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9:14-15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 정도 거짓말을 하십니까? 거짓말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어 말하는 것을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거짓말을 색깔로 분류하면 하얀 거짓말도 있고, 검은 거짓말도 있습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의의 거짓말은 하얀 거짓말입니다. 전혀 반갑지 않으면서 “만나서 반가워.”라거나 예쁘지 않은데도 “예뻐졌네.”라고 말하는 것이 하얀 거짓말입니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악의의 거짓말은 검은 거짓말입니다. 상대방을 음해하기 위해 날조하는 거짓말이 검은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은 또 있습니다. 회색 거짓말도 있고, 새빨간 거짓말도 있고, 노란 거짓말도 있고, 새파란 거짓말도 있습니다. 법정에서 증인이 거짓 증언을 한다면 회색 거짓말입니다. 아이가 화가 나서 밥을 안 먹는다거나 장사가 밑지고 판다거나 처녀가 시집가기 싫다거나 노인이 늙으면 죽어야지 라는 4대 거짓말은 노란 거짓말입니다. 분명하고 확실한 거짓말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카다피가 휴전하자고 제안하고 시민군의 거점은 벵가지를 폭격한 것이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믿기 힘든 거짓말은 새파란 거짓말입니다. 복권에 당첨돼지 않았으면서 “나 로또 복권 당첨됐다.”고 뻥친다면 새파란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루에 몇 번 정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습니까?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심리학과 폴 에크먼 교수는 사람이 거짓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지를 실험했더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평균적으로 8분에 한 번꼴로 거짓말을 하여 하루에 200번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성경에도 거짓말이 많이 나옵니다. 여호수아서에 본다면 기생 라합이 거짓말을 했고 기브온 주민들은 속임수를 썼습니다.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지붕 위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겨놓고는 여리고 군사들에게 낯선 사람들이 왔다가 성문을 닫을 때쯤 나갔다고 둘러댔습니다.(수2:5-6) 라합의 거짓말은 분명하고 확실한 거짓말이기 때문에 새빨간 거짓말처럼 보이지만 여리고성은 정탐꾼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너졌기 때문에 여리고성에 피해를 주지 않은 하얀 거짓말입니다./ 기브온 주민들은 낡은 옷을 입고 해어진 신발을 신고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하여 먼 나라에서 왔다고 속이고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수9:3-6)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8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먼 나라에서 왔다고 속였으니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이스라엘에 피해를 주지 않았으니 하얀 거짓말입니다. 그렇다면 라합이 왜 거짓말을 했을까요? 라합은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참 하나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여리고 군사들을 속이고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었습니다. 라합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라합과 라합의 가족들이 살 수 있었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왜 먼 나라에서 왔다고 속였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과 아이성을 무너뜨린 무적의 군대이고(수9:3),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는 하나님은 그 당시 강대국인 애굽을 굴복시킨 능력의 하나님이라(수9:9) 그 명성을 듣고 싸워봐야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여 먼 나라에서 왔다고 속여 화친을 맺었습니다. 라합과 기브온 주민들은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살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고 속임수를 썼습니다. 그리하여 라합은 예수님의 할머니가 됐고(마1:5)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노예가 되었습니다.(수9:21,23,27) 거짓말과 속임수는 악이지만 하나님을 믿기 위한 거짓말과 속임수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참말을 했지만 하나님이 없는 참말을 했기 때문에 곤욕을 치렀습니다. 기브온 주민들이 먼 나라에서 왔다고 속이고 화친을 맺자고 제안하자 여호수아는 어떻게 할지를 하나님께 묻지 않고(기도하지 않고) 평화조약을 맺었습니다.(수9:14-15)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가나안 주민들과 조약을 맺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출23:32,34:12,신7:2)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경고를 잊고 기브온 주민들이 어디서 왔는지 조사하지도 않고 화친을 맺었습니다. 그리하여 여호수아는 기브온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을 치르게 됐고(수10장), 사울 왕은 기브온 주민들을 죽였다가 복수를 당했습니다.(삼하21장) 여호수아가 왜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여호수아는 지금 가나안 땅을 정복하면서 잠깐의 승리에 취해 방심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영적인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깐 방심한다면 마귀의 표적이 됩니다. 마귀는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듯이 방심한 교인들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부부싸움도 잦아집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교회도 시끄럽습니다. 어떤 수도사가 길을 가는데 마귀가 교회당 지붕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더랍니다. 마귀가 낮잠을 자니 이 교회는 평안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웬걸요 교회당 안에 들어가 보니 교인들이 영적으로 죽어 있더랍니다. 그 교회는 죽은 교회라 마귀가 낮잠을 자도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교회는 마귀가 창으로 지붕을 찌르며 발악을 하고 있더랍니다. 마귀가 발악을 하니 이 교회는 분쟁이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웬걸요 교회당 안에 들어가 보니 교인들이 깨어서 기도하고 있더랍니다. 