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3:17 기름과 피를 사를지니

종교개혁자인 마르틴 루터는 ‘성경은 아기 예수님이 누워 계신 요람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창세기는 예수님의 머리이고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발입니다. 그렇다면 레위기는 어디일까요? 레위기는 예수님의 심장입니다. 얼굴이 아무리 예쁘더라도 심장이 멈춰 있으면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얼굴을 성형하기가 어렵더라도 심장이 뛰고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심장은 살아 있고 죽어 있고를 가릅니다. 레위기는 심장이기 때문에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하고 따분하더라도 심장인 레위기를 안다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5가지 제사를 알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날로 화목제입니다. 화목제는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가죽만 빼고 모두 다 불사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였다면, 소제는 고운가루 한 움큼만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는 제사장을 먹이는 제사였습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도 드리고 제사장에게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도 나누어 먹는 제사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마치면 공동식사를 하는데 화목제는 애찬의 기원이었습니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할머니 권사님들에게 어떤 제사가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화목제가 좋다고 대답하시더라고요. 지난주에 금천교인들이 우리교회를 방문하시고 고향정 보리밥 뷔페에서 식사를 하셨는데 음식을 드시고도 이야기할 거리가 남았는지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화목제는 제물의 피를 흘려 죄를 용서받는 엄숙한 제사이자 제물을 나누어 먹는 즐거운 제사였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하나님께는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을 드렸습니다.(레3:3-5,9-11,14-16) 우리나라는 내장으로 내장탕을 끓이잖아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장에 붙은 기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내장에 붙은 기름은 식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고,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레3:17)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기름과 피를 먹지 말고 드리라고 하셨을까요? 오봉달 장로님이 쓰신 [성경이 말하는 건강 상식]을 보니 동물은 죽음을 예견하면 자기 몸을 보호하려고 독소를 피에 남긴다고 합니다. 살에는 남지 않고 피에만 남는데 그 독소가 아드레날린입니다. 피에는 독소가 남아있으니 몸에 해롭습니다. 선지해장국에도 독소가 남아있으니 먹지 않는 게 좋습니다./ 성인병은 콜레스테롤과 관련이 있는데 내장에 붙은 기름에 콜레스테롤이 많다고 합니다. 핀란드는 세계에서 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나라인데 60세 이상이 되면 60%가 보청기를 끼고 백내장에 걸리고 고혈압으로 고생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시기 위해 내장에 붙은 기름은 하나님께 불태워서 드리고 피는 죄를 씻기 위해 번제단 주변에 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장에게는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주었습니다.(레7:30-34) 보디빌딩을 하는 사람들은 닭 가슴살을 먹잖아요. 가슴살에는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아 근육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돼지고기도 뒷다리 살은 지방은 적고 단백질은 많아 담백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왜 가슴살과 뒷다리 살을 제사장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가슴은 짐승의 중심이니 마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가슴살을 주듯이 목사님에게 마음을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을 싫어하면 말씀이 시빗거리로 들립니다. 자신을 치는 소리로 들립니다. 그러나 목사님을 좋아하면 말씀이 은혜롭게 들립니다. 말씀에 은혜 받아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은혜 받지 못하면 자동차가 기름이 떨어져서 멈춰버리듯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게 됩니다. 마음을 주십시오./ 뒷다리는 가장 강한 신체부위로 힘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뒷다리를 주듯이 목사님에게 힘을 실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이 교인들 눈치를 보면 소신 있게 목회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자기주장을 하면 이도 저도 못합니다. 목사님이 기도하고 추진하는 일에는 “좋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해야 교회가 부흥하고 발전합니다.

