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일기
루요우칭 지음, 김혜영 외 옮김 / 롱셀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이 글엔 자신이 투병 중인 암 때문에 생긴 고통을 정면으로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부분이 적다.

'나는 일기가 아름다움을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병색에 물들지 않도록 했고 사망의 기운이 스며들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오후의 티타임인 셈이다. 다만 우리가 앉아 있던 카페가 공교롭게도 저승과 이승의 길목이었을 뿐이다. 차를 다 마시고 이야기가 끝나면 그대는 가고, 나는 남아 묻히면 그만이다.' 여서였을까?


다만 어느 하루의 일기에서 그의 정신적 고통을 극렬하게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대형 할인점에 간다. 나의 주머니 속에는 장난감 만년필이 들어 있고, 이 만년필 안에는 대량 살상이 가능한 독극물이 들어 있다. 다음날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린다. 대형할인점에서 독극물 유출로 500명 사망. 나는 그 할인점에서 501번째의 사망자가 되려고 했었다. 그러나 내가 먹을 독극물이 담긴 병뚜껑을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어지지가 않는 거다. 병뚜껑을 열려고 애를 쓰다가 꿈에서 깨어난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 류요우칭이 숱한 날을 반복해서 꾸었던 악몽 한 토막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죽음의 고통을 악물고 남은 가족에게도 자기가 없을 날들에 대비해 따뜻한 조언들을  나눠주고, 지나왔던 삶에 대해 때론 유머러스하면서도 담담해 보일 만큼 의연하게 서술을 하지만, 투병자의 본질은 격렬한 감정의 저 수없이 반복되는 악몽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죽음을 눈앞에 둔 자가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일종의 시기이고 질투이다. 처연하지만 현실이다.


그럼에도 얼마 되지 않는 나날 중 대부분을 류요우칭은 일기의 기록을 통해 자신에게 용기를 불어넣고, 삶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려 했다.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으니 '삶' 이해하고 끝까지 제대로 살아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겠다 하였다. 

물론 그도 병 때문에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은 걸 너무나도 원망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바꾸어 생각해보면 충분하다는 것 자체가 원래 사기일지도 모른다고.


가끔은 무엇이 이유가 되었든지 간에, 살아가는 일 자체가 두려워서 혹은 괴로워서 때로는 권태로워서 그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뭐가 그렇게 도통 즐겁지 않은건지. 그 이유를 나도 모르겠지만.....


인생에 있어 즐거움은 한순간에, 한 장소에서, 한 가지 사건만으로도 맛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변이 급할 때 화장실만 찾으면 금세 즐거워지는 것처럼 즐거움은 쉽게 올 수도 있는데...... 그렇게 바꾸어 생각을 해보지 못하는 것은, 살면서 마음에 관심을 덜 쓰고, 힘을 빼야 할 때도 힘을 주고 살아서 그런 것 같다.


이 책은 힘 조절이 안 되는 요즈음의 나를 건드려 요상한 방식으로 마음에 진동을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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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 2004-08-06 2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다는 것 자체가 힘든데 아프다면 그 삶이 더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인생에서 즐거움은 한순간, 한순간인 듯해요. 하루 전체가 다 즐겁거나 한 주일 내내 즐겁기를 바라는 것 보다는 순간을 즐기면서 행복을 찾는 게 좋겠지요. 님, 왜 요새 힘 조절이 안 되시는 거에요? 그냥 단순히 더위 때문이었으면 좋겠네요. 더위는 곧 갈 거니까 다시 활기가 생길 거니까요. 저도 마음이 좀 움직여지는 책을 읽고 싶어요. 추천하고 가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8-07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소변이 급할 때 화장실만 찾으면 금세 가벼워지는 것을... 몸은 해결책을 갖고 있는데 왜 마음은 그렇지 못할까요? 님의 마음이 무거우신 모양이군요... 그래도 마음에 진동을 얻은 책을 읽고 조금 가벼워지셨길... ^^

icaru 2004-08-0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 조절~. 마음의 해결책~흐흐...

아하...제가 원체 엄살 과장이 심해서....바늘만한것도 대못만하다고 하지요....
근심거리 같은 것은 항상 따라다니곤 하는데...요즘...더...