그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라 마귀가 죽이려고 발악을 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의 공격을 막아내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마귀가 아무리 불화살을 날리더라도 우리가 기도하면 기도가 방패가 되어 마귀의 공격을 막아냅니다. 방패기도를 하십시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절을 통해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뉴스를 보다가도 우리 가정을 지켜주세요 기도하십시오. 에베소서 6장 18절을 통해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운전을 하면서도 예수님의 보혈로 차량을 덮노라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자기 힘으로 살겠다는 선언이고,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힘으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힘을 믿지 말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은 사람보다 강합니다.(고전1:25) 일본은 세계 최고의 기술을 자랑하는 나라이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지잖아요?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유기성 목사님이 미국의 부흥하는 교회를 탐방하던 중에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를 방문하여 “지금까지 목회하시면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무엇이며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더니, 존 맥아더 목사님은 “내가 한 것은 다 실패였고 예수님이 하신 것은 다 성공이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다 보니 인생길이 험난합니다. 지금은 비록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잠깐은 기쁘지만 일평생을 힘겹게 살다가 허망하게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인 사람은 기도하다 보니 인생길이 순탄합니다. 지금은 비록 실패했다고 하더라도 적금을 붓는 것처럼 당장은 쪼들리지만 결국에는 마음 편하게 살다가 천국소망을 가지고 죽습니다. 기도는 여러분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분기점입니다. 포천중문의대 차병원 차광렬 교수와 미국 컬럼비아의대 산부인과 로저리오 A 로보 과장은 생식의학 전문지 저널 오브 리프로덕티브 헬스(Journal of Reproductive Health)에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1998∼1999년 서울 차병원에서 불임치료를 받은 환자 199명을 환자들은 모르게 미국과 캐나다와 호주의 기독교인들에게 환자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임신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더니 기도를 받은 불임여성이 기도를 받지 않은 불임여성보다 임신성공률이 두 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로보 박사는 “연구결과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이를 발표해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다”며 “하지만 두 그룹 사이의 임신율 차이는 아주 컸기 때문에 무시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기도는 먼 나라에 있는 알지 못하는 사람의 임신도 가능하게 합니다. 기도는 능력입니다. 먼 나라의 알지 못하는 사람의 기도도 응답됐는데 가까이에 있는 아는 사람의 기도는 얼마나 잘 응답되겠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능력을 땅에 묻어두지 말고 땅 위에서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에게는 기도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응답받게 되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요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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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7:10-12 멸하지 아니하면

엊그제(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에서 강진이 일어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일본은 자연재해가 많이 발생하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인재가 많이 발생합니다. 아직도 우리 기억에 선명한 사고가 있습니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38분경 서울 성수대교 10번과 11번 교각 사이 상판이 붕괴됐습니다. 이 사고로 등교하던 무학여고 학생 9명을 포함해 32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성수대교는 신공법으로 시공했는데 1977년 기술수준으로는 무리한 공법이었고, 또 실적을 내기위해 서둘러서 공사하다보니 부실하게 준공됐습니다. 성수대교가 붕괴됐듯이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붕괴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붕괴시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서 59장 2절을 통해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놓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과정에서도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붕괴시킨 적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점령하면서 두 가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첫 번째 명령은 기생 라합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살려주라는 명령이었습니다.(수6:17) 라합은 집에 붉은 줄을 매달았고 라합의 집에 있는 가족들은 모두 살았습니다. 두 번째 명령은 여리고성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라는 명령이었습니다.(수6:18-19) 여리고성 사람들과 짐승들은 죽이고 물건들은 곳간에 들이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짐승들을 죽인 것을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만 구제역에 걸리면 인근농장에 있는 가축들까지 매몰 처분하듯이 하나님은 죄를 차단하기 위해서 모두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다 지파인 아간이 물건을 가져갔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바치라고 하셨는데 아간은 빼돌렸습니다. 아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수7:1) 부실시공을 하면 다리가 붕괴되듯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붕괴됩니다.

