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잠시 쉴 시간을 갖는 동안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 두었던 슬라이드 필름을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슬라이드는 현상을 하고나서 마운트에 넣고, 매 장마다 84매로 구성된 이름표를 출력하여 어디에 있는 무엇을 찍었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접착식으로 된 스티커를 붙여야 합니다. 책상이다 책꽂이다, 또는 책상 위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필름을 대충 추리니 언뜻 보기에도 2000장은 되는것 같았습니다. 한번 촬영을 나가면 보통 36컷 짜리 필름을 10통을 사용한다고 해도 360컷이 되고 몇 차례 다녀오면 금방 2000컷 이상의 자료가 발생을 하게 되는 셈입니다.

2. 화일에 들어 있는 필름을 한장씩 잘라서 마운트에 집어 넣는 작업은 필름면에 손가락이 닿지 않도록만 하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랍니다. 단순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라 조금은 지겹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그 필름이 무엇이라는 것을 마운트에 붙이는 것이랍니다. 한글에서 문서만들기를 택하고 거기서 슬라이드용 문서만들기에 이 필름이 무엇이라는 것을 인쇄를 해서 마운트마다 붙이면 끝나는 것인데 이것도 매번 촬영 대상이 달라 금방 식별이 가능하다면 그나마 빨리 마칠 수 있는데, 비슷한 대상을 찍었던 필름이라면 정말 분류에 애를 먹게 됩니다.

3. 예를 들어 건축물이나 석조물 등은 금방 구분이 가능하지만 내부의 단청을 찍었다던가 또는 탑의 세부를 촬영한 필름은 뒤섞이면 찾는데 무척 애를 먹게 됩니다. 어느 경우에는 찾다 찾다 어디 것인지를 몰라 미분류인 상태로 두는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잘 하면 될것 아니냐고 하시겠지만 필름을 수십통 현상하다보면 그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요. 이렇게 분류를 마치고 스티커가 첨부된 필름은 필름 보관용 박스에 넣어져 보관을 하게 되는데 수 천장의 필름을 널부려뜨리고는 하나 하나 정리를 해 나가면 조금씩 방안의 여유 공간도 늘어나게 되지요.

4. 그런데 방금 끝날것만 같던 이 작업도 벌써 열흘이 넘었음에도 마치지 못하고 방과 거실에 깔려 있습니다. 출근과 퇴근시에는 침대에서 몸만 빠져나와 옷을 입고 널부러진 필름이나 필름 보관용 플라스틱 박스를 밟을까봐 조심 조심 발걸음을 옮기게 되고 퇴근 후에는 어디 필름만 정리할 시간이 있나요?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겨우 발을 디딜곳만 골라서 딛고는 또 내일로 미루고 넘어가게 됩니다. 말하자면 책상과 침대...그리고 세면장 입구를 제외하자면 온 바닥에 지뢰가 맏혀 있는것이나 다름없어 발걸음 하나 옮기기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5. 뭐...위에 분류작업이 쉽지는 않다고 했습니다만 그것은 거의 제 게으름에 의한 산물이라고 해야 할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프로라서 필름으로 밥을 먹고 사는 실정이라면 절대 이렇게 방치하다시피 놔두지는 않겠지만 그것도 아닌지라 시간 여유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에 들락날락 거리는 제 입장에서도 어서 치워야지...라는 의지만 굴뚝 같답니다. 그나마 하루에 십 수컷이라도 차근 차근 정리를 해 가니 발을 디딜 틈이 조금씩은 넓어지고 있어 다행이 아닌가 합니다만, 또 촬영을 하고 돌아오게 되면 지금 바닥에 널려 있는 필름보다 더 많은 필름이 깔리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6. 오늘도 퇴근해서는 발을 높이 들고 지뢰밭을 피해 가야할것 같습니다. 기왕 게으름에 대해 이곳에 글을 올렸으니 조금 속도를 빨리해서라도 마무리를 지어야 할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게으름의 가장 큰 원인은 필름을 들여다 보다가 구분이 되면 바로 스티커 작업을 해서 출력을 하고는 붙여야 하는것을 그 필름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이러니 진도가 늦어지는것 같습니다. 오늘부터는 정말 후다닥~ 해 치워서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짜증날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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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5-03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작업일 것 같네요.

