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처럼 생각하기 - 행동학에서 본 고양이 양육 대백과
팸 존슨 베넷 지음, 최세민 옮김, 신남식 감수 / 페티앙북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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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책들 나오면 대충 다 읽어보는 편인데, 딱 이거다 싶은 책들은 많지 않다. 이 책에서는 이런 점은 좋지. 정도? 

이 책 처음 나왔을 때 대충 목차만 훑어보고 말았는데, 이제야 제대로 읽어봤다.  아, 이거 나와 고양이들의 인생묘생 고양이 책이었다. 


사람들은 개와 고양이는 완전히 다르다고 한다. 개는 맹목적이고, 고양이는 독립적이라고. 개는 혼자 두면 우울증 걸리고, 고양이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에 반박해, 아니다, 고양이도 우울해 한다. 사람과 함께 있는 것 좋아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때의 만능대답인 '개묘차'가 있지요. 고양이마다 다르지요. 가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고양이를 숭배하고, 사랑하며 함께 살기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 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책에도 나온다. 고양이 보호자들에게 필요한건 딱 두가지라고. '사랑'과 '인내심'. 대부분의 보호자가 전자는 충분히 가지고 있지만, 후자는 부족하다고. 


개사람과 고양이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수의사들도 마찬가지이다. 동네 동물병원 원장님은 누가 봐도 개사람이고, 본인 스스로도 개파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양이 행동학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해주신다. 고양이도 병원에도 자주 가고, 밖에도 나가보고 해서 사회화되어야 한다고. 그 때는 개사람이라서 사회화에 관심 많구나. 정도로 생각했지만, 시간 지나면서 보니, '사회화'는 생명에 직결된 중요한 것이다. 


말로는 4개월령까지 부모묘, 형제묘들과 함께 자랐고, 나에게 왔다. 보통 2-3개월 정도면 데려오는데, 한 달이나 더 있다 데려온 셈이고, 페르시안의 성격이 느긋한 점도 있겠지만, 안정적인 새끼냥 시절을 보내서 별 탈 없이 건강하고 무난한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리처는 4개월령에 버려진건지, 구조된건지, 내가 다니는 동물병원에 오게 되었고, 동물병원에서 임보하며 분양하고 있었는데, 입질이 너무 심해서, 혹은 병원에서 분양 조건으로 중성화, 혈청검사 등등을 달아 두어서? 혹은 검은 고양이여서? 여튼, 특이한 폴드 믹스에 올검에 호박색 눈임에도 불구하고, 몇 달이나 입양되지 않다가, 내가 동생 제주 가자마자 머릿수 하나 줄었다고, 냉큼 데려 온 케이스로, 병원에 4개월 정도 있었기에, 병원 당연히 익숙하고, 사람들에도 익숙하다. 말로도 리처도 어디 데려다 놓아도 지 자리 찾아서 느긋하게 드러눕는 녀석들이고, 낯선 사람 따위 겁내지 않는 덕분에, 무심한 집사지만, 무던하게 아이 둘과 지낼 수 있었다. 


집사 10년차인 나에게도, 초보 집사에게도 필요한 내용들이 빼곡히 나와 있는데, 서양권 고양이 책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상황에 좀 안 맞는 이야기들도 많지 않고, 저자가 명확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 '산책냥은 위험함', '발톱 제거 수술은 학대'(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라서), '중성화 수술 해야 함', '아프면 동물병원' 등이 내가 생각하는 부분과 잘 맞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선택을 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사례 들어 이야기해 준다. 굉장히 디테일하게 모든 부분을 커버하면서도, 같은 볼륨의 비슷한 책들에서 볼 수 있는 사전적 나열이라 지루하지 않고, 고양이 정말 좋아하고, 오래 키운 수의사 친구가 고양이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것같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이 책의 모든 부분을 읽고 또 읽어 내 것으로 만들 것이지만, 내가 즉각적으로 반성한 것, 해야 겠다고 생각 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고양이 놀이와 이름 부르기. 고양이 이름 불러서 오게 하기를 가장 중요한 훈련이라고 했는데, 고양이는 부른다고 오는 동물 아니잖아? 그리고, 그걸 또 매력처럼 소화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훈련에 대한 방법들도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모든 훈련의 방법은 같은 원리 이므로, 책을 보면 '인내심'을 가지고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다. 훈련은 훈육이나 강압이 아니다. 보호자와의 유대감을 높이고, 안전하고, 몸의 건강은 물론, 정신건강에도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 이름 부르면 오기. 를 훈련 시키면, 위험한 상황에서, 고양이가 집을 나갔을 때, 이름 불러서 오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고양이를 데리고 나가야 할 재해 상황은 흔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상황이 왔을 때, 불러도 안 오는 고양이.라면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다. 집 나가는 고양이는 매일 매일 너무 많이 보고 있고.. 