여호수아는 아간이 죄를 지은 지도 모르고 여리고성 다음에 있는 아이성을 공격하기 위해 정탐꾼을 보냈습니다.(수7:2) 정탐꾼들은 아이성은 작은 성이니 이, 삼천 명 정도가 공격하면 충분하다고 보고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삼천 명을 보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하고 돌아왔습니다.(수7:3-4)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음이 물같이 녹았습니다. 사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성수대교가 왜 붕괴됐습니까? 부실시공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패배했습니까? 아간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으면 대가가 따릅니다. 죄는 한, 두 사람이 짓더라도 피해는 공동체가 당합니다. 그런 일은 없겠지만 가장이 바람을 피운다면 아내와 자녀들도 고통을 당하고 처가와 친가도 고통을 당합니다. 씨를 뿌리면 싹이 트듯이 죄의 씨를 뿌리면 고통의 싹이 틉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언약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썼습니다.(수7:6) 우리나라는 잘못하면 무릎을 꿇고 손을 비비며 용서를 비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개할 때 겉옷을 찢고 재와 티끌을 뒤집어썼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부실해져서 붕괴되지만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보강공사를 해서 튼튼해집니다. 잘못이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회개는 죄로 향하는 발걸음을 180도 돌려 하나님께로 돌리는 겁니다. 부실한 다리를 보강공사 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한 인간인지라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 잘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아서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십시오. 하나님이 모르시는 줄 알고 은근슬쩍 넘어갔다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리에 금이 가기 시작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빨리 보강공사를 하십시오.

여호수아와 장로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죄의 싹을 뽑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목회할 때 풀을 자주 뽑았는데 뿌리를 완전히 뽑지 않으면 다시 싹이 터옵니다. 죄의 싹도 완전히 뽑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 7장 12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은 온전히 바친 물건을 멸하지 아니하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있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붕괴된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는 다음 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 제비뽑기를 했더니 아간이 걸렀습니다. 여호수아가 추궁했더니 아간이 자백했습니다. 아간은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 오십 세겔을 탐내어 가져갔다고 실토했습니다.(수7:21) 여호수아는 사람을 보내 아간의 장막에서 물건들을 찾아왔습니다. 여호수아는 아간과 아간 가족들과 아간의 가축들과 그리고 온전히 바치지 않은 물건들을 아골 골짜기로 끌고 가서 돌로 쳐서 죽이고 불로 살랐습니다.(수7:25) 죄는 아간 혼자 지었지만 죄가 전염됐을지 몰라 아간의 가족들과 짐승들까지 죽였습니다. 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제 서야 진노를 그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이성을 넘겨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사람들을 죽이고 아이성을 불살랐습니다.(수8:24-29)

김남준 목사님은 [맺힌 것을 풀어야 영혼이 산다]는 책을 썼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맺힌 것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맺힌 사람도 있고 부모 자식 간에 맺힌 사람도 있습니다.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부모에게 학대를 받고 자랐습니다. 그들은 부모와 맺혔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자녀를 학대합니다. 자녀와 맺힙니다. 그들이 자신을 학대한 부모를 용서해야 그들이 학대한 자녀에게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과 맺힌 것도 풀어야 하고 하나님과 맺힌 것도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맺힌 것이 있다면 일이 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풀린다면 일도 풀립니다. 아간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지 않고 몰래 숨겼습니다. 하나님과 맺혔습니다. 하나님을 속이다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작은 아이성조차 점령할 수 없었습니다. 일이 꼬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간을 아골 골짜기에서 죽이자 아이성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일이 풀렸습니다. 하나님은 마태복음 16장 19절을 통해 “내가 천국 열쇠를 내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땅에서 금지하면 하늘에서도 금지되고 땅에서 허락하면 하늘에서도 허락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일이 꼬이십니까? 사람과 맺힌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형제와 화해하고 예물을 드리기를 바라십니다.(마5:24) 그 사람이 예뻐서가 아니라 내 영혼이 살기위해서 용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맺힌 것이 있는지도 살펴보십시오. 아간이 하나님과 맺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해를 당했던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맺히면 우리 가족과 우리 교회가 피해를 입습니다. 하나님과 풀려야 일도 풀립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풀기 위하여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피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와 맺힌 것을 모두 풀었습니다. 예수님이 푸셨으니 우리도 풀어야 합니다. 사람과 맺힌 것도 풀고 하나님과 맺힌 것도 풀어야 합니다. 맺힌 것을 풀어야 우리 영혼이 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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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6:22-25 붉은 줄을 매니라

