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이 반쯤 꺼진 응급실의 적막을 핸드폰소리가 깨놓았다. 수아였다.

뭐냐? 수업도 안 오고 웬 전화질이야?”

나는 병원에 누워 있다고 얘기했다. 내 귀를 때리는 내 목소리가 제법 처량했다. 잠에서 막 깬 탓이었다. 하지만 환자 역을 맡는 것이 본능적으로 마음에 들어, 일부러 더 힘이 없는 척 군 것도 사실이다.

반시간쯤 뒤 수아는 내 옆에 와 있었다. 나의 환자연하는 처지가 꽤 부러웠던 모양이었다. 당황하고 놀라워하는 수아의 얼굴이 재미있었다.

아니, 이걸 이렇게 방치해 두면 어떡해요? 저렇게 계속 토를 하는데!”

수아는 토사물이 가득 한, 내 침대 옆 쓰레기통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애꿎은 조무사는 입을 삐죽 내밀며 쓰레기통을 들고 나갔다.

그렇게 대책 없이 살 때 알아 봤어. 민영이 너, 일부러 이런 거지, ?”

어깃장을 놓긴 했지만 수아는 나를 은근히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연애는 잘 돼 가?”

지금 네가 남 연애 걱정하게 생겼냐?”

수아는 한 반 시간쯤 앉아 있다가 기숙사로 돌아갔다.

 

요즘 수아는 연애의 몽상에 젖어 희망이라는 괴물을 붙잡고 있었다.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남자가 드디어 수아에게 마음을 열어준 것이다. 적어도 수아의 말로는 그랬다. 나는 연애의 몽상보다는 그 희망이라는 괴물 때문에 수아를 조금은 질투했다. 역시나 그 때문에 수아가 그 남자와 연결되지 않기를 바랐다. 연애의 몽상이 실현되면 희망이라는 괴물도 꼬리를 감출 테니까. 가히, 유치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유치하다는 것을 안다는 이유로, 나는 나를 성숙한 남성의 형식쯤으로 간주하고 뿌듯해했다.

 

이튿날 아침, 수아가 잠이 덜 깬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지금껏 관객의 등장을 기다린 양 나의 구토는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증세는 어젯밤보다 더 심해져, 싯누렇고 쓰디 쓴 시큼한 액이 뱃속 깊은 곳에서 숨을 헐떡이며 기어 올라왔다. 내가 의식하는 나는 조그만 쓰레기통에 머리를 처박고 구토에 몸을 내맡긴 나였다. 이쯤 되면 연극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이 구토하는 더러운 실존을 때려치우고 뱃속에다 음식물을 가득 채워 넣는 아름다운 실존이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을 깡그리 무시하고 시골 의사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던졌다.

저 학생 말이야, 어디 큰 병원으로 데려가.”

과잉된 친절이 쏙 빠진, 마냥 정감 있는 어투였다. 그랬기에 또한 건조했다.

? 그렇게 심각해요?”

아니, 저 학생이 심각한 게 아니고 우리 병원이 심각해. 병실이 없어.”

병실요? 그럼 입원해야 돼요?”

글쎄, 그게 지금쯤은 나아져야 되는데 저렇게 계속 구역질을 해댄단 말이야. 도무지 왜 그럴까? 알다가도 모르겠어. 애가 선 것도 아니고, 무슨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시골 의사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머리 위에 물음표 하나를 그린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의 솔직함에 나는 은근히 감동했다.

 

한편, 수아는 생명의 은인으로 거듭났다. 수아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택시를 탔고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옮겨갔다. 모든 검사가 다시 시작됐다. 그동안에도 나에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각인시킨 것은 저 살인적인 구토였다.

 

정신을 차렸더니 어느 병실의 구석 침대였다. 담당 의사는 위장 내시경을 권했다. 머릿속에 동네 병원의 시골 의사의 잔영이 남아 있는 탓인지 그는 왠지 도시 의사라는 말이 어울려 보였다. 내가 인상을 쓰자 젊은 도시 의사는 언뜻 미소를 내비치었다.

요즘은 수면 내시경이 있어서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실은 내시경이 아니라 수면이 싫었기 때문에 나는 있는 힘껏 말했다.

그냥 해도 돼요.”

내 목소리가 너무 작은 것이 나 스스로도 놀라웠다.

그럼 그러시죠.”

도시 의사는 사라졌다.

 

뱃속은 어차피 하루 종일 비어 있었다. 간호사는 불쾌한 물약을 갖다 주었다. 끈적끈적하고 질척질척한 물약이 입안으로 들어가자 목구멍까지, 식도까지 한 대 얻어맞은 양 얼얼하게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절로 인상이 써졌다.

, 내시경에 정 들었냐? 또 내시경 하려고 일부러 밥 굶었지?”

