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마가파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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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생이란 게 그래, 첫 발을 내딛기 전엔 두 번째 걸음을 어딛게 될지 몰라. 두 번째 걸음을 내딛고 나면 또 자기도 모르게, 세번째 걸음을 내딛게 되고, 우린 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 중요한 건 그순간 내가 행복한가, 그거야."(16)

 

이 책을 처음 읽을때만 해도 이 인생을 꿰뚫는듯한 문장에 매료되면서 적나라하게 펼쳐질 홍콩의 역사와 과거의 시간을 구성하는 홍콩의 이면을 읽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넘쳐있었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 소설도 아니고 로맨스 소설도 아니다.

이미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부분들이 크게 힘들지는 않을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더 적나라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내가 예상하던 것처럼 사랑에 대한 것만이 아닌 육체적인 쾌락을 쫓는 인물들의 묘사가 동성애에 대한 것을 넘어 '섹스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난잡한 섹스는 나쁜 것'이라는 록박초이의 말처럼 정말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난잡함이 있어 불편하게 읽을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에 더해 간혹 묘사되곤 하는 그 잔혹함은 사실 불편함을 넘어 끔찍하기도 했고.

 

하지만 조금 시간을 두고 다시 생각해보면 이 끔직한 묘사들이 당연히 현실세계에서도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며 대신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노숙자를 이용한다거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중스파이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그 끔찍한 고문을 행했던 일제시대의 한국인 경찰을 떠올리게 하고 있으니 이 끔찍함들을 불편함으로 덮어버릴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더구나 책을 읽다보면 그냥 툭 던져놓은 문장 하나가 이런 이야기들을 불편하다고 외면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성매매에 팔려가고 싶지 않은 여자들이 갖은 협박과 구타에도 다 버티지만 가족을 붙잡고 와서 가족에게 위해를 가하면 결국 무너져내리고 만다. "가족이 울면서 여자에게 고분고분 말을 들으라고 애원했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 그녀의 목숨은 더 이상 그녀 것이 아니고 오로지 가족의 목숨만이 중요해졌다. 이 모든 게 여자로 태어난 탓이었다"

 

용두봉미라는 원제에서도 짐작이 되듯 격변의 시기에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쳤던 한 인간을 통해 홍콩의 모습을 본다. 아니, 그 시기의 홍콩에서의 역사적 시간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전쟁을 경험하고 결국 영국의 조차지가 되어버렸고 하나의 국가 두개의 체제가 양립할 수 없지만 한때나마 그런 시대를 살아올 수 있었던 홍콩에서의 삶이 어떠했는지, 록박초이라는 인간의 삶을 통해 조금 더 적나라하게 보게 된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꾸역꾸역 이 책을 읽어나갔다. 용두봉미,라는 제목에서 그 이중성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더 깊은 의미에서 이중성은 이런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이 무렵 록박초이는 한가지 이치를 발견했다. 자기 생각을 그럴 듯하게 꾸며내는 것이 진위여부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진실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거짓도 그럴 듯해 보일 수 있다. 세상일은 진실인가 거짓인가가 아니라 그럴 듯한가 그럴 듯하지 않은가의 문제였다."(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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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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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시점에서 본다면 분신으로 표현되는 복제인간이라는 것이 그리 놀랍지는 않다. 이제는 드라마에서도 시험관 아기뿐만 아니라 대리모에 대한 친자소송에 대한 이야기가 낯설지 않고 아픈 아이의 의학적 연구나 치료를 위한 배아복제의 사회적 이유가 되는 책과 영화도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의 시작점을 히가시노 게이고의 분신에서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이 삼십여년전에 쓰여진 것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수년전에 집에 오는 길에 떼거지로 몰려있는 학생들 앞을 지나치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큰소리로 불렀지만 내 이름이 아니었기에 그냥 지나쳤는데 골목길을 꺽어 들어서니 뒤에서 뛰어 쫓아온 애가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애들이 많아서 모른척한거야?'' 라는 말을 들으니 어이없어하면서도 ''나는 학생 모르는데요''라고 정중히 대답해줬다. 그런데도 그녀석은 자꾸만 구체적으로 만날 날과 장소까지 언급하면서 괜찮으니 모른척 좀 하지 말아달라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정말 답답할 노릇이었다. 이미 대학까지 졸업하고 직장을 다닐때였는데 고등학생 녀석이 얼핏봐서 친구로 착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앞에서 닮은 친구와 혼동한 것 같다고까지 얘기하는데도 믿지 않으니. 내가 전혀 동요없이 ''난 네 친구가 아냐''라고 말하니 그냥 돌아서기는 했지만 그 뒷모습에서는 여전히 내가 자기를 모른척한다고 섭섭해하는 마음이 남아있는 듯 해 그 오해가 빨리 풀리기를 바라며 집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이 세상에는 나와 닮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한두번 만난 사람은 스치면서 착각을 할 정도로 생김새뿐 아니라 스타일까지 닮아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닮은 사람일뿐 같은 사람은 아니다. 쌍동이라고 해도 서로 다른 것처럼. 그리고 또 그것과는 다르게 이제는 ''배아복제''라는 닮은 꼴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고유한 존재가치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아니, 사람뿐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그럴것이라고 믿는다. 그만큼 생명은 신비롭고 존귀한 것이며 함부로 다루어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배아복제라는 것은 어떨까.

