괴짜" 교수로 시간에 관한 각종 연구로 데이터들을 쌓아가고 있다. 시간이냐, 돈이냐의 문제는 새로운 문제는 아니다. 이 책과 저자의 연구가 새로운 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시간이냐, 돈이냐' 의 문제에서 늘 돈의 손을 들어줬는데, '시간'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피력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냐 돈이냐에서 사회의 답이 '돈'이기도 하고,  나는 시간을 선택했다고 하는 사람들 마저도 사회적 공감대가 '돈'이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늘 '시간'을 선택해왔는데, 내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했던 전략들이 이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사회의 발전은 '시간'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가야할 것 같은데, 이것만은 그렇게 역류하듯이 온 사회의 노력이 필요하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자칫하면 거꾸로 가서, 주 120시간 일하기 같은 쌉소리가 나오게 된다. 


워라밸을 중요시하자는 것은 일과 삶의 밸런스 정도가 아니라 제발 죽지 않고, 사는 것만이라도 제대로 살게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고, 미라클모닝 같은 것은 잠 잘 시간도 없이 일하는 이들에게 사치와도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이 책 6장 제목처럼 '시간 빈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바꾸어야 할 것이 있긴 하다. 시간 빈곤은 우리가 가진 시간과 우리가 필요로 하는 시간의 불일치에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시간 빈곤은 시간에 관한 우리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에서 온다. 


돈 중심에서 시간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이해해야 한다. 

시간과 돈에 관해 연구하면서 발견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시간이 가장 귀중하고 유한한 자원이라는 것을 잘 모른다." 는 것이라고 한다. 


시간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더 친사회적 prosocial 이라고 한다. 친사회적이라는 것은 남들을 이롭게 하는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하는데, 당연하다. 시간의 여유가 있어야 더 이타적이 되고, 여유가 생긴다. 돈도 마찬가지지 않느냐고 한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간은 유한하고, 돈에 대한 욕심은 무한해서 이미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도 더 벌려고 한다. 시간에 우선순위를 두지 못하고, 직업적 성공에 집중하며, 재산을 불리거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시간을 포기한다. 가장 귀중한 시간을. 


'시간이 돈이다' 라고들 말하는데, 건강과 행복을 위해 이 고정관념을 뒤집어 '돈이 시간이다' 는 진리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시간 풍요는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시간 풍요는 다양한 경제적 계층의 사람들에게 두루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시간 빈곤을 겪는 사람들은 덜 행복하고, 생산성이 떨어지고,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는다. 그들은 운동을 적게 하고, 살이 찌는 음식을 먹고, 심혈관계 질환에 더 많이 걸린다. 시간 빈곤은 타협을 강요한다. 우리는 영양가 풍부한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대신 길모퉁이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하나를 사온다. 그러고는 TV를 바라보며 별생각 없이 음식을 먹는다.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기 위해 시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하려고 애쓰다 보면 가만히 앉아서 소금, 지방, 설탕으로 얼룩진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개념은 '시간 부스러기 time confetti' 라는 용어였다. 타임 푸어가 되는 여섯 가지 이유 중에 타임트랩, 스마트 기기의 역설에 나오는 개념이다. "시간 부스러기란 비생산적인 멀티태스킹을 하면서 잃어버리는 몇 초와 몇 분을 가리킨다. " 하나씩 떼어 놓고 보면 심각한 문제로 보이지 않지만, 작은 부스러기들은 모으면 커질 뿐더러, 작은 부스러기 주변의 시간을 오염시킨다. 주로 스마트폰 알람이지만, 이 외에도 회사에서, 집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이 시간 부스러기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부스러기로 변할 때, 우리는 시간 빈곤을 실제보다 크게 느낀다. 


타임푸어가 되는 또 다른 이유들 중 하나로 '돈에 대한 집착'이 있다. 


" 돈을 더 버는 것에 집착하는 사회는 시간 풍요에 도달하려면 부유해져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든 돈을 모으면 미래에 행복을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중에 여가시간을 더 가지기 위해 지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더 벌어야해.' 이것은 잘못된 해결책이다. 머지않아 알게 되겠지만 올바른 해결책과는 정반대로 접근한 것이다. 돈벌이에 집중하는 것은 덫에 걸려드는 것과 같다. 돈벌이에 집중하면 돈에 대한 집착만 강해질 뿐이다." 


점점 확대되는 경제적 불안정 역시 일 지상주의의 원인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 이후로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이 급격히 커졌고, 사회가 불평등해지면 사람들은 자신의 현재 지위와 무관하게 미래의 경제적 상황에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더 오래 일해서 돈을 더 벌려고 한다. 어린 시절에 경제적 불확실성을 경험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항상 돈에 집중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하다. 


"우리의 자아정체성이 일과 생산성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바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줄 때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느낀다. 바쁘면 자신이 꼭 필요한 사람이고 책임감 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고용주들은 '바쁨'에 보상해준다. 