고양이와의 상호작용 놀이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놀아주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이 되었지만, 야생성이 남아 있는 고양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놀이는 보호자와의 유대감은 물론, 고양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집고양이인 경우, 움직이게 하여, 몸건강, 정신건강에 모두 좋다. 단 5분이라도 꾸준히 매일 놀아 주는 것이 좋은데, 하루에 두 번에서 세 번. 아침에 출근 전에 놀아주면, 고양이들은 사냥(놀이)의 만족감에 하루 종일 자다 깨다 하면서 보호자를 기다린다. 집에 와서 또 놀아주고, 매우 활발한 고양이가 있다면, 밤, 새벽 우다다를 방지하기 위해 자기 전에 놀아주는 것도 좋다. 


앞으로 해야겠다 생각한 것들도 많지만, 고양이 CPR 배워두고, 말로가 더 나이 들기 전에 정착할 수 있는 집을 찾아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에 나는 굉장히 불안한 정신상태였고, 나쁜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있는 두 고양이 생각하며, 속상해 했고, 급기야, 말로랑 리처 나이 들어 죽으면, 나도 그 때 죽어야지. 까지 갔지만, 이십년은 더 살테니, 의미 없어져서 그냥 그렇게 마음 가라앉혔다는.. 4개월부터 매일을 함께 해 온 말로는 이제 열 살이고, 나는 십년의 방황을 했고, 앞으로는 이 아이가 나와 함께 하는 동안 행복하고, 편안할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 제목이 이 책의 주제이다. '고양이처럼 생각하기' 나는 그렇게나 내 새끼, 내 새끼 하면서도,  말로 입장에서, 리처 입장에서 뭔가를 생각하려고 노력조차 해본적이 없는 것 같다. 고양이 행동학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는 책 한 권 읽고, 어렴풋한 정도이지만,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에 새로운 관점을 주는 책이었고, 그건 굉장히 소중하고, 중요하다. 


누가 고양이책 추천해달라고 하면, 나는 이제 일단 이 책 읽어보시라 추천해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고양이들과 보호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기를. 일단 나와 내고양이들 챙겨야지. 


내가 요 며칠 캣시터 하는데, 캣시터 하는 집의 냥님들과도 상호작용놀이를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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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 지음, 신해경 외 옮김 / 아작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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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관련된 다양한 소설/비소설이 나오고, 기존에 읽었던 책들도 페미니즘 안경을 끼고 읽게 되면 더 재미있어진다. 그 동안 사두기만 하고, 읽지 않았던 SF 장르의 책들 중에 여자 작가가 쓴 여자 이야기들이 많은 것은 좀 신기하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을 읽고 봤어서, 남자가 여자로 바뀌기만 해도 신선하고 흥미진진하다는 걸 왜 모를까. (이건 요즘 한국 영화 이야기) 여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아직 사지 않았던 책인데, 애인이 도서관에서 빌려줬다. 단편집인데, 정말 너무 아름다운 책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을 읽고, 정말 단편이고, 장편이고, 너무 훌륭하고 재미있어! 감탄했는데,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책에는 옥타비아 버틀러와 또 다른 감동과 여운이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책이 더 이야기 공식에 충실한 재미가 있다면,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이야기들은 아름답다. 어슐러 르 귄을 떠올리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해피엔딩이라 할 만한 것은 한 편도 없다. 주인공이 죽거나 파괴되거나 멸망하거나 엄청 슬픈 사실을 알게 되거나 등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찝찝하거나 우울하지 않다. 아름답고, 이야기가 끝난 후에도 그 세상이 이어질 것 같은 기분인데, 좀 더 나아질 여지가 있는 세상일 것 같은 그런 기분이다. 그래서 더 여운이 많이 남는 이야기들.


단편들이지만, 이야기의 어떤 부분을 보느냐에 따라 감상이 달라질 것 같다. 표제작인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은 얼핏 공익적인 소설같이 보이기까지 하지만, 모험심 가득한 소녀의 여행, 우정, 순수한 열정 같은 것들이 더 눈에 들어온다면, 전형적인 헐리우드 해피앤딩으로 읽히지는 않을 것이다. 


