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수희 옮김 / 열림원 / 1997년 9월
평점 :
품절


이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으면서, 난 참 기가 막히게 게으른 인간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느낀 것을 언어로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모두들 많은 것들을 느끼고 살지만, 그것을 정확하게 언어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원더랜드’는 사실 독자인 내가 살고 있는 나뉘어진 두 개의 세계이기도 하다. ‘세계의 끝’은 안으로 고여 있는 세계, 머릿속의 의식 세계를 상징하며,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바깥으로의 혼란스런 세계를 말한다.

“내가 이 말을 어딘가에 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처음엔 직감이었어.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그것은 확신이 되었지. 이 마을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너 자신이었지. 벽에서부터 강, 숲, 도서관, 문 겨울 하나에서부터 열까지....내게는 나의 책임이란 게 있어. 나는 내가 내멋대로 만들어 낸 사람들과 이 세계를 내팽개치고 가버릴 순 없어.”

이 부분은 이 책의 2권 마지막 부분 세계의 끝에서 나오는 구절이다. 이 작품의 기발함을 한층 더 빛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두 세계를 오락가락하다가 돌연 마지막에 선택된 하나의 세계, 즉 주인공은 이 소외된 세계를 택하고야 마는 것은 작가뿐만이 아니다. 나 독자도 그렇다.

“나는 나 자신이 우주의 끄트머리에 홀로 남겨진 듯했다. 이제 어디로도 갈 수 없고 어디로도 되돌아갈 수 없다.여기는 세계의 끝이고, 세계의 끝은 어디와도 통하지 않는다. 세계는 그 끝을 고하며 고요하게 멈춰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이어트의 성정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8
한서설아 지음 / 책세상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이른 저녁을 혼자 차려먹으면서 여행 작가가 비디오로 담아 온 여행지의 풍물을 남녀 진행자가 감상하는 평일 저녁 티비프로를 본 일이 있다. 그 날은 ‘샹그릴라’라는 곳이 나왔다. 화면을 보기 전에는 그곳이 지상 최대의 낙원이라는 둥, 뮛이라는 둥 해서 동남아시아 열대의 섬인양 진행자들이 설명을 늘어놓았는데, 알고보니, 중국의 어느 오지 마을이다. 그 곳은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 마을처럼, 개발이 시작되면서 검소하고 소박한 예전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깨지기 시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자연 경관만큼은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따라서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학교에서도 신식의 교수 방법들이 도입되었을 것이다. 조금 있으니, 그 곳 여학교 학생들의 에어로빅 공연 장면이 나왔다. 그러자 남자 진행자가 한마디를 한다. “와, 살 뺄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는데요.” 그 말 한마디에 밥술을 뜨던 숟가락을 내려 놓았다. 정말 밥맛이 뚝떨어졌다. 그 지역의 향토적인 풍물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에서 아직 어린 학생들의 모습에 살 운운하는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아직 개발도상국에 있는 그 지역이 선진국에 들어서기 위해선 여학생들의 살부터 빼야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쉽게 살이 찌는 통통한 체질의 나 또한 시시종종, ‘살을 좀 빼야지’ 하는 마음으로, 강박적으로 먹는 양을 체크하곤 한 적이 있다. 물론 인생의 행복 중 하나인, 맛있는 것 먹는 일을 눈을 질끈감고 마다하는 짓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너무 우스운 것 같아, 금방 본래의 나로 도로아미타불하고, 생긴대로 살아야지 암,,.. 버린다. 그러다가도 주변 사람들의 내 외모에 대한 발언에 ‘뚱’이나 ‘통’자가 들어간 말들을 듣게 되는 날이면, 또다시 맘 속으로 다짐을 시작한다. 살이 빼야 한다고. 하지만 먹는 것을 줄이는 것으로 살을 빼면, 막상 먹는 걸 원래 수준으로 돌렸을 때의 요요 현상이 아주 심하게 나타나는데, 이건 나이가 들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조사에 의하면 다이어트를 하면 할수록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 된다고 한다. 게다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신진 대사율이 떨어지고 말이다. 체질적으로 통통한 사람들에게 살을 빼는 일은 정말이지 끝이 없는 싸움이며,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런데 왜,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나? 그것은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일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다이어트는 사회적 기준에 맞는 몸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몸을 자아의 일부로 긍정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열망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어트는 우선 이런 날씬함의 열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더욱더 철저하게 자신의 몸을 혐오하고 통제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의 몸을 절대 용서하지도 말고, 이렇게 혐오스러운 몸을 만들어 낸 욕망을 철저하게 검열하고 통제해야 한다. 안타깝다. 나 자신부터 나의 몸을 사랑해야 할 것을...

이 책은 ‘다이어트에 대한 여성들의 욕망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는 것인가’와 다이어트의 유행과 산업화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를 보게 한다.

