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 나의 과학 인생 리처드 도킨스 자서전 2
리처드 도킨스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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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일을 물으신다면 중에서 발췌

 

나는 권했다. " 좋아하는 질문의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세계적 귄위자라고 가정하세요. 그렇다면 자기가 아는 내용의 아주 일부(한 시간 동안 에세이를 써 내야 하는 평가를 치른다고 가정할 때)만을 쓸 수 있겠죠" 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 동의하여, 학생들에게 '빙산의 일각만 드러내기' 수법을 권했다. 빙산의 10분에 9는 물에 잠겨 있다. 만일 당신이 어떤 주제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라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라도 그 주제에 대해서 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남들과 마찬가지로 딱 한 시간이다. 그러니 빙산의 꼭대기만 교묘하게 드러냄으로써 평가자가 물밑에 잠긴 거대한 부피를 짐작하도록 하는게 좋다.  이를테면, "브라운과 메켈리스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라고 씀으로써, 당신이 시간만 더 있었다면 브라운과 매캘리스터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꼬치꼬치 쓸 수 있었다는 걸 채점자에게 넌지시 암시하는 것이다. ..반드시 덧붙여 말해둬야 할 점은, 빙산의 일각만 드러내는 수법은 채점자가 많이 안다는 가정하에서만 통한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글쓴이는 전달하려는 내용에 대해서 많이 알지만 독자는 모르는 상황일 때, 가령 설명서 따위를 쓸 때 이 수법은 형편없는 전략이 된다. 스티븐 핑거는 <문체의 감각>이라는 근사한 책에서 '지식의 저주'라는 표현으로 이 논점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당신보다 조금 아는사람에게 무언가를 설명할 때, 빙산의 일각만 드러내는수법은 당신이 취해야 할 전략과 정확히 반대되는 전략이다.  

 

밀림의 가르침 중에서 발췌

 

나는 훗날 세번째 책 <눈먼 시계공>에서 그 기분을 설명했다. 책에 적었듯이, 나는 어려서 아프리카에 살 때 사자나 악어보다 아프리카산 군대개미를 더 무서워했다. 군대개미 군락은 위협적인 대상이라기보다 오묘하고 경이로운 기분을 일으키는 대상이며, 비록 포유류의 진화와는 다르지만 우리 세상에서 구현될 수 있는 또 다른 진화의 한 장점이라고 적었다.

 