과식이 트레이드 마크인 제가... 좀 입맛을 잃을 일이 있었답니다.

근데...이 책 절판이네요...!
음...전 삼년 전에 사뒀던 책을 들춰 본거라...

hanicare 2004-08-09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쉽게 건드릴 수 없는 주제라서 한참 보다가 인사만 남기고 갑니다.벌써 입추예요.더위에 늘어난 것 같아도 시간은 착실하게 가주는군요.복순이 언니님이 입맛을 잃으신 탓일까요.등 뒤의 햇빛이 조금 여위어 보입니다.
좀 더 있으면 가을이 오고 그럼 이 문세 3. 4 집 노래들이 한결 정답게 울리겠군요.갑자기 휘파람이 듣고 싶어졌어요.휘파람을 불 줄 알고 거기 묘사된 캐릭터가 좀 비슷하여 저 노래를 들으면 저를 그리워하는 노래이려니 하는 즐거운 망상을 하곤 했습니다.ㅋ.ㅋ

icaru 2004-08-09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문세 3, 4집...하아....
저는 가을이면...양희은의 1991년 앨범이 떠올라요...'가을 아침' 있고....'그해 겨울'이 있고...'그리운 친구에게'가 있는....

달팽이 2004-08-13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맹목적으로 매달린 삶에서 그 삶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안고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삶의 마지막 과정인 죽음을 인간답게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며 인간관계를 아름답게 고양시키는 죽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라 생각되네요...이 책 읽고싶었는데 절판되었더군요...좋은 책 읽고 서평올려주어 감사합니다. 앞으로 간간히 들르겠습니다...

icaru 2004-08-14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달팽이 님 안녕하세요....예전에 님의 서평들 많이 읽었답니다...하하..
님이야말로 좋은 책들...두루두루 읽으시던데...지가 한수 배워야지 싶습니다...!
 
시몬느 베이유 불꽃의 여자 - 교양선집 6
시몬느 뻬트르망 지음 / 까치 / 1978년 8월
평점 :
품절


나는 자주 그런 생각이 든다. 이기심이 없이는 일생을 견뎌 나갈 재간이 없다고. 하지만 시몬느는 나와 아주 다른 사람이다.

 

가진 자가 없는 사람을 온당하게 이해하기는 정말 힘들다고 본다. 더불어 한 사람이 온전히 타인을 위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더더욱 힘들 것이다. 약자를 위하여 삶은 바친다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실제적으로 자신의 개인적인 구원을 바탕으로 한 것인 경우일 때가 많다. 그러나 유복한 가정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보봐르와 사범 고등학교 동기(실제로 둘은 친분이 전혀 없었다. 보봐르의 어떤 기록에서 보면 시몬느 베이유가 보봐르의 차림과 행동을 보고 속물로 간주하고 가까이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이기도 한 철학자 시몬느는 약자 특히 노동자에 대한 순수한 관심 밖에 없었다.

 

시몬느 베이유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말은 아마 이 말일 듯하다.


“자신을 인간의 고통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온당치 않은 부(副)를 거부한다.”


그래서일까 시몬느는 과거 여러 철학자들 중에서 스피노자를 좋아했다. 그의 용감하고, 순수하고,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굴하지 않고, 떳떳하며 독립적인 면을 좋아한 것이다.


“마르크스의 방법을 마르크스가 적용할 수 있었던 것은 마르크스 자신의 시대였을 뿐이며, 그 방법을 오늘날의 시대에 적용시키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의 예언은 이 새로운 시대에는 들어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는


“우리는 사실을 외면하지 말자. 우리 자신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음을 알고 여기에 대비하도록 하자. 우리의 힘은 작은 것이지만 이 작은 힘이라도 우리의 이상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자들의 손아귀에 넘겨 주지 않도록 하자. 최소한 우리의 명예를 지키자.”라고 말한다.


