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지음 / 창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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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까지 통틀어 리뷰만 삼백칠십여개가 달린 책이다. 이렇게 아우성이었던지라 2011년에 뽑은 올해의 책이었네... 그게 작년. 이렇게 책에 대해 몇 자 적는 일이 참 뒷북이다 싶지만, 어차피 이 서재는 나만의 운명적 시계로 굴러가는 것을...

 

완전 소중 작가 김애란님의 작품과 내가 만날 운명은 이렇게 늦은 2012년 가을이었던 것.

 

늙어가는 일의 애잔함을 십육세의 소년에게서 느낄 줄이야.

 

30대의 소년 부모들에게서 느낄 줄이야.

 

"나는 히라가나를 외웠지만 일본에 간 적이 한번도 없다. 얼칫 봐서 나의 독서는 지식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지구가 망한 뒤에 혼자 살아남게 될 사람의 조바심처럼 보였다. 그나저나 필드 한번 나간 적 없는 골프는 그렇다 쳐도, 지구에 혼자 남은 사람이 사용하려 한 페미니즘이란 무엇이었을까."

 

"나를 낳은 이후, 누굴 제대로 이겨본 적 없는 아버지였다."

 

"연애를 글로 배워서 그런가?"

누군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복 일본어를 독학한 친구에게 "네 말 속엔 노인과 야꾸자와 여고생의 말투가 다 섞여 잇다'고 촌평한 걸 듣고 깔깔댔었는데,,

 

"그러자 문득 무언가를 가지려고 하는 만큼, 가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 또한 욕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했으면서 아무것도 안 가진 척하는 것도 기만일 수 있다고"

 

"갑자기 머릿속에 하느님께서 갑자기 이렇게 잘해주시는 이유는 내게서 뭔가 빼앗아가실 것이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느님이 '너한테 자식을 주겠다. 대신 두 가지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 첫째 아프더라도 오래 산다. 둘째 짧게 나마 건강한 삶을 누린다' 그러면 어떡하나 꽤 오래 고민했거든요. 할아버지라면 어떡하시겠어요?

......

"아름아"

"네"

"그런 걸 선택할 수 있는 부모는 없어..... 넌 입버릇처럼 항상 네가 늙었다고 말하지. 그렇지만 그걸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 거, 그게 바로 네 나이야. 질문 자체를 잘못하는 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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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2-11-0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안 읽고 둔 책인데, 슬몃 읽고 싶어지던 참이었어요.
꼭 봐야겠어요. 많은 분들이 극찬하는 만큼 이유가 있을 듯 싶어요.
인용하신 부분은 띄엄띄엄 읽었어요. 다 읽고 보려고. ^_^

icaru 2012-11-08 13:30   좋아요 0 | URL
ㅋㅋ 준비해 두고 계신 거니까~ 이제 읽기만 하면 되는거네요!!
제가 요즘엔 책을 통 안 읽구 사는데, 이 책도 추석 즈음에 읽은 거구요. 근데,,, 지금까지도 잔향이 남아 있어서요. 저런 글을 쓰는 작가라며 참 사랑스러운 사람일거야 싶구, 작품과 작가를 분리시키지 못하겠더라고요 ^^.

모처럼 책 읽으며 훈훈했던 느낌! ㅎ

책읽는나무 2012-11-1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님이 올리신 문구가 다시 새록새록 영화 장면처럼 떠오르네요?
요즘 저도 책 안읽고 산지가 꽤 되네요.추석 쇠고 안읽은 것같기도 하고..ㅠ
날 덥다고 도서관 안가고,가을이라 날이 넘 좋다고 안가고,
이젠 날이 추워져서 안가고 있으니 독서도 따라서 손 놓게 되는 것같아요.
그래도 정말 추운 겨울이 돌아오면 이젠 방콕하면서 책이나 읽게 되겠죠?ㅋ
요즘엔 춥다고 집에 웅크리면서 사극 드라마 본다고 정신이 없네요.ㅠ
이글을 읽으니 이렇게 가슴 뭉클하면서 사랑스러운 소설을 읽고 싶단 생각이 문득 드네요.

