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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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하루키스럽지 않은걸. 생각하며 읽었다. 문장에 꾸밈이 많고, 정보성 글도 많다. 여행 잡지 등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렇다. 하루키의 여행에세이를 좋아했을 무렵 가장 좋아하는 책은 '먼북소리' 였고, '우천염천'도. 아테네 어느 호텔방에서 테니스 시합을 틀어놓고, 테니스 공 튀기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먼북소리'를 읽었던 기억, 아테네에서 크레타에 가는 내내 '먼북소리'를 뒤적였던 기억이 있는데, 이 책에서 하루키는 '먼북소리'를 썼던 때가 이십여년전이라고 말한다. '먼북솔' 외에도 보스톤 생활하던 여행 에세이도 생각나고, 여튼, 하루키 책은 다 읽었으니, 소설보다 에세이가 좋아. 하며 읽었으니, 하루키가 십몇 년 만에, 이십몇 년 만에 돌아보며 감회가 새롭듯, 나도 십여년만에 하루키를 따라가는 여행글이 새롭다.

요즘 나는 현시대에 함께 나이 들어가는 하루키를 재발견하고, 그의 소설들을 좋아하고 있다. 십년전과는 달리. 예전에 읽었던 소설도 지금 읽으면 다른 느낌일 것 같다.

 

별론데, 하고 읽지만, 하루키는 하루키다. 책에 나오는 여행지만으로도 평범하지 않다. 아니다. 하루키가 쓰니깐 평범하지 않아 보였을지도. 아이슬란드, 핀란드, 라오스, 구마모토, 보스톤, 포틀랜드, 뉴욕 등등

 

킨포크의 도시 포틀랜드는 여행잡지에서 종종 보긴 했지만, 글로만 본 건 처음이다.

"포틀랜드는 미국에서 인구당 레스토랑 수가 가장 많은 도시예요"라고 이곳 사람은 말한다.

"또 인구당 독서량이 가장 많고,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할 순 없지만, 교회에 나가는 사람이 가장 적은 도시죠. 하하하."

어떤가? 당신은 이 도시가 마음에 들 것 같은가? (큰 소리로 말할 순 없을지 몰라도) 나는 마음에 쏙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레스토랑만 드나들다가는뚱뚱해지지 않을까? 괜찮습니다. 걱정마세요.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윌래밋 강변에 무척 아름다운 조깅 코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포틀랜드 맘에 든다. 책 읽는 사람들이 많은 동네 좋다.

 

그리고 구마모토 편에서 이 이야기를 읽은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 싶은 글을 읽었다.

 

아소에서 현도11번을 달리다보면 나무들을 토피어리로 동물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700그루 정도 되는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이것을 만든 사람은 도로변 옥수수가게의 와카미야 미치오라는 분이라고 한다. 옥수수랑 채소를 파는 틈틈이 원예 작업을 즐기게 되었는데, 새, 소, 거북, 말, 코끼리, 공룡, 구마몬, 야구방망이를 든 이치로?? 등이 있다고 한다.

 

토피어리가 늘어선 광경에 이끌려 저도 모르게 차를 세우고, 내친김에 가게에 들러 옥수수를 사먹는 관광객이 한둘이 아니니(우리도 다름아닌 그일원이었다), 영업 면에서도 토피어리 무리는 아주 유익하다고 단언해도 좋을 것 같다. 이것을 '예술'이라고 부르기는 아마 어렵겠지만, 적어도 '성취'라고 부를 수는 잇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넓은 세계에는 비평의 개입을 허락지 않는 수많은 성취가 존재한다. 그런 성취 혹은 자기완결 앞에서 우리는 그저 놀라고 감탄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 좋다. 근래 읽은 하루키의 책들 중에 그닥 재미있게 술술 읽히며 감탄하지는 않았지만, 시원한 표지의 과거로의 여행같은 여행에세이를 읽는 것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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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6-07-09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평의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 수많은 성취.혹은 자기완결^^아멘입니다요ㅋ

하이드 2016-07-09 09:56   좋아요 0 | URL
딱 이 부분 너무 좋아서, 이 책 읽은 보람을 찾았습니다. 다른 글들도 나쁘지 않았지만요.