여러분에게 유치한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닭이 먼저입니까? 달걀이 먼저입니까? 닭이 알을 낳으니 닭이 먼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닭은 알에서 나오니 달걀이 먼저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답은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채소와 나무를 만드실 때 씨 맺는 채소와 씨가진 나무로 만드셨습니다.(창1:11) 하나님은 채소를 만드시고 씨를 맺게 하셨고 나무를 만드시고 열매가 달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닭을 만드시고 알을 낳게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어려운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줬기 때문에 살았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살았습니까?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줬기 때문에 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정탐꾼을 숨겨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 6장 17절과 25절에는 라합이 정탐꾼을 숨겨줬기 때문에 살았다고 말씀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탐꾼을 숨겨줬기 때문에 살았으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정탐꾼을 숨겨줬습니다. 성경에서 확인해 봅시다.

여호수아 2장 11절을 봉독합니다.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수아는 난공불락의 요새인 여리고성을 공격하기에 앞서 정탐꾼 두 명을 보냈습니다. 정탐꾼들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여리고왕은 정탐꾼들이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고 라합의 집으로 군사들을 보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지붕위에 올려 보내고 옷감을 짜는 식물인 삼대에 숨겼습니다. 라합은 여리고 군사들이 들이닥치자 낯선 사람들은 이미 돌아갔다고 둘러댔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고 광야를 지나는 과정을 볼 때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참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참 하나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릎 쓰고 정탐꾼들을 숨겨줬습니다. 여리고성 사람들은 아무도 하나님을 믿지 않았지만 라합은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라합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호수아 6장 17절을 봉독합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라.”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천해의 요새인 여리고성을 공격하기 위해 전통적인 방법대로 공격하지 말고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육일 동안은 성을 한 번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번 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곱째 날 성을 일곱 번 돌고 제사장이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불면 백성들이 일제히 소리를 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벽이 무너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작전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대로 순종했더니 철옹성 같던 여리고성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라합과 그 가족은 살려주고 나머지는 진멸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성 안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짐승들을 죽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과 모든 짐승들을 진멸했으니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구제역에 걸리면 그 농장뿐만 아니라 인근 농장에 있는 가축까지 바이러스에 감염 됐을까봐 매몰처분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여리고성 사람들이 지은 죄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옮겨지지 않도록 모두 없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하나님을 하늘과 땅을 만든 참 하나님이라고 믿었고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줬기 때문에 살았습니다. 라합뿐만 아니라 라합의 집에 있던 부모형제와 친족까지 살았습니다. 여기서 여리고성이 진멸당하는 날은 심판 날을 상징합니다. 여리고성이 불로 멸망했듯이 심판 날에 불로 심판을 받습니다. 라합의 집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라합의 집에 있던 사람들이 살았듯이 교인들은 심판 날에 살아남게 됩니다. 라합과 그 가족이라도 라합의 집에 있어야 살았듯이 우리가 하나님을 참 하나님이라고 믿더라도 교회를 다녀야 신앙을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고기를 굽는 참숯과 같아서 숯을 모아놓으면 활활 타지만 떼어놓으면 꺼지게 됩니다. 교회는 신앙의 주유소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으면 기름이 떨어져 차가 멈춰버립니다. 우리은 하나님을 참 하나님으로 믿고 교회도 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을 믿어야 합니다.