수아가 옆에서 연신 툴툴댔다. 서울로 유학 온 뒤 위장 내시경을 한 것이 벌써 세 번째다. 그때마다 수아는 내 옆에 있어 주었다. 그러니 툴툴댈 권리쯤은 충분히 있는 셈이다. 물론, 나의 내시경의 근원은 수아가 알 리 없다.

 

*

 

중학교는 읍내에만 있었다. 몹시 추웠던 1월말, 나는 아빠와 함께 읍내로 향했다. 간만의 외출이라 정류장 앞에서부터 마음이 달떴다. 하지만 멀리서 달려오는 버스를 보자마자 속이 메슥거려 왔다. 신기한 노릇이었다. 어른들의 등에 업혀 갈 때는 전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였다. 구토 덩어리였다. 구토가 내 몸 안이 아닌, 내 몸 밖에도 존재할 수 있다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버스, 아니, 모든 탈것에 대한 공포의 시작이었다.

 

버스 안으로 들어가자 시큼한 기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몸은 점점 더 쪼그라들었다. 나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는 달리기 시작했다. 덜커덩거리는 소리와 진동이 뱃속은 물론 머릿속과 마음속까지 휘저어 놓았다. 5분도 지나지 않아 토악질이 시작됐다. 아빠는 머리에 쓰고 있던 털모자를 황급히 벗어 토사물을 받아냈다.

아이고, 무슨 멀미를 이래 하노? 아를 잡네, 잡아.”

버스에서 내렸을 때 아빠가 말했다.

 

귀갓길은 더 참혹했다. 뱃속의 내장이 제 맘대로 꼬이며 구토를 턱턱 뱉어냈다. 장터에서 아빠와 함께 먹은 뜨끈하고 얼큰한 돼지국밥이 내 뱃속에 잠시 머물렀다가 추한 모양새를 하고 뭉텅뭉텅, 다시 세상에 나왔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나는 끓는 물에 삶아낸 우거지 꼴이었다. 집까지는 가파른 산길을 한 시간 쯤 올라가야 했다. 아빠는 나를 등에 업었다. 달빛을 받은 거무스름한 산길과 검푸른 하늘 위에 금강석처럼 톡톡 박혀 빛나는 별들 사이를, 열 네 살짜리 딸을 업은 마흔 살의 남자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부모님은 나를 읍내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마침 고등학생인 육촌 언니가 읍내에서 하숙을 하고 있던 덕분이기도 했다. 우리의 방은 조그맣고 아담했는데, 초등학교 교사 부부가 사는 정갈한 양옥집에 딸려 있었다. 봄이면 몇 그루의 감나무가 노란 감꽃을 소보록하게 피웠다. 하지만 나의 자취생활은 감꽃 마냥 다부지고 예쁘지는 못했다. 주중은 금식의 시간이었고, 주말은 폭식의 시간이었다. 집에만 올라가면 주중에 오그라뜨려놓은 배를 풍선처럼 부풀리겠다는 듯 다섯 끼, 여섯 끼를 먹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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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과 돈”:

여성 작가, 아니, 인간에게 필요한 것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에 모더니즘만큼 자주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페미니즘이다. 아마 그녀의 소설보다 더 즐겨 읽힐 법한 <자기만의 방>은 애당초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를 다룬 강연문이다. 그 때문인지 도입부부터 제법 선언적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별로 중요해 보이지 않는 한 가지 의견, 즉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입니다.(10)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도 날카롭게 지적된다. 가령 여성은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소개장을 소지해야만 도서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재산권의 부재와 가난, 출산, 육아, 가사 때문에 지적 활동의 기회도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대체로 남성은 자신의 우월함을 주장하기 위해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데 주력해왔으며 여성은 그 희생양이었다. 이쯤 되면 이 책이 오랫동안 페미니즘 비평의 필독서였던 것도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보다 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맥락에서 읽힌다.

 

 

 

 

 

 

 

 

 

 

 

 

 

 

 

 

<자기만의 방>은 울프의 문학론이 피력된, 무엇보다도 문학-작가와 현실(환경)의 관계에 대한 성찰이 담긴 책이다. 작가는 작가이기에 앞서 현실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둔 생활인이라는 것, 문학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따라서 비단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작가에게는 물질적 토대,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숙모에게서 유산을(1년에 500파운드) 상속 받은 뒤 두려움과 쓰라림에서 해방됐다며 울프는 이렇게 쓴다.