<서쪽으로 가는 배달 여행>도 다양한 감상을 끌어내는 소설일 것 같다.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영화적이고, 많은 영화 장면들을 떠오르게 하는데, 이 소설을 읽을 때는 왠지 <로건>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할 만한 멋진 일>에서는 <로그 원>! <서쪽으로 가는 배달 여행>에서는 현실과 현실을 외면하고 배달부가 된 온 세상 사람이 자매인 배달부가 나오는데, 나 역시 현실보다 배달 여행을 가는데 동참하고 싶은 마음이 내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목차가 1. 사랑은 운명 2. 운명은 죽음 으로 나뉘어 있는데, 음.. 역시 의미심장하다. 

사랑은 운명, 운명은 죽음. 

나는 앞의 이야기들이 더 좋았다. 불멸의 사랑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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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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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선은 간데없고 악이 이렇게 판을 쳐대는지, 

어째서 평범한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괴로워하고 이런 쓰라림을 맛봐야 하는 건지 …….


강상중 선생의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페터 회의 '수잔 이펙트' 바로 다음에 읽었다. 

페터 회의 책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생각과 내가 평소 헤어나오지 못했던 생각들, 당장 닥친 문제들에 대한 답이 보이는 것 같다. 이런 사유를 책으로 내주신 선생님 계신 곳으로 절. 


가장 근본적인 주제들을 현실을 통하여, 고전들을 통하여 풀어내는 것을 읽고 있으면, 생각의 힘, 마음의 힘, '소설'의 힘 등을 생각하게 된다. 책에서 답을 찾는 나에게 이 책은 '그래, 책 안에 답이 있어'를 저자가 깊이 인용하고 분석해주는 소설들을 보고,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풀어낸 책을 보고 이중으로 느낀다.


저자가 악에 대해 고찰하기 전에 예로 드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가와사키시 중학교 1학년 남학생 살인사건(중고생 소년들이 중1소년에게 심각한 고문과 폭행을 가한 후 한 겨울에 발가벗겨 강물에 던짐. 시체를 옮길 때 발로 굴렸다는 사실이 알려져 사람들의 분노 폭발) 환자 18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군마대학병원 사건(2010년에서 2014년에 걸쳐 복강경 수술을 받은 환자 8명이 사망. 이 사망사고 전부에 40대의 한 집도의가 연관되어 있고, 이 집도의가 관여한 개복 수술에서도 수술 후 10여명의 환자가 사망했음이 알려짐), 나고야대학 여학생 살인,상해,방화사건(나고야의 여학생이 77세 여성을 살해한 후 '사람을 죽여보고 싶었다' 고 발언. 살인을 저지르고 집에 가는 길에 저택에 방화, '장례식에서 불에 탄 시체를 보고 싶어서' 라고 함),잔학무도한 IS 


사람이 선을 행하는 것은 구체적인 습관, 실천적인 행위를 통해서입니다. 여기서 구체적인 습관이란 '사는 법'에 관한 것입니다. 이는 사는 법을 체득한 사람만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사는 법이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죽음의 충동을 조금씩 길들여 제어하고 조절하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나고야 여학생은 이 구체적 습관인 '사는 법'의 대척점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죽음의 충동을 길들이는 방법을 모르는 공허한 존재,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파괴충동을 분출시키는 것이라고.


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그곳이 직장이건 공공장소이건 여러 가지 감정들이 교차하면서 아주 섬세하게 사회적인 룰이 결정됩니다. 공허한 존재의 악은 세계의 그런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 견딜 수 없는 부분이 죽음의 충동으로 분출되지 않았을까요. 


죽음의 충동은 공허한 존재에 숨은 마물입니다. 악이 범람하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 마물을 길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공허함이란 너무도 간단하게 우리에게 들러붙곤 하니까요. 그러니 우리의 세상은 결코 악의 세계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 끔찍한 나고야 대학생 사건의 뿌리를 우리가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니, 이 학생 속의 악을 우리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니. 일견 이해가지 않지만, 이런 끔찍하고, 인간 같지 않은 범죄들을 보며 도대체 왜? 어떻게? 끔찍함을 넘어서 수많은 의문을 가지게 했던 '악'의 존재에 대해 내가 사는 이 사회에 함께 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그 이유를 찾아보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얼마전 필리핀 성매매남들을 잡는 장면이 현지 뉴스 페북라이브로 중개 되면서 '성매매하는 한국남자들' 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성매매남 관상이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고, 사귀면서 겪게 되는 갈등들, 이 사람이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나를 관찰하는 것 등을 경험하는 대신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자신의 비위를 맞추기만 하는 여자만 만나봐서 사회에 나와서도 적응 못하고, 갈등이 생겼을 때, 이 얼마짜리가. 하며 분노하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 그렇게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을 반복하게 되면, 눈빛이 죽은 동태눈깔처럼 되서 '성매매남 관상'이 된다고! 얼른 성매매를 그만 하고! 인간으로 살라고! 하는 이야기.    


