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묻다 - 특별한 정원에서 가꾸는 삶의 색채
크리스틴 라메르팅 지음, 이수영 옮김, 페르디난트 그라프 폰 루크너 사진 / 돌배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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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에 관한 책, 정원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라면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기도 전에 무작정 읽어보고 싶어지곤한다. '정원을 묻다'는 세계의 여러 정원사들이 가꾸는 자신만의 정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가장 먼저 떠올린 건 타샤의 정원이었고 우리나라 정원사인 오경아님의 정원 이야기였다. 

처음에 책을 받았을 때, 생각보다 정돈되지 않은 듯한 정원의 모습에 좀 당황스러웠고 정원가꾸기에 대한 기초적인 팁이 담겨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책에 담겨있는 정원 이야기는 내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 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별로 손이 가지 않다. 그래서 사진만 훌렁거리며 대충 읽고는 덮어뒀다. 


며칠동안 계속 책을 가까이 두고 틈 날때마다 한 챕터씩 다시 보고 그러다가 마음을 다잡고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기 시작했는데 처음의 그 느낌이 아니다. 멋지고 화사한 정원의 모습만 기대하고 펼쳤는데 마구 자라게 그냥 둔 것 같은 정원 사진의 모습에만 시선이 가서 이 책에 담겨있는 정원사들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 책이 별로였었나보다, 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인터뷰형식으로 진행된 11명의 정원사들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정원을 가꾸기 위한 도구에서부터 어울리는 식물을 찾는 것에 대한 이야기와 각자가 생각하는 자기만의 정원에 대한 개성과 아이디어가 때로는 삶의 모습과도 중첩되어 나타나 읽을수록 매력을 느끼게 된다. 정원은 자신이 가꾸고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섬이기도 하고, 정원은 모든 식물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고, 정원은 항상 새로워야 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실제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는 힘든 노동을 마다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이 고됨이 아니라 삶의 기쁨과 행복의 원천이라는 것은, 표현만 다를 뿐 모두가 똑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가만 생각해보니 내가 생각한 정원이라는 것이 어쩌면 요즘 유행처럼 생겨난 플라워까페 같은 것만을 떠올려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기대치와 달라 책을 대충 읽어버린 것 같다. 물론 일년내내 이쁜 꽃이 피어나는 정원이라면 더 좋겠지만 꽃이 있는 정원만이 최고의 정원인 것은 아니라는 걸 생각해본다. 

자연 그대로의 생태숲이 가장 좋은 것이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인공적으로 숲을 가꾸고, 작게는 나만의 정원을 꾸미게 되었을 때 보기에 이쁜 모습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모습이 조화를 이루고 환경과 어울리는 조화로운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작은 텃밭규모의 과수원 나무 사이에 해먹을 걸어놓고 잡초를 뽑다가 해먹에 누워 쉬는 어머니 모습을 보니 일의 고됨이 아니라 정말 삶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나도 가서 해먹에 누워봐야지, 라는 로망을 갖게 되었는데 열한명의 인터뷰중에 "정원에서 가장 완벽한 자리는 아름다운 나무 아래 놓인 해먹이라고 생각해요. 그 주변으로는 좋은 향이 나는 식물이 가득하고요"라고 말한 하이케 봄가르덴의 말이 떠오른다. 아, 생각만으로도 괜히 웃음이 난다. 


한가지 더. 여러가지 도움이 되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멋진 정원사들이 꼽은 꼭 방문하고 싶은 정원이라거나 좋아하는 세계의 정원에 대한 정보는 기록해두었다가 기회가 된다면 꼭 찾아가보고 싶은 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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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 - 온전히 나답게 사는 행복을 찾다
이시하라 사치코 지음, 신은주 옮김 / 더퀘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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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이라는 제목은 솔직히 크게 끌리는 제목은 아니다. 그런데 패션디자이너, 스타일리스트인 저자의 이력을 보고 있으려니 뭔가 사소하고 소소하지만 나만의 멋을 찾아내는 좋은 아이디어를 얻게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왠지 너무 잘 갖춰진듯한 인테리어를 보면 괜히 나와는 상관없어 보여 괜한 자괴감이 생기는데 그렇지 않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느낌이랄까, 뭐 그런.

