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다가도 모를 중국 중국인 - 가깝고도 먼 대국굴기의 중국 중국인의 성격 전격해부
장홍제 지음, 황효순 옮김 / 베이직북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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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어를 배웠다고 하는 나는 과연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누가 개관적으로 물어 보면 노변담으로 대답해 줄 수는 있지만 정치(精致)하게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다만 중국이 한세대 이상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률과 중국인들의 교육수준,경제소득 등이 높아져 가고 있으며,1세대 1자녀를 두면서 자녀에게 쏟아 붓는 교육적 지원과 사랑과 애정은 선진국 어느 나라 부럽지 않을 정도의 자녀교육에 온힘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기만 하다.한국이 교육왕국이라고 불리워지고 있지만 언젠가는 경제성장률 못지 않은 교육왕국의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그것은 중국이 외자와 기술을 도입하면서 그들 나름대로 축적한 기술노하우와 자본력이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라는 점에서 중국과 중국인의 내면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글의 저자는 중국인으로서 자국과 자국민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아 공감이 간다.손자병법에서 손무가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말했듯이 드넓은 면적에 세계 인구의 1/5을 차지하면서 다수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된 중국은 전설의 시대로 일컫는 하,상,주시대부터 춘추전국시대,후진국 진의 대약진에 따라 최초의 중국통일,한(漢)을 거처 후한,삼국시대,수나라,당나라,원나라,송나라,명나라,청나라 그리고 현대 중국사로 이어지는 것이 개괄적인 중국사의 줄기라고 생각한다.중국이 처음부터 하나의 중국이 아니었던 것 만큼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이게 된 것은 청조 건륭제에 이르러 티벳을 흡수하면서 비롯되었다고 본다.역사적인 사건과 세계최초의 발명품,동서교역로의 시발점인 실크로드 그리고 당 태종의 강건한 정치력을 건너 몽고의 유라시아 제패와 함께 탄생한 원 왕조 그리고 정화의 남해 원정과 환관들의 부패로 인한 명의 몰락과 만주족(예신각라)에 의한 청국이 강희제,옹정제,건륭제,가경제,도광제,함풍제,동치제,광서제를 거쳐 서태후,푸이(溥儀)황제를 끝으로 청국이 멸망하고 신해혁명,국공합작의 결렬과 함께 장졔스는 타이완 정부를 세우고 마오저둥은 신중국을 건립하여 현대에 이르고 있다.

 

 이 글의 두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저자가 바라본 한국인,일본인,유대인,미국인을 차례대로 느낀 바를 솔직하게 전해주고 있다.물론 현대의 각국민들의 성격과 태도,가치관 등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국민성은 단시간안에 몸에 배이는 것이 아니다.국가가 정한 규율과 제도,종교 및 국체 그리고 외세와의 관계 속에서 국가를 이끌어 가던 최고권력자의 권력행태가 어떠했고 사회의 질서와 체제,백성들을 위한 민복및 민안을 어떻게 실행해 나갔는지에 따라 국민성이 어느 정도 결정된다고 볼 수가 있다.그런데 중국은 워낙 면적이 넓고 소수민족도 56개나 되는데다 방언도 셀 수 없을 정도이다.뚜렷하게 대비되는 것은 중국의 국민성을 대별하면 북경인과 상해인으로 나뉘고 있다.호방하고 정치적인 관심이 많은 북경인과 비즈니스 감각과 이해타산에 민감한 상해인으로 구분 짓는다.