 

그 당시의 쓰라림을 기억하건대, 고정된 수입이 사람의 기질을 엄청나게 변화시킨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요. 이 세상의 어떤 무력도 나에게서 500파운드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음식과 집, 의복은 이제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력과 노동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증오심과 쓰라림도 끝나게 됩니다. 나는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으니까요. 또 누구에게도 아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하여 나는 스스로 인류의 다른 절반에 대해 아주 미세하나마 새로운 태도를 취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59-60)

 

요컨대 은 자유로운 사유와 집필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물론 이 맥락에서 여성은 확실히 고달픈 처지에 있었다. 울프는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셰익스피어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는 누이동생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을 해본다. 그렇다 한들 그녀는 오빠와 같은 대작가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광기에 사로잡혀 파멸했으리라는 것이 울프의 결론이다. 왜인가? 강조하건대, 천재는 일정 부분, 어쩌면 상당 부분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셰익스피어 같은 천재는 교육받지 못하고 노동하며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 가운데서 태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천재는 영국의 색슨족이나 브리튼족에서 태어난 적이 없으며 오늘날 노동 계층에서도 태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천재가 어떻게 여성들 가운데서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트리벨리언 교수에 의하면 여성들은 아이 방에서 나올 나이가 되기 이전부터 가사를 시작해야 했으며, 그렇게 하도록 부모들에게 강요받고 법과 관습의 강제력에 의해 억눌렸던 것입니다.(75-76)

 

그뿐인가. “여성이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은 그녀의 부모가 보기 드문 부자이거나 대단한 귀족이 아니라면 19세기 초까지 전혀 불가능한 일”(81)이었다. 공동 거실에서 소설을 써야 했던 제인 오스틴을 생각해 보라. 그에 비하면 울프는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우호적인 시대를 살았던 셈이다. 개인적인 여건도 나쁘지 않았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무학이나 다름없지만 그녀의 성장 환경은 상당히 지적이었다. 세간의 편견과는 달리 결혼 생활도 원만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렇기에 그녀는 단순히 페미니즘을 주장하기보다는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넘어 작가로서 바람직한 자세를 갖출 것을 촉구한다. 저 유명한 양성론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기서 책상으로 가로질러 가서 여성과 픽션이라는 제목이 쓰인 종이를 들어 올리며 생각했습니다만, 내가 여기에 쓰게 될 첫 번째 문장은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순전한 남성 또는 순전한 여성이 되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인간은 남성적 여성이거나 여성적 남성이어야 합니다. 여성이 어떤 불평을 조금이라도 강조하거나, 정당한 것이라 하더라도 어떤 대의를 변호하는 것, 어떤 식이건 여성으로서의 의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치명적인 일입니다.(157)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울프 특유의 부르주아 취향과 건전한 생활 감각이 낳은 현실주의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돈을 벌고 자기만의 방을 가지기를 권할 때, 나는 여러분이 리얼리티에 직면하여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하라고 조언하는 겁니다.”(166) 단지 여성, 단지 작가만을 겨냥한 얘기가 아니다. ‘자기만의 방과 돈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기본권을 향유하기 위해 요청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20세기 초, 울프가 여성 작가로서 자신의 삶과 문학에서 두루 형상화한 고뇌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남존여비와 같은 말이 우스갯소리로 전락한 현 시점에서 그것은 이미 페미니즘이 아니라 휴머니즘의 문제이다.

 

-- 네이버캐스트

 

 

 

울프의 생애와 그녀의 작품(특히 <댈러웨이 부인>)을 갖고 만든 영화. 니콜 키드만이 울프 역을 맡았는데, 그 참혹한 분장이란...-_-;;

 

 

개인적으로 소설 <댈러웨이 부인>보다 더 좋았던 영화 <댈러웨이 부인>. 나이든(즉, 현재의) 미세스 댈러웨이 역을 맡은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입니다. 아주 옛날 <욕망>(블로우업)에 나왔던 배우인데, 정말 곱게 늙었죠!

 

버지니아 울프의 부르주아적인, 귀족적인 문학을 많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등대로/세월> 뭐, 이런 작품을 읽으며 정신이 혼미해진 기억이 있습니다. 그녀를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작가가 있습니다. 우아한 이미지 탓일까요? ^^; 바로 이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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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앤업 2015-01-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읽지않을 때도 편안한 행복을 누리게 하는 럭셔리장소들... 책장, 식탁 , 소파, 책상, 목욕탕 중에서
자기만의 방은 항.....상 침대옆에 두는 친구죠.^^
그냥... 펼치는 페이지를 읽을 때 마다 ...감사하죠.
 

구토, 혹은 청춘의 기록

 

 

 

스물세 살이오三月이오咯血이다

(李箱, 逢別記)

 

 

 

 

스물일곱 살이오오월이오구토다.

 

*

 

무늬만 국문학도인 백수, 하루 두 갑의 담배를 바닥내는 골초, 대학에 들어온 이래 기숙사와 하숙집과 원룸을 전전하며 8년째 자취 생활, 친구라곤 딱 하나, 애인은 없다. 구토의 습격이라도 받지 않았다면 얘깃거리라곤 통 없는 것이 나의 삶이다.