몇달 전 '은교'를 읽었는데요.책 표지색이 참 이뻐서 베란다 햇빛에 책을 세우고 카메라로 찍으면서 놀았거든요.책의 자주색이 더 되살아나면서 너무 이쁜거에요.은교가 살아서 걸어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정도였어요.그럼서 한국소설들은 참 단아하고,예쁘단 생각이 들더라구요.(제가 너무 편애하고 있나요?ㅋ 아무래도 글의 표현기법이나 장면 묘사들이 정서적으로 가장 공감하기 쉽기 때문에 한국소설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고,요즘 작가들은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이 아닌 친근하게 대중들에게 대면을 해주니 애틋한 정이 쌓일 수 있어 더욱더 작가들의 작품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어 좋은 것같아요.얼마전 한 토크쇼에서 들국화 맴버들이 출연했는데 전인권이 박민규 작가를 보고 싶은 사람의 순위에 같이 적었었는데,박민규 작가가 진짜로 직접 출연하는줄 알고 깜짝 놀랐던적이 있었어요.물론 편지글로 대신하고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지만,작가의 스토리를 그런 곳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친근하고 좋더라구요.^^)

헌데 안 읽은 소설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한국소설의 수가 급등하게 줄고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좀 뜨악했네요.책 좀 읽어야 하는데...문제로군요.ㅋㅋ

icaru 2012-11-1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을 읽다가 말았어요. 적어도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읽은 다음에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
김애란의 두근두근에서 풍겨오던... 그 인간적임, 따뜻함, 세세한 부분에 깃들인 독서 정보, 으하하하. 참 쫀득하면서도 씹는 맛이 있더라고요.
태연한 인생은 드라이 해서 좀 씁쓸..

은교 읽으셨구나! ㅎㅎㅎ 혹시 그 사진 오후4시에 찍으신 거 아닌가요? 늦가을 오후 4시에서 5시에 채광이 제일 좋아 사진이 운치있다고 들었던 듯...

근데,, 정말 한국 소설 수가 급등한데요? 이런,, 저도 안 읽은 좋은 작품 많은데,,,
어쩐지 저도 그런 세태에 일조한것 같구 그렇네요.
전, 단지... 주례사비평 같은 홍보 문구들에 조금은 질린 터라,,, 한국 소설들은 옥석을 가리기가 비교적 어렵더라고요.

김애란은 그중에서도 정말 주목할 만한 멋째이~ 같아요!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 곽세라 힐링노블
곽세라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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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옆에 부제로 곽세라의 힐링 노블, 이라고 되어 있다. ‘힐링 노블’ 처음 들어본다. 직역하자면, ‘치유 소설’

정말 그랬던 것 같다. 치유 받을 작정을 했었던 것은 아닌데, 좀 그런 날 읽게 되었다.  쉴틈이라고는 평일보다 더 없었던 주말을 보낸 일요일 밤에 읽기 시작했으니.

애들 데리고 동네 공원에 갔다가, 점심 먹였다가, 도서전에 갔다가, 시댁 갔다가 다음 일요일 과학관 수업에 갔다가, 평일 일용한 찬거리를 준비하기 위한 주일행사 장보기를 마치고, 저녁을 먹고. 그렇게 허둥허둥하는 하루를 보내고 나서 이제 좀 쉬어보자 할 겨를도 없이 찾아온 밤. 불현 듯 잊고 있었던 월요일부터 처리해야 할 회사일과 회의 등이 돌덩어리 얹듯 철푸덕 내려앉는 소리가 배경 음악이 된다.


힐링이 필요한 순간이지 뭐냐.. 그래서 잡은 이 책 읽다 보니 더 밑줄 박박 긋게 됐나 보다. 딱 맞춰 책 속에 나 대신으로 몸의 밧데리를 방방전하고, 푸~~~~~욱 쉬어 주고 계시는 미용사인 주인공 엄마가 등장해 주시는 이 부분에서.

“엄마는 두 주일에 딱 하루뿐인 휴일엔 세상과 연결된 온몸의 플러그를 모두 뽑고, 철저하게 쉬었다.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물론 티비를 보거나 음악을 듣지도 않았고 몸에는 팬티조차 걸치지 않았다. 밥도 먹지 않고 따뜻한 꿀물만으로 목을 축이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다. ”


이 책은 뭐랄까 현실을 뿌리에 두고 있지 않은 지극히 비일상적인 것이었고, 생존에 대한 갈망이 너무 치열해서 감동을 주는 그런 류의 소설이 아니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답고, 부서지기 쉬운 고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치유받은 느낌이다.