 

역시 저자 이시하라 사치코는 소소한 자신의 일상과 그 일상을 특별하게 해 주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고, 타인의 시선에 너무 얽매이지 않으면서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책은 그런 일상의 이야기를 적은 글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꽃을 꽃병에 꽂지않고 컵에다 꽂는 것이 왜 이상한 것이고 생각을 유연하게 하는 것인지 좀 당황스러움으로 프롤로그를 읽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일본인들은 메뉴얼대로 움직이는 것만 안다고 들었었는데, 실제로 여행갔을 때 햄버거를 주문하고 받으면서 케첩을 하나 더 달라고 했더니 알바생이 멈칫하면서 뒤쪽의 매니저에게 문의하고서야 하나를 더 내어주는 것을 보고 정말 메뉴얼대로 생활하나보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면에서는 일관되고 정직함일 수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답답하고 융통성없는 고지식함일 것이다. 그런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컵에 꽃을 꽂는것을 이상하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책의 첫머리부터 좀 당황스러웠지만.

 

글의 하나하나를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흐름대로, 사치코씨가 말하듯이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되고 어떤 즐거움을 주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이유일 것 같다.

화장을 하지 않고 염색도 하지 않고 굽이 없는 플랫슈즈만을 신고... 이 책이 이미 인생의 중반을 지난 시점에서 자기자신만의 멋을 찾는 습관에 대한 이야기임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실제로 반백이 넘는 시점에서 나는 어떤 삶을 지향하고 진정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번 고민하고 삶의 방향을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의식주와 관련된 자신만의 돋보이는 스타일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지만, 내게도 도움이 되는 글들이다. 나의 스타일을 잡는것은 힘들겠지만 내 경제적 여건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나 자신만을 위한 선물을 고르는 것이라거나 때로는 골동품같은 멋진 식기에 음식을 플레이팅하는 것, 똑같은 식탁과 침구류지만 이색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천으로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리고 가장 크게 와 닿는 이야기는 내가 생을 마감할 때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 내게는 정말 소중하고 값진 것들이지만 내가 죽고난 후 타인에게는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진같은 경우 더욱 그럴 수 있을텐데, 추억할 수 있는 잘 나온 사진 몇장을 빼고 과감히 지워버릴 수 있는 마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치코씨의 경우 사진을 정리하고, 집에 찾아오는 지인들이 자신의 집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바로 이야기해달라고 하는데, 나 역시 무조건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이제 조금씩 미니멀라이프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냥 가볍게 글을 읽어서 좋았다,라는 생각뿐이었는데 다시 되짚어보니 이제 확실히 와 닿는 느낌이다. 50이후, 인생의 멋을 결정하는 습관들... 이제 정말 좋은 습관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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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도시에는 아름다운 다리가 있다 - 공학으로 읽고 예술로 보는 세계의 다리 건축 도감 지적생활자를 위한 교과서 시리즈
에드워드 데니슨.이언 스튜어트 지음, 박지웅 옮김 / 보누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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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 동네 하천에 배고픈 다리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하천으로 나뉜 이웃동네를 연결하기 위해 평소 마른천인 곳에 시멘트로 연결선을 만든 것 뿐인 다리인 것 같다. 그렇게 실용성만을 갖춘 다리를 보다가 바닷가에 짧게 놓여있기는 하지만 흔들거리는 구름다리를 보고, 더 시간이 지나서는 배고픈 다리의 고급버전인 잠수교를 보게 되고 2년전에는 유럽에서 아름답다고 알려진 카를교도 걸어보게 되었다.

몇백년전에 만들어진 카를교는 수많은 관광객이 건너다니면서 붕괴의 위험이 커졌다는 뉴스를 본것도 같은데, 지금은 과학적인 공법으로 다리를 건축하지만 그 옛날에 어떻게 보와 무게하중과 미적인 감각까지 갖추면서 긴 다리를 만들 수 있었을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잔뜩 기대를 하고 이 책을 펼쳐들었다. '공학으로 읽고 예술로 보는 세계의 다리 건축 도감'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덤으로 세계의 아름다운 다리를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다리는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솔직히 공학적인 건축 설계 도감과 설명은 이해하는 것이 쉽지도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공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만 확인을 했지만 그래도 베네치아의 코스티투치오네 다리로 인해 베네치아 교량 발전이 가속화되었다고 하는 설명이라거나 기술과 설계의 발전으로 더 다양하고 많은 다리가 건설되었다는 것들은 이동하중이나 교량 같은 것을 몰라도 그저 다리를 만드는 재질만 이해하면서 봐도 좋았다.

