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르틴 루터 1
레그 그랜트 지음 / 홍성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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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에는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이 번갈아 가며 등장한다. 실존인물은 소설에 역사적인 사실성을 부여한다. 1505년 7월 2일 폭풍 속을 걷던 루터(21세)가 번개를 맞고 쓰러진다. 루터는 진로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루터는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수사가 되겠다고 서원한다. 이 날의 폭풍이 유럽을 뒤흔들 태풍이 될 줄이야... 이제 가상인물이 등장한다. 가상인물은 역사에 소설적인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유대인 의사 스클라가 세 사람을 뒤쫓고 있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의 시소게임이 처절하다. 미친 듯이 달려드는 추적자 앞에 집시 모녀는 처참하게 살해되고 마르타는 점성학 책을 갖고 무사히 도망친다. 이 날의 악연이 아들과 며느리에게까지 이어질 줄이야... 실존인물과 가상인물이 얽혀진다. 하나님의 불에 맞고도 살아난 루터는 술주정뱅이 남편으로부터 마르타 모자를 구해준다. 마르타는 루터가 폭풍을 일으킬 자임을 예감한다. 마르타의 아들 요나단은 루터의 추종자가 된다. 이제 스토리는 복잡해진다. 다시 가상인물이 등장한다. 가상인물은 16세기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악명 높은 기사 토플러가 가난한 농부 토마스와 모이라 부녀의 농작물을 약탈한다. 농민들의 원성이 깊어만 간다. 농민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워진다. 요나단이 스클라의 약혼녀 엘리자베트와 사랑에 빠진다. 스클라의 집요한 추격전이 숨막히게 전개된다. 요나단은 엘리자베트의 수호천사다. 스토리는 루터에게 옮겨간다. 1517년 10월 31 일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 루터(33세)는 면죄부 장사꾼 테첼과 토론하기 위해 95개 논제를 교회 문에 게시한다. 썩은 뿌리에 벼락이 떨어진다. 드디어 폭풍이 몰아닥쳤다. 이 날의 용기가 교회를 정화할 줄이야... 나머지는 당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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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부흥사 이성봉 목사
김덕래 지음 / 생명의말씀사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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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인이 있기까지 어머니가 있었다. 이 말은 이성봉 목사님에게도 적용된다. 어머니는 어린 성봉을 신앙으로 양육하셨다. 성봉은 일곱 살 때에 벌써 성경을 일독하였다.
  위인이 있기까지 역할모델이 있었다. 성봉은 열네 살 때에 김익두 목사님처럼 유명한 부흥사가 되고 싶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위인이 있기까지 시련도 있었다. 성봉은 열여덟 살부터 스물한 살까지 타락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다 악성 골막염으로 쓰러졌다. 성봉은 처절히 회개하였다. 이외에도 수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위인은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성봉은 부임하는 교회마다 크게 부흥시켰다. 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생활의 변화를 일으켰다. 진정한 부흥이었다.
  위인은 가정보다 사역을 우선시하였다.(오늘날의 사고방식으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사역보다 가정을 우선시하는 추세다.) 성봉은 가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회 부흥회에 전념하였다. '주의 정병은 사사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위인은 처음보다 나중이 아름다웠다. 성봉은 물질에 초연하였다. 이성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권력과 명예를 탐내지도 않았다.

  우리시대에도 이런 부흥사가 출현하길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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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
데이비드 보건 지음, 김은홍 옮김 / 기독신문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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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나단 에드워즈와 존 웨슬리는 교회사에서 만나는 영적 거인들이다. 에드워즈는 미국에서 제1차 영적 대각성 운동을 주도하였고, 웨슬리는 영국에서 메도디스트 부흥운동을 일으켰다. 두 사람은 흥미롭게도 같은 해에 태어났다.(1703년) 그래서 에드워즈와 웨슬리의 삶을 간단하게나마 비교해 보려 한다. [Jonathan Edwards] (David Vaughan, 2000)와 [소설 존 웨슬리]를 참조하였다.

  에드워즈와 웨슬리는 둘 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웨슬리(7월 17일)가 웨드워즈(10월 5일)보다 조금 먼저 태어났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 에드워즈는 1708년(또는 1709년) 부흥회에서 신앙 체험을 하였고, 웨슬리는 1709년 목사관의 화재로부터 극적으로 구출되었다.

  대학은 에드워즈가 먼저 입학하였다. 1716년에 코네티컷 대학(예일의 전신)에 입학하여 1720년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1723년에는 석사학위를 받았다. 웨슬리는 1720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1724년에 학사학위를 받았고 1727년에는 석사학위를 받았다.

  목회도 에드워즈가 먼저 시작하였다. 1722년에 뉴욕에서 몇 달간 목회를 하다가 1724부터 1726년까지 강사로 활동하였고 1727년부터 노샘프턴교회에서 외조부를 도와 본격적으로 목회를 하였고 1729년에는 담임목사가 되었다. 웨슬리는 1727년에 아버지를 도와 몇 년간 목회를 하다가 1729년에 다시 강사로 복귀하여 신성클럽 멤버로 활동하다가 1735년부터 미국 조지아 주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하다가 실패를 경험하고 1738년에 영국으로 귀국하였다.

  회심도 에드워즈가 먼저 하였다. 1721년 봄에 딤전 1장 17절을 일고 구원의 기쁨과 평화를 느꼈다. 웨슬리는 1738년 윌리암 홀랜드가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는 것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였다.