비로그인 2004-05-04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맞는 말씀입니다. 인내심도 중요하고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전문성이 있기에 전업 작가가 해야할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참에 전업할까요?
 

1. 사무실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남한산이 한눈에 들어오던 곳에서 도심속에 자리잡고 있는 봉원사(koex 앞의 절) 처럼 조용하고 아늑한 곳의 2층이 제 사무실입니다. 12만 여평의 대지중에 유일하게 제 사무실 가는곳은 전북 부안의 내소사 입구처럼 양쪽으로 커다란 소나무, 플라타나스, 떡갈나무 등등이 늘어선 길을 따라 500m 남짓을 들어간 호젓한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2. 여러 가지 마음이 아파야 했던 일들이 정리되고 이런 호젓한 곳에서 시간이 나면 책이나 볼 기회를 갖게 된것이 제게는 늘 원했던 일이라서 나름대로 만족을 하고 있었습니다. 창문을 통해서 보면 구리  판교간 고속도로의 남한산성 램프와 수서 분당간 도시고속 도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주 멋진 곳이지요. 단 한가지 흠이 있다면 창문을 열면 차량이 질주하는 소음이 조금 귀에 거슬리는 정도이지만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듯 하답니다.

3. 제가 이 사무실로 옮긴것은 지난 4월 26일 이었고 그날은 마침 비가 내리던 날이라 비록 약간의 흙이 차바퀴에 뭍어도 숲길은 새로운 생명의 보금자리인냥 그렇게 푸르게 가슴속에 다가왔었고, 흐느적 거리는 봄 비 마져 저를 반기는것 같아 기분이 좋았습니다.  창문의 방향이 서남향이라 비교적 오후의 햇살을 많이 받을것 같았으나 비가 오는 창문을 통해 바라다 보는 도로의 모습은 또 다른 멋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4. 지난주중에는 정말 날이 좋았지요....  봄 날씨 치고는 덥다고 느낄 정도로 화창한 날이기에 두개의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습니다. 싱그러운 바람이 사무실을 가득 메우는 느낌으로 왠지 상큼한 느낌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책상에 앉아 제 일을 하며 시간이 조금 흘러가면서 저는 이상한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거름 냄새 비슷한 냄새가 나는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저는 단지 어디에서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잠시 거름을 주나보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5. 점심시간이 되어 식사를 하러 가자고 사무실 직원이 왔길래 방문을 나서면서 " 참 좋다, 조용하고...서울 시내에 이렇게 절간 처럼 조용한 곳이 우리 부대속에 있었던것을 몰랐었네..."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바깥으로 나 있는 계단을 내려가는데 역시 예의 그 거름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이건 무슨냄새지?  거름 냄새 같기도 한데??" 라고 일행에게 말하자 "아...그건 바로 저기 있는 밭에서 나는 계분 냄새입니다" 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5. 가만히 아래쪽 담장 넘어를 보니 도로와 사무실 사이에 담장을 벗하여 작은 밭이 있는데 고랑이 파여있고 열병하듯 비닐로 덮여있는 밭 이랑 가운데에 동그랗게 공간이 나있는 것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무슨 채소인지는 모르지만 봄이라서 파종을 하고 계분을 뿌린 모양이더군요. 제가 처음 창문을 열었을 때는 냄새를 느낄 수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후각이 마취가 되어 잘 느끼지 못했던 냄새는 바로 계분 냄새였던 것입니다.

6. "에고...어쩐지 경치가 좋다 했더니 망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속에서 맴돌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심정을 알기라도 하는듯 " 봄에는 잠시 냄새가 나는데 채소가 자라고 풀이 무성해지면 냄새가 사라져서 괜찮아집니다" 하는 것입니다. 어쩔수 없이 송화가루가 이리저리 날리는 봄 동안에는 맡아야만 한다는 말이겠지요.