여호수아 2장 21절을 봉독합니다.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 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라합은 여리고 군사들을 따돌리고 나서 창문에 줄을 달아내려 정탐꾼들을 탈출시켰습니다. 중국 만리장성은 길이가 3천 킬로미터에 높이가 9미터이고 폭은 5미터입니다. 승용차 2대가 지나갈 수 있는 넓이입니다. 성경시대 사람들은 성벽과 성벽 사이 좌우 폭에 서까래를 걸치고 지붕을 씌워서 집을 만들었습니다. 라합의 집은 성벽에 있었기 때문에 성 밖으로 탈출하기가 쉬웠습니다.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공격할 때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라합은 정탐꾼들을 탈출시키고 나서 붉은 줄을 매달았습니다. 여기서 붉은 줄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합니다. 붉은 줄이 라합과 그 가족들을 살렸듯이 예수님의 피가 저와 여러분을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하와와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을 때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짐승이 피를 흘렸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짐승을 속죄제물로 드리면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짐승의 피가 사람의 죄를 씻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죄를 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하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드려서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없애셨습니다. 짐승의 피로도 죄를 씻었는데 하물며 예수님의 피로는 우리를 얼마나 깨끗하게 씻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참 하나님이라고 믿고 교회를 다니더라도 예수님의 보혈을 믿어야 완전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 죄를 씻는 역할도 하고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실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양을 잡아 그 피를 좌우 설주와 문 인방에 발랐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사람이나 짐승이나 장자를 치러 다닐 때에 피를 바른 집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예수님의 피가 저와 여러분의 죄를 씻었고 저와 여러분을 보호합니다. 예수님의 피를 믿으십시오.

