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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 종자는 누가 소유하는가
KBS 스페셜 <종자, 세계를 지배하다> 제작팀 지음, 정현덕 기획, 장경호 엮 / 시대의창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990년대 초반 '신토불이'라는 식당이 있어 점심 때는 회사 동료들과 자주 이용했다.그 가게는 두부를 만들고 난 뒤 남은 콩비지로 만든 음식인데 넓은 사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비지찌개는 구수한 맛과 우리 농민이 직접 경작한 콩으로 만든 음식이기에 든든하고 자부심마저 생겼다.그런데 수입농산물 개방(FTA)과 우루구아이 라운드 협정으로 농민들이 분실 자살하는 소동이 일어나고,대대손손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아 왔던 농민들이 농협으로부터 빌린 빚과 농작물의 수확가의 수지타산이 맞지를 않아 농사를 아예 포기하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면서,돈이 되는 환금작물로 대체하고 있다.비단 쌀,보리,밀과 같은 곡류만이 아니다.가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단기간 안에 시장에 판매해야 하기에 비좁은 공간에서 항생제 및 곡물사료를 먹여 성장시켜야 수지가 맞는다는 것이다.
산업화,도시화로 인해 농촌은 이제 피난 떠난 집,마을과 같이 황량하기 이를 데 없다.농촌에는 일한 젊은이들이 대거 도회지로 몰리면서 힘없는 노인들만 남아,근근히 삶을 꾸려 가고 있는 실정이다.한편 일반 서민들의 입맛이 서구화로 바뀌면서 햄버거,샌드위치 등 인스턴트 식품을 좋아하게 되고,불에 구운 육류를 선호하다 보니 어린이들의 신장 및 체중은 늘었으되 건강지수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대대로 농부들에 의해 가꾼 곡물,과일,야채,가축 등이 수입개방화되면서 토종 식자재는 점점 줄어만 가고 있다.과연 수입농산물,육류,과일 등을 안심하고 먹을 수가 있을까.나 역시 비록 마트에 가서 생산지 등을 따져 보기는 하지만 과연 식자재에 농약 잔류가 얼마나 되고,교배종인지 유전자 조작 생산물인지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
종자(種子), 이 단어는 그지 멀지 않은 과거의 봄날이 떠오른다.겨우 내내 곳간에 저장한 볍씨를 소금물에 담가 보리타작이 끝난 뒤 바로 논에 볍씨를 일정 면적에 심는 광경이 엊그제와 같다.할아버지께서 작고하시면서 시골에서 도회지로 이사오면서 시골의 논은 일부는 도지인이 짓고 나머지는 환금작물로 재배하고 있는데,듣기로는 씨앗,농약 등을 도회지에 가서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농부가 생산한 볍씨로 농사를 지을 경우에는 볍씨에 맞는 비료,농약을 사용해야 해충,병충,멸구를 제대로 퇴치할 수가 있다고 한다.내가 청소년 시절에는 흥농종묘,중앙종묘 등의 농화학 회사가 있었는데 현재는 초국적 종자 기업 및 초국적 농화학 기업에 인계된 상황이다.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초국적 종자기업의 대표적인 회사가 몬산토,듀폰,산젠토 등인데,이들은 각종 곡류를 교배하고 유전자 조작을 거쳐 전세계에 유통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그 대표적인 기업이 몬산토인데 그들은 농약잔류에 대한 일일허용치의 권장량(?)을 영업비밀이라는 명목으로 공표를 하지 않고 있다.그런데 거의 모든 농작물과 가축 등이 농약,유전자 조작,항생제 남용을 일삼고 있는데 과연 인체에 무해할까.초국적 종자기업과 농화학기업은 과연 누구를 믿고 후안무치하게 상행위를 하는 것일까.아마 미국 정치권력과 기업가 간의 이익 상충이라는 함수관계가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강하게 든다.
이 글은 2011년 KBS스페셜 <종자,세계를 지배하다>편을 내보낸 뒤 3년이 지나 책으로 나오게 되었는데,초국적 종자기업의 종자 지배는 종의 단일화로 인해 초국적 종자기업의 배만 불리게 하고 인류에 끼칠 가공할 위험을 경고하는 의미가 크다.농민들은 자신이 뿌리고 가꾼 농작물을 소중히 여겼다.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종자만큼은 소중히 다루고 저장하여 동일한 토양에서 대대로 재배되어 왔던 것이다.그런데 이제는 씨앗의 주인이 초국적 종자기업의 손에 넘어가고 만 것이다.초국적 종자기업은 '꿩 먹고 알 먹는 식'으로 씨앗도 팔고 농약도 파는 횡재를 부르고 있다.씨앗의 단일화가 과연 안심할 수만은 없다.만일 이로 인해 특정 질병이라도 발생한다면 초국적 종자기업이 책임을 질 것인가.그들은 이런 저런 변명과 핑계거리를 치밀하게 준비해 놓았을 것이다.즉 오리발 내미는 식일 것이다.농산물에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수확물의 시장가격이 낮아 농민들은 늘 빚더미에 앉게 되고,감당 못하는 빚으로 인해 삶을 마감하는 사례가 인도 농민들의 자살의 주원인이 되는 것을 보니 안타깝기 그지 없다.