화목제를 드릴 때 제사 드리는 사람들은 나머지 부위를 먹었습니다.(레7:15-18) 화목제는 하나님께는 조금 드리고 제사장에게는 어느 정도 드리고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은 많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화목제로 드린 고기를 당일에 먹었습니다. 남으면 불태웠습니다. 화목제의 목적이 예배에 있지 식사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오는 목적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지 애찬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모님과 천집사님이 아무리 맛있는 반찬을 해 오셔도 영혼의 양식을 채우고 나서 육신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화목제에서 무엇이 예수님을 상징할까요? 번제는 흠 없는 수컷이 예수님을 상징했다면 소제는 변하지 않는 소금이 예수님을 상징했습니다. 화목제는 예수님이 바로 화목제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사이가 갈라졌을 때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셨습니다. 화목제는 고기를 나누어 먹는 제사다 보니 먹을 것이 없는 비둘기는 드리지 않고 소와 양과 염소를 드렸습니다. 흠 없는 수컷이나 암컷을 모두 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남자를 위해서도 여자를 위해서도 화목제가 되셨습니다. 얼마 전에 부산과 거제도를 연결하는 거가대교가 개통됐는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전쟁터에서 벌어졌던 이야기입니다. 고지를 지키려는 아군과 고지를 빼앗으려는 적군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적군이 쏜 포탄이 떨어져 아군의 전선이 끊어졌습니다. 적군은 쳐들어오는데 무전기를 연결하는 전선이 끊어졌기 때문에 본부에 포격지원을 요청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한 병사가 나섰습니다. 병사는 전선을 따라 내려갔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포탄을 맞아 땅이 움푹 폐였습니다. 병사가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잡아 당겼지만 길이가 짧았습니다. 병사는 누워서 두발로 한쪽 전선을 잡았고 두 손으로 다른 쪽 전선을 잡았습니다. 전기가 통했습니다. 병사는 몸이 저렸지만 전선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지에 있는 아군은 포격지원을 요청했고 본부에서는 포격지원뿐만 아니라 지원군까지 보내줘 적군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전투가 끝나고 병사를 찾아 나섰는데 병사는 전기에 감전돼 새까맣게 타있었습니다. 병사가 죽었기 때문에 고지에 있던 아군이 살 수 있었습니다. 적군의 포탄에 전선이 끊어졌듯이 우리가 죄를 저질러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갈라졌습니다. 병사가 전선을 연결하고 감전되어 죽었듯이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병사는 예수님처럼 자신은 죽고 다른 사람은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골로새서 1장 20절을 통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적인 죽음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화해자시니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도 화해자가 돼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 가면 이 집사가 있다고 합니다. 이 집사는 이 사람의 말을 저 사람에게 옮겨 두 사람 사이를 가르는 이간질 집사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간질 집사는 없고 이연지 집사가 있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 집사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이 저 사람과 마음이 상했을 때 두 사람을 풀어주는 화해자 집사입니다. 우리 교회는 화해자 집사가 많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문제를 일으키는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문제를 해결하는 피이스 메이커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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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 17:8-16 하나님 제일주의

 

