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들의 논리로 적과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
회사가 어려운데 직원을 해고 안할수 있어요?
이 질문의 답은 정부가 그들의 자녀의 교육, 재취업 생계 안정을 위해 무엇을 하겠다고 나와야지 효율이나 경제논리로 답하려고 우물쭈물 할일이 아니라는 민중의소리 경제 기자의 글에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공보물 풀칠하러가야지
말하는 놈부터 내치는
제1 야당 개나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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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3-1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저 민주당원 탈당하고 박영선 낙선운동 할까봐요!

무해한모리군 2016-03-14 09:47   좋아요 0 | URL
글쎄 더민주당은 지지기반이 어디인지가 처음부터 불분명했는데 더욱 불분명해져가는듯 하네요.
 

첫사랑이 나머지와 다른 이유는 '꼭 그사람이여야 한다'는 믿음에 있다고 한다.

연애에 실패할 때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생각하곤한다.

왜 적당한 사람과 적당히 연애하지 못하고,

언제나 '저놈이 아니면 죽을' 것 같은 연애를 하고마는지 모르겠다.

첫번째 명제에 따르면 그런 연애는 어른이 하는게 아니란다.

 

영화 피스오브케이크의 그녀는 쉽게 연애한다.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랑 적당히 데이트하다 사랑한다고 믿어버리곤 한다.

직장내 양다리 끝에 뻥 하고 직장과 연애 모두다 끝장낸 그녀는 이제 신중하게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남자주인공은 친절하고, 어찌보면 별 생각이 없어보인다.

신중하게 남자를 고르려한 여자주인공은 왠일인지 그 가벼워 보이는 남자에게 첫눈에 반한다.

이번엔 적당한 사람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그 남자와 연애를 하지만,

행복하면 할수록 그녀는 그를 믿지 못한다.

 

나쁜 놈들과 연애를 한 것은

내가 나쁜 년이라서인지

정이 헤픈 년이라서인지

그저 운이 없었는지 때로 궁금하다.  

 

가장 유력한 답은 상대가 문제가 아니라(그들은 나쁜 놈이 아니었다는 가설

우리가 되었을때 그 관계를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한 내 노력이 부족한 것이지 싶다.. 

팀플레이는 나만 간절하다고 잘 되는건 아니다.

 

앙드레 고드나 존 버거의 사랑을 동경한다

멋진 사람들이다.

정치든 사랑이든 일단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니가 아니면 죽을 것 같은' 내 감정보다 '지금 나를 소중히 하는' 상대의 감정을

순수히 감사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어른의 사랑을 할 수 있을 날이 올까.

멋진 사랑따위 어떻게 해야하는지 로맨스 영화를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그냥 인간은 영화처럼 쉽게 바뀌는게 아니지만,

조금더 괜찮은 인간이 되기위해 노력해 보기로 하자.









피스 오브 케이크

피스 오브 케이크 (piece of cake, 2015)

네티즌

10.00(4)

평점주기
멜로/로맨스2016.03.121분일본
감독
타구치 토모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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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선후보가 되는 것이 확실하다는 뉴스가 나오는 이때,

영화 주토피아를 본다.


미국에 한발짝 들어가 본 적 없지만 헐리웃 영화만은 꾸준히 봐온 내게

미국의 정신은 개척정신, 청교도주의, 다양성

아마도 이 모든 것의 시작인 아메리칸 드림.


작은 여자토끼는 큰 포식동물들만 하는 경찰이 되고 싶다.

경찰이 되어서 많은 동물들이 어울려 산다고 알려진 주토피아를 더 멋진 곳으로 만드는데 기여하고 싶다. 

토끼는 겁이 많고 머리가 나쁘다고 알려져 있는데, 물론 그건 이렇게 사회를 이루기 아주 오래전 어떤 동물로서 그랬다는 것이다. 


인간은 DNA가 아니다. DNA를 통해 인간을 감별하고, 범죄자를 식별해내는 영화의 끝이 언제나 말하듯 말이다. 실재 우리의 본능은 여전히 그렇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다른 존재가 되기를 꿈꾸고, 스스로의 생존을 헤칠 수 있는 선택도 때로 하고 만다. 인간, 신을 꿈꾼 존재들 아닌가.


아메리칸 드림은 깨졌다. 중산층은 무너지고, 이민에 대한 거부감은 커지고 있으며, 백만장자 차별주의자 백인이 유력 대통령 후보가 되려하고 있다. 주토피아는 전혀 평화롭지 않다. 어울려 사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한계에 부딪히며 각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가 테러로 두려움에 떠는 이 때 디즈니는 말한다.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총, 칼이 아니라, 엉뚱한 꿈을 꾸고, 스스로를 믿으며 도전하는 인간들에게 있다고. 그의 출신, 성별, 인종이 아니라,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묻고 지지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이 만화의 남주는 단연컨데 디즈니 역사상 가장 매력적이다.

섹시하고, 똑똑하며 헌신적이다. 


