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20:18 내가 주를 보았다.

우리나라는 설날과 추석이라는 큰 명절이 있는데 기독교는 부활절과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과 성탄절이라는 큰 명절이 있습니다. 이 중 가장 큰 명절은 부활절입니다. 사람들은 성탄절이 가장 큰 명절인 줄 알지만 예수님의 탄생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이 기독교를 만든 원동력이기 때문에 부활절이 가장 큰 명절입니다. 저는 부활절이 될 때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왜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을까 궁금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여자를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남은 조각을 12바구니나 거두었을 때도 성인남자만 세고 여자와 어린이는 제외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다면 다른 제자들도 믿기가 쉬웠을 텐데 여자인 마리아에게 알려준다면 다른 제자들이 의심할 게 뻔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아셨지만 수제자인 베드로가 아니라 여자인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리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살펴볼까요? 하나님은 누가복음 8장 1절에서 3절을 통해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다고 말씀합니다. 일곱 귀신은 귀신 들린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귀신이 심하게 들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으나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내 주셔서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마리아는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자들과 함께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누가복음 5장 11절을 통해 예수님의 핵심 제자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랐지만 8장 3절을 통해 마리아와 요안나와 수산나는 예수님을 섬겼다고 말씀합니다.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지만 교회를 다녔지만 여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교회봉사를 했습니다. 요즘도 남자 교인들보다 여자 교인들이 믿음이 더 좋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여자 제자였습니다. 여자 제자들 중에서도 이름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리더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섬겼다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을까요?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을 겁니다. 누가복음 23장 44절에서 56절을 통해 예수님에게는 남자 제자가 12 명이 있었는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 기도하고 있다고 알려주어 종교지도자들에게 붙잡혀 가게 하였고, 수제자인 베드로는 칼을 들고 저항하다가 대제사장의 집에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고,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붙잡혀 가시자 해코지를 당할까봐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여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빌라도의 관저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안타깝게 지켜봤고,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도 가슴을 치며 탄식을 했고,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장할 때에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났지만 여자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황수관 박사가 간증하는데 한국전쟁 당시 피난하는데 폭탄이 떨어지자 키가 큰 아버지는 혼자 살겠다고 도망갔지만 키가 작은 어머니는 자식들을 끓어 안았다고 하더라고요. 남자 제자들은 얼굴만 세우려고 했지만 여자 제자들은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던 두 번째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과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섬겼고 예수님과 함께 했다고 해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을까요? 이것 말고도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 겁니다. 누가복음 24장 1절부터 12절까지를 통해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금요일 오후 6시부터는 안식일이 시작됐습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에는 모든 것이 멈추어집니다. 장례식도 치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일 장을 치르기 때문에 아리마대 요셉은 서둘러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시신을 세마포로 싸고 다른 사람을 장사하지 않은 새 무덤에 예수님을 안장했습니다. 여자 제자들은 장례식을 급하게 치르느라 예수님의 세마포(수의) 사이에 향품을 바르지 못해서 안타까웠습니다. 여자 제자들은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새벽같이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무덤 문(돌문)을 어떻게 굴릴까를 걱정하면서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무덤은 산허리에 있는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무덤 입구는 큰 돌을 굴려서 막았고 돌을 노끈으로 묶었고 옛날에 시루떡을 찔 때 김이 새지 않도록 밀가루로 봉하듯이 빈 공간은 점토로 봉인했습니다. 여자들이 밀어 가지고는 돌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자 제자들이 무덤에 도착해보니 육중한 돌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여자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질해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에 무덤을 도굴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무덤을 파헤치거나 시체를 가져가거나 무덤을 인봉한 돌문을 바꿔 놓거나 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칙령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여자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남자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절에서 10절을 통해 시신을 쌌던 세마포(수의)는 흩어져 있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개어져 있었습니다. 누에가 껍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가듯이 예수님은 세마포를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셨습니다. 만약 도둑이 들어왔다면 시신은 그대로 두고 값비싼 세마포만 벗겨갔을 겁니다. 시신을 훼손하려고 들어왔다면 피로 범벅이 된 세마포를 벗기지 않고 통째로 옮겨갔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신을 도둑질해 갈 수도 없었습니다. 산허리에 무덤을 만들었기 때문에 입구가 하나였고 그 입구를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경비병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신이 도둑맞지 않은 게 분명했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리고 돌아갔지만 요한복음 20장 11절을 통해 마리아는 무덤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던 세 번째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남자 제자들보다 나았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지만 마리아는 섬겼고,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났지만 마리아는 함께 했고, 남자 제자들은 무덤을 보고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빈 무덤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남자 제자들은 출세하려고 예수님을 따라다녔기 때문에 예수님이 붙잡히시자 도망갔지만 여자 제자들은 은혜를 받고 나서 따라다녔기 때문에 예수님이 돌아가셨어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그리고 갑자기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만 다니는 교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섬기는 교인이 되고, 자기에게 손해가 된다면 교회를 떠나는 교인이 아니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예수님과 동행하는 교인이 되고, 이방인처럼 살지 않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사는 교인이 된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고 우리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실 겁니다. 우리는 베드로같이 나중에 듣는 제자가 아니라 마리아처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식을 먼저 듣는 제자가 돼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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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4일 부활주일에 이소정에게 아동세례를 집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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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18 생명이냐 멸망이냐

