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25:22 거기서 너와 만나고

어떤 총각이 한 처녀를 사랑해서 매일같이 편지를 보냈습니다. 처녀는 총각의 편지를 읽고 감동했습니다. 이 처녀가 누구와 결혼했을까요? 집배원과 결혼했습니다. 총각은 매일 편지를 보냈지만 집배원은 매일 처녀를 만났습니다. 이처럼 만남은 중요합니다. 사람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과의 만남은 더 중요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노아는 돌 제단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는 성막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우리나라 성막전문가인 강문호 목사님은 ‘성막이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약도’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성막은 가로 50미터 세로 25미터 높이 2.5미터입니다. 총 150미터로 378평입니다. 200미터 운동장보다 작습니다. 이것은 가로 60센티미터 세로 30센티미터로 실제 성막을 90분의 1로 축소한 모형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데 어디서 하나님을 만났을까요? 법궤에서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법궤에 머무르셨습니다. 언제 만났을까요? 7월 10일(9월 10일)에 만났습니다. 대속죄일에 만났습니다. 누가 만났을까요? 대제사장이 만났습니다. 몇 번이나 만났을까요? 일 년에 한 번 만났습니다. 강문호 목사님은 4번이라 하는데 대부분은 한 번이라고 말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만났을까요? 짐승의 피를 가지고 가서 만났습니다. 피 흘림이 있어야 죄가 용서받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성막을 알아야 할까요? 성막을 알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성막을 확대한 것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을 축소시킨 것이 성막이라고 말했습니다. 성막은 예수님의 축소판입니다.

성막은 크게 성막 뜰, 성소, 지성소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성막문은 이스라엘 남자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막문은 하나인데 성막으로 들어가는 문이 하나이듯이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성막문은 큰문입니다. 세로 25미터 중에서 10미터가 성막문입니다. 성막문이 크듯이 구원의 문은 크게 열려있습니다. 과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만 구원받았지만 이제는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성막문은 동쪽에 있는데 성막에 들어갈 때는 서쪽을 봅니다. 서쪽은 해지는 쪽입니다. 나올 때는 동쪽을 봅니다. 동쪽은 해 뜨는 쪽입니다. 성막에 들어갈 때는 걱정을 갖고 가더라도 나올 때는 희망을 갖고 나오게 됩니다. 교회 올 때는 부부싸움하고 우울해서 왔더라도 집에 갈 때는 마음이 평안해져서 가야 합니다. 성막문은 문턱이 없습니다. 성막문이 문턱이 없듯이 구원받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막문은 생명의 문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번제단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으면 짐승을 끌고 와서 머리에 안수하여 그 사람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키고 짐승을 잡아 피를 번제단 사방에 뿌리고 고기와 기름을 번제단에 올려놓고 불에 태웠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우리는 성막문에서 예수님을 믿고 번제단에서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번제단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번제단에는 항상 피가 묻어있었는데 교회는 죄를 용서하는 속죄의 피가 흘러야 합니다. 번제단에는 항상 불이 붙어있었는데 교회는 성령님의 불꽃이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번제단에는 뿔이 있었는데 뿔을 잡으면 사형을 면하듯이 교회는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를 해야 합니다. 번제단은 제사장이시며 제물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물두멍인데 제사장이 손과 발을 닦았습니다. 물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릇을 닦고 음식을 담아먹듯이 우리가 성막문에서 예수님을 믿고 번제단에서 죄를 용서받고 물두멍에서 성결해지면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우리가 더러운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지 않듯이 성령님은 더러운 영혼에게 임하시지 않습니다. 회개한 영혼에게 임하십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성령님을 통해 계십니다. 우리는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근심시키지 말고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물두멍은 생명수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제 바깥 휘장을 열고 성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성소에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성소는 4겹의 덮개로 덮었는데 첫 번째 덮개는 천사를 수놓은 천연색 덮개이고, 두 번째 덮개는 세마포 덮개이고, 세 번째 덮개는 붉은 물을 들은 숫양의 가죽 덮개이고, 네 번째 덮개는 물개가죽 덮개입니다. 물개 가죽은 비가 새지 않습니다. 성소에 들어가면 왼쪽에 금등대가 있습니다. 7개 줄기의 금등대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를 의미합니다. 성소에는 창문이 없어 어둡지만 금등대가 빛을 비추기 때문에 밝습니다. 금등대가 빛을 비추듯이 우리는 빛을 비추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어두워져 가는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타락했는데 우리까지 타락한다면 세상은 아무런 소망도 없습니다. 빛은 길을 인도하듯이 우리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예수님에게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의 등대가 돼야 합니다. 