사실 이 책에서는 배아복제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그 결과물로 태어난 아이들의 마음을 통해 ''복제''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한다. 실험과 연구를 통해 생명을 갖게 되었지만, 생명체가 되고 나서는 더 이상 실험물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성장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러고보면 이 작가의 책은 전체적인 흐름이 어떻게 되는지 결코 숨기지 않는다. 그 흘러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단지 사건의 해결을 향해 치닫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회와 사람들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은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적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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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록박초이는 한가지 이치를 발견했다. 자기 생각을 그럴 듯하게 꾸며내는 것이 진위여부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진실은 그럴 듯해 보이지만 거짓도 그럴 듯해 보일 수 있다. 세상일은 진실인가 거짓인가가 아니라 그럴 듯한가 그럴 듯하지 않은가의 문제였다.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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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건디 여행 사전 -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
임요희 지음 / 파람북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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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이 책의 부제가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들'이다. 어쩌면 이리도 딱 들어맞는 느낌이 드는지.

버건디, 여행사전이라고 하니 첫느낌은 여행중에 만난 버건디 이야기겠구나 뿐이었는데 그 여행이라는 것이 어떤 특별함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 시간여행이든 공간여행이든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버건디에 대한 기억을 담아내는 것임을 느끼게 되니 이 이야기들이 더 좋아졌다. 사실 책을 다 읽고나니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색을 찾아 나의 일상을 특별하게 기억하고 기록해보고 싶은 마음이 슬핏 떠오르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은 성당에 가는데 오늘따라 성당의 제단으로 가는 길 바닥에 깔려있는 붉은 카펫, 유심히 보고 있으려니 적갈색빛으로 칠해진 장궤틀, 스테인글라스 유리창에 입혀진 붉은 유리, 성당 건물 외벽의 붉은 벽돌... 커다랗게 보자면 정말 주위에 온통 버건디가 나를 반겨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가장 중심은 이 책에서도 자주 언급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혈이겠지만.

아무튼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저자가 추억하는 고무 대야가 내게는 또 다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고 있듯이 같은 것을 보면서 각자 다른 시간 여행을 하기도 하고, 다른 공간에 있지만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기억들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 것 같다. 저자의 한달, 두달 살이 캐나다 여행과 나의 패키지 일주일 여행은 비교할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녀가 캐나다에서 청소를 하며 공기의 맑음을 기억하고 있다면 나는 여행이 끝나고 공항을 나와 서울 시내로 들어오자마자 맡은 매캐한 매연에 숨쉬기가 힘들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캐나다의 단풍은 그런 추억을 불러온다. 물론 단풍은 동유럽을 여행할 때 봤던 그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리게 하기도 하고,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고난 후 그 먹먹해진 마음으로 나왔는데 눈앞에 펼쳐진 단풍 든 나무 숲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 옛날 그래도 버리지 못한 희망을 안고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잠시 마음은 설레었을 것 같은 그들에게 닥친 잔혹한 운명을 떠올리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단풍의 풍경이 아닐까.

 

여행을 즐기고, 여행의 기억을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일상의 모습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나만의 여행 사전,을 만들어보고 싶은 기록의 욕심은 단지 욕심뿐인 것만이 아니라 이제 조금씩 나 자신이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가야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버건디 여행 사전은 새로운 즐거움을 알려 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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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게 그래, 첫 발을 내딛기 전엔 두 번째 걸음을 어딛게 될지 몰라. 두 번째 걸음을 내딛고 나면 또 자기도 모르게, 세번째 걸음을 내딛게 되고, 우린 다 길을 잃고 헤매고 있어. 중요한 건 그순간 내가 행복한가, 그거야.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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