나는 여왕 개미를 일별도 하지 못했지만 들끓는 덩어리 속 어딘가에는 분명 어딘가 여왕 개미가 있었다. 중앙 데이터뱅크이자 군락 전체의 원본 디엔에이를 저장한 존재가 있었다. 입을 딱 벌린 병정개미들을 여왕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어머니를 사랑해서가 아니었고, 충성의 이상을 주입받은 탓도 아니었고, 그저 그들의 뇌와 턱은 여왕이 지닌 기본 주형에서 찍혀 나온 유전자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용감한 병정들처럼 행동핳는 것은, 그들처럼 용감했던 엣 병정들 덕분에 제 목숨과 유전자를 보전한 선조 여왕이 대대로 물려준 유전자를 그들이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병정 개미들이 현재 여왕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와 같았다. 내 병정개미들이 지키는 것은 사실 자신들로 하여금 경호를 서게끔 만드는 지침서의 원본이었다. 그들이 지키는것은 선조들의 지혜, 계약의 궤였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나는 특정한 목적을 품고 정량적 관찰도 건성으로 시도해보았으나, 이렇다 할 결과는 없었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나는 특정한 목적을 품고 그에 맞게 연구를 계획하는 데는 그다지 소질이 없다. 흥미가 이끄는 대로 나비처럼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시험 실험'을 해볼 순 있겠지만, 진정한 연구를 하려면 프로젝트의 일정을 미리짠 뒤 그것을 엄격하게 고수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왔을 때 당장 연구를 그만두기 쉽다. 그것은 비록 고의적인 속임수는 아닐지언정 과학 역사에서 심각한 오류를 낳는 잘못된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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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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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삶이 지닌 주목할 만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끔찍한 참사들을 (그 현장에서 멀리 벗어난 채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지켜볼 기회가 셀 수도 없이 많아졌다는 사실입니다. 잔혹한 행위를 보여 주는 이미지들은 텔레비전과 컴퓨터의 작은 화면을 거치면서부터 이제는 점점 더 진부한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시청자들은 잔인하게 묘사된 폭력에 익숙해지는 걸까요, 아니면 뭔가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되는 걸까요? 매일같이 쏟아지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 시청자들의 현실 인식이 손상될까요? 그렇다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분쟁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을 염려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타인의 고통을 쓰기 시작했을 때 제가 갖고 있었던 궁금증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중략> 저는 하루하루가 공포의 나날이고 전쟁이 진부한 일상이던 곳에서 거주하며, 이런 경험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들, 이런 경험을 단지 이미지로만 아는 사람들에게는 전쟁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저는 전쟁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전쟁을 실제로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인상을 받았죠. 그렇지만 저는 우리, 그러니까 전쟁을 겪지 않아도 되고 안전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이 오늘날의 미디어 전문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저 전 세계적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타인의 고통은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다룬 책입니다. 저에게 이 책은 스펙터클이 아닌 실재의 세계를 지켜 나가야 한다는 논증입니다. 저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아서 사람들이 이미지의 용도와 의미뿐만 아니라 전쟁의 본성, 연민의 한계, 그리고 양심의 명령까지 훨씬 더 진실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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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먼저 사진과 영상을 이용하여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사람들이 전쟁의 비극과 참혹함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는 매체를 접하는 사람들이 단지 그러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일 뿐 사진이나 영상 속의 인물들에게 동정심을 느끼는 것으로 마음속의 짐을 던다는 내용에서는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글에 대한 반응은 크게 이 글의 내용에 긍정하는 사람과 부정하는 사람으로 나뉠 것이다. 긍정적인 쪽은 자신이 작업할 때 이 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점을 항상 고민하고, 사진과 영상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진정성 ?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폭력성에 반대하는 ? 을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선택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부정적인 쪽은 자신들의 편집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사람들이 전쟁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 통로가 없다면 ? 전쟁을 이미지로라도 확인할 수 없다면 ? 전쟁이 이토록 참혹하고 비인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미지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자신은 더 안전한 곳에 있음에 안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보도 사진의 기능을 지나치게 확대하여 해석한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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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06-02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인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행복을 찾는 인간의 내재된 폭력성이 나에겐 해당되지 않는지 반성해 보게 됩니다. 읽은지 좀 됐는데 리뷰읽고 다시 떠올려보네요.^^

icaru 2017-06-02 15:25   좋아요 1 | URL
댓글 달아 주셔서 반갑고 또 감사합니다 munsun09 님 ^^
저 또한 남의 불행에 안도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지... ~
저도 예전에 들춘 책들을 한꺼번에 정리하고 있는 중인지라 ㅎㅎ 다시 한번 떠올려 보게 되었네용 ㅎ

2017-06-02 17: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icaru 2017-06-07 09:00   좋아요 1 | URL
알라딘 서재 기능 중에 찜하기 기능이 있어서 제가 꽤 많이 님의 사진들을 찜해더랬죠 ㅎㅎ 또 사진하면 이 여성이네요.. 단발머리 님 표현 마따나 카리스마... 이런 카리스마 라니...멋지죵

단발머리 2017-06-02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icaru님~~ 요즘 열독 모드시군요~~ 넘넘 좋아요.
전 카리스마 넘치는 멋진 표지의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 하고 ㅠㅠ ㅎㅎ

icaru 2017-06-05 17:43   좋아요 0 | URL
앙하~~~ 단발머리 님 ㅎㅎ 예전에 들춘 것들 정리했어요 ㅎㅎ 이렇게 안 하면 사실 뭘 읽어두 남은 게 없어서리... 단발머리 님 처럼 저도 맛깔스러운 리뷰 쓸 수 있담 얼마나 좋은까요 어떤 책이든 제가 소화를 덜 시키는 모양인지 잘 익은 글은 안 나오더라고요 겨우 옮기기나 하는 수준이네용
 
러셀 자서전 - 상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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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나

 