누군가를 향한 믿음이 반드시 보상 받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내가 준 믿음이 상대방의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믿음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정치인들이 민중을 믿는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한다. 오늘 테러방지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중지하면서 역풍이 불것을 우려했다고 말한다. 자신들은 똑똑해서 그법의 잘못을 다 이해하는데, 국민들은 선거가 지연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해서 자신들을 손가락질 할 것이라는 것이다. 


민중을 믿고 대화하는 것이 정치다. 그런 정치라야 소수가 이기는 것이다. 가르치려들고, 수 읽기나 해서는 이길수가 없다. 몇 십년간 계속 같은 주장 행동을 한끝에 샌더스는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하더라도 힐러리의 정책을 왼쪽으로 끌고오는 성과를 냈다.  


판타지로라도 우리 사회의 핵심가치를 찾을 수가 없다. 유교니 불교니 하는 오래된 것들은 낡았다며 던져버리고, 앙상한 가족주의의 깃발만 나붓긴다. 믿음이니 동무니 그리운 말들을 읊어본다. 정의롭다, 더불어 함께간다는 말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자기자신 당명의 뜻이라도 헤아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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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2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랑스의 앙토넹 아르토에 따르면 '삶이란 물음을 남김 없이 태우는 것'이라고 한다. 

요즘 나를 사로잡은 질문은 이런 것이다.
왜 우리는 박근혜 정권을 선택했는가? 이다.
정치란 현재의 제약을 뛰어넘는 담대한 상상력과 그것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여야 한다.
그런데 최근 내가 목도하는 정치는 법과 절차라는 최소한의 규제조차 무시되며 폭력과 협박으로 내달리고 있다. 

문제는 이 정권이 투표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해고를 어렵게하고, 복지를 늘리겠다는 입에 발린 거짓말을 하기는 했지만, 과연 그 말을 믿어서 지지한 것인가) 누군가 말했듯이 히틀러도 투표로 선출되었다. 미국대선에서 백만장자 트럼프의 주 지지층이 저소득 백인이라는 것 또한 놀랍다. 경제적으로 벼랑끝에 몰린 이들의 분노와 관심을 엉뚱한 화풀이 대상을 제시해 인기를 끄는 오래된 수법이 여전히 먹혀들고 있다. 아니 솔직히 좌절과 두려움이 너무 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후대에 의해 석유문명으로 불릴 우리 사회는 명확하게 한계지점에 와 있다. 우리는 경이로운 생산력 증대의 시기에도 생존이 위태로울 정도로 배곯는 자와 비만 질환에 시달리는 자가 공존하며, 가난한 자와 전쟁으로 죽어가는 자들의 피로 배부른 자들이 으스되며 살아가는 두려운 세상을 만들었다. 오래된 책들에서 답을 찾는다. 전운영 선생의 시선과 새로운 자본 읽기를 골랐다. 솔직하게 말하면 원인분석 따위는 필요없고 행간에서 약간의 희망을 발견하고 싶다. 


 


요즘 인터넷 글들을 너무 읽었더니 문장이 엉망이다. 해괴한 단어들이 옮아버렸다. 

처방전으로 마음에 드는 비극 두편을 골라본다. 왠지 칼의 노래는 읽고 팔아버리고 중고로 또 사고를 반복하고 있다. 다시는 안볼 것처럼 헤어졌다 뜬금없이 너무 읽고 싶다. 빨강의 자서전은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하는 빨강괴물의 입장에서 노래한단다. 비극적 사랑이야기라니 취향이다.  


왠지 너무 슬픈 책들만 골라버렸다.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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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은 현대물 보다는 시대물을 주로 읽는다. 기이한 이야기들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그마한 공동체가 힘을 모아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 이야기가 좋다. 열심히 일해도 항상 모자라는 형편이지만 정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 기저귀를 찬 채 뛰어다니던 어린시절 골목이 떠오른다. 나를 보면 언제나 우유를 쥐어주던 다방에서 일하던 언니는 무슨 사연이었을까. 그립다. 


괴수전의 괴물은 인간의 욕망덩어리가 뭉쳐진 어떤 것이다. 많은 이들이 말하듯 '원전'에 대한 은유로도 읽힌다.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더 많은 에너지를 원한 끝에 우리는 원자력을 낳았다. 우리중 누구도 이 괴물을 묻을 방법조차 모른채 말이다. 작품 속에서는 괴물을 만든 자의 희생으로 종결을 짓는다. 현실은 그저 가난한 자들의 생명만을 앗아가고 있다. 배에 구멍을 낸 놈이 누군지, 어떻게 막아야 될 건지에 대한 궁리는 고사하고, 우리가 가라앉은 배 속에 함께 묶여 있는 지조차 모른 채 옆에 나보다 좀 편히 묶여있는 니가 미울 뿐이다.


가끔 한겨울 여자아이의 맨다리를 보면 스타킹이라도 사신기고 싶다. 그런데 주변에서 우유 꽤나 받아먹고 자란 나는 그런 인간이 되지 못했다. 여자아이와 나의 거리감이 사무치게 외로워서 자꾸만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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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6-02-11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향에 오래 못갔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이런 리뷰밖에 나올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