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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세라는 얼떨결에 납치당하는 소녀를 구해준다. 그후 한 남자가 비밀스럽게 세라를 찾아온다.
딸을 구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 선물을 드릴까 합니다. 이게 고마움을 표하는 나만의 방식이죠.
조건은 세 가지.
72시간 안에 없애고 싶은 이름 하나를 말할 것. 시간이 지나면 제안은 영원히 사라진다. 받아들이면 절대 되돌릴 수 없다.
세라는 망설인다. 30대의 아름다운 시간 강사인 그녀에게 딱 하나 문제가 있다. 대학의 인사권을 쥐고 흔드는 막강한 파워맨 러브록. 그는 호시탐탐 세라에게 접근해 그녀의 몸을 원한다. 세라가 육체관계를 거부하자 러브록은 그녀에게 돌아갈 예정인 전임교수직과 큰 연구비가 걸린 프로젝트를 빼앗으려 한다. 숨통을 조여오는 러브록의 악행에 치를 떠는 세라는 마침내 '그 제안'을 다시 생각한다. 이제 조금 있으면 72시간이 끝난다. 세라는 망설인다. 그 제안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어떤 식으로든 범죄에 가담하는 행위라는 걸- 그녀는 알지만, 이 제안을 거부하기 힘들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유일한 구원이었기에...
책을 읽으며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쓴 일련의 미투사건이 떠올랐다. 막강한 힘과 권력을 지닌 이들이 그것을 무기로 여성을 성적으로 유린하려 든다면- 사실 29초나 생각할 필요도 없다. 2.9초만에 결정내릴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세라 역시 그러한 험난한 과정을 끝없이 겪다가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그녀에게 그 길 말고 다른 방법이 하나도 없었던 탓이다. 힘없는 소시민이 힘과 권력을 등에 업은 이들을 상대로 싸운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상대는 어마어마한 괴물이고 도움을 청할 길은 다 막혀 있다. 누구라도 그 순간에 '판타지와도 같은 구원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을 테다.
'리얼라이즈'의 작가 T.M.로건의 신작 '29초'는 전작에서도 느꼈던 엄청난 흡입력을 자랑하는 심리 스릴러다. 이 작가의 특징이 초중반에 주인공을 끝없는 지옥 속으로 밀어넣고 후반부에 폭발하듯 반전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이 작품 역시 중반까지는 내내 답답했다. 세라가 내내 당하기만 한다. 그러다 마침내 29초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좀 상황이 나아지려나 했는데... 상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예상치 못한 반전이 연이어 터지며 세라를 더 큰 악몽 속으로 몰아넣는다. 도저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꽉 막힌 상황에서 과연 세라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어쨌든 라스트는 무척 통쾌했다. 하지만 어딘지 씁쓸함이 남았다. 이것이 소설 속 이야기이기에 가능한 통쾌함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과연 현실 속 무수한 세라에게도 이러한 해피엔딩이 가능할지 의문이다.