  오늘은 서울 시청앞에 녹색광장이 마련되어 시민 누구나가 그 공간에서 마음껏 자연을 만끽하게 된 날입니다. 아직은 분수와 잔듸가 전부이지만 이제 나무도 심어 제대로 가꾸게 된다면 센트럴파크 처럼 아름다운 도심속의 공원이 되겠지요. 비록 계분 냄새가 난다고 해도 서울 시내에서 이렇게 호젓한 숲길을 걸어 사무실에 이르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을 것입니다. 길섶 좌우에는 할미꽃을 비롯하여 민들레가 하얀 덩어리를 만들고( 민들레중에는 흰색, 노랑색만 있는줄 알았는데 빨강색 민들레도 보았습니다) 산딸기가 노란 꽃을 피우고는 '조금만 기다리면 맛있는 열매를 주마'고 이야기 하는 듯한 숲길...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릴수 있음은 제게는 행복이 아닐까 합니다. 저는 제 사무실 지역을 <체육부대 속의 조계사>로 명명을 하였습니다. 그만큼 독립건물이 호젓한 숲속에 있으니 마치 절과 같이 느껴지니 말입니다. 그깟 계분이야 자연에서 얼마든지 맡을 수 있는 우리의 냄새이고 일부러라도 맡고자 하는 냄새니까 말입니다.  그런데.....한번 생각해 보시겠어요?  손님이 제 방을 방문 했을 때 계분 냄새를 맡으며 커피건 녹차건, 생강차건 차를 마신다는것이 정말 잘 어울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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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5-03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녜.. 정말이지 누구를 초청하기 전에는 제 방에 들리는 사람들이라고는 결재를 위한 사무실 사람들 뿐이랍니다. 특히 독립건물로 입주 인원도 극소수인지라 막말로 도나 딲으면 될성 싶습니다. 계분은 바로 인근의 꽃단지에서 필요로 하여 만들고 있는 퇴비라고 하는데 자꾸 맡다보니 이제는 제법 익숙해 진것 같습니다. 어디...서울에서 이만한 공간을쉽게 갖을 수 있겠어요? 이마저도 제게는 행운이 아닐까 합니다.
 

오랜동안 이곳에 들리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서 말씀드리지 못합니다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깊은 좌절도 맛보고 정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짓말의 극치가 무엇인지도...또 그것을 여과없이 받아 들이는 사람의 행태도 느껴 보았습니다.

 단 하나 확실한것은 일이 종료되고 나서 자초지종을 제대로 알고 사과를 한다해도 그 이전에 마음속 깊이 남겨진 상처....  갈갈히 찢겨진 가슴의 상처는 남는다는 점입니다. 사과는 단지 순간의 위로와 제대로 알게 된것에 대한 현실일뿐 이미 셀 수 없는 조각난 가슴의 상처는 다시 꿰맨다 해도 조각조각이 이어질 뿐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울분으로...그리고 나중에는 연민으로 변하는 제 마음을 보고 아직도 모질게 세상 살기에는 적합한 삶이 아니라는것을 느꼈고, 단지 쉽게 오지 않는 오랜 기간의 휴식기를 가질 수 있었으며 그나마 시간이 흘러 이제는 어느정도 안정도 된듯 합니다.  제가 오랜 잠행에서 돌아왔을 때, 잘못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한 사과를 받으며 "왜? 해명을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머릿속에...그것도 귀가 얇은 사람의 뇌에는 해명이 단지 변명으로 들릴뿐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스스로 모든것을 알게 되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제 주변의 일이야 제 가슴이 찢어지든 아니든 저에게 국한된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만,  어떤 연유로든 이곳에 오지 못한다면 그것은 뭉개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답답함만 낳게 될 것이니까요....  오랜 잠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와 님들의 글을 읽으며 제 자신이 참 게으르다는것을 느낍니다. 이제 다시 활발하게 이곳에 오렵니다...많이 찾아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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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4-04-3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동안 수수께끼님이 보이지 않아 걱정을 했습니다. 어째든 문제가 끝났다고 하시니, 좋은 모습으로 서재에서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Smila 2004-04-30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행^^을 마치셨다니 기쁩니다. 마음의 상처가 빨리 아물기를 바랍니다!