 

 5,000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와 춘추시대의 백가쟁명의 사상 즉 인의예지신이라는 덕목이 중국인의 뇌리에 깊게 심어져 있고 체면과 의리를 중시하는 편이다.또한 중국이 역대 왕조에서 보여준 모후,외척,환관,권신의 정치 간섭 및 번진(藩鎭 :변방을 지키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키던 곳),붕당 등과 같은 정치적 악성 종양은 청의 건륭제 때 최소화했던 것으로 보여진다.다만 중국이 도광제가 국정을 이끌던 1840년대 서양의 선교목적 및 무역개방압력에 중국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마찰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침하되면서 청.일전쟁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수구적이고 봉건적이며 부족한 군비로 인해 왕조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위엔스카이가 왕권을 잡으려다 실패하면서 중국은 쑨원에 의한 신해혁명을 통해 현대화의 길을 걷게 되고 얼마 전에 읽은 '루쉰의 말'은 게으르고 안일하며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가 없는 왕권 및 백성인들에게 호소하는 말들은 금과옥조이다.

 

 저자는 한국인에 대해서 솔직하면서도 성미가 급하다고 평하고 일본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단결력과 절박함으로 경제부흥을 이룩했으며,유대인에 대해선 오랜 유랑생활 속에서 설움을 딛고 전국민이 전방위적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애국심과 세계에서 가장 노벨상을 많이 수상한 민족이 바로 유대인(45%정도)이라는 점을 다이제스트식으로 들려 주고 있다.그외 저자는 몽골족으로서 몽골의 초원과 주거지를 방문하기도 하고 미국의 뉴욕거리를 탐방하기도 한다.경제대국인 뉴욕의 거리에서 느낀 것은 그들은 돈을 펑펑 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자기 것만 잘 챙기고 퇴근시간이 되면 대부분 귀가를 한다는 것이다.그리고 타이완의 지인의 초청에 의해 타이뻬이를 방문한 저자는 대륙보다 비싼 물가와 오토바이 출근길,몸에 배인 최고의 접객 업무 등을 통해 중국인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한나라의 민족성은 지리,기후,문화,제도가 상호 작용하면서 형성되는데,오랜 세월 인간관계가 교조적에 가까운 유교의 영향이 컸으며 중국현대사에 있어 사회주의체제가 낳은 업무의 나태와 안일함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치열하게 경쟁하는 국제화 시대에서 중국,중국인이 지금보다 더 세련되고 삶의 지수를 높이려면 양심과 인격을 한층 더 고양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중국인의 의식 속에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시간개념 부족과 정확도 부족,민첩함의 결여(만만디) 등을 개선해 나가면서 도농간,대도시와 중.소도시간의 재정자립도의 차이도 줄어들 것이다.이러한 문제는 시진핑시대에서 추진해 나가고 있기에 한국의 기업인과 비지니스맨들도 KOTRA등 대외무역기구 등과 원활한 정보교류,소통을 통해 한국이 살아 남을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나가야만 할 때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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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말 - 사회를 깨우고 사람을 응원하는
루쉰 지음, 허유영 옮김 / 예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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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일본 유학시절(변발을 자른 후의 모습)

 

 중국현대문학사에 있어 루쉰은 문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사회비평가로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19세기 후반 저장성 샤오싱에서 태어난 그는 사회적으로 부패한 관료와 무능한 정치판을 목격하기면서 청년기를 보내던 중 그의 진로는 환자의 병을 고치는 의사의 길로 가기 위해(그의 동생도 마찬가지) 일본 도호쿠대학에 진학을 했다.학교에서의 수업시간에 보았던 '환등기'사건 일본인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중국인의 학살장면을 보고 그것이 구경거리라고 방관하던 중국인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의사의 길을 접고 무지몽매한 중국인과 사회부조리를 개혁하고자 그는 문예를 통해 계몽활동에 나서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몇 년 전에 루쉰[본명 저우수런(周樹人)]의 아들 저우하이잉(周海婴)이 쓴 <나의 아버지 루쉰>을 통해 루쉰의 일생과 삶의 이력을 살펴 보았던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일반인의 관점에서도 환등기 사건은 커다란 충격이고 의분이 일어날 법한 사건으로 그에게는 썩어 빠진 청국의 실상을 글로서나마 간접적으로 세상에 알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개혁하려는 사상가로서도 마음에 싹이 트였던 것이다.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과 사회적 리더자로서의 자질을 함양해 나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일본유학을 마치고 중국으로 귀국한 루쉰은 1918년 문학혁명이 끝나면서 아Q정전과 광인일기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단편작품을 세상에 내놓는다.광인일기의 경우에는 피해망상광에 걸려 있는 한 중국인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강박관념을 리얼하게 묘사하고 있다.비록 부랑자와 같은 모습의 주인공이지만 실상 그는 지식인으로서 사회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묘사했고 당시의 중국사회가 어떠했는지를 그대로 보여 주었던 작품이었다.루쉰은 1920년 이후 북경대 여자사범대에서 교편을 잡기도 하고 중국 현대교육계의 거장 차이윈페이와의 교류도 있었는데 반정부 지식인에 대한 탄압으로 아내인 쉬광핑과 광둥지역으로 도피하기도 했다.