고양이라디오 2016-07-09 1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하루키 여행에세이는 먼북소리, 우천염천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이 에세이를 읽으면서 `라오스` 쪽에서 작은 먼북소리가 들려왔었어요ㅎ 하이드님은 `포틀랜드` 쪽에서 들려오신 것 같네요ㅎ

하이드 2016-07-09 09:57   좋아요 0 | URL
네, 포틀란드 좋았구요, 이전에 페이퍼로 썼던 아이슬란드도 좋았어요.
 
인디애나 블루스 앨버트 샘슨 미스터리
마이클 르윈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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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는 Ask the Right Question 이지만, 번역본의 제목인 '인디애나 블루스'도 맘에 든다.

원제가 책 속에 나오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되지만, 이 책이 뉴욕, 엘에이 같은 대도시를 배경으로만 추리소설이 나오다가 처음으로 중소도시인 인디애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이후로 다른 중소도시 배경으로 나오게 되었다는 점, 시리즈로 계속 나와준다고 하니 ( 의심스럽긴 하다) '인디애나폴리스' 를 배경으로 하는 사립탐정 앨버트 심슨 시리즈의 제목이 '인디애나 블루스'인건 괜찮지 않나.

 

사무실이 옆방인 (작업실이 옆방인 나는 왠지 친근감을 느끼고) 사립탐정 앨버트 샘슨.

 

점심 식사를 하자 큰 결정이 남았다. 사무실에 돌아가서 책을 읽을 것이냐,아니면 이 거실에 남아서 읽을 것이냐. 

이런 종류의 결정이야말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스스로에게 엄격한지 이야기해 주는 법이다. 거실은사무실보다 훨씬 아늑하다. 부드러운 의자에다, 오렌지 주스까지 걸어가는 거리도 짧다. 오후 2시는 아직 업무 시간이다. 일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우연이라도 발생하면, 뒷방 창가에 앚아 졸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안 된다.

나는 규율을 선택했다. 침대에서 베개를 들고, 내가 사무실이라 부르는 연두색의 네모난 작은 방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첫인상부터 되게 장사 안 될 것 같은 사립탐정을 찾아온 고객은 열여섯 소녀다. 부모의 혈액형에서 자신의 혈액형이 나올 수 없음을 알게 된 부잣집 소녀 엘로이즈는 친아빠를 찾아주기를 의뢰한다. 샘슨은 친구인 경찰과 기자의 도움을 받아 천만장자인 엘로이즈의 아빠와 엄마의 과거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1971년에 나온 소설이고, 그 즈음에 나온 시리즈다.

미야베 미유키 인터뷰에 나온 앨버트 심슨 시리즈는 '힘도 세지 않고, 수수께끼의 미녀가 등장하지 않고, 탐정 소설에 나오는 멋진 대사를 읊조리지도 않지만, 다정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는 점이 좋았고, 샘슨 같은 탐정을 만들어보기 위해 스기무라 시리즈를 만들었다고 한다.

 

일본의 소시민? 이었던 스기무라와 인디애나 폴리스의 앨버트 샘슨은 그 배경 때문에 많이 다른 느낌이지만, 탐정이 일상에서 느끼는 점을 묘사하는 부분의 사소한 디테일이 비슷하다. 그러면서도 곤조 같은 것이 느껴지는 하드보일드 탐정 같은 면도 없지 않다. 잘 팔렸을 것 같지 않지만, 다음 시리즈 나와만 준다면, 더 재미있게 다시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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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수전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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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시대물 장편은 늘 너무나 재미있고, 여운 또한 길다. 등장인물은 악역이고 조연이고 다 흥미진진하며, 심지어 `괴수` 가 나오는데, 그마저 매력적인 것. 670페이지를 그야말로 단숨에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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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의 강
차이쥔 지음, 허유영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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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도 잿빛이고

길도 잿빛이다

집도 잿빛이고

비도 잿빛이다.

 

죽음이 잿빛 속에서

두 아이가 지나간다

하나는 선홍생

하나는 연녹색

 

중국 현대시인 몽롱시파 구청의 시로 시작해 구청의 시로 끝난다. 구청을 찾아보니 이 사람 인생이 또 한 편 추리소설(뉴질랜드 이민 가서 아내를 도끼로 죽이고 자살)같다.  

 

중국 추리소설의 붐으로 번역된 책이 아닌가 싶었는데, 굉장히 다양한 문학 레퍼토리들이 들어 있어서 재미있고, 아쉬웠다. 아는 만큼 본다고, 중국 문학에 대한 레퍼런스가 거의 제로였던지라.