4월 12일자 조선일보에 프랑스의 AFP 통신을 인용해 다큐멘터리 감독 ‘심차 자코보비치’가 유대교 대제사장 가야바의 무덤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사용했던 녹슨 대못 두 개를 찾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가야바는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고발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유물부는 "고고학적인 근거나 조사가 빈약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 못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일 때 사용됐던 대못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확실합니다. (저는 리 스트로벨 목사님의 [예수님의 수난을 체험하기(우리나라에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로 번역)]를 참고하여 예수님이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신 이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십자가형은 로마제국에 반기를 든 반역자나 사람을 죽인 살인자에게 시행하는 잔인한 사형방법이었습니다. 사형수는 쇠와 뼛조각이 박힌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채찍을 맞으면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습니다. 사형수는 상처투성이의 몸을 이끌고 길이가 180센티미터 무게가 14킬로그램인 십자가의 가로 기둥을 어깨에 지고 사형장까지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빌라도의 관정에서 재판을 받고 성 밖에 있는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셨습니다. 너무 힘들어 3번 넘어지셨습니다. 사형장에 도착하면 길이가 18센티미터인 굵은 대못을 양손에 박고 몸을 지탱하기 위해 팔에 밧줄을 감았습니다. 한쪽 무릎을 조금 밀어 올리고 발을 겹쳐서 발등에 박았습니다.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면 압력이 가해져 숨쉬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사형수의 몸에서는 피와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갈증이 났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햇살이 얼굴을 내리 쨌습니다.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사형수는 빨리 죽고 싶지만 쉽게 죽어지지 않았습니다. 사형수는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형을 보고 공포에 떨었습니다. 사형수는 보통 36시간이 지나서야 죽었다고 합니다. 저녁이면 피 냄새를 맡고 들짐승들이 나타나 십자가에 매달린 사형수의 살점을 뜯어 먹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매달려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6시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금요일 오후 6시부터 토요일 오후 6시)이전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예수님을 죽였는가?
누가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을까요? 예수님을 팔아넘긴 가룟 사람 유다일까요? 예수님을 구출하지 않고 도망간 제자들일까요? 산헤드린 공회에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일까요? 바라바를 살리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고함을 지른 유대 백성들일까요? 종교지도자들과 유대 백성들의 압력에 굴복해 사형선고를 내린 로마제국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일까요? 예수님의 손과 발에 대못을 박은 로마 군병들일까요? 아니면 모든 악한 일의 배후에 있는 사탄일까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5장 8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통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위의 본문들을 통해 예수님은 죽임을 당하시지 않고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죽음을 선택하셨을까요?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죄가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가?
예수님은 무슨 죄를 지어 사형선고를 받으셨을까요? 재판은 심문과정을 거쳐서 최종판결을 내리지만 사냥꾼이 올무를 쳐놓고 짐승을 기다리듯이 종교지도자들은 사형을 결정해놓고 재판을 진행하였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왜 예수님을 죽이려 했을까요? 유대교 서기관들은 성경을 옮겨 적을 때 ‘야훼’라는 단어가 나오면 목욕을 하고 와서 적었는데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렀습니다.(마14:36) 거룩하신 하나님을 친밀한 하나님으로 바꿨습니다. 유대인들이 생각하기에 너무나 파격적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을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예언된 ‘인자’(단7:13-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메시야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며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예언되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자신을 인자라고 말하자 신성모독죄(하나님께 불경스런 말)를 적용하였습니다.(마26:63-66) 그러나 진짜 신성모독죄를 저지른 건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죽이려한 종교지도자들이 진짜 신성모독죄를 저질렀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었는가?
예수님이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까요? 예수님의 죽음은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이 진짜라면 예수님은 진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겁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기록하였습니다. 거짓으로 기록하였다면 들통 났을 겁니다. 목격자들이 기록하였으니 신약성경은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는 왜 고난을 받고 죽어야 했나?
예수님은 왜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3장 23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사람이 죄를 저지르면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짐승을 속죄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유대 백성들은 죄를 저지르고 속죄제물을 드리고를 반복하였습니다. 속죄제물의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어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부활은 무엇을 성취하였는가?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한두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여러 번에 걸쳐서 목격하였기 때문에 사실입니다. 부활은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보증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을 기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고 우리는 나중 열매입니다.

이 이야기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와 영광의 부활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생명의 길로도 갈 수 있고 멸망의 길로도 갈 수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생명과 멸망의 갈림길입니다. 분기점입니다. 분기점에서 길을 잘 들어야지 잘못 들어섰다가는 낭패를 당하잖아요?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전서 1장 18절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멸망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십자가의 도를 거부합니다. 메시야가 어떻게 죽을 수 있느냐 며 비아냥거립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옥으로 던져집니다. 지옥은 죽으려고 해도 죽어지지 않는 곳입니다. 살아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계20:10) 이것이 두 번째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거부하면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십자가의 도를 받아들입니다. 메시야가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고 믿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갑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나 애통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있지 않습니다.(요21:3-4) 여러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오렌지를 먹을 때 껍질을 벗기고 알맹이를 먹듯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지식으로 아는 껍데기 교인이아니라 마음으로 믿는 알맹이 교인이 돼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부활하셨다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어갈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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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7일(주일) 여디모데가 친구 조원영을 전도하다.(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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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2일(화) 11시에 드리다. 74명이 참석했고 6,500,000원이 헌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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