이런 시몬느에게 세간에서는 ‘지식인 출신으로 노동 운동의 지도자인 양 자처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식으로 자뭇 공격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실상 시몬느는 노동자들에게 지식인의 지휘를 받지 않도록 경고해 왔으며, 노동자들에게 여러 가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노동 단체를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협조자의 역할을 했다. 지성인 계급들은 노동자들과는 달리 자신을 희생하거나 사진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지는 않을 것이니 노동 조합의 문제는 스스로 고난을 겪고 이는 노동자들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몬느는 자신의 말과 행동의 틈을 절대 간과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직업 소개소를 통해 다른 노동자들과 똑같이 공장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 생활 속에서 산업 사회에서 요구되는 생산 기구가 어떻게 자유로운 프롤레타리아에게 적합한 생활 조건이나 노동 조건과 화해할 수 있는지 모색하려 애를 썼고, 어떻게 해서 인간이 인간을 핍박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기계가 인간을 핍박하게 되는지 알고 싶어 했다.

 

그녀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굶주리며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목도하고는 먹는 행위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갖게 된다. (시몬느의 죽음의 원인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지 못했고, 다른 사람의 굶주림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누추한 잠자리와 거친 일과 약간의 식사를 고집했다. 병적으로.....


시몬느는 노동자들의 고통이 자신의 영혼과 살 속에 파고들어 왔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일생 동안 프랑스 자본주의의 모순과 투쟁하였고, 수탈당하는 노동자에 대한 옹호로 서른네살의 생애를 이 책의 제목처럼 찬란한 불꽃처럼 다하였다.



밑줄 그은 문장


힘의 지배를 깨달은 사람만이, 어떻게 해야 힘을 숭배하지 않을 수 있는가를 깨달은 사람만이 사랑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                                                                                       -214쪽


너는 이미 이 시대의 공포에 져서는 안돼. 공포는 정말로 지옥에서부터 솟아올라오는 지옥 같은 감정이기 때문이야. 일단 이 공포에 빠지게 되면, 언젠가는 반드시 여기에서 벗어나야 해. 크나큰 파괴의 힘이 무서우면 무서울수록 일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커지며, 그 일을 완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사랑에 눈을 뜨게 되겠지.  

                                                                 -시몬느가 이 글의 저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256쪽


“강제적으로 단시간에 대가없이 일하게 되면, 다른 효과적인 자극이 없는 한, 사람들은 가혹한 형벌이나 압력이 없이는 일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장기간의 여가가 쌓이게 되면 일부에서는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게 되는 스포츠에 탐닉하게 될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이런 종류의 스포츠는 끊임없는 무장을 요구하기 때문에 강제 노동은 평생토록 연장될 것이다......”              

                                                   -<남부의 노트>지에 기재한 과학논평의 내용 중 일부   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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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평전 - 개정판
조영래 지음 / 돌베개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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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친한 벗이 말하기를, 자신이 살아온 나날 중에서 들었던 가장 상처가 되는 말은 고등 학교 다닐 적 어느 선생님의 우연한 다음과 같은 한마디였다고 한다.

“너희들 공부 열심히 하지 않으면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가 되거나 그런 인부의 아내가 될 것이다.”


친구의 아버지는 건축업을 하시는 인부였다. 친구의 아버지는 우직한 농사꾼이셨지만 자식들의 학업을 위해 시골에서 농사를 접고 서울로 상경하시었었다. 배움이 없고, 가진 기술이 없어 공사장 막일로 아내와 자식들을 건사하셨지만, 부지런하시고 정직한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를 사회에서 패배한 낙오자 정도로 일갈하는 선생님에게 친구는 뭔가를 보여 주고 싶어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고, 기분이 퍽 가라앉음을 느꼈다. 이 글은 전태일 자신인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에 대해 고(告)함이다. 전태일은 독자인 나 자신의 가장 약한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이기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전태일에게, 그리고 이 평전을 기술하기 위해 혼신을 다한 조영래의 사랑과 투쟁과 지혜에 깊은 감동을 느낀다.


노예로서의 고통과 굴욕으로 가득 찬 지루한 나날을, 아무런 의의도 보람도 기쁨도 없는 껍데기의 삶을 애걸하며 또 애걸하며 비루하게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이 절대로 변화될 수 없는 영구불변한 현실이라는 미신에 쉽게 사로잡혀 있는 약한 자인 나에게 “인간의 존엄을 버리지 않고 인간다운 대접을 요구하며 싸우는 것은 바보가 아니”라는 걸 보여 주었다. 