가을산 2004-04-30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생이 많으셨나봅니다. 침잠 기간으로 보아 범상치 않은 일이었을 것 같은데... 서재에서 훌훌 털어버리세요.

저는 어떤 일을 당할 때 당장은 마치 마취된 것처럼 무감각하게 지나가는듯 하지만, 위기가 지나가면 마취가 풀린 것과 같이 비로소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통증'은 여러 가지 감정과 정서를 의미합니다.
군인처럼 남성다움과 인내, 감정의 억제 등의 덕목을 요구받는 것에 익숙해진 분들은, 겉으로는 회복되어도 속에 남는 상처는 오히려 더 오래갈 수 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꼭 '환기' 시켜버리시기 바랍니다.

프레이야 2004-05-0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수께끼님, 보이지않아 바쁜 일이 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마음의 상처 훌훌 날리시기 바래요. 서재에서 님의 좋은 글 다시 자주 만나기 바래요.^^

비로그인 2004-05-01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님들의 격려 말씀에 마음의 상처도 씻은듯 다 나아지는것 같습니다. 언제까지고 머무를수 없기에 이제는 훌훌 털어버리렵니다. 지금 제가 있는 사무실이 2층이고 바로 창문 곁에는 소나무 가지가 손에 닿을듯 가까이 있는데 바람이 불 때 마다 약간씩의 송화가루를 날리는데 저는 한꺼번에 다 날려 버릴께요.. 걱정해주신 님들께 감사드리며 예전 처럼 제 자리에 정좌를 하고 차 한잔속에 삶의 향기를 느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1. '국군체육부대'는 엘리트 체육인의 훈련 장소로 부대를 일부 개방을 하고 있습니다. 태능 선수촌에 다 수용할 수 없는 인원중의 일부 종목 선수들은 국군체육부대에서 훈련을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태능 선수촌에서는 훈련장의 여건이 어려워 마련되지 못한 종목이 있기 때문인데 대표적인 것이 근대4, 5종,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경기), 양궁(주니어), 근대5종(주니어), 레슬링 상비군 등등의 종목 선수들이 상무 부대에 입촌하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2.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한가지 설명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체육 육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집니다. 바로 국가 대표급을 양성하여 세계선수권대회나 올림픽, 아시안 게임 등에서 국위를 선양할 체육인을 양성하는 엘리트 체육과 다른 한가지는 생활체육으로서의 종목 확산을 목적으로 취미생활에서 조금더 진보한 형태로 운동을 즐기는 경우...즉 동호인 위주의 생활체육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그 외에 종목별 활동을 통하여 나중에 프로 구단에 입단하는...말 그대로 몸이 재산이라서 몸을 이용한 운동 경기에 종사하는 프로의 세계가 있습니다.

3. 과거의 동구권과 후진국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의 체육은 생활체육입니다. 브라질이나 독일 등의 클럽의 형태는 다소 다르지만, 서구의 일반 학교 수업은 오전에는 교과서 공부를 하고 오후 3시 이후에는 대부분 체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종목은 물론 본인의 취향과 적성, 또는 본인이 하고 싶은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7개나 획득한 미국의 수영 선수(마크 스피츠)는 의과대학의 학생이었으며. 미국 프로 리그의 각 종목에서 활동중인 선수들 대부분은 대학을 훌륭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 선수들입니다. 이들은 운동이라는 격한 종목을 스스로가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바로 스스로 즐긴다는 것이 생활체육이며, 생활체육중 특출하게 뛰어나서 올림픽에도 출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4. 저희 부대에는 아직 고등학교에 다녀야할 어린 학생들이 여러 종목에서 상비군이라는 이름으로 입소하여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작년부터 주욱 지켜보았는데 마치 신분이 학생이 아닌듯 전혀 학교에 갈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눈만 뜨면 새벽부터 운동에 매달리고 밤에도 또 운동에 매달리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는 남녀 고등학교에 적을 둔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년에 한 차례도 학교에는 가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번 졸업 시즌에는 졸업식을 하러 학교에 가더군요.......그나마 가는 목적이 '학교를 빛낸 졸업생'으로 표창을 받기 때문이라더군요...