빛은 생명을 주듯이 우리는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우리가 성막문에서 예수님을 믿고 번제단에서 죄를 용서받고 물두멍에서 성령님을 받고 금등대에서 빛을 비추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금등대는 빛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성소 오른쪽에는 떡상이 있습니다. 6개의 떡이 두 줄로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12개의 떡은 이스라엘 12지파를 의미합니다. 이 떡은 매주 안식일마다 바뀌었는데 제사장들만 먹었습니다. 떡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매일아침 갓 구운 빵을 사먹는다는데 목사는 매주 마다 새로운 말씀을 준비해서 전해야 합니다. 찬밥을 데워 먹이지 말고 새로 지은 밥을 먹여야 합니다. 교인드른 매일 밥을 먹듯이 매일 영혼의 밥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막문에서 예수님을 믿고 번제단에서 죄를 용서받고 물두멍에서 성령님을 받고 금등대에서 빛을 비추는 생활을 하고 떡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떡상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성소 중앙에는 분향단이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에 등대에 불을 붙일 때 분향단에도 향을 살랐습니다. 분향단의 뿔은 4개입니다. 분향단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분향단의 향이 위로 올라가듯이 우리의 기도가 하늘나라에 올라갑니다. 어떤 사람은 성도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하늘나라에서 천사들을 집합시킨다고 합니다. 성도는 기도하느라 바쁘고, 천사들은 집합하느라 바쁘고, 하나님은 응답하시느라 바쁘고, 마귀는 기도를 방해하느라 바쁘다고 합니다. 마귀가 방해하더라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성막문에서 예수님을 믿고 번제단에서 죄를 용서받고 물두멍에서 성령님을 받고 금등대에서 빛을 비추는 생활을 하고 떡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분향단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예수님이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합니다. 분향단은 중보자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제 안에 있는 휘장을 열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성소는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고 돌아가시자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장애물이 없어졌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교회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궤 위에는 속죄소가 있고 속죄소 위에는 두 그룹이 양편에서 날개를 펴고 있습니다. 법궤 안에는 십계명 두 돌판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관련한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과 관련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해야 합니다. 법궤 앞에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두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불만을 품자 하나님은 12지파에서 한 개씩 지팡이를 가져와 법궤 앞에 놓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날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났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론에게 권한을 위임하셨다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목사에게 말씀을 전할 권한을 부여하셨습니다.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지도자의 권한에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법궤 앞에 만나 항아리를 두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침에는 만나를 내리시고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셨습니다. 만나가 육의 양식이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법궤는 생명의 말씀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성막은 십자가의 모양을 닮았습니다. 성막은 예수님의 축소판으로 성막을 알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어느 교회는 종탑 위에 십자가와 어린 양을 세웠다고 합니다. 교회를 건축하다 교인이 지붕에서 떨어졌는데 마침 양떼가 그곳을 지났습니다. 양은 죽고 교인은 살았습니다. 구약은 양이 죽고 사람이 사는 겁니다. 신약은 예수님이 죽고 우리가 사는 겁니다. 구약과 신약은 똑같은 성경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말했습니다.(호6:3) 하나님은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호6:6) 성막은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통로입니다. 성막을 통해 예수님을 알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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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9:19-21 피와 관유를 가져다가

예전에 사극을 봤는데 이런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병상에 계신 어머니가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맵니다. 아들은 너무 다급한 나머지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어머니의 입속에 떨어뜨립니다. 잠시 후 어머니는 신음소리를 내며 의식을 회복합니다. 현대의학에서는 아들의 피 한두 방울로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가 살아날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피를 생명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피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성경도 피를 생명으로 여겼습니다. 성경은 피는 생명이고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피를 신성시하였습니다.(레17:11)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피를 나눠 마시면 의형제가 되고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에게 먹여주면 살기도 하지만 성경에서는 피를 먹어서는 안 되고 제단에 뿌리거나 몸에 발라야 했습니다.