한강다리에 대해서도 특별히 생각해본적은 없는데 도시발달의 한 축으로 이해하는 것도 색달랐고, 보석상과 강변의 건축물의 조화로 명성이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베키오 다리를 다시 보는 것도 좋았고, 아주 오래전 사진배경으로만 인식했던 타워브리지가 새삼 건축물이 아닌 다리로서의 역할을 하며 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좋았다.

 

스페인에 가본적이 없는데 언젠가 스페인에 가게 된다면 톨레도에도 꼭 가보고 싶었다. 그곳에 엘 그레코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이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보니 트라야누스황제의 명으로 만들어진 알칸타라 다리도 보고 싶어진다. 알칸타라 다리는 이천년이 넘었는데 트리야누스 황제가 영원히 남을 다리를 건설했다, 고 하는데 실제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그 옛날에 석조로 다리를 만들어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 톨레도에 가고 싶은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건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도 석조아치교라고 하면 정말 세밀한 설계로 견고하게 만들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실제 이 다리의 유선형 교각은 하류와 달리 상류쪽이 강이 범람할 때 받는 물의 저항을 줄일 수 있도록 유선형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홍예석과 벽돌의 조화로 건설된 알칸타라 다리는 사진만으로도 충분히 놀랍다.

알칸타라를 포함해 세상의 많은 아름다운 다리를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올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일이 되기를 기다려보며 지금은 그저 책장을 넘겨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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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고 있는 시,는

국어시간이 아닌 국사시간에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선생님께서 또박또박 읽어 주셨던 박노해시인의 '지문을 부른다' 였습니다. 밑줄을 그어가며 광야에서 백마타고 오는 초인의 의미는 무엇인지 배워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들으면서 바로 내 마음대로 공감하게 되는 시. 이것이 시를 읽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시란 무엇인가라고 묻는 대신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지 않고 시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라고 묻곤 했다. 시를 나 혹은 너라고 바꿔보기도 했다.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더 할 수 있는가.

 

그러다보니 지금 여기 내가 맨 앞이었다. 천지간 모두가 저마다 맨 앞이었다. 맨 앞이란 자각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니고 감성에서 우러나왔을 것이다. 존경하는 친구가 말했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관이 아니고 세계감이다. 세계와 나를 온전하게 느끼는 감성의 회복이 긴급한 과제다. 우리는 하나의 관점이기 이전에 무수한 감점이다.

 

세계감과 세계감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우리가 바라마지 않는 새로운 세계관이 생겨날 것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평범한 진리가 놀랍도록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모아놓은 조금은 낯선 낯익은 이야기가, 오래된 기도 같은 이야기가 다른 삶,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았으면 한다." - 시인의 말

 

 

지금 여기가 맨 앞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 바람 햇빛도.

저마다 모두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 이문재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 지금 여기가 맨 앞 전문

 

 

 

스물다섯 번의 행운과 스물일곱 살의 불행. 행운이었을까?

 불행이긴 할까.

 신체를 잘라내고 타낸 보험금.

 천만다행을 믿어?

 날개도 다리도 믿지 않아, 시간을 공평하게 자르지 못하는 것처럼, 삐뚤빼뚤하게 잘린 신체 절단 마술처럼, 어느순간부터 실험이고 시험인지. 칭찬과 비난과.

 비가 오고 개는 순간이 나뉘고 있어. 표구사가 입술을 찢으며 웃을 때, 박수가 태어나네. 변태해 날아가는 비둘기? 종과 종 사이. 몸이 잘리는 기쁨과 멀쩡히 살아날 거라는 실망 사이.

 잘리기 전과 후, 다시는 같아질 수 없어.