티비 채널 다큐 프라임 같은 데서 ‘내 속의 또 다른 나’와 같은 주제로 방영한 프로그램을 봤었다. 그중에 하나가 이런 거였다. 젊은 여성을 전시실 같은 작은 공간에 들여보낸다. 그곳엔 10여명 정도가 되는 여러 남성들의 프로필 확대 사진 액자들이 걸려 있다. 젊은 여성이 해야 할 미션은 이 남성들의 얼굴 가운데에서, 가장 호감이 가는 쉽게 말해 이상형 의 남성을 골라 내는 것이다.

여기엔 트릭이 있는데, 10여명의 인물가운데, 한명은 사진 조작을 하였다. 실험녀 본인의 얼굴(눈코입귀?)을 합성해서 남성의 실루엣에 넣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조작한 것이다.

결과는 어떠했을 것 같은가? 그랬다. 이 여성은 (그녀는 모르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그녀 자신과 가장 닮은 조작한 사진'의 얼굴을 골라냈다. 이 여성의 남성 취향이 자기와 닮은 사람! 이었나 보지. 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것이, 이후의 실험녀들 또한 모두 자기 사진을 합성한 남성의 얼굴을 골라냈다는 점이다.

보면서 정말 신기하고 의아했다. 정말 인간은 어쩔 수 없는 나르시시스트일 수밖에 없는 것이가.

이 책을 읽어보면 이런 식의 해석도 가능하다.

지구인의 65퍼센트가 환생을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전생에 심장을 태워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지금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에 보이는 저 여자는 내가 전생에 아주 많이 사랑했던 여인이었던 거? 내가 전생에 남자였다는 것이고, 지금 이 얼굴이 좋아서 결혼한 우리 남편(나는 그렇게 알고 있어! 당신.)은 전생의 나와 같은 부류의 여자를 사랑할 운명이었던 거네. 그럼, 당신의 전생이었던 여자와 나는 남성 취향이 비슷했던 것이고... 앗 여기까지만 하자!

하하... 이렇게 이 책은 즐거운 지적(? 분류 카테고리상 지적인 게 아니면, 뭘까 애로틱? 플라토닉?) 자극 또한 선사한다.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의 주인공 류짱은, 극단의 미나 선생님의 표현에 의하면  ‘뮤토’이다.  '변화하는 자'라는 뜻의 라틴어로, 상대방의 머리카락에 담긴 기억 속으로 들어가 그의 과거와 미래를 '연기' 할 수 있다.

길 위에서 저마다의 사람들에게 별처럼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작가는 여기에 주인공 류짱을 통해서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뮤토에게 플레이를 의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또한 재밌었던 이야기,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해서 프로그램 절차에 따라 200개도 넘는 설문 항목에 답을 하고,  ‘또 다른 나’를 받는다. ‘아바타’ 같은 것이라고 해두자. 이야기란 생각보다 힘이 세서 생생하게 말로 듣는 것들은 한창 민감한 시절에 사실과 혼동될 정도로 리얼리티를 갖는 게 사실이다. 

어쩌다 들어선 ‘뮤토’로서의 생. 미나 선생님의 가르침.

"상대역이 없으면 우린 어떤 것도 될 수가 없어. "  누군가가 되쏘아주어야만 ‘그것’ 되는 뮤토. 류짱은 뮤토가 되려 해서 된 게 아니었다. 극단의 미나 선생님에게는 특별한 관객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위한 연기를 하는 자는 오로지 미나 선생님의 간택과 그녀의 길 안내가  필요하다.

“미나 선생님은 노련한 손끝으로 나를 땅 위의 삶으로부터 떼어냈다. 미세하게, 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래서 내가 겁을 먹고 무대 위의 시소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달이 차고 기우는 만큼씩만. 그런데 어느 순간 시소는 휘청거렸고, 겁에 질린 나는 내려 오려고 했지만, 내가 춤추던 저울판은 이미 너무 높이 올라가 있었다. 현기증이 났고 땅을 그리워했다.  두려움과 흙의 세상은 남루한 것이고, 그걸 느끼지 않으려면 두 번 다시 아래를 쳐다보지 않으면 된다고 미나 선생님은 가르쳐줬다.”