여론조사 기관인 한국갤럽이 2004년 5월 13일부터 29일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만 15세 이상 남녀 1,728명을 대상으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40가지를 조사했습니다. 좋아하는 인물분야에서 전, 현직 대통령 중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정치인 중에서는 박근혜 대표를, 기업인 중에서는 이건희 회장을, 소설가 중에서는 이문열 선생을, 가수 중에서는 이미자 씨를, 영화배우 중에서는 안성기 씨를, 탤런트 중에서는 최불암 선생을, 코미디언 중에서는 고 이주일 선생을, 스포츠 선수 중에서는 이승엽 선수를 좋아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자연분야에서는 꽃은 장미를, 나무는 소나무를, 산은 설악산을, 계절은 가을을 좋아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음식분야에서는 한국음식 중에서는 된장찌개를, 중국음식 중에서는 자장면을, 생선 중에서는 고등어를, 음료 중에서는 커피를, 술중에서는 소주를 좋아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취미와 문화 분야에서는 취미 중에서는 등산을, 운동 중에서는 축구를, 노래 중에서는 노사연의 만남을, 한국영화 중에서 인상 깊게 본 연화는 실미도를, 외국영화 중에서는 반지의 제왕을, 옷 색깔 중에서는 검은색을, 직업 중에서는 공무원을, 국가 중에서는 미국을, 도시 중에서는 파리를 좋아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십계명 중에서 제1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3)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는 것을 가장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은 사람에게는 수천 대까지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출20:6)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십계명 중에서 제1계명을 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을 섬긴 사람에게는 삼사 대까지 벌을 주시겠다고 경고하셨습니다.(출20:5)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을 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제7대 왕 아합이었습니다. 아합 왕은 총각 때는 하나님을 섬겼으나 결혼하면서부터 우상을 섬겼습니다. (아합 왕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시돈 왕국과 동맹을 맺고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시돈 왕국의 공주 이세벨을 왕비로 맞이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시돈 왕국과 동맹을 맺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전쟁이 없이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는 교역을 통하여 번영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합 왕은 이세벨과 결혼하자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을 섬겼습니다. 아합 왕은 이세벨을 위하여 바알 신전을 짓고 신전 안에 바알 제단을 쌓고 바알의 아내인 아세라 목상도 만들었습니다. 아합 왕은 이전의 이스라엘 왕들보다 더 심하게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아합 왕에게 보내셨습니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왕상17:1)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 왕이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뭄을 주셨다고 선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 5장 17절을 통해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가뭄을 경험해 보았습니다. 몇 달 동안 비가 오지 않자 논이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졌고 밭작물이 누렇게 타들어 갔습니다. 먹을 물이 없어 소방차에서 물을 실어 오면 물지게를 지고 날랐습니다. 우리나라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농사를 지을 수 없지만 사막인 이스라엘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사람과 짐승이 굶어 죽게 됩니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이슬이라도 내린다면 농작물이 살아남을 수 있으나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몇 달 동안 내리지 않았다면 견뎌볼 수 있으나 몇 년이라 살아남기가 힘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황폐화되었습니다. 봄철이면 찾아오는 불청객 황사도 땅이 황폐화되어 모래가 돼서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거잖아요. 젖과 꿀이 흐르는 이스라엘이 왜 이렇게 황폐화 되었습니까? 아합 왕이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합 왕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을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합 왕 시절에 바알과 아세라는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아합 왕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습니다. 오늘날은 시간과 물질이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고 물질에 얽매입니다. 하나님은 아합 왕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자 가뭄을 주셨듯이 우리들이 시간과 물질을 섬긴다면 고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하나님이 가뭄을 내려서 아합 왕을 굴복시키셨듯이 우리들에게 사랑의 매를 드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을 행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시돈 왕국의 사르밧 과부였습니다. 하나님은 아합 왕에게 기근을 선포하고 엘리야 선지자를 그릿 시냇가로 숨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유랑할 때 아침에는 만나를 저녁에는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듯이 엘리야 선지자에게 아침과 저녁으로 까마귀들을 보내셔서 떡과 고기를 날라다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릿 시냇가가 마르자 엘리야 선지자를 시돈 왕국에 있는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시돈 왕국으로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돈 왕국은 북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로 물들게 한 이세벨 왕비의 고향이었습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처럼 하나님은 우상을 없애기 위해서 엘리야 선지자를 우상 숭배의 본고장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르밧에 사는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음식을 제공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과부에게 보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는 가장 가난한 계층이었습니다. 이삭을 주워서 먹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과부에게 복을 주시려고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과부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복을 받을 수도 있었고 받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사르밧에 도착해 보니 한 과부가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과부는 가난에 쪄들어 몰골이 형편없었습니다. 얼굴은 새까맣게 탔고 의복은 갈기갈기 헤어졌습니다. 엘리야 선지가 과부를 불렀습니다.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왕상17:10b) 엘리야 선지자는 물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과부는 아무 말 없이 물을 뜨러갔습니다. 가뭄이 심하게 들어 물도 귀했으나 과부는 형편은 어려워도 인심은 후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한 술 더 떴습니다.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왕상17:11b) 엘리야 선지자는 밥을 가져오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과부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가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왕상17:12) 과부는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 한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대담하게 요구하였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왕상17:13-14) 엘리야 선지자는 마지막 식사를 자신에게 먼저 가져오고 과부와 아들은 나중에 먹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가뭄이 끝날 때가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벼룩의 간을 먹는다.’ 는 속담처럼 가난한 과부의 마지막 식사를 달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과부는 마지막 식사를 자신과 아들이 먹을 것이냐? 하나님의 선지자를 줄 것이냐? 를 놓고 망설였습니다. 과부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마지막 식사를 엘리야 선지자에게 주었습니다. 과부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프라이팬에 기름을 붓고 나뭇가지를 지펴서 부침개 같고 피자 같은 얇고 둥근 빵을 만들어 엘리야를 대접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과부는 마지막 식사를 하나님께 대접하였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처럼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과부에게 있어 가루와 기름은 가장 귀중했습니다. 과부는 가장 귀중한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섬겼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시간과 물질이 가장 귀중합니다. 우리가 시간이 가장 귀중할 때 너무 바빠서 교회갈 수 없는 상황에서도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면 하나님께서 주일에 복을 주시고 거룩하게 만드십니다. 우리가 물질이 가장 귀중할 때 너무 쪼들려서 헌금을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고서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 주십니다.

