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결혼을 할 때 커다란 이인용 책상을 구매했다. 그런데 그 결정은 꽤나 잘못된 것임이 곧 밝혀졌는데, 나는 컴퓨터 본체 돌아가는 소리를 아주 싫어하고, 남편의 컴퓨터를 거기에 놓고 나자 나는 그 책상에서 책을 읽을 수 없게 됐다. 큰 책상과 그 책상이 놓인 서재는 남편 차지가 되었다. (아이가 아빠방이라고 한다. 내방은 없다)


드라마에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가 소개되었다. 아주 예전에 읽어 기억이 가물한데, 드라마 대사를 보니 아예 이해를 못했었구나 싶다. 한 여자가 혼자만의 공간을 위해 허름한 여관방을 빌려 때로 머문다. 남편이 그 사실을 알자 그녀는 외도를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니까 그녀는 혼자이고 싶은 그녀의 욕망을 남편이 이해하지 못할 것을 알고,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외도라는 이유로 설명한다. 인간은 놀랍도록 서로를 오해한다. 그런데 더 괴로운 건, 또 때로 미치게 서로에게 가 닿고 싶다.


<섬에 있는 서점>은 엄청난 범작이다. 읽는 도중 그만 읽을까하는 유혹이 자주 찾아왔다. 그래도 저 도레이 레싱이 그린 그녀의 실존적 불행에 비해,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에 걸쳐 찾아냈으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이 기적같이 운좋은 사내-너드 주제에 오지랍이 넓은? 형용모순인가-의 짧지만 따뜻했던 삶에 곁드려진 몇몇 재치있는 문장들을 크리스마스쯤 한편 읽고 잠드는 것도 괜찮겠다.



형사시리즈물의 전범이라 할 작품이다. 최근 만들어진 무수한 티비형사시리즈물 중 이만 못한 것이 수두룩하다. 작가는 무미건조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살짝 등장인물들에게 정이 든다. 군더더기라곤 없다. 분량마저 적당하니, 여행길 친구나 화장실 친구로 그만이다.


 회사에서 알라딘이 업무시간중 로그인이 안된다. 최근에야 업무시간외에 로그인 해놓으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업무시간 전에 로그인해서 오랜만에 소식을 적어본다.


<섬에 있는 서점> 밑줄긋기


대략 십오 년의 세월 동안 알고 지내면서 에이제이는 이즈메이가 여배우의 정석대로 나이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줄리엣에서 오필리아에서 거트루드에서 헤카테로. (71~72)


골룸처럼 말하는 군”. 에이제이가 말했다. “골룸이 누구예요?” 마야는 알고 싶어 했다. “네 아빠가 좋아하는, 상태 심각한 너드 친구 하나 있어.” 어밀리아가 말했다.


“p.s. 네 단편에서 가장 발전가능성이 엿보이는 부분은, 이야기에서 공감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야. 사람들은 왜 지금 그런 행동을 하는가? 위대한 글쓰기의 특징이지. (231~232)


명절이 주는 진짜 선물은, 그게 끝이 있다는 거라고 에스제이는 생각한다. 그는 반복되는 일상이 좋다. 아침에 식사준비를 하는 게 좋다. 가게까지 달리는 게 좋다.” (268)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먼드 카버, 1980


내가 한참을 골똘히 생각해온 문제는, 어째서 싫어하는/혐오하는/결함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들에 관해 쓰는 것이 사랑하는 것들에 관해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걸까 하는 거야. (물론 이것으로 인터넷에 올라온 많은 글들이 설명된다.) 이 소설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편인데도, 마야, 아직 그 이유에 대해서는 뭐라고 운을 떨 수가 없구나.


(또한 너와 어밀리아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A.J.F.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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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1-24 0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간 소식이 뜸하시다 했더니 회사에서 로긴이 안되었었군요. 그러보면 저는 그거 하나만큼은(!!) 좋은 회사에 다니는군요. 아무때나 로긴이 가능하다니..

생각해보면 여자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 을 욕망했던 것 같아요. 굳이 버지니아 울프의 책 제목을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일전에 ‘앨리스 먼로‘의 단편에서도 여자가 따로 작업실을 얻는 단편 소설이 있었고요,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나, 그 소설에도 보면(이거였나, 여자작가가 쓴 소설이었어요),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데조 본인의 집을 따로 얻는 여자가 나오거든요. 우리는 누구나 혼자가 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섬에 있는 서점] 재미있게 읽었고 팔려고 했는데, 오늘 휘모리님의 이 페이퍼를 읽으니, 팔지말고 가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핫.

무해한모리군 2017-11-24 10:13   좋아요 0 | URL
네 글을 쓸 공간이 없어서 ^^ 읽기는 이것저것 읽고 있어요.

섬에 있는 서점 나쁘지 않았는데, 너무 평범한 느낌이었어요. 심지어 내가 읽어봤고 좋아했던 책이 이렇게 대거 거론되는 경우는 진짜 드문데 이야기가 제게는 재미가 없었어요. 어쩌면 올해읽은 세번째 서점에 대한 책이라는 게 나빴을지도.
 