 

 무능하고 부패했던 청말,신해혁명,중국대장정을 목도했던 루쉰은 무지몽매한 중국인들에게 커다란 지지대가 되어 주고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계몽사상가적인 언행을 꾸준히 발표했다.이 글이 바로 그가 생전 사회와 중국인민들에게 보내는 절규와 같은 주옥같은 어구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꿈에서 깼을 때 갈 길이 없는 것이다.

 꿈을 꾸는 사람은 그래도 행복하다.

 아직 갈 수 있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를 꿈에서 깨우지 않는 것이다. - 본문 -

 

 특히 인상적인 글은 그가 타계하기 한 달 전에 발표한 <죽음>이라는 글에서 그는 "장례 때 조의금을 받지 마라.","어떤 기념행사도 하지 마라".'"나를 잊고 자기 생활을 돌아보라."를 남겼다.루쉰다운 정신이 그대로 담겨져 있고 대쪽과 같이 지조가 있는 분으로 다가온다.12개의 항목으로 나뉘어진 루쉰의 어록은 짧은 쪽지와 같기도 하고 시(詩)와 같기도 하지만 촌철살인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그는 중국사회 및 인민들에게 더 나은 삶과 사회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를 펜으로나마 경종을 울렸으리라 생각한다.사회는 보수라는 썩고 고인 물이어서는 아니된다.맑게 졸졸 흘러 가는 물이어야 하고 그 물이 강과 강이 만나 대양으로 향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한 어조로 또는 후학들에게 충고하는 멘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국가와 사회는 다르지만 개인의 삶에 견주어 루쉰이 남긴 어록을 깊게 참고하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지침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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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100장면 - 가람역사 4 다이제스트 100 시리즈 11
안정애.양정현 지음 / 가람기획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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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이웃나라 중국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고래로부터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불교,유교,한자 등의 문화와 그들로부터 받은 수많은 침략과 사대외교 그리고 한국전쟁시 이데올로기가 갈라져 적성국가가 되었던 중국이 이제는 한.중수교를 맞이하여 활발한 경제적 파트너로서 왕성한 교류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들의 언어는 물론 역사와 문화,풍속까지 이해하고 중국과 중국인을 교류한다면 보다 나은 한.중관계가 형성되고 침체되어 있는 한국경제에도 무역관계면에서 호조를 보여 주리라 생각한다.

 

 이 도서는 중국의 선사시대부터 한.중수교에 이르기까지의 중국역사의 주요 사실과 사건을 100장면으로 엮어 놓은 중국사의 진수라고 생각한다.출간된 지가 꽤 오래 되었지만 글에 실린 내용만은 알차게 잘 꾸며져 있다.인류역사상 구(舊)인류라고 불리는 북경원인(猿人)부터 문명의 기원인 앙소문화를 거쳐 하.상.주의 전설시대가 나오고 은허의 세계에서 갑골문이 발견되면서 중국의 문자인 한자의 유래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거북의 배딱지나 소의 어깨뼈에 새긴 갑골문은 시대와 왕조에 따라 서체의 변천이 있었다.춘추시대의 개막과 함께 열국(列國)의 각축전이 전개되고 제2의 농업혁명인 철기시대로 접어 들게 되었다.또한 춘추전국시대는 백가쟁명의 시대로서 공자,노자,맹자,한비자 등의 사상이 꽃을 피우게 된다.