이 이야기가 위에 이야기한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며 섬세하게 결정된 사회적인 룰, 세계의 물질적인 복잡함'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동태눈깔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 그렇게 '공허함'이 들어찬 곳에 '악'이 자리잡는다는. 


이런 것이 역사상 대규모로 나타난 것이 '나치' 였다. 

목적성도 생산성도 없는 파괴(살육)행위를 위해서 모든 수단을 소비해버린다. 

나치 독일이 품은 악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불순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공포인데, 이것은 나치 독일 안의 '악의 이면성'에서 비롯되었다. 


자신을 과대망상적으로 크게 보이고 싶다는 바람과 자신이 병적일 정도로 작은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공포에 관한 것.


이런 분열된 이면성 속에 나고야 대학생이 안고 있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공포, 그 공동감(속, 핵심, 중심이 비어 있는느낌) 의 반작용으로 '과대망상적으로 자기를 긍정' 하게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가 말하는 '악의 이면성'이 낯설지가 않다. 


과거의 악의 축이 나치였다면, 오늘날 악의 축으로 떠오르는건 IS의 폭력과 테러이다. IS를 이슬람원리주의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활동은 고전적 원리주의와 거리가 멀고,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이슬람의 규칙을 인터넷상에 카피 엔 페이스트, '복사해서 붙여놓고' 이를 폭력을 정당화하는 지표로 삼았다"는 느낌만 든다.

이런 얄팍한 원리주의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얼마든지 다른 스티커로 바꿔 붙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현대의 자본주의를 '익명의 시스템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1장 '악의로 가득한 세상' 에 나오는 악의 여러가지 얼굴들에 관한 이야기들이고, 2장 '악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악'의 존재, 악의 정체를 탐구하는 장이다. 성서에 나오는 '베르제바브, 바알세붑 들의 이야기, 욥기의 욥 이야기 등과 고전으로 넘어 와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토마스 만의 작품 등이 소개 된다. 뒤로 가면서 소개 되는 문학작품 레퍼런스들로는 강상중 선생의 책을 오래 읽은 사람이라면 짐작하듯이 나쓰메 소세키, 도스토예프스키('악'을 탐구하는 소설로 이만한 작가가 있을까) 가 나오고, 자본주의를 현대의 시스템악으로 규정한만큼 베버도 나온다. 


원죄와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도 나오는데, '근원적인 악'과 '진부한 악' 으로 나누어 놓고 있다. 

한국에서는 '악의 평범성'으로 번역되는데, 일본판에서는 '진부함'으로 나오고 있다. 


"아이히만은 이아고나 맥베스가 아니었다. 더욱이 '악당이 되어주지'라고 한 리처드 3세의 결심만큼이나 이 진부함과 무관한 것도 없으리라 (중략) 완전한 무사상성 - 이는 결코 어리석음을 뜻하지 않는다 - 이것이 바로 아이히만이 그 시대 최대의 범죄자 중 한 사람이 되는 요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깐, 진부한 악이란, 사려와 상상력의 결여이고, 이 '무사상성', 사상 없음은 우리에게도 있다. 


짧은 책이고, '악'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성경과 고전, 역사속의 사건과 인물들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낯익고, 마음에 와닿을 일인가 싶다. 지금이 '악의 시대' 이고, '악의 시대를 건너는 힘'을 갈구하고 있어서인 것 같다. 


악이란 결국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악이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병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악은 '텅 빈'마음에 깃드는 병입니다. 



루프트한자 계열 항공기 사건과 같은 일은 앞으로도 더 일어날 거라 보고 있습니다. 파일럿 중에서 사건을 모방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예로부터 악이란 기억과 관습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악행을 저지른 것을 기억합니다. 일단 악행을 저지른 인간은 그 습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악행은 반복되는 것이지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악의 연쇄는 우리에게 견디기 힘든 비극을 가져옵니다.