 매초 다른 사람으로 분리되고 있잖아. 괜찮아?

 괜찮아.

 강렬한 긍정 속에서 다시

 태어나. 언니의 냉담에 동참하며. 엄마의 믿음에 부응하며. 돌이킬 수 없는 세례의 끝. 미개한 신앙인 타고난 모으로

 입술을 찌으며 웃을 수 있어. 

 

- 권민경 시집 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 플라나리아 순간 일부

 

 

세계관,이라거나 세계감이라거나... 뭔가 마음속에서 훅 치고 올라오는 그런 비장함이 있었던 그때의 기억이 사라져갈 즈음 뜻하지 않게 병원을 다니게 되었고 시,라는 것은 비장함만이 아니라 그저 문장 하나만으로도 공감을 하게 되고 말로는 딱히 표현할 수 없지만 왠지 위로를 받게 되는 것. 그래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공감하고, 내가 위로받고, 내가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시,가 내게는 시,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렇게 시를 읽는 것이겠구나...같은.

 

 

 

 

 

 

 

 

 

 

 

 

 

 

 

 

 

 

 

처방전

 

짐승은 몸이 아프면 먹이 활동을 멈춘답니다. 우리들 측면에선 단식인 셈입니다. 몸을 비우고 기다리는 일, 내면의 번다함이 가라앉도록 말미를 주는 일입니다 스스로르 들볶는 일도 멈춰야겠죠

 

 몸이 아프다는 사람에게 무어라 보탤 것은 없고 마음만 앞선 탓입니다 나름의 처방을 내렸고 탕약도 지었습니다 달여서 인편에 전하겠습니다

 

 처방 하나 : 하루치 연료를 보충하는 아침은 꼭 챙겨야 합니다 체에 거른 햇살이니 미온수에 섞어 마시면 몸도 마음도 더워지고 체온을 유지할 겁니다 꼭꼭 씹을 때마다 간밤의 악몽이 바스러지도록 신경계를 조절했습니다 싱거운 농담도 넣었으니 계란찜이 짤 때 곁들이면 좋겠습니다

 

 처방 둘 : 악력을 첨가했으니 어깨 결리는 저녁에 효과가 있을 겁니다 엄지손가락은 소화불량으로 명치끝이 뻐근할 때 요긴할 겁니다 과용하다가 의탁하는 습관이 생기면 후일 더 큰 상실감에 시달리게 되니까 유의해야 합니다

 

 처방 셋 : 점심은 황제처럼 먹어야 한답니다 식욕보다 평온함이 비만도 예방하고 효과적입니다 아침에 마신 약이 정오무렵 발현됩니다 누구와 무엇을 먹더라도 만끽할 수 있도록 일상에 휘둘린 마음을 다스려줄 겁니다 현재에만 만족한다는 고양이의 하품을 넣었습니다

 

 처방 넷 : 봄바람을 채집해 결이 고운 쪽으로 넣었고 붉은 구름을 잘게 썰어 섞었습니다 고운 빛 덕분에 마시이에 수월할 겁니다 이 약은 서서히 마음을 제어해 산책을 자주하게 됩니다 저절로 운동하게 하니까 소화도 돕고 숙면에도 효과적입니다

 

 처방 다섯 : 베갯모 오른쪽엔 종달새를, 왼쪽엔 뜸부기를 새겼습니다 오른쪽으로 눕는 습관을 예상했으니 아침마다 종달새 지저귐을 들으며 깨어날 겁니다 오랜 불면은 탕약으로도 다스리기 힘들 것 같아 비방을 사용했습니다 후유증만 아니라면 팔베개가 특효이긴 합니다

 

 처방이라면서 염려만 언급했습니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라 했으니 섭생에는 끼니가 으뜸입니다

 

- 전영관시집 슬픔도 태도가 된다, 처방전 전문

 

 

 

 

병원에 있다 퇴원을 하고 받은 첫 선물 시집이 [슬픔도 태도가 된다] 였습니다.

세번째 수술이었고 이번이 끝이 아니라 어쩌면 또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끔 우울해지곤 했지만 그 제목만으로도 마음을 바꾸게 되는 시집이었지요.