1988년 12월 7일. 구소련의 아르메니아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2만 5천 명이 죽고 1만 8천 명이 부상당했습니다. 그때 9층짜리 아파트가 무너지면서 26살의 엄마 ‘스잔나’와 4살의 딸 ‘가야니’가 철근과 콘크리트 사이에 끼어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구조는 더디기만 했습니다. 가야니는 점점 기진맥진했습니다. 엄마 스잔나는 언젠가 TV에서 조난당한 사람들이 먹을 것, 마실 것이 없자 피를 나누어 마시던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스잔나는 주변에서 유리조각을 찾아 자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딸의 입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렇게 모녀는 14일을 버텼습니다. 모녀가 구조되었을 때 스잔나의 열손가락은 피범벅이가 되었습니다. 가야니는 엄마의 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주셔서 우리의 죄도 용서받고 악한 마귀로부터 보호도 받게 되었습니다. 라합이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달아 살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피를 믿어야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다. 예수님의 피를 자랑하며 신앙 생활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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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6:1-7 성벽이 무너지리니

우리나라 속담 중에 ‘산 넘어 산이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고생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을 종살이하다 애굽을 탈출하여 40 동안 광야를 유랑하고 가나안 땅에 이르렀더니 요단강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때는 늦은 봄이나 헤르몬 산에 쌓인 눈이 녹으면서 강물이 언덕까지 넘쳤습니다. 강을 건너갈 다리도 없고 배도 없다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막막했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담그면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멈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 집은 금강 하류라 홍수가 나면 엄청난 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도 무서웠는데 거기에 발을 담근다는 것은 죽겠다는 각오였습니다.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발을 담그자 언덕까지 넘치던 강물이 멈췄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더니 여리고성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여리고성은 유대산지에 쌓은 산성이었습니다. 평지성도 공격하기가 어려운데 산성은 공격하기가 훨씬 어려웠습니다. 여리고성은 가나안땅의 관문인데 여리고성이 난공불락의 요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낙담했습니다. 요단강을 건넜더니 여리고성이 앞을 가로막고 속담처럼 산 넘어 산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여리고성이 앞을 가로막듯이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경우 절망한 나머지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이 깜깜할 때 기도 잊지 마세요.’ 이 복음성가 가사처럼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응답을 주십니다. 여호수아 6장 2-5절을 봉독합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나아갈 것이요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며 그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불어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지니라.” 하나님은 여리고성을 넘겨줄 테니 엿새 동안은 성을 한 바퀴 돌고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곱째 날 제사장들이 숫양의 나팔을 불면 백성들은 큰 소리로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성벽이 무너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가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성을 공격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성을 공격하려면 공성장비를 만들고 성벽까지 흙을 쌓아올리고 성벽을 기어 올라가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답답해서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엉뚱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여호수아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을 공격하는 전통적인 방법대로 공격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방법대로 성을 돌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성을 공격하지 말고 성을 돌라고 말씀하셨을까 궁금해서 손자병법을 찾아봤습니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을 잘하는 방법이 나오는데 그중 가장 수준 낮은 작전이 성을 공격하는 작전이라고 합니다. 성을 공격하려면 공성장비를 만드는데 3개월이 걸리고, 흙을 쌓아올려 성을 살펴보는데 6개월이 걸리고, 이것을 참지 못해 성벽을 기어 올라간다면 병력의 3분의 1일 잃는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성을 공격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방법을 버리고 전통적인 방법대로 공격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미리 아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해를 입지 않는 다른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대로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사람보다 지혜롭기 때문에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펼치십니다. 하나님의 응답대로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응답을 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숫자가 나오는데 숫자는 문자적인 의미도 있지만 상징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돌 때 어떤 숫자가 많이 나왔나요? 7입니다. 7이 몇 번 나왔나요? 4번 같지만 5번입니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일곱째 날에는 성을 일곱 번 돌았습니다. 며칠 동안 돌았죠? 칠일 동안 돌았습니다. 성경에서 7은 거룩한 숫자입니다. (6은 악의 숫자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666이 나오는데 666은 기독교를 박해한 네로 황제를 가리킵니다.) 본문에서 7을 여러 번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게 살아야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성을 돌 때 말을 하지 말라는 것도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여호수아 6장 10절을 봉독합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돌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만약 말을 했다면 성을 공격하지는 않고 지금 장난하는 거냐며 불평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말을 통해 죄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반대말은 죄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하나님의 뜻도 헤아리지 못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성을 돌았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가면 하나님의 뜻도 헤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거룩하게 사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생각을 초월하는 응답을 주신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새벽에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큰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홍해를 가르셨습니다.(출14:2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애굽 군대는 수장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이 지난 첫날 새벽에 부활하셨습니다.(마28:1) 마리아를 비롯한 여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러 갔다가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먼저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난공불락의 요새 여리고성도 새벽에 무너졌습니다. 여호수아 6장 15절을 봉독합니다. “일곱째 날 새벽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전과 같은 방식으로 그 성을 일곱 번 도니 그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여리고성을 일곱 번 돌았습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시간입니다. 저녁은 죄를 짓는 시간입니다. 저녁 시간이 발달하면 향락산업도 발달하고 범죄도 늘어납니다. 그러나 새벽은 일하는 시간입니다. 새벽 시간이 발달하면 일자리도 늘어나고 사회도 건전해집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야행성 인간이 아니라 새벽형 인간입니다. 하나님은 시편 46편 5절을 통해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십니다. 우리가 새벽에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홍해도 가르시고 여리고성도 무너뜨리십니다. 우리의 고민거리도 해결해 주십니다.