 

 전국 7웅이라고 불리는 후진국시대에 접어 들면서 진(秦)은 원교근공정책에 따라 인근 나라들을 무너뜨리고 최초로 중국을 통일하게 되는 진시황제의 시대가 시작되는데 얼마 못가 한(漢)나라 유방에게 무너지게 된다.철혈정책을 발휘했던 진시황제는 분서갱유라는 초유의 문화말살정책과 그의 사후 아방궁이라 불리는 병마용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진시황제의 전제정치를 엿볼 수가 있었다.한시대가 지나고 오초 7국의 난을 거쳐 동서교역로로 알려진 실크로드의 시대,사마천의 <사기>저술은 중국고대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도 남는다.동서교역로가 성행하기전 떠는 성행하던 무렵 중국은 4대 발명품을 내놓는데 종이,화약,나침반,인쇄술이 바로 그것이다.

 

 천하 삼분(三分)의 적벽대전이라는 삼국시대,5호의 침입과 동진의 성립,수나라의 재통일과 고구려와의 전쟁을 거쳐 당 태종의 정치,여황제 측전무후의 무주혁명,이백(시선)과 두보(시성)의 시세계의 형성,안사의 난,양세법,황소의 난 등 세법과 사건 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산업의 대약진으로 농민들도 채소를 사 먹는 시대가 되었다.그리고 당이 멸망하고 송이 건국되면서 과거제의 정착과 사대부 계층이 성장하게 된다.왕안석의 신법당과 구법당에 대한 개혁,상업도시의 발달과 도시문화가 송나라에서 발달되고 지폐도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북송이 여진족에게 멸망하면서 원 왕조가 성립하는데 여.몽항쟁,일본원정 등 원과의 앙숙과 같은 시대가 있었다.홍건적의 난을 거쳐 주원장에 의해 명이 건국된다.

 

 명에 들어와서는 영락대전의 완성과 함께 정화의 남해 원정 그리고 지행합일을 내세우는 양명학의 성립이 있었다.그리고 명나라 위쪽의 만주족은 만주족의 재통일과 후금의 건국이 있었으며 명을 지키기 위한 정성공의 대만 최후의 항쟁거점 그리고 한족 최후의 저항이었던 삼번의 난을 끝으로 만주족인 청이 건립된다.청은 강희제,옹정제,건륭제를 잇는 세습제를 하면서 문화적으로는 고증학이 발달한다.그런데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선교와 무역을 목적으로 한 외세의 열강 속에서 각종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아편전쟁,태평천국 운동,양무운동,변법자강 운동이 일어나지만 무능한 왕조,부패한 관료들로 인해 중국의 외세에 밀리고 청.일전쟁으로 인해 국권은 풍전등화의 형국이 되고 말았다.

 