5. 이런 학생들이 운동에만 전념하고 전혀 학교 공부와는 담을 쌓고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반드시 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삶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보장은 없을 것입니다. 만약 성공이 목표라면...그리고 유수 기업의 실업팀에 높은 연봉을 받고 돈을 버는 것이 목표라면 할 말이 없겠습니다. 그리고 이 선수들 모두가 훌륭한 성적을 내는 국가 대표로 성장을 하여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보장은 더더욱 없습니다. 그 중에서 겨우 한 두명 정도나 선발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것은 이들이 감성적으로 예민할 때 학교의 수업보다는 인성 교육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이는 학교에서 수업과 함께 자연스럽게 학생들에게 전이되는 것인데 이들이 보는 것은 운동 경기 뿐이고 이들이 만나는 사람들은 코치진과 같이 훈련중인 소수의 선수들이 고작입니다. 그렇다고 성적이 능력을 대변하여 목이 언제 짤릴지 모르는 코치진이 운동 이외에 이 학생들의 인성까지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6. 결국, 이들이 성공하지 못하면 그 종목에서의 낙오(도태라는 말이 맞을 것 같습니다)는 물론이고 학교나 사회로 되돌아가도 이들이 설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배운것이 있어야 뭐든 할 수 있고 사람들과 잦은 접촉을 했어야 부대끼면서라도 살아갈 수 있을텐데 그런 기회조차 없었으니 사람들을 만나기도 겁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대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간단하게 영어라도 익힐 수 있도록 영어 회화 시간을 마련해 주었지만, 말 그대로 단어 하나 알지 못하는 전혀 깡통인지라 상황에 따른 문장을 한글로 적어서 알려주기도 합니다.

7. 바로 이런것이 우리 체육계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TV중계를 보고 환호도 하고 감격도 합니다. 얼마나 늠름한 모습입니까? "장하다..대한의 아들 딸들.."  이라는 수식어로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 마다 열광을 하기도 하지요. 그리고 그런 선수들에게 여성 팬 또한 줄줄 따라 다니며, 어떻게라도 한번 사귀어 볼까 야단들이지요. 신문에 나오는 스포츠 스타들의 부인이나 애인을 보면 다들 미스코리아 뺨칠 정도의 미모들을 뽐낼 정도로 미인들이 많이 사귀려고 하는 모양입니다. 저도 들은 이야기지만 다 그런것은 아니지만 어느 스포츠 스타와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인데 도무지 코드가 맞지 않아서 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으로 과정을 밟은 사람과 그렇지 않았던 사람의 코드가 맞는다면 그거야 말로 정말 웃기는 일일테니 이 부인이 하는 하소연은 제가 앞에서 말씀드린 내용을 이해 하신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임을 이해 하실 수 있으실것입니다.

8. 언제쯤 우리도 서구 사회처럼 취미로 운동을 하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일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과 싫은데도 억지로 하는 일의 결과는 엄청납니다. 물론, 그 일에 매달리는 열정 또한 다를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운동...그리고 틈만 나면 잠자기....밥먹고 운동하고 잠자고...밥먹고, 운동하고 잠자고....일년 365일을 하루도 걸르지 않고 반복되는 이들이 일개미와 다를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관련 기관이나 학교 측에서 신경을 조금이라도 써 준다면 좋겠지만 수업은 교육부, 그리고 체육은 문체부로 나뉘어져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관계 기관의 행태가 아직도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체육계의 현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들이 점수를 조금 더 얻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또 수업을 받아 머릿속에 지식을 조금 더 잡아두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그들이 함께 하는 삶 속에서 자신의 책임이 무엇이며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해야하는것이며, 또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은 어떤 것인가를 알려주고, 윗사람과 공중도덕이 무엇이며, 경기중 볼꼴 사납게 가래침을 자신이 쓸어질지도 모르는 경기장에 뱉어서는 안된다는 의식...이러한 인성이 무엇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일겁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우상으로 알고 죽어라고 쫒아다니는 사람들이 측은하고 가엽게 느껴지는것은 제가 그런 내용을 너무 잘 알고 있고, 또 선수들이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는지라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세상은 밚이 변해서 좋아하던 싫어하던 그거야 그 사람들의 선택권이겠지만......한편으로는 그러한 세태가 한심스럽게 느껴지며, 씁쓸한 마음을 숨길수가 없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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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산 2004-03-17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운동 선수들의 생활을 몰라서 그러는데, 정말 책 한권 읽을 시간이 없나요?
운동선수들은 안그래도 운동선수로서의 수명이 짧은데, 그렇게 사회를 모르면 수수께끼님 우려대로 사회에 나와서 너무 막막하고, 설사 성공한 선수라 하더라도 '봉'으로 이용당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최소한 하루 한두시간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교양강좌'를 선택해서 듣거나, 기숙사에 도서실이라도 구비해 두어야 할 것 같네요.
선수들이 수업을 빠지는 것은 알았지만, 그정도일 줄이야..