 

왜 밑바닥 인생들은 항상 밑바닥 생활을 하게 되는가? 왜 눌린자는 계속 눌리어 살아가는가?

 

여기 고통 받는 한 사람의 의식을 살펴보자. 그가 태어났을 때 고통에 찬 현실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이 현실 속에서 자라나면서 그는 그 현실이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힘에 의하여 자신에게 강요된 것처럼 착각하게 되고, 사실은 바로 ‘인간’이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을 똑똑히 보지 못하게 된다. 이 거대한 힘에 비하여 볼 때, 자기 자신은 너무나도 약하고 초라하고 무력한 존재로 느껴진다. 조만간에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의 사회 구조와 질서 앞에 무조건 머리를 수그리고 거기에 순응해야만 생존이 보장된다고 느끼게 되며, 따라서 현실 앞에서 위축되고 기가 죽어서 비굴해진다. 현실에 대한 모든 비판은 그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무모한 짓으로 되며, 자신에 대해서는 불성실하게 되고 나중에는 부도덕으로까지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비판 정신의 싹은 자신의 의식 속에 싹트기도 전에 잘라버리고, 사회가 강요하는 모든 명령, 모든 가치관, 모든 선전을 받아들여 순한 양이 된다.

 

전태일이 위대한 것은 순한 양이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든 가정에서 자랐으면서도, 스스로 “불행한 과거를 원망한다면 그 과거는 너의 영역에서 영원한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정도로 불우한 환경 때문에 좌절하거나 타락하지 않고 오히려 불우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키우고 그들의 처지를 개선해주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장기표 씨의 후기에서 “인간이 명석하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 부분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전태일을 보면서 민주화를 생각한다. 민주화란 무엇일까? 이 글에서 조영래 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흔히 수없이 많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한 줌도 못되는 소수의 억압자들에 의해 짓밟히고 있다고 말하며 또 그러한 사례를 수없이 본다. 영화 같은 데서 수많은 노예들이 채찍에 시달리며 묵묵히 중노동을 하고 있는 장면을 볼 때 어째서 저 많은 노예들이 불과 몇몇의 감독자들에게 굴종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을 품어 본다. 인간 사회가 형성된 이래 이러한 실태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러한 요소들이 사회적 민주화의 장애가 되고 있는 나라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원인을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말한다. 특히 들어볼 만한 설명은 억눌리는 사람들이 수적으로는 아무리 많아도 조직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조직된 소수’에게 지배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이야기해야 할 것은 억압받는 사람들의 노예 의식인 것이다. 만약 그들이 이 노예 의식을 벗어던지고 자유인으로서 자신의 정당한 권익을 위하여 주장하고 투쟁할 결의에 차 있다면 그들의 조직화는 시간 문제일 것이며 조만간에 그들은 ‘조직화된 다수’로서 ‘조직된 소수’인 억압자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것이 바로 민중 운동의 전진이며, 이것이 바로 민주화이며, 어떻게 보면 이것이 바로 진보인 것이다.

 

 

밑줄 그은 문장

 

사실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그 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것일세.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냐!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이냐!


   -재단사 일자리에서 쫓겨난 전태일이 공사장에서 일을 하다가 어느 인부를 보고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아의 좁은 환상에 집착하여, 그 속에 밀페되어 껍질을 쌓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아무 것도 참으로 사랑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참으로 소망할 수 없다. 일상 생활에서 그들은 자신들이 많은 것을 희망하고 많은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부와 권력과 명예와 미모의 이성과...... 그러나 그것들은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더욱 처절한 고통과 고독의 심연으로 몰아넣는 허구의 욕망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탐욕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전태일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은 희망함이 적다는 것이다”라고 썼던 것이다.       -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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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4-05-27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류의 숭고한 의미를 내포한 책들은 함부로 말하기가 참 어려운 일이죠.
"순한 양이 되기를 거부한다." 사회의 모든 가치관에 스스로를 기계 부속인양 맞추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많은 의미를 주네요.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icaru 2004-05-27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에... 정말 좋은 책이었습니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전..이런 책의 리뷰는 밑줄긋기 형식을 벗어나지 못하네요....내내 그러네요~!