그리고 뮤토의 순간 고통스러울 만큼 몰입한다. 기쁨이든 슬픔이든 감정의 수위를 이토록 높이는 것은 자해에 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런 식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는 안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두 편의 작품이었지만, 단연 영혼을 팔기에 좋은 날 쪽이 묘하게도 매력적이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치히로가 그랬던 처럼. 뭔가를 훅 건너뛴 것 같은 작품의 마지막도 근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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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2-06-29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샘앤파커스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서평입니다

책읽는나무 2012-06-2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을 닮은 모습의 이성을 이상형으로 꼽는다,
그리고 전생에 심장을 태워 사랑했었던 사람의 얼굴로 태어난다..
으~ 소름이 오싹하네요.
영혼에 관한 얘기가 강력한 추리소설 못지 않겠어요.ㅋㅋ
오늘 오랜만에 새벽족이 아닌 야밤족이 되어보네요.
재밌긴한데..모두들 잠들어 있는 것같아 좀 심심하군요.ㅠ

2012-07-02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2-06-29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속의 또 다른 나, 저도 봤어요. 이카루님이 언급하신 내용 자신의 얼굴을 합성해서 남자모습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호감을 느꼈다는 결과를 보고 좀 놀랬던 기억이 나요.

맞벌이라서 더 힘드시죠. 저는 집에서 놀아도 매일매일이 힘든데,,, 요즘은 더군다가 더 힘들었어요. 어제 오늘 좀 나아지긴 했는데(아마 며칠 전에 사서 마시는 홍삼덕이 아닐까~ 싶기는해요), 하루종일 사람들에게 치이고 일에 치이는 맞벌이 엄마들은 얼마나 힘들까 짐작이 되요. 저는 살면서 참 무관심한 주제가 힐링이에요. 과연 치료가 될까 하는 의구심이 많아서~

icaru 2012-07-02 11:46   좋아요 0 | URL
아! 그거 보셨구나~ 다큐 프라임이었나 저는 본방 못보고, 재방하는 거 본 거 같은데,, 그게 3년전인거 같아요. 2009년인가 2010년인가!

회사 다녀도 힘들고, 다니지 않아도 힘들었을 거예요. 회사 다니니까 핑계댈수있어서, 몸은 덜 힘들지도 모르겠고..

힐링~ ㅎㅎㅎㅎ 댓글 너무 웃겨요! 들었다는 의구심 때문에..

전 책 받기 전에 에세이인줄 알았죠. 자기 독백을 해야 하니까. 근데 힐링이라는 게 소설이라는 장르로 나올 줄은...

기억의집 2012-06-29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무님 지금 들어왔죠. 완전 평행라인~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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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쫘악쫘악 가독성 정점을 찍는 소설 한편을 읽었다. 나 상당히 업된 것 같다. 이제는 소설을 더 못 읽게 되는가 보다 하고, 스스로에게 선고를 내리려던 참이었으니까, 더 극적인가 보다.

자신의 학창 시절에 대해서 그다지 추억하고 싶지 않아서 그 때가 그립다거나 할 일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모든 일의 시작이 학교였을 적이 많다. 그래서 그때를 부득이 회상하게 될 경우가 있는데, 자신 기억이 장담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그저 자기 본위적인 인상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보다 더 많이 비굴하고 그래서 승자도 패자도 아닌 상태가 되어 끝까지 살아남아 마지막 진실을 목도한다.

여기 주인공은 다소 허세가 있는 청춘이다. 자신 부모 세대들은 문학의 소재가 된 적 없이 기껏해야 진짜의, 진실된, 중요한 것들의 사회적 배경막의 일부로서 등장하는 구경꾼이나 방관자 정도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말하며, 문학 같은 결말이 실제 우리 인생에서 없다는 것을 두려워한다.