비로그인 2004-03-1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이 없다기 보다는 그네들의 생활 습성이 책을 멀리한지 오래되어 습관화 되지 않았고, 그러다보니 책만 들면 졸음이 온다고 합니다. 특히 과격한 체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 아닌 사격, 양궁 등의 선수들도 틈만 나면 잠자기 바쁜데...이들을 지도하는 코치진 또한 그런 식으로 운동을 해 왔기에 무감각하게 아이들을 관리하는것 같습니다. 제가 걱정하는것 처럼 이들이 성자아여 절름발이 사회인이 될것이라는것은 명약관화인데...지금 뭐라도 한다고 호들갑을 떨어서 될 일도 아닌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님에도 체육계나 교육계 모두가 내 일이 아니라는듯 뒷짐을 지고 있는 행태가 더욱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체육인이 아닌 관리자의 입장에서 이들을 관리하다보니 많은 문젯점을 볼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들을 진정으로 위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어쩔수 없는 훈련이라 할지라도 시간 활용과 생활에 대한 나름대로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것입니다. 비록 영어 발음을 한글로 적어 상황별로 외우게 하고는 있지만, 원래 영어는 yes도 모르고 no도 모르는 사람이 더 빨리 배우는 법인지라 나름대로의 희망을 가지고 회화교육에 임하고 있습니다. 최소한 외국에 나가서 잠자는것과 밥먹는것, 그리고 길 찾아가는 것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중점을 두고 교육중인데 다행히 호응이 좋은것 같습니다. 물론, 점심시간에 쉬어야 할 시간을 이들 교육에 배려하는 여러분들의 마음이 고마울 따름이랍니다.

가을산 2004-03-17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병원 바로 앞에 대전시의 양궁장과 싸이클장이 있습니다.
가끔 시 대표선수들이 아파서 오곤 하는데, 얼마 전에는 '꿈나무'인 중학생이 왔습니다.
위염 증상이었는데, 대회를 앞두고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위염 같았습니다.
그래도 시에서는 1등을 하는 아이라는데.... 그 스트레스가 무척 큰가봅니다.
 

1. 제게 있어 음악은 하나의 생활이었습니다. 어떤 악기를 연주한다거나 그룹에서 밴드나 드럼을 맡은것이 아니고 단지 귀로만 듣는 음악일 뿐입니다. 그 중에서도 가요는 전혀 꽝이고 소위 말하는 고전음악 쪽입니다. 고등학교때만 하더라도 음악 시간에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고전음악은 감상을 빙자하여 두 눈을 감고 꿈나라에 가는 하나의 수단이고 도구일 따름이었는데, 대학 1학년때의 미팅 파트너로 인하여 클래식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좋아서라기 보다는 오기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것이 아니었나 합니다.