 

*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따라 물수제비를 뜨려고 조약돌을 집어 든다. 문을 열기 위해 손잡이를 잡는다. 휴머니스트를 자처하는 한 독학자의 열띤 고백을 듣는다. 옛 연인과 재회하여 그녀를 포옹한다. 그때마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구토가 거세게 치밀어 오른다.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그럼에도 뻔뻔하고 야성적인 실존에 대한 구토이다.

왜 당최 이것이 없지 않고 있느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조약돌이나 문손잡이가 아니라 구토를 향해 외치고 싶다. 그것은 변비처럼 우리의 신경을 지긋이 자극하여 비등점까지 끌고 가거나 아니면 설사처럼 느닷없이 우리를 덮쳐 쥐어짜고 우리의 실존을 화장실에 붙박아둔다. 나에게 후자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

 

나는 밤새도록 배를 붙잡고 씨름했다. 위아래로 연거푸 쏟아내는 동안 뱃가죽은 등가죽에 찰싹 달라붙었다. 동이 터올 무렵에는 몸도 제대로 펼 수 없을 만큼 통증이 심해졌다. 척추가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 제법 익숙한 것이었다. 뭐가 문제일까. 하루 동안 뱃속에 들어간 음식물을 떠올렸다. 고향집에서 올라온 돼지고기 장조림과 고들빼기김치, 식은 밥, 연거푸 몇 개를 깎아 우걱우걱 씹어 먹은 참외. 음식물을 아무리 조합해도 마땅히 답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119를 불렀다.

 

동네 병원 응급실. 의사의 얼굴을 보기가 무섭게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소변과 혈액을 뽑혔다. 기분 나쁠 정도로 서늘한 판자 위에 누워, 역시나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엑스레이 촬영도 했다. 그러곤 응급실 침대에 누워 오래도록 링거를 꽂고 있었다. 악몽과 통증이 사투를 벌이듯 번갈아가며 나를 덮쳤다. 간호사가 다가 왔다.

보호자는 언제 오세요?”

곧 올 거예요.”

물론 보호자는 오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슬그머니 눈이 떠졌다. 내 몸 위로 묵직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얀 가운, 청진기. 아까 본 그 의사다. 어딘가 시골 의사라는 단어 조합을 연상시키는, 지긋한 나이에 몸집이 푸짐한 할아버지. 이 인상에 몹시 부합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이봐, 학생, 엄마는 언제 와?”

나는 실제보다 더 기운이 없는 척, 서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이상은 없고 장이 왕창 꼬였어. 열이 나고 아파도 별 수 있나, 그냥 기다려야지. 이제 슬슬 집에 가도 될 것 같은데, 왜 아무도 안 와? 엄마가 와야지 애를 보내지, .”

엄마는 못 와요.”

내 말에 의사는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누구라도 와야지! 거참, 딱하네.”

혀를 끌끌 차며 의사는 퇴근했다.

 

어느덧 창밖이 거무스름했다. 이쯤 되자 진짜로 서러워해도 될 것 같았다. 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이 꺼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수업 중이었다. 이제 어쩌나. 아무리 서러움을 과시하고 싶어도 시골에다 전화를 거는 건 별로이다. 농사일로 한창 바쁠 때다. 스물일곱이나 처먹고서 병원에 드러눕다니. 비단 자식으로서, 맏딸로서가 아니라 그냥 인간으로서도 염치없는 짓이다.

 

나는 모로 드러누워 새우처럼 몸을 웅크렸다. 링거액이 혈관 속에 눈물방울을 하나씩 떨어뜨릴 때마다 내 의식이 한 발짝씩 죽음을 향해 가는 것 같았다. 물론, 배탈 때문에 죽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내 인생에 때 이른 죽음을 갈망할 만한 설움이란 전혀 없었다. 이게 나는 못내 속상했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허름한 동네 병원의 지저분한 침대 귀퉁이에서 이대로 죽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날 좀 살려달라는 청춘의 원성을 싹 무시하고 억울할 것도 없이 황망하게 덜컥.