미국에 록펠러라는 전설적인 부자가 있었습니다. 록펠러를 악덕 기업주라고 비나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록펠러의 신앙은 역할모델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록펠러는 대학교를 12개나 세웠는데 노벨상을 가장 많이 수상한 시카고 대학교가 록펠러가 세운 대학교입니다. 록펠러는 교회도 4,928개나 지었습니다. 록펠러는 아내가 86세에 세상을 떠나자 시카고 대학교 내에 아내를 기념하여 교회를 지었습니다. 봉헌식에 참석한 시카고 트리뷴지의 경제부 기자가 록펠러에게 질문하였습니다. “록펠러 씨, 당신은 26년 동안 세계 제일의 부자인데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록펠러가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게 어떤 유산입니까?” “내가 여섯 살 때 부모님은 내게 십일조를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부모님께 재산을 물려받은 것은 없으나 신앙은 유산으로 물려받았습니다. 그게 첫 번째 비결입니다.” 록펠러는 십일조를 계산하는 직원을 40명이나 두었다고 합니다. 기자는 비교인이라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군요. 사업을 하여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재투자를 해도 사업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당신은 십일조를 하고도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수 있다니요?” “그것은 하나님의 경제학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비교인들은 월급을 전부 저축해도 돈이 모자라다고 하지만 교인들은 십일조를 드리고 저축해야 돈이 쌓이게 됩니다. 록펠러가 말했습니다. “두 번째 비결은 교회의 앞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록펠러는 주일 성수는 기본이고 교회의 앞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록펠러가 다니는 교회는 교인이 800명 정도인데 구경꾼들이 800명 정도 몰려들어 1,600명 정도가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앞자리에 앉기 위해 예배시간 40분전에 도착하였고 구경꾼들은 늦게 왔기 때문에 록펠러의 얼굴은 보지 못하고 뒤통수를 보았다고 합니다. 록펠러는 92세에 하늘나라로 갈 때 까지 앞자리에 앉았다고 합니다. “세 번째 비결은 교회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록펠러는 교회에서 하는 일은 찬성하였고 목사님의 속을 썩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게 록펠러가 세계 최고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연초가 되면 덕담을 나눕니다. 요즘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인사가 ‘부자 되세요.’입니다. 우리나라는 황금만능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하나님 제일주의에 빠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제일로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을 나중으로 밀쳐놓은 아합 왕은 가뭄을 만났지만 하나님을 제일로 여긴 사르밧 과부는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우리 창대교회 교인들도 새해에는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제일로 섬겨 과부처럼 기적을 체험하고, 록펠러처럼 전설적인 부자가 탄생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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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2:13 소금을 드릴지니라.

기독교 2천 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인 어거스틴은 ‘신약성경은 구약성경 안에 감추어져 있고, 구약성경은 신약성경 안에 드러난다.’고 말했습니다. 신약성경을 알려면 구약성경을 찾아봐야 하고, 구약성경을 알려면 신약성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구약성경이 뿌리이고 신약성경이 열매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열매인 신약성경을 중요시하다보니 뿌리인 구약성경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레위기는 어렵고 딱딱하고 지루하고 따분해서 건너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레위기를 알면 예수님을 알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 나오는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입니다. 요즘 직장에서 직원들을 평가할 때 다면평가를 한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상사가 평가했는데 요즘은 상사와 부하와 동료와 자기와 고객이 그 사람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평가할 때 보다 여러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 그 사람을 올바르게 평가하듯이 레위기의 5가지 제사는 예수님을 여러 각도로 보여줍니다.