2. 첫 미팅의 상대는 음악에는 대가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종로 1가에 있는 "바로크"라는 고전음악 감상실에 데려가는데 분위기부터가 침침하고 고막을 터트릴것 같은 음장감은 잠자는 음악 치고는 무척이나 거부감이 느껴졌지만 파트너를 고려하는 마음으로 졸음을 참으며 들었습니다. 그날의 미팅은 완전히 고역이었는데, 문제는 음악감상실을 나와서 찻집에서 음악을 모른다고 구박을 하는 것이었기에 속에서는 오기가 부글거리고 있었습니다. 대학입시 준비로 밤 공부를 하다보면 주로 심야방송에서 들려주는 팝송이 알게 모르게 귀에 내리 앉는지라 음악=팝..이라는 등식이 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을 따름이었지요.

3. 그 후로는 무조건 음악 감상실을 전전하면서 귀에 음악을 익히는데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몰랐었던 고전음악도 자꾸 들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그러다보니 스코어라고 하는 악보도 구해서 대편성인 교향곡의 악기별 연주도 분별하며 감상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게 되었습니다.그제서야 음악감상실에서 신이나서 팔을 흔들며 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던 광적인 매니아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비록 뛰어난 음질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거금을 주고 오디오시스템을 장만을 해서는 정말로 애지중지 듣고 또 들었습니다. 레코드판 또한 소위 "빽판" 이라고 해서 외국에서 발매된 음반을 국내에서 다시 금형을 뜨고는 찍어내어 자켓도 복사를 하여 발매를 했었는데 원반과 달리 한번 더 원반으로 복사를 했기에 음질이 떨어짐에도 수십번을 반복해서 듣기도 하며 음악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4. "성음사"라는 음반 회사가 탄생하며 라이센스로 음반을 발매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음반의 음질은 지금까지 들어왔던 "빽판"의 음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바로 오케스트라의 한 가운데서 듣는 연주 같았었습니다. 당시에는 비싼 금액을 주고 구할 수 있었지만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은 돈은 모두 음반 구입에 사용을 할 정도 였습니다. 한편으로는 학교에 음악 감상실이 생기고 돌아가신 육영수 여사가 음반을 기증하여 감상실을 운영하게 되었는데 그 음악감상실의 운영을 저희가 맡게 되었고, 백병동 교수의 해설로 음악감상회를 운영하기도 하였고, 피아니스트 김용배의 연주와 해설도 곁들인 음악 발표회를 여는등 비교적 다양한 활동을 하였던것 같습니다.

5. 클래식을 듣는 사람이나 연주한 사람 모두에게는 이상한 습관이 있습니다. 그 습관(관행이나 관습이라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이란 수십년간 연주 활동을 해 온 음악가들의 연주를 전혀 음악과는 관련이 없는 일에 매다려 살고 있는 매니아들이 그 연주를 평한다는 것입니다. 연주가 잘 되었니, 못 되었니...명반이다 아니다 등등 전문가의 연주에 시비를 거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 분들은 전혀 연주와는 관계가 없으며 단지 듣는 귀만 가지고 계신 분이라는 것이며, 또 그분들의 평이 바로 음반에 대한 평으로 자리매김이 되는 현상이 하나도 이상하게 받아들여지는것이 아니라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입니다.

6. 명반.....소위 음악 애호가들이 손꼽는 연주를 명반이라고 합니다.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명반에 담긴 명연주라는 개념을 이해하시기 힘드시겠지만, 음악을 듣다보면 명반이 왜 명반인가를 알게 된답니다. 지금은 손바닥속에 쏙 들어가는 컴팩트화된 음반이 나오고, 더구나 DVD등 디지털을 이용한 음반이 발매되어 명반의 개념은 많이 퇴색이 되었고, 과거의 명반도 디지털로 리메이킹 되어 그 가치 또한 많이 떨어진것만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기계음인 디지털보다는 색감을 느낄 수 있는 아나로그가 따스하게 피를 덥여주고 있는것은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랍니다.  그런 명반을 구하기 위한 노력은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수도승이 고행의 길로 접어들고 수행을 하듯 어렵게 어렵게 구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로 동두천이나 오산의 미군기지 주변에서 배회를 하다보면 중고 레코드 가게에 커다란 키의 미군들이 옆구리에  끼고 팔려고 나오면 쪼르르 달려가서 클래식 음반이 있나 없나를 살펴보고.....며칠을 고생해서 한 장이라도 구한다면 천하의 보물을 얻고 개선 장군이라도 된듯 집에 와서는 친구들을 불러 모아 음악을 듣고는 하였습니다.