 

*

 

무의식의 한가운데서 나는 구토의 역사를 썼다. 그것은 거의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날이 새기 전부터 어른들은 돼지를 잡았다. 몸집도, 목소리도 제일 큰 돼지, 나의 꿀꿀이였다. 꿀꿀이 멱을 따는 소리는 제법 생경하고 또 처연했다. 얼마 뒤 녀석은 완전히 뻗어버렸다. 그 단절이 조금은 이상했다. 꿀꿀이의 몸뚱어리가 몇 조각났다. 이제 꿀꿀이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가마솥 안에 들어간 것은 아까만 해도 꿀꿀대고 씩씩대며 돼지우리를 활보하던 그 꿀꿀이가 아니라 그냥 고기 덩어리였다. 한쪽에서 돼지고기가 삼기는 동안 나는 계속 코를 킁킁거렸다. 내 모양새가 왠지 오늘 새벽까지만 이 세상에 있었던 꿀꿀이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든 지금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것은 꿀꿀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한쪽에서 열심히 끓고 있는 탕국처럼 맛있는 음식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유쾌한 아침, 추석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선산에 성묘를 다녀오고 술판이 벌어지는 사이에 하루가 저물었다. 그 끄트머리에 나는 집 뒤의 묏등만큼 불러온 배를 껴안고 방안에서 뒹굴었다. 뒷간을 다녀오면 또다시 뱃속에 음식물을 채워 넣었다. 3, 4년 남짓한 내 인생을 다 헤적여 봐도 먹을 것이, 그것도 고기가 이렇게 푸짐했던 적이 없었다. 뱃속은 아프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내 손은 거침없이 고기조각을 탐했다. 급기야 또 뒷간으로 달려갔다. 아니, 뒷간까지도 못가고 앞마당 귀퉁이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설사가 뭉텅뭉텅 쏟아졌다. 바둑이는 컹컹 짖고 꼬리를 살랑대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아이고, 간만에 기름기가 들어가서 안 그렇나.”

내 뒤를 따라 나온 엄마가 말했다.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엄마, 꿀꿀이가 나 괴롭히는 거가?”

시뻘겋게 충혈된 눈에서는 눈물도 뚝뚝 떨어졌다.

그기 무슨 소리고? 딱 먹을 만큼만 먹으면 꿀꿀이도 좋아할 기다. 이제 고만 먹고 내일 또 먹으래이.”

엄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는 앞으로 꼬꾸라지며 음식물을 게워냈다. 대충 씹힌 고기 조각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돼지고기 냄새와 뱃속 냄새가 뒤섞여, 아주 고약한 냄새가 났다.

 

나는 힘없이 방 한구석에 드러누웠다. 엄마는 궤짝을 뒤져 알약 몇 개를 찾아냈다.

민영이 아빠, 여 소화제가 어떤 거라요? 불이 캄캄해서 영 안 보이네.”

호롱불이 캄캄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엄마는 한글을 읽을 줄 몰랐다. 수내 마을 일대에서 밭일 잘 하고 담뱃잎 엮는 솜씨가 일품이기로, 또 장 잘 담그기로 소문난 엄마였다. 그래도, 아니 그 때문에 엄마는 자기가 문맹이라는 사실을 조금은 창피해했다.

민영이가 알약을 먹겠나, 어디 한 번 보자.”

아빠는 소화제를 골라냈다. 조그맣고 동그란 초록색 알약이었다. 엄마가 밖에 나가 양푼에 찬물을 떠왔다.

, 입에 탁 넣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꿀꺽 삼키면 된대이. 함 해봐라.”

배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고분고분, 아빠가 시키는 대로 해보았다. 하지만 꿀꺽 삼켜진 건 물 뿐, 알약은 그대로 혀 안에 남아 있었다. 언젠가 장날 할머니를 따라 읍내에 갔다가 먹어본 사탕처럼 달달했다. 나는 혀를 놀려가며 알약을 핥았다. 하지만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달았던 사탕과는 달리, 알약은 이내 본색을 드러냈다.

아이고, 써라!”

나는 알약을 툭 뱉어버렸다. 엄마와 아빠는 그 소중한 소화제를 무려 세 알이나 낭비하며 내 뱃속에 넣으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나머지도 전부 하얀 맨 살을 드러낸 채 방바닥 어디에 쿡 처박혔다.

진땀을 빼는 사이에 뱃속도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러자 내 손은 절로 방구석에 쌓아놓은 과일더미로 향했다. 잠이 쏟아지지 않았다면, 커다란 사과 하나를 전부 먹어치웠을 것이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과식, 아니 폭식의 습관은 그날 처음 생겼다. 이후 평생을 따라다닐 섭식장애의 기원이다. 또한 그때 나는 처음으로 똥과 오줌뿐만 아니라 토사물이 내 몸 어디에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토 없는 실존이 불가능하다는 깨달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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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은학이는 모래를 뒤집어쓴 채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웬일인지 침까지 탁탁 뱉어댔다.

침은 왜 뱉고 그래? 그건 나쁜 버릇이야.”

입안에 모래가 가득 들어갔어요.”

은학이는 무심하게 말을 받았다.

또 모래 장난 했어? 비도 오는데?”

