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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 이야기 4 - 정나라 자산 진짜 정치를 보여주다 ㅣ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4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의 고대 선현들로부터 배우는 정치 철학은 당대의 치세를 이어 오늘날까지도 개혁가와 사상가,정치가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많음을 깨닫게 된다.특히 춘추전국 시대는 수많은 정경(正卿)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데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은 이론과 행동을 겸비한 정경으로서 진과 초나라는 대국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만의 처세와 비법을 알게 된다.
BC8세기 제의 환공을 시작하여 진시황에 의해 진의 건립(BC221년)되고 진의 문공,초의 장왕이 패권의 자리를 이어받으며 그들이 차지하고 있던 곳은 중국의 중원(中原)지역이었다.정나라는 그들의 틈 바구니(지금의 안휘성 정주) 속에서 초와 진의 비위를 맞추는 등거리 외교를 구사하기도 했다.일종의 명분과 실리를 적절히 구사했다는 반증이기도 한데,그는 예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큰 나라 군주가 작은 나라를 찾을 때는 단을 쌓지만 작은 나라 군주가 큰 나라를 찾을 때는 풀자리만 까는 것인데,어찌 단을 쌓는단 말인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로 갈 때는 작은 나라의 허물은 용서해주며,재난을 구해주고,덕과 형벌을 잘한 것에는 상을 주고,부족한 것은 가르쳐 준다.그렇게 하면 작은 나라들은 곤란을 겪지 않고,큰 나라에 복종하기를마치 귀의(歸衣)하는 것처럼 하게 된다고 한다.자산은 예를 군주와 정경의 가장 큰 덕목으로 생각하며 예는 국가의 근간이며 예를 갖춘 분을 죽인다면,그보다 더 큰 화는 없을 거라고 설파한다.
BC543년 자산은 정경이 되어 내란의 뒷처리를 잘 수습하고 나라의 기강잡기와 살림살이에서부터 시작했는데 이부 거대 씨족들은 그의 개혁에 반감을 느꼈다고 한다.그는 국도와 비읍을 구분 짓고,의복으로 상하 구분을 명확히 하고,전지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정전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오(伍)로 편성한다.사대부들 중에서 사치하는 자는 내치고 검약한 사람을 등용하는데 이는 가난하고 문란한 정나라의 현시리을 혁파하기 위한 일로 보여진다.특히 공실을 억누르고 사병들을 마음대로 부리는 목공의 후예 즉,씨족 세력들을 제어했는데 공실과 씨족의 차별화를 기도한 것이다.단연 씨족의 반발이 컸음에 틀림없다.
자산의 언론관은 백성들에 대해 인과 자애를 두루 갖추었다.좌전에 자산과 대부 연명의 대화가 나오는데 당시 향교(鄕校)에 모여 정치를 평했다고 한다.자산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1호였는데 연명은 자산에게 향교를 폐지하자고 건의했다가 된통 혼이 났다.향교는 사람들이 조석으로 나와 어울리면서 집정의 옳고 그름을 토론하는데,옳다고 하는 것은 행하고,그르다고 하는 것은 반성하여 고치면 된다고 하면서 향교에서의 집정 토론의 장을 유지해 나가며 백성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 섞인 여론을 막는 것은 일시적일 수가 있지만 그 여론은 불씨와 같아 언젠가는 크게 터지고,백성이란 물과 같아 배를 띄울 수도 있고 그 배를 뒤지비을 수도 있다고 대중심리를 읽었고 확고한 정치철학을 되새겼다.
또한 자산은 군주 간공을 수행하여 진나라에 간 적이 있는데 그들이 체류한 영빈관이 비좁아서 공물을 다 들여놓을 수가 없었다.이에 자산은 담을 모조리 허물고는 수레와 말을 모두 안으로 들여놨는데,노나라 양공이 죽어 진의 군주를 못만나고 밖에 있는 진상품을 한 데에 놓으면 이슬을 맞고 썩을 수가 있기에 할 수없이 담을 무너뜨리고 습기와 좀으로 인해 대국에게 죄를 더할까 걱정이 되었다고 한다.수시로 들락거리는 도둑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높은 담을 쳐놓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자산은 소극적으로 기민성과 재치를 발휘하여 담을 허물고 허문 담을 다시 쌓겠다는 허락을 받고 당당하게 귀국하겠다는 의지를 밝힌다.종들의 거처에 사신들을 맞이하려던 진의 사문백은 정식으로 정나라 사절에게 사과하고 정 간공을 평소보다 후하게 대접했으며 영빈관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그래서 손님 접대를 잘하여 마치 자기 집에 온 것처럼 느끼게 한다는 '빈지여귀(賓至如歸)'라는 성어가 나왔다고 한다.
현대 정치에서도 약소국이 강대국에게 무조건 따르는 사대주의는 국가의 체모와 자존심,대중의 거센 반발을 사게 된다.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충분한 예와 도리를 지키며 받을 것은 받아 내고 줄 것은 주는 상호선린 외교정책이 대외정치.외교의 일선에 있는 자들에겐 필요한 덕목이다.또한 국내외 정세 및 상황에 따라 방식을 바꿀 줄 아는 지혜와 용단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또한 이론과 행동을 겸비한 자산은 형서를 주조하며 처음의 죄는 용서하되 극악무도한 죄는 발본색원하는 냉철한 법 논리를 견지했다.
팔색조의 얼굴을 띤 자산의 정치철학을 통해 인과 자애,엄격함과 관대함,명분과 실리를 균형과 조화를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참다운 정경(正卿)상을 보여 주었기에 충분하다.특히 공명정대한 수사와 법의 집행이 뒤떨어진 한국의 현대 정치.검찰계는 자산과 같은 정치행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그것만이 정치후진국에서 정치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초석이고 요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