우리가 사는 세간에도 악은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악은 세간이라는 몹시 진부한 인간 사회에서 생겨납니다. 우리는 크건 작건 공허함을 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세상을 거절하고 싶을 정도의 증오에 휩싸이는 일도 있겠지요. 공허함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에게나 어두운 파괴 충동이 있으며 사람을 상처 주거나 멸시하는 데서 오는 어두운 기쁨을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그런 암흑의 그림자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자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이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의 충동‘과 어떻게 타협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그 길이 소세키가 생애를 바쳐 그린 세간의 삶 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바깥쪽에서는 타협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희로애락 가운데 이어지는 나날이 있는 것이라며 소세키는 세간의 세부를 그려내 보였습니다.
서로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하루하루 생활을 소세키는 달관하여 희극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의 세계자본주의는 악의 배양기일 따름인 절망의 자본주의인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시스템 자체가 악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 자체가 인간을 고뇌하게 하고, 그런 고뇌를 계속 만들어내 시스템을 유지하는 악의 연쇄를 낳습니다. 말하자면 전 지구적인 규모로 악이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 절망 속에서도 타자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 속이라 해도 함께 있다면 조금은 타자의 아픔을 느낄 수 있고 자신의 아픔도 누그러질 순간이 있을 터입닏. 비록 일시적인 공감일지라도 이를 얻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세상의 일부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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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4-22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도 이런 일들이 있었다니요. 흡사 우리나라 일인줄 알았어요. 특히 나고야 여자 대학생이야기가 충격적이면서도 얼마전 사건을 떠올리게 하고요. 악은 텅빈 마음에 깃드는 병이란 글귀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ㅜㅜ 함께하는 사회이니 그 이유를 함께 찾아보자는 말씀도 공감되고요.

하이드 2017-04-22 10: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우리나라 뉴스들에 나오는 사건들이 많이 오버랩되더라구요. 뉴스 볼 때마다 도대체 왜? 어떻게 사람이? 정말 이유를 알 수가 없어 답답했는데, 이 책 읽고, 많은 부분 더 생각할 거리들을 얻었습니다.

 
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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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는, 9천 일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에게 처음 눈길이 멈췄던 것이 어느 날 어느 때였는지를 나는 지금도 기억할 수 있다. 그것은 내 열여섯 번째 생일이 지나고 나서 이틀 뒤, 하늘이 잿빛으로 흐리고 어두컴컴했던 독일의 겨울날 오후 3시였다. 



아름다운 소설을 읽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에 늘 감동한다. '곰스크로 가는 기차'가 떠올랐다. 내용은 전혀 다르지만, 책에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들, 주인공의 선택과, 선택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포기, 혹은 선택하지 않은 것들이 책에 쓰여진 것만큼이나 선연하게 다가와서 종이에 쓰여진 것보다 더 강하게 가슴을 친다. 


단편도 아니고, 장편도 아닌, 노벨라, 중편 소설이다. 1930년대 초반, 히틀러가 태동하기 직전에 인생의 한 사람을 만난 소년의 이야기이다. 역사책을 이미 읽어버린 우리는 유대인이었던 소년과 유명한 독일 귀족가 아들의 우정의 결말을 알 것 같다. 이 시기의 이야기들은 많이 읽은 것 같지만, 근래 읽었던 'Hhhh'와 이 책 '동급생'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책의 첫 페이지를 읽으면서부터 한숨이 나기 시작했다. 동급생이었던 두 소년이 좋아했던 독일 고전 문학의 한 장면 같다. 아름다운 문장들과 중편의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다.


책의 여운이 길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오랜만에 소설의 아름다움, 소설이 마음에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큰가 생각하게 된다. 


본문부터 읽기 시작하고, 서문 두 개와 옮긴이의 말은 나중에 읽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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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수지 박람강기 프로젝트 8
모리 히로시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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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인간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린다. 문장을 엮어 나간다. 오로지 그 작업 하나로 작품이 태어난다. 어떤 직업이든 여러 사람이 협력하며 작업하게 마련이지만 소설만큼은 혼자서 작업한다. 그 작업으로 얼마나 벌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번역되는 미스터리 소설 열에 아홉은 읽는 편이라 모리 히로시의 책도 읽어봤을법 하긴한데, 표지며, 제목이며, 줄거리며 묘하게 취향 안 맞을 것 같아 밀어두고 있다가, 아마도 (모든 것이 F가 된다.는 읽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사긴 했던 것 같고) 처음 접하게 되는 책이 내가 책 써서 돈 이만큼 벌었어. 하는 책이라니. 1억엔(10억원) 벌이의 작가답다. 어떤 독자라도 끌어들인다. 