 

이 책을 읽을 즈음 대만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수업을 들었다.

책 속에 ' 저기가 장애령의 생가야' 라는 문장이 한 줄 나오는데, 그 날 들은 수업에 대만 여성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중국의 여성 문학가 장애령 이야기가 나왔다. 주인공이 듣는 장국영의 노래 '나'의 가사들 보며 익숙한 이름을 떠올려보기도 했다.  대만과 홍콩,중국을 각각 다른 나라로 생각했는데, 대만 역사에 대한 수업을 겉핡기로라도 듣고 보니,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그에 따른 감정과 지역에 대한 희노애락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사회파 추리소설로 진지하게 주제를 잡아 비판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사회상에 대한 이야기들이 디테일하게 나와 있다.

추리소설적인 면도 나쁘지 않은데 (640여페이지도 만만찮은 분량) 독특한 소재인 '환생'을 되게 평범하게 있을법한 이야기처럼 그리고 있어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인물과 사건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들.

 

사람이 죽으면 귀문관을 지나 황천길로 가는데 그곳에 망천수가 흐른다. 망천수 위 나하교를 건날 때 맹파라는 노파가 주는 탕을 마시면 전생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만약 맹파탕을 마시지 않고 인간 세상에 환생하게 되면...

 

대단한 집안의 약혼자로 인해 미래가 승승장구인 똑똑하고 잘생긴 젊은 교사 선밍이 불륜관계로 소문이 난 여학생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고 모든 것을 잃는다. 모든 것을 잃은 선밍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죽이고, 학교 근처 '마녀구역'으로 이름난 폐허에서 그 역시 죽음을 당한다. 그리고 선밍이 죽을 즈음 태어난 쓰왕이라는 소년.

 

사랑과 복수, 야망과 욕심이 전생에서 현생으로 얽히고 얽힌다.

 

여러모로 꼭꼭 씹어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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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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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흰 것은 고양이, 고양이 말로, 안 흰고양이의 하얀 양말, 흰 종이, 눈, 흰 칼라꽃, 흰 셔츠, 흰 그릇, 글을 쓸 목록 거리로는 재미 없다. 작가 한 강의 흰 것드은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백목련, 흰 새, 하얗게 웃다, 백지, 흰 개, 백발, 수의

 

 

처음 읽어보는 한 강의 책이다. 아직 다른 책들은 대기중이지만, 이 책을 가장 먼저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머지 책들을 읽으면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지만.

 

예쁘고 섬세한 문장들을 쓰는 작가구나 싶다. 차미혜 작가의 희거나 덜 희거나 희지 않은 사진들이 함께 한다. 잘 어울리는 콜라보이다.

 

짐을 정리한 다음날 흰 페인트 한 통과 큼직한 평붓을 샀다. 도배를 하지 않은 부엌과 방의 벽에 크고 작은 얼룩들이 보였다. 특히 전기 스위치들의 주변이 까맸다. 혹여 페인트가 튀더라도 눈에 띄지 않도록 연회색 트레이닝복에 낡은 흰 스웨터를 걸치고 칠을 시작했다. 깔끔하게 마무리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얼룩이 지더라도, 흰 얼룩이 더러운 얼룩보단 낫겠지. 그렇게 무심한 자마음으로 더러운 자리만 골라 붓질을 했다.

 

앞서 만들었던 목록대로 차근차근 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쌓아간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내 어머니가 낳은 첫 아기' 태어난지 두  시간 만에 죽은 아기. '달떡처럼 얼굴의 힌 여자아이'

언니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아기가 죽어 내가 태어났을 수도 있는 얼굴이 달떡처럼 흰 아이.

 

어둠 속에서 어떤 사물들은 희어 보인다.

어렴풋한 빛이 어둠 속에서 새어들어올 때, 그리 희지 않던 것들까지도 창백하게 빛을 발한다.

 

어둠 속에서 흰 몸 위에서 유독 까매 보이는 애인의 손을 떠올린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는 늘 흰 몸과 까만 손이 신기하다.

 

몇 년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였다. 눈보라가 치는 서울의 언덕길을 그녀는 혼자서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우산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었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가장 더운 여름이 예고 된 6월 중순의 초입, 웃통을 벗고, 까만고양이 한마리와 흰 고양이가 한 마리 자고 있는 고요한 일요일 오후, 흰 것에 대한 책을 두번째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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