친구들의 무리에 에이드리언 이라는 딱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데미안과 겹치는 캐릭터 전학생이 등장한다. 조금은 기구한 가정 환경을 가졌지만, 꽤나 똑똑하며 겸양의 미덕까지 갖추었다. 문학적이고, 역사적이고, 철학적인 것을 열망하나, 식견이 태부족한, 약하고 허세에 쩔은, 화자와 친구들은 자기들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바로 이 친구 에이드리언)에게 설명을 구할 수 있었고, 그의 관심을 받고, 인증을 받고,  환심을 사려 든다.


대학을 갔다. 화자는 다섯달 생일이 빠르지만, 마치 다섯 살 연상인 것만 같은 파란색 안경테 너머 청회색 눈동자와  빠르지만 자제력 있는 미소를 지닌 꽤 괜찮은 여자 친구(베로니카)가 생긴다. 그러나 그 여자 친구와의 성적 콤플렉스랄까 극복하지 못한 접점을 갖게 되고, 그 일이 바로 있기 전에, 친구 무리에게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줬던 자리에서 여자 친구는 에이드리언에게 마음이 향하고, 화자가 여자 친구가 헤어진 후 에이드리언으로부터 너의 전 여자 친구와 사귀어도 되냐는 편지를 받는다. 이해하고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행동을 재고해 보겠다고 한다. 질투심에 열폭했지만, 안 그런 척하는 우리의 화자는, 그래서 다음과 같이 요지의 답장을 썼다고 한다.(?이 화자의 당시의 기억이 인상에 그렇게 남았다는 것이지, 사실 유무와 관련없다. )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시하고자 상찬과 기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네, 벗이여!” ㅎ


이 즈음에서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하는 고등학교 시절, 에이드리언이 역사가 무엇이냐는 역사 선생님의 질문에 답한 다음과 같은 말이 효력을 발휘한다.


당시에 일어난 일을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한 것을 기억에 떠올리는, 기만적인 일...

이것이 바로 한 인간의 역사이기도 하다는 것.


그후 화자는 여자 친구였던 베로니카와 사귄 것을 패배라 보았고, 기록과 기억에서 삭제해버린다. 공부에 정진하고, 뜨네기처럼 여자 몇명도 사귀다가 미스테리한 데가 없고, 모든 게 확실한 그런 미덕을 갖춘 여자를 만나 결혼한다. 잘 살다가 아내의 바람으로 이혼을 하고, 이혼을 했지만, 아내와 친구처럼 지낸다. 그의 인생 60 즈음이 되었을 때, 한통의 편지를 받으면서 인생의 아이러니가 인간의 찌질함의 운명이 드러나면서, 제목처럼 결말의 느낌, 혹은 적어도 조금도 감지하지 못했던 그 “예감”을 맞닥드리게 된다.


아주 모처럼 재밌는 소설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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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6-01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어제 회사서 몰래 알라딘 하다가 미녀의 사진을 보았건만, 지금이라도 댓글 달아야지 하고 왔더니 공개가 끝났군요. ㅎㅎ

이 책 읽으셨군요. 전 벼르기만 하고 아직 안 읽었네요. 일단 사놓은 책부터 다 좀 읽어야 할텐데(찔끔) 소설책만 잔뜩 읽고프다는..

icaru 2012-06-01 23:12   좋아요 0 | URL
앗!!! 만치 님, 그거 보셨어요? ㅎㅎ 나중에 알라딘 밖에서 뵈면, 못 알아보시겠죠~ 그 사진 갖고는?
제가 필이 받으면, 곧잘 쫘아~~ㄱ 연달아 읽는데요.

혼자 책 읽는 시간 읽고 나서 이 책 잡았어요 ^^

곧 혼자 책 읽는 시간도 리뷰 써야지! 너무 근사했었거든요. 그 책 !!!!