요즘은 아이돌 그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예전에는 록 그룹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1980년 인기그룹 송골매의 리드싱어였던 구창모 집사가 CTS <내가 매일 기쁘게>에 출연하여 간증했습니다. 구창모 집사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났지만, 중학교 때부터 방황하면서 교회를 떠났다가 전문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전문대학을 다니면서 4년제 대학교를 편입하려고 새벽기도를 시작하였고 기도 응답으로 홍익대에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변 가요제]에 나가 입상하면서 가수로서의 인생을 살게 되었는데 화려한 무대생활을 하느라 주님을 잊고 지냈습니다. 1990년대 가요계를 떠나 사업을 시작해 성공과 실패를 경험하였고 신실한 아내를 얻어 다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내가 임신을 하지 못해 시험관 아기까지 시도했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구창모 집사는 새벽기도를 다시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셨습니다. 구창모 집사의 간증은 3월 2일 CTS에서 9시 50분에 방영됩니다. 구창모 집사가 4년제 대학교 편입을 하기 위해 새벽기도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들어주셨고 아이를 갖지 못해 새벽기도를 했더니 아들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여리고성이 앞을 가로막듯이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날 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데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는 응답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해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새벽에 놀라운 일을 펼치십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일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에 여리고성이 가로막고 있다면 새벽에 기도하십시오. 걱정거리가 없더라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미리 해결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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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3:7-8 요단에 들어서라.

다음 달 19일부터 21일까지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립니다.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 사이 약 2.8Km의 바다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수심이 낮아지면서 40여m의 폭으로 바닥이 들어납니다. 약 1시간 정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도 이런 기적이 두 번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홍해가 갈라진 기적이고 다른 한번은 요단강이 갈라진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출애굽기 14장 21절을 봉독합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고 있는데 홍해가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지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았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난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다 위로 손을 내밀라고 하셨고 모세가 손을 내밀자 큰 바람이 불어 바닷물을 좌우로 가르고 바다는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는데 요단강이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때는 늦은 봄이라 요단강물이 불어나 언덕까지 가득 넘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막막했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요단강이 앞을 가로막듯이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을 만나기도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경우 절망한 나머지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단강이 앞을 가로막았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둠을 밝히는 빛입니다. 지금 마음이 답답하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은 여호수아 3장 8절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앞에 두고 막막해했는데 하나님은 요단강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홍해를 건널 때와 요단강을 건널 때의 차이점을 발견하셨습니까? 홍해를 건널 때는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나서 건너가게 하셨는데 요단강을 건널 때는 강을 가르지 않고 강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초 신자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다를 가르고 나서 다시 말해 눈으로 보여 주고 나서 홍해를 건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단강을 건널 때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너무도 잘 알았습니다. 40년 동안이나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밤에는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고 아침에는 만나를 내려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셨습니다. 물이 떨어지자 반석을 쳤더니 샘물이 솟아나왔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오자 모세가 손을 들면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의복이 해어지지 않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습니다.(신8:4)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기적을 목격하고 나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은혜를 체험한 신자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갈라지지 않은 강으로 들어가라고 다시 말해 보지 않고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신앙상태에 따라 단계별로 말씀하셨습니다. 아기 때는 젖을 먹고 어린이가 되면 밥을 먹잖습니까? 아기가 뒤집기 하고 기어가고 걸음마를 떼듯이 하나님은 우리가 차근차근 성장 해 나가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연약할 때는 보여주고 믿으라고 하시고, 믿음이 강할 때는 보여주시지 않고 믿으라고 하십니다.