좋아하지도 않고, 통제할 수도 없는 일에 매여 있는 것이 시간 빈곤의 주된 원인이고, 시간 풍요에 도달하는 가장 확실한 길은 기쁨을 주는 활동에 시간을 더 많이 쓰고, 불행한 활동에 시간을 덜 쓰는 것이다. 말은 쉬운데.. 여기에 대한 제안도 함께 한다. 


부정적인 시간을 전환한다. 나쁜 시간을 행복한 시간과 결합한다. 긍정적 시간을 늘린다. 노동 시간을 줄인다. 여가시간을 최적화한다. 등등 


시간 조달에 대한 예로 자전거가 두 번이나 나온다. 저자의 강의를 들은 캐머런은 저임금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이었고, 전략을 세운다. 새로운 아르바이트는 토요일마다 아침 6시부터 시작하고, 첫 월급으로 중고 사이트에 올라온 자전거를 구입했더니 통근시간이 확 줄었다. 그전에는 걸어갔는데, 이제 6분이면 일터에 도착. 그리고, 예약기능이 있는 커피머신을 사서 커피 머신이 토요일 새벽 4시 57분에 저절로 작동해서 커피를 추출하는 동안 몇 분 더 누워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예는 빗물보존기가 생겨서 물을 뜨러 가지 않아도 되고, 자전거가 생겨 멀리 있는 학교에 갈 수 있었던 인도의 소녀. 


잠든 휴면시간을 깨우기 위한 방법들을 이야기하는 중에 '최대주의자'와 '만족주의자'가 나온다. 


'최대주의자 maximizer '는 최대의 성과와 감정을 얻기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길 원하는 사람들이고, '만족주의자 Satisficers'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정 수준에 만족하는 사람들이다. 전자는 '가성비' 와도 닿아 있는 것 같다. 


시간은 공짜고, 돈은 아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디폴트인 경우가 많다. 여행지에서 실망스러울 때, '이게 돈이 얼만데' 와 같은 생각이 든다거나, 좀 더 기름을 싸게 넣기 위해 좀 더 먼 주유소에 가는 경우, 이 외에도 돈과 시간이 선택지에 오를 때, 이미 그 저울은 돈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돈을 선택하는 것이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인정받고, 반대의 선택은 어려워진다. 

여가시간의 금전적 가치를 생각할수록 그 여가의 즐거움은 감소하고, 청소 서비스에 돈을  투자할 때 돈의 가치는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돈으로 '시간'을 샀고, 그렇게 산 시간이 얼마나 좋은가에 집중하라는 것.  


인생의 시기마다 우선순위는 달라지고, 시간풍요도 시기별로 달라진다. 시간을 희생하고, 행복을 희생하더라도 돈을 더 벌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시간 빈곤 결정을 내리는 이유들 중 하나이다. 


10대에는 20대를 위해 시간과 행복을 희생하고, 미루고, 20대에는 3-40대를 위해, 3-40대는 은퇴후를 위해 계속 유예하고, 버틴다. 시간이 무한하기라도 한 것 처럼 말이다.  


"뭔가가 우리를 행복하게 하거나 목표의식을 준다면 그것을 붙잡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관심을 기울이고, 우리를 그것과 멀어지게 하는 방해를 차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살아 있는 존재로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끊임없이 방해를 받는 시대에 시간을 초 단위로 신중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시간은 쉽게 흘러가고 불행하게 흘러갈 것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시간 빈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를 이야기하고 있다. 기업, 조직, 정부는 모든 사람이 시간을 똑똑하게 사용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데, 이게 지금 시간 빈곤자들의 조직, 기업, 정부에 통하는 이야기인가 모르겠다.  


지금 나의 고민은 시간이 많고, 시간을 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쏟고 있는데, 시간이 있는만큼 일을 못하고 있어서 초조한 것이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시간과 돈 사이에서 시간에 중점을 두는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이야기이다. 나는 늘 시간이 중요했고, 시간이 없는 것이 돈 없는 것보다 훨씬 더 불행하게 느껴진 시간 중심형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 서서 시간을 중시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좀 더 걸음을 성큼성큼 옮겨 시간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 시간의 중요성이 잘 안 와닿는데, 돈이라고 생각하면 팍팍 와닿았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 돈이 시간이다. 자잘한 돈 안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다 아는데, 시간 부스러기 안 만드는 것의 중요성은 몰랐다. 나의 가장 큰 시간부스러기 제조기는 역시 스마트폰 제조기이고, 여러번 지웠던 핸드폰 시간 확인 앱을 다시 깔았다. 돈도 시간도 하루 아침에 그에 대한 가치관과 쓰임새가 바뀔 수 없다. 계속 노력하고, 시행착오 겪으며 나에게 맞는 최적을 찾아나가야 하는데, 그게 뭐든 '시간' 중심으로 생각할 것. 


시간이 지금 내게 더 중요한, 지금 시간을 더 잘 보내야 할 이유들이 많다. 열 다섯살의 신부전 3기 내 고양이도 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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