프레이야 2012-06-0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모닝 이카루님. 헤헤 만치님도 여기 계시네요.^^
혼자책읽는시간,도 만치님의 뽐뿌질로 구매했는데 이카루님은 벌써 읽으셨군요.
리뷰 기다리고 있어야쥐.
그리고 그 상큼한 미녀사진은 사라져설랑 ㅋㅋ

icaru 2012-06-03 23:0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자꾸 상큼한 미녀 사진, 말씀하시면, 스무살 시절에 가장 잘나온 사진들 갖고, 지금의 '나'라고 우기려 들지도 몰라요 ㅋ

이 책은 정말 재밌더라고요. 작가를 다시 보게 되었어요. 내가 이 영국 작가 근사하다고 사람들한테 말했더니, "섬나라 문학을 좋아하시나봐요" 라며, 조롱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들었어요 ㅎ 제가 소설은 일본 소설하고 영국 소설이 재밌네~ 그랬다가는,,, ㅋ

기억의집 2012-06-1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그래요. 이 소설 재밌군요. 근데 이카루님도 6월1일 이후 안 들어오시네요. 요즘 회사일이 바쁘신가봐요. 저도 알라딘에 접속하는게 거의 해외우편 수준. 일주일만에 들어온 것 같아요. 알라딘 한바퀴 돌고 있는데..저보다 더한 이카루님이 계시다니~

섬문학 좋아하시나봐요라는 조롱인지 뭔지 모를 소리엔 마녀목청으로 대답해주세요. 그렇다, 어쩔래! 큭큭 저는 일본문학 좋아해요. 이제 우리나라 반도문학 접고 섬문학소설만 읽기로 했어요. 결심 불끈~

icaru 2012-06-12 23:56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마녀목청~
네, 이게 참,, 찰지더라고요. 그렇기도 하거니와, 제 취향 중에 하나가.. 누구나 갖고 있을 법한 노스텔지어(일테면 학창시절은 누구나 거치니까)를 건드리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글을 좋아하는거요 ^^ 그걸 충족시켜 주면 대체로 만족하죵~
 
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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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전부터 마치 전에 읽었던 것처럼 생각되는 책이었다. 이 소설을 향한 많은 리뷰들과 기사들을 보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읽어야지 했는데, 그게 바로 최근.
짧은 집중력과 산만한 정신 상태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끝까지 못 읽는 책들이 완독하는 책보다 더 많다. 전엔 오기로라도 완독을 했었는데, 요즘엔 그럴 시간에 다른 책을 보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게 낫다며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다. 그래서 이 책도 완독하는 데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읽다가 아니다 싶으면 과감하게 내려놓겠다고.

 

그러나! 읽다보니 어느덧 14장 마지막 챕터다. 백숙집으로 다시 출근을 하는 윤영이 참는 것 만큼은 잘 할 수 있다며, 생활 전선(?)으로 뛰어드는 부분이다. 정신없이 몰입해 읽을 만큼 재밌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겠으나, 그렇다. 나도 여자이고, 가정을 꾸렸고, 자식이 있는데, 같은 여자의 삶이 이와 같다면, 읽는 내내 어찌... 괴롭고 불편하지 않을 것인가...

윤영의 삶은 정말 이보다 더 최악인 상황일 수는 없다 싶게 곤란하다. 그러나 또한 누가 '그 길밖에 없었냐'고 냉엄한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까? 오늘도 내일도 그저 견뎌내는 이 여자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다만, 고난의 유무를 따지는 가치 판단의 개입 자체가 고난이요 곧 시련이기에, 그녀가 얼결에 들어서게 되었던 그 방식, 중간에 한번 길을 벗어날 수도 있었지만, 그저 내 가난한 일가가 죄라면 죄이기에, 다시 그런 방식으로 삶의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현실 세계를 살고 있는 내가 아는 생활이 감옥(?)인 여성들을 모두 떠올려 봤다. 아....! 아무리 그래도 최악은 역시, 윤영처럼 오쟁이를 진 남편을 둔 여성인 것이다.


영화 파란 대문을 위시하여 김기덕의 영화도 막 생각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일 자체가 죄,,,라는

원죄의식에 사로잡히게도 된다. 우리 모두가 왜 태어났니, 왜 낳았니, 왜 망가질 수밖에 없니, 사는 것 자체가 망가지는 일이긴 하다만,,,

 

백숙집으로 다시 재취업한 윤영은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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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aru 2012-05-23 2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표지가 궁금했어요~ 딱 보면, 소녀 발레리나 지망생 소녀인데 ㅎㅎㅎ
그게 읽기에 주저하게 된 이유시기도 하셨군요~ 작품은 시사하는 바가 커요~ 문장도 아주 잘 썼구요!

