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두 아내를 가진 남자 ㅣ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34
패트릭 퀜틴 지음, 심상곤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9월
평점 :
대개 추리소설이란 탐정이 등장하고 밀실살인이 등장하기 마련이다. 탐정들은 파이프를 입에 물고 느긋하게 움직이며 두뇌를 최대한 활용해서 전지전능하게 범인을 지목한다. 이것이 홈즈에서 시작해 포와로, 마플, 번스, 퀸 등의 정통 추리물의 공식이었다. 이러한 공식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은 서스펜스 장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면서이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관점에서 이전까지의 추리 소설 공식을 자유롭게 해체하고 있다. 주인공은 탐정이 아닌 평범한 회사원이며 경찰에 도움을 청할수도 없는 입장이라 혼자서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만 한다. 언뜻 윌리엄 아이리쉬 소설을 연상케 하지만 사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굉장히 긴박감 넘치는 재미를 선사한다.
대 재벌의 맏사위인 빌 허딩은 시카고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카페에서 우연히 검은 옷을 입은 전처 안젤리카를 만나게 되는데 바로 그 순간부터 사건이 발생한다. 검은 옷을 입은 초라한 여인. 그것은 살인의 위험신호, 즉 검은 시그널이었다. 한때는 진실한 사랑을 나누었던 여인과 현재의 아내 사이에서 끝없는 방황의 거리를 헤매며 사랑의 재생을 숨기기 위해서라도 증오를 가장해야하는 주인공의 인간적인 고뇌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던 중에 전처 안젤리카의 정부이자 현재 처제의 애인인 한 건달 젊은이가 살해된다. 살인 용의자 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꼼짝없이 누명을 써야만 하는 안젤리카의 기구한 운명이 시간을 재촉하고 있다.
기구한 운명! 이혼한 전처와 우연히 조우하는 주인공은 그녀의 초췌한 모습에 깊은 동정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살인이 발생하고 그 시각 주인공과 전처는 같이 있었다. 서로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었지만 이 은밀한 만남을 외부에 알릴 수는 없었다. 주인공은 범인을 찾아서 홀로 고독한 추적을 벌이고 목을 조여오는 긴장감에 숨쉴 틈 조차 없다.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재미를 선사하는 패트릭 퀜틴의 걸작 <두 아내를 가진 사나이> 영미는 물론 전 세계 평단으로부터 추리소설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극찬을 받은 작품. 개인적으로는 윌리엄 아이리시 이후 제대로 된 서스펜스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었다. 아이리쉬의 작품들 처럼 정말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레이몬드 챈들러, 아이라 레빈 등과 함께 하드보일드 서스펜스의 개척자로 불리우는 패트릭 퀜틴의 천제적인 구성이 단연 돋보인다. 예측 불가능한 전개, 놀라운 구성, 치밀한 복선, 충격적인 반전 등, 읽기 시작하면 손에 땀을 쥐며 단숨에 읽어버릴 책이다!
*패트릭 퀜틴의 작품은 국내에 소개된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참고로 '마니아를 위한 세계 미스터리 걸작선'이라는 책에 패트릭 퀜틴의 단편 '불우한 남자'가 실려 있다. 그의 놀라운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명 단편이니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