 

"슬픔은 짐작할수록 사나워지는 짐승이라서

오지 않은 것들은 두려워하지 않기로 한다"

 

"다 아물었다 싶으면 단풍 먼저 기별을 넣고

내린천만큼 건강하게 돌아가겠습니다"

 

시를 읽다말고 시인의 말을 떠올려봅니다. "희망은 절망을 외면하는 기술이었다"

오지 않은 것들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을 깨달으며 오늘도 처방전을 받아들고 섭생의 끼니를 챙깁니다.

오늘도 시는 내게 살아갈 힘을 주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살아가는 희망의 기술을 깨우치게 하고... 밥을 먹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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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 영웅들의 섬
신도 준조 지음, 이규원 옮김 / 양철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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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이라고만 하면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모를 것이다. 자세히 알지 못해도 별 관계는 없지만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섬은 오키나와를 지칭하는 것이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키나와는 류큐왕국으로 독립된 왕국이었으나 일본에 복속되었다. 탐라국으로 존재하던 제주도가 대한민국에 속하게 된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었지만 오키나와는 조금 다른 결이기도 하다는 느낌은 그 역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 언급하기가 쉽지 않다. 이 소설은 그걸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

 

전후, 오키나와에는 미군이 주둔하며 군사시설을 만들어 간접적인 지배를 하고 있었다. 섬의 소년들은 미군기지에 몰래 들어가 보급품 물자를 훔쳐내 오는 것을 '센카아기야'라 부르며 위험을 무릅쓰는 행동을 하지만 그것이 치기어린 무모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훔쳐낸 물건들은 오키나와의 빈곤한 주민들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곤 한다.

그렇게 훔쳐내온 물건을 '전과'라는 명목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는 섬의 영웅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전설의 온짱이다. 친구 구스쿠, 동생 레이, 애인인 야마코는 한팀을 이루어 센카아기야를 단행하는데 미군에 발각이 되어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추격이 일어나고 쫓기던 그들은 가까스로 빠져나오는데 성공하는데 구스쿠와 레이를 먼저 보낸 온짱의 행방은 묘연해진다. 이 사건 이후 온짱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고, 온짱이 살아있다고 믿는 구스쿠, 레이, 야마코는 계속 온짱을 찾기 위해 애쓰는데....

 

센카아기야에 연루된 이들은 결국 잡혀 징역을 살게 되고 전과자가 되지만, 해방 이후 일제의 경찰이었던 이들이 바로 미군정하에서 권력을 잡았듯이 오키나와에서 전과자인 구스쿠도 경찰이 될 수 있었다. 야마코는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다가 교사가 되어 삶을 이어가고, 레이는 변함없이 망나니처럼 형을 찾아 무모하게 진격할 뿐이다.

이들의 이야기와 오키나와 주민들의 삶과 미군기지가 있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이 얽히면서 소설 '보물섬'은 그저 청춘의 치기어린 모험담뿐만이 아니라 오키나와의 슬픈 역사가 적나라하게 그려진다.

 

오키나와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추진되면서였다. 오키나와의 실상에 대해, 피폐된 주민들의 삶에 대해 대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우리의 역사와 닮아있는 그들의 역사를 조금 더 자세히 알게 해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미군으로 인한 폭행, 범죄를 저질러도 국내법이 아니라 미헌병에 수사권이 주어지고 그렇게 미국의 재판에 넘겨져 무죄방면되는 일들은 그동안 우리가 봤었던 주한미군의 범죄행위와 그에 대한 처벌이 너무도 똑같아 이것이 일본 소설인지 한국 소설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미군의 차량에 치어 죽은 아주머니에 대한 묘사와 사건의 결과는 우리의 효선이와 미순이를 떠올리게 해 또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대책없이 센카아기야를 하던 거칠고 난폭한 청춘들이 결국 찾아내는 진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기나긴 역사속에서 잊지말아야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현재진행형인 지금의 시대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깊은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고투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 억압받는 사람들, 힘겨운 현실을 헤치며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이제 제대로 살아볼 때가 왔다'고 성원을 보낸다는 미야베 미유키의 말처럼 우리 모두 이제 제대로 살아봐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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