설박사 2004-05-27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태일이 20대 초반에 자살을 했지요? 저도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구조적 부조리함에 대해서 많이 느끼지만... 글쎄요... 제 생각에는 전태일이 살아있었으면 더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hanicare 2004-05-28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태일 평전과 노자의 도덕경.두 권 모두 읽고 난 뒤의 세상이
읽기 전의 세상과 달라져 버렸던 책이었고, 뭐라 아직도 정리할 수 없는 책이군요.아마도 용기를 내어 쓰신 리뷰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icaru 2004-05-28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설박사님...음....님은 기독교인이셔서(맞죠?), 죽음이라는 수단을 택한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법합니다...아..음..전태일의 죽음은 일단 개인적인 울분의 자살이 아니었구요....해도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마침 박정희 정권을 존속시키려는 선거철을 당하여.....전태일이 제시하는 근로기준법에 맞게 처우를 개선해 주겠다고 기업주들이 거짓 약속을 했지요....그래서...전태일은 궐기를 보류하기도 했었어요...하지만..선거가 끝나고 박정희가 당선되자 언제 그런 약속이나 했냐는듯...기업주들은 돌변했죠....그래서...전태일은 목숨을 내건 시위를 했던 거지요...목숨을 내걸었기에...그나마 오늘날처럼 처우가 약간 개선되었을듯해요..

icaru 2004-05-28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icare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압니다....예...저도 충격이고 감동이었습니다...이 평전이 제 마음을 어지간히도 들쑤시더군요....님도 아직 뭐라 정리를 못하고 계시다고요....아..님의 말씀처럼...저 또한 책에서 받은 감동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도 못하네요....이 내용 정리...곧 '리뷰'라는게요...^*

2004-05-30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4-05-31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언니님, 이 책 참 부끄러운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여전히 전 그 모양으로 살고 있지만... 조정래님, 전태일님, 읽는 내내 가슴을 쥐어짜더군요. 님의 리뷰, 그리고 고등학교 적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추천하고 갑니다. ^^

icaru 2004-05-31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배혜경 님께서 친히(?) 코멘트 남겨 주셔서..더없이 기쁘네요 ^^
아...저도 이 책을 읽고 조금이라두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여 본답니다....

책읽는나무 2004-06-0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책들은 가슴이 아프고 숙연해지는 그느낌을 글로 표현한다는것이 참 어려운데...님의 리뷰 멋지군요!!.....님의 그가슴아픈 느낌이 바로 전해지는듯합니다......ㅡ.ㅡ;;
물론 전태일의 죽음을 다시 한번더 생각해보아야할 문제이기도 하구요!!...요즘은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생각이 참 많아지네요.....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한순간에 해결되지 못하는것이 아주 그냥 체기가 생긴것같이 답답할따름입니다....ㅠ.ㅠ
리뷰 잘읽고 갑니다.........^^

icaru 2004-06-01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책읽는 나무 님...좋게 읽어 주시니...정말 기뻐요^^
너무 인용만 해댄 것 같아, 조금 부족한 글이지 않나 싶었지요..

설박사 2004-06-02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주의 리뷰에 당선되셨네요. ^^ 축하드립니다.

icaru 2004-06-0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고마워유~! 박사님...
 
서준식 옥중서한 1971-1988
서준식 지음 / 야간비행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요며칠 일찌감치 아침을 챙겨먹고 남들이 출근하듯 나도 인근 구립도서관에 나가 이 책을 읽었다. 공무원 시험, 학교 시험, 각종 고시 준비에 기타 등등의 수험서를 펴놓고 공부하랴 여념없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책상 위에 딱 이 두꺼운 책만 펼쳐놓고, 두 손을 꼭 모으고(도서관 안이 조금 싸늘해서) 진종일 웅크리고 앉아서 읽었다. 딱히 정한 것도 아닌데 오전부터 시작해서 오후 다섯시까지 꼬박 있으면 하루에 60페이지 가량을 보게 된다. 이 책은 결코 속도를 내서 읽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차마 그럴수가 없는 책이었던 것이다.

