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 간바라 메구미의 첫 번째 모험 간바라 메구미 (노블마인) 1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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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참 오래 살았나보다. 따끈따끈 신간으로 메이즈를 사고, 달달하게 읽었던 게 어그제 같은데, 이 메이즈가 반값 도서 대열에 들어섰다. 온다 리쿠 왕팬을 자처하는(물론 모두 과거지사가 되어버렸지만;;;) 나는, 읽은 모든 것은 대부분 괴발개발 리뷰화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소설에 대한 리뷰는 다섯손가락도 못 꼽는다. 온다 리쿠의 작품은 그 자체만으로 퐁당 빠져 읽는 것이지, 요래요래 해서 넘넘 좋소! 라는 분석질이 당최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의 리뷰를 쓰는 이유? 반값으로 떨어져서 이것은 뭐랄까 서글픔? 그런 게 몰려온다. 수년전에 도서전에 갔다가,  개정본 나왔다고, 내가 예전에 읽었던 전태일평전이 매대도 아니고, 바닥에 깔려 천원씩 팔리고 있는 광경을 봤을 때의 처량함과 맞먹는다.  

그래서 이 즈음 나는 몇년전 읽었던 메이즈~ 기억에서 사라져가는 그 소설을 불러내 본다. 작가들에게 소설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 일부는 작가 자신의 어떤 면들을 나눠 갖고 있기 때문에, 작가는 주인공들 모두 다 애착이 갖게 된다고 한다. 온다 리쿠는 그중에서도 <흑과 다의 환상>의 아키히코를 좋아한다고 방한했을 때 말했었다. 그가 어떤 인물이냐면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 않고 섬세한 면이 그렇다고 말했었다. 흑과 다의 환상에서 만났던 아키히코는 아니꼽고 부자고 수다스러운 남자라는 캐릭터이다. 두뇌가 명석하고 적당히 봐주는 법이 없는 데다가 유능하기까지 한.  

이 소설과 관련이 없을 듯한 다른 소설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바로 이 아키히코와 아주 많이 닮은(심지어는 여자 형제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캐릭터라는 점까지도 닮은) 메구미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화자인 미쓰루는 단지 주인공을 관찰하는 친구일 뿐.  

중동 쪽 어느 나라엔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 인간이 '있을 수 없는 장소'가 있다는 게 배경이다. 지금까지 그 미궁에 갔던 사람들 중 여럿이 실종되었고.  

고모리 켄다로라는 작가가 뒤에 붙인 해설에 의하면, 이 작품에 나오는 '미로'는 다른 명작들에서 그러하듯 '인생의 수수께끼나 사람의 마음을 비춰 주는 거울'로서의 역할을 맡고 있다고.  

"지금 그의 마음은 자기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맥이 빠져 있었다. 비등점을 초과한 감정이 흘러넘쳐서 텅빈 느낌이었다. 마치 배가 너무 고파서 입맛을 잃은 것과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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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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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7쪽
언젠가 그는 어떤 성직자의 이런 주장을 듣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는데,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조차 영적인 체험이요 기도의 다른 형태라니, 정말이지 믿는 자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132쪽
그는 존경하는 인물인 메더워의 말을 기억한다. "진보에 대한 희망을 비웃는 것은 어리석음의 절정이요, 궁핍한 영혼과 빈곤과 사악한 정신의 유언이다."

211쪽
무지개송어의 목과 배 부위에 우리와 똑같은 다류성 통각수용체가 수십 군데 있음이 밝혀졌다.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를 둘러싼 육지며 바다에서 기계나 다름없는 생물을 잡아먹을 수 있는 은총받은 존재라고 믿던 편리한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밝혀진 바에 의하면, 물고기조차 고통을 느낀다.

472쪽
이상적 사회 질서를 획득할 수있다고 확신하는 열광적인 이상주의자들을 경계하라. 이것은 다른 형태의 전체주의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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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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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쪽
모든 것이 진짜였다. 나는 위선자들처럼 진짜 얼굴 하나와 가짜얼굴 하나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젊었고, 내가 누구인지 누가 되고 싶은지 자신도 몰랐기 때문에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얼굴들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가 내게 두려움을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는 그중 어느 것에도 꼭 들어맞질 않았고, 그저 그 얼굴들 뒤를 맹목적으로 이리저리 헤매다니고 있었다.)