오늘은 두 번째 날로 소제입니다. 소제는 곡식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살라 바치는 제사입니다. 다른 제사는 짐승의 피를 드리는 제사이지만 소제는 곡식을 드리는 제사입니다. 피가 없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피가 없는 제사이기 때문에 피 있는 제사를 드릴 때 함께 드렸습니다. 소제를 드릴 때는 첫째, 고운 가루를 만들어 기름을 붓고 유향을 얹어서 드렸습니다.(레2:1) 고운가루는 보리나 밀가루인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른 비가 내리는 가을에 씨를 뿌려 늦은 비가 내리는 봄을 지나서 수확했습니다. 보리를 추수하고 몇 주 후에 밀을 수확했는데 고운가루를 만들려면 보리나 밀의 낱알을 절구에다 으깨고 부수고 빻고 찧은 다음 체에다 거친 것을 빼고 부드러운 것을 골랐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낱알을 찧듯이 나의 자아를 죽여야 합니다. 나의 자존심이 부서져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 사라져야 합니다. 나의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울진에서 목회할 때 보니 장마철이 되면 백암산에서 엄청난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어떤 해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다리가 끊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비가 그치면 수석을 채취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저도 시냇가에 나가봤더니 산에서 물이 흘러내리면서 돌도 함께 쓸려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고개를 숙이고 돌을 줍는데 저는 어떤 돌이 좋은 돌인지 몰라 돌은 줍지 못했지만 상류의 돌은 울퉁불퉁한데 비해 하류의 돌은 만질만질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류의 돌은 하도 쓸려 내려오다 보니 매끈해졌습니다. 하나님께 소제로 드리려면 고운가루를 만들어 드렸듯이 우리가 예배를 드리려면 나의 모난 부분을 다듬어야 합니다. 나의 혈기가 죽어야 합니다. 혈기를 부리면 죄가 틈탑니다. 혈기를 다스려야 은혜가 임합니다./ 소제를 드릴 때는 고운가루를 만들어 기름을 부었는데 올리브기름을 부었습니다. 성경에서 기름은 성령님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설거지를 해야 음식을 담아먹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모난 부분을 다듬으신 다음 성령님을 부어주십니다. 혈기를 부리는 사람에게 성령님을 부어주시면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는 것 같이 위험합니다. 칼에는 칼집이 필요하듯이 하나님은 혈기를 다스리신 다음 성령님을 부어주십니다./ 소제를 드릴 때는 고운가루를 만들어 기름을 붓고 유향을 얹었습니다. 유향은 나무의 진으로 만든 향료입니다. 유향을 태우면 향기가 났습니다. 유향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말씀합니다. 우리가 모난 부분이 다음어지면 성령님이 임하시고 그래야 예수님의 향기를 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향기를 발하면 꿀벌이 모이듯이 선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우리가 악취를 풍기면 똥파리가 모이듯이 악한 사람들이 모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향기를 발해야합니다.

소제를 드릴 때는 둘째, 누룩과 꿀을 넣지 않고 소금을 드렸습니다.(레2:11,13) 누룩은 음식을 발효시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룩이 음식을 변질시키고 부패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누룩을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누룩(눅12:1)과 사두개인들의 누룩(마16:6)과 헤롯의 누룩(막8:15)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기 때문에 교인들에게 악한 사람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고전5:6) 이스라엘 사람들은 꿀도 누룩처럼 음식을 변질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제를 드릴 때는 누룩이 음식을 변질시키기 때문에 넣지 않았는데 만약 우리 교인들의 신앙을 변질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누룩입니다. 사탄은 여러분의 영혼에 누룩을 넣어 신앙을 변질시키려고 발버둥 칩니다. 사탄은 밀에서 겨를 가려내듯이 우리를 예수님에게서 떼어놓으려고 장난칩니다. 이단은 누룩입니다. 이단을 조심하십시오./ 소제를 드릴 때는 소금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금이 음식을 보존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소금을 긍정적으로 묘사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약속을 할 때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합니다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속을 맺을 때 소금에 절인 고기를 먹었습니다. 소금은 변하지 않는 약속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역대하 13장 5절을 통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 언약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언약입니다. 아무도 파기할 수 없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주시겠다고 소금을 근거로 약속하셨습니다. 여기서 소금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예수님은 독수리가 공격해오면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로 품듯이 사탄이 우리를 공격해올 때 강한 오른팔로 우리를 감싸십니다. 주품에 안기십시오. 소금이 음식을 보존하듯이 예수님은 여러분이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지켜주십니다.