모리 히로시는 누구? 로 시작되는데, 평범한 이력은 아니다. 전혀 참고가 될 것 같지 않다. 데뷔 19년차에 280여권을 출판했고, 애니 저작권 수입도 크다고 들었고, 원래 공대 조교수 출신, 소설을 부업으로 시작하고 나서도 10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돈을 위해 소설을 쓰고,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다. 평범한 작가는 평범해서, 별난 작가는 별나서 팔리는 것이 책일테니, 작가로서는 평범할지도 모르겠다. 소설가라는 것의 바운더리가 그런거겠지. 


10억원을 버는 작가가 아무리 일본이라도 탑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어려운데, (대신, 탑작가가 많겠지) 

소설을 그야말로 돈 버는 일로 이공계 스타일로 환산해서 계산해 놓은걸 보니 어질어질하다. 

예를 들면, 문학잡지 같은 매체에서는 원고지 매당 4천~6천엔의 고료를 받으니 50매짜리 단편이나 연재소설을 쓰면 20만~30만엔, 작품을 쓰는 데 필요한 자재가 따로 필요 없으니 매출이 곧 소득(->이런 말을 하는건 뭔가 아마추어들의 로망. 같은거라고 생각했는데..) 매당 6천~ 15천엔을 받는 만화가에 비교하며, 만화쪽이 시간도 20배 이상은 더 걸리고, 어시들 월급도 줘야 하니, 글작가들의 효율이 얼마나 좋은가? 라는걸 글작가가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위화감 잔뜩 느껴진다. 

신문 연재 소설은 회당 분량이 5만엔 정도, 매일 게재 하므로 연수입이 1,800만엔 정도라고. 신문연재 많이 하셨던 미미여사가 떠오르며, 아아...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식의 돈계산, 작가의 시급. 

키보드를 두드려 글을 쓰는데, 시간당 6,000자 정도 된다고 한다. 이 숫자를 내는데도 지극히 이과계스러운 계산방법이 나온다. 여튼, 그렇게 해서 계산한 집필노동의 시급 10만엔. 시급 백만원

여기에 문장손질, 교정쇄 점검 등을 넣어 절반쯤으로 보아 5만엔. 금액만 보면 매우 좋은 조건인데, 누구나 이런 조건으로 작업할 수 있는건 아니지. 라고. 네네.. 

책 한 권에 담는 장편소설은 대개 원고지 400~ 600매 정도, 장편 한 작품을 잡지 연재하면 대강 200만~ 300만엔의 고료 

얼마전 트위터에서 모작가님이 천권 팔아야 백만원인데, 책 좀 달라고 하지 말고, 사라, 사. 하는 글을 봤다. '작가의 수지' 를 읽으며 우리나라와 일본의, 물론 일본에서 돈 가장 잘 버는 작가 중의 하나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차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얼마전에 읽은 새로운 필자가 새로운 독자보다 많아진다는 기사도 생각나고.


저자의 데뷔작 <모든 것이 F가 된다> ... 인쇄 부수 보니, 할 말이 없다. 

작가의 '데뷔작' 초판 인쇄 부수 18,000부. 그로부터 9개월 사이에 6쇄까지 증쇄하여 첫 해에 61,000부를 찍고, 인세로 600만엔. 이 작품은 3개월마다 신작 발간되었고 ( 이미 다섯 작품을 써 둔 상태였음) 문고본의 초쇄는 6만부 였다. 노벨스판이 24쇄까지 나와 누계 139,600부, 문고판이 60쇄까지 나와 누계 639,000부. 합해봐야 78만부니 백만부에는 한참 못 미쳐서 밀리언 셀러 경험은 없다.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긴 하지만, 한 작품으로 크게 히트한 적은 없다. 고 말하고 있다. 작가 본인이.

이 책의 시급도 계산해 두었다. 시급 100만엔. 토탈 60시간 정도 걸렸는데(처음 출간이어서 시간 많이 걸렸다고)

다만 한번에 받은건 아니고, 20년을 두고 받은 것. 


