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의 이야기를 자꾸 보게 되는 건 그녀의 이야기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정말 남의 일 같지 않구나, 하게 되는 건 바로 '사와무라 씨 댁' 이야기이다.
직장생활을 하며 겪게 되는 에피소드나 독신생활에 대한 에피소드, 가족과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에피소드가 모두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들이어서 공감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평균연령 60세인 사와무라 씨 댁 이야기는 늙으신 부모님뿐 아니라 나 자신도 나이들어가면서 느끼게 되는 현실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더 진지하게 읽게 되는 것 같다.
어머니 노리에가 중요한 보험서류나 통장을 보관하는 곳을 딸 히토미에게 이야기할 때 히토미는 밝게 웃으며 이야기하기도 그렇고 진지한 얼굴로 정색하기도 그렇다고 표현한다. 사실 실제로 가끔 어머니는 툭 던져놓듯이 이야기하지만 통장이나 서류뿐 아니라 내가 찾는 물건, 하다못해 드라이버 같은 공구를 찾고 있으면 그런 건 창고 어느쪽에 놓여있고 또 다른 뭔가는 또 어디에 있고...그런 이야기를 하곤 하신다. 죽음 이후 남겨진 딸의 삶에 대한 걱정을 그렇게 돌려 말하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또 슬그머니 지나가는 말로 집에서 잠을 자다가 세상을 뜨면 얼마나 좋겠냐,는 말씀도 하곤 하신다. 질긴 목숨을 어쩌지 못하고 아파서 자식들이 병수발 드느라 고생할까봐 그러시는거다. 나 역시 가만히 생각을 하다보면 온갖 잡생각에 우울해질때가 있다. 혼자 사는 내가 노후에 이러저러하게 민폐를 끼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사와무라 씨 이야기를 읽다가 위로를 받는다. 온전히 마음을 비우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로가 된다.
"텔레비전 위에 꽂아둔 한 송이 작약이 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노리에씨는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생을 끝내도 괜찮지 않을까' 주위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죽고 싶다. 진심으로 그렇게 바라지만,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모르는 거고, 이 작약처럼 꽃잎이 하나하나 떨어져서 폐를 끼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지 앟은가. 라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한 아침의 노리에 씨였습니다"(104-105. 이런 식으로라도)
그리고 또 현실적으로 건강해야한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보게 하기도 한다. 딸 히토미가 아플 때 어머니가 간병을 해 주시고, 어린시절 좋아했던 음식들을 어머니 노리에 씨가 기억해 준비하고 사다주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아파서 꼼짝못하고 종일 굶고 있으면 어머니가 힘들게 움직이며 죽을 끓이시고 과일이며 물이며 필요한 것들을 차곡차곡 머리맡에 놔두시고 그랬는데 그때 정말 내가 어머니를 돌봐드리며 모시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나 역시 어머니가 계셔서 든든하고 어머니가 여전히 나를 돌봐주시는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부모와 자식이 같이 나이를 먹어가지만 그 관계는 변함이 없고 나이들어갈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는 것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느낌이라고나할까...
아무래도 사와무라 씨 댁의 평균 연령이 60세여서 그런지 노후의 삶, 죽음을 앞둔 삶, 은퇴하고 나이들어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거나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적응의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 모든 이야기들이 다 우울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웃과 잘 지내는 노하우라거나 뭔가 복잡한 프랜차이즈까페가 아니라 자그마한 까페의 단골이 되기도 하고, 가족이 서로의 사랑을 느끼게 되기도 하는 일상의 에피소드는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냥 마음이 좋아진다. 그런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겠다, 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지난 주 주교서품식이 있었다. 일반인들에게는 그저그런 종교행사일지 모르지만 천주교에서는 아주 의미가 깊은 죵교의식인데다 우리 동네에서는 처음으로 치르는 주교서품식이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미사시간만 세시간 예상하고 그날 계속 소나기가 간헐적으로 내려서 어머니를 행사장에 모시고 가는것이 걱정되어 계속 말리다가 결국 그냥 함께 미사에 참례했다. 굳이 '내가 언제 또 주교서품식을 보겠냐'라는 말씀 때문에 그런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읽으며 '7년 후' 우리는 어떻게 될까 생각했기 때문도 아니지만 왠지 이제는 조금 더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함께 갈 수 있을 때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조금 무리가 되기는 하지만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니 문득. 다음 사와무라 씨 댁 이야기에는 여행 이야기가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이야기의 끄트머리에 남겨진 치바의 이야기만큼 뭔가 감동적이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은 것 같은데 말야. 아닌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