7. 당시에는 쏘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물품을 구한다는것은 감히 상상도 못하였는데,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구한다거나 모스크바 필하모니의 연주를 구하는것은 물론, 소지하는것 조차도 금지 사항으로 되어 있었던것을 미군을 통하여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컬 합니다. 한 장 두 장 쌓인 레코드는 어느덧 1000장이 넘는 자산이 되었고, 미국에 갈 기회가 있어 미국에 가서는 시간을 쪼개어 쌔크라맨토의 Towerrecord 본사의 매장에 가서 그동안 구하지 못했던 레코드를 마음놓고 잔뜩 고르기도 하였습니다. 그 구하기 힘들었던 레코드나 얼마나 흔하던지....세상에 단 1000장만 만들어낸 음반도 있어서 구해 오기도 하였는데, 제가 고른 음반의 수량이 제법 많다보니 판매담당 부사장이 직접 나와서는 정말로 다 살것이냐고 반문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귀국시 검색대에서 큰 가방에 하나 가득  담겨있는 레코드를 보더니 압수보다는 그 정성이 지극하여 통관을 시켜 주겠다고 할 정도로 틈만 나면 레코드를 모았습니다.

8. 지금은 제 방 한구석에 차곡히 쌓여 옛날처럼 주인이 나를 울게하지 않을까를 기다리는 음반들...  가만히 생각해보면 3000여장 되는 원판 중에는 겨우 한번 듣고는 두번 다시는 듣지 않는 음반부터 너무 많이 들어서 자켓에서 꺼내서 손에 들고보면 레코드 바늘이 워낙 많이 지나가서 뺀질뺀질 거리는 음반까지 다양하지만 지금 3000여장을 한번씩만 듣는다 해도, 70분(평균 연주시간) 곱하기 3000장만 하더라도 21만 시간을 들어야 하는데 죽는날 까지 듣는다해도 못 듣는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레코드는 레코드장에 가지런히 언젠가 나를 꺼내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정열을 하고 서 있습니다.

9. 지금은 레코드를 꺼내어 플레이어 위에 올려두고 듣든다는 것은 디지털에 비하여 상당히 번거롭기에 별로 잘 듣지 않는 편입니다. 소위 LP판의 단점인 스크레치에 의한 잡음도 하나의 문제지만 컴팩트화된 생활용품 때문에 따뜻한 정이 담긴 아나로그가 점차 우리의 주변에서 사라져 가는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끔 자켓을 들여다보면서 자켓에 담긴 음악의 내용을 살펴보면 전혀 생경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역시 그 그림도 정감있게 언제나 저와 함께 하는것 같습니다.

옳고 그름이 명확하여 칼날같은 판결을 내리는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디지털....  언제인지는 모르나 우리의 생활도 점차 차갑게 차갑게 디지털화 되어가며 사람과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며 쌓아갔던 온정은 점차 우리로부터 멀어지는것이 아닐지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조용하게 전원주택에 몸을 담고 그동안 아껴두었던 아나로그 음반의 따뜻한 음색을 느끼며 따뜻한 아랫목에서  화롯불에 군밤을 구워 먹으며 감상할 수 있는 날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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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03-07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에서 있었던 일화가 인상적이네요^^; 저도 모아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시간계산을 하곤 했는데...새발의 피군요. 수수께끼님의 음반에 비하면...
지직대는 스크래치 소리가 들어보고 싶어졌어요.

2004-03-07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4-03-07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맞아요...역시 치매 증세가 틀림없나봅니다. 클래식 매니아로만 만족하고 있습니다. 오디오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아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말았습니다. 한동안은 "스테레오 뮤직"이라는 잡지를 열독했었는데, 신보 소개와 연주에 대한 평이나 마이너 레이블의 출간 소식도 좋지만 오디오에 대한 광고와 사용기등이 은근히 구매욕을 잡아내기에 과감하게 이별을 해 버리고, 지금은 거들떠도 안본답니다(음...이것이야 말로 貧者의 서글픔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