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가를 나온 떡붕어 아저씨는 P시의 여관에서 방을 빌렸다. 침대 시트가 싯누렇게 변색되고 이불 곳곳에 얼룩이 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것저것 살필 틈도 없이 뻗어버렸다. 사흘밤낮을 연이어 잔 뒤에는 동이 트기 전에 여관을 떠났다. 그리고 사흘밤낮을 P시의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면서 보냈다. 첫날 잡은 물고기는 죄다 회를 쳐서 먹었다. 근처 횟집에 파닥거리는 광어와 우럭을 주고 상추, 깻잎, 마늘, 초고추장, 쌈장에 소주까지 받아왔다. 단골거래처라 조개탕까지 덤으로 얻었다. 바닷가에 앉아 혼자 소주를 자작하며 살아 있는 물고기를 뜯어 먹는 이 순간은, 말하자면, 그가 누리는 일상의 행복의 극점이었다. T시에서의 고된 노동 뒤에는, 이렇듯, 늘 P시 바닷가에서의 만찬이 뒤따랐다.
둘째 날, 떡붕어 아저씨는 그날 잡은 물고기를 죄다 풀어주었다. 이 역시 그가 전업 강태공을 선언한 시점에서 스스로에게 정한 나름대로의 원칙에 따른 것이었다.
셋째 날, 그날 잡은 물고기를 담아놓은 어망을 보며 그는 망설였다. 원칙에 따라 풀어줄 것인가, 아니면 가져갈 것인가. 고개를 한 번 돌릴 때마다 쑥쑥 자라는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떡붕어 아저씨는 지난 5년간 고수해온 원칙을 수정했다. 어망 속의 물고기들은 다음날 오후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게 됐다. 어망이 컸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들이 포로의 몸이라는 것도 모른 채 바다 속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그날 밤 문득 여기서 전철을 타면 불과 20분도 안 되는 거리에 부모님이 살고 있다는 것이 상기됐다. 그는 벌떡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머릿속에서는 까맣게 잊힌 숫자들이었지만 손가락은 용케도 기억을 해냈다. 신호음은 오래 지속되었다.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자정에 가까웠다. 그는 얼른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아침, 떡붕어 아저씨는 어망을 한 번 살펴본 뒤 해장술을 한 잔 걸치고 백화점에 갔다. 35년 평생 첫 걸음이었다. 더군다나 여자 아이의 옷과 신발을 사기 위해서라니. 어리바리한 떡붕어 아저씨는 물건을 잔뜩 산 만큼이나 바가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백화점을 나왔다. 그 다음엔 아이스박스와 칼, 도마를 챙겨서 바닷가로 갔다. 어망 속의 물고기들은 천진난만하게 바다와의 마지막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차례차례로 내장과 아가미를 박탈당한 채 얼음 속에 생매장됐다. 떡붕어 아저씨는 아이스박스를 등에 지고 선물 꾸러미를 품에 안은 채 배를 탔다. 비가 제법 내리고 파도도 제법 거셌지만 어느 시점부터 일 년의 절반을 배안에서 보낸 그였기에, 천하태평하게 곯아떨어졌다. 눈을 떴을 때는 지구를 하룻밤 새에 한 바퀴 다 돈 기분이었다.
*
소영이는 움푹 파인 구덩이 속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방문이 열리면서 떡붕어 아저씨가 나타났다. 흉악하고 묵직한 악몽에서 막 깨어나 환한 햇빛을 맞은 것처럼 소영이는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아저씨! 아저씨!”
저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다. 소영이는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가 떡붕어 아저씨의 다리에 매달렸다. 떡붕어 아저씨는 기분이 묘했다. 제 아무리 손을 뻗어도 그의 가슴팍에도 닿지 못할 이 조그만 존재가 이번 여행 내내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감지도, 빗지도 않은 머리카락에서 냄새가 피어올랐다. 고무줄로 묶어놓은 꽁지머리는 썩은 참기름을 발라놓아 뭉쳐놓은 것 같았다. 이런 아이를 성 안에 혼자 방치해두었던 것이다.
“소영아, 너 세수하는 법 몰라?”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를 살짝 떼놓으며 물었다.
“얼굴이 간지러우면 가끔 해.”
“어라, 이렇게 지저분한 숙녀가 다 있나. 양치질은?”
“그게 뭐야?”
“이는 닦냐고?”
“이빨? 이빨을 왜 닦아? 이빨이 방바닥이야? 물 먹으면 다 깨끗해져. 이건 다 뭐야? 이리 내놔! 내가 다 검사할 거야.”
소영이의 눈엔 조금 전에 쏟아냈던 눈물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제 그 눈은 호기심과 기쁨에 달떠 있었다. 선물 꾸러미가 풀어졌다. 갑자기 방한복판에 태양이라도 떨어진 듯 사위가 찬란해졌다.
“우아, 이게 다 뭐야? 이거 다 내 거야, 엉?”