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으니,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어려운 연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열정들이 마치 거센 바람과도 같이 나를 이리저리 제멋대로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나는 사랑을 찾아 헤매었다. 그 첫째 이유는 사랑이 희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대단한지 그 기쁨의 몇 시간을 위해서라면 남은 생을 모두 바쳐도 좋으리라 종종 생각한다. 둘째 이유는 사랑이 외로움 이 세상 언저리에서, 저 깊고 깊은 차가운 무생명의 심연을 들여다보며 몸서리치게 하는 그 지독한 외로움 을 덜어 주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성인들과 시인들이 그려 온 천국의 모습이 사랑의 결합 속에 있음을, 그것도 신비롭게 축소된 형태로 존재함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추구한 것이며, 비록 인간의 삶에서 찾기엔 너무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나는 결국 그것을 찾아냈다.

내가 똑같은 열정으로 추구한 또 하나는 지식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보고 싶었다. 하늘의 별이 왜 반짝이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삼라만상의 유전(流轉) 너머에서 수()들이 힘을 발휘한다고 설파한 피타고라스를 이해해 보고자 했다. 그리하여 나는 많지는 않으나 약간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사랑과 지식은 나름의 범위에서 나를 천국으로 가는 길로 이끌어 주었다. 그러나 늘 연민이 날 지상으로 되돌아오게 했다. 고통스러운 절규의 메아리들이 내 가슴을 울렸다. 굶주리는 아이들, 압제자(壓制者)에게 핍박받는 희생자들, 자식들에게 미운 짐이 되어 버린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외로움과 궁핍과 고통 가득한 이 세계 전체가 인간의 삶이 지향해야 할 바를 비웃고 있다. 고통이 덜어지기를 갈망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나 역시 고통받고 있다.

이것이 내 삶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다시 살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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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세트 - 전5권 이오덕 일기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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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1 -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14쪽(1962. 9. 21.)

공부를 못해서 시간마다 꾸지람을 듣는 아이들은 학교생활이 얼마나 괴롭겠는가? 하루하루가 무거운 짐이 되어 그들의 어깨를 누르고, 마음을 누르고, 그래서 천진한 품성마저 비뚤어지기가 보통이다.

 

20쪽(1962. 10. 23.)

내가 가르친 이 아이들만은 앞으로 언제까지나, 땅바닥을 기어다니는 조그만 벌레 한 마리도 아무 이유 없이 죽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늘도 내일도 이 아이들을 위해 있는 힘을 다 바쳐 가르쳐야 되겠다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106쪽(1970. 4. 24.)

시키고 부리는 정치는 바로 이것을 노린다. 그대로 놓아두면 생각을 하게 되고 진짜 교육을 하게 되니 그것을 막기 위해서 온갖 잡동사니 일을 지시하고 보고하게 한다.


257쪽(1973. 9. 8.)

권 선생(권정생을 말함)은 또 내가 <갑돌이와 갑순이>에 나타난 사회, 역사에 대한 의식이 투철한 점이 좋더라고 하고, 요즘 아동문학가란 사람들의 작품 보면 한심하게도 권력에 맹목적으로 달라붙거나 고속도로니 새마을이니 하는 것에 천박한 식견을 가지고 있어 한심스럽다 했더니, “요 이웃에 어떤 할머니가 지난해 월남에서 아들이 전사한 통지서를 받고 통곡을 하면서 하는 말이 ‘아이고 우리 **를 박 대통령이 미국의 강냉이가루하고 바꿨구나 합데다”했다. 참으로 요즘 많은 아동작가들은 이 무식한 시골 할머니한테 배워야 할 것 아닌가.


이오덕 일기2 -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12쪽(1978. 5. 19.)

뿌리깊은나무를 찾아갔더니 인사도 안 했는데 모두 나를 알고 있었다. ... 그리고 내가 일본 사람 글 보고 더러 말하는 사람이 없었는가 했더니 "독자들로부터 편지는 더러 왔어요"했다. 기껏 그것뿐인가 싶으니 한심스러웠다. 서울 사람들 다 뭣하는가? 서울 한바닥에서 일본 놈이 그렇게 못된 큰소리를 쳐도 아무 말이 없다니! 일제 잔재를 발설한 그 수십 명의 지식인들은 벙어리가 되었는가!