184쪽
루드빅, 그는 내 인생 최초의 균열이었다. 지금 나는 익숙해져 있다. 내 인생은 그리 견고하지 못한 집이다.

373쪽
인간은, 균형을 갈구하는 이 피조물은, 자신의 등에 지워진 고통의 무게를 증오의 무게를 통해서 상쇄한다.

398~399쪽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이다. 모든 것은 잊혀지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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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의 바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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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이랬더라면 좋았을 것을 ~ 하는 게 많다는 것은 그닥 바람직하진 않다.  그럼에도 나는 어릴 적에 태권도나 수영 같은 운동을 배웠더라면~
어린 시절에 두리번거리지 않는 아이였었다면 참 좋았을 것을 한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장편이든, 단편이든 읽을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어제 오늘 알게 된 사실은 아니지만, 온다 리쿠를 계속 찾아 읽는 이유는 작중에 내가 되고 싶었던 혹은 바라마지 않았던 성품과 환경과 신체와 기타 등등을 갖춘 아이(인물)들이 나와서는 계속 내가 어떤 이상형에 대해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게 만들어 주기 때문 아닐까? 그러나, 이미 나는 지나쳐 온 시기의 것들에 대한 거라서... 그래서 노스텔지어 라는 이름이 붙는게지.  

95~96쪽
작은아버지는 업계에서 유명한 무대 감독이었으므로 조문객이 많았다.
병원에서 그는 자신의 장례식 스케줄을 짰다. 장례식은 작은아버지가 남긴 예정표대로 진행되었다. 식당에는 작은아버지가 준비한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185쪽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따. 자기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일렁이는 사람뿐이다. 물 위에 퍼지는 잔물결처럼 깜박이는 사람, 빛나는 부분과 그림자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야기라는 것이 그 형태를 불문하고 주인공의 성장을 테마로 하는 이상, 이 조건은 아마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즉 자기처럼 고민하지 않는 사람,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이다. 한 편의 이야기로서도 에피소드가 너무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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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6
헤르만 헤세 지음, 임홍배 옮김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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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  그리고 자네들 젊은 학자들한테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자네들보다 우둔한 상급자들이 앞으로도 결코 없어지지 말았으면 하는 것일세. 오만함을 다스리려면 그보다 좋은 약은 없는 법이지."

44쪽      "(...) 얘기하지 않아도 좋아. 내가 보기엔 그만하면 충분해. 너는 오전 내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 매우 씩씩하게 해냈어. 지금은 우는 것만이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

73쪽       "(...) 내가 깨어 있다고 일컫는 사람이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 자신을, 즉 자신의 가장 내면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열이나 충동 혹은 약점까지도 인식하고 처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지. (...)"

456~457쪽
모범적인 삶의 질서와 규율, 세속적 욕망과 감각적 쾌락의 단념, 더러운 일과 피 묻히는 일을 멀리하고 철학과 기도에만 몰입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골드문트의 삶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일까? (...)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인간은 애초부터 감각과 충동, 피끓는 욕망, 죄짓기 쉬운 성향, 쾌락을 즐기고 절망에 빠질 수도 있는 성향을 타고난 것은 아닐까? 수도원장 나르치스는 친구를 생각할 때면 이러한 의문들을 떨칠 수가 없었다.
(...) 세상에 등을 돌리고 손을 씻은 채 정결한 삶을 살면서 조화가 넘치는 아름다운 사상의 정원을 꾸며놓고 잘 가꾸어진 화단 사이로 죄를 모르고 거니는 것보다는 어쩌면 세상의 끔찍스러운 흐름과 혼돈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러다가 죄를 짓기도 하고 죄의 쓰라린 결과를 감수하기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결국에는 더 당당하고 위대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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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11-08-1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와 사랑이죠?? 헷세 책 푹 빠져 읽던 때가 언제인지...^^

icaru 2011-08-21 14:15   좋아요 0 | URL
ㅎㅎ 네네, 맞아요~ 님도 헤세 책에 빠져 지내던 때가 있으셨군요...
저도 지와 사랑, 데미안을 읽었던 시기가 같은데,,,, 꼭 무슨 공식같지 않아요. 이성과 감성, 도덕과 쾌락, 지와 사랑 ^^ 이런 이분법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