기억의집 2012-05-24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용보니 참고 사는 여자의 이야기인가 봐요. 저는 그런 이야기라면 네이트의 판이나 다음의 미즈넷 읽는 것만으로 만족해서~
살면서 이혼이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정말 서로 맞지 않는데 수십년간을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넘 끔찍해요. 게다가 우리 나라는 결혼생활이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고 시댁하고 친정이 얽히고 얽혀서. 제 친구는 참다가 참다가 이혼한 친구가 있는데, 결혼 생활이라는 게 어느 한 사람의 인내나 희생의 제물이 되어선 절대 안 되더라구요. 친구는 애 둘도 다 본인이 키우는데,,, 돈 벌기 힘들어도 꿋꿋하게 잘 사는 것 같아요. 친정엄마의 도움이 크긴 해요.

icaru 2012-05-28 11:22   좋아요 0 | URL
제 생각도 그래요~ 이혼이 차라리 나을 때가 더 많죠. 이 소설 같은 경우, 남편이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는 이유로 경제적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있지 않고, 모든 불행은 거기에 시초를 두고 있다는 내용이거든요.

2012-05-28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29 2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5-30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1 0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6-01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달의 뒷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9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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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뒷면 하면, 핑크플로이드의 명반이 떠오른다. 시계추가 똑딱거리고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가, 서정적인 반주로 노래가 시작되는. 그러나 핑크플로이드의 노래가 말하는 것처럼 달의 이면에는 온통 어둠 뿐이며, 우리의 이상과 트랜드는 고귀한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비극적이 서사시. 이 작품은 그것과는 다르다.

일본에 실제로 있다는 물의 도시 야나가와를 배경의 소재로 삼았다.
어중간한 상태를 견딜 수 있을 만한 사람, 회색의 상태도 앞으로도 찾아올 회색의 상태에서도 그럴 사람. 말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혼자 있기보다는 남들과 같이 있는 쪽을 좋아하는 주인공 '다몬'은 스승님의 부름을 받고, 이 도시를 찾는다. 수로를 끼고 집들이 있는 평온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마을에 희대의 사건이 숨어 있었는데, 노인 몇몇이 몇일동안 실종되었다가, 아침에 자신의 집에서 깨어난 일이었다.

실종된 동안 몸도 기억도 도둑맞은 셈인데, 그 이후의 기억이란, ‘평온한 핵 같은 게 생겨서 늘 거기 바짝 붙어 있는 듯한 기분.’,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기들이 마땅한 곳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거대한 의사가 존재하고 그에 합류해 들어가는 느낌’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실종되어 있는 동안 몸도 의식도 수로를 따라 흘러가 어떤 창고에 집결된다. 시종일관 모니터로 누군가의 수술 장면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흑백 필터이기 때문에 피의 섬짓함 같은 것은 희석되었겠지만, 적나라한 것은 별반 덜어내지지가 않는 그런 장면.

애어른, 여자남자 미추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도둑맞은 동안'.

이 경험은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인간이 얼마나 기억을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지 통감하게 한다. 그때 분명히 다몬은 일행의 도둑맞은 동안의 모습을 보았다. 그 녹색의 걸죽한 혹은 복잡한 유기체 같은 그것을 보면서 그는 이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직 많이 있다고 생각하며,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텐데도 지금 여기서 다시 돌아온 작중 기자 본인을 앞에 두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했다고 생각한 인생도 대부분 자신이 날조한 망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


‘도둑맞은 동안’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고, 푹 잤다는 생각만 든다!는 경험자의 이야기. 아울러 덧붙이는 다음과 같은 말....

 

“모든 사람이 우주 여행을 할 수 있게 되면, 다들 그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게 될 겁니다. 제 생각엔 그것하고 똑같은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 못했던 것은 경계로, 갑자기 할 수 있게 된다. 할수없을 때는 어떻게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죠. 비결이 뭔지 알 수 없어, 그게 엄청난 일처럼 여겨져요. 그러나 일단 성공하고 나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 중 하나가 되고 말거든요. 특별히 음미할 일이란 생각이 안 들게 됩니다. "

친했던 친구와 다른 반이 되었을 때, 전학 갔을 때, 가업을 잇는다며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그때까지 가깝게 지냈던 사람이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었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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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4 11: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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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1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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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9 22: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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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1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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