 공화국 황제의 꿈을 꾸었던 원세개의 비운과 제국주의 타도와 중국현대화의 시발점인 5.4운동이 발발하지만 마오저뚱과 장졔스에 의한 국공합작의 결렬과 동시에 마오저뚱은 신중국을 탄생시키면서 그만의 독특한 중국개혁(대약진운동)과 문화말살정책(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정치적 오류와 시련을 인민들에게 안겨 준다.그리고 그의 사후 덩사오핑에 의한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1992년 한.중수교에 이르기까지의 장면들을 보여 주고 있는 이 도서를 통해 다채로운 문화와 역사적 사건,그리고 이데올로기의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시장경제의 놀라운 성장과 함께 그들이 풀어 나가야 할 지구대재앙의 문제까지 당면해 있다.북경원인에서부터 한.중수교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말그대로 격변과 풍랑의 시대로 점철되어 왔으며 진시황제에 의한 최초의 국가통일은 중국이 멸하지 않고 명맥을 이어오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한국에 있어서는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에 있는 만큼 지금보다 더 호혜와 평등에 입각한 외교관계 그리고 중국을 이길 수 있는 마음의 무장과 준비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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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최후의 부족 - 슬픈 열대의 마지막 생존자, ‘구덩이 인디언’ 구출기
몬테 릴 지음, 정회성 옮김 / 아카이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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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남미 등지에는 많든 적든 원주민들이 삶을 이어가고 있다.미국의 경우에는 19세기 영국 청교도들에 의해 대량학살되고 살기 위해 도망친 원주민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소수로 남아 있다.그것도 알래스카 탐험에 나선 탐험대가 전해 주는 리포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부족,민족 모두 혈통과 고유의 언어가 있을텐데 힘과 무력에 의한 제국에 의해 강탈되고 사라져 버린 문화적 유산는 인류역사의 아픔이고 상처이다.이것이 역사가 걸어온 길이고 문명발전을 위한 길인가 묻지 않을 수가 없다.어찌되었든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과 함께 살아 가는 오지의 원주민들에겐 개발의 명목하에 생과 사의 경계에 놓여 있다.참으로 안타깝기만 하다.

 

 세계자연의 '허파'라고 불리는 브라질의 아마존 유역의 밀림지대에는 아직도 희귀하게 살아가는 부족이 있다.치부만 가리고 발가벗은 몸으로 활과 화살로 짐승과 물고기를 잡아 연명을 하는 아마존의 부족을 몬케 릴저자는 기자로서 브라질 특파원 생활 도중 고립된 인디언의 얘기를 듣고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용기와 모험심으로 원주민이 살고 있는 곳을 찾아 생생하게 리포타쥬 형식으로 들려 주고 있다.문명인의 눈으로 아마존의 부족은 신기한 외계인과 같을 것이고 아마존의 부족은 외지에서 온 이방인을 보면서 자신의 신변의 위협을 느끼면서 경계심으로 가득차 있었다.말이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손짓,발짓을 해도 마지막 원주는 풀잎으로 엮은 구덩이에 갇혀 이방인들의 행동거지를 면밀하게 주시하면서 아차하면 화살이라도 쏠 아슬아슬한 경계태세에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오래된 원목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산업문명을 들여 놓을 속셈으로 브라질 정부와 기업인은 서로 한마음이 되어 아마존 밀림지역은 서서히 불에 그을리면서 화전과 같은 살풍경이 되어 가고,그곳에서 삶의 터전과 생계를 이어가는 원주민의 삶의 경각의 위기에 있는 것이다.이러한 와중에 탐사에 나선 저자와 카메라맨은 휙휙 날아다니는 화살과 나뭇잎 사이로 화려한 색상의 옷을 걸친 남자들의 윤관을 보면서 휘파람도 불어 보고 접근을 시도해 보지만 그들은 여전히 경계태세를 견지한 채 잔뜩 긴장해 있다.누구도 체험해 보지 않은 브라질 아마존의 원주민의 삶의 동태를 이렇게 실감나게 보여 주는 것은 긴장감,스릴감 그리고 인류라는 동류의식,개발에 의한 자본착취와 경제적 이익을 탐하려는 브라질 정부와 기업인의 현실적인 마인드가 착잡하기만 하다.게다가 지주들이 고속도로 건설에 따른 생색과 브라질 정부가 인디언 보호구역을 크게 잡은 것에 분개하는 모양도 탐탁하지만은 않다.그렇지 않아도 지구는 온실가스배출로 인해 기후온난화가 진행중인데 아마존마저 산업화로 번지게 된다면 이 지구의 대재앙의 폭발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직은 미해결 상태이지만 다행히 선교단체가 원주민 즉 아마존의 토착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브라질 정부에 압력을 넣었고 그 실상을 주요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하고는 있지만 이것을 두고 이익단체는 선교단체를 헐뜯고 있다.원주민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오래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왔고 풀로 엮은 주인없는 움막집의 문은 못으로 단단히 막아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2년에 걸친 탐사 끝에 마지막 원주민인 푸나이를 인디언의 부족 이름을 목록에 올릴 거라고 한다.또한 푸나이의 영역을 영구히 보존해 그의 생존에 대한 위협을 줄이고 인류학자들은 그의 문화를 연구하고 언어학자들은 그의 언어가 소멸되기 전에 그것을 분석하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푸나이와의 극적인 만남은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다시 인내와 시간을 갖고 그의 동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원주민의 인구가 브라질 인구의 2%이고 전체면적의 12%를 차지한다고 하는데 이를 국제기구에 알려 그들의 고유언어,문화,생활을 계속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스릴감을 아마존의 밀림 속으로 들어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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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시황 강의 - 중국 최초 통일제국을 건설한 진시황과 그의 제국 이야기
왕리췬 지음, 홍순도 외 옮김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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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역사와 문화는 유구하고 찬란하며 양이 있는가 하면 음도 많다.오랜 세월 봉건제의 구습으로 관료의 부패가 횡행하면서 중국의 발전은 서양과 비교하여 오랜 시간 '잠자는 사자'로 남게 되었다.중국의 정치,경제,문화 등이 신중국이 탄생하면서 몇 차례의 정치시련과 오류에 의한 것도 그들의 발전을 더디게 했던 커다란 요인이다.다행히 덩사오핑에 의한 사회주의 체제는 고수하되 시장개혁을 도입하여 현재는 G2국가이면서 외환보유고 세계1위인 막강한 경제파워를 과시하기에 이르게 되었고 이웃나라인 한국은 이제 그들은 경제파트너 이상의 경쟁력을 갖춰 나가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중국 CCTV<백가강단>의 국보급 왕리췬(王立群) 교수가 진시황에 대한 모든 것을 세세하고 담담하며 사료에 입각한 객관적인 강의를 들려 주고 있다.흔히 중국의 2대 정치가를 꼽는다면 단연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한,위,초,조,연,제) 진시황과 현대정치사의 거목인 마오저둥을 들 수가 있다.시대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들에 대한 평가는 상이하지만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백성들을 무참히 희생시키고 독선적인 경향을 띤 점은 공통점이면서 부인할 수가 없다.