 

196쪽(1980. 8. 29.)

<서울신문> 컬러판이 왔는데 거기 “제11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전두환 장군 내외”의 사진이 전 지면 가득 컬러로 나와 있고, “전두환 장군 역사의 부름으로 민족 앞에 서다”라는 큰 활자가 보이고, 그 밑에는 놀랍게도 김요섭의 축시 ‘참사람 새 사람’이 나와 있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김이란 자가 무슨 짓을 못 하랴. 이런 짓을 해서 벼슬자리에라도 오르고 싶어 하는 자가 아동문학을 하고 있는 나라. 그 나라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 본다.


이오덕 일기3 - 불같은 노래를 부르고 싶다

12쪽(1986.3. 5.)

나는 "웬만큼 말이 되어 있으면 반박할 만한데, 그럴 가치조차 없어요. 언젠가 다른 문제를 다룰 때 이런 엉터리 문인들, 관제 문학 동조자들이 날뛰는 문단 현상을 잠시 언급해야겠지만, 이런 것만 가지고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은 너무 차원이 낮은 것 같아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이것이 요즘 문공부에서 우리들을 악선전하기 위해 매스컴을 동원해서 하는 짓이란 것을 정신 제대로 가진 사람은 다 아는 터라 반박할 필요도 없고 반박하지 않는 것이 좋겠어요." 했다.

 

15쪽(1986.3. 5.)

소설문학사에서 오는 5월 호에 '아동문학 베스트10'을 선정한다면서 설문지를 보내왔다. 우표를 동봉하였기에 할 수 없이 보낸 자료 가운데서 국내, 외국 각 세 권씩  선정해서 보냈지만, 그 자료란 것을 보니 아주 잘못되었다. 외국 것은 171권인데, 그중에 같은 책을 여기저기 세 곳에나 적은 것도 있다. 국내 것은 315권인데, 아주 시시한 작가의 것이 여러 권씩 나열되어 있는가 하면 권정생의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 여러 명저가 다 빠져 있고 겨우 <하느님의 눈물> 한 권이 들어 있다. 이건 어떤 편견을 가진 사람이 고의로 한 짓이란 느낌도 들었다.

 

52~53쪽(1986. 8. 25)

임 선생(임재경)이 노인의 말을 듣더니 “영감님, 아주 이곳 마포 토박이군요.”하면서 마포 토박이 사투리 말씨를 흉내 내어 보였다. 서울에도 옛날에는 마포 사투리, 왕십리 사투리, 또 어디 사투리 이렇게 몇 갈래 사투리가 있었다고 했다. (...) 임재경 선생은 또 왕십리 사람들은 그 들판에 채소를 심어서 팔았는데, 서울 시내에서 가져간 인분을 밭에 뿌려 채소를 가꾸었기 때문에 파리가 그 논밭에 들끓어 그만 왕십리 하면 똥파리란 이름이 따라붙어 다녔다고 했다.


310쪽(1991.5. 5.)

김지하라는 사람은 이제 그 본질이 드러났다. 이 사람은 본래 노동을 하면서 자라난 사람이 아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어도 그렇다. 이상한 신비주의와 영웅 심리 같은 것이 뒤섞인 성장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사람이 한때 그처럼 영웅이 된 것은 재주 때문이다. 그가 쓴 시는 삶의 바탕이 없고, 그저 막연한 영웅적 울분과 감정의 배설뿐이다. 그의 산문은 관념과 추상의 신기루다. 그런 심리들 속에 영웅으로 떠받들어진 자신이 괴로워(그렇게 살아갈 도리가 없기에) 이제 고백이니 참회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제자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노동자와 농민과 학생들을 그처럼 악의에 넘친 말로 욕할 것은 뭔가? 역사 속에 매장되어야 할 사람이다.


이오덕 일기4- 나를 찾아 나는 가야 한다

 

벌레 소리

 

8월 19일 날씨 : 맑음.

오늘도 해는 지고

밤이 와서

이제는 잠시라도 나를 찾아야 할 시간

불을 끄고

혼자 앉으면

열어젖힌 창밖에서

들려오는 벌레 소리......