“그래, 그건 다 네 건데, 방은 왜 이 모양이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어?”
소영이는 어느새 선물은 내팽개치고 떡붕어 아저씨 옆에 붙어서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땅 속 구경, 하늘 비행, 방 키우는 놀이 등 소영이의 얘기는 두서도 없고 산만했다. 한참 뒤에야 하늘이 무너진 사건과 문지기의 등장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아저씨, 문지기 아저씨는 생각이 많대. 무슨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비밀이래.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긴, 헛소리지. 그 친구는 아무 생각도 없어. 매일 부실한 장비로 괴물이나 때려잡는 주제에.”
떡붕어 아저씨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옷장 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그는 소영이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을 때는 커다란 자루를 낑낑대며 끌고 왔다. 자루를 풀자 새카맣고 차진 흙이 나왔다. 양분도 많아, 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자잘한 벌레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그 흙으로 구덩이를 메운 다음 다시 옷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엔 시간이 조금 오래 걸렸다. 드디어, 떡붕어 아저씨가 시멘트를 갖고 옷장에서 나왔다. 구덩이는 금방 말끔하게 사라졌다. 스팀다리미로 힘껏 다림질을 하자 우그러졌던 장판도 바로 펴졌다.
“우아, 아저씨 대단하다! 아저씨 마법사야? 저건 어떡해?”
소영이가 천정의 구멍을 가리켰다. 떡붕어 아저씨는 등을 곧추 세우고 천정을 바라봤다.
또다시 옷장 여행이 시작됐다. 이번에 옷장을 나왔을 때는 빈손이었지만 떡붕어 아저씨의 몸이 엄청나게 커져 있었다. 아저씨는 조금 전에 있던 구덩이 바로 곁의 에어컨을 번쩍 들어 구멍을 향해 옮겨갔다. 대충 얼개는 맞추었지만 안쪽의 선을 연결하느라 여간 낑낑대는 게 아니었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거인처럼 커졌기 때문에, 어느덧 맺힌 땀방울이 자잘한 우박처럼 툭툭 떨어졌다. 우박이 차가운 만큼이나 그의 땀방울은 뜨거워, 소영이는 얼른 창가로 몸을 피했다. 그 바람에 벽을 살짝 건드렸다. 순간, 그 쪽 벽이 뒤로 밀려나면서 방이 또 커져버렸다.
사고가 수습되자 떡붕어 아저씨는 커다래진 몸을 추스르며 옷장이 아닌 욕실로 들어갔다. 다시 나왔을 때는 우박 같은 땀방울도 사라지고 몸도 원래 크기로 돌아와 있었다. 그 동안에도 소영이는 계속 아저씨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줄곧 싱크대 옆에 우두커니 서 있던 아이스박스가 열렸다. 등 푸른 물고기들이 주둥이를 옆쪽을 돌린 채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푸른 몸통에서 은빛 광채가 났다. 하얀 원 안에 박힌 검은 원은 왠지 서글플 정도로 멍해보였다. 아직도 꿈틀대는 아가미 껍질도 왠지 애처로웠다. 하지만 떡붕어 아저씨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놀리며 반쯤 살아 있는 물고기를 냉동고에 차곡차곡 쌓았다. 몇 마리는 냉장고에 들어갔고, 두 마리는 바로 도마 위에 올라갔다.
“아저씨 쟤네들 안 불쌍해?”
“요 녀석, 나중에 밥 먹을 때도 그 소리 하나 보자, 어디.”
떡붕어 아저씨는 곧바로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소영이는 방으로 들어왔다. 풀다 만 선물 꾸러미가 보이자, 뒷전으로 밀려났던 흥분이 되살아났다. 눈앞으로 칫솔, 솔빗, 머리 방울과 핀, 옷가지들, 양말 몇 켤레, 하얀 운동화와 감색 운동화가 와르르 쏟아졌다. 강바닥의 다슬기도, 흙속의 벌레도 아니고, 뭔가 물건이 이렇게 많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소영이는 제일 마음에 드는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섰다. 프릴이 달린 하얀 블라우스와 감색의 멜빵 주름치마였다. 목이 긴, 위쪽에 꽃송이가 붙어 있는 양말도 신고 머리핀도 꽂았다. 거울에 비친 소영이에게는 더 이상 구덩이 오막살이의 소영이의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았다. 소영이는 거울 앞에서 빙그르 한 바퀴를 돌았다. 다시 거울 앞에 똑바로 섰을 때는, 그러나, 또 다시 얼굴에 하얀 마른버짐이 피고 덩어리진 머리카락 틈새에서 이와 서캐가 활보하는 그 소영이로 바뀌어 있었다. 소영이는 얼른 옷을 벗었다. 그때 아까까지는 없었던 하얀 종이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소영이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빨간 구두였다. 애나멜 칠이 돼서 반짝반짝 윤이 났고 구두코는 동그랗고 발등과 발목 사이에 끈이 달려 있었다.
“아저씨, 이것도 내 거야?”
