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소설로 그린 자화상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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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저는 소설이 참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도 동시에 깨달았고, 그것이 하나도 억울하지가 않았습니다. 이런 소설, 죽었다 깨어난데도 쓸 수가 없지요. 이 사람은 어쩌면 이리도 색깔 선명한 기억을 머리 한 구석에 켜켜이 쌓아놓을 수 있었을까요.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 성함 하나도 변변히 기억해내지 못하는 저같은 이는, 쓸 수 없는게 당연합니다.

신선한 초목 아래서 뛰어놀던 박적골에서의 유년 시절 묘사는 혼을 쏙 빼놓을 지경입니다. 이 노회한 작가를 어느 평론가가 '글귀신'이라고 칭한 것이 떠오릅니다. 정말 박완서는 글귀신인가 봅니다. 흙바닥보다 시멘트를 더 좋아하는 제가 누리지도 않은 유년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만드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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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부모들은 아이를 느리게 키운다
신의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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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원래 이런 류(?)의 수필집은 좋아하질 않습니다. 하지만,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책을 읽게 된 것이 아이에게나, 저에게나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느긋한 성격인데다, 특수교사라는 직업의 특성상 언제나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접하게 되는 관계로 육아에 대해 조바심을 내는 편은 아닙니다. 20개월이 된 우리 아기는 그 흔한 교육용 비디오 한 편 없습니다. '3세 이전에 비디오를 보여주는 건 나쁘다고 했어' 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면서요.

하지만, 여기엔 많은 중간 생략이 있지요. 3세 이전에 (질이 낮은) 비디오를 (장시간, 일방적으로) 보여주면 나쁜 것을, 그냥 나 편할대로 해석한 것이지요. 어설픈 부모가 아이를 게으르게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나서 어쩌면 게으른 것이 과욕보다는 나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됬습니다.

아이의 발달단계, 심리, 교육학에 관련한 공부를 할만큼 했고, 요즘 조기교육에 거품이 얼마나 많은지 알면서도 '남들 다 하는데' 그냥 두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핸드폰을 쓰지 않을 수 있는 용기' 그것도 대단하지만, 이것은 몇 배의 용기와 신념을 요구하지요. 이 책을 곁에 두면 흔들리고 불안한 마음에 작은 버팀목이 될 것 같습니다.

꼭 한 번 읽어보세요. 내가 게을러서, 돈이 없어서 아이에게 잘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잘못된 반성에 면죄부를 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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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전쟁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까치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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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대여점에서 집어들게 된 건, 신문에 소개된 공방전 때문이다. 강간이 종족 보전을 위한 또하나의 방책이라며 파리의 예를 든 부분을 두고, 어떤 페미니스트가 말했다고 한다.'흥, 그렇다면 인간이 파리인가?'도대체 어떤 책이기에 지식인들을 이렇게 무논리의 공방전으로 몰아넣는지... 실소를 금할 수가 없었다.

아주 흥미진진하고, 유쾌하며, 시쳇말로 엽기발랄한 책이었다. '옴니버스 소설'이라고 봤을 때는. (저자인 로빈베이커가 기겁을 하겠지^^) 로빈베이커는 진화 생물학자이고, 이 책은 그의 연구 결과를 담은 보고서인데도 엄숙하지도, 실증적이지도, 어렵지도 않다. 성 행위와 관계된 에피소드 한 편과, 그 배후에서 이루어지는 치열한 정자전쟁의 해설이 각 장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그의 아내의 아이디어이고, 자신의 연구 결과가 흐려지지 않기 위해 지나친 선정성은 피했다고 한다.

두 쌍의 부부가 스와핑 섹스를 했다. 두 여자가 임신한 아기의 친 아빠는 누구일까?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도, 답을 얻기도 힘든 문제들을 하나도 어렵지 않게 쓱쓱 풀어 놓았다. 거 참, 재미있게 읽고 많은 새로운 지식을 얻기는 얻었다. 그런데, 이거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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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두번 울지 않는다
시드니 셀던 지음 / 북앳북스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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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셀던은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초기의 역작들과 쉼 없이 쏟아놓은 그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서 그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만들었고, 많은 작가들이 그를 흉내내고 있다. 이제 그는 문학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엄연한 '대가'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제 시드니 셀던은 자신이 자신을 베끼고 있다. 복제도 이런 복제가 없다. 게다가 이제는 반전을 위해서 거짓말도 서슴치 않는다!!!

책 중반부에 대통령이 여기자를 구한 일을 다행스럽게 여겼으나, 훗날 이일로 자신의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는 언급이 나온다. 이런 식의 언급은 거의 매 사건마다 '~해서 ~했으나 훗날 ~할 것이라는 것은 몰랐다!'며 사사 건건 끼어든다.
작가 스스로 대통령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난 죽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안 죽었다. 이것이 반전인가? 독자에게 '이렇다'하고 거짓말을 하고 '사실은 아니다!'하는 반전에 과연 가치가 있을까?

학생이었을 때, 셀던의 소설을 읽고 밤잠을 설치던 설레임이 기억난다. 설레임이 커서일까, 책을 덮고 느끼는 것은 실망을 넘은 배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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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스즈키 코지 지음 / 씨엔씨미디어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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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고 웃을실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다른이들에게 소개할 때 언제나 제가 하는 말입니다. 제 말을 듣고 웃으며 책을 읽은 이들은 '정말 그렇네요' 하고 동감하곤 하지요. 저런 잡다한 콩글리시가 딱이다!하고 들어맞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을 겁니다.

저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링'으로 코지를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 1, 2권 까지는 '그냥 참 재미있고 오싹한 책'이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러나 3권을 읽고는 이 작가에 대한 평가가 바뀌었습니다. 한 인간의 머리 속에 이런 무한 공간이 들어 있을 수 있다니!!!

'미션 임파서블' 같은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카메라 앵글 있죠? 처음에 주인공 얼굴을 비추다가 쓰왁! 하면서 주인공이 달리는 도로가 잡히고, 또 쓰왁! 하면서 그 도로가 나 있는 거대한 평원이 잡히는 식의 편집 말이예요. 책을 읽었음에도 그런 시원한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느낌이 들었고, 링 세 권 모두에서 느꼈던 것보다 두 배는 높은 강도의 후련함을 <낙원>에서 한꺼번에 느꼈습니다.

신화, 낙원, 사막이란 이름의 각 장은 하나의 중편 소설로서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뛰어난 세 개의 모티브를, 모두가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을만큼 매끈하게 어우르는 결말은, 스즈키 코지가 결코 상상력만 풍부하고 문장력은 받쳐주지 않는 몽상가가 아닌 진정한 소설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단연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입니다. 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코지를 재평가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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