 

 

 

 진(晉)의 위열왕은 한(韓),위(魏),조(趙)에게 멸망하면서 진을 삼등분한 삼가분진으로 패가 나뉘어진다.전설과 같은 중국의 하.상.주시대를 거쳐 전국 7웅이 웅거하던 BC 259년에 진시황은 조나라 한단에서 태어난 인물인데 진(秦)나라에서 성장하면서 이웃 나라들을 하나씩 멸망시키면서 드디어 BC 221년에 천하를 통일하고 최초로 황제라는 호칭을 붙이게 된다.그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있어 그 수하의 주요 인물들의 보좌와 역할이 매우 컸는데 잘나갈 때는 한없이 믿고 맡기지만 마음이 틀어지면 '토사구팽'과 같이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하는 냉혈한과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이러한 상황을 접하다 보니 마키아벨리와 비스마르트라는 인물이 연상되기도 했다.비록 시대와 정치상황,인물의 정치안목 등은 상이했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을 피를 흘리게 하면서 희생시킨 점은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공과의 평가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진시황은 처음에는 영정(瀛政)으로 불리워지다가 천하를 통일하고나서 황제라는 호칭을 얻게 되었는데 진나라에서 처음으로 황제가 탄생했다라는 의미에서 진시황제로 불리워지지 않았나 싶다.그의 정치적 식견과 안목을 배양한 배경에는 효왕,혜문왕,소양왕,양문국,장양왕(아버지) 그리고 영정인 진시황에 이르는 정치적 가문이 한몫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진시황은 원교근공(遠交近功)이라는 책략하에서 가까운 나라들부터 멸망시키면서 먼나라는 지리멸렬한 전쟁을 하는 한편 쉽게 이기기도 했다.조나라와는 줄다리기와 같은 격이었고 제나라는 쉽게 진에게 손을 들고 병합하는 꼴이 되었던 것이다.이렇게 이웃 나라들이 진(秦)에게 멸망당한 이유는 용인술의 부족,정치적인 부패,일의 본말에 대한 무능력과 영토의 급감에서 찾을 수가 있고 다양한 전략과 전술(반간계,힘을 기르면서 적을 피곤하게 하는 것,전쟁에 대한 무비유환의 정책 등)도 무시할 수가 없다.

