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공주를 위하여 외 24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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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루키의 인기가 높아지고, 그 열기가 계속되자 갑자기 작품들이 물밀듯이 쏟아져들어왔습니다. 여러 출판사에서 우후죽순처럼 책이 만들어졌지요.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심기가 불편한 일을 자주 겪게 됩니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나서 <노르웨이의 숲>을 사게된다면 기분이 나빠지겠죠. 같은 책이니까요.(개인적으로는 원제보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이 더 좋아요^^) 하루키의 여러 장편들이 출판 과정에서 엉뚱한 이름을 뒤집어쓰는데, 단편 소설에 와서는 이것이 더욱 심해집니다. 언젠가 서점에 서서 3권 정도의 단편집을 꼼꼼히 비교해보았는데, 번역 상의 문제라고 주장할만한 기묘한 차이의 제목들 때문에 같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많았어요. 전혀 다른 단편집인줄 알고 두 권을 구입해도 50% 이상은 겹치게 된다는 거죠.

하루키 매니아라서 그의 모든 단편을 소장하겠다는 분이 아니고, 단편은 아직 읽어 보지 못해서 한 권 사볼까...하는 마음이라면 꼭 이 책을 사도록 하세요. 무엇보다도 제일 다양한 단편, 무려 25편이 수록되어 있고 번역과 편집이 깔끔하니까요.

처음 <상실의 시대>로 하루키에게 빠진 저는, 기러기가 처음 본 것을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왠지 하루키 = 유유정 번역, 문학사상사 출판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옮긴이의 이름을 유심히 보면서 책을 읽어보세요. 색다른 느낌이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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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생각글쓰기 2-3
성정일 엮음 / 시서례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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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 반 아이들에게 적합한 문제집이 없나 여러 문제집을 검토했는데, 언짢은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2학년 국어과 문제집도 '일방적인 사고'만을 강요하고 있더군요. 동시를 읽고 '재미있는 표현'을 고르라는 문제에 붙박이 답이 웬말입니까. 열린 교육을 거쳐 7차 교육과정에 이른 지금도 제가 자랄 때와는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씁쓸한 기분이 듭니다.

그나마 <우리 생각 글쓰기>는 열린 사고를 하게 해주는 문제집입니다. 여러 가지 기본 어휘력을 신장시켜줄 뿐만 아니라 예시를 보여주면서 어떻게 하면 멋진 글을 쓸 수 있는지 길을 열어주니까요. 특히, 조금은 지루한 저학년용 보다는 3~4학년용이 좋습니다. 글쓰기를 가르쳐야할 것 같은데 어떻게 지도해야할지 난감한 부모님들께 적극 추천합니다.

주의할 점은, 이 문제집을 바탕으로 다양한 글쓰기를 실습할 기회를 많이 주셔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풀어와'하는 기존의 개념으로 지도하시면 아이는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쉽게 잃고 말 것이고, 정형화된 글쓰기에 길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 생각 글쓰기>는 작문 연습의 한 방법이지, 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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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무라카미 류 지음, 한성례 옮김 / 동방미디어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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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독서는 나에게 있어 취미를 넘은 특기이다. 머리가 아파도 잘 참고 몇 권이고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에 대한 나의 탐욕은 가끔 거추장스러울 정도이다. 어려운 책, 마음에 안 드는 책이야 턱 덮어서 쓰윽 밀어버리면 그만이니 책 읽기가 힘들어본 적은 없다. 이 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한 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얼마나 예쁜 제목이던지. 금새 눈 앞에 푸른빛이 형상화되어 행복한 느낌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책은 그렇게 행복하지가 않았다. 치미는 토기를 억누르며 한 장 한 장을 넘기려니 편두통이 생기기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힘들었을까. 그렇게까지...... 둥실 떠올라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묘사는 읽는 이의 가슴에 수정 없이 꽂힌다. 마약, 섹스, 마약, 또 섹스...... 미군과의 환각 파티 장면은 단연 이 책의 압권이다. 그런 말초적인 상황에서 이렇게 마음이 아파질줄은 몰랐다.
69와 블루를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본다면, 69의 류는 이렇지 않았는데. 짧은 시간의 공백동안 사회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큰 중압감을 준걸까. 블루는 머리와, 마음과, 몸을 모두 뒤트는 특이한 책이다. 류와 블루를 좋아하지만, 조만간은 다시 읽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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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뽀로 여인숙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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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지영과 신경숙에게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없었던 나에게 하성란은 상큼한 도발이었다. '선입견이 많은 사람'은 싫어하면서도 나같이 무수한 선입견을 짊어진 사람이 또 있을까. '예쁜 여자는 글은 별로다'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던지, 겉장 안에 예쁜 작가의 사진은 미간에 살짝 주름을 만들었다.

그렇지만 그런 선입견 덕에 글읽기는 더 감칠맛이 났다. 기대가 작았기에 기쁨도 컸다고나 할까. 20살 진명이의 내면 세계를 상황을 통해 들여다보게 만드는 글은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아침마다 가방을 안고 달리는 진명이. 결국 선명이 죽은 후 더 건강하고 성실해졌다는 그녀의 독백은 구구절절한 슬픔보다 마음을 묵직하게 건드린다.

그런데 끝은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머리가 모자란걸까. 생각의 여지가 지나치게 많은 결말은 미국식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내게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그녀의 다른 글도 읽어본 후에, 꼭 한 번 다시읽기를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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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무라카미 류 지음 / 예문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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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나는, 무라카미 류라는 이름과 제목을 보고 '이 사람, 또 시작이군' 하며 뜻모를 미소를 띄웠다. 토파즈로 그를 처음 접한 나에게는 무리가 아니었다. 또 적나라한 성 이야기가 판을 치겠거니 생각을 하자 책을 판매대로 들고 가는 것이 왠지 부끄럽기까지 했다.

헌데 이것이 다 오해였다. 이제껏 읽어본 류의 책중 가장 상쾌한 작품이었다. 음란한 상징인 69가 아니라, 69년을 얘기한 거라니...^^;;;(에구에구 부끄러워라)경쾌하게 전개되는 류의 학창시절을 넘보면서, 나는 왠지 '친구'의 달리기 장면이 떠올랐다. 폭력으로 물든 영화 한 가운데의 그 달리기는 얼마나 기분 좋고 유쾌했던가. 69의 느낌이 꼭 그렇다. '~한 것은 아니고' 하며 끊임 없이 궤변을 늘어 놓는 살짝 뒤틀린 특이한 주인공을 통해서는 류와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사적으로 친해진듯한 즐거운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

69를 류의 대표작이나 역작으로 꼽기에는 무리수가 있다. 하지만, 내가 토파즈가 아니라 69로 그를 처음 만났다면 거부감과 선입견을 해소하는데 걸린 시간을 아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류를 아직 접하지 못했다면, 이 책으로 시작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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