흡사 은학이의 독특한 취미를 오늘 처음 발견했다는 투였다. 특수교사는 따뜻한 옥수수차를 머그컵에 따라주고, 수건으로 은학이의 목과 팔을 닦아주었다. 은학이의 몸이 좀 데워지면 감자와 고구마가 나왔다. 은학이는 특수교사와 마주 앉아 입김을 호호 불며 이 음식을 먹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 순간은 무척 짧았다.

 

구구단 외우기가 시작됐다. 5단을 시작한 건 올해 봄부터였다. 여름방학을 할 땐 분명히 다 외웠는데, 개학을 하고 나니 거짓말처럼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것은 나름대로 일관된 암기 방식에 근거한 것이었다. 가령 봄 학기 내내 4단을 외우고 가을 학기가 되면 다 까먹었다. 하지만 내년 봄이 됐을 때는 4단의 절반은 남아 있었다. 이런 식으로 느리긴 하지만 어쨌거나 5단까지 온 것이었다.

, 그림을 봐. 다섯 개에 다섯 개를 더 하면 열 개지? 다섯 개가 두 개라고 생각하면 돼. 다섯 개에 다섯 개를 더 하고 또 다섯 개를 더하면, 다섯 개가 셋? 그럼 몇 개?”

열다섯 개요.”

옳지! 바로 그거야.”

복습이 끝났다. 은학이는 오만상을 쓰며 5단을 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오를 넘기지 못하고 대뜸 물었다.

선생님, 단무지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그게 5단이랑 무슨 상관이야?”

은학이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불퉁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그래도 5단을 읊조리긴 했다.

오일은 오, 오이 십, 오삼 십오, 오사 이십, 오오 이십오, 오육 삼십, 오육 삼십, 오육 삼십, 오칠, 오칠은, 오칠이, 오칠이 녀석이.”

은학이는 눈을 꼭 감은 채 무던히도 애를 썼다.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은학이는 한 쪽 눈을 살짝 내리뜨곤 책을 힐끔 봤다.

오육은 삼십, 오칠은 그러니까 삼십오, 오팔은, 오팔은.”

, 이제 앞에서부터 복습하고 나머지는 다음 시간에 외우자.”

헤헤, 그럼, 선생님, 이제 대답해보세요. 단무지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이 누굴까요?”

일단 복습부터! 오일은 오, 시작!”

오일은 오, 오이 십, 오삼은 십오, 오사 이십, 오오 이십, 이십, 이십.”

아까까지 잘 했잖아?”

까먹었어요.”

또 왜? 단무지 때문에?”

, 생각났다! 오오 이십오! 오육은 삼십이고, 단무지 처음 만든 사람은 누굴까요?”

, 몰라. 누군데?”

모르면 네이버한테 물어봐야죠!”

은학이는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 소리는 운동장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종소리에 묻혀버렸다.

 

은학이는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교실을 나갔다. 하지만 잠시 뒤에 근엄한 자세로 거들먹거리며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단무지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은 다꽝입니다!”

마치 어마어마한 비밀이라도 폭로하는 듯 비장한 표정이었다. 그 와중에도 난로 위의 군밤을 냉큼 집어 입안에 넣었다.

선생님, 그럼 해시계와 물시계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요?”

입안에서 놀고 있는 군밤 때문에 발음도 어설펐다.

장영실?”

맞아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이번에는 정말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며칠 뒤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서 사라졌다. 기나긴 겨울이 시작됐다.

 

*

 

떡붕어 아저씨는 벽을 열었다. 그 안에는 금고가 붙박여 있었다. 무수히 많은 숫자를 입력하자 금고 문이 열렸다. 싯누런 금괴들이 소복이 쌓여 태양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하나를 꺼내고 다시 문을 닫았다. 벽의 상처도 감쪽같이 아물어, 갈라졌던 흔적은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떡붕어 아저씨는 소영이와 함께 성을 나섰다. 바다를 건너진 않았지만 머나먼 길이 시작됐다.

 

아저씨가 도착한 곳은 거대한 실내 시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생필품을 잔뜩 샀다. 그 다음엔 농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막 추수한 쌀과 햇과일, 배추와 무를 비롯한 야채, 태양에 말린 고추 한 포대 등을 샀다. 트럭이 거의 다 찬 상태였다. 그 다음에는 숲속으로 갔다. 떡붕어 아저씨는 곳곳에 덫을 놓았다. 그리고 소영이를 판판한 돌 위에 앉혀 놓고 한참을 기다렸다. 토끼 세 마리, 꿩 다섯 마리, 어미 잃은 새끼 멧돼지 한 마리 등 소득이 컸다.

 

집에 돌아온 떡붕어 아저씨는 하루 종일 저장 음식을 만들었다. 김치를 담그고 감을 깎아 곶감을 만들고 고기를 해체해 일부는 냉장고에 넣고 일부는 다른 방에 걸어 말렸다. 모든 것이 다 끝났을 때 아저씨는 음습한 방으로 들어가 미끼용 벌레들을 꺼내왔다. 소영이에게는 겨울 잠바를 입히고 구명조끼도 씌웠다.