요단강이 앞을 가로막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성냥개비를 성냥갑에 그었을 때 불이 붙듯이 우리의 믿음을 하나님의 능력에 갖다 댈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고 싶으신데 우리의 성냥개비가 불신으로 젖어 있다면 불이 붙지 않습니다. 믿음은 차를 움직이는 엔진입니다. 엔진이 좋아야 차가 힘차게 달릴 수 있듯이 우리가 믿음이 있어야 기적이 일어납니다. 여호수아 3장 13절을 봉독합니다.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물을 밟으면 흐르던 강물이 멈춰 선다 고 믿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씨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씨가 땅에 떨어졌는데 길바닥처럼 딱딱하다면 싹이 트지 않고 새들이 쪼아 먹는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옥토에 떨어지면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믿지 않는다면 그 말씀을 사탄이 먹고 힘이 세집니다. 그러나 우리가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빨아들인다면 우리의 영혼이 강해집니다. 담대해 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십시오.

요단강이 앞을 가로막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합니다. 행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곱하기를 할 때 2곱하기 2는 4입니다. 5곱하기 5는 25입니다. 그러나 불순종은 0입니다. 10곱하기 0은 0입니다. 100곱하기 0도 0입니다. 우리가 행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3장 15-16절을 봉독합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맨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감기자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는 늦은 봄이라 헤르몬 산에 쌓여있던 눈이 녹으면서 강물이 언덕까지 넘쳤습니다. 뉴스를 보니 눈이 녹으면서 동해안 지역의 저수율이 높아졌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어린 시절에 홍수를 경험했는데 금강 상류에서부터 탁류가 흘러내리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겁이 나더라고요. 불도 무섭지만 불은 더 무섭습니다. 지금 요단강은 눈이 녹아 물이 가득한데 죽으려고 하지 않는 이상 발을 디디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를 매고 강에 발을 디뎠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일순간에 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강을 마른 땅처럼 건너갔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석위에 집을 지으면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래위에 집을 지으면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태풍이 불면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우리가 듣는 것은 10% 기억하고 보는 것은 50% 기억하고 행하는 것은 80% 기억합니다. 행하는 것은 이토록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행했더니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브라질의 소설가 파울로 코엘료가 연금술사에서 한 말대로 ‘한 번 일어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번 일어난 일은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는 말처럼 우리 인생에 요단강이 가로막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그 말씀대로 행한다면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난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능력이 있습니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주의 러시모어 산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4명의 얼굴이 조각돼 있습니다. 얼굴 크기가 18m이고, 코 길이는 6m입니다. 조지 워싱턴은 독립전쟁으로 미국을 건국했습니다. 토마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루이지애나로 불리던 미시시피 강 서쪽의 광활한 영토를 프랑스로부터 사들여 대륙국가로 성장하는데 발판을 만들었습니다. 링컨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연방을 보존했고 노예를 해방해 인권을 신장시켰습니다. 루스벨트는 미국이 세계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는데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런데 4명의 대통령 모두 성경을 사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4명의 대통령은 성경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드셨습니다. 조지 워싱턴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자리에서 "성경이 아니면 세계를 다스릴 수 없다"고 하면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를 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미합중국은 성경을 반석으로 삼아 서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링컨은 가난하여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못했지만 언제나 성경을 곁에 두고 부지런히 읽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썼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성경을 집무실에 두고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루스벨트는 신실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는데 "어떠한 방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든지 자기의 인생을 참되게 살기를 원한다면 나는 그에게 성경을 연구하라고 권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신앙과 생활의 표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성공하게 하십니다. 올해는 성경을 읽읍시다. 육신의 양식뿐만 아니라 영혼의 양식도 먹읍시다. 그리하여 올 한해는 다른 해보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한 해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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