오늘도 하루를 정신없이 보냈구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내가 살아 있는 기쁨을 느끼게 하는

오늘 밤 저 벌레 소리.....

아, 풀 속에서 노래하는 형제들이여.

나는 형제들에게 마음 한 가닥 보낼 길이 없구나.

나는 형제들에게 서툰 노래 한 마디 보낼 재간이 없구나.

너희들은 저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는데!

 

13쪽(1992. 1. 27.)

(현대고등학교 학생 수련회에 가서) 내가 한 얘기는 "행복이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는 상태고 공부의 목적도 여기에 있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확신을 가지고 얘기했는데도 학생들이고 선생들이 그다지 공감하는 것 같지 않았다. 웬일일까? 이런 이야기는 지난날 다른 데 가서 얘기해도 모두(어른이고 아이고) 그랬다. 그런데 점심을 먹고 나서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 깨달은 것이 있다. 아이들은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을 찾지 못한다고 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삶의 태도를 그렇게 개인 중심으로 바로 세우려고 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를 생각하는 데서 찾아내고 세워 가도록 해야겠다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혼자서는 못 산다. 반드시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 그러니 살아가는 문제를 자기 혼자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 남의 문제도 함께 해결하도록, 곧 사회 전체 문제를 풀어가는 데서 자기 문제도 풀도록 해야 되겠고,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를 생각하는데 너무 깊이 사회체제 문제를 얘기할 것까지 없고, 적어도 자유라든가, 평화라든가, 반독재라든가, 평등이라든가 하는 말로 나타낼 수 있는 어떤 바람직한 사회를 생각해 두고, 그런 사회를 이뤄 가는 데 나 한사람이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이런 말을 해 주었더라면 좀 더 내 생각에 공감했을 것 아닌가 반성이 되었다.

 

 

249쪽(1996. 5. 7.)

그래서 그만 아주 열이 올라서 처음부터 “우리나라 어른들이 모두 아이들 잡아 족치려고 머리가 돌았어요. 어째서 그렇게 일찍부터 책만 읽히고, 글쓰기만 시키려 합니까. 그러니까 아이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면 그 지긋지긋한 책을 다시는 안 읽고, 글도 안 씁니다. 아이들 제발 좀 밖에서 뛰놀게 해 주세요. 그래야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지능도 발달되고 창조력도 뻗어납니다. 방 안에 갇혀 책만 읽고 글만 쓰면 모두 바보가 되고 병신이 됩니다. ”하고 야단을 치듯이 이야기를 해나갔다.

 

326~327쪽(1997. 10. 13)

이광수 <달마쥐>도 좋았는데, 작가와 작품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걸 가지고 얼마 전에도 논란이 있었다는데, 작품이 아깝다. 한참 생각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마음배가 좋지 못한 농부가 지은 곡식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은 고약하지만 그가 지어 놓은 곡식은 이 땅의 흙과 물과 바람과 해와 모든 정기를 받아 맺은 열매니 우리는 고맙고 맛있게 먹어야 한다. 작가가 쓴 작품도 그렇게 볼 수 없을까? 이광수란 사람은 몹쓸 사람이지만 그가 지어놓은 작품 가운데 어쩌다가 괜찮은 작품이 있다면 그것은 이 땅의 전통과 정서와 삶을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아닌가. 다만 그 작자를 비판하는 것만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하면서, 그가 남기 작품 가운데 몇몇 작품은 우리 민족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 아동문학이 너무 빈약한 탓에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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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6-11-03 0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몇 년전 지인을 따라갔다가 한동안 이오덕선생님에 대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던 기억이 나네요
딱 이 책을 공부하기로 약속하고 글공부를 그만뒀어요ㅋㅋ
그래서 이 책만 보면 참 아쉬움이 남더군요
이카루님 바쁘신 와중에 이 책을 읽었다니 존경스럽습니다^^