해직노동자가 돌아왔다.

그래도 그들의 세월과 그간의 고초는 보상받을 수 없다.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대학생이 된 세월.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기자의 이름을 불러본다.

 

거의 2년만에 돌아온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의 최종권과, 역시 1년만에 출간된 브래드앤버터를 구매한다. 어플 알림이 없던 시절엔 어떻게 다음권 출간소식을 알았나싶다. (생각해보니 토지의 마지막 두권은 잊고있다 한참 후에 읽었구나) 도서관에 콕 쳐박히기 좋은 날씨다. 카의 러시아혁명사는 그닥 재미가 없어서 느릿느릿 읽고 있다. 그래도 가벼운 책이라서 이렇게 들고다니다보면 왠지 다 읽을거 같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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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벗들 사이에 이 책이 이슈다. 작가는 하나 감성적으로 쓰는거 같지 않은데 나는 주구장창 울먹이며 본다. 그녀들의 기구한 삶을 알아서인지(허정숙을 제외하고 사실 이책을 읽기 전까지 잘몰랐다.) 그녀들이 집을 나서도, 사내를 만나도, 사내들이 모임할때 국수를 말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언제나 시선이 머무는 장면이 있다. 로자가 스위스로 유학을 가 스스로 자신의 긴머리카락를 자르는 장면, 허정숙이 상해 유학을 떠난 기차안에서 붉은 댕기를 푸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다. 인습에 종속된 여성으로 살지않겠다는 자기선언.


 솔직히 말하면 나는 허정숙이 비난한 선거캠프나 모임에 가면 밥상차리는 위치가 편한 종류의 인간인데, (뭐 요즘에야 보통 사먹지만) 그렇게 길러졌기 때문이야 하며 핑계를 되기엔 여기 세여자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저 내가 혁신에 뜻없이 게으른 탓이다. 


지금으로치면 겨우 중고교생 나이에 세죽은 길거리에 만세를 하고, 일제순경에 고초를 겪고,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홀로 유학길에 오른다. 정숙은 아버지가 넣은 기독교기숙학교를 박차고 나와 상해로 온다. 고명자는 어떤가. 지주의 외동딸로 자수나 두던 처자가 러시아 유학길에 오른다. 


지인에게 책 설명을 하다, 주세죽과 김조이를 박헌영의 아내, 조봉암의 아내로 설명할 수 밖에 없어 마음이 아프다. 그들 스스로 번듯한 혁명가인데, 하기야 주세죽 부부는 아이를 러시아 보육원에 맡기고 혁명길에 올랐다 투옥된 끝에 생이별하는데, 그 딸조차 엄마의 삶을 모른다. 아니 오히려 원망이 깊으리라. 100년가까운 시간을 넘어 그녀들의 삶이 내 마음을 친다. 내가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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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7-08-17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 지인들에게 꼭 읽어 볼 소설로 열심히 권장하고 있어요... 모리님은 읽으셨군요...^^
 

16년 17년 박효신의 7집 공연 무대는 참 아름다웠다.

우리말 타이포그래피와 비디오아트가 잘 버무려진 관객에게 꿈같은 순간을 주기를 원했다던 박효신의 바람이 잘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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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7-08-04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전국투어 꼭 하길
 

<시대의 소음 : 듣는 자, 기억하는 자, 그리고 술마시는 자 - 나는 술마시는 자>


기사단장 죽이기를 다읽었다. 통신사 음악앱에 하루키가 좋아하는 클래식이라고 모아둔걸 들으며 읽다 도저히 취향이 아니라 집어치우고, 컨츄리송과 함께 슬렁슬렁 읽어냈다.

어느 음악가는 공간에 들리는 소리를 잡아채 기록한다했고, 어느 조각가는 덩어리에서 필요없는 부분을 깍을 뿐이라 했으며, 작가는 시작하면 스스로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했다.

그소리를 듣고, 그형상이 보이는 것을 재능이라고 하나보다. 낡은 산꼭대기 가옥, 오페라가 흐르고 물감냄새가 나는 작업실에 독자를 데려가 창작 활동이라는게 이런거야라며 하루키가 한켠 보여준다.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지만 온갖 주제를 자기방식으로 대중적으로 풀어내는 대단한 작가다. (무려 타국 음악어플에 본인이름으로 된 클래식모음이 있는 작가라니! 그런데 개인적 취향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째즈 였으면 더 좋았겠다)

언제나 소설과 비소설을 함께 읽는 편이라 이걸 마치고 시대의 소음과 러시아혁명을 읽는다. 그다음엔 아마 세여자를 읽지싶다. 세 조선 혁명가에게도 지향이었을 러시아혁명은 어쩌다 시대의 소음과 같은 경직된 통제사회로 가게되었을까.

삶이 힘에 부쳐서 조금은 뜨거웠던 이들의 글을 읽는다. 주말에는 장장 6시간짜리 에니어그램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듣기로 했다. 조금, 조금더 우울과 힘을 내서 싸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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