제단에 뿌리는 경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죄를 지으면 송아지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속죄 제물로 가져 왔습니다. 제사장은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 사람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시키고 짐승을 잡아 피를 손가락에 찍어, 성소의 휘장 앞에 뿌리고, 향단 뿔들에 바르고, 나머지를 번제단 밑에 쏟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짐승의 피를 뿌려 죄를 용서받고 또 죄를 짓고를 반복했습니다. 몸에 바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사장을 임명할 때는 피를 몸에 발랐습니다.(레14:14) 19-20절을 봉독합니다. “너는 다른 숫양을 택하고 아론과 그 아들들은 그 숫양의 머리 위에 안수할지며 너는 그 숫양을 잡고 그것의 피를 가져다가 아론의 오른쪽 귓부리와 그의 아들들의 오른쪽 귓부리에 바르고 그 오른손 엄지와 오른발 엄지에 바르고 그 피를 제단 주위에 뿌리고” 아멘! 하나님은 제사장을 임명할 때 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두 마리를 가져와 송아지는 속죄제로 드리고 숫양 한 마리는 번제로 드리고 다른 숫양은 머리에 안수하여 그 사람의 죄를 숫양에게 전가시키고 나서 숫양을 잡았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들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통해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씀합니다. 제사장이 되려면 숫양이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하듯이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기 위해 어린 양되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제사장은 숫양의 피를 오른쪽 귓불과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발랐습니다. 피를 오른쪽 귓불에 바르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2장 17절을 통해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 4-5절을 통해 뱀이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유혹했습니다. 하와는 뱀의 꾐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하와와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뱀의 말을 들어 에덴에서 추방되었습니다. 에덴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기쁨을 상실하게 됩니다. 에덴에서 추방되고 나서 하와는 수고하고 자식을 낳는 심판을 받았고 아담은 땀을 흘려야 먹고 사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마귀는 오늘날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라고 속삭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가지고 시험합니다. 마귀의 말을 듣는다면 마귀의 종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 27절을 통해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제사장이 귓불에 양의 피를 발랐듯이 우리도 귓불에 예수님의 피를 발라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 오른쪽 귓불에 예수님의 피를 바르는 퍼포먼스를 합시다. 십자가에서 피를 찍어다 오른쪽 귓불에 바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할 수 있습니다. 피를 엄지손가락에 바르는 이유는 하나님과 동역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9장 37-38절을 통해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추수할 일꾼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눈에 띄는 게 있다면 그것이 우리가 봉사할 일입니다. 찬양이 부족하다 싶으면 그 사람이 찬양인도를 하면 됩니다. 어린 영혼들이 소중해 보인다면 교회학교 교사를 자청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초청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역하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그냥 따라 다니는 무리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제자가 돼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무리보다는 제자에게 더 큰 상급을 주실 겁니다. 제사장이 엄지손가락에 양의 피를 발랐듯이 우리도 엄지손가락에 예수님의 피를 발라야 예수님과 동역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찍어다 엄지손가락에 바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동역할 수 있습니다. 피를 엄지발가락에 바르는 이유는 하나님과 동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6절을 통해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을 통해 내가 너희를 결코 버리지 아니하고 내가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는 여기까지 도우셨던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시고(삼상7:12), 현재에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고(마1:23), 미래에는 우리의 길을 준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창22:14) 제사장이 엄지발가락에 양의 피를 발랐듯이 우리도 엄지발가락에 예수님의 피를 발라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피를 찍어다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귓불과 엄지손가락과 엄지발가락에 숫양의 피를 바르고 나서 피와 관유를 옷에 뿌렸습니다. 여기서 숫양의 피는 예수님의 보혈이고, 관유는 깨끗한 기름인데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말씀합니다. 제사장이 피를 옷에 뿌렸듯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도 예수님의 보혈을 옷에 뿌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 죄를 씻고 우리를 지켜줍니다. 제사장이 관유를 옷에 뿌렸듯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도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기름 부으심은 ‘어노인팅’입니다. 예수님은 히브리어로는 ‘메시야’ 이고 그리스어로는 ‘그리스도’ 인데 둘 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듯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우리도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한 순간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십니다. 이것이 내적인 기름 부으심입니다. 우리는 외적인 기름 부으심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간절히 기도하고 찬양을 올려드리면 성령님이 임하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몸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이것이 외적인 기름 부으심입니다. 내적인 기름 부으심은 반드시 필요하고 외적인 기름 부으심은 덤으로 필요합니다. 내적이고 외적인 기름 부으심을 받아야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린 양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을 귓불에 발라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우리 엄지손가락에 발라 하나님과 동역해야 합니다. 우리 엄지발가락에 발라 하나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이 피와 관유를 옷에 뿌리듯이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아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반대말은 죄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이 거룩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연말이 되면 분위기에 휩쓸려 죄를 짓는 경우가 많은데 죄를 지으면 기쁨을 상실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사모하여 죄와 타협하지 않고 거룩하게 사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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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5일 주일에 서상환 집사를 구원상담하여 확신을 심어주고 박충기 권사, 천애순 집사, 서상환 집사에게 새가족 훈련을 실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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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8일 주일부터 우리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이창형 선생에게 를룻을 레슨받다. 3개월에 1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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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8일 주일에 박충기 권사와 천애순 집사에게 구원상담을 점검하여 확신을 심어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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