형제들과 사촌들 그리고 이모, 고모의 전향 설득에도 비전향을 고집하는 서준식 그를, 그래서 결국엔 스물네살에 들어간 감옥을 사십이 넘어 17년이라는 세월 동안을 보내온 서준식을 보면, 마틴 루터 킹이 했다는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난다.

“나는 한 개인이 양심이 그에게 부당하다고 명한 법을 위반하고, 그리고 그 부당성에 대해 공동체 전체의 양심을 불러일으키고자 기꺼이 그 형벌을 받아들여 감옥에 머무는 일이야 말로 법에 대한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것이지 싶다”고 말했다던...

그가 감옥 생활의 고독함을 감수하며 온 힘을 다해 사명을 이루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을 내가 온전히 이해하리란 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서준식(참고로 그는 비기독교인이고, 단순이 종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함이 아닌)'약자를 위한 예수'를 발견하는 부분(동생 영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을 읽었을 때, 그가 17년간의 감옥 생활 가운데 편지 모음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가를 조금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내가 예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수가 단순히 '약자의 편'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우리들이 그 어떠한 강자가 된다 하여도 영원히 약자의 길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예수가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다. 예수는 모든 이념이 경직화되고 '자율적'인 것이 되어 버릴 때 그것이 인간을 얼마나 무자비하게 억압하는지를 나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들이 이념의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항상 '인간에 대한 개개의 구체적인 사랑'에 굳건히 발 디딜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것이 나 개인이 겪어야 했던 (그리고 어느 의미에서는 지금도 겪고 있는) 그 처참한 정신적 위기에 있어서 얼마나 절실하고도 귀한 가르침인가를 나 자신 이외의 아무도 알 수 없다. 이것은 '영원한 약자의 편'일 수 있는 한 가지 길이다.”

그리고 서준식은 옥중에서 ‘노예’의 결박을 풀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보안감호처분 무효확인소송’이었다. ‘보안감호처분 무효확인소송’이란, 다시 말하면 ‘노예’가 아닌 ‘인간’임을 인정해달라는 요구였다. 서준식의 요구는 절실했다. 그러나 연거푸 세 번을 거절당했다.

사람이라고 무조건 사람인가! 사람답게 살아야 사람이다. 사람답게 살려면 착해야 한다. 그런데 각박한 이 세상에서의 착함이란 ‘약함’의 다름 아니다. 그러한 약함을 고수하며 살기란 그렇다 너무 어렵다.......‘어리석은 자가 끝까지 어리석음을 고수하면 현명한 자가 된다.(윌리엄 블레이크)’라고 내내 읊조리던 그는 부조리한 권력에도 빌붙지 않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에의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했던 우직한 사람이다.

내가, 나같은, 인간으로써 짊어져야 할 고뇌랄까 절망 같은 것을 자주 팽개쳐버리고 싶어하는 이가, 이 옥중에서의 서간들의 아롱아롱 새겨진 따뜻한 글줄들을 정말이지 제대로 감상으로 풀어 낼 수나 있을까, 사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이 무척이나 부끄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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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없는 이 안 2004-08-05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군요. 전 끝내 고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아직 보지 못했는데 너무 보고 싶은 책이었는데 님이 불을 지르셨습니다. ^^ 이 책은 김규항의 B급 좌파를 읽고 나서 그가 출판인이 되어 낸 책이라 더 읽고 싶었지요. 님은 부끄러울 따름이라고 하셨는데 전 부끄러워지는 그의 책으로 계속 부끄러워라도 질 수 있는 마음을 잃지 않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ㅠ.ㅠ

icaru 2004-08-06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셨구나...예...이 책의 출판사 야간비행 주간인가 편집장인가 였던거 같아요...김규항이..말이지요...

님 언젠가 이 책 꼭 읽으시리라...