떡붕어 아저씨가 잠깐 얼굴을 내밀어 힐끔 봤다. 아무래도 빨간 구두를 고르거나 산 기억은 없었다.
“사은품으로 끼워 줬나? 발 맞으면 그냥 신어.”
무성의한 한마디와 함께 아저씨의 얼굴이 사라졌다.
소영이는 조심스럽게 빨간 구두에 발을 넣어보았다. 맞춘 것처럼 꼭 맞았다. 소영이는 발뒤꿈치를 살짝 들면서 몸을 좌우로 흔들어봤다.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신이 난 소영이는 춤이라도 출 기세로 제 자리에서 발걸음 뗐다. 그러자 정말로 춤이 시작됐다. 빨간 구두는 소영이의 마음을 한 발짝의 속도만큼 먼저 읽고서 온 방안을 오가며 멋진 왈츠를 추었다. 그러곤 제가 알아서 옷장 문을 열고 다른 방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우아한 발레가 시작됐다. 다음 방에서는 라틴 댄스가, 그 다음 방에서는 밸리 댄스가, 그 다음 방에서는 재즈 댄스가, 그 다음 방에서는 봉산탈춤이, 그 다음 방에서는 테트리스 댄스가 펼쳐졌다. 저 멀리서 떡붕어 아저씨가 식칼을 든 채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수십 개의 옷장 문이 열렸다 닫히는 풍경이 한 편의 화려한 부채춤을 연상시켰다. 떡붕어 아저씨는 용수철이 달린 손을 길게 뻗어 소영이의 발목을 잡고 힘껏 잡아 당겼다.
“휴우, 아저씨가 내 발목을 자르는 줄 알았지, 뭐야.”
방으로 돌아왔을 때 소영이가 말했다. 그제야 떡붕어 아저씨는 자기 손에 들린 식칼의 존재를 인지했다. 마침 무를 썰던 중이었다.
“앞으론 구경만 하고 신지는 마.”
“왜? 구두도 예쁘고 나도 신났는데.”
소영이의 발을 떠난 빨간 구두는 얌전하게, 다소곳이 하얀 종이 상자에 들어갔다. 내가 언제 난동을 부렸냐는 듯 얌체같이 새침을 떨기도 했다.
저녁상이 차려졌다. 무와 고등어가 고춧가루와 간장 양념을 듬뿍 머금은 조림이었다. 우거지까지 들어가 있었다. 볕 좋은 데서 요령껏 잘 말리고 또 잘 삶아서 연하면서도 달달한 게 감칠맛이 났다. 고등어는 살점이 탱탱하고 씹는 맛이 쫄깃쫄깃했다. 잔칫날에나, 기껏해야 장날에나 운 좋게 한두 점 맛볼 수 있었던 자반고등어와는 천양지차였다. 하얀 살과 푸른 등껍질에 사이에 삼각 꼴로 길게 박혀 있는 고동색의 속살도 결에 따라 톡톡 갈라지는 맛이 독특했다. 고등어를 먹는 동안에는 아이스박스에 산 채로 쌓여 있다가 그 상태로 냉동실에 안치된 고등어의 모습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대신, 배가 반쯤 차오르자 구덩이 오막살이의 땅속에 묻혀 있을 할머니가 떠올랐다. 아니, 할머니와 살았던 시절의 습관이 되살아났다. 떡붕어 아저씨는 내장 부분의 가시를 열심히 발라내 소영이의 밥그릇에 얹어 주었다.
“나 그만 먹을래.”
“왜 벌써 배불러? 그래도 그것만 먹어. 제일 맛있는 부분이야.”
“제일 맛있는 데라서 남기는 거야.”
“음식 남기면 못 써.”
“우리 할머니도 먹어야 살아.”
떡붕어 아저씨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고 짜증마저 배어나왔다.
“소영아, 할머니 죽었다고 했잖아!”
“맞아, 할머니 죽었어. 그래서 구덩이에 묻혔어. 하지만 할머니도 먹어야 살아.”
“어휴, 아예 매일 제사를 지내라, 제사를.”
“제사? 그게 뭐야?”
“그건 내일 얘기해줄 테니까, 얼른 이나 닦자. 칫솔 갖고 와.”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 뒤에 무릎을 굽히고 섰다. 그리고 소영이의 오른손을 같이 잡은 채로 양치질 하는 법을 가르쳤다. 소영이는 처음엔 신기해하고 재미있어 했지만 금방 싫증을 냈다. 떡붕어 아저씨는 양치지질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생길 수 있는 온갖 불길한 결과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이가 썩으면 얼마나 아픈지 알아?”
“이빨이 어떻게 썩어? 사과야? 이빨은 썩지 않아.”
소영이는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이렇게 닦지 않아도 이는 충분히 하얗고 음식물이 잇새에 끼지도 않았다. 이가 시리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잇몸이 붓거나 곪아 터진다는 것이 도무지 가능한 일인지 통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