작가에게는 증쇄가 곧 불로소득이라고 썼지만, 그보다 먼저 '출판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구나' 하고 안도하게 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만큼 벌 수 있는 것은 다 출판사 덕분이다. 나는 특히 그런 생각이 강하다. 별생각 없이 원고를 보냈다가 운 좋게 편집자 눈에 들었다. 행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궁합이 잘 맞는 편집자를 만난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그 사람들의 비즈니스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된다. 한편, 매정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독자에게는 그다지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내 책을 읽고 재미가 없어도 독자들에게는 얼마든지 다른 선택지가 있다. 재미없는 책을 만나더라도 책 한 권값을 쓴 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내 책을 만나는 독자도 많으므로 그들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하자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내 책 좀 사주세요'라고 말하거나 쓴 적이 한 번도 없다.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이 책이 당신에게 책 구입비보다 더 많은 가치가 있기를' 하는 것뿐이다. 이것은 대개 궁합의 문제이므로 내가 어떻게 해 주기가 힘든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지만, 맞는 말.


소설 집필을 '노동'으로 보는 시각은 아마도 이 세계에서는 소수파일 것이다. 나의 감각이 마이너인지라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읽는 독자가 계속 당황스럽고 있습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책시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정확하게 수치를 알지는 못하지만, 많이 날거라고 짐작하고 있다. 

그런 일본에서 글을 써서 돈을 버는 작가가 일본에도 일상적으로 독서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고, 소설계에서는 수십만명 정도라고 할 정도로 적다고 하고 있다. (문득 생각나는 우리나라 SF 독자 3000명 설) 저자의 책 중 가장 잘 팔린 <모든 것이 F..> 도 20년을 두고 78만부 팔렸으니 일본인의 0.6%가 산 것. 1,270명 중 한 명 꼴. 이 수치가 TV 시청률이라면 그 프로그램은 당장 폐지되었을테니 소설이라는 것이 "얼마나 울트라 마이너한 분야" 인가! 라고.


"실제로 모리 히로시 정도밖에 안 되는 자도 꽤 좋은 조건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혼자서 만들어내고, 경비도 안 들고, 비교적 단시간에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랑 사정이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다. '인세만이 수입이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 잡지에 웬만한 단편이 하나 게재되면 50만엔 정도 받을 수 있고, 청량음료 제조사에서 소설 집필 의뢰 받았는데, 이 때 원고료는 작품 하나에 1,000만엔이었다고 한다. 단편 하나에 오백만원, 소설 원고료 1억? 


웹다빈치 라는 사이트에 블로그 글을 매일 연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매일 1,000자 정도를 올렸는데, 원고료가 300자에 5,000엔. 하루 원고료 15,000엔, 이때 블로그 올린 글들이 3개월마다 문고본 출판되어 인쇄수입까지 합하면 블로그만으로 해마다 천만엔의 수입. 하루 15분 작업으로 이만큼 벌었다. 


지금, 내가, 리뷰 쓰면서 계속 돈돈 하고 있는것 같은데, 내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이런 책입니다. 

제목, '작가의 수지' 


얼마전 일본의 전자서적에 대한 기사를 읽었는데, 기사 하나 읽고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전자서적 시장이 작고, 돈도 안되고, 미래도 없다. 뭐 이런 기조의 기사였다. 모리 히로시는 전자서적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접치고 있는데, 미래에는 책이라고 하면 '전자서적'을 가리키게 될것이다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다. 기사를 읽을 때도 궁금했는데, 전자서적의 인세는 15~ 30%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인쇄서적의 인세가 8%~12%로 일본과 같으니 전자서적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을 때도 느꼈는데, 모리 히로시도 문단? 에서 상당히 독특한, 마이웨이를 걷는 작가이지 싶다.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일본에서 터부시 된다는 작가의 '수지'를 이야기하고 있으니 (편집자의 말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렇게 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은 작가의 책을 본적이 없다는 말에 공감) 놀랍다. 


'수입' 뿐만 아니라 '지출'에 대해서도 쓰고 있고, 출판계의 미래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작가라는 직업 뿐 아니라, 내 직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는걸 보면, 작가가 직업이 아닌 사람들도 직업의 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될만한 보편적인 '새로운' 인사이트를 보여주고 있다. 


'수입'에서 입이 떡 벌어졌지만, 뒤로 갈수록 작가의 수지에 빠져들게 된다. 

작가라는 '직업' 에 대해 일부분(아마 꽤/가장 중요한 부분)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러니깐, 이런 이야기는 아직 아무도 안 했던 이야기잖아.  


이 책을 사면서 인세 5%를 모리 히로시의 모형정원기차 만드는데 보태는건가. 라는 생각같은 걸 해볼 수 있다. 