글들을 읽어보니 이오덕선생님의 꼬장꼬장한 모습들이 눈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할 말 있음 매우 직선적으로 말씀 하셔서 제자들은 엄청 어려워 하였지만 반면 아이들에게는 다정하시어 어린 아이들은 선생님을 참 좋아했다더라구요
이런 어른이 아직도 살아계신다면 작금의 사태에 대해 분명 쓴소리 하셨겠죠?^^

icaru 2016-11-04 10:57   좋아요 0 | URL
책나무 님 역시!!! 곁에 좋은 지인들을 많이 두셨어요! 이오덕선생님 공부를 같이 하기로 한 지인이 있었다는 것은 멋진 인생인 거예요! 필시...
제자들은 엄청 어려워했군요... 아이들을 어찌나 아끼시는지 그 다정함이란... ㅎㅎ
국문학에 있어서도..아니 국어학이랄까요~ 우리말 교본 같은 분이시네요 ^^
 
서울대가 없어야 나라가 산다 - 학벌주의의 뿌리를 찾아서
김동훈 지음 / 더북(The Book)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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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14~115쪽
하기는 그 이전에 역시 존경받는다던 전 대법원장도 물러나자마자 모 법률회사에 '취직'하지 않았던가. 어느 판사는 이러한 현상을 비꼬아 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하신 교장선생님이 그 학교 앞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구멍가게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정곡을 찌르는 비유다.

 

120~121쪽
조선의 양반가에는 자식이 태어나면 다섯 살부터 과거시험 준비에 들어갔다. (...) 이에 대해 성호 이익 선생은 '아이들이 머리털이 마르기도 전에 과거 공부를 하려 한다"고 개탄하기도 했다. 당시 부모들의 교육관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으로 '권학가'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한창 놀고 싶은 아이들을 종일 공부방에 처박아두면서 그들에게 지금의 고통을 참고 이기라는 격려의 노래였다.

부자가 되기 위해 좋은 토지를 사들일 필요가 없나니/책 속에 그냥 천 석의 쌀이 높여 있도다/ 편안히 살려 함에 있어 호사한 집을 지을 필요가 없나니/책 속에 그냥 황금의 가옥이 지어 있도다/문을 남섬에 시중들어 따르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지 말라/ 책 속에 여인이 있으되 얼굴이 옥과 같도다/남아로 태어나 평생의 뜻을 이루고 싶거든/육경을 창 앞에 두고 부지런히 읽으라. (송대에 편집된 명시문집인<<고문진보>>의 첫머리에 실려 있다.)

 

200~201쪽

중등 및 고등 교육의 수요를 억제하고자 했던 박정희 정권은 그에 따라 발생하는 진학 경쟁을 질서 있게 처리하기 위하여 입시의 국가 관리를 도입했으나 입시 경쟁의 격화가 점차 사회적 압박으로 다가오자 1968년에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정책을 도입하였다. 그리고 국비로 학교를 신설하는 대신 사립의 설립을 장려하여 재정 부담을 덜고자 하였다.

중학교는 금방 포화 상태가 되었고 이것이 다시 고등학교 진학 경쟁을 격화하자 1974년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교 평준화 정책을 도입하여 6년 전과 똑같은 방식을 도입하였다. 이는 다시 고등학교의 포화 상태를 가져오고 다시 대입 경쟁을 격화시켰다.

1980년 광주 대학살 후 정권을 잡은 신군부는 대입 경쟁의 격화에 따른 과외 부담을 덜어 민심을 얻으려 했다. 과외 적발자는 삼졸을 벌한다는 과외 금지령과 함께 대학 졸업정원제라는 것을 도입했고, 사립대학의 설립 인가를 남발하여 대학 정원을 대폭적으로 늘렸다. 그러나 이것은 결국 '전국민의 학사화'라는 초유의 학력 인플레를 가져오는 결과만 낳았다.

그리고 중학교 및 고등학교 평준화 정책을 통해 무시험 입학은 달성했지만 공사립을 아울러 학군으로 묶어 학생을 배정하게 되었다. 이로써 사립학교는 완전히 공교육에 편입되었고, 이는 결국 사립학교의 재정 문제까지 국가가 떠안은 결과를 낳고 말았다. 사립은 사립대로 독자성을 잃어버리고 재정 부담을 국가에 떠넘기는 누워서 떡 먹기 식 장사를 하게 되어 이것이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국가는 국가대로 예산을 공교육에 집중하지 못해 겨우 초등학교 6학년밖에, 그것도 불완전하게 무상 교육을 실시하는 열악한 공교육 현실을 초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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