우아, , 물에 들어가는 거야?”

아니. 발을 헛디딜까봐 그러는 거야.”

 

둘은 바닷가로 나갔다. 떡붕어 아저씨는 낚싯대를 세 개나 설치했다. 낚싯대가 번갈아 가며 끊임없이 달그락거렸고 주둥이가 뾰족한 검푸른 꽁치들이 수도 없이 몰려들었다. 잡힌 꽁치들은 순식간에 그물망에 들어갔다. 그 즉시 꿈틀대는 갯지렁이를 싹둑 잘라, 반 토막씩 낚시 바늘에 꽂았다. 소영이에게도 낚싯대가 주어졌다. 어쩌다 꽁치가 걸려들면 폴짝폴짝 뛰며 즐거워했다. 옆에서 아저씨는 고등어 잡이용 미끼를 준비했다.

어라, 그건 뭐야?”

가짜 미끼야.”

에이, 고등어가 바보야, 그런 걸 먹게?”

하지만 거짓말처럼 고등어가 우수수 걸려들기 시작했다.

이런, 고등어가 꽁치보다 더 바보였네. 덩치만 커갖곤.”

고등어가 꽁치보다 눈이 더 나빠서 그래. 개체수가 많아서 먹이쟁탈전도 더 심한 거고. 고등어는 성질도 급해.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는 녀석이거든. 그래서 도시의 일반 식당에서 회로 팔기가 힘든,”

으악, 아저씨!”

소영이는 저도 모르게 낚싯대를 손에서 놓아버렸다. 떡붕어 아저씨가 용케 붙잡아 끌어올렸다.

허허, 갯지렁이를 문 문어는 처음 보는 걸.”

아저씨의 딱딱한 얼굴에 경련이 일면서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실은 기뻐서 실실 웃고 있는 것이었다.

 

떡붕어 아저씨와 소영이는 해질녘에 집으로 돌아왔다. 떡붕어 아저씨는 오랫동안 물고기를 다듬었다. 내장을 제거당한 물고기들은 두세 마리씩 묶여 냉동실에 안치됐다. 이번 겨울은 족히 날 수 있는 양이었다. 소영이는 문득 성탑 안에 누워 있는 뚱보 할머니를 생각했다. 그 할머니에게도 겨울이 올까. 한편 떡붕어 아저씨는 성 안에 거대한 수족관을 만들었다. 떡붕어 아저씨는 성 바깥의 연못에 관을 연결해 이쪽으로 물을 끌어왔다. 바윗돌과 돌멩이, 자갈도 깔고 온갖 민물고기와 해초를 다 풀어 놓았다.

 

월동 준비가 끝나자 슬슬 겨울이 올 기미를 보였다. 겨울 속에서도 계절은 매일매일 바뀌었다. 어제는 봄비가 내렸지만 오늘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했고 모레는 눈이 퍼부었고 그 모레 다음날에는 앙상한 진달래 나뭇가지 끝에 꽃봉오리가 맺혔다. 하지만 진달래가 꽃을 피우기도 전에 또 겨울이 와버렸다. 진분홍색 진달래는 새하얀 눈보라에 묻혀버렸다. 다음날 곧바로 눈이 녹으면서 폭염이 시작됐고, 신록은 어느덧 우거진 녹음이 됐다.

 

 

---- 2부 끝났습니다. 잠시 쉬었다가 3부로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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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인생과 사랑과 고독에 대한 감미로운 스케치

-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1995년 코카인 소지 혐의로 기소된 프랑수와즈 사강이 한 말이다. 윤기가 흐르는 짧은 금발, 길고 가느다란 목, 약간은 소년 같으면서도 청순가련형의 곱상한 얼굴로 유명했던 사강도 이 무렵에는 이미 환갑이었다. 열아홉 살에 슬픔을 향해 발랄한 인사말을 건넴으로써(<슬픔이여 안녕>)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소녀 작가. 이후 청장년, 중년을 거치며 제법 많은 작품을 썼음에도 우리의 기억 속에는 영원토록 나를 파괴할 권리를 마음껏 향유하는 청춘의 상징처럼 남아 있다. 약물과 마약 중독, 지나친 음주와 흡연, 도박, 목숨까지 앗아갈 뻔한 과속 운전, 두 번의 결혼과 두 번의 이혼 등 일련의 스캔들도 소위 사강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그녀가 사망한 이후에도 그녀의 소설이 널리 읽히고 사랑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신 컷도 예쁩니다!^^;)

 

가령 그녀가 스물네 살 때 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경쾌한 분량의 연애소설이다. 서른아홉 살의 실내장식가 폴은 꾸준히 다른 여자와의 연애를 일삼는 로제와 6년째 연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그녀 앞에 스물다섯 살의 청년 시몽이 나타나 열정적인 사랑을 토로한다. 스승인 슈만의 부인이자 14세 연상의 피아니스트 클라라를 사랑한 브람스에게서 은근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탓일까. 그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물음이 담긴 편지를 보내 그녀를 콘서트에 초대한다. 이 물음, 더 정확히 물음표가 말줄임표로 바뀌면서 폴은 상념에 젖는다.