 
딩링
쭝청 지음, 김미란 옮김 / 다섯수레 / 1998년 9월
평점 :
절판


딩링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던 것은 <천안문>을 읽고 난 다음이었다. 여든 하나의 삶을 산 그녀의 인생은 독자가 보기엔 너무나 곡절이 많았다. 한 사람에게 인생의 희비의 순간이 그토록 천차만별로 오락가락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노릇일 정도였다. 그렇다. 딩링에게 자꾸만 마음이 갔던 것은 그녀가 이룬 문학적 성취가 존경스러워서라기 보다는 그녀의 전설과도 같은 일생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딩링은 1904년 망해가는 청제국 말기에 태어났다. 상하이와 베이징을 전전하며 무정부주의 사상도 접해 보고, 스물에 만난 남편과의 신혼 시절(달콤한 신혼이라고 표현하기 뭣한 것이 이들은 공산주의 사상과 생활의 실천을 위해 서로 떨어져 생활을 하는 둥 그립고 애틋한 시기 또한 보내게 된다.)에는 낭만적 감상주의 풍의 소설 < 소피의 일기>를 써서 세간을 집중시킨다.

그러던 중 1931년 국민당과 공산당의 결렬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계기로 남편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서 그녀는 점차 사회에 대한 관심으로 방향을 바꾸어간다. 원래 혼자 있기 좋아하고 남과 어울려 움직이는 것을 즐겨하지 않는 작가 딩링이었지만 점차 단체의 임원으로, 주임으로 직책을 맡게 되면서 상황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선전 집회에서 강연도 하고 통솔도 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간다. 어제의 문학 소녀가 오늘의 전사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당시 그녀에게는 어린 두 남매가 있었지만, 아이는 어머니에게 맡기고 그녀는 이제 투사가 된 것이다. 그렇게 대중 사업의 탁월한 간부로써, 바쁘게 시간은 흐르다가 1960년,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 그녀는 알량한 엘리트 작가주의를 표방한다는 이유로 갑자기 가혹하게 탄압을 받기 시작한다. 시골의 농장에 보내지게 되고, 예닐곱살짜리 소녀들에게 머리채를 휘어잡히고, 외양간에서 자는 둥 모진 고문과 탄압 감시의 나날을 십오여 년간 보내게 된다.

왜 이렇게 갑자기 그녀가 우파로 몰리어 수모를 당하게 되었나. 그것은 그녀가 젊은이들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신발을 만드는 일이라면 백 켤레를 만들어도 똑같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 오직 한 켤러만 잘 만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창작은 다르다. 오직 한 작품이 좋은 것은 괜찮으나, 백 개의 작품이 모두 비슷해서는 안 된다.'

1976년 드디어 문화 대혁명의 기간은 끝나고 새로운 중국의 역사를 맞이하게 되면서, 딩링에게 입혀진 혐의도 벗겨져 다시 옛날의 주목받던 작가 딩링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나이 이제 황혼, 70살에 말이다. 전국 각지에서, 서방에서 그녀에게 인터뷰가 쇄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수난받았던 작가 딩링은 공산당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는 대부분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지탱하게 해 주었던 신념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딩링은 온갖 풍상을 겪은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사람이란 차라리 무명유실(無名有實)한 것이 낫지 절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명실상부(名實相副)한 것조차도 좋지 않다. 당시 나의 명성은 너무 눈부셨고, 그로 인해 재난이 뒤따른 것이다.'

이 시점에서 김진애의 에세이에서 보았던 구절이 생각나는 건 뭘까. 여자가 일을 일로써 하려면 넘어야 되는 몇 가지 고개들. 중에 이런 게 있다. 일단 일을 좀 한다 싶고 눈에 띌 만하면 '너무 크게 조명을 해서 더 크게 자랄 제목을 지레 말려 버린다.' 라는 구절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는 딩링이 겪은 그 모든 파란의 세월이 단지 그녀가 여자였기 때문에 겪었다고 보여지지는 않지만, 웬지 내 눈엔 다소간의 의심의 소지는 있어 보인다. 문혁을 계기로 기다렸다는 듯이 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여성 작가에게 내려진 비난과 죄목들이라니.

그러나 그녀는 이 모진 순간(느닷없이 우파로 몰리는)에, 난리를 당하고도 의연하게 대처했던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했다고 한다. 우리가 힘들 때 정녕 우리를 버티게 해주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모성'이라는 것을 또한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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