2009년 농촌진흥청이 관찰한 한국에서 재배되는 재래종 작물의 수가 재배되어 온 종자의 74퍼센트를 잃어버렸다고 한다.그많던 토종 씨앗들은 어디로 갔을까.식물 유전자원이 사라져가는 유전자 침식 조사 결과 고추,수수,기장 등은 더 이상 재래종이 재배되지 않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고이다.밀려 오는 수입개방과 수지타산이 맞지 않은 농작물의 수확가로 인해 농민들은 더 이상 천직을 내팽기고 말았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대신 돈이 되는 환금성 대체작물을 재배하고는 있지만 이것 역시 경제적인 면에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씨앗은 자연 상태에서 다양한 변이를 통해서 기후의 변화와 토질,병해충 같은 조건과 어울려 살아남거나 진화해 왔다.그런데 생명과학이 발달하면서 재래 씨앗도 초국적 종자기업에 넘겨 주게 되면서 복잡한 변이,유전자의 이동,염색체의 재조합 등의 교차 과정이 벌어지고 있다.보릿고개의 시절을 겪은 1세대 윗분들은 녹색혁명을 경험하면서 생산량 늘리기에 공을 쏟았는데,이제는 녹색혁명이라는 말도 옛말이 되고 말았다.참고로 현재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고작 22.6퍼센트이다(2011년).
계절에 관계없이 전 세계를 상대로 생산되며 소비되는 시대가 되었다.이를 세계농식품체계라고 한다.다양한 먹거리를 계절과 상관없이 얻을 수 있는 점은 일견 좋아보이지만 세계농식품식품체계가 산업형 농업과 자유무역을 통해서 유지된다는 사실은 농업의 미래를 위해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특히 세계농식품체계는 안전한 먹거리가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될 수 없는 구조적 원인이 된다. -P106~P107
종자를 판매하는 초국적 종자기업들은 생명체와 생물자원에 대한 특허가 허용되도록 하기 위해 종자와 식물들이 자신들의 '발명품'이고,자신들의 재산이라고 주장한다.특히 경악할 만한 사안은 몬산토는 자연의 재생 순환에 기반을 둔 농민의 파종이 오히려 자신들의 재산을 '절도(竊盜)'하는 행위라고 공표하기 시작했다.몬산토는 대표적 초국적 종자기업으로서 아르헨티나에 처음 종자가 들어 갔을 때 로열티를 거론하지 않고 밀수를 허용했는데,3년이 지난 뒤 그간 사용한 종자에 대한 특허사용료를 모두 보상하라고 아르헨티나 정부를 압박했다고 한다.아르헨티나의 농민들은 격력하게 저항했지만 자본력과 특허라는 제도를 앞세운 몬산토의 승리로 돌아갔다는 전언이다.'병 주고 약 주는 꼴'이 아닐 수가 없다.
한국의 GMO 표시제는 검출 기반을 기준으로 한다.현행 식품위생법은 변형된 유전물질(DNA)이나 외래 단백질 성분이 남은 식품에만 GMO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는데,원료의 가공 과정에서 DNA가 파괴되거나 검출이 불가능한 식품인 간장,식용유,녹말당(전분당) 등을 표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식용으로 수입되는 GMO 옥수수,콩이 대부분 녹말당과 식용유에 쓰이는데 표시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기에 소비자는 GMO 식품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먹고 있는 것이다.반면 콩에서 기름을 짜고 남은 찌꺼기를 사료로 재활용할 때는 'GMO 사료'표시를 해서 판매하도록 되어 있다.정작 인간의 몸이 중요할텐데 GMO 표시의 애매모호한 기준이 이해가 가지를 않는다.유전자 조작 생물 문제는 이제 인체 위해성을 넘어 환경 문제,종자에 대한 특허권,자본 종속 등 사회경제 문제로 비화될 조짐이다.아니 확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의 토종 종자인 콩이 20세기 초 미국인과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유출되었다.이렇게 유출된 대두가 어떻게 교배되고 변이되었으며 유전자 조작이 행해졌을까.특히 세계무역기구인 WTO는 GMO 확산을 강제하고 있다.놀라운 점은 1992년 미국 부시정부는 GMO가 본래의 생물자원과 '실질적으로 동등하다'는 판정을 바탕으로 GMO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다.이는 유전작조작이 되었든 되지 않았든 똑같이 인체에 무해하다는 것이다.이제 초국적 종자기업,농화학기업은 종자,농약,비료,곡물 수집,운송,축산,식품 가공,유통에 이르기까지 먹거리를 장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유전자 조작에 의한 종자로 인해 생태계 오염과 유전자 조작 작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이에 반기를 들고 토종종자운동을 펼치는 운동가 및 단체들이 늘고 있어 다행이 아닐 수가 없다.식량 주권,종자 주권을 되찾기 위해 정부차원에서도 실질적이고 지원과 보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기업과 자본 앞에 종자마저 주권을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인류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는 종의 단일화가 아닌 종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