 

그녀는 브람스의 콘체르토를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첫 부분이 낭만적이라고 여겼지만 음악 중간에는 듣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음악이 끝나고 난 다음에야 그녀는 그 사실을 깨닫고 아쉽게 생각했다.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 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중략) 물론 그녀는 스탕달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고, 실제로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고 여겼다. 그것은 그저 하는 말이었고, 그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어쩌면 그녀는 로제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고 여기는 것뿐인지도 몰랐다.(57)

 

콘서트홀 안에서 폴은 말한다.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시몽의 답은 이렇다. “저는 당신이 오실지 안 오실지 확신할 수 없었답니다. 분명히 말씀 드리지만, 당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제겐 큰 상관이 없어요.”(59) 둘 모두에게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사랑도, 삶도 비슷하다.

 

 

 

 

 

 

 

 

 

 

 

 

 

 

 

 

 

폴은 얼마간 시몽과 함께 살기도 하지만 로제가 화해의 손길을 건네자 결국 시몽을 떠나보낸다. 예전처럼 로제를 마냥 그리워하고 기다려야 할 것임을 알면서도 어쩌면 관성 때문에, 어쩌면 정말로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말이다. 한편, 시몽은 폴의 삶 속에 로제가 깊숙이 뿌리박혀 있음을 알면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사랑에 슬픔과 고통을 더하는 것을 은근히 즐기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폴의 집을 나갈 때 그의 눈에 가득 고인 눈물만큼이나 그의 사랑은 진실하다. “삶은 여성지 같은 것도 아니고 낡은 경험 더미도 아니야. 당신은 나보다 열네 해를 더 살았지만, 나는 현재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아주 오랫동안 당신을 사랑할 거야. 그뿐이야. 나는 당신이 자신을 천박한 수준, 이를테면 그 심술쟁이 할망구들의 수준으로 비하시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지금 우리의 문제는 로제뿐이야.”(133) 하지만 시몽의 치기 어린 열정은 폴의 삶에 알싸한 자극만 줄 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 브람스를 좋아하느냐마느냐의 물음과 비슷한 셈이다.

 

로제는 어떠한가. 메지(마르셀)와의 관계에 싫증을 느끼고 다시 폴에게로 돌아오지만 여전히 불성실하다.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폴은 그의 용건이 무엇인지 알아차린다. 아니나 다를까 일 때문에 늦을 것이라는 사과 전화이다. 아무래도 문제는 로제를 상대로 계속 사랑의 최면을 걸면서 자발적인 청승에 탐닉하는 폴에게 있는 것 같다. 이 점에서 변호사 시몽이 그녀에게 고독 형을 선고한 것은 타당하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도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43-44)

 

그러자 폴은 무시무시한 선고로군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이 웃음이 제법 오랜 여운을 남긴다.

 

폴은 작가가 15년 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창조해낸 인물이다. 청춘의 절정을 구가하던 사강에게 고독 형이 과연 진정으로 무시무시한 선고였을까. 오히려 진정한 고독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고독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것을 즐겼던 것이 아닐까. 말하자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고독마저 감미로운청춘 시절에만 쓸 수 있는 소설이다. “나를 파괴할 권리를 멋지게 행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멋지게 파괴될 만한 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역시 청춘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 네이버캐스트

 

-- 사강은 외모에서 풍기는 청신한 이미지가 워낙에 매력적이어서 오히려 소설이 얄팍해 보이는(실제로도 좀 그렇죠?^^;) 감도 있습니다. 뭐, 그녀 자신도 자기가 어떤 소설을 쓰는지는 알고 있었을 테고요 ^^;

-- 맨 앞에 인용한 사강의 말, 우리 모두 좋아했던, 소설가 김영하의 데뷔작에 제목을 제공했죠? 새 판본이 나왔음에도 저는 역시 처음 표지가 좋네요 ㅎㅎ 영원히 젊을 것 같던 김영하(그에게서는 왠지 하루키 냄새가 납니다만^^;)도 마흔을 넘긴 지 오래...ㅠ.ㅠ 

 

 

 

 

 

 

 

 

 

 

 

 

 

 

 

 

사강의 소설이 계속 언급되는 이런 일본 영화도 있지요?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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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8 2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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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9 16: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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