필자는 우리가 정작 치료해야 할 것은 여성들에게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이렇게 높여 놓은 이 사회이지, 그러한 사회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그에 순응한 여성들의 마음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여성들이 상실한 자신감을 되찾아 주는 치유의 과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여성의 가치와 정체성을 외모로 재단하는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여성들이 받은 상처는 여성 스스로의 힘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하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필자의 말처럼 여성들이 외모 때문에 겪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자아 존중감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육체에 대한 강박을 안겨 주는 이 사회의 권력에 끊임없이 딴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샹그릴라의 에어로빅 하는 여학생들을 뚱뚱하다는식으로 표현한 그 사회자가 심히 불쾌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분이 만드는 백만장자
마크 빅터 한센 외 지음, 이순주 옮김 / 북앳북스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구성이 참 독특하다. 책의 오른쪽 페이지에는 시종일관 한 편의 소설이 전개된다. 90일 안에 100만달러(현금으로)를 벌지 못하면 자신의 사랑하는 두 아이를 시부모에게 뺏기게 되는 어느 여성이 100만달러를 90일 동안 어떻게 벌어들이는가에 관한 성공담 이야기이다. 성공담을 다룬 책들이 대개 그러하듯 처음에는 도저히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 훌륭한 멘토(스승)와 자신의 의지력과 또한 새로 발견한 지식을 통해 어떻게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의 단상에 오를 수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왼쪽 페이지에는 백만장자가 되는 비법이랄까 하는 것들이 보다 단계적이고도 전략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는 저자가, 사고 유형이 다른 독자들이 각각 자신의 유형에 맞게 소화하기를 바라는 뜻에서 의도한 구성이라고 한다. 오른쪽 페이지 구성은 우뇌가 발달한 예술가 기질의 사람들을 위함이고, 왼쪽 페이지 구성은 좌뇌가 발달한 논리적인 사람들을 위함이라고.

이 책을 잘 활용하면 부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돈을 버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보았을 때는 그닥 우리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들 투성이나, 부자가 되기 전에 가져야 할 마음가짐 정도는 확실히 터득할 수 있을거다.

자신의 수입의 10%를 사회를 위해 기부금 형식으로 환원하는 부자가 많으면, '돈'은 그야말로 돈을 소유한 백만장자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여유와 풍요함을 제공하기는 할 것이다. 혼자만 떵떵거리지 않는 이런 부자들이 많다면 살만한 사회가 될터이지만...... 근데 왜 내가 보고 듣는 부자들은 왜 그렇게들,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거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 투성이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내 주변엔 내로라할 부자들이 없어, 본 것은 없고, '부자', 라 하면 텔레비전에서 뉴스에서 본 인물들에 대한 것이 전부라 그러려니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뫼비우스 그림 / 열린책들 / 2003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이야기를 시작하며'를 보면, 베르나르는 그런 말을 한다. 세상살이가 너무 어려운 것으로 보일 때마다 짤막한 이야기를 짓곤 했다고. 자신이 겪는 문제의 요소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짓고 나면 이내 마음이 평안해진단다. 아마도 <개미>나, <뇌>와 같은 장편을 쓰면서, 두꺼운 소설 짓기가 주는 부담감이나 긴장감을 풀려했나 보다.

작가는 이 이야기의 소재를 꿈이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나, 산책을 하면서 보고 떠오른 것들에서 찾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듯하다.

우리는 작가도 예술가도 뭣도 아니지만, 때때로 이런 공상을 해보지 않나?
'투명한 피부껍질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가 어떻게 소화되어 배설되는지 한눈에 알 수 있을거고, 몸의 어딘가가 절단나고, 이상한 종양 같은 게 마구마구 자라더라도 투명한 피부껍질의 소유자라면, MRI같은 비싼 의료기기를 굳이 동원하지 않아도 병의 원인을 금방 알 수 있을거고 대책도 빨리 되겠지.
'17세기나 18세기의 조선으로 타임머신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기록되어진 역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체험들을 할 수 있을테고.....
그렇지만 이는 어쩌다 하릴없어 심심할 때 한번쯤 해보는 공상이고, 이에서 더도덜도 생각을 진전시키지는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부지런하고 똑똑한 작가는 이걸 기발한 소설로 써먹었다. 하나하나의 일련의 '가정'을 두고, 이 '가정'에 '세태의 만상'과 조금은 황당한 '과학적 지식'과 사람들의 '허영과 모순'을 양념처럼 버무려서 극단까지 몰고 갔을 때의 결과를 생각해 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야기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그 많던 싱아는....'이 박완서의 자전소설 1부라면, 이 책은 2부다. 책 뒤의 '작품 해설'을 보면 박완서가 이 책에 이어 3부, 그러니까 결혼후부터 작가가 되기까지의 시기의 체험을 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3부는 나오지 않고 있으니,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치밀하고 풍성하게 기록된, 한 개인의 삶의 역사를 보여 주는 3부작을 기대하는 건 어렵게 되었다.

불도저의 힘보다 망각의 힘이 무섭다고 세상이 변해하는 것보다 더 정도가 심하게 과거의 살아낸 세월들을 잊기가 쉽다. 작가 박완서 자신도 '그 시절이 정말 있었던가' 싶게 아련한 6.25직후의 체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나보다. 그렇게 작가가 살아 내고 작품 속에서 그려낸 세월들은 흔하디흔한 개인사에 속할지도 모르지만, 펼쳐보면 그 부분은 개인사인 동시에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동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나 독자는 박완서의 작품을 통해서, 6.25 당시의 절박하고 어려운 시절들을 공유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주인공이 올케와 인민군의 강요에 의해 강의 북쪽으로 피난가서 겪은 일화였다. 이들은 북으로 향하는 국도를 벗어나 파주 쪽으로 갔다가 한 마을에 묵게 되는데 거기서 만난 주인 마님은 매우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인민군에게도 국군에게도 절대 기죽지 않는 위풍당당한 어른은, 당시 피난민들에게도 마을 주민들에게도 큰 위안이었겠지만, 독자들에게도 위안을 준다. 저렇게 어려운 당시에도 저토록 인간으로써의 품위를 잃지 않는 어른들이 있었다는 것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