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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의 성정치 ㅣ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8
한서설아 지음 / 책세상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날 이른 저녁을 혼자 차려먹으면서 여행 작가가 비디오로 담아 온 여행지의 풍물을 남녀 진행자가 감상하는 평일 저녁 티비프로를 본 일이 있다. 그 날은 ‘샹그릴라’라는 곳이 나왔다. 화면을 보기 전에는 그곳이 지상 최대의 낙원이라는 둥, 뮛이라는 둥 해서 동남아시아 열대의 섬인양 진행자들이 설명을 늘어놓았는데, 알고보니, 중국의 어느 오지 마을이다. 그 곳은 ‘오래된 미래’의 라다크 마을처럼, 개발이 시작되면서 검소하고 소박한 예전의 전통적인 생활 방식이 깨지기 시작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자연 경관만큼은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따라서 개발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학교에서도 신식의 교수 방법들이 도입되었을 것이다. 조금 있으니, 그 곳 여학교 학생들의 에어로빅 공연 장면이 나왔다. 그러자 남자 진행자가 한마디를 한다. “와, 살 뺄려면 더 열심히 해야겠는데요.” 그 말 한마디에 밥술을 뜨던 숟가락을 내려 놓았다. 정말 밥맛이 뚝떨어졌다. 그 지역의 향토적인 풍물을 감상하는 프로그램에서 아직 어린 학생들의 모습에 살 운운하는 것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아직 개발도상국에 있는 그 지역이 선진국에 들어서기 위해선 여학생들의 살부터 빼야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쉽게 살이 찌는 통통한 체질의 나 또한 시시종종, ‘살을 좀 빼야지’ 하는 마음으로, 강박적으로 먹는 양을 체크하곤 한 적이 있다. 물론 인생의 행복 중 하나인, 맛있는 것 먹는 일을 눈을 질끈감고 마다하는 짓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너무 우스운 것 같아, 금방 본래의 나로 도로아미타불하고, 생긴대로 살아야지 암,,.. 버린다. 그러다가도 주변 사람들의 내 외모에 대한 발언에 ‘뚱’이나 ‘통’자가 들어간 말들을 듣게 되는 날이면, 또다시 맘 속으로 다짐을 시작한다. 살이 빼야 한다고. 하지만 먹는 것을 줄이는 것으로 살을 빼면, 막상 먹는 걸 원래 수준으로 돌렸을 때의 요요 현상이 아주 심하게 나타나는데, 이건 나이가 들수록 더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조사에 의하면 다이어트를 하면 할수록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이 된다고 한다. 게다가 나이를 먹어갈수록 신진 대사율이 떨어지고 말이다. 체질적으로 통통한 사람들에게 살을 빼는 일은 정말이지 끝이 없는 싸움이며, 악순환의 연속이다.
그런데 왜, 여자들이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나? 그것은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일부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다이어트는 사회적 기준에 맞는 몸을 가짐으로써 자신의 몸을 자아의 일부로 긍정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열망 때문에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이어트는 우선 이런 날씬함의 열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더욱더 철저하게 자신의 몸을 혐오하고 통제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의 몸을 절대 용서하지도 말고, 이렇게 혐오스러운 몸을 만들어 낸 욕망을 철저하게 검열하고 통제해야 한다. 안타깝다. 나 자신부터 나의 몸을 사랑해야 할 것을...
이 책은 ‘다이어트에 대한 여성들의 욕망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는 것인가’와 다이어트의 유행과 산업화의 관계는 어떠한 것인지를 보게 한다.
필자는 우리가 정작 치료해야 할 것은 여성들에게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을 이렇게 높여 놓은 이 사회이지, 그러한 사회의 메시지를 받아들여 그에 순응한 여성들의 마음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여성들이 상실한 자신감을 되찾아 주는 치유의 과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여성의 가치와 정체성을 외모로 재단하는 사회의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여성들이 받은 상처는 여성 스스로의 힘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완전하게 치유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필자의 말처럼 여성들이 외모 때문에 겪는 고통에서 해방되고 진정한 자아 존중감을 가질 수 있기 위해서는 여성에게 육체에 대한 강박을 안겨 주는 이 사회의 권력에 끊임없이 딴지를 걸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그 샹그릴라의 에어로빅 하는 여학생들을 뚱뚱하다는식으로 표현한 그 사회자가 심히 불쾌하게 여겨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