 

 진시황의 아버지는 장양왕으로 되어 있지만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역사자료가 신빙성을 더해 준다.장사꾼인 여불위는 수완이 좋고 여색을 밝히면서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고야 마는 전략형 리더였다고 보여지는데 여불위와 조희와의 관계에서 태어난 사람이 진시황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사건이 그의 귀에 들어가면서 후폭풍이 불게 된다.영정인 진시황은 책사 이사를 신임하고 그의 아이디어,전략 등을 귀담아 들으면서 정책의 방향과 미래의 국가건설 등을 진행시키기도 했다.그런데 그가 중국천하를 통일하고 봉건제를 폐지하면서 공천하(公天下)를 정치강령으로 삼는다.또한 군현제 실시와 도량형 통일 등 굵직굵직한 사회제도 개혁을 통해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있지만 분서갱유(焚書坑儒)와 같은 문화말살정책은 실정(失政)이 아닐 수가 없다.시경과 서경 그리고 수많은(460여명) 유학자들은 생매장했던 비극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왕리췬의 강연 내용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상앙,장의,한비,이사,여불위,인상여,조고 등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들은 뛰어난 인재임에 틀림없지만 시대와 상관을 잘못 만난 탓인지 척살을 당하기도 하고 불화설로 인해 끝내는 권력의 쓴맛을 보아야만 했던 것이다.

 

 진시황 생전인 재위 35년(BC 212년)에 아방궁 건축을 시작했는데 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동서가 500보,남북이 50장으로서 위에는 1만명이 앉을 수가 있고 아래에는 5장의 깃발을 꽂을 수가 있다는 점이다.나아가 흉노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했는데 일설에는 제나라에서 먼저 축조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린다.거대한 역사(役事)에 징집된 남편이 주검으로 확인된 맹강녀는 울음으로 만리장성을 무너뜨렸다는 비극적인 전설로 흥미롭게 들린다.진시황은 영원히 죽지 않으려 수많은 방사들에게 거금을 주면서 불노초를 구해오라고 했지만 모두들 핑계를 댄다든지 어디론가 증발해 버리고 만다.인간의 수명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며,그는 형제자매들에게도 매정하게 정치권력에 손을 못대게 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냉혈한이 아닐 수가 없다.조고의 추천에 의해 호해의 동생인 자영(子婴)이 그의 뒤를 잇지만 한(漢)의 유방이 세력을 키워 함양에 진격하면서 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사기>,<진시황본기>,<여불위열전> 등을 바탕으로 진시황 강의를 세세하게 전해주고 있는 이 글은 권력의 본질과 무상함을 동시에 맛보게 한다.재주와 능력이 뛰어난 인재라도 위정자의 눈에 벗어나는 언행은 어느 시대에서든 권력자의 구미와 탐욕에 어긋나는 것이기에 제대로 재주와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는 것이 정치권력의 속성이 아닐까 한다.현대정치를 이끌어 가는 위정자들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파벌을 조성하고 이합집산을 하면서 자신들의 사복(私腹)만 채우려는 위선적인 행동은 일반인의 시각으로 볼 때씁쓸하기만 하다.지금은 당파,지역갈등,계층과 세대간의 갈등 등을 뛰어 넘는 상생의 정치를 펼쳐 주기만을 갈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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