자신의 감을 믿을 것.
늘 자유로울 것.
한때라도 좋으니 자기가 가진 논리를 믿고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향해 전진할 것.
그리고, 좌우지간 자신에게 ‘근면함‘을 강제할 것.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이 정도가 전부다.
최적의 건투를! (‘스카이 크롤러‘속 대사)

어쨌거나 꾸준히 활약한 작가였다.
올해(2015년) 4월로 데뷔 19년차가 된다. 그동안 국내에서 출간한 책은 278권, 총 판매 부수는 약 1,400만부, 이 책들로 벌어들인 돈은 약 15억엔이다.

작가로 살다 보면 도무지 글을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고 한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해 본 적이 없고 슬럼프를 겪어 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소설 집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밥벌이니까 마지못해 쓰고 있을 뿐이다.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 일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남들한테 자랑할 만한 직업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슬럼프에 빠지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좋아하니까 쓴다는 사람은 열정이 식었을 때 슬럼프에 빠진다. 자랑할만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판과 비난을 받으면 의욕을 잃는다. 그러니까 그런 감정적 동기만으로 버티면 언젠가 감정 때문에 글을 못 쓰게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일이니까 쓴다는 사람은 슬럼프를 모른다. 글을 쓰면 쓴 만큼 돈을 벌 수 있다. 마음은 배반하지만 돈은 배반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수전노 같은 말본새로 들리겠지만, 정직하게 하는 말이다. 일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수전노가 되게 마련이다. 애초에 이 책의 주제는 정직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내용이다. 내가 번드르르한 말을 싫어하는 탓에 결과적으로 미움을 받는 캐릭터가 되고 말겠지만, 그것도 일이라는 것의 본질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가 이외의 직업, 아니 어떤 직업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업을 놓고 ‘보람‘이니 ‘꿈‘이니 하는 환상을 품는 젊은이가 많다. 그것은 그런 이미지를 심으려고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인데, 현실 사회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환상일 뿐이다.

오리지널 작품을 만든다(창작한다)는 것은 ‘노동‘만으로 평가받는 행위가 아니다. 이 점이 중요하다. 글자만 쓰면 되는 작업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는 이야기를 옮기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글을 써도 비난받는다. 새로움이 없으면 안 된다. 게다가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만한 요소가 있어야 한다. 절찬해 주는 사람이 열 명쯤 있다고 해서 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한쪽에서는 혹평을 하더라도 수천 명, 수만명의 대중이 지갑을 열 만한 매력이 개개의 작품마다 필요하다. 이는 구체적인 노하우로서 이 책에 소개할 수 없는 점이기도 하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재능‘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러나 나는 재능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어느 쪽이냐 하면 ‘사고력‘이나 발상력‘에 가까운 것이다. 그것도 재능 아닌가,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재능이 없으면 긴 시간을 두고 생각하며 착상이 떠오를 때까지 오로지 기다리면 된다. 스포츠나 음악이나 연극이라면 이렇게는 안 되겠지만 글쓰기라면 시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글쓰기 자체는 본래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 아니므로 시간적인 여유도 충분하다.

출판이라는 영역의 문턱은 예전보다 훨씬 낮아지고 있지만, 많이 팔기는 그만큼 힘들어지고 있다.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 기뻐하고 잇을 수는 없는 시적이다. 판매 부수를 정확히 파악하고 늘려 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작가 스스로 궁리하여 전략을 세워야 한다. 출판사는 거기까지 생각해 주지 않는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사람은 아주 많은 것 같다. 나도 이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그것을 알았다. 도구도 동료도 필요 없다. 초기 투자도 없다. 게다가 소설가로 살아가는 선배들을 보면 매우 즐거워 보인다(가령 이 책의 내용처럼). 개중에는 아이디어가 말라서 힘들다느니 슬럼프에 빠졌다느니 마감에 쫓겨 밤을 새웠느니 하며 고생하는 척하는 작가도 있는 모양이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노동 조건은 결코 나쁘지 않다.

신인은 좌우지간 좋은 작품을 쉴 새 없이 발표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발표한 작품이 다음 작품에 대한 최고의 홍보가 된다. 이것 말고는 홍보할 길이 없다고 봐도 좋다. 따라서 첫 작업 때는 의뢰한 측이 기대한 것보다 더 나은 결과물을 건네줘야 한다. 가격에 걸맞지 않는 고품질의 작품을 만들어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느껴지더라도 그것을 홍보비라고 생각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작품을 생산할 것, 그리고 마감을 지킬 것, 1년에 한 작품을 쓰는 식으로 느긋하게 창작해서는 설사 그 한 작품이 히트하더라도 금세 잊히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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