  결혼도 에드워즈가 먼저 하였다. 1727년 사라 피에르폰트와 결혼하여 11명의 자녀를 두었다. 웨슬리는 1751년 과부 메어리 버자일과 결혼하였고 자녀를 얻지는 못했으나 메도디스트의 아버지가 되었다.

  부흥도 에드워즈가 먼저 경험하였다. 1734년부터 1735년까지 그리고 1741년부터 1742년까지 노샘프턴에서 놀라운 부흥을 맛보았다. 웨슬리는 1739년에 조지 휘트필드의 뒤를 이어 브리스톨에서 야외설교를 시작하면서 엄청난 군중을 몰고 다녔다.

  시련도 에드워즈가 심하게 겪었다. 몸도 약했고 교인들도 악했다. 여러 차례 질병으로 고생을 하였고 1744년에 교인들과 갈등을 시작하여 1750년에 담임목사직에서 해임되었다. 그러나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1751년부터 스톡브리지 선교사로 활동하면서 중요한 신학작품들을 저술할 수 있었다.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의 반대에 부디 치자 메도디스트 부흥운동을 더욱 조직적으로 확대해 나갔다. 새로운 교파 탄생의 계기가 됐다.

  천국도 에드워즈가 먼저 갔다. 1758년에 사위의 뒤를 이어 프린스턴의 총장으로 취임하였으나 1주일 뒤 천연두 예방 접종을 받고 감염되어 한달 후 프린스턴에서 잠들고 말았다. 웨슬리는 메도디스트의 지경을 더욱 넓혀가다가 1791년 런던의 씨티로드 채플에서 행복하게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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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peter 2004-09-18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교회 목사님이 조나단에드워드와 로이드 죤스를 영적 스승으로 생각해서 많이 강조하십니다. 제가 예수가족교회(담임:백금산 목사)에서 청년1부 전도사로 있거든요. 조나단 에드워드처럼 살 수 없을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열심과 같은 책을 읽었는데, 에드워드는 참 대단하신거 같아요. 굉장히 깊이있고, 의지가 강하고, 성경에 탁월합니다. 저도 많이 배우려고요.
 
시대의 분별과 윤리적 선택
신원하 지음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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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인가(구원론)에 관한 책은 많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생활론)에 관한 책은 조금 있다.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기독교적 세계관)에 관한 책은 거의 없다. 그래서 크리스챤들은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방황하고 있다.

  제자들이 탄 배가 풍랑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구원의 손길을 베풀어 주셨듯이,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변변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던 한국교계에 신원하 교수가 나서서 속시원한 윤리적 지침을 제시해 주었다.(비약이 심했나?)

  신 교수는 '독신'은 또 다른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동거'하는 커플에게 결혼관계의 신비를 가르치라 말한다. '입양'은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호주제'는 개정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트랜스젠더'는 반대한다. '대리모'는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명공학'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유전자 치료'에는 제동을 건다. '정당전쟁과 테러'에는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대안으로 대체복무제를 제시한다. '주5일 근무제'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로 삼으라고 격려한다. '일과 쉼'에 대해 쉼에 대한 바른 이해를 제시해 준다. '화장과 매장'에 대해 매장을 선호하는 느낌이다. '시민적 교양'은 천국 백성의 마땅한 삶의 태도라고 말한다. '로또복권'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다단계 판매'의 역기능을 걱정한다. '청부론과 청빈론'에 대해 청빈론에 공감하면서도 청부론이 현실적이라고 솔직히 고백한다.

  한국교계에 바른 윤리적 지침을 제시한 신 교수께 박수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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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된 새로운 기독교 용어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교육부 엮음 / 한국장로교출판사(한장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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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장복 교수님의 [그것은 이것입니다]를 읽고, 예배 중에 바른 기독교 용어를 쓰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 번 길들여진 습관은 쉽게 고쳐지기 힘든 모양이다. 바른 용어가 생소해서 그런지 아니면 습관이 생활을 지배해서 그런지 우리 교회 교인들은 여전히 비기독교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책보다 더 얇은 책이 있으면 교인들을 교육하는데 좋을 텐데.' 내가 바라던 책이 나왔다. 장로회 통합 측에서 '기독교 용어 연구 위원회'를 구성하고 비성경적, 비신학적, 비기독교적인 낱말을 추려내고, 이 말을 대체하는 바른 기독교 용어를 제시하였다.

이 책을 구입하여 한 가정에 한 권씩 나눠주고 예배 시간에 설교 대신 이 책을 강의하였다. 설교도 중요하지만 바른 용어는 더 시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교인들의 반응도 한결 좋아졌다. 말로 할 때보다 책으로 대할 때 더 효과가 있었다. 이제 우리 교인들은 의식적으로 바른 용어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가 속한 감리회의 [기독교 대한 감리회 새 예배서] 13-14쪽을 보면 바람직한 예배 용어 10가지가 나온다. 이 중에서 [변경된 새로운 기독교 용어]와 다른 게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대표기도'를 통합측은 '기도인도'로, 감리회는 '오늘의 기도'로 사용한다. 이렇게 각 교파마다 다른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교파 차원에서 용어를 통일시키지 않는 한, 어쩌면 바른 용어 사용은 요원한지도 모른다. (이 글은 2003년 7월 2일 라이프북에 실었던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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