소제를 드릴 때는 셋째, 고운가루 한 움큼만을 드렸습니다.(레2:2,9,15) 소제는 고운가루 한 움큼과 기름과 유향과 소금을 번제단에 올려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이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머지 고운가루는 거룩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은 성막에서 봉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성막에서 나오는 것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목사는 다른 직업을 가지면 안 됩니다. 이중 직업을 금지합니다. 저의 아내는 2년간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하나님은 저에게 주님이 주시는 것으로 먹고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저의 수입이 얼마인지 안다면 놀랄 겁니다. 그런데 그걸로 어떻게 사는지를 안다면 더 놀랄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거둘 때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듯이 하나님은 적지만 부족하지 않게 살게 하십니다. 제사장은 성막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았듯이 목사는 하나님께서 교인들을 통해 주시는 것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번제와 오늘 말씀드린 소제와 다른 점은 번제는 흠 없는 수컷이 예수님인데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소제는 소금이 예수님인데 예수님은 소금이 변하지 않듯이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십니다. 번제는 가죽만 빼고 모두 다 하나님께 불사르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제사였다면 소제는 한 움큼만 불사르고 나머지는 제사장에게 주는 제사장을 먹이는 제사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게 번제고 목사님을 대접하는 게 소제인데 대접할 때는 하나님께 한 움큼을 먼저 드리듯이 목사님의 것을 먼저 떼어놨다가 대접하면 소제가 되지만 남는 것을 나중에 드리면 소제가 되지 않습니다. 소제는 다른 제사를 드릴 때 함께 드리는 제사였기 때문에 가장 많이 드린 제사였습니다. 약방의 감초처럼 제사의 감초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많이 드리는 제사를 통해 하나님은 적게 받으시고 제사장은 많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을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은 종을 대접하는 교인들에게 종이 받을 상급을 주십니다. 우리도 올바른 소제를 드려 제사장이 받는 상급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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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 2:8-14 구주가 나셨으니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단들은 성탄절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이 아니라고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하며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신실한 교인들도 이런 소리를 들으면 흔들립니다. 그래서 저는 예방접종을 받으면 항체가 생겨 바이러스를 이겨내듯이 성탄절의 유래를 말씀드려 이단들의 공격에 대처하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는 베들레헴이라고 나오지만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짜는 나오지 않습니다. 날짜는 나오지 않지만 힌트는 나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지켰다고 나오는데 이스라엘은 10월부터 3월까지는 비가 오는 우기라 들에서 양을 치지 않았습니다. 4월부터 9월까지는 건기라 양을 쳤습니다. 예수님은 양을 칠 때 태어났으니 12월에 태어나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12월 25일이 성탄절이 됐을까요? 성탄절은 로마제국이 12월 24일부터 다음 해 1월 6일까지 지키던 동짓날 축제에서 유래했습니다. 로마제국은 12월 22일은 해가 짧은 동지라 태양이 죽은 날이라고 생각했고, 12월 24일은 해가 다시 길어져 태양이 다시 살아난 날이라고 생각하여 12월 25일을 태양의 탄생일로 지켰습니다. 로마제국이 태양을 숭배할 때는 기독교를 박해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경기장에 모아놓고 굶주린 사자들을 동원해 위협했습니다. 교인들이 배교하면 살려두고 배교하지 않으면 사자 밥이 되게 했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관중석에서 구경했습니다. 로마제국이 교인들을 박해했지만 교인들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그러다 새로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서로마제국의 부황제인 콘스탄티누스가 정황제의 아들인 막센티우스와 로마제국의 패권을 놓고 최후의 결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로마제국의 종교인 태양신에게 전쟁에서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하늘에서 ‘이 표적으로 승리를 얻으리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방패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문양을 새겼고 전쟁에서 승리해 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황제가 됐다고 믿고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습니다.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신에게 기도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응답하셨을까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독실한 교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기도하니 아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황제가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기도하는 어머니가 훌륭한 자녀를 만듭니다.

이처럼 기독교가 박해를 받다 공인을 받게 되자, 로마교회는 335년(354년) 경 기독교가 이교도를 정복했다는 의미로 태양의 탄생일을 예수님의 탄생일로 채택했습니다. 로마제국의 최대의 명절이 기독교의 최대의 명절로 바뀌었습니다. 영어로 일요일을 Sunday 라고 하는데 선데이는 태양을 숭배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일요일에 부활하셔서 이제 일요일이 아니라 주님을 예배하는 주일로  Lord day 로 바뀌었습니다.

사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언제인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이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다 보니 그레고리력을 따르는 서유럽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율리우스력을 따르는 동유럽은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킵니다. 성탄절은 언제인가가 아니라 무슨 날인가가 중요합니다. 성탄절은 나를 구원하러 하늘보좌를 보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성탄절은 그리스도를 뜻하는 라틴어 ‘christ'와 예배를 뜻하는 'mass'의 합성어입니다. 성탄절은 예수님을 예배하는 날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탄절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날입니다. 어떻게 기다려야 할까요? 예수님이 처음 오셨을 때 목자들이 양떼를 돌보며 깨어 있었듯이 우리는 다실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영적으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맡은 직분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목자들에게 성탄의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듯이 우리에게 예수님의 재림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줄 겁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 있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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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5일